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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다른 나라

한국/중국/일본 의료체계비교

 

한/중/일 의료보험 제도

 

영국은 무상 의료, 미국은 의료 민영화.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의 의료 체계는 어떨까?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제도는 1997년에 도입되기 시작한 의료보험을 주축으로 삼고 있다.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되었고, 도입된 지 12년만에 전국민으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빠른 시간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한 우리나라의 경험은 최근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중요한 사례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은 민간보험이 아닌 사회보험이므로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건강수준이 아닌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가 책정된다. 근로자의 보험료는 임금에 비례하는데 현재 임금의 약 5%로 책정되어 있고 고용자가 근로자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 자영업자의 경우 보험료는 자산, 소득, 성, 연령 등을 모두 고려한 공식에 의해 보험료가 책정된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 징수 등의 전반적인 관리를, 그리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은 의료공급자가 청구한 의료비용의 심사 및 평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의료공급자에 대한 진료비 지불은 대체로 행위별수가제에 기반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에서 포괄수가제를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의료보험 제도
중국은 1999년부터 기본의료보험제도를 설립했으며 기업, 국가행정기관, 사업기관과 기타 기관의 직원은 반드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는 고용 업체에서 직원 급여의 6% 안팎, 직원은 급여의 2%를 납부하고 있다. 기본의료보험은 지정된 병원이나 약국, 그리고 지정된 약품에만 적용하므로 중국 국영의료보험제도의 적용 범위가 좁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의 상업의료보험에 대한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민간의료보험도 꾸준히 발전해 2010년 중국 상업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4,000억 위안에 달했다.
또한 의료자원이 부족하여 의료자원 중 80%는 도시에 분포, 단지 20%만이 농촌에 분포되어 있다. 의료 보장이 완벽하지 못해 44.8%의 도시인구와 79.1%의 농촌인구가 의료보장 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공립의료기관의 경영이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지면서, 병원에서 요구하는 의료비의 지출이 날로 심해져가고 있다. 의료보장이 완벽하지 못한데다가, 의료비는 계속 올라가, 빈곤층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의 의료보험 제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이 거의 일본의 의료보험 제도를 모방했기 때문에 큰 틀로 놓고 보면 매우 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 하나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적용 대상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다르고, 환자 본인 부담률 또한 다르다.
또 다른 큰 차이점은 수가 체계이다. 일본은 행위별 수가제와 부분적인 포괄 수가제가 공존한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 내용은 천지 차이 이다. 일단 일본에서의 모든 진료행위는 국가가 정한 진료보수점수제도를 따라 점수화되어있다. 의료비는 이 점수 1점당 10엔으로 환산되는데 이 소정 점수의 각 항목이 무려 30만개를 훌쩍 뛰어 넘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이에 상응하는 항목이 겨우 2만 7000여개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수가 수준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이다. 진찰료, ICU입원료, 검사, 주사료, 수술료 수준에서 일본이 5배 더 높은 수가가 책정되어 있다.

 

한/중/일 전통의학

 

한국, 중국, 일본은 서양과는 별개로 예전부터 고유의 전통의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의학이 현대에 들어서 어떻게 현대 의학과 함께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한국의 전통의학
갑신정변, 개화기를 거쳐 일제와 함께 들어온 서양의학은 단기간 내에 뿌리내렸고 해방 이후의 미군정시기를 거치면서 기본적인 의료로 자리잡았다.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시 많은 논란 끝에 한의사가 인정됨으로써 의학과 한의학의 이원체계로 발전하였다. 현재 한의학은 의료 서비스 제공체계 내에서 인정되어 건강 보험의 급여 범위에도 포함되고 있으며 한의사를 양성하는 한의과대학이 있다.

 

*중국의 전통의학
마오쩌둥시절 중국 공산당의 정책 방향은 서양의학의 탄탄한 기반에 중국만의 독특한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서양이 갖지 못한 의학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많은 제도 개정이 이루어졌고,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는 새로이 규정된 학문이 만들어졌다.
이런 토대 아래 중국은 중서의 결합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양/한방 협진이라고 하면, 양의사와 한의사가 동일한 환자를 두고 각각 치료에 참여하는데 비해, 중국에서는 한 명의 의사에게서 중의학과 양방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가 나온다. 중국에서는 서양의학의 진단기기를 중의사들도 이용할 수 있다.

 

*일본의 전통의학
일본은 한중일 중에서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 들였는데, 따라서 서양 의학 또한 가장 먼저 유입되었다. 개화기 때, 일본의 전통의학을 전면 폐지하면서 유명무실한 의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국과의 교류로 전국민적인 관심을 얻게 되면서, 연구가 활발해졌다. 또한 국민들도 한약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한방제제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일본의 의사들 70.3%가 한방약을 처방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일본에서도 한방의학 교육을 하는 의과대학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본 전국 80개 의과대학 모두 한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문한빛 기자/서남
<shteme@e-mednews.org>

복지부의 춘천성심병원 수련정지 처분
-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

 

지도전문의 수 조작에 대한 복지부 처벌과 춘천성심병원 전공의 파업, 그리고 남겨진 문제들

지난달 15일 보건복지부(이하 보복부)는 2013년도 인턴/전공의 모집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초대받지 못한 대학병원이 있다. 바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다음날 공지된 대한병원협회의 ‘2013년도 인턴 및 레지던트 1년차 전공의 모집 공고문’에는 그 이름이 없었고, 춘천성심병원에 배정된 2013년도 인턴과 1년차 전공의는 ‘0명’이다. 어찌 된 일일까.  

