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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심사평

90호(2012.12.13)/문예공모전 2013. 1. 1. 13:43 Posted by mednews

(수필부문) 심사평
더 깊이 사고하고, 더 깊이 고뇌하라

권순긍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전국 의과대학 학생들의 신문인 <의대생 신문>에서 문예공모전에 응모한 학생들의 글을 보내왔다. 다량의 응모작과 함께였는데 그 중 최우수작과 우수작 두 편을 뽑아달라는 주문도 함께였다. 내심 “머리가 좋은 의대생들은 어떤 글을 쓸까?”라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었다.
읽다가 보니 어디선가 익숙하게 본 듯한 느낌의 글들이 많았다. 그렇다. 바로 ‘교과서식 논리’거나 ‘모범생적인 감상’이었다. 말하자면 이렇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알차게 보내라.”거나 “사회에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이 있다.”거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살한다.”거나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의사가 돼서 치료해드려야겠다.”는 생각들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논리나 감상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어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문학작품이 윤리교과서와 다른 점이 그것이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가르침이지만 문학은 착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흥부처럼) 가난 속에 허덕이는 것을 다룬다. 그럼으로써 왜 세상은 불조리한가를 다루는 것이다.
이렇게 사고와 느낌의 폭이 얕고 좁은 이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 사회경험이 적은 데다가, 의대생이다 보니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까이서 발견한 소중한 보물들>이라는 글처럼 눈을 돌려 저녁노을 물든 하늘을 보듯이 주변의 보물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식 논리나 모범생적인 감상으로 무장한 글 속에서도 좋은 글들이 많았다. 반수를 하고 휴학을 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자기성장을 체험한 <다크 초콜릿>은 평범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것이 의대생들이 겪는 현실이기 대문이리라. 쾨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나 멕시코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연상시킨다. 다만 더 깊이 사고하고 고뇌한 흔적이 없어 아쉽다.
‘의학과 문학을 모두 품고자 하는 청년’이 쓴 <그 사람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문학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자기고백이 돋보이지만 너무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자기고백으로서는 훌륭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어설픈 것이지 않을까? 마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중계방송 하듯이 어색하다.
병실에서의 급박한 상황을 서사적으로 그린 <50만원>과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다. <50만원>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술대에 오른 환자가 자신이 죽을 지도 몰라 마취 직전에 수련의에게 “옆집 순영이 엄마에게 빌려준 돈 50만원을 꼭 받아달라.”고 남편에게 전할 말을 남긴다. 이런 말을 하는 엉뚱한 환자의 모습을 통해 병원의 환자가 단순한 의료대상이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임을 자각한다는 내용이다. 수필이라기보다 짤막한 ‘꽁트’로 사건의 집약과 50만원을 받아달라고 내뱉는 환자의 부탁이 ‘촌철살인’의 묘미를 주는 수작이다.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시키고 치밀한 세부묘사를 통해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는 응급실에서 수련의가 겪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심폐소생술을 통해 가까스로 깨어난 환자를 보고 그것이 ‘잊지 못할 경험’이거나 ‘문학적 감상’이 아닌 진정 삶의 무게를 느끼는 현실이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점이 탁월하다. 다소 문체가 지루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조차도 고뇌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하여 ‘최우수작’으로 선정한다.
가장 고귀한 일 중의 하나인 의료는 어떤 것 못지않게 좋은 문학의 소재가 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존엄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통해 보다 깊이 사고하고, 더 깊이 고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과 고뇌 혹은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언어야말로 우리들 삶의 진면목이지 않겠는가?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