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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우수상

바람과 나무의 탄식

최건우 (원광대학교 예과 1학년)

 

조금 더 빨리

당신께 드려야 했던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


이 못난 자식은 이제야

새까만 정장차림으로

새하얀 국화 한 송이


<수상소감>
뽑힐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공모전에 이렇게 입상하게 되니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당황스럽네요. 이번 공모전에 시를 써내기 전까지 이렇다 할 시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를 몇 편 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제목 「바람과 나무의 탄식」은 ‘풍수지탄’, 즉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를 직역한 것입니다. 효도를 다하지 못한 자식이 뒤늦게 처음으로 부모에게 건넨 꽃이 고인(故人)에게 바치는 국화꽃이 되어버린 상황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제 부모님께 아직 이 시를 보여드리지 않았고 입상 소식 또한 아직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예쁜 꽃 한 다발 드리며 자랑해야겠군요! 시를 읽게 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이 시가 부모님께 꽃 한 송이 선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부문

최우수상

무말랭이

강경모 (서울대학교 본과 4학년)

 

달이 처마에 걸려 넘어질 즈음
시골집 마당 한편에 널브러졌던
갓 무친 무말랭이 한 움큼 올랐다

젓가락으로 집어 살펴보니
아침저녁으로 몹시 시리다는
할매 손가락을 묘하게 닮았다

세월과 함께 마른 당신은 아닐까
찬을 놓는, 조금 더 앙상한 손과
구불해진 등을 보며 생각했다

어서 많이 묵으라 내 새끼
시큼한 햇볕으로 절여진
짭짤한 목소리 한 조각 들었다

오독 오독 잇자국을 남기며
시나브로 퍼지는 매콤한 정(情)을
오랜만에 음미하며 꿀꺽 삼켰다

 

<수상소감>
지난 초가을 외할머니 댁을 잠깐 방문하였을 때 저녁상에 나온 무말랭이를 보면서 문득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에서 2남 4녀를 서울로 보내 교육을 시키시고, 할아버지 병수발을 20년 가까이 해오셨던 할머니의 삶이 이 무말랭이 한 접시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작 당신은 지금 골관절염으로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지만 손주에게 좀 더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그 넓고 따뜻한 마음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원형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는 모든 분들이 오늘 어머니에게 사랑하고 감사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저의 어머니의 어머니이신 할머니께 이 시를 바칩니다. 또한 저의 많이 부족한 시에 과분한 평가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부문

대상

 

지점토

김성현 (을지대학교 예과 1학년)

 

어릴적에는 나만의 지점토가 있었다.
아주 크고 흰 지점토였다.

작은 손으로 즐겁게 모양을 내고
나의 지점토를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나의 지점토에 미소를 지었고
나는 뿌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지점토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관람객들은 나의 지점토에 대해 충고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는 지점토를 빚고 다시 빚었다.

하얗던 색은 점점 때가 끼어 검게 변했고
말랑말랑하던 지점토는 점점 굳어갔다.

그렇게 나의 지점토는 돌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돌의 크기와 무게를 정확히 잰 후에 감상한다.
그리고 흡족해한다.

나도 그 돌을 감상해본다.

아무런 느낌도 없다.

 

<수상소감>

안녕하십니까? 을지대학교 김성현입니다. 이번 제 10회 의대생 문예공모전을 통해 저의 시를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고 기쁩니다. 제가 오글거리는 말을 잘 못할뿐더러 이렇게 소감을 쓰는 것조차 어색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저 감사하고 기쁩니다. 겨울이 다가와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한 해를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상금으로 맛있는 것 많이 사먹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부문> 심사평

 

<한국의사시인회>
유 담 시인, 김연종 시인, 홍지헌 시인

 

종합심사평 (유 담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먼저,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64명 모든 응모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의대생들의 시를 대하는 일은 추억 되살아나기 등의 표현만으로는 일컬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각 1편씩 총 3개의 작품만을 선정하는 곤혹이 없었다면 그 즐거움은 더하였을 것이다.
 총 예순 네 편의 응모시를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것은 『괴테와의 대화』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저 허술한 주관적 감정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결코 시인이라 할 수 없다. 이 세상을 제 것으로 만들어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는 바로 진정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메시지와 이미지와 리듬이 자기사유(自己思惟)의 바다를 헤엄쳐 가로지르며 독창적 비율의 시어(詩語)로 시를 빚어내는 일은 영원히 꿈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져 표현되어진 것을 시라 한다.
 물론, 약간의 허술함이 의과대학생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을 줄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시적 감각과 진정성이 풍부한 시의 가능성이 그 허술함을 넉넉히 삭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가능성의 성장과 진지한 구현을 기대하며 다시 한 번 축하와 격려를 표한다.
 
