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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다 : 솔로부대 참모 4인의 신랄하고 시원한 뒷담화

날이 추워지는 요즘. 어느 길가에나 서로 팔짱끼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이 즐비하다. 옆구리 시린 솔로는 커플전용구역인 영화관, 카페, 레스토랑, 가로수길, 공원, 청계천을 피해 도서관으로 향하지만 온통 커플천지. 빼빼로데이에 천 원 내고 빼빼로데이를 사먹으며 크리스마스에는 노스랜드로 갈지 역장치고 불곰을 잡을지 고민하는 전국의 솔로부대들. ‘나솔로’ 4인방이 그들의 시린 옆구리를 위해 거침없는 뒷담화를 시작한다.

참가자 : 심솔로(전국의대생솔로연합회 총수. 이하 심), 여친무(솔로정신해부학과 교수. ‘닥치고 솔로’의 저자. 이하 여), 안생겨(개념있는 솔로주간지 솔로in 기자. 이하 안), 예과생(낼모레 본관데 솔로인 예과생, 이하 예)
게스트 : 나선수(‘연애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 이하 나)

심 : 오늘은 귀찮으니까 영어 소개 생략! 안녕하시오 나호구 모솔동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전국의대생솔로연합회 총수를 맡고 있는 나는 심솔로입니다. 이 솔로양반들 또 뭔가 하고 열심히 듣고 있을 것인듸 스마트한 시계는 끄고 들으쇼. 어차피 문자도 안오는데 뭣하러 갖고 있능가 모르거써.
여 : 안녕하세요. 한국출판업계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닥치고 솔로’의 저자, 여친무입니다. 여러분 이 책을 읽으면 있던 여친도 사라지고 솔로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서점으로 가서 주변의 커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가 한 명 늘어납니다.
심 : 이새끼 또 책 소개하고 있네. 그만좀 해! 어이 안생겨 기자 이번에는 뭐 소식 없능가?
안 : 네. 지성있는 솔로들만 본다는 개념있는 솔로주간지 솔로in의 안생겨 기자입니다. 이번에도 특종이 하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심 : 거 좀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쇼.
안 : 그건 바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안 온다는 것 !” 어때요 기쁘지 않습니까? 전국의 수많은 솔로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이 희소식에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를 따르는 수많은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좀 아쉬워하겠지만.
예 : 안 기자님 노트북에 있는 일본애니 사진은 좀 지우고......
여 : 예과생님. 솔로정신해부학 교과서 131페이지를 살펴보면 저 증상은 Uchapi Ansengim 부위의 국소적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나와 있을 것입니다. 가끔씩 Gredo Ansengim 부위의 이상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직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요.
예 : 아 해부학 OTL
심 : 자자 모르는 건 족보나 살펴보고. 아 예과생이라 족보가 뭔지 모르려나? 아 맞다 게스트 한 명 왔었지 또 까먹었네. 솔로부대의 주적 ! 나선수 선생이 용감하게 솔로의 소굴에 들어왔다니까. 안 기자 소개 좀 해봐.
안 : 나선수 선생은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2만 의대생의 시리다 못해 동상에 걸린 옆구리를 위해 ‘연애 그것도 못해서 왜사니’, ‘연애가 가장 쉬웠어요’, ‘연애의 기술’ 등 수많은 명저를 지으며 전국 수많은 솔로들을 열폭하게 함으로써 동상을 획기적으로 치유하는 기적을 낳으신 분입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합시다.
예 : 나 선생님 저 좀 구해주세요 낼모레 본과에요 연애도 못하고 본과가게 생겼음 흑흑
여 : 예과생님. 솔로정신해부학 교과서 141 페이지를 보세요. Sengiliga Itna 부분의 병변에 대해서도 학습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 : 안녕하세요. 역시 솔로부대 준장급 이상들만 모인 곳답게 솔로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전국의 솔로들의 유형을 살펴보고 분석하기 위함입니다.
심 : 솔로의 유형! 솔로에도 유형이 있다는 말이오 의사양반?
나 : 그렇습니다. 솔로에는 크게 10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준비한 자료를 보시죠.

예 : 님 좀 짱인듯
안 : 이거 솔로in에 실어도 되겠는데요?
여 : 이걸 보니 느낀 바가 많네요. 각각의 유형들을 여러 부위의 병변들과 함께 연관 지어 병리학적인 조사를 수행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심 : 아니 근데 이런 표를 봐봤자 어차피 안생기자나 이넘아
나 : 사실은 그게 문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솔로부대 준장급 이상들일 텐데 이런 분들은 고질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 : 솔로 부대 계급은 어떻게 정해지는 건데요?
여 :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으나 Atlas of Solo Mind Anatomy 의 69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분류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 : 이럴 수가!
심 : 별을 단지 어언 5년. 조금만 있으면 한 나라를 이끌 위인이 되겠구나.
여 : 여러분 ‘닥치고 솔로’를 많이 퍼뜨려 주세요. 많은 이들을 훈련병으로 솔로부대에 입소시킬 수 있습니다.
나 : 저는 이 표에 따르면 민간인이네요.
안 : 이거 군사 기밀인데 어떻게 책에 실렸지? 특종이다!
예 : 아니 근데 낼 모레 소장인데 이거 알아서 어디에 쓰나요?
여 : 원래 공부란 게 그렇습니다.
예 : 그게 본과인가요?
여 : 네.
예 : ......
심 : 나 선생 그렇다면 우리처럼 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오?
나 : 여자친구를 사귀면 됩니다.
예 : 어떻게요?
나 : 먼저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예 : ......
심 : 갔다 치고, 그 담에는 뭘 해야 하는디?
나 : 그 다음부터는 제 책 ‘연애가 가장 쉬웠어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심 : 이런 사기꾼 XX!
여 : ‘닥치고 솔로’를 읽으세요. 그게 훨씬 도움 됩니다.
심 : 이 놈도 똑같은 놈이네?

솔로부대 4인방과 나선수의 뒷담화는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늘상 있어 온 무익한 솔로의 푸념과 커플의 염장뿐이기에 여기서 끝내도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마약한다는 케빈과 함께 보내야 될 것 같다.

