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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합격 정보는 안전합니까?
무자비로 노출되는 당신의 정보



“선배, 합격 축하드려요.”

나는 말한 적이 없는데, 후배는 나의 합격 사실을 알고 있다. 인터넷 의료 신문에서 나의 합격 여부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바로 의사고시 합격자 정보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시험들과는 달리 의사고시의 합격자는 너무도 쉽게 조회된다. 한갓 대학 신입생 입학 합격 여부를 알아볼 때에도 요구되는 주민등록번호는 의사 시험 합격 여부를 알아볼 때에는 필요하지 않다. 너무도 쉽게 인터넷 의료 신문(메디게이트뉴스, 데일리메디)에 들어가서 해당 엑셀 파일을 조회하고 찾고자 하는 이름을 입력해서 합격 여부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매년 의사 시험 응시자 수는 3800명 내외, 그나마 동명이인의 수도 많지 않은 편이다. 수험번호와 이름이 공개되지만 그나마 수험번호도 큰 의미가 없는 셈. 이와 같은 일은 국시원 주관의 모든 시험(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에서도 일어나며, 사법시험에서도 그렇다. 공무원(외무,행정)만이 유일하게 합격자 조회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과 메디게이트뉴스에 문의해 보았다. 별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메디게이트뉴스 측에서는 “게재되는 파일은 국시원에서 제공해 주고 있다”고 했다. 국시원에서는 “그 정도 정보 공개로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해당 당사자인 선배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나 학교가 공개되는 것도 아닌데 문제 삼을 필요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정보 보안 불감증은 병원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누가 수련의에 합격했는지, 누가 전공의에 합격했는지가 병원 홈페이지에 고스란히 쓰여 있다.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움이 될 수 있는 정보공개는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움, 또 누군가에게는 사생활 노출이라는 면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의료 사회에 만연한 인적자원 정보노출은 학교별 합격률 공개에서도 나타난다. 국시원은 매년 학교별 합격률 공개를 철저히 차단하여 합격률에 의한 서열화를 막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이유인 즉 매년 메디게이트 뉴스에서 학교별 합격률을 조사하여 발표하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본인 학교의 합격률을 조회할 수 있어 메디게이트뉴스에서 이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국시원은 “본 기관에서 발표한 공식자료가 아니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으며, 메디게이트뉴스도 “학교별 합격률 기사에 의한 제제는 받아 본적이 없다”고 하였다.

의대생은 돈을 내고 시험에 응시하지만,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병원에 입사지원서를 내지만, 나의 합격 여부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것을 동의한 적은 없다. 외적인 정보 유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회에서의 정보 노출에 대해서 지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영재 기자/ 전남
<yjyoo1@naver.com>


“나는 족보만 봤을 뿐이고...”
제73회 의사국시 수석합격자 연세의대 고재상씨 인터뷰

제 73회 의사국가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연세의대 고재상씨(25세, 사진)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재상씨의 첫인상은 ‘수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따뜻한 느낌이었다. 수석을 차지한 그에게 혹시 공부에 남다른 비법은 있었는지, 앞으로 의사가 될 포부는 어떤지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수석 축하드립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주세요.
 일단 이름은 고재상이구요, 나이는 25살입니다. 고등학교는 중동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대학교 시절 동아리는 합창반 이었고 이번에 신촌세브란스 인턴으로 들어갑니다.

538점 만점에 484.5점으로 수석을 하셨는데 시험보시면서 자신이 수석할거라는 예감은 드셨나요?
 아니요, 전혀 기대 못했습니다. 문제 풀면서 어려운 문제도 간간히 눈에 띄고 친구들이랑 나중에 답 맞췄을 때도 꽤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수석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지만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친구들도 많이 축하해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거든요. 연락 끊겼던 친구들이나 예전 여자 친구들이나. (웃음)


남다른 공부 방법?!  
족보에 충실하고, 이해위해 노력했을 뿐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먼저 학교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물어볼게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내신은 정말 열심히 하라는 말 밖에는 없네요. 이런 이야기 하면 교수님들께서 싫어하시겠지만 저는 족보를 많이 봤습니다. 그중에 내용족보에 더 중점을 뒀었습니다. 하지만 좀 달랐던 점이라면 이해가 안됐던 부분은 꼭 텍스트나 자료들을 직접 찾아보고 이해하도록 노력한 것 정도랄까요. 사실 이런 방법이 시간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억에도 오래남구요. 해리슨, 사비스톤을 다 읽는다는 건 힘들지만 중요한 부분이나 잘 모르겠는 부분은 꼭 참고해야 도움이 많이 되요.