심사평 1(홍지헌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이사)
 의대생 신문 문예공모전에 출품된 64편의 시를 읽으며 즐거웠다. 30여 년 전 의대 재학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부에 쫓기면서도 문학반 활동을 계속하였고, 타 대학의 문예부와 교류하던 그 시절은 영원한 추억의 저수지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에서도 나타났듯이, 해도 해도 끝이 없던 공부, 시험, 유급 걱정, 동아리 선배나 고등학교 선배들에게서 기출문제를 받아 공부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64편의 시를 검토해 본 결과 힘든 의학 공부를 다룬 시, 부모님에 대한 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 가족 이야기, 실습 돌며 목격한 환자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고, 시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가 눈에 띄어 기뻤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5편씩 선정하였는데 ‘지점토’ 와 ‘무말랭이’가 심사위원 전원이 공통으로 선정하였다.
 지점토는 시를 시작하고 전개해 가다가 끝맺는 솜씨가 눈길을 끌었다. 지점토를 재미있게 주물럭거리며 자유롭게 작업을 하다가 어느덧 손때가 묻어 색이 검게 변하고 점점 굳어져 돌이 되고, 스스로도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동참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시의 배열도 마치 전체로 공예품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시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좌측에 맞추어 배열했다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말랭이는 시를 많이 읽고 습작을 많이 해본 솜씨라는 느낌을 준다. 무말랭이 무침을 반찬으로 집어 들며, 고향에 계신, 혹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손가락을 떠올리고, 오독오독 씹으며 할머니의 목소리와 콧등이 매콤 시큰하도록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이 선명한 그림처럼 그려지는 완성도 높은 시다. 작가와 관계없는 일이겠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제목의 안도현 시인의 시가 연상되어 감동을 경감시키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시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바람과 나무의 탄식’ 은 제목도 좋고 시의 분위기가 정돈되어 있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심성의 소유자가 썼다고 생각된다. 다만 시를 좀 더 끌고 가는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호흡이 너무 빨리 끝났다는 아쉬움이 있다. 시적 화자가 나무인 이유, 제목에서만 나타난 바람이 내용에 더 보태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짧은 시 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그 외에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는 실습도중 관찰한, 환자들이 맞고 있는 수액제를 소재로 한 ‘물방울’, 의대생들의 절박한 심리상태를 노래한 ‘버텨라’, 부친에 대한 애틋한 정을 노래한 ‘아빠를 말할 수 있는 것’ 등이 있었다.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느꼈겠지만, 문학도 쉬지 않고 정진해야 어느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응모한 모든 의학도들이 문학과 더불어 성장하기를 또한 문학과 함께 행복하기를 기원하다.

 

심사평 2 (김연종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총무)
 <의대생 문예공모전>이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설레었다. 의대생이란 말 속에 포함된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한편씩 작품을 읽었다. 질병도 세태를 반영하지만 문학도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의학도로서 학업에 대한 고충과 젊은 청춘들의 사랑과 고뇌, 힘든 가족사 등이 주를 이루었다.
 전체적으로 강렬하게 심사위원들의 눈길과 마음을 붙잡은 작품은 적었지만 그 중에서 관심 깊게 본 작품은 <지점토>와 <무말랭이>이었다.
 지점토는 아쉬움과 함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어렸을 적 누구나 종이 찰흙으로 공예품을 만들며 매우 만족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하지만 어느 샌가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지점토를 만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얗던 색은 점점 때가 끼어 검게 변해가고 말랑말랑하던 지점토는 점점 굳어 버린다. 사고의 유연성이 사라지고 마침내 딱딱한 돌로 굳어 버린 자신을 보며 한탄한다. “나의 지점토는 돌이 되었다”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여 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적 긴장감, 여운처리, 너무 친절한 설명 등으로 독자들의 상상력까지 독차지한 느낌이다. 詩란 적절한 묘사를 통해 대상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사고로 사유를 전개하는 노력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비쳐졌다.
 지점토와 똑같은 이유로 선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은 무말랭이다.
 처마에 걸린 달을 보다가 시골집 마당 한편에 널브러졌던 무말랭이를 떠올린다. 이어 무말랭이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앙상한 등허리로 치환된다. 마침내 무말랭이는 “시큼한 햇볕으로 절여진 짭짤한 목소리”라는 아름다운 시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신산한 삶의 이력들이 더 있을 것 같지만 서둘러 종결하고 만다. “매콤한 정을 음미하여 꿀꺽 삼킨다.”로 절치부심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시를 쓸 자질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다.
 새까만 정장과 새하얀 국화를 잘 대비시킴으로서 제목에 대한 효과를 적절히 살렸다. 부모의 영정 사진 앞에서 경건하지 못할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거친다 하더라도 슬픔은 남아있게 마련이다. 바람과 나무로 대변되는 불효자라면 그 탄식 소리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역시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심사위원들의 합의에 이른 작품에 대해서만 간단히 피력해 보았지만 선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과의 갭은 크지 않았다. 문학에 관심 있는 의학도가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수필부문