조선쌍놈 기자/솔로부대
<굽신굽신@e-mednews.com>

인턴 폐지, 현 본3부터 확정'

보건복지부가 전문의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해 인턴 제도를 오는 2013년부터 폐지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지난 11월 27일 대한재활의학과개원의협의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 동안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보건복지부는 인턴들의 직접적인 진료 참여 기회는 많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이 진료와 관계없는 잡무에 쓰이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해 왔다.

새로운 개선방안에 따르면 2013년부터는 인턴제가 폐지되고 졸업생들은 바로 전공의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인턴제의 폐지와 함께 새로운 전공의(NR)제도가 도입된 이후 차차 수련기간도 기존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행 첫해 기존 전공의 1년차(R1)와 인턴제 폐지 후 새로운 전공의 1년차(NR1)가 같은 1년차 전공의로 들어가면서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상실습이 부족한 의대나 의전원의 경우 졸업 직후 전공의로서의 업무가 벅찰 수 있고 인턴제 폐지로 인해 진로를 탐색할 충분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또한 2013년 졸업 후 바로 NR1으로 수련을 시작할 현 본과3학년 학생들과 교육을 담당하는 의대/의전원에는 이러한 새로운 개선방안에 대한 설명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수련제도 개편이 너무 일방향적이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모 의대 본과 3학년 김OO학생은 “인턴제도 폐지가 당장 2013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면서 “학교나 병원 차원에서도 아직 아무런 대책이 없고 수련제도를 개편한다는 것은 앞으로 의사가 될 학생들의 미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인데 보건복지부에서 너무 성급하게 시행하려는 것 같다. 바로 전공의 지원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혼란스럽다”고 했다.

이혜미 기자/아주
<manar@e-mednews.com>

전국의 의학도여, 우리의 미래를 논하자

‘제 1회 젊은의사 포럼’ 현장 스케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의 어느 날, 서울대입구역에서 5513번 버스를 타고 28동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는 거대한 화환이 준비되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포럼 준비위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문사 기자임을 밝히고 명찰을 얻어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낡았지만 그곳에 있는 의학도들의 마음만은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넓은 강의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곡차곡 채워지고, 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전국의 의학도들의 눈이 연사가 강단에 서는 순간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은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연합에서 주최하고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28동 강의실에서 11월 5일과 11월 6일 이틀에 걸쳐 열렸다. 11월 5일 행사에서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비롯하여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기업은행 이성득 팀장, 연세대학교 전우택 교수 등이 연사로 초빙되었다. ‘의학적 상상력’, ‘젊은 전문직의 미래와 역할’ 등을 비롯한 의료 관련 강좌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의 장인정신’ 등 교양강좌도 열린 것이 특징이었다.

두 번째 날에는 더 화려한 연사들이 초빙되었다. 이면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김윤근 포스텍 교수, 의원 겸 카페 ‘제네럴닥터’ 김승범 원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원 센터장, 배현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저명인사들이 열정적인 강의를 했다. 특히 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전현희 민주당 국회의원 등 정치적인 명사들도 초청된 것이 시선을 끌었다. 강연 중간에는 이명길 데이트 코치의 연애 강좌도 섞여 있어서 지속되는 강연으로 지쳐가는 학생들이 유쾌하면서도 알찬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국의 의학도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의료계에서 정치계로 진출한 전현희 의원의 강연 시간에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질문들은 정치적인 이슈에서부터 국회의원으로서 힘든 점, 의료 문제에 대한 정치계의 실상 등 광범위하면서도 시의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전현희 의원은 의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힘든 정치적 현실을 지적하면서 정치나 행정 분야로 진출하는 의학도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포럼에 초빙된 연사들을 보면 변화하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나 시대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 원장들은 더 이상 의료인들이 의료계에만 국한된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의사의 개념이 병원에서 환자만 보는 사람에서 사회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지성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의학도들의 걱정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만 집중된 각종 인프라 하에서 지방에서 공부하는 수많은 의학도들의 안타까움과 갈망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행사가 모두 끝나기 전에 기차 시간 때문에 서둘러 나서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의 지성으로 활동하려는 의학도들의 열정이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하고 싶지만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의학도들의 절규는 젊은의사 포럼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그대로 분출되었다.

그것은 이 행사를 후원한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일호 회장의 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일호 회장은 “의사들의 95%는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은 그 직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주고 수가인상과 월급인상 등의 시스템에도 역할을 해주지만 의사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서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며 “의사들이 고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형적 구조가 됐다”고 언급하면서 “젊은 의사들의 단결과 관심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젊은의사 포럼은 의학도들의 고민을 정확히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국민들은 의료계를 불신하고, 언론에서는 연일 의료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들로 가득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적에 맞추어’ 의대를 선택한다는 사회의 통념이 가세하여 의사들은 더 이상 인술을 펼치는 사람이 아닌 천민자본주의적 속물로 낙인찍히고 있다. 사회에서 뭇매를 맞으면서도 해야 할 일은 많고, 미래는 들어왔던 것만큼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학도들은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학도의 사회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참가자는 ‘의료인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의료인들의 과도한 정치 참여를 우려했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입되는 수많은 이익 집단들의 경제적 혈투에 의료인들이 나팔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 때 시작해서 저녁 늦게 끝난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은 전국의 의학도들이 운집한 유례없는 행사였다. 그 열기만큼이나 불안정한 의료인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길에 마신 과일주스 한 잔에 하루 내내 느꼈던 고민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바늘로 전하는 사랑

뜨개질하는 남자

날씨가 봄처럼 따뜻했다가도, 귀를 에일 듯 바람이 불기도 하면서 오락가락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눈 뜰 때 공기가 쌀쌀한 것을 보면 분명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다가오며 방학을 맞게 될 전국의 의대생들. 학업에 지쳐 마냥 쉬는 것만으로도 아까울 수 있는 방학이지만 이번 방학에는 생산적인 취미 활동을 하나 해 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작품을 전해주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보통 뜨개질이라고 하면 여성들만의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사계절 내내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는 특별한 남학생이 있다. 을지의대에 재학 중인 이름도 독특한 김 구씨.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법한 뜨개질의 어떤 면이 이토록 그를 미치게 만들었는지 들어보도록 한다.
기자 : 언제부터, 왜 뜨개질을 시작하게 되었어?
구 : 뜨개질 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거 같아. 사실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 건 유급에 대한 상심이 가장 크다고 해야 맞을거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급을 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너무 충격이었고, 내 스스로에 대해서 내가 자신이 없어지게 되었거든. 타인에 대한 열등감도 크기도 했었고. 상황을 피할 수 없어서 혼자 이겨내려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다 싶었어. 비생산적인 게임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보다 치유의 기능을 가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다 찾은 것이 뜨개질이야.