 

지난 9월 보복부는 현지감사를 통해 춘천성심병원 측이 특정과의 지도전문의수를 허위로 부풀렸으며, 일부 과의 전공의 수련이 적절치 않은 수련환경에서 이뤄져 왔음을 밝혔다. 각 과의 전공의는 지도전문의(스텝) 수에서 5명을 뺀 수만큼 선발하는데, 춘천성심병원의 영상의학과는 2006년부터 기존 스텝 수 4명에 산하 다른 병원의 스텝을 허위로 추가등록하여 6명으로 부풀린 뒤 수련의 1명을 확보한 것이다. 비뇨기과 역시 스텝부족으로 이전에 보복부로부터 전공의 이동수련 조치1)를 받았지만 서류상으로만 한림대의료원 내 산하 병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조작, 전공의를 그대로 근무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춘천병원관계자들은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영상의학과와 비뇨기과 전공의 정원만 회수하는 정도의 적당한 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해당‘과’가 아닌 해당‘병원’의 1년 수련정지라는 강한 처벌이 내려지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같은 결정의 밑그림은 10월 2013년도 전공의 정원책정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회의에서 비롯됐다. 회의에선 몇 가지 사례(서남대병원 및 춘천성심병원)를 바탕으로 현재 시행되는 수련병원 취소법령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현재 수련병원의 지정과 취소는 보복부가 아닌 병원신임평가센터와 병원신임위원회가 맡고 있으며 지정취소사유 항목은 두 개2) 뿐이다. 또한 이것을 위반해도 지정취소는 강제가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는 선택항으로 명시되어 있다. 보복부는 이런 솜방망이 처벌 조항으로 인해 ‘불량 수련병원’이 방치되고 있다며 이제부터 복지부장관의 수련병원 지정취소 권한을 적극 활용,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첫 번째 예시로써 춘천성심병원 전체 과에 2013년 신규 수련의 및 전공의를 선발 자격을 박탈하는 처벌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춘천성심병원 측은 아연실색한 분위기였다. 행정상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내년도 전공의 지원을 앞두고 있는 인턴과 일부 ‘픽턴’들의 거취가 불확실해졌을 뿐 아니라 지금도 주 100시간 근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이 내년에는 47명이서 105명 분의 병원살림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11월 10일, 응급실 등 최소인력을 남겨둔 채 춘천성심병원 전공의 32명이 파업을 선언했다. 2013년도 인턴 및 레지던트 선발자격을 박탈당할 경우, 기존의 전공의들이 감당키 어려운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받아 병원 시스템에 타격이 갈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에게 돌아감으로써 지역의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교수진도 파업 성명에 동참했으며, 12일에는 경문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직접 병원을 방문해 전공의들을 위로했다. 대전협은 춘천성심병원을 운영하는 일송 재단의 불법, 부실한 병원경영과 그로 인한 의료인들의 피해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보복부의 신규 전공의 선발 금지 조치가 지역 의료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으며 의료인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 날 춘천성심병원 의료진과 교수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측에 징계철회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진정서에서는 “병원의 명백한 잘못이긴 하나 처벌을 확대하여 병원 전체 과에 2013년 신규 수련의와 전공의를 선발할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통상에 비해 너무 강한 처벌이다"며, "징계 조치로 의료인 수가 감소하면 의료 서비스의 양과 질이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면서 징계의 합당성을 충분히 재고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15일 확정 발표한 2013년 인턴 및 전공의 정원에서 춘천성심병원의 내년도 전공의를 모두 제외했다. 발표 이틀 뒤 춘천성심병원의 파업은 종료됐고 전공의들은 업무에 복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일송 재단의 ‘스텝 수 부풀리기’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 ‘부풀리기’는 전공의 지원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지방의료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값싼 인력인 전공의를 찾으려는 병원의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또한 양질의 수련병원을 지키기 위한 보복부의 ‘거친 방망이’는 재단이 아닌 다소 엉뚱한, 힘없는 수련의들에게 내려졌고, 갈 곳 없는 인턴들은 한림대의 다른 산하 병원에 문을 두드리는 중이며 남겨진 전공의들은 힘겨운 한 해를 버텨야 한다. 병원재단은 생존을, 보복부는 원칙을 위해 분주했으나 정작 결과는 의료의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인 수련의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워준 셈이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1) 현 법령 중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에서, 이동수련 사유가 발생한 병원이 이동수련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해당 전공의를 계속 수련시킬 경우 수련병원 취소사유가 된다. 
2)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 방침 중 지정취소 사유가 되는 항목 두 가지 ▲중복응시자를 합격시킨 병원이 정원 감축 처분에도 또다시 중복 응시자를 합격시킨 경우 ▲이동수련 사유가 발생한 병원이 이동수련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해당 전공의를 계속 수련시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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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정책, ★을 찍어드립니다

Chapter 6. 선택진료제

 

정의

선택진료제는 병원급 이상(의원 제외)의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 받을 수 있게 만든 제도이다. 특진이라는 용어로도 이용된다.

 

특징

선택진료제의 특징은 ★환자의 경제 능력에 따라 추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조금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라는 점이다. 의료서비스라는 재화를 수요자인 환자 측 입장에서는 비용을 들이면서 더 나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공급자인 병원 측 입장에서는 자신 병원에 소속된 우수한 인력을 토대로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저수가로 인한 손실을 일부 보전 가능하다. 즉 ★의료서비스에 경제 논리가 녹아 들어간 셈이다.

 

악용 사례와 변천사

하지만 이런 좋은 목적을 가진 선택진료제 폐지에 관한 논쟁은 최근뿐만 아니라 6년 전부터도 꽤나 뜨거운 감자였다. 예전부터 ★선택진료제 폐지를 주장하는 주요 논리는 “국민의 건강권 강화” 였다. 선택진료제도 시행 초기에는 원래 목적대로 잘 이루어졌지만 곧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의한 편법이 발생했다. 예컨대, 환자가 집중되는 특진교수는 하루에 5-6건의 수술을 ‘직접’ 해야 하지만 아예 자신의 수술을 아래 연차에게 맡기거나 자신은 수술방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는 식의 사례가 실제로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08년 7월부터 ★선택진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임상의사’의 20%를 비선택 진료의사로 지정해 운영하도록 선택진료제를 개정했다.