우수상

우리 강아지 왔다냐, 잉

이승헌 (충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낡은 휠체어엔 오랜만에 곱게 단장을 한 할머니를 앉히고 저는 그 휠체어를 밀고 길을 걸어갑니다. 시험이 끝난 주의 일요일, 지방의 대학에서 홀로 지내다 모처럼 서울 집에 돌아온 날엔 할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갑니다. 거동이 불편한 당신께서는 책상조차 없는 맨 앞자리에 앉으십니다. 미사 중에 봉헌금을 내고 성체를 받아 모시려면 맨 앞자리가 가장 편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옆자리에 앉으려는 저를 구태여 물리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할머니의 조그만 등을 바라봤습니다. 할머니의 머리 위로는 할머니를 닮은 성모 마리아가 인자한 얼굴을 하고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글자글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리 조각들이 할머니 얼굴에 아로새겨진 세월을 보는 듯합니다. 저는 가로로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할머니의 작고 굽은 등과 하얗게 센 머리,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구순을 2년여 앞둔 할머닌 근래 들어 누워만 계시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 여간해서는 웃는 일도 많이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몇 주 만에 서울에 온 제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 땐 앉기조차 힘든 몸을 일으켜 세우며 얼굴 가득 환한 함박웃음을 보여주시고는 오메, 우리 강아지 왔다냐, !” 하시며 계란 한 판의 나이를 불과 몇 개월 앞둔 건장한 외손주를 머쓱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할머니의 주름진 함박웃음과 마주하고 따뜻한 인사말을 듣고 나서야 저는 , 내가 집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비로소 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할머니 등에 업힌 채로 비단처럼 고운 포대기에 싸여 저만의 세상을 처음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 등에 업혀 잠이 들었던 건 저 뿐만이 아니라 제가 그때 보았던 집 밖의 파아란 하늘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세상의 온갖 소리와 냄새였습니다. 그땐 할머니의 등이 이 세상보다 더 커보였습니다. 엄숙한 성당 안에서 어느새 작아져버린 할머니의 등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아, 할머니의 옆에 앉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미사를 보는 내내 눈물, 콧물을 삼키다 보니 벌써 집에 갈 시간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할머니께 바보 같은 웃음을 보인 저는 다시 낡은 휠체어에 얼굴의 주름마저 고운 우리 할머니를 태우고 저녁노을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가는 길을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조그만 할머니 앞에 선 커다란 외손주는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나 봅니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각종 나물과 채소들을 먹는 일은 집에 오면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참견하는 사람이 없는 기숙사에서는 제가 싫어하는 반찬은 아예 받지 않거나 남기면 그만이지만, 할머니와 함께하는 밥상에서는 예외란 게 없습니다. 정말로 먹기 싫어서 할머니, 나 이거 안 먹을래!” 하면 할머니께서는 아가, 할머니 말 듣고 한번만 먹어 봐라, .” 이라고 맞받아치시는데 스물아홉의 외손주는 도저히 이 말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올해로 딱 스물아홉 먹은 아가는 할머니 앞에서 그만 순한 양이 되어 버렸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리며 생각해 봅니다. 이런 어리광을 언제까지 마음껏 부릴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뼈마디가 쑤실 때마다, 할머니의 총총했던 귀가 더 안 들리게 될 때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시던 할머니가 낡은 휠체어에 힘겹게 오를 때마다 아가는 마음이 조각나 버리는 듯합니다.

친구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골목길에 늘어선 빌라들 사이의 작은 밭뙈기에 꽤 이국적으로 생긴, 기다란 줄기 끝에 쟁반같이 커다란 잎을 가진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창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던 친구는 신이 나서 널따란 잎만 보고 관상용 식물인 알로카시아 오도라라고 했지만 저는 한눈에 토란인 걸 알았지요. 할머니께서 어렸을 때 비가 오면 우산 대신에 커다란 토란잎을 꺾어서 우산 대용으로 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동해 인터넷으로 찾아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예전 기억이 점점 더 생생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요즘 부쩍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할머니의 형제자매들과 놀았던 이야기, 일제강점기 때의 힘들었던 이야기, 친하게 지냈던 여종 이야기, 할머니가 손수 길렀던 어머니와 외삼촌, 이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의 삶 속에 제가 없었던 그 시절을 상상해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무려 당신 인생의 3분의 2를 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는 단 1초라도 할머니와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제 옆에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파도를 넘을 때면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조그만 할머니의 가슴일 지라도 저의 커다래진 몸뚱이를 오롯이 다 품어 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스물아홉의 아가는 아직 할머니의 넓은 품에서 나가 홀로 모진 세상에 맞설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할머니께서 몇 년 전부터 새해만 되면 입버릇처럼 하는 올해는 꼭 가야 할 것인디…….”라는 말은 다 커버린 저에게는 어릴 적 들었던 귀신이야기만큼이나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짐짓 할머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하며 핀잔을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손주는 정말로 할머니가 내 곁에서 떠나 버릴까봐 얼마나 가슴이 철렁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신이 납니다.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의 내용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승헌이가 의사 되는 것은 보고 가야 할 것인디.” 작년 들어 할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러면 할머니, 그것만 볼 거야? 내가 결혼해서 자식 낳는 것도 다 봐야지!” 라고 합니다.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제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나이도 잊고 겅중겅중 뛰고 싶을 정도입니다. 의사는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저에게는 다시 힘을 내서 어려운 공부를 하게 만드는 빛이요, 소금입니다.

다시, 기도하는 할머니의 조그마한 등을 바라봅니다.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아와 살며시 앉아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작고 연약한 등이지만 제게는 거기에 우주가 다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의 등에서 포대기에 싸여 처음으로 세상과 만나던 그 때처럼 지금도 당신의 작은 등에는 아직도 파란 하늘이, 넘실거리는 바다가, 매미가 울어대던 뒷동산이, 친구들과 뛰어놀던 집 근처 공원이, 지금의 저를 둘러싼 온 세상까지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그 순간 우리 강아지 왔느냐는 당신의 반가운 말에 저는 정말로 순진무구한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되어 할머니의 조막만한 등 위에 펼쳐진 커다란 세상과 만나 언제까지고 뛰어 놀고 싶습니다.

 

<수상소감>
전국의 의대 학우님들과 의대생신문 관계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충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승헌입니다. 유난히도 가물었던 여름이 지나고, 촉촉한 가을비가 가을을 재촉했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제법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때리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치열한 공부와 바쁜 의대일정에 치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치기 쉬운 저희 의대생들에게 의대생신문은 조금이나마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어왔습니다. 그런 고마운 의대생신문에서 주최한 <제 10회 의대생 문예공모전>에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제 글이 수필 부문 우수작이라는 상을 받게 되어 이 영광스러운 감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제 글이지만, 독자 여러분들께서 힘든 의대 생활 중에 항상 여러분들의 뒤에서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을 주시는 가족들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모쪼록 남은 2015년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2016년도 희망차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필부문