기자 : 하고많은 취미 활동중에 왜 뜨개질이야?
구 :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예술과 관련된 무언가를 꼭 하고 싶었어. 그게 그림이다, 악기다라고 정한 건 아닌데 그런 것에 대해서 무척 동경이 생기더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늘 마음속에 있었지만 학창시절 나의 미술 실기점수는 언제나 거의 최하점을 맞았기 때문에 나는 소질이 없구나 하고 미리 선을 그어버렸어. 게다가 주변에 딱히 예술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말야. 하지만 가족들 중에 할머니, 엄마, 여동생이 모두 다 뜨개질을 하는 걸 보고 왠지 저건 나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할머니의 솜씨는 최고였기도 해. 그 때 까지만해도 내 유일한 취미는 게임이었거든. 하지만 겨울방학 내내 게임만 하면서 보내기는 좀 그렇고 아는 친구가 권하기도 하고 그래서 시작해 보기로 했지.

기자 : 남자가 뜨개질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땠어?
구 : 어릴 때부터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누구나 타인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잖아. 그래서 나도 남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편이야. 그래서 성별에 따라 어떤 것이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다에 대해서 별로 구분하지 않아. 물론 우리 할머니마저도 나에게 “머슴아가 뭐하는 짓이고? 때려치라!” 라며 핀잔을 주시지만 뭐 어때? 내가 즐기는 개인적인 취미활동인걸.

기자 : 뜨개질은 보통 겨울에만 하는 활동이지 않아? 그럼 취미를 늘 유지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구 :  물론 사람들이 뜨개질로 만든 것들이 보온을 중시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겨울에만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은 다양해. 나도 취미가 한 계절에 국한되는 것은 원치 않아서 여름에도 계속해서 뜨개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어. 인형은 시기성을 타지 않는 작품이잖아. 그래서 봄부터 여름까지는 눈사람, 양, 고양이, 핸드폰 고리와 같이 장식품이나 악세사리들을 주로 만들었어.

기자 : 만든 작품들은 다 어떻게 했어?
구 : 올 한 해 동안 만든 작품은 20개 정도 되는 데 나에게 필요한 목도리하나, 악세사리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줬어. 뜨개질을 할 때의 정서적 안정도 좋지만 내가 직접 만든 것을 사람들에게 주고, 받은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할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최고로 기분이 좋아. 그런 모습을 볼 때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극대화가 되면서 자존감도 올라간달까? 팔 생각은 하지 않아. 아직 내가 팔 정도의 실력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애초부터 취미라는 게 돈을 벌고자 하는 건 아니니깐 말야. 뜨개질하는 데 돈이 들기는 하지만 다른 취미에 비해서 비싼 편도 아니고 나의 취미 활동 유지비로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봐. 게임할 때도 PC방에 그만큼은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아마 크고 작은 작품들을 합치면 더 될 수도 있는 데 일단은 올해 20개 정도 만들어서 나누어준 것 같아.

기자 :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 있어?
구 : 여자친구가 생기면 (현재 구씨는 솔로의 삶을 즐기고 있다.) 꼭 주고 싶은게 하나 있어. 내가 직접 만든 빨간 망토를 입혀주고 싶어. 이제는 그런 것 쯤이야 충분히 만들 실력이 되었는데 글쎄...? 여자친구가 언제 생길까? 또 하나 개인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난이도의 과제는 인형으로 만든 모빌이야. 방에 천장에 걸어두고 잘 때나 일어날 때 보면 괜히 웃음이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그런 귀여운 인형 모빌. 이번 방학 때는 한 번 해 보려고.

기자 : 뜨개질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줘.
구 : 나도 세상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뜨개질처럼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 일은 드문 것 같아. 세상에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보상해주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많잖아. 뜨개질은 내가 시간을 들인만큼 결과가 나오고 노력한 만큼 작품의 수준이 그대로 올라가거든. 자신감이 부족하다거나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면 방학을 이용해서 뜨개질을 시작해보길 권해. 그리고 평범한 선물보다 내가 만든 것을 직접 주면 사람들은 그 선물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주는 기쁨도 맛볼 수 있어. 빠른 사람들은 바늘을 잡은 지 일주일이면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지금 시작해 봐!

김 구씨는 초보자들을 위해 뜨개질에 대한 여러 가지 팁도 아끼지 않았다. 뜨개질을 시작하는 방법에는 동영상이나 책을 보고 독학하는 것과 가까운 뜨개방에 가서 배우는 방법이 있는데 구씨는 뜨개방에서 직접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동영상이나 책만 보고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지만 처음 ‘코뜨기’나 ‘겉뜨기’, ‘안뜨기’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기술들은 직접 배워야 나중에 고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뜨개방의 경우 현장에서 실을 구입하게 되면 원하는 작품에 대한 도안을 주고 그 작품을 만드는 법까지도 가르쳐주기 때문에 초보들에게는 더 권장할만하다.
실을 포함한 뜨개질 도구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도 있는데 뜨개방을 이용하여 직접 배우고 싶다면 오프라인 매장을 추천하고, 저렴하게 구입하기를 원한다면 인터넷을 추천한다. www.banul.co.kr(바늘이야기)나 www.smilelove.kr(스마일러브 손뜨개)가 구씨가 권하는 사이트이다. 초보자들의 경우 바늘, 실, 도안을 따로 사기보다는 세트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은 데 어떤 사이트의 경우 세트를 구입하면 해당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500~1,000원에 같이 판매하기도 한다.
초보자들은 목도리나 팔토시, 헤어밴드를 만들어보면 좋다. 초보자들의 경우 성취감이 있어야 다음 작품에 도전해 볼 동기가 생기기 때문에 다소 굵은 실로 짧은 길이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보았다면 모자나 무늬가 화려한 목도리, 인형에 도전해보도록 하자. 인형의 경우 구씨가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뜨개질의 기본은 안뜨기와 겉뜨기이고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이들의 배열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 가장 기초 뜨개법을 잘 배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구씨는 자신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작방법이나 어떤 뜨기 방법을 어떻게 사용해야 원하는 무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자신에게 연락해도 좋다면서 연락처를 남겨주었다. 위에 있는 팁 이외에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funky7829@naver.com으로 연락하여 정보를 공유해보도록 하자.