 

그런데도 왜 폐지하려고 하는가?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나머지 80%는 선택 진료의사로 활동할 수 있고, 여전히 이 ‘편법’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허점은 보완해나가면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바로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그것인데, ★병원에서 선택진료를 행할 경우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을 이 개정안에서는 삭제했다.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보다 나은 선택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의료계의 반발

현재 선택진료제를 실시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총 299개이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44개 기관 모두가 이 제도를 따르고 있으며 종합병원 101개(약 37%), 병원 141개(약 11%) 기관도 그렇다. 이 병원들이 한순간에 현재의 선택진료제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의료비 전체의 파이를 놓고 보면 의료계에서 왜 이 제도 폐지에 반대하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병원경영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선택진료비가 총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약 8%였으며, 이외의 경우 약 6%의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측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 셈이다. 

 

심화 그리고 확장

★결국 선택진료제에 대한 문제는 의료서비스에 경제 논리를 주입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로도 확장시켜 생각할 수 있다. 헌법상 국민의 건강권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서비스를 공공재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의료서비스를 마냥 공공재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에서 드러난다. 국/공립 병원 비율이 7.3%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서비스를 공공재처럼 제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는 결국 의료서비스는 현재 경제 논리에 입각할 수밖에 없으며, 선택진료제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종합

프로 스포츠 선수도 자신의 실력과 성적에 따라 몸값이 결정된다. ★무작정 돈을 벌겠다는(ex.영리병원)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과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겠다는(ex.선택진료비)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논리이다.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

보건의료단신

90호(2012.12.13)/의료사회 2013. 1. 1. 13:57 Posted by mednews

아스피린, 간암 예방 효과

 

 

아스피린이 간암을 예방하고 만성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비크란트 사하스라부데 박사가 30여만 명을 대상으로 12년간 조사·분석한 결과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간암 발생률이 평균 4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만성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도 45%가량 낮았다. 아스피린이 아닌 다른 NSAID를 복용한 사람의 경우에는 간암 위험은 낮아지지 않았지만 만성 간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은 26% 낮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효과를 아스피린이 간질환에 의한 만성 염증을 억제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암연구소 저널’ 최신호에 실렸다.

위암 생존율, 오차범위 10%로 예측 가능

서울대학교병원 위암센터는 지난달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을 10% 오차내외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노모그램(nomogram)’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노모그램이란, 서울대병원에서 위암진단을 받은 환자 중 무작위로 추출된 5300명의 데이터를 기초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는 나이, 성별뿐만 아니라 위암세포의 위치, 절제된 림프절 수 등 임상·병리학적 자료까지 함께 포함돼있기 때문에 정확한 생존율 예측이 가능하다. 양한광 교수는 “기존 TNM 병기는 분류 단위가 커 개개인의 생존율을 정확히 예측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노모그램이 한국인 위암환자의 예후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임상종양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땀샘에 상처 치유 기능 있다

 

 

땀샘에 체온 조절뿐 아니라 피부상처 치유라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간대 로르 리티에 박사는 체온을 조절하는 에크린 땀샘(eccrine sweat gland)이 자체 성체줄기세포를 가지고 있어, 피부에 상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이를 동원해 상처회복을 돕는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병리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리티에 박사는 “온몸에 흩어져 있는 수 백 만개의 에크린 땀샘이 찰과상, 화상, 궤양 등 피부에 상처가 발생했을 때 자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 상처 치료에 앞장선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를 통해 처음 밝혀졌다”며 “땀샘의 이런 기능을 잘 활용하면 욕창, 당뇨성 궤양 등 난치성 피부궤양 치료제 개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20년 전 예측 가능

 

알츠하이머 치매의 발병을 20년 전에 미리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미국에서 개발됐다. 애리조나주 배너알츠하이머 연구소·보스턴 대학 공동연구팀은 최근 비유전적 형태의 알츠하이머치매의 발병 원인과 악화 과정을 연구하던 중 이 같은 진단법을 발견했다. 연구팀이 44명 참가자들의 혈액 검사, 두뇌 스캔, 뇌척수액 채취 검사를 분석한 결과, 총 20명에게서 PSEN1 변이가 발견됐는데, 이 변이가 있는 사람들의 두뇌 구조와 기능은 변이가 없는 사람들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회백질은 적은 반면, 해마와 부해마 영역의 활동은 훨씬 활발했고, 알츠하이머 발병 신호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는 매우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PSEN1 변이는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20여 년 전에 생기는 일종의 아밀로이드 플라크로, 이를 미리 찾아낼 수 있다면 치매 발견 시점을 상당히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란셋 신경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됐다.

 

카바수술 끝내 ‘안전성 미검증, 공식 중단’으로 결말

 

 

3년 여간 의료계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종합적 대동맥판막근부 및 판막성형술’, 이른바 *‘카바수술’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사실상 퇴출 판정을 내리면서도 이와 유사한 수술법이 완전히 금지되는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복지부는 지난달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카바수술의 법적 근거가 돼 온 조건부 비급여 고시를 다음달 1일자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라는 조건을 달고 이 수술에 대해 비급여 진료비를 받도록 허용한 지 3년5개월 만에 내려진 최종결론이다. 복지부는 “이번 고시 폐지로 앞으로 카바 수술을 시술할 수 없고 이 수술용으로 개발된 치료재료인 ‘루트콘’, 일명 ‘카바링’도 사실상 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바수술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개발자인 송 교수가 일반적인 판막성형술을 표방한 채 카바수술과 비슷한 수술을 하더라도 현재 건강보험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밝혀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 카바수술 :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가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에 재직 중이던 1990년대 말 개발한 것으로, 손상된 판막이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고쳐 주는 수술이다. 그간 송 교수는 ‘기존 수술법에 비해 카바수술이 중증 환자의 수술 후 사망률을 낮추는 등 의학적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으나, 의료·의학계에선 카바수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 의대생신문 87호 좥카바수술, “아무 문제없다 VS 적응증부터 문제있다”좦 참고.