국시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국가고시는 내과 중심으로 공부했는데 내과를 확실히 잡으면 소아과랑 외과는 추가적인 것 몇 개만 하면 따라온다고 보면 되죠. 전 문제집이나 교과서 한권을 정해서 기본으로 두고 반복해서 봤어요. 괜히 욕심에 여러 문제집을 뒤적거리기 보다는 그 중점적인 문제집에 여러 내용을 추가로 적어 놓는 식으로 말이죠.

실습은 국시 공부에 많이 도움 되셨나요? 
 실습 돌면서 틈틈이 실습 도는 과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도록 하였는데 꽤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실습도 열심히 돌게 되고, 내용도 잘 들어오고, 환자에게도 더 다가갈 수 있고, 여러 가지로 많이 이득이 되었습니다. 실습은 국시를 비롯해 여러 공부에 도움이 되므로 열심히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국가고시 준비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국가고시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본과 3학년 때 보는 임상종합평가가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오히려 그 시험을 치르고 나니깐 마음이 편했어요. 하루에 7시간씩 꼭 자구 좀 여유롭게 했죠. 건강을 챙기면서 틈틈이 여가활동도 하는 것 이 오히려 수험생활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의사로서의 미래.
인턴 돌면서 차차 생각할 것. 



앞으로 진로 계획은요?
 마음에 딱히 정해둔 과는 없어요. 인턴을 돌아봐야 알거 같고요. 기본적으로는 임상과 연구를 병행 하는걸 목표로 두고 있어요. 학교생활 때는 기초에도 남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점점 임상이 재밌어 지더라고요. 우리학교에도 임상과 연구를 같이 병행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 분 들처럼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주로 에이스들은 타잖아요. 공부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을 그려보면 타면서 못 하는 사람이 최악이고, 안타면서 안 하는 게 차악이고, 타면서 하는 것이 차선이고, 안타면서 잘 하는 게 최선이라고들 하는데, 이왕 하는 거면 최선이 좋죠. 저는 타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사실 공부를 즐기는 편이었죠. 재미있다고 하는 건 좀 변태지만 뭐든지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 한 것 같아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의사라는 직업이 잘 모르면 죄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구요.



▲ 연세의대 고재상씨(좌)와 김지은 기자(우)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고재상씨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듬직해 보였다. 앞으로 의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모습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김지은 기자 / 가톨릭대학교
<jieunapple@gmail.com>

메딕션이냐? 메딕플러스냐?
의학전자사전 2종 리뷰


 3월은 설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괴롭다. 학기가 시작되는 것도 서러운데 교재비에 과비까지 지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톡톡히 한 몫하는 것이 바로 의학전자사전이다. 제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마땅한 권리이건만, 불쑥 찾아와서 “내일까지 신청 받아요!”를 외치는 판매원 아저씨들 때문에 그마저도 어렵다. 의대생들의 합리적인 구매를 돕고자 시중에서 판매되는 2종의 의학전자사전을 비교 리뷰 해 본다.
(본 리뷰는 작성자가 두 제품 모두 수개월 이상 사용해 본 후 작성하였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작성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메딕션이 앞선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전자사전의 목적에 부합하는 적당한 크기에, 깔끔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반면 메딕플러스의 경우 가로길이는 메딕션에 비해 조금 작지만, 세로길이와 두께가 커 휴대하기에 부담스러워 보인다. 크게 이동할 일이 없는 의대생들의 공부 환경을 생각해보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부를 살펴보면, 키의 크기나 배열은 대동소이하다. 누를 때의 키 감은 두 제품 모두 큰 문제는 없지만, 너무 쉽게 눌러지는 메딕플러스에 비해 메딕션의 키가 더 누르는 느낌이 좋다. 액정의 경우 메딕션이 더 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면 양쪽에 기능키가 자리 잡고 있어, 실제 화면의 크기는 메딕플러스가 크다. 사용 시 느낌도 메딕플러스 쪽이 좀 더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의학사전부
 


 ▲ 메딕플러스(좌) / 메딕션(우)

 의학사전부의 경우 메딕플러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17만 단어를 수록한 이우주 의학대사전을 비롯해서, 생명과학사전, 영양학 사전, 약학사전, 화학사전, 의학약어 사전을 수록하고 있다. 반면 메딕션은 현문사 의학대사전, stedman 영영 의학대사전, 해부학용어 사전, 간호학 용어 사전 등을 비롯한 12가지의 의약학 관련 사전을 수록하고 있다.
 종류의 면에서는 메딕션이 더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의학대사전이 메딕플러스의 이우주 의학대사전이 월등하다. 같은 용어를 검색했을 때, 메딕션에서 없는 단어가 메딕플러스에서 검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메딕션에서는 어려운 용어를 검색한 경우 설명이 나오지 않고 단순히 한글 용어로 번역만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문사 의학대사전에 없는 단어이지만 치의학 용어 사전 등 다른 사전에서 검색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학사전부