으라누스/의대
 <lovelyeac@e-mednews.org>

우리들의 생존법, 인수인계

의대생의 생활은 참으로 오묘하다. 이 오묘한 세계에서 적절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은 우리 나름의 생존전략을 이용한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배 혹은 먼저 겪은 동기들에게 얻는, 의대생들에겐 황금과도 같은 ‘인수인계’이다. 각 학교 별 흥미로운 인계사항들을 소개한다.

A의과대학
이곳은 모 교수님께서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수술실. 분주한 수술실에서 수술이 잘 풀리지 않자 곧 진풍경이 벌어진다. 교수님께서 수술도구로 옆에 있는 어시스트를 갑자기 때리시는 것이 아닌가. 옆에 있는 어시스트가 PK실습생인지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구분을 잘 못하신 것. 인수인계 사항은 다음과 같다. PK실습생은 위와 같은 봉변을 피하기 위해서 양 팔을 번쩍 들어 X자로 머리를 막으면서 “학생입니다!”라고 외쳐야한다.

B의과대학
H교수님의 외래시간이다. 교수님께서는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를 참관학생에게 소개하고 있다. 환자와 수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 후 갑자기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신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A군은 어찌할 줄 모르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옆의 학생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나중에야 인수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A군은 한참을 웃었다. 인수인계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H교수님이 기대에 찬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시면 학생들은 즉시 놀라야 한다. 놀라는 Indication은 이식후 10년 이상에 별다른 compli-cation 없이 Cr 1.3~1.5 이하로 잘 유지되고 있는 경우이다.

C의과대학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는 K교수님에 대해 여러 가지 인수인계 사항이 전달된다. 교수님께서 수업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는데, 수업 중 이야기에는 무엇이든 박장대소를 해야 한다. 또한 수업 시작 시에는 물을 떠다가 교탁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것도 무려 교수님 전용 500cc 호프잔에.
L교수님 수업 때는 영어가 프린트 된 셔츠를 입으면 안된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시다가 영어를 발견하시면 장풍을 날리시기 때문이다.
H교수님의 외래는 참으로 예측하기가 쉽다. 그날의 야구경기 결과를 보면 되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응원하는 S팀이 이기면 그 날의 외래는 99%확률로 훈훈한 분위기가 예상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D의과대학
D의과대학에서는 안면이 있는 교수님께서 수업에 들어오시면 음료수를 하나 챙겨드리는 게 관례이다.  어떤 교수님은 아메리카노 더블샷을 선호하시고, 어떤 분은 아메리카노에 꼭 시럽을 3번 펌핑. 반면 커피를 전혀 안드시는 분도 계신다. 소아과 모 교수님은 항상 빨간 코카콜라. 가끔 선배들이 후배를 놀려주기 위해 장난으로 인계사항을 일부러 틀리게 전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후배들은 주의할 것! 외과 모 교수님은 요새 나가수에 빠지셨다고 한다. 월요일 교수님 수술에 들어간다면 전날 나가수 시청은 필수! 정신과 모 교수님 교육시간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꼭 읽고 갈 것!
 
E의과대학
E의과대학에 계시는 N교수님의 수술에는 여학생이 참관하게 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 주시고 그 만큼 수술도 조금 천천히 진행된다. 남학생이 참관하게 되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수술이 진행되고, 수술은 빠르게 진행된다. 또한 교수님께서 수술을 하실 때 스크럽은 차렷 자세로 있어야 한다. 뒷짐을 지고 있으면 “뭐 잘났다고 그러고 있냐”라고 하시고, 그렇다고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있으면 “비굴하게 왜 그러고 있냐”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삶은 기자/달걀이다
<아니다_삶은_고기다@e-mednews.com>

초특급 A형보다 더 소심한 의대생이야기

♡ 방황하는 청춘들의 색다른 고민상담소 ♡

혼자 밥 먹기?
난 혼자 영화도 봐

보통은 기숙사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 그런데 하루는 시간이 엇갈려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다른 애들은 이미 밥을 다 먹었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B형 : 혼자 밥먹기 싫어서 그냥 안 먹는 애들도 있더라고.
AB형 : 나는 혼자 밥 먹고 있으면 조금 있다가 친구가 와서 너 왜 혼자 먹고 있냐고 하더라고. 그냥 배고파서 먹는 건데.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야.
A형 : 밥도 그렇지만, 영화 보러가서 ‘한 장이요’ 할 때 날 무지 딱하게 보는 시선이...
AB형 : 영화는 혼자 보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는데. 난 워낙 예전부터 혼자 봐왔었거든. 영화 둘이 보나 셋이 보나 똑같잖아.
O형 : 그치만 로맨틱 코미디를 혼자 보면...


연애도 마음 놓고 못 한다

자기보다는 키가 조금 더 큰 남자친구가 있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부모님께서 ‘키가 너무 작은 게 아니냐’고 걱정하셨다. 그 전엔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 얘기 듣고 나서부터는 계속 거슬린다.