 

비만·음주에도 건강증진부담금 부과?

 

건강보험에 많은 재정손실을 일으키는 비만과 음주에도 담배처럼 ‘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이선미 부연구위원은 29일 ‘건강보장 재원확보를 위한 건강위험요인 부담금 부과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흡연, 음주, 비만에 따른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손실은 6조6888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07년 4조 6541억 원에서 4년 만에 43.7% 증가한 규모다. 항목별로는 비만으로 인한 지출이 2조 6919억원(5.8%)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음주, 흡연 순이었다. 이 부연구위원은 “비만과 음주는 대표적인 건강위험요인인 담배보다도 재정손실이 더 컸다. 정부는 건강증진부담금 부과대상을 음주와 비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장·대장·십이지장·비장도 장기이식 부분 합법화

 

그간 장기이식 대상에서 제외됐던 위장, 대장, 십이지장, 비장의 이식이 조만간 가능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2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들 장기는 개복(開腹) 수술의 위험성에 비해 의학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법적으로 장기이식 수술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장 이식을 하는 경우에는 어차피 개복 수술을 하게 되므로, 연결된 장기도 함께 이식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료계의 의견에 따라 이번에 법령을 개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은 이들 장기를 소장과 동시에 이식수술을 하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이들만 따로 이식하는 경우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개정 시행령은 다음 달 초부터 효력이 생긴다.

 

홍유미 기자/전북 <hym@e-mednews.org>

(수필부문) 최우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4학년 이장욱

 

응급의학 실습 4일차. 간만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유비무환?비가 오는 날엔 환자가 없다?라는 말처럼 실습 내내 바쁘게 돌아갔던 응급실도 고장난 정수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정수기 관련 업체 사람들과 간간히 오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환자들 외엔 오전 내내 한산했다.  그러던 노곤한 오후 무렵, 갑자기 울리는 전화.

“4분 내로 CPR 환자 온답니다. 다들 프로토콜대로 준비해주세요”

군복무 중에 모형이 아닌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을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환자가 사망 상태로 실려왔었고, 그것도 응급실 문틈 사이로 먼 발치에서 언뜻 본 것이어서 실제 환자에게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이 실습을 돌던 동기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눈으로 이런저런 눈빛을 주고 받으며 소생술실 앞에서 환자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119 대원이 심장 압박을 하면서 들어왔고, 대기하고 있던 교수님, 전공의, 인턴, 간호사, 응급구조사들이 프로토콜대로 환자를 처치하기 시작했다. 소생술실 앞을 커튼으로 가려놓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전극과 수액들이 몸에 꽃힌 환자의 모습과 구호를 맞춰 심장 압박을 하는 인턴과 응급구조사, 그리고  이런저런 처치를 조곤조곤 지시하는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닥터 그린이 소리지르며 제세동 버튼을 하나 둘 셋 줄기차게 눌러대던 ER의 드라마틱한 장면과는 달리, 긴박하긴 했지만 의외로 차분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그리고 심장 압박에 맞추어 하나, 둘..외치는 소리가 없었더라면 여전히 평온한, 그저 그런 비오는 날의 응급실로 여겼을 것이리라.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119 구급대원과 선생님들 사이로 왔다갔다 들리는 정보들을 조합해보니, 환자는 중년의 남자로  심장에 기저 질환이 있어 예년에 판막 교체술을 한 상태였고 회사에서 족구 시합을 하던 중, 갑자기 심정지가 왔던 모양. 그리고 병원까지 도착하는데 약 20분 정도가 걸렸고, 119 구급차에서 이미 5회 정도의 제세동을 시행했다고 했다. 열린 틈으로 제세동을 하기 전의 모니터를 살짝 보니 평탄파가 아니라 P파 소실에 wide QRS파 형태가 빠르게 반복되는 심실세동?다음날 오전 의국 환자 보고 시간에 교수님이 심폐소생술 시에 찍은 심전도 띠지를 보시더니 Torsade de Pointes라더라. 역시나 부족한 지식이 앞섰던 셈이다?의 파형을 보여서 심장압박과 함께 제세동을 계속 하면 아주 약간의 가능성은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 속에서는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의 20여분을 보고 있었을까. 심장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심장압박을 하던 인턴과 응급구조사들의 표정도 점점 지쳐갈 무렵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눈빛이 풀려 혼이 나간 듯한 중년 여자분이 들어왔다. 턱을 덜덜 떨면서 환자가 어디 있냐고 물으시기에, 안쪽에서 처치를 지시하던 내과 전공의에게 달려가 보호자가 왔다고 전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보호자는 바닥에 다리가 풀린 듯 털썩 주저앉고… 이를 부축한 내과 전공의는 응급실 한 켠 벤치로 보호자를 이끌며 ‘보호자 분께서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지금 빨리 연락이 닿는 친척 분들에게 전화하셔서 이쪽으로 빨리 오라고 하세요’라고 말하고 다시 급히 소생술실로 향했다.

커튼 틈으로 보여지는 소생술실을 지켜보던 눈은 자연히 혼자 남게 된 보호자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기는 손에 들고 있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으로 도저히 전화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보호자에게 살짝 다가가 지금 심장이 완전히 멎은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환자 분 심장 제대로 뛰게 하려고 최선으로 노력하고 계시니까 절망하지 마시고 마음을 모아달라는 말?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도움이 안되는,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껍데기 말이었다. 이미 내 머리 속에서는 ‘환자의 심장이 결국은 멈출 것’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 아무 말 말고 손을 꼭 잡아 주는 편이 보호자에겐 더 낫지 않았을까?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건네 받아 어느 연락처로 전화를 해야될 지 물어본 후, 전화를 걸어 다시 건네 드렸지만, 보호자는 그저 꺽꺽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지금 동국대 일산 병원 응급실인데, 지금 전화하신 분 남편 분이 심정지로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빨리 이쪽으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하니 그때서야 전화를 받는 쪽에서도 상황을 알아챈 듯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나중에 다시 확인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때는 이미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지금 가는 중이라고 하더라.

