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자동차는 직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산길을 들어선다. 굽이굽이 곡선의 형태를 지닌 산길이다. 창밖으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지만 네비게이션의 기계 음성에 의지하여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공부를 끝마치고 집을 간다. 보통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자정 정도가 본과 1학년 의대생의 귀가시간으로 적당하지만 익혀야 할 양이 많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기준을 넘기게 된다. 그렇다고 새벽 4시 반보다 늦어질 수는 없다. 오늘의 밤샘으로 인해 내일 하루를 망칠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새벽 4시 반엔 거리를 방황하던 취객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어제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환경미화부들의 모습이 관찰된다. 쓰레기봉투가 가득 담겨 있는 트럭 옆을 지나며 오늘에 대해 생각해본다.
새벽 4시 반엔 “오늘 하루”의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나에겐 “오늘”이 끝나 것이지만, 새벽잠을 이겨내며 일하러 나온 환경미화부들에겐 그 순간이 “오늘”의 시작일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줄만 알았던 시작과 끝의 만남은 본연의 모순을 잃고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다.
둘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면 둘 모두 피곤하다는 것. 그래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곤함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행복감은 물론이거니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증오 또한 중요치 않아지는 시간이다.
가로등에는 여전히 나방들이 하염없이 몸을 부딪친다. 무엇이 그렇게 절실해서인지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뜨거운 벽을 계속해서 두드린다. 얻게 되는 것 하나 없지만 신은 무슨 까닭으로 나방들이 불빛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어 놓았을까. 설령 무언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그만큼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조금만 기다리면 더욱 밝은 태양이 뜰 텐데 그 새를 못 참고 보잘 것 없는 가로등 불빛 하나에 제 목숨을 바치는 것일까.
20여개의 가로등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이 세상 가장 참혹한 어둠이 나를 반긴다. 신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손을 더듬어 불을 켜며 방안을 둘러보면 낮 동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안도감이 듦과 동시에 내 자신이 매우 피곤한 상태임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형광등을 끈다.
불을 끔에도 눈앞이 밝다. 빛을 차단 시켰으니 참혹한 어둠만이 남아야 맞겠지만 이상한 일인지 옅은 푸른빛이 방안에 남는다. 빛의 근원을 찾다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보니 푸르스름한 빛이 창문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세상에 도달한 첫 번째 햇살과 함께 잠에 빠진다.
남해 섬들처럼 구름은 각각의 군집을 이루고 그 사이로 오늘의 태양빛이 땅을 적신다. 자동차는 다시 산길을 벗어나 직선의 도로를 달린다.
윤명기 편집장
<medschool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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