최우수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

한서윤 (서남대학교 본과 2학년)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는 모든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경제뉴스가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고, 심지어 벽지무늬만 봐도 지루하지가 않단다. 어찌 보면 숨만 간신히 쉬며 책상에 수북이 쌓인 프린트와 책의 내용을 머리에 쑤셔 박아도 모자랄 지금, 병원으로 돌아가기 싫어 바로 앞 공원에서 미적미적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이 딱 그 형색이라 실소가 나왔다. 어차피 나온 거, 기분전환이나 제대로 하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내가 그토록 구경하길 좋아하는 하늘을 봤다.
 이리 여유가 없는 시기엔 고개 한번 들어올리기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힘들어 한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더니, 어느새 풍만한 보름달이 운치 있게 동동 떠있는 가을하늘이 완연했다. 그런데 가리는 것이 참으로 많다. 나보다 큰 키의 가로수와 그들이 한껏 뻗은 가지 사이사이로 빼곡히 차오른 색색의 나뭇잎, 머리 위에서 주황색 불빛을 뿜어내는 가로등, 그리고 공원을 빙 둘러싼 형색의 높은 아파트들이 첩첩이 겹쳐 구름을 가리고 달을 가리고 별빛을 가리고 고운 남보랏빛 배경을 가린다. 눈에 담기는 풍경이 참으로 감질나고 전부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다가,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내가 막 도망 나왔던 병원 꼭대기 층이라면 더 잘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이 나왔지만 이번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새벽 2시임에도 고요한 로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환자 두어 명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금방 1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7층을 누르고 가만히 있는데, 이 시간대엔 좀처럼 멈추지 않는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섰다. 열린 문에서 낯익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서도 눈에 띄는 흰 가운을 입은 선배는 피곤에 먹힌 몰골로 1층이 아닌 위를 향했다.
  “집에 안가세요?”
 의아해 묻는 말에 그는 핏기 없는 얼굴로 준비할게 남았다고 말하며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7층에서 내리자마자 전자도서관이 있는 쪽으로 비척비척 사라졌다. 그가 몸을 감춘 복도의 코너를 잠시 바라보다, 나는 피피티가 수북하게 쌓인 책상으로 돌아왔다. 깊은 한숨과 함께 기계적으로 한 손엔 펜을 쥐고, 무릎에는 참조할 해리슨을 펼쳐두고, 바로 앞에는 공부해야할 피피티를 펼쳤다.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공부하는 태세를 취하고 말았지만, 시선은 1분도 되지 않아 등 뒤에 놓인 긴 창문의 바깥으로 향하고 말았다. 애초에 이걸 보기 위해 올라왔으니, 한 5분정도는 더 이러고 있자.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창문을 슬쩍 열어젖혔다.
 정신이 확 들게 하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공원에서와는 극명하게 다른 풍경이 내가 바라던 그대로 훅 하고 밀려들었다. 시선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별과 달과 구름뿐 아니라 지상에선 시야를 가로막던 장애물까지도 풍경에 어우러진 일부로서 두 눈에 담긴다. 딱 7층의 차이일 뿐인데도 보이는 것이 이리도 다르다. 매일을 이곳에서 보내면서도 새삼스럽게 높은 곳에서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지를 인식하고는 감탄하게 된다.
 선배도 이런 이유에서 올라오는 걸까?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그들은 밤마다, 아니 수시로 이곳으로 올라온다. 실습을 마치고, 또는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이곳에서 토끼처럼 빨간 눈을 하고 지새우는 밤이 너무도 짧아 찰나의 새벽에 구겨진 흰 가운을 덮고 벤치에서 눈을 잠시 붙이고는 다음날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다. 이곳 7층의 작은 자료실에서 그들은 두꺼운 교재를 뒤적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읽고, 발표 자료를 만들고, 추가로 알아야 할 내용, 다음에 있을 실습에 관련된 내용과 지식이 부족한 부분들을 공부한다. 어쩌면 그들은 실습을 하는 동안 여러 장애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젖히고 원래 보고자 했던 것, 알고자 했던 것을 알기 위해 올라오는 것이리라. 아직 이론만 배우는 본과 2학년인 우리와 그들은 다른 높이에 서있었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뉴턴이 말했던 거인들의 어깨 위가 아닐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과거부터 지금껏, 관찰과 경험과 탐구와 증명을 통해 몸집을 불린 지식의 집합체는 논리정연한 말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내 무릎에 있는 해리슨처럼 두꺼운 서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들을 통해 하나의 병에 대해 배울 때면, 그 이름이 지어진 어원의 설명부터 시작해 세계적 국내적 통계, 병인, 원인, 병의 발병기전, 주로 보이는 증상, 치료법과 쓰는 약은 어떻고 예후는 어떤지 까지, 그에 관한 지식이 총망라되어 주르륵 펼쳐진다. 7층의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것은 기존의 거인들이 우리를 어깨에 얹혀놓고 보여주는, 장애물 하나 없이 탁 트인 풍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들의 차트에 적힌 환자를 마주했을 때, 환자와 진단 사이에 너무도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환자가 아직 말하지 않았던 기저질환이나 증상, 복용한 것들이 있을 테고, 그도 모르는 DNA에 내재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체내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 선배는 적어도 지금 보이는 것을 위주로 많은 가능성 중 확률이 낮은 것들을 쳐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좁혀진 가지들 중 더욱 좁히려면 어떤 검사를 해야 하고, 다음엔 어떤 처치를 해야 할 지 고민할 것이다. 진단의 알고리즘을 따라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제 문제를 고치기 위해 어떤 치료를 해야 할 지, 어떤 약을 써야 할지, 그것이 환자에게 치료효과 이외의 어떤 다른 효과를 보일것인지도 생각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 선배들은 자신이 선 위치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7층으로 올라와 큰 흐름을 정리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저편에서 벌어지는 무언가를 더 잘 보고 싶다고 아이가 칭얼거리면 아버지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말을 태워준다. 하지만 아이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아래에 있을 때보단 잘 보이긴 해도 너무도 멀리 있어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더욱 자세히 보고 싶어 조갈이 난다. 게다가 아이는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을 수가 없으니 아버지가 언제까지고 어깨 위에만 얹어둘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제 두발로 서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며 인파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서있는 곳에서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보고, 손이 닿는다면 망설임 없이 만져보면서, 그래도 닿을 수 없는 시야의 것은 아버지께 물으며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금씩 자라나 아버지와 같은 높이에서, 아니 그보다 더 자라나 더 멀리를 보며,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 다시 목말을 태워줄 것이다.
 내년이면 나도 실습을 시작한다. 내가 올라앉아있던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첩첩이 가려진 시야에 갑갑해 하면서도 그것 너머에 펼쳐져있을 풍경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오늘 봤던 선배가 그러했고, 내 이전의 수많은 선배들이 그러했듯, 첩첩이 가려진 장애물 너머에 놓인 것들을 보길 갈망하고 애쓰다 때로는 위로 올라와 거인의 도움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다른 높이에서의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샌가 누군가에게 더 너른 시야를 보여주는 거인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높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지고,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질테니 말이다. 나는 여태껏 창밖의 풍경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받고 한동안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들뜬 마음과는 별개로 주변에는 시험공부를 하는 동기들이 여럿이라 가만히 웃기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썼을 때보다 날씨는 추워졌어도 여전히 시험을 앞둔 상황은 똑같아서 기분이 복잡 미묘했는데, 그렇기에 이 기쁜 소식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떤 경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하거나, 감정을 표출하고 싶을 땐 노트에 연필로 글을 쓰곤 합니다. 진정으로 무엇을 체감했는지를 글로 옮기는 과정 중엔 글씨를 쓰고 지우길 반복하며 고심 끝에 적절한 표현과 단어를 선택하고, 산발적으로 튀어 올랐던 생각과 감정을 가지런히 다듬어서 제가 간직하고 싶었던 느낌을 차분히 정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의사선생님들의 삶이 담긴 글을 보며 꿈을 키워왔습니다. 앞으로는 그들처럼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과,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며 문득 가슴에 스며드는 느낌들을 글에 잘 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필부문