사실 나는 내 주변의 구체적인 슬픔에 즉각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또 밖으로 내어놓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까라마조프씨 네 형제들>에 나오는 구절이었던가.  ’개개의 인간에 대한 증오가 더해갈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강해진다‘라는 역설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나는 거대한 담론, 구체적인 주체가 희석된 문제에 대해서는 쉽사리 동의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내 주변 가까이에서 수없이 목격되는 슬픈 상황에는 도저히 몸이 즉각적인 자동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노동, 자본, 통일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밑도 끝도 없을 이야기들에는 이성적, 감성적 동의와 긍휼 그리고 분노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아가페에 버금갈만한(?) 능력이  발휘되지만, 바로 나의 눈과 손과 발이 닿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분투하는 이름모를 조각난 사람들을 보면 심정적 동의에 앞서 ‘저 사람은 여기서 도대체 왜 저러고 있나’라는 냉정한 상황 판단 논리 회로가 먼저 돌아가며 손을 내밀고 잡아주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나 스스로 지금까지 슬픔이란 것을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이해한 탓에 타인의 구체적이고도 사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 - 이건 내가 지금까지 ‘호혜적 연애’ 와 같은 사치를 제대로 누려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 이 많이 결여된 탓이리라. 또 그것에 더불어  ‘인류의 비환은 상통하지 않음’을 예전부터 느껴왔기에…

보호자 옆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길 수 분…파르르 떠는 파란 입술이 더 없이 말라 보여서 옆에 있던 동기에게 부탁해 떠온 물을 마시라고 드렸지만,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이내 손을 얼굴로 감싸쥐고 뭉크러지면서 얼굴을 무릎에 묻는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저 옆에 멍하니 서있는데, 보호자의 지인인 듯한 남자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응급실 문을 열고 두리번 거린다. 이내 보호자에게로 안내를 하고 나는 잠시 빠져 살짝 상황을 봤지만, 정말 그냥 ‘지인’인 듯 보호자와 몇마디 말을 나누고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듯 하더니 그냥 옆에 멀뚱히 앉아 있는다. 거기다가  정수기를 고치러온 기사가 ‘(터진 정수기 파이프)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라는 통화를 큰 소리로 하며 보호자 앞을 빠르게 지나친다. 이 말을 아마도 남편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어깨의 들썩임과 흐느낌은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물론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비수를 꽂은 격이 된 정수기사, 응급실의 이런 모습을 아이에게만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던 한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그저 잉여인간으로 소생술실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가 되어 있던 나와 동기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분명 존재하긴 했지만, 그때만큼은 모두가 고장난 라디오가 되어, 누군가가 간절히 발신하는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못한 채 지직거리는 소음만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지 40여분 째…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했던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한 시간 째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거다. 제세동 회수도 이미 10회를 넘어선 상황. 전자의무기록에서 파란색과 빨간색 화살표로 얼룩진 동맥혈 가스 분석 소견을 보며  절망적 예측을  굳혀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소생술실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동기들과 함께 황급히 커튼 틈으로 소생술실에 있는 심전도 모니터를 보니, wide QRS이긴 했지만, P파와 T파가 언뜻 언뜻 보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형을 보이고 있었다. ‘심장이 돌아왔구나!’  지금까지 비극의 전형적인 마무리 플롯을 짜는 것 마냥  파국적 상황을 예비했던 머리 속 한 켠이 갑자기 찌르르해온다. 순간 보호자에게 달려가려다, 아직 명확한 상황이 밝혀지지도 않았기에 발을 멈추고 시선만 다시 보호자 쪽으로 향했다. 보호자는 아직 그런 상황을 눈치를 못챈 듯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환자의 자발 호흡이 돌아오고, 내과 전공의가 소생술실에서 나와 보호자에게 다가가서 ‘지금 환자 분의 호흡도 돌아오고 심장 뛰는 것도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여전히 심장이 많이 흔들려서 환자 분의  생존 및 예후를 확실하게는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잠시 후에 제가 더 설명드릴테니까, 보호자 분께선 일단은 안심하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전했다. 많이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몸을 의지하며 전공의의 설명을 듣던 보호자는 다시 흔들리는 눈빛을 하며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이윽고 환자의 친척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 처음 연락할 때 휴대폰 연락처에 OO고모라고 되어있던 것으로 보아 환자의 누나와 자형인 듯 했다. 벤치 한 구석에서 웅크린 보호자를 보자마자 보호자의 손을 부여잡고  품 안으로 무너지는 보호자를 부둥켜 안으며 같은 울먹임으로 위로해주는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의 빚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에 뒤이어 드는 양가적 감정에 참으로 무참했다.

환자의 생명징후가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된 듯, 소생술실 안에서 환자를 처치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조금은 밝아진 듯 했다. 아직까진 많이 불안정해 보였지만 가끔씩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에 나도 조금은 안심을 하는 찰나, 안쪽에 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실습 학생들도 들어와서 심전도 돌아온 것도 한 번 보고, 환자 처치 외의 이런저런 것을 좀 도와주라기에 나와 동기들 모두 커튼 안으로 들어가 돌아온 심전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듣고, 이런저런 주사와 수액 처치를 당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는데…아까는 고통에 반응한 의식적인 반응으로 여겨졌던 팔다리의 움직임은 그저 팔은 굽히고 다리는 편 채 강직되는 전형적인 제피질 자세였다. ‘어쩔 수 없이 뇌에 손상을 입었겠구나.’라는 덜컹하는 생각과 함께, 또다른 사형 선고를 보호자에겐 또 어떻게 전달해야할까, 환자 자신으로서는 어떤 것이 최선의 결과일까, 그리고 또 남은 가족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라는 쉽게 답할 수가 없는 의문들이 스멀스멀 머리 속을 채웠다.

