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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23 여성의사의 상중고

여성의사의 상중고

95호(2013.10.17)/커버스토리 2014. 4. 23. 01:04 Posted by mednews

여성의사의 상중고

결혼과 출산, 육아로 되짚는 리얼리티

 

XX 염색체를 가진 의사라면 누구에게나 세 개의 페르소나와 세 가지 책무(?)가 존재한다. 전자는 의사/여성/엄마, 후자는 결혼/출산/육아이다.
혹자는 ‘아니 요즘 같은 여성시대, 알파걸 시대에 이처럼 가부장적인 요소가 많아 보이는 책무라니, 조선시대입니까?!’ 싶겠으나 한국에서 사는 여성 중 그로부터 흔쾌히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선 결혼과 출산, 육아의 관점에서 여성의사의 삶이 대체 어떻게 펼쳐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결혼기│

 

 

레지던트 A씨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인턴 B씨. 원내에서 만나 바쁜 와중에도 알콩달콩 의지하며 정을 쌓아와 서로 어렵지 않게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예를 들면 언제 식을 올려야 할지, 날을 잡는 데 고민이 태산인 것.  
‘여름은 병원 바쁠 때니까 안 되고, 9월은 A씨가 도는 파트가 바쁜 달이고, 10월은 내가 응급의학과를 도니까 안 되고. 그런데 인턴 때 해도 괜찮은 걸까? XX과는 여자를 잘 안 뽑는다는데, 결혼하고 지원하면 더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년은 레지던트 1년차라 더 하기 힘들어질 텐데...’
결국 병원 일정에 맞춰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둘 다 시간이 부족해 모든 준비는 웨딩 플래너에게 맡겨두었지만 그래도 여유가 없는 탓에 A씨는 일주일동안 못 감은 머리로 양복을 맞추러 나갔다. 신혼여행 휴가를 얻는 대신 여름 휴가는 모두 반납했고, 결혼식 당일 새벽까지 당직을 서야한다. 예비부부의 설렘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급한 중환이 오지를 않길 바랄 뿐이다.

인생에 한번뿐인,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식. 서로 의논하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지만, 여의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고학력군인 여의사들의 결혼 적령기는 20대말, 30대 초인데, 이 기간은 보통 인턴 혹은 레지던트 수련시기로 결혼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기본적인 준비를 모두 웨딩플래너에게 맡겨두는데, 나머지 혼수 준비에서도 여자가 선택 및 고민, 결정해야하는 부분이 많아 남자의사보단 여의사에게 작지 않은 부담이 된다.
결혼 휴가는 보통 1주일 정도 인데, 역시 순수한 축하는 없다(?). 당직을 미리 당겨 서두고, 본인이 바쁜 파트를 돌 때는 피하는 것은 기본이요, 해당 연도의 기타 다른 모든 휴가는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반납하는 것이 상도덕이다.
여자가 인턴일 경우 지원할 과에서 결혼한 여성을 배제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걱정거리다.  과에 따라 남녀 혹은 기혼 여부에 대한 차별은 암묵적으로 존재하나 점차적으로 완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출산기│

 

 