B형 :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만날 땐 항상 약간의 마법을 부리고 나간단 말이야. 아주 티나게는 아니지만.
O형 : 응응. 여자가 더 크면 주변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보니깐.
B형 : 근데 자기들만 좋으면 되는데 왜 주변에서 그렇게 눈치를 주는지 모르겠어.
A형 : 그런 남들의 시선에 내가 신경을 쓴다는 게 문제지.


유독 남들의 시선에
민감한 나라

B형 : 정말 우리나라는 좀 유난히 심한 거 같애. 자기가 정말 더우면 한겨울에 반팔입고 다닐 수도 있는데 그것도 뭐라고 하니.
O형 : 그래서 해외여행가면 편하다고 하잖아. 외국 나가면 마음대로 하고 다닐 수 있다고.
B형 : 난 외국 나가서도 거기서 만난 한국인 앞에서가 제일 불편하더라.
AB형 :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사고 때문인가? 지난번에 EBS 다큐에서 봤는데. ‘주변사람들은 다 울고 있고 나만 웃고 있는 그림‘을 보고 서양인들은 ‘행복하다‘라고 표현하더라고.
O형 : 동양인은 주변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A형 : 우리는 내가 나를 인정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함으로써 자존감을 얻는 것 같애.
B형 : 응? 그러면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별로 행복하지 못하려나?
A형 : 좀 힘들 것 같애. 아무래도.
내가 그 일을 하면서도 이게 정말 맞나? 계속 의심할 것 같고.
O형 : 자기 주관이나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다들 그 만큼의 확신이 없으니까. 다들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잖아?


남들의 시선에
정작 ‘나’는 어디에

AB형 :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기 주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게 힘든 거 같애.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지기도 하고.
O형 : 그러려면 잡생각을 좀 많이 해야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
AB형 : 어릴 때 공부만 하느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잖아.
B형 :  외국 대학생들 보면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 1년 정도 여행 다니잖아. 부럽더라.
O형 : 그런데 의대는 동기애가 강해서 그런지 중간에 쉰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잖아. 학교든 병원이든 기수, 동기가 중요하니까.
B형 : 다 같이 올라가는데 중간에 쉬면 인생 꼬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정작 괜찮은데 외부에서 볼 때는 걱정되는 거지.
A형 : 남의 시선에 신경 쓰게 길러졌으니까.
AB형 : 자기가 진짜 무얼 좋아하면 대세에 흔들리지 않을 텐데. 자기가 뭘 좋아해야하는지 조차도 배우잖아 우린.
B형 : 그래서인지 남들의 시선. 그러니까 부모님이나 친구 같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포장되어버린 느낌도 들고.
AB형 : 엄친아. 그런 거?
B형 : 응. 나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가 있는 거지. 거기에 나를 맞추려고 하다보니까 스트레스도 받는 것 같고.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인데, 남들이 볼 땐 그게 아니니까.
A형 : 반대로 그런 이미지를 내가 원하는 건지도 몰라. 남들보다 좀 더 잘나고 싶은 욕망. 남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인거지.
B형 : 여기 지금 그런 불쌍한 애들이 모여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야!!

고민하라 사유하라
잉여가 되라

AB형 : 고민을 많이 해야 돼. 그래야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B형 : 근데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어.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항상 뭔가를 하고 있지.
A형 : 점점 자기 의견도 없어지고.
B형 : 이런 삶에 길들여진 것 같기도 해. 수업시간에 ‘의견 내보세요’ 하면 아무도 얘기 안하잖아. 교수님께서 당황하시더라.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신가요?’하고 묻기도 하시고.
AB형 : 남들과 다른 다양한 삶도 모색해보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해. 조용히 사유하는 시간.
O형 : 잉여가 되라! 이거네?
AB형 : 잉여라는 단어가 양면적이긴 한데, 할 일없이 논다가 아니라.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본다면.
B형 :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더라도 자기 뚜렷한 주관이 있다면 그걸 지킬 수 있거든. 그러면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겠지.

벌써 연말이다. 여기저기 의미없는 약속들에 떠밀리지도, 약속 하나 없다고 자괴감에 우울해 할 필요도 없다. 한번쯤 시간을 내어 남들 의식하지 않고 즐기는 나홀로 데이트는 어떨까. 몰랐던 진짜 나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의외로 잉여는 나쁘지만은 않다. 진정한 청춘은 잉여로부터 시작된다. 잉여니까 청춘이다.

※ 혈액형별 분류는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임의 편집된 것입니다 ^0^

정리 : 자기합리화 기자/아직청춘?
<jmmoon@e-mednews.com>

‘변신’, 꿈과 가능성에 대하여'

전직 동아일보 기자, 이영이 선생님 인터뷰

다양한 꿈을 꾸던 어린시절,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관성인지 타성인지 하는 무서운 성질에 젖어 우리는 새로이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꿈을 꿔도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사물의 이치에 의문남이 없으며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현재 세브란스 인턴으로 수련 받고 계신 이영이 선생님은 바로 그 때 18년간의 동아일보 기자, 위크엔드지 팀장의 생활을 접고 새로운 꿈인 ‘봉사하는 의사’의 길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그렇게 의사의 가운을 입고 만난 이영이 선생님(47)의 모습에는 인생의 제 2 장을 시작하는 활발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대단할게 없는 저이지만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을 걷는 저를 보며 ‘나도 힘을 내서 병을 이겨내겠다’고 환자분들이 굳은 의지를 다져주실 때면 정말 감사하고, 저도 더 힘을내게 되요.” 라고 말하는 그녀. 전직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냉철하고 차가울 것만 같았던 선생님의 이미지는 그녀가 한 마디 한마디 할 때 마다 느껴지는 소녀 같은 발랄함과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무너져내렸다. 

Q. 처음에 기자를 하게 되셨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 기자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은 열정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시절 서울 YMCA 대학생 서클인 산호회에서 정신박약아를 매주 일요일 찾아가 보살펴 주는 봉사활동도 했었고, 집근처에서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야학도 운영했었는데요. 사회 전체가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엽적인 노력만으로 약자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죠. 조금은 거창한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신문사에 들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사를 써보자 생각한 거죠.

