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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2013.09.05)/오피니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9.07 편집자가 독자에게
  2. 2013.09.07 Speaker's corner
  3. 2013.09.07 힐링 다이어리- [캄보디아 워크캠프 후기] 힐링캠프, 캄보디아

편집자가 독자에게

94호(2013.09.05)/오피니언 2013. 9. 7. 14:34 Posted by mednews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카네기 회사의 2인자 찰스 슈워브의 지혜

 

1900년대 초반 전세계에서 연봉 일백만 달러를 받는 사람이 딱 두명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크라이슬러 기업의 창립자인 월터 크라이슬러와 카네기 철강기업의 2인자 찰스 슈워브입니다. 클라이슬러는 회장이었지만, 슈워브는 앤드루 카네기의 고용인이었으니 넓은 의미의 샐러리맨인 셈입니다. 연봉 백만달러의 샐러리맨이라니, 카네기는 슈워브를 그토록 아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천재여서? 제철의 최고권위자였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가 회사의 최고연봉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 “제가 소유한 최고의 자산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윗사람의 질책만큼 사람들의 의욕을 심하게 꺾어놓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결코 누구도 질책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일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낫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항상 칭찬하려고 노력하며, 결점을 들추어내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 일이 마음에 들면, 열렬히 인정해주고 아낌없이 칭찬합니다.”
결국 리더란,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변에 모아 그들에게 열정과 자부심을 채워줌으로써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이고요.
그럼 칭찬은 어디서 오나? 바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식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사람에게 진실된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또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의 세계에 대해 쉽게 반감과 편견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리더가 각자의 장점을 밝혀 서로에게 이해시킴으로써 오해를 녹이고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조직전체에 열정을 높여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여담이지만 의대생신문사는 어떠한 물질적 인센티브도 없이, 오로지 기자의 열정으로 운영되는 동아리입니다. 생계 혹은 앞날의 진로가 인센티브인 회사나 병원, 의대동아리와는 성향도 매우 다르고, 한 학기에 주어지는 일의 로딩은 여느 동아리보다 많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슈워브의 지혜는 편집장 리더십의 100%를 차지합니다.  
‘기업의 2인자 찰스 슈워브’, ‘조직과 리더십’, ‘사람을 다루는 기술’ 같은 단어가 비즈니스적, 자본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그가 말한 칭찬의 리더십이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이끄는 것은 날카로운 비판과 강렬한 카리스마가 아닌, 따뜻한 인정으로 그의 열정을 지펴주는 배려임을 기억합시다.

 

김정화 편집장/한림
<editor@e-mednews.com>

Speaker's corner

94호(2013.09.05)/오피니언 2013. 9. 7. 14:33 Posted by mednews

스마일로드를 되돌아보며...

 

안녕하세요. 의대생 국토걷기 프로그램인 스마일로드#2의 기획단장을 맡았던 11기 의대협 기획국장 이승우입니다. 어느덧 스마일로드#2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네요. 개강을 하고 나서 되돌아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올해 단장으로서 이번 스마일로드#2는 작년의 #1과는 또 다른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합니다. 단순히 작년 행사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올해 행사만의 새로운 부분을 만들어내고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스마일로드#2를 기획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 기획국원들과 함께 토의하기 시작했으니 장장 100일이 걸린 셈입니다. 기획하는 입장에서 100일의 시간은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일반참가자 분들이 머무를 마을회관 섭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경로 중간 중간마다 140여명이 동시에 쉴만한 넓은 장소를 섭외하는 것 역시 대단한 인내심과 결단력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식사 및 쉬는 장소로 학교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교육청 관계자와 각 교장선생님께 여러 번의 공문과 부탁을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사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총 10개로 구성된 스마일로드 기획팀들의 상황을 하나부터 열까지 파악하고, 매일 확인하는 것은 피곤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100여일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디데이가 다가왔을 때에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경을 썼던 것은 일반참가자들과 기획단들의 안전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공문과 부탁을 통해 지방경찰청의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더운 날씨와 갑작스런 소나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일반참가자들이 혹여 다치지는 않을 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다행히도 큰 사고 없이 저희 기획단 및 일반참가자 120여명은 최종 목적지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Queen의 We Are The Champion이 땅끝 마을에 울려 퍼지는 동안, 드디어 해냈다는 일반참가자 여러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저 역시 지난 100일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네, 그렇게 스마일로드#2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마일로드#2에 참가했던 의대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스마일로드#2는 단장인 저의 이름을 내세운 행사가 아니라, 120여명의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인 자랑스러운 행사라는 점 명심해주세요. 저는 단지 책임을 맡았을 뿐이고 행사 곳곳에 기획단들의 노고와 일반참가자들이 흘린 땀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마일로드만큼 모든 의대생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자기 맡은 바 이상으로 책임감을 가진 행사는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이 이 행사를 함께 만든 기획단과 믿고 따라와 준 일반참가자 모두가 매우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대생신문 독자 여러분들께도 전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과 같은 의대생들이 앞으로의 스마일로드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야 두 번째 걸음을 내딛은 스마일로드가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승우 / 11기 의대협 기획국장

 

[캄보디아 워크캠프 후기] 힐링캠프, 캄보디아 

 

 