레지던트 1년차 C씨. 어젯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마냥 기뻐할 수만 없다. ‘출산 휴가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예정일이 바쁜 기간은 아닐까.’ 라는 고민부터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Maternity leave-induced work loading’을 설명해야하는 게 벌써부터 두렵다. 축하해주는 동료들 얼굴에, 출산 휴가 때 넘겨받을 일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이 스치는 걸 본 것만 같다.
여하간 출산예정일이 다가왔고 출산 휴가를 신청했다. 병원 측은 입장은 이러하다. ‘출산 휴가를 줄 테니 여름 휴가는 내어놓으렴,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덧붙여 모두가 바쁜 기간에 출산 휴가를 다 쓸 거냐며 슬쩍 압박도 준다. 힘들어서 퀭한 동기들 얼굴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C씨의 마음은 덤이다.
한편 레지던트 1년차 D씨. 단 둘이서 파트를 돌고 있던 동기 C씨가 출산 휴가를 떠났다. 축하할 일이지만, 일주일 100시간씩 근무하는 마당에 ‘왜 하필 나야!’ 솔직히 원망스럽다. 아기가 크는 열 달 동안 그의 걱정도 함께 컸다. 당직기간도 두 배, 주어지는 업무도 두 배. 3달 동안 혼자서 업무 담당할 생각은 네 배로 막막하다. 휴가를 다 채워 쉬면 C씨에게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의사사회에서 출산은 오로지 여의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결혼과 육아에 비해 여자 혼자 부담할 몫이 큰 것이다. 과도한 업무를 최소의 인원으로 겨우 버티는 의료현장에서 한 사람의 빈자리는 비우는 사람과 채우는 사람한테도 모두에게 심적, 신체적으로 큰 로딩이다.
현재 출산에 대해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기간은 총 3개월. 하지만 실질적인 기간은 각 병원의 각 과마다 천차만별이다. 수도권 지역의 몇몇 대형병원이나 기업병원의 경우만 출산 휴가 3개월을 보장한다.
6개월 전 시행된 병원평가에 출산 휴가 등 복지나 법의 적용에 대한 평가도 들어가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3개월을 완전히 채워주는 추세이긴 하나 대부분 지방 및 중소 병원에선 출산 휴가를 내도 1달만 쉬고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소아과처럼 출산 장려 및 여성의사가 많은 과는 출산 휴가를 잘 이해해주는 분위기이지만 외과계열 같이 남성위주 및 업무가 많은 과에서는 ‘출산’과 ‘산후조리’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다.
또한 휴가를 받으면서도, 일을 넘겨받을 동료들의 눈치를 보고 걱정하는 마음도 만만찮은 로딩이다. 축복 받을 일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 불성실한 업무수행력의 하나로 여기는 병원 측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현실에 산모는 힘들다.

 

│육아기│

 

“오늘도 당직이네. 몸을 두 개로 나눌 수 있었으면...”
엄마와 의사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E씨. 영아기의 아이와 엄마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학생 시절 소아과 시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법적으로는 1년의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다지만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아이는 가사도우미가 맡아주고 있다. 퇴근할 수 있는 날에만 아이를 보는데, 매번 훌쩍 커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보다 미안함이 앞선다.

“그래도 다음주엔 아이를 보러 갈거니까, 한 주만 버텨보자.”
화창한 일요일, 부교수 F씨는 학교로 향한다. 반대편 차선은 교외의 놀이공원으로 향하는 차로 꽉 막혀 속도도 못 내고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어제 저녁 유치원생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장모님 댁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바꿔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 이름을 깜박했다는 사실에 한숨만 푹 내쉰다. 장모님 댁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차로 3시간은 걸리는 곳이라, 2주에 한 번 밖에 아이를 못 보는 상황.

결혼과 출산의 고단함은 육아의 고단함으로 이어진다. 법적으로는 0-6세의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지만,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아이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또는 가사도우미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다수다. 보고 싶은 마음이야 엄마나 아빠나 같겠지만,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미안함은 여성이 느끼는 바가 다소 크다.
인턴, 레지던트의 험한 시절은 다 지났지만 부교수와 교수의 삶도 녹록치 않다. 잠 자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병원에서 바삐 일하며 교수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삶. 고단할 수밖에 없다. 여자 의사라면 양육은 불가능에 가까워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이를 맡아주게 된다.  남자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외식 한 번 하려면 온 가족이 병원 앞으로 찾아와야 한다. 저녁 먹고 나서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른 아빠, 엄마들은 아이 손잡고 공원으로, 동물원으로 놀러 다니는데, ‘아빠, 엄마 보러 가자’ 며 병원 앞까지 와야 아이 얼굴을 볼 수 있는 현실이 아프다.

 

많은 여성 의사들이 출산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이익을 당한 쪽이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 현실. 병원이나 교수와 적대관계를 만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일할 동안만 어떻게든 버티고 말지’라며 체념한다.
의학과의 여학생 입학비율이 증가해 40%를 바라보는 학교도 있고, 의전원은 여학생 비율이 50%를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 의사 사회에 여성의 숫자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거기에 남녀평등과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여 대한병원협회에서도 병원신임평가 항목에 여성전공의(인턴 및 레지던트)의 90일 출산휴가사용 여부를 평가기준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일부 병원에서는 2개월이었던 휴가를 3개월로 연장토록 조치했다. 쉬쉬하며, 또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레지던트 선발과정에서의 여성 차별도 예전에 비하면 줄어드는 추세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일주일 80시간 이하로 유지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전공의 특별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는 여성전공의의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사항이 포함된다.

 

박상아 기자/을지 <ann1208@e-mednews.com>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