Q. 기자 시절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셨고, 어떤 기사를 다루셨나요?

1988년 초에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에서 6개월간 수습기간을 마치고 주로 생활경제부, 편집부, 경제부 등을 거쳤어요.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도쿄 특파원을 했고, 그 후 귀국한 뒤 약 2년 동안 동아일보 주말 판 위크엔드 팀장을 지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분야는 역시 경제부로, IMF 전후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던 시기 국세청이나 산업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삼성, 현대 LG 등 재벌 그룹을 담당했습니다.

Q.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실감했던 순간도 많으셨나요?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 물론 종종 있죠. 옛날에 삼성이 기아 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몰래 주식을 매집하고 삼성 생명을 통해서 돈을 빌려 주는 등 물밑작업을 했던 일이 있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삼성의 이미지도 매우 안 좋았고, 그 방법이 옳지 않았기에 저는 특종으로 이 사실을 다뤘었어요. 젊은 혈기에 똘똘 뭉쳐 그 사건을 매일 1면 톱으로 쓰고 맹공격을 했었죠. 결국 삼성은 기아 자동차 인수를 포기하고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어요. 이건희 회장이 꿈에 그리던 자동차 사업을 언론으로서 중단시킨 거죠. 그 때는 제가 이겼다고 생각했었어요. 정말 기자로서 굉장히 큰 영향력을 행세했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당시 삼성이 몰래 주식을 매집하고 잘못된 것도 있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그것이 100% 잘못 됐다 할 수 있을까요? 결국 기아는 현대가 가져갔거든요. 삼성은 안 되고 현대는 되는 걸까요?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기자는 어려운 직업이고 막중한 책임을 갖습니다.

Q. 18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갑자기 의사로 전향하게 되었던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기자는 마크로한(Macro)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직업입니다. 마크로한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대하는 기자 일을 하다 보니 좀 피곤해진 것이 사실이고, 다양한 가치관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말 어떤 사회가 가장 정의로운 사회인가, 그 정의로운 사회를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내가 쓰는 기사가 정말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생각이 될 때도 있었어요. 기자 같은 인문학적인 세상에서는 인풋과 아웃풋이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고요.

그러던 중 2005년 초 이화여대병원 정신과 과장님을 역임한 이근후 박사님과 몇몇 의사선생님을 따라 네팔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은 20여 년간 매년 네팔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시는 분들인데, 봉사활동 현장을 지켜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어요. 그 때가 제 나이 마흔 한 살 이었어요. 함께 여행하던 남편이 그 말을 듣고는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해보라”며 적극 지지해주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의사선생님들도 모두 박수를 쳐줬고요. 결국 여행에서 귀국한 뒤 바로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를 했죠.

Q.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가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셨을 것 같은데,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물론 네팔에서 있는 동안 내내 여러 생각을 했어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좀 더 지켜본 뒤에 생각을 해볼까. 하지만 기왕에 마음먹은 김에 바로 시행하지 않는다면 다시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 신문사에 사표를 냈어요. 이왕 준비하는 거라면 어느 한 가지를 확실히 하고 싶었거든요. 처음 사표 낼 때 신문사 후배들이 매우 의아해하면서 설마 진짜 의전원에 가겠냐고 했지만, 제가 왜 의사가 되려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오히려 모두들 격려해주면서 저를 부러워했어요. 그 때는 내 나이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딱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적령기였던 것 같아요. 학원에 다니고 의대에 다닐 때에도 가끔 힘든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 보다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데 대한 설렘, 열정, 기대 이런 것들이 더 컸어요.

Q. 늦은 학교생활은 다시 하시면서 예전 대학을 다닐 때와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재미있던 일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여학교다 보니 젊고 예쁜 친구들이랑 같이 생활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한창 예쁠 때의 동기들을 따라가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요(웃음). 가끔 밥을 먹으러 나가면 식당에서 딸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아무래도 또래가 젊다보니 툭툭 등장하는 신조어들을 이해 못했던 적도 있어요. ‘안습’이라던가 ‘지못미’ 같은 말을 처음에는 몰라서 “그게 무슨 뜻이야?” 라고 물으면 애들이 “언니....” 하고 차마 말을 못해주더라고요. 그럼 또 저는 다른 동기들한테 물어보고요. 제가 늦은 나이에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Q. 인문학적인 학문을 하시다가 갑자기 암기도 많고 양도 많은 의학 공부를 하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다른 젊은 친구들은 정말 스캐너처럼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줄 줄 줄 외우던데 저에게 그건 좀 어렵더라고요. 대신에 행간의 의미를 파악한다거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연륜 덕택인지 수월했어요. 맞는 논리든 틀린 논리든 제 나름의 이해를 하기도 했고, 동기들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니, 이` 거 이해가 잘 안되는데 설명해주세요~’ 하고 제게 묻곤 했어요. 물론, 결국에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설명해준 제가 기억을 하지 못해서 도리어 묻곤 했지만 말이에요. 그럴 때면 “언니, 이거 언니가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아, 맞다, 맞다! 이거였지?!” 하면서 서로 배웠어요.

Q. 기자에서 의사로 새로운 길을 걷고 계신 지금, 비 의료인의 시선에서 보았던 의사와 현재 자신이 직접 의사 생활을 경험하면서 시각 차이가 생긴 것이 있다면요?

신문사에서는 경제부에서 주로 일했고, 저나 가족들 모두 건강한 편이어서 의료 사회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다른 이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같은 ‘훌륭한 의사 선생님’상이랄까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직업이라는 데에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의사 선생님들의 생활을 알고 보게 되니, 정말 모두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최소 10년에서 13년이라는 긴 시간 막대한 양의 공부를 하고, 수련을 받는 다는 것은 자기 사명감과 희생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되요. 의사가 되어서도 이태석 신부님이나, 방학 때면 꼭 해외 봉사를 나가시는 많은 세브란스의 의사 선생님들을 보더라도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훨씬 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집단이 의사라고 생각해요. 때로 일부 의사의 옳지 않은 행동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의사 집단 전체가 욕을 먹을 때에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사회에서 전체 의사 집단이 좀 더 존경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기자를 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쌓아왔던 ‘사람을 대하는 방법’들이 환자분들을 대하는 데에 플러스 요인이 되시기도 하겠네요?