대상

이타성의 고리

홍현 (전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물에 젖은 수세미 같이 방바닥에 붙어 있다가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어 눈을 뜰 때 즈음에 맞추어 날도 천천히 밝아 온다. 찌뿌둥한 허리를 세우고 앉자 어제의 그 묵직한 찰흙과도 같던 피로는 어느새 어딘가로 풀려 흩어져 있다. 그렇지, 이런 가벼운 기분은 담배를 끊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10여 년 넘게 놓지 못했던 담배를 끊은 것은 한 달 남짓 되었다. 삼십대 중반, 몸의 이곳저곳에서 넌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올 해로 서른다섯 살, 아내와 두 살 된 딸이 있고, 그리고 학생이다.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학생 가장, 덕분에 내 주변 가족들이 많은 짐을 나누어서 지고 있다. 학부 과정을 비롯해서 박사과정, 그리고 의학 전문 대학원 과정까지 참 오랜 시간 공부하고 있다. 무엇을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짐을 지우면서까지 오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시련도 견딜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긴 시련의 시간을 견디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시련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무엇을 하며,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의학을 공부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삶의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이와 같은 질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1교시 시작 전 교실의 모습은 한산하면서도 동시에 부산스럽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시작 오 분 사이에 몰려 들어온다. 교실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 예전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온 삼십대 중반의 늦깎이 학생에겐 낯선 그 어떤 것이다. 1교시가 시작되면 그 때부터는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덜걱거리며 하루가 쉬지 않고 지나가게 된다.
 오늘은 소록도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이십년을 넘게 살고 있는 오동찬 치과 의사의 특강이 있는 날이다. 특강이 열리는 강당은 다른 학년 학생들과 섞여 부산스럽다. 나 역시 틈새에 앉아서 강연을 기다리고, 곧 강연자가 무대에 오른다.
 강연자가 강연을 시작하고 그 뒤로는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펼쳐진다. 강연에 몰입하게 되자 강연자의 마이크 소리도 주변 동기들의 움직임도 점차 희미해지며 그 공간 속으로 내 의식이 끼어들게 된다.
 내가 오랜 시간 꿈꾸던 삶이 개념이 아닌 현실로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한 인간의 눈빛과 몸짓과 목소리가 바로 내 눈 앞에 존재한다. 무엇인가에 취한 듯한 눈빛, 열에 들뜬 듯한 목소리,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기괴한 모습을 한 한센인들, 이러한 것들이 과연 내가 꿈꿔왔던 봉사하는 삶이었던가? 몸이 아파서 가족들에게 마저 버려져 마음까지 상처받고 병든 사람들, 그래서 외부인들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평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이타적 삶의 본질인 것이다. 내가 그려왔던 이상적인 삶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오히려 내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는 왜 굳이 고생스러운 삶을 선택했을까?’ 치과의사로서 충분히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의 강연을 듣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었다. 너무도 궁금했다.  
 어느새 무대 뒤 스크린에 가톨릭 교단의 수녀 두 명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들은 20대 나이에 유럽 어딘가의 수도원에서 한국의 소록도로 파견되었다는데 지금은 이미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일평생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약자를 위해 바치는 사람들. 내 마음은 경이로움과 불편함으로 뒤섞인다. ‘불편함? 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나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던가?’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이 인간끼리의 무차별적 투쟁을 막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국가가 세워졌다고 말했을 정도로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성이 존재한다. 폭력적 힘을 전제로 하는 적자생존의 세계관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는 없었고 도태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이타적 삶의 모습을 존경하면서 동시에 불편하게 느꼈다.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반하는, 어느 정도는 위선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학생은 딸이 아플 때 어떤가요? 어떻게 하죠?” 강연자의 질문에 순간, 내 의식은 현실로 돌아왔다.
  “아, 예, 속상합니다.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겠죠.” 내가 대답했다.
  “제가 소록도에서 입술이 뒤집혀 흐르는 침을 연실 닦으면서 들어오는 저 할머니를 처음 보자마자 마음이 아팠어요. 마치 내 자식이 아플 때 제 마음이 아팠던 것처럼, 그렇게 아프더라구요. 고쳐주고 싶었어요. 그것이 소록도에서의 삶의 시작이었죠.” 강연자의 말이다.
 슬라이드에는 그 아래 입술이 뒤집혀진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나는, 징그럽다고 느꼈고, 그리고 부끄러웠다.
인간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는가? 단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원초적 폭력성만 있을까? 하지만 적자생존의 세계관 이면에 드문드문 이타적 삶의 흔적이 보인다. 폭력과 범죄,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배척과 소외, 그리고 전쟁의 역사 사이사이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타성의 고리. 강한 정신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마치 내 자식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
 공감에서 파생하는 측은지심. 인간의 마음속엔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안테나가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는 사람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성공과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새 강연이 끝나고 나는 짐을 챙겨 천천히 사람들 틈 사이로 나와 독서실로 향했다. 내 머릿속엔 곧 다가올 시험 준비와 그리고 기나긴 학생 생활에 대한 불평이 있었고 그 외의 나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타적 삶에 대한 생각으로 오히려 머릿속이 마치 엉킨 실타래 같이 되어버렸다. 내가 바로 사회적 약자였고 소외당한 가난한 이웃이었는데!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삶이 고통으로 점철될 때 그곳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가? 단지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지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만 하고 있다면 그 고통의 희생자에 다름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승화시켰던 인류의 위대한 정신들처럼 우리의 고통을 높이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안테나는 어느 주파수에 공명하는 걸까?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나의 고통을 무엇인가로 승화시켜야 하고 그리고 나 또한 이타성의 고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수상소감>
저의 작품을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살아가는 것은 저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관계 안의 갈등에서부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까지, 어느새 저는 인생의 절망의 바닥 언저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심연 속에 갇혀있던 저에게 책은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도스토예프스키와 디킨스를 알게 되었으며 저의 은사님을 통해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의사, 빅터 프랭클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 속의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가슴 아파했으며, 같이 분노했고, 그리고 같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책에서 위로를 받았으며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을 보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수필 <이타성의 고리>는 이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는지, 아니면 대체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번 10회 의대생 문예공모전 당선이 저의 글쓰기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글에서 위로를 받았듯이 언젠간 다른 누군가도 저의 글을 통해서 위로받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의학도로서 학업에 매진하며 꾸준히 글을 써나갈 것입니다. 제 작품을 뽑아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필부문> 심사평 - 지성미 넘치는 젊음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박관석  신종찬  정찬경  정명희  정경헌  유인철  김애양

