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은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며칠 전 전국 의대생에게 아래와 같은 단체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의협에서 다른 메디컬 집단처럼 의사 단체의 정치적 영향을 보여주고자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적극 참여해주십시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은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이하 의대협)에 “의대생들에게 선거인단에 등록한 후,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라”고 요청했다. 민주통합당 경선의 공격적 홍보의 흐름이 의사에 이어 의대생에까지 뻗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불쾌한 문자가 오기까지 의협과 의대협은 무얼 한 것일까. 의협은 의대협을 전국 의대생에게 의협의 요구를 발 빠르게 이행할 책사 정도로 평가절하했고, 의대협은 이런 의협에 강력한 요구에 크게 바람막이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물론 처음에는 의대협도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무시된 채 의대생이라는 집단에 속해 정치활동에 동원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학생 내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고, 외부에서 의대생들을 정치적 집단으로 오해할 요소가 다분하다는 이유에서 의협 측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의협은 “전공의들과 지역의사회는 각 학교 의협 대의원들에게 연락을 취한 뒤 이번 운동에 적극 참여하라는 공문을 보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왔고 이에 의대협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자료를 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 한다.
물론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도 다를 것이 없다.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의대생 각성 프로젝트 MAP(Medical student Awakening Project)’을 진행 중인데, 전의총은 한술 더 떠 학생을 ‘선도와 계몽이 필요한’ 대상으로 취급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이권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애들이 뭘 모른다.’고 폄하하고, 어른이 아이를 타이르듯 무지몽매한 학생들을 잘 가르치겠다고 든다. 전의총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의료계 현실을 알리고 학생들의 사회참여를 장려한다.’고 광고하지만,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에게 강의에 참석하도록 강요하고, 강의에서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을 전달했다는 후문이 끊이지 않는다.
의대생은 아직 의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보다 순수하고 넓은 사고를 하며 역동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런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어느 단체도 의대생을 정치 세력 확장의 대상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선배가 하는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대사회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논리까지 가해져 학생들의 희생이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의대협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던, 어떤 목소리를 내던 그것은 외부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결과일 것’이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학생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인정받는데,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행사에 우리가 이 당연한 상식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현실부터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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