이후 응급실에서의 처치가 끝난 환자를 내과계 중환자실로 전동하기 위한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음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기 위해 내과 전공의가 가족들을 다 불러모았다. 지금 심장의 상태가 여전히 위험한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만약 한 번 더 심정지 상태가 오면 그때는 다시 되돌아올 가능성이 적다는 것, 그리고 심장이 제대로 돌아오더라도  비가역적인 뇌손상의 가능성(정확한 손상 여부 및 정도는 일주일 뒤 MRI를 찍은 후에 알 수 있다는 말과 함께)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차분하게 전했다.  보호자와 그 가족들은 심장은 뛰고 있다는 말에 조그마한 안도를 표하는 모습이었지만…아마 그때는 이러한 말이 앞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처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주일이 얼마나 잔인하고 아릿한 시간이 될지도…

모니터링 장치와 함께 온몸에 수액과 튜브를 줄줄이 단 환자가 내과계 중환자실로 옮겨가는 것으로 응급실의 상황은 어느 정도 종료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같이 생동하던 한 존재가 누군가의 손에 맡겨져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 그리고 이런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들이고, 다시 받아들여야할 존재들의 모습을 최전선에서 목격한 경험…이렇게 보고 겪은 모든 일들이 나에게 어떤 생채기를 낸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습 기간 중에 겪은 잊지 못할 경험’이라는 식의 감당 못할 윤색을 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식의 오글거리는 싸구려 감상 한 줄로만 갈겨놓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글을 끼적여 본다. 친하게 따르던 선배의 자살을 겪고, ‘형의 죽음이 단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는 것만이 아닌, 혹은 나의 예술적 체험의 확장으로 이용되기를 않기를 바란다‘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던 기형도의 자기기만적이지 않은, 섬세하고도 묵직한 선언은 나같이 불비한 놈에겐 아직 요원한 것이긴 하지만…이렇게 흉내라도 내다보면 언젠가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내 삶의 오롯한 상흔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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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우수
50만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4학년 현명한

 

“폴리클 학생 선생님,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봐.”
교수님의 말에 순간 트랙터※를 쥔 손을 놓칠 뻔 했다. 내가 졸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30분 째 교수님들의 뒤통수만 보이는 수술대에, 두 손만 뻗어 시야를 확보해 주고 있는 인간 트랙터에게 말을 걸어 주다니! 머뭇거리는 사이, 그네들의 관심은 다시 내게서 떠나 갔다. 엊그제 수술 했던 환자 상태, 아들의 중간고사 시험,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수술을 하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병원 안팎을 망라했다. ‘졸지 말아야지’. 새하얀 조명이 비춘 수술대에서 시선을 돌렸다. 초록빛 덮개 위에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검붉은 물감이 보였다. 문득 스쳐 지났던 미술 작품이 떠올랐다 이내 사라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멀리 수술 방 구석에서 레지던트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며칠째 안감은 머리에 엉망인 피부, 문득 아침 브리핑 시간에 어제 밤에도 응급 수술이 생겨 새벽 5시 반에 끝났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마취 기계를 보았다. 환자의 호흡에 맞춰 오르내리는 피스톤. 계속 보고 있자니 최면에 빠져들 것 같다. 기계 버튼을 조절하는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는 아이돌 가수 얘기로 분주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신호음. 팔이 저려온다. 환자 몸에 내 몸을 기대었다. 받침대가 있으니 한결 편해졌다.
삐. 삐. 삐.

문득 초록빛 덮개 아래 발가락이 보였다. 매니큐어가 반쯤 지워져 있는 새끼발가락. 이 공간의 주인공이 발을 내밀고 누워있다. 몸 안 가장 깊숙한 곳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은 체. 그의 몸은 호흡과 혈압을 유지해 주어야 하는 대상, 잡고 자르고 당겨야 하는 대상이다.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그의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등록번호, 진단명, 수술명, CT 사진이 컴퓨터 화면에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늘 해오던 수술을 하느라 지루할 터이고, 한쪽에서는 그 수술을 지켜보기만 하느라 졸릴 것이며, 다른 한 쪽에서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할 터이다. 그렇게 그 곳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처럼 적막한 공기가 흘렀다.

“다음 환자 내리라고 하세요”
수술이 거의 끝났을 때 교수님이 하는 말이다. 이 말에 모든 사람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지겨운 일상 하나가 끝난 표정. 곧 있을 퇴근과 식사시간의 즐거움.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다음 환자는 급성 충수돌기염 환자라서 30분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간단한 수술. 예전 수업시간에 외과 교수님이 이 수술은 수백 번 해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학생인 나도 몇 번 보고나니 해보고 싶다는 자신감마저 생기는 수술이었다. 오늘 수술 일정이 일찍 끝난다는 기대감에 모두가 부풀어 있었다. 이윽고 이번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환자는 원래의 모습으로 고이 몸을 닫은 체 퇴장하였다.

곧, 다음 환자가 내려왔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중년의 여자 환자였다. 하얀 얼굴, 고은 주름과 손 모양이 어머니 나이 또래를 연상시켰다. 기도하는 듯 손을 모으고는 한번도 눈을 뜨지 않고 조용히 숨쉬는 모습이 마치 자는 사람 같았다.

“이건 산소예요. 아직 마취 안 하니까 숨 크게 쉬세요.”
마취과 선생님이 마스크를 환자 얼굴에 대자 입을 열고 크게 숨을 쉬었다. 폴리클 학생의 주된 임무는 환자가 마취되기 까지 수술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보는 것이다.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지키며 환자 옆에 바짝 붙어 서서 퇴근하고 있을 저녁 약속을 생각했다. 오늘은 무엇을 먹지. 집에 가서 뭘 하지. 문득 멀리 레지던트 선생님은 환자 차트를 입력하느라 바빴다. 주변의 간호사들은 수술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돌아다녔다. 마취과 선생님은 마취기계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이윽고 마취에 쓰일 우유 같이 하얀 포폴 주사가 준비되었다. 곧 이 주사와 함께 환자는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곤 충수돌기를 수백 번 떼어 보았다는 하얀 가운의 기사가 나타나 눈 깜짝할 새에 못된 충수돌기를 떼어 버리고는 이 무대는 막이 내릴 것이다.
마취 주사를 놓기 직전, 갑자기 환자가 산소 마스크에서 고개를 돌려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저기요.. 선생님, 아까 남편한테 깜빡 잊고 말을 못했는데, 옆집 순영이 엄마한테 50만원 빌려준 게 있는데 그거 꼭 좀 받으라고 하세요...”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난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두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본 환자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옆집 엄마한테 빌려준 50만원. 그 얘기를 내게 왜 한 것일까. 이윽고 빨간 베타딘 소독약이 몸에 흩뿌려지고는 초록색 덮개가 그녀의 몸을 덮었다.
삐. 삐. 삐.