 

 어느새 10회째를 맞은 ‘의대생 문예 공모전’을 지켜보며 감탄을 하게 된다. 올해는 특별히 ‘한국의사수필가협회’에서 심사를 맡게 되어 의대생의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로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 빡빡한 수업 일정 가운데에서 글을 쓰는 여유와 성의를 보여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2만 명의 의대생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열정과 봉사정신으로 ‘의대생 신문’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해마다 문예 공모전을 개최하여 정서를 함양하고 함께 문학의 향연을 펼치려는 노력이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입시제도에서부터 의사란 과학적 지식만 갖추면 되고 여타의 인문학적 지식은 등한히 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의사야말로 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다. 문학이 그만큼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아픔을 알기 위해 직접 병에 걸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환자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 독서만큼 유익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과학은 육체의 확장을, 문학은 마음의 확장을 추구한다.”고 했듯이 육체와 정신의 균형 잡힌 인격으로 태어나기 위해선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충심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의대생들이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혜안을 얻는 일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책읽기는 사람을 충실하게 만들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만든다.”고 했다. 즉 글을 쓰기 위해선 치밀하고도 정교한 관찰이 필요하고 솔직한 자기감정이 드러나야 한다. 글쓰기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까지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하고 세상을 돌아다보는 안목을 키워야 가능한 작업이다.
 오늘날 많은 의대생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고 우리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응모한 작품들은 거의가 수준급으로서 의대생의 고민을 담은 내용이 많았다. 젊은이답게 신선한 감각을 지녔고 지성미가 느껴지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전원에게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공모전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평가의 잣대를 들어야만 했다. 심사위원은 모두 7명으로 구성되어 43작품 중 3작품을 선정하였다. 심사는 무난히 마쳤지만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았다. 

 

대상 「이타성의 고리」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한 오동찬 치과의사의 특강을 들으며 어떻게 그런 봉사가 가능한지 이타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견해를 표명한 글이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성이 존재한다는데 반대로 이타적인 사람들은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한편 수년째 공부만 하고 있는 자신도 약자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고통을 승화시키겠노라는 결론을 짓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인용구가 유난히 눈에 뜨였고 이타성의 고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결구가 읽는 사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한 울림을 준다. 세상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를 마주대할 때가 많지만 이타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할 것이다. 다소 산만한 점이 없진 않지만 글쓴이의 깊은 사유와 진정성을 느낀 작품이다.