기자는 거지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입니다. 그럼에도 환자들에게 침습적인 시술을 해야 할 때에는 저도 약간은 겁이 난답니다. 요즘은 소아과 병동을 돌고 있는데요, 어린이 환자들에게 꿈도 묻고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도 하고 나면 어린 환자들의 얼굴이 얼마나 밝아지는데요. 환자들을 대하는 법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많이 해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 학생들 보다는 제가 조금은 더 자연스럽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의 20대 때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제가 더 잘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제 말은 전직 기자였다는 사실 보다는 세월이 흐를수록 쌓이는 연륜이라는 것이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을 대하는 것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한다는 말이죠.

Q. 인터뷰 내내 밝고 활기차신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병동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보호자분들이나 환자분들도 편안하게 해주실 것 같고요. 인턴 생활이라는 것이 육체적으로 많이 고된 데 그렇게 일일이 환자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제 입으로 인기가 많다고 하면 너무 부끄럽잖아요?!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이 일차적으로 바라는 것은 치료를 잘 해주는 것이지만 의사-환자 간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도 굉장히 바라세요. 저 역시 환자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면 일을 하는 데에도 훨씬 더 편하고 진정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고요. 물론 인턴 생활이 많이 힘들고, 육체적으로도 고되긴 하지만 정말이에요. 입 다물고 일을 하는 것보다는 이야기 나누고 편안한 관계에서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힘이 덜 든다니까요? 환자분들한테 배운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자세를 잃지 않는 거죠.
특히 쉬고 싶은 한 밤 중에 아프다는 콜을 받더라도 바로 달려가서 따뜻하게 환자분의 손잡고, ‘많이 힘드시죠?’ 하는 말 한마디만 있다면 호통을 치시던 환자분들도 ‘참을 만합니다.’고 대답을 하시지요. 필요한 절차는 아니라 하더라도 청진기 한번 배에 대는 행동만으로도 환자분들은 정말 마음에 안정을 찾으세요. 결국 의술이라는 것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니까요 그만큼 정과 소통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다시 기자로 돌아가 의학 전문기자로 활동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인문적이고 마크로한 세계에서 벗어나서 환자 한 분 한분을 케어하고 치료해 드리고, 그분들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기자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의학기사에 조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기사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환절기 감기 예방을 위한 방법” 과 같은 기사도 좋지만, 의사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병상에서 만난 환자에 관한 이야기나, 감동적인 일화 같이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Q. 올 해면 인턴 생활도 끝이 나시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저는 의전 4년 후에 바로 의료 행위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주위 선생님들이 ‘텍스트 위주의 공부와 실제 환자를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환자를 많이 봐야 혼자서도 의술을 능히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올 해 인턴 수련을 받고 있고, 지금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를 지원해 놓은 상태입니다. 모든 수련과정이 끝나면 저는 의사 수가 부족한 지방 병원으로 가려고 해요. 원래 네팔에서 영감을 얻었으니, 바로 당장은 힘들겠지만 후에라도 해외에 의료가 낙후 된 지역으로 가서 많은 봉사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코이카(KOICA) 같은 해외 봉사활동 단체에 들어가 다양한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Q. 많은 의대생들이 좁은 사회에서 살고 그만큼 사고나 활동의 폭도 타 대학생들에 비해서는 좁은 면이 있습니다.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했던 분으로서 그런 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의사의 최대의 장점은 ‘변신’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의사로서 신문기자도 될 수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고, 정치인도 될 수 있고, 학자도 될 수 있고…. ‘의대에 왔으니 내 꿈은 의사.’ 라고 단정 짓기에 의사라는 직업 안에는 너무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눈앞에 금은보화 같은 기회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알아채질 못할 겁니다. 항상 주위에 눈과 귀를 열어 두고 가능성을 보세요.

그리고 중장기 목표를 세워보는거에요. 자기가 일생을 의사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어느 정도 인지 생각해보고 초기, 중기, 후기 이렇게 3등분해서 각 시기의 목표를 따로 정하는거에요. 결혼, 육아와 같은 필수적인 것들서부터 경제적인 안정, 명예, 학문적 성취, 그 외 의 꿈들까지 다양하게 있을거에요. 참, 공부는 정말 젊어서 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목표들을 한 순간에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신, 그 목표들을 3등분 된 시기별로 중장기 목표로 삼아 보는거에요. 이렇게 중장기 목표를 세우면 누구나 변신이 가능하답니다.

고유라 기자/서남
<youzr-_-a@e-mednews.com>

해외의대생 전격탐구 ②

뉴질랜드의 의대생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Ryan Cha라고 합니다. 전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12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지금까지 살았어요. 지금은 오클랜드 대학 의학과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전 클라리넷 연주를 좋아해서 뉴질랜드 전국 대회인 National Young Performer of the Year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저는 인권 및 공중보건(SCORP)부문 아시아태평양지부 지역대표로 IFMSA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8월 코펜하겐 총회에도 참여했구요, 내년 3월의 가나 총회에서도 저를 만나실 수 있을거에요.

뉴질랜드 의대,
입학부터 졸업까지

- 입학시험은 어떻게 치러지나요?
1학년 때 의학과로 입학하는 것은 아니구요, biomedical science와 health science중 하나의 과를 택해서 입학합니다. 화학, 물리학, 세포학, 대중 건강(population health)등을 배워요. 1학년이 끝날 때 UMAT(Undergraduate Medicine and Health Sciences Admission Test)라는 시험을 치러요. 뿐만 아니라 인터뷰도 거쳐야 하는데, 1학년 때 평점이 B+이상이어야만 인터뷰에 응시할 수 있어요. 최종 성적은 1학년 때 이수한 주요4과목의 평점 60%, UMAT점수 15%, 인터뷰점수 25%를 반영하여 산출하여 점수가 높은 사람부터 의학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들 1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제 학번은 총 200명의 학생을 선발했어요. 의학과 정원은 최근 수십년 계속 늘었어요. 아마 다음 수년간에도 늘어날 것 같아요.
참고로 등록금은 12764뉴질랜드달러(=10,928,250원)으로 다른 과보다는 2-3배가 비싸요. 대학에서 가장 비싼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과죠. 한국도 그렇겠지만 등록금이 비싸도 의과대학은 인기가 많은 편이죠.