 메딕플러스의 경우 Prime 영한/한영 사전, 동아 새국어사전, Oxford 영영사전, 현대활용옥편, 이보영 영어회화 사전이 실려있다. 메딕션은 뉴에이스 한영사전(금성), 슈프림 영한사전(민중), 민중 국어사전, 롱맨 영어사전을 비롯해 영중/중영, 일한, 영어회화 사전 등이 수록되어있다. 어학사전부 역시 메딕플러스 쪽이 더 퀄리티가 있는 사전들을 싣고 있다. 이는 메딕플러스가 전자사전 전문 회사인 에이원프로의 제품을 기본으로 하고, 의학사전부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기타 기능

 기타 기능의 경우, 컬러 액정을 채택한 메딕션 쪽이 좀 더 다양하다. 해부도, 동영상, mp3, 라디오, 그림판, 앨범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문전자의 광고에서와는 달리 실용적이지 못한 기능들도 있다. 해부도의 경우 메딕션 광고에서 중점적으로 광고하는 기능이지만, 실제로는 확대 축소가 불편해, 그림과 글씨를 함께 볼 수 없어 거의 무용지물이다. 조직학이나 병리학 슬라이드를 넣어서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메딕플러스의 경우는 흑백이라 동영상 등의 기능은 없지만, mp3, 앨범, 텍스트 뷰어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mp3플레이어의 경우 조작이 메딕션보다 편리하다.


사용상 특이점
 두 제품 모두 터치스크린을 제공하고 있어 편리한 조작이 가능하다. 메딕션의 경우 컬러 액정이라 아무래도 배터리가 빨리 닳는 문제가 있다. 많이 사용하는 경우 하루를 못버티기도 한다. 메딕플러스는 일반 흑백사전처럼 오래 버티는 편이다.
 또 메딕션은 부팅 시간이 3-5초 정도로 긴편인데, 자동절전 설정이 최대 15분이기 때문에 단어를 찾을 때마다 부팅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메딕플러스의 경우, 초기제품에서 단어 검색시 2초정도 딜레이 되는 문제가 있었으나 현재 판매되는 제품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따라서 중고거래 등으로 구입할 경우 제품 번호를 잘 확인해야 한다. (초기 제품인 APM700은 붉은색이고, 업그레이드 된 제품인 APM600은 진청색이다.)


기능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

 현재 소비자 가격은 메딕플러스 26만 8천원, 메딕션 36만원이다. 단체구입 등을 통에 할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너무 비싼 가격이다. 일반 전자사전의 경우 이 정도 가격이면 최신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메딕플러스의 경우 2006년 초, 메딕션의 경우 2007년 초 발매되었는데, 일반 전자사전의 경우에는 이미 단종되었거나 10만원 초반에 팔리고 있는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반 제품보다 대상 고객이 적어 많은 투자를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그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경쟁 제품이 적다는 것도 비싼 가격의 요인일 것이다.


꼭 필요한가

 의학사전이 없다고 해서 의학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두껍고 무거운 종이사전보다 전자사전이 편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에 따라 공부환경이 컴퓨터와 가까운 경우에는 대안으로 KMLE의학검색엔진 사이트(http://www.kmle.co.kr)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또 풀브라우징이 가능한 휴대폰이나, 아이팟 터치 등 무선랜을 통한 인터넷이 가능한 인터넷 디바이스가 있는 경우에도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의학전자사전을 대체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 강의실의 경우 무선랜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김민재 기자 /순천향
(telemax@nate.com)


 


강의평가,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나요


▲ 전산실에서 강의평가를 진행 중인 의대생

지난 겨울방학, 성적 확인을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한 의대생 C씨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당황하였다. 학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업평가를 작성해야만 하는 교양과목과는 달리, 전공과목에는 수업평가를 요구하는 창이 개설되어 있지 않았던 것. 그는 학기말에 “전체적으로 어느 과목이 좋았나요?”라는 추상적 물음의 설문지를 받은 것이 기억나 그것이 수업평가에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후배들에게 더 개선된 강의를 물려주고자 교과목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곰곰이 생각해 두었던 것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다른 학교의 의대생 B씨는 1년 전,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업평가 결과를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는 학교 측의 발표에 진취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교수들이 인기에 영합하는 강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것은 의과대학에서만큼은 괜한 걱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에서 의대는 예외로 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수업평가에 열심히 참여할 분위기가 안 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수업평가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두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7년 의학교육학회지에 실린 <국내 의과대학 강좌평가제 운영 실태 분석>은 총 41개 의과대학 중 38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업평가 시스템이 평가기준항목, 평가대상과 방법 등 많은 항목에서 대동소이하게 미흡한 것으로 보고했다.