50만원. 그 돈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옆집 순영이 엄마한테 빌려준 50만원. 그것이 마취 직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 지 생각하는 것 조차 잊어 버렸다. 이 수술이 얼마나 간단한 수술인지, 30분도 안돼서 깨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자신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졸면서 당기고 있던 환자의 몸을 위해 그의 가족들은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기도하였을 것이다. 어제 본 티비 드라마 내용을 얘기하며 잘라낸 그 부분은 사실 누군 가에게는 소중한 몸의 일부였던 것이다. 모두가 일상이 되어 버린 이 수술 장이 그들에겐 간절한 기도의 공간이고, 운명이 공간이었다.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부탁한 50만원은, 그녀가 본 마지막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무대가 주인공인 그들에게는 운명을 걸고 맡기는 마지막 장소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익숙해 지는 삶. 처음 해부학 실습 때 만졌던 카데바의 차가움. 처음 수술 방에서 살아있는 환자의 장기를 만졌을 때의 설렘. 처음 임종을 경험하였을 때의 숙연함. 익숙함의 그늘이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정적 역치를 높게 만든다. 그녀가 부탁한 50만원. 그것은 그들이 영혼을 가진 작고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환자의 몸을 벌리는 기구

(수필부문) 심사평

90호(2012.12.13)/문예공모전 2013. 1. 1. 13:43 Posted by mednews

(수필부문) 심사평
더 깊이 사고하고, 더 깊이 고뇌하라

권순긍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전국 의과대학 학생들의 신문인 <의대생 신문>에서 문예공모전에 응모한 학생들의 글을 보내왔다. 다량의 응모작과 함께였는데 그 중 최우수작과 우수작 두 편을 뽑아달라는 주문도 함께였다. 내심 “머리가 좋은 의대생들은 어떤 글을 쓸까?”라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었다.
읽다가 보니 어디선가 익숙하게 본 듯한 느낌의 글들이 많았다. 그렇다. 바로 ‘교과서식 논리’거나 ‘모범생적인 감상’이었다. 말하자면 이렇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알차게 보내라.”거나 “사회에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이 있다.”거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살한다.”거나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의사가 돼서 치료해드려야겠다.”는 생각들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논리나 감상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어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문학작품이 윤리교과서와 다른 점이 그것이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가르침이지만 문학은 착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흥부처럼) 가난 속에 허덕이는 것을 다룬다. 그럼으로써 왜 세상은 불조리한가를 다루는 것이다.
이렇게 사고와 느낌의 폭이 얕고 좁은 이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 사회경험이 적은 데다가, 의대생이다 보니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까이서 발견한 소중한 보물들>이라는 글처럼 눈을 돌려 저녁노을 물든 하늘을 보듯이 주변의 보물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식 논리나 모범생적인 감상으로 무장한 글 속에서도 좋은 글들이 많았다. 반수를 하고 휴학을 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자기성장을 체험한 <다크 초콜릿>은 평범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것이 의대생들이 겪는 현실이기 대문이리라. 쾨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나 멕시코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연상시킨다. 다만 더 깊이 사고하고 고뇌한 흔적이 없어 아쉽다.
‘의학과 문학을 모두 품고자 하는 청년’이 쓴 <그 사람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문학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자기고백이 돋보이지만 너무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자기고백으로서는 훌륭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어설픈 것이지 않을까? 마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중계방송 하듯이 어색하다.
병실에서의 급박한 상황을 서사적으로 그린 <50만원>과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다. <50만원>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술대에 오른 환자가 자신이 죽을 지도 몰라 마취 직전에 수련의에게 “옆집 순영이 엄마에게 빌려준 돈 50만원을 꼭 받아달라.”고 남편에게 전할 말을 남긴다. 이런 말을 하는 엉뚱한 환자의 모습을 통해 병원의 환자가 단순한 의료대상이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임을 자각한다는 내용이다. 수필이라기보다 짤막한 ‘꽁트’로 사건의 집약과 50만원을 받아달라고 내뱉는 환자의 부탁이 ‘촌철살인’의 묘미를 주는 수작이다.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시키고 치밀한 세부묘사를 통해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는 응급실에서 수련의가 겪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심폐소생술을 통해 가까스로 깨어난 환자를 보고 그것이 ‘잊지 못할 경험’이거나 ‘문학적 감상’이 아닌 진정 삶의 무게를 느끼는 현실이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점이 탁월하다. 다소 문체가 지루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조차도 고뇌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하여 ‘최우수작’으로 선정한다.
가장 고귀한 일 중의 하나인 의료는 어떤 것 못지않게 좋은 문학의 소재가 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존엄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통해 보다 깊이 사고하고, 더 깊이 고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과 고뇌 혹은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언어야말로 우리들 삶의 진면목이지 않겠는가? 모두의 건투를 빈다.