의과대학이라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해야 하는 내가 익숙한 것에 금방 지루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본과에 올라온 지 고작 일 년밖에 되지 않았건만 시험이 주는 중압감 못지않게 높아져 버린 내 역치 때문에 지난 학기는 맘을 다잡기가 힘들었던 한 학기였다. 아직은 실질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던 의학에 ‘지금 하는 이 공부가 무엇을 위한 것 일까?’하는 물음은 나를 자꾸만 다른 곳으로 벗어날 탈출구(혹은 변명)를 만들기도 했고, 대내외적으로 소란스러웠던 학교의 분위기 또한 때론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렇게 오춘기 같은 학기를 보내는 내내 나는 방학만을, ‘내 주위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극’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나는 예과 때 유예했던 워크캠프를 떠올렸다. 지금 아니면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약간의 조바심 속에서 나는 시험기간도 뒤로 한 채 캄보디아로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며 늘 여행이라면 철저한 사전 계획을 세우던 나였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그냥 한번 부딪혀 보지 뭐’, 무언가를 보겠다 혹은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욕심은 모두  버렸다. 어떤 편견도 계획도 없이 여행에서 마주치는 작은 우연과 인연들로 하루하루를 엮어가고자 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도착한 캄보디아는 내게 '자유, 해방감' 그 자체였다.
거의 모든 시간 눈만 떠있으면 찾던 핸드폰, 카카오톡, 페이스북이 사라진 것은 그 시작과도 같았다. 긍정적이라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자유'를 느낀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렇게 진정 나 홀로 남겨졌을 때야 나는 내가 믿었던 소위 소통의 장이라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속박하고 있었음에 순간 아차하였다. ‘참 조용하다’ 그렇게 내 목소리, 내 생각이 들리기 시작했고 내 자신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매체의 소음에서 멀어지고 나자 비로소 내 주위의 풍경과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워크캠프를 하는 곳은 캄폿(Kampot)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어촌 마을이었다. 캠프는 바다와 갯벌 위에 지어진 수상가옥이었고, 갯벌 너머 마을 입구까지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일과가 많지 않을 때면 바닷바람을 느끼며 누워있을 수 있었는데, 그때의 바람과 그 순간의 편안함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삼다도가 고향인 나이지만 과연 내가 가만히 자연 속에 묻혀 바람이 가져오는 고요를, 온몸으로 바람을 그저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나는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캠프지의 풍경과 그 풍경이 주는 느낌을 그림으로 남기곤 했다. 하고픈 것이 많아 늘 바쁘게 살아온 내가 조용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 여유가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자연의 시간에 따라 흐르듯 지내는 동안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득바득 살았던가 하는 반성이 절로 들었다. 때로는 느린 삶이 더 진정성 있고 풍부할 수 있음을 나는 이곳에서야 느낄 수 있었다.
캠프의 오전은 Mangrove를 심는 일로 시작되었다. 서서히 이곳까지 진행되는 개발로부터 이 마을을 보존하고자 우리는 Mangrove를 바다에 심고, 다리를 만들었다. 캠프의 참가자들은 일본, 한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고 캄보디아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러나 이런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일을 할 때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물에 빠지며 나무를 심고 물속에 다리를 위한 기둥을 박기 위해 돌아가며 뛰었다. 아무런 경제적인 대가 없는 일이었지만 일을 한다는 것 자체로 즐거울 수 있다는 데에서 나는 큰 행복을 느꼈다. 워크캠프를 오기 직전 나는 서브인턴, 메디슨청년의사봉사체험캠프를 참여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현실적인 문제들과 함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을 깨달았다. ‘재고 따지기 보다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것을 하자.’
오전의 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들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마을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바다 바람과 함께 나른한 점심을 맞이할 때면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조별로 미리 모여 수업자료를 준비했다. 가르칠 내용을 상의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는 노래나 게임을 고민했다. 너무나 간만에 해보는 ‘창의적인’ 일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능숙해져 갔다. 처음에는 25명 가까이 되는 반 아이들의 크메르어 이름을 외우는 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늘 지식을 갈구하는 듯한 아이들의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을 볼 때면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주고만 싶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이름도 익힐 수 있었다. 때론 가기 전까지 힘들었던 몸도 그런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칠 때면 절로 힘이 났다. 때로는 말도 잘 안 듣고,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집중을 시키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정도 참 많이 들었던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수업, 우리는 ‘Wonderful' 이라는 글귀와 함께 아이들의 이름과 그림, 그리고 각 나라의 말로 학생들에게 쓴 한 마디로 구성된 카드를 나누어주었다. 나는 내가 쓴 한국말을 캄보디아 캠퍼에게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내가 쓴 말을 영어로 전달하는 동안 날 바라보던 그 장난꾸러기들의 눈망울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록 그 아이들에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아이들의 눈과 표정에서 “선생님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너무 알고 싶어요.”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건강하세요. 꼭 또 만나고 싶어요.” 아이들은 나에게 크메르어로 수줍게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 그리고 가장 장난꾸러기였던 Zamri가 “I love yo‘o’”라는 쓰는 법도 가르쳐준 없는 그 말을 써주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마지막까지 몇 분 동안이나 ‘Bye bye’를 외치며 우리는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날 밤은 캠퍼들과의 깊어진 정도 아이들과 깊어진 정도 떼어내기가 참 힘들었던 기나긴 밤이었다.
360° 펼쳐져 있던 지평선과 논밭, 그 사이에 불쑥 불쑥 서있던 열대 나무, 그리고 돔처럼 둥글고 넓게 펼쳐져 있던 하늘 속에서 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천국 같은 2주를 보냈다. 아무런 바람도 없이 빈 마음으로 찾아갔던 캠프, 그러나 지금 나의 마음 속에는 그 곳에서의 소중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탁 트인 자연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치유,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얻었던 활기와 밝음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워크캠프가 아닌 힐링캠프였던 캄보디아를 나는 지금도 추억한다.
 
고유라 기자/서남
<youzr-_-a@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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