형식적인 수업평가, 뿌리부터 알아볼까

의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의학이 과학과 접목되기 시작한 17~18세기 이후부터로 의사학(醫史學)자들은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의학이 학파를 중심으로 전수되는 엉성한 도제식 교육이 의학교육의 전부였으며, 그 교육방식 역시 일방적인 강의에 의한 지식의 복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극히 제한적으로만 접근이 허용되던 의학지식의 특성과 함께 의사 집단의 폐쇄적·권위적인 성격도 한몫을 하여 의학교육에서 학생에 의한 피드백이란 애당초 남의나라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강의평가를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고 있다.

다른 단과대학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수업평가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어느 공대생은 수업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불쾌해하며 도리어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수도 있다고 고발했다. 높은 직업안정성으로 손꼽히는 교수직에 이미 오른 이가 학생들의 평가에 자극을 받기나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영대생도 있었다. 학생의 조합인 ‘유니베르시타스’와 교수의 조합 ‘콜레지아’의 줄다리기 속에서 성장한 중세 유럽의 대학 중 교수가 대학운영의 중심이었던 파리대학의 시스템이 옥스퍼드대학을 거쳐 미국으로 이식됨에 따라, 개화기 이래로 미국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 온 우리나라에서는 자연히 학생보다는 교수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대학이 진화해 온 것이다.

무엇이 의대생을 무기력하게 하는가

하지만 의대가 아닌 학과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노력도 있었다. 전공수업을 비전임강사가 맡기도 하는 어느 학과의 학생은 “강사의 경우 수업평가 결과가 재임용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어느 대학교에서는 학교의 공식 사이트 외에 총학생회에서 운영하는 수업평가 사이트가 있어 수강신청 시 특정 교수에 대한 평가내용을 참고하기도 했다. 수강해야 할 과목과 교수가 이미 완전히 정해져 있으며 모든 전공과목을 전임교원이 강의하는 의대에서 위와 같은 자발적 움직임이 미약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의대생들이 느끼고 있는 수업평가란 어떤 걸까. S의대의 한 학생은 수업평가 설문지가 교수별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한 강의 전체에 대해서 물음을 묻는 것에서 한계점을 찾았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피상적으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Y의대에서는 학생들이 건성으로 하는 수업평가를 교수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몇 해 전 단국의대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참여하였냐는 질문에 그렇다 20명, 그렇지 않다 24명의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이유로는 평가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답변, 귀찮다는 답변, 평가결과가 제대로 전달되는지와 그 효과에 대한 의심, 교수별 평가가 안 되는 데 대한 불만, 평가시기와 평가항목이 부적절하다는 불만 등이 주를 이뤘다.

교육서비스의 소비자, 나 스스로를 위해서

수업평가에 대한 교수와 학생의 인식차이를 드러낸 연구도 있다. 지난해 아주의대에서는 교수와 학생 각각 백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평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 항목을 조사하였는데, 교수들은 학생 자신의 수업태도를 스스로 평가하는 항목(26명)과 강의의 난이도(13명)를 가장 많이 지적한 반면 학생들은 교수의 학생참여 유도와 목소리 크기, 학생을 존중하는 말투 등 교수의 수업전달 능력(29명)과 수업자료의 사전 배부 등 교재 사용에 대한 내용(16명)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업평가를 둘러싼 두 주체의 인식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은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뢰성과 타당성을 갖춘 평가준거의 개발 역시 필요함을 뜻한다. 가령, 막연히 학생의 학습 태도를 묻기보다는 학생이 강의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나 왜 성실하게 참여하지 못했는지를 묻는 것이 교수와 학생 어느 쪽을 위해서든 건설적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추상적으로 구성된 설문지 한 장이 교육의 질을 측정하고 제고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수업평가는 앞으로 그 수업을 이어받을 후배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수업평가를 통해 학생이 교수와 함께 교육의 한 주체로 당당히 서는 순간 그 혜택은 지금 곧 강의를 듣고 있을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성욱 기자/울산
<casanovacs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