 

최우수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이 작품의 장점은 의대생의 애환을 잘 그렸다는 점이다.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는 다 재미있다는 경험으로 시작하는 서두부터 예사롭지 않다. 애환을 잘 그린 점 말고도 뛰어난 비유를 선택했다. 잘 알려진 대로 ‘거인의 어깨’를 말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의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하면서 뉴턴이 겸손하게도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데카르트와 케플러, 갈릴레이에게 공을 돌렸다고 해서 유명해진 구절이다.
 이 작품을 쓴 학생도 마찬가지로 전자도서관에 오르며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간 놀라운 의학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학도가 되어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피곤에 절은 레지던트 선배도 환자 치료를 위한 자료를 찾는 것이 거인의 어깨 위라 가능하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키가 작아 시야가 보이지 않는 아이가 아버지의 목말을 타는 경우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목말을 탔던 아이도 점점 자라나 누군가 목말을 태워주고 거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터득하는 것이다.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잘 성찰했다.
 
우수상 「우리 강아지 왔다냐, 잉」
 다소 코믹한 제목의 이 작품은 외할머니와의 교감을 잘 드러냈다. 우리 가운데 부모 없는 사람, 조상 없는 사람이 없는 만큼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에 대한 글이 감동을 줄 때가 많지만 이 작품의 경우 할머니에 대한 애정 표현이 절제되면서도 잔잔히 이어지는 점이 압권이다. 마지막 단락의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살며시 앉아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작고 연약한 등’이란 할머니의 등에 대한 묘사가 읽는 이를 뭉클하게 만든다. 문학성과 감수성을 잘 느낄 수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이다.


 이 밖에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수상하지 못한 작품으로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무자식이 상팔자」 「상시의 시상」 「아버지는 오늘도 불을 끄신다」 등이 있다. 특별히 「Scissorhands & Spirals」는 대단한 물리학 이론을 담고 있는데 독자와의 공감이 어려워 수상작으로 선정하지는 못했지만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걸 밝히고 싶다. 한편 몇몇 글은 제목이 없어 아쉬웠다. 우리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듯 수필에도 제목을 정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기회에 당선되지 못한 학생들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글을 쓰며 문학을 향유하면 좋겠다. 문학에 관심을 갖고 선망하는 점이 이미 문학적 재능을 소유한 사실이란 걸 잊지 않기 바란다.

임상 안 하는 의사 헤쳐 모여!!

고려의대 출신 비임상 의사들 강연 행사

 

 

 비임상 의사 9명이 후배들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최근 의대 본관 유광사홀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Career Fair: 경력컨설팅(for young doctors and medical students)’을 개최했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의사)를 제외한 전원이 고려의대 출신 비임상 의사로 구성된 이번 행사는 직업군에 따라 4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9명의 강연 중 각 파트 별로 하나씩만 꼽아 발표자들의 이력과 발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Part 1. 제약 회사
김진용 존슨앤존슨 AP Medical Director(소화기내과 전문의)

·내과 레지던트 수련 후 KOICA로 몽골 경험, 하버드에서 소화기 리서치 펠로우 경험.
·고대구로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임상의(Interventional Endoscopist).
·존스홉킨스대학에서 MPH(Master of Public Health) 취득.
·몽골에서 넓은 세상을 보고 Bic Picture를 보기 시작.
·몽골과 미국에서의 경험이 여러 가지 다른 세상을 고민하게 함.
·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하면서 논문 쓰는 것에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WHO 등 국제기구 진출을 노렸으나 좌절
·그때 제약회사에서 제안이 왔는데, 5~10년 후 본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결정함.
·2012년부터 존슨앤존스 AP medical director로 옮겨 현재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장점>
- 더 넓은 세상을 경험
- 새로운 도전
- 다양한 만남과 교류
- 해외출장
- QOL
<단점>
- 실제 의료행위에서 멀어짐
- 동료 → 고객
- 주연 → 조연
- 불규칙한 근무시간
 

Part 2. 공공 의료
양태언 질병관리본부 책임연구원(감염내과 전문의)

·이쪽(공무)에 진출한 지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현재 커리어를 고민하면서 발전 중인 상태다.
·내과 레지던트 후 감염내과 펠로우 마쳤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예방접종관리과 전문연구원으로 근무 중.
·질병관리본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근무 시작.
·현재 예방접종 대상감염병 및 백신 이상 반응 관련한 연구 총괄, 그리고 정책 연구용역 발주 및 관리하는 일을 함. 
·국제기관에 가서 우리나라 입장 대변하거나 유니세프, WHO 백신 연례보고서 작성하는 일도 함.
·그 외에 다양한 일.
·의예과 때부터 국제 보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
·본과 3학년 때 실습 돌면서 감염내과 전공을 결정.
·전임의 1년 차 때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국가 보건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
·추천 :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

<장점>
- 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음
- 다양한 경험
- 의미 있는 국가 단위 연구를 할 수 있음
<단점>
- 환자를 직접 볼 수 없음
- 연구원 조직에 새로이 적응해야 함
-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님
 

Part 3. 사업가/CEO/컨설턴트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의사)

·서울대 물리학과,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창업했으나 당시 버블이 꺼지면서 실패.
·우주인 선발대회 최종 10인 안에 듬.
·내가 지금 배운 것만을 먹고 살기엔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 생체신호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의학전문대가 생김.
·가천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년간 임상 생활을 하다가 2012년에 힐세리온이라는 회사를 창업.
·들고 다니는 초음파를 개발함.
·현재는 경영을 총괄하고, 마케팅과 개발 등등 모든 일에 관여함.
·CEO는 모든 일에 백점을 맞을 수는 없지만, 단 하나라도 빵점을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함.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과 같다.
·자기는 도전에 대한 DNA가 있는 것 같아서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컨트롤을 당하는 것보다 내 영역에서 주도하고 일을 만드는 것이 맞아서 창업했다.

