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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조차 없던 인턴제 폐지 논란, 이제는 끝낼 때다

 

2000년부터 ‘뜨거운 감자’였던 인턴제 폐지 문제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이하 의대협)은 복지부와의 합의 하에 인턴제 폐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복지부와 의대협은 5월 중 두 차례 토론회에 참가하고, 6월 중에는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전수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다가올 6월 15일 입법예고 전에 의료계의 의견 수렴을 이끌어 낼 것을 약속했다.
인턴제 폐지를 둘러싸고 최근까지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아직도 미성숙한 우리 사회의 소통과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어 개탄스럽다. 인턴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커녕 당사자들의 기본적인 의견 수렴의 과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인턴제 폐지의 당사자인 의대생들에 대한 전수 설문 조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인턴제 폐지를 둘러싸고 몇 번의 설문조사가 진행되기는 하였으나, 주로 의대협을 비롯한 학생단체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사로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시행된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장치조차 없어 중복 투표자를 가려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의대협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복지부가 일주일 안에 의견수렴을 주문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인턴제 폐지에 대한 설명회나 간담회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대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된 간담회에서는 복지부 관계자가 의대생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시행안에 있는 내용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평가가 쇄도했다. 그나마 시행안에 있던 내용 역시 의대생들이 우려하는 전공의 선발 기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답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대생들의 불만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 같은 소통 부재의 상황에서 현재 인턴제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인턴제 이면의 의료제도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는 당장 발생할 문제조차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다루어질 수도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불통(不通)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때다. 입법예고 전까지 복지부에서는 토론회를 비롯하여 인턴제 폐지를 둘러싼 의견 수렴에 보다 더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 온 식대로 무성의하게 행동한다면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복지부와 의대협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의대생 전수 설문 조사 역시 원칙대로 준비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날림으로 준비한 설문 조사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이번 합의를 통해 인턴제 폐지를 둘러싼 갈등을 성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를 선물합니다

 

얼마 전 아는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청첩장을 받고서 조금 걱정(?)됐던 것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성당 결혼식이라는 점. 전에도 몇 번 보았지만 평소 엄마 따라 다니던 절에 더 익숙한지라 성당의 높은 천장과 하얀 면사포는 여전히 생소했고 주례보는 신부님의 은색 옷에도 눈이 갔습니다. 물론 가장 신기했던 건 언제나 개구지던 선배가 의젓한 신랑이 돼서 예쁜 신부와 손잡고 방글방글 웃고 있는 모습이었구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저는 신부님이 주례를 보는 동안 절차에 맞춰 축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앉고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슬슬 종아리가 붓고 집중도가 떨어지려는 즈음에, 자비로운 하느님이 용케 아시고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미>를 제 귀에 넣어주셨습니다.  결혼식에서 자주 쓰이는 성경구절인데, 그 날 만은 참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코린 13,1-8)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설령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수 천 번 든 생각들이진 않은가, 정말 참기 어려운 순간에도 모든 걸 덮고 믿고 견딘 적이 있었던가. 바오로 찬가의 사랑은 제가 들어본 여느 사랑보다도 크고 본질에 가까웠습니다. 단순한 남녀 간 사랑을 넘어 보편적인 사랑의 본질을 묘사한 바오로는 온갖 예언과 신비스런 말들, 지식은 유한하고 부분적이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은 무한한 ‘전체’임을 역설합니다.
이래저래 복잡한 세상, 수많은 정보와 갖은 관념과 현란한 말과 글에 둘러싸여 종종 본질을 놓치는 자아에게 바오로의 찬가를 선물합니다. 가장 쉬워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이정표를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김정화 편집장
<editor@e-mednews.com>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의 ‘가족’이 되다

 

본과 2학년, 고달픈 3일간의 1쿼터 기말고사를 치르는 동안 달력의 큰 숫자는 4에서 5로 바뀌어 있었고 바깥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본과 2학년이 되면서 신문사도 휴직하고 합창단, 봉사단 활동도 모두 중단했던 까닭에 시험이 끝나도 작년처럼 일이 쌓여있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며칠 전 어느 신문사 선배의 페이스북에 뜬 “영화 보조출연 함께 가실 분, 선착순 3명”이라는 글에 충동적으로 댓글을 달아 신청한 것이 생각났다. 날짜를 찾아보니 무려 일요일. ‘아.. 시험기간에는 무슨 일인들 재미가 없어보였겠냐, 주말인데 그냥 쉴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어떤 영화인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나 찾아보자’는 생각에까지 ‘겨우’ 이르렀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한 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원래 오래된 삼성의 광고카피이기도 하다. 물론 문구가 뜻하는 바는 고객들을 가족처럼 여기겠다는 것이지만, 각종 증거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교모히 피하는 대기업의 전횡 앞에서 이 문구는 무색해진다. 영화의 이런 소재 때문에 대형 자본의 투자를 바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제작진은 물론, 출연 배우들도 개런티 없는 촬영에 동의했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故 황유미 씨의 유가족들 그리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기를 바라는 미래의 관객들이 힘을 모아 ‘제작두레’라는 형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번 보조출연자 모집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5월 4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가는 중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영화 속의 구체적인 어떤 역할을 맡아 정말 배우처럼 영화 촬영을 해본다거나 유명한 여배우와 같은 탈의실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혹은 촬영 시작하기에 앞서 열 명 남짓한 보조출연자들 앞에서 책임 프로듀서가 이 영화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참여한 우리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과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막장드라마’ 같은 - 실화를 다루게 되었고 그 덕에 제작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프로듀서님의 이야기에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일개 보조 출연진에게 감독이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인사하고, 어깨동무를 하고서는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는 주연배우 박철민을 보면서 감히, 세상에 이런 촬영현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설렌 마음도 잠시. 지루해도 너무 지루한 영화촬영 과정 동안 나는 금방 녹초가 되었다. 지켜보기만 해도 지치는데 스텝들과 배우들은 수 개월간 이 작업을 해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올까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부끄러울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드러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때에도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땀 흘리고 있구나.’ 그리고 ‘예정대로 올 9월에 이 영화가 내가 사는 대구에서도 많이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로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그 길로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감독, 십 수 년 전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사촌동생을 비슷한 이유로 먼저 떠나보낸 촬영스텝, 같은 이유로 아내를 잃고 이 영화가 무사히 개봉되기를 바라며 자신이 판매하는 물품을 현장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어느 남편,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촬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나 같은 보조출연자들과 제작두레에 참여한 후원자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이들이 한 숟갈 한 숟갈 모아 가득 찬, 이제 갓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한 따뜻한 고봉밥 같은 영화라 생각한다.
마음이 동하면 해야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으니. 학업에 쫓기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에,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루기 시작하면 언제 여유가 생길 것인가? 결코 적지 않은 무게를 가진 의미 있는 일에, 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두레’와 같은 좋은 기회를 졸고를 통해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또 하나의 가족> 제작두레 : http://anotherfam.com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