- 교욱과정은 어떤가요?
뉴질랜드 의대는 6년제에요. 1학년 때는 앞서 소개한대로 의학을 배우는 것은 아니구요.  2-3학년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요. 이 2년을 전임상학년(preclinical years)이라고 해요. 근골격계, 소화기계, 비뇨생식기계, 신경계… 하는 식으로 배워요. 해부학, 조직학 실습도 하구요. 수업시간에는 파워포인트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 환자를 초청해서 실습을 하기도 해요. 또 20-25명이 조를 이뤄서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을 배우고 함께 토론을 해보는 시간도 있어요.
4-5학년은 병원에서 실습을 하는데 임상학년(clinical years)라 불러요. 실습방식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아요. 4학년 때 38주, 5학년 때 35주 동안 여러 과를 돌아요.
6학년때는 Trainee Intern의 자격으로 병원에서 일을 합니다. 이 때 26795뉴질랜드달러(23,620,600원)를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아요. 졸업 후 병원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보면 되요.
졸업 후에 거치는 과정은 아마 모든 나라에서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여기에서는 인턴이 아니라 house surgeon이라는 용어를 써요. 졸업 후 2년간 house surgeon의 자격으로 여러 과를 돌면서 체험하구요. 이 과정을 마치고 바로 의사를 할 수도 있지만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의 수련의가 되어야 하고 전공에 따라 3년에서 4년 정도 수련과정을 거쳐야 해요. 전문의 수련의 마지막 해에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전문의가 되는 것이죠.

- 어떤 시험을 치르나요? 유급되기도 하나요?
전임상학년때는 한 학기에 두 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러요. 임상학년 때는 일년 내내 실습평가를 실시하고 있구요.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학기중 뿐만 아니라 매 학년을 마칠 때도 시험을 봐요. Trainee Intern자격의 6학년 때도 시험을 봅니다. 낙제(fail), 통과(pass), 우수(distinction)중 하나의 등급을 받게 되요.
대부분 학생들은 유급하지 않아요. 드물긴 한데, 일부 과목을 낙제했지만 시험을 크게 망친 것이 아니고 다른 과목에서 잘 한 경우에는 진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을 conceded pass라고 불러요. 그렇지 않으면 여름방학 3개월 동안 추가 공부를 해서 재시를 보고 진급 가능한 점수를 받아야 하죠. 하지만 점수가 큰 과목에서 낙제하는 경우 그 해 자체를 한 번 더 다닐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어요. 이게 한국에서 말하는 유급이 되겠네요. 이 경우 실패를 반복한다면 더는 기회가 없어요. 더 이상 의대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무서운 일이지만, 이렇게 되는 학생은 거의 없어요.

학생 생활 이모저모

- 시험을 볼 때 족보의 도움을 받나요?
선배들로부터 ‘족보’가 전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예전 필기노트나 기출문제를 받아요. 보통 과대표가 받아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죠. 저희 반의 경우 조금 독특한데요, ‘구글 도큐멘트’를 이용해서 여러 자료들을 누구나 업로드,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해놓았어요.

- 학생들의 평상시 생활은 어떤가요?
이건 전임상학년의 경우인데요, 보통 8시나 9시에 수업이 시작해요. 대부분은 오전에 수업이 있고 실습을 오후에 하죠. 그래서 끝나는 시간은 들쭉날쭉해요. 일찍 끝날 때는 1시나 2시에 끝날수도 있고 5시에 끝나는 날도 있죠.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들이 많고 가까운 가게에서 사먹는 학생들도 있어요.
여가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개인의 성향과 인생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죠. 여가시간이 많든 적든 대다수 학생들은 균형 잡힌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학업을 중요시하지만 사회활동을 희생하면서까지 공부에 집착하지는 않아요. 저는 평균적인 학생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남는 시간이 생기면 학생들에게 주말마다 음악을 가르치고 매일 대회에 나가기 위한 연습을 했어요.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병원 응급실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죠.

- 방학은 무엇을 하며 보내나요?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여느 학생들과 비슷할 것 같아요. 저희는 한 해에 4번 방학이 있어요. 전임상학년에는 학기 중간에 2주간의 방학이 있어요. 보통 이 기간은 공부하면서 보내요. 1학기와 2학기 사이에 2-3주의 방학, 2학기 마치고 4개월의 방학이 있어요.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4개월의 긴 여름방학 때는 많은 학생들이 가족,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하기위해 해외로 떠나요. 저의 경우 지난 방학 때 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한국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고 대학의 학생 연구과정에 참여했어요.
- 휴학하거나 교환학생으로 가는 학생들은 얼마나 있나요?
전임상학년(2-3학년)을 마치고나서 쉬는 학생들이 가끔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는 6년간  한번도 쉬지 않고 마치는 경우가 많아요.
교환학생의 기회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임상학년 때는 해외의 병원에서 수련할 수 있어요.

뉴질랜드 의료제도는 어떨까

- 뉴질랜드의 의료제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뉴질랜드에는 주치의가 있구요. 환자들이 일반의를 찾아가는 경우에는 일부 금액이 정부 보조금으로 지급됩니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일반의를 찾아가죠.
만약 주치의가 전문의나 병원을 가기를 권할 경우 공공의료기관과 사설의료기관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는 공공의료기관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있어요. 단 치과와 안과는 제외됩니다. 사설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구요. 대부분의 경우 혈액검사, X-ray 등은 무료입니다. 사고로 인한 모든 상해에 대한 치료는 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구요. 일부 약값도 뉴질랜드 정부에서 지원해 줘요.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