(시부문) 최우수
응급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2학년 홍정표

 

기숙사 앞 응급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통장 안 잔액을 확인하러 온 학생 하나가 수수료도 못되는 전 재산의 일의 자리부터 백의 자리까지 몇 번이고 되뇌어보다 텅 빈 담뱃갑을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한다 오늘 에이티엠을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을 뽑지 못하는 사람들뿐이다 그의 어미가 유방암 말기라는 사실을 이곳의 누구도 알지 못했으므로 오늘 그는 이곳 응급실 대기의자의 붉은 야경이 될 운명이다 그런 그의 옆으로 한사코 이곳 응급실 대기의자가 편하다는 노인이 불안히 그 공간으로 제 몸을 구겨넣는다 학생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기로 한다 이곳의 어디도 자막은 없었으므로 오늘 이곳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기로 한다 티브이도 나오지 않는 새벽, 째깍째깍 익숙한 소리가 방을 메운다 하루에 꼭 일이초쯤은 함께하자던 바늘 가족들이 가까스로 새벽 4시, 각자의 자리에 홀로된 몸들을 누인다 때마침 또다시, 로비의 전등 하나가 위태로이 점멸하기 시작한다 빨간 응급실 간판 아래로 한 구의 붉은 이와 두 명의 흰 이들이 몸을 내린다 너는 피가 왜 붉은지 알아? 라고 묻는 한 흰 이에게 헤모글로빈? 이라고 다른 한 흰 이가 무심히 대답한다 그럼 헤모글로빈은 왜 붉을까? 라고 묻는 한 흰 이에게 다른 한 흰 이는 말없이 관계자 외 출입금지 안으로 몸을 들인다 그 길로 오늘 하루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던 간이침상의 늙은 바큇살이 붉은 이의 숨결을 거칠게 흩뜨린다 그리고 조용히 그 길을 좇던 청소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늙은 대걸레의 치맛자락 속으로 바닥에 스러진 혈흔과 통증들을 한 방울 한 방울 남김없이 주워 담는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많았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학생은, 그리고 당신을 너무도 오래토록 홀로 두었기 때문에 노인은 나의 피는 붉다, 고 믿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그 글귀가 오늘따라 붉다 문이 여닫히고 낭자한 방울방울들의 채도를 하나하나 머금은 그 글귀는 누구보다 진실하고 침착하게 당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 이름이 종종 질병, 그 자체보다 무서울 때가 많았다 일방통행만이 유일한 교통법인 이곳에는 네 발로 들어간 붉은 이들은 많았지만 두 발로 걸어 나온 붉은 이는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 그 글귀의 색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무지개 색을 감추기 위함임을 어렴풋이 눈치 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병동에서 진정 피가 붉은 이유는 붉지 못하고, 동시에 아름답지도 못한 당신의 모든 마지막들을 감추기 위함임을 이곳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암전 그렇게 이 문이 영원히 닫히기를 누군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추적추적 눈 밑이 새까만 여자가 자신의 하얀 가운보다 곱절은 창백한 미소들을 걷으며 오늘의 죽음을 선고하러오고 있었다 계속 고집부리시다가 육 인실이 만원되면 당신은 배는 비싼 일 인실에 입원해야해요, 라고 말하는 여자의 손이 스멀스멀 자신의 배를 감싸고 있다 생리와 당직의 불온한 주기들과 불순한 교집합이 돼버린 여자의 아래로 치열한 감동이 되지 못한 체온들이 뚝뚝뚝, 뜨거운 하혈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런 여자의 눈앞으로 차마 돈이 없다고 말하지 못한 노인이 끝내, 죽지 못하여 자는 척을 하고 있다 로비에 누운 그의 실눈 새로 보이는 하얀 천장이 떨어지는 별들의 잎새들을 감추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학생은 기어코 그 표정을 기억해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 표정이 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창백한 예감만이 침묵처럼 이곳, 응급실의 로비를 무겁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구도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오늘 죽을 수 있다 그런 웃지 못 할 농담을 들은 기분이 든 학생이 도망치듯 서둘러 제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소매에서 나던 쾨쾨하고 썩은 질병의 냄새들 새를 비집고 외로운 살들의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쓰레기통 속으로 때 묻은 지포라이터를 쑤셔넣으며 그는 내일부터 담배라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은 듯 의자에 누워있던 노인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내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별밤에 기도한다 현재시각, 새벽 4시, 아직도 그들의 생명은 접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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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우수
사과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김호준

 

살을 푹 파낸 사과가 병실 침대에 누워있다    
눈물처럼 흘러나오던 과즙이 이제는 멎은 걸까
상처로 속살이 배어나와 갈변하는 하루하루
할머니가 거기 누워계신다
 
창틀로는 나비 한 마리가 힘껏 기어오르는 중이다 
사과의 속살을 노린 게지 
제 짝짓기와 산란만 생각할거야       
배를 든든히 채우고선 
온몸을 치장하러 떠날 테지 쉬이  

굳어버린 팔 애써 벌려 할머니가 미소를 보내자
날개가 그만 오므라지고 촉수는 촉촉해진 나비
체온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더라   
쪼글쪼글 상처에도 고일 수 있게 

똑 똑 
흰 옷을 걸친 히포크라테스 흉상이 들어와  
서로가 포개어진 사과를 진찰한다  
상처도 아물어가고 있고 몸 상태도 좋아요

나비는 날개를 펴 사과를 향해 두 번 펄럭인다
남은 상처에는 하얀 속살이 들어찬다
할머니는 차마 버릴 수 없는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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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우수
삶의 무게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2학년 류시웅

 

이른 새벽 거무죽죽한 겨울코트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가냘픈 옷걸이를 꺾어버리고 아버지는 출근길에 나선다
가끔씩 아버지도 한 손에 든 서류가방을 떨어트린다

옷걸이도 본래는 땅이 고향이었다
쇳물로 녹고 가래떡처럼 길게 뽑혀
외팔로 공중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녹슬고 뒤틀린 손목만이 그의 노고를 증명한다

어릴적 여리던 아버지의 손목도
힘줄이 드러난 채 비틀어져 간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한숨이 깊을수록
옷걸이도 야위어만 간다

왜 몰랐을까
가끔씩 이유 없이 떨어지는 옷들이
옷걸이가 떨쳐낸 삶의 무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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