<장점>
- 창조의 즐거움
- 팀을 직접 만들어 함께 꿈을 꿀 수 있음
- 어려운 사회문제에 도전
- 비전에 공감해주는 내외부 사람들
- 성공 시에는 커다란 보상이 따름
<단점>
- 불확실한 미래.
- 환자를 볼 수 없다
- 임상지식에 대한 업데이트 부족
- 안정된 생활이 어려움
- 끊임없이 회사 운영에 대해 압박 받음


Part 4. 법조계
이지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변호사(의사)

·인턴 수료 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변호사 자격 취득 후 2012년부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근무.
·의사 출신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의료 사고 분쟁 때 조정 업무를 하고 있음.
·진로를 선택할 때 내가 생각하는 일이 나의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이 있을지 고려하는 게 중요함.
·동기 :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의료제도와 그 제도를 이루는 법률에 관해 관심이 생겼음.
·추천 : 주변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분.

<장점>
- 세상에 대해 법률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음
<단점>
- 보람의 측면에서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제한적







※ 해당 기사는 메디게이트 뉴스로부터 전달받았으며 의대생신문에서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기사의 전문은 메디게이트 뉴스 사이트(하단 인터넷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edigatenews.com/news/1209953901

편집자가 독자에게

108호/오피니언 2015. 12. 8. 00:27 Posted by mednews

의대생신문, 멋진 비행을 위한 이륙 무사히 성공

 

 

 올해 마지막 신문 108호 잘 읽으셨나요? 한 해를 돌아보며 이번 호에서는 제가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되며 들었던, 한 학기동안 자리를 지키며 가졌던 생각을 조심스레 꺼내볼까 합니다. 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꿋꿋이 써내려 가겠습니다.
 2015년 6월, 편집장 자리를 인계받으며 제가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리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급회장을 몇 번 했었던 것이 리더 경력의 전부였던 저였기에 선뜻 편집장의 옷을 입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별 활동이 있을 때면 늘 앞장서서 조원들을 이끌었던 적도 많았기 때문에 리더십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엿한 단체 하나를 두 어깨에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의대생’으로 구성된 집단을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대생 단체의 리더와 저와의 모습은 일단 학년과 나이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저는 일단 최소 본과 2학년 이상, 나이는 대충 24살 정도가 의대생을 이끌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작 예과 2학년생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나이도 22살로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란 처지입니다.
 비단 이러한 숫자들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겠지요. 모름지기 리더라면 기운 넘치는 목소리, 강인한 체력, 신속하고도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운 넘치기는커녕 다소 짧은 혀 때문에 부정확한 발음을 내는 처지이고, 운동과는 담을 쌓아 체력 또한 형편없습니다. 신속, 냉철과는 거리가 먼 제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지시나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말을 잘해서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말 주변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요.
 심지어 그 당시 의대생 신문사의 상황마저도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활동하는 기자의 수도 부족했고 재정상황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의대생신문은 그 당시 존폐의 갈림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괜히 내가 편집장이 되었을 때 신문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어딘가에 쉽게 털어놓을 곳도 없어서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때 당시 106호 신문을 내며 제가 썼던 ‘편집자가 독자에게’를 살짝 들춰보니 ‘여름 내내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초췌하고 낙담한 모습만이 담겨 있어 제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라는 문장이 있더군요. 힘들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성격은 아닌데 겉으로 드러낸 걸 보니 정말 힘들었었나 봅니다.
 제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였습니다. 저는 여태까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생각하던 기존의 리더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리더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직 변화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낼 준비가 된 사람만이 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룩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6월 말부터 8월말까지 2개월의 여름방학 내내 착실한 준비를 하고자 했습니다. 다행이었던 게 여름방학에는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직 저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편집장이 되면 당연히 회의를 진행해야 했기에 회의 진행하는 법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싶었기에 기획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그에 알맞은 협상법도 익혀야 했기에 또 그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하였습니다. 저와 조금 다른 생각의 이야기일지라도 거부하기보다는 우선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름방학 첫 한 달간 많은 것을 배웠고 착실히 준비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이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가로막힐 때도 있었고 상대방을 향해 보냈던 커다란 기대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저에게 치명타를 입힐 때도 있었습니다. 끝내는 과연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정작 실전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고작 한 달 치의 준비로 잘 안 된다고 징징거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착실히 준비해나갔습니다. 디자인 공부도 했고 컴퓨터 공부도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제 능력이 받쳐주고 편집장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는요? 대성공입니다. 이유를 들라고 하면 ‘여러분이 지금 의대생 신문을 보고 있잖아요.’ 정도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106호의 ‘편집자가 독자에게’를 인용해보면 제가 그 당시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그동안 진행한 일들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전을 손에 쥐고 조금씩 긁어보는데 꽝은 아닌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금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박 복권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기가 시작하고 신문 제작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제 공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보다 능력 있고 성실한 기자 분들이 대거 참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올해 의대생신문은 멋진 비행을 위한 이륙을 무사히 성공한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된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변화(change)는 언제나 기회(chance)를 불러오는 법이니깐 말입니다. 내년이 더 기대가 됩니다. 2016년에 함께할 신입기자님들과 함께 더 알차고 색다른 컨텐츠 들고 오겠습니다. 좀 더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내년에 봅시다.

 ps. 2016년 신입기자 모집 공지가 내년 1, 2월 중으로 나갈 예정이지만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 메일로 먼저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명기 편집장
<medschooledito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