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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최우수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7 Posted by mednews

(수필부문) 최우수
명쾌한 진단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박솔희

불안 장애, 강박 장애, 망상장애. 너무 아파서 점심시간에 끼니도 거른 채 찾아간 병원에서 20분 만에 받은 내 병의 진단이었다. 나는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병원을 나섰다. 문이라도 한 번 ‘팡’ 하고 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억울함이 밀려와서 눈 밑에 차올랐다. 못 다한 나 자신에 대한 변호의 말들이 입안에서 우글우글 거렸다. 이야기의 시작은 넉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시작됐어.”

찌르르한 느낌이 가늘게 나타나나 싶더니 어느 새 왼쪽 위아래 턱 모두 누구에게 한 대 맞기라도 한 듯 얼얼해져왔다. 일단 통증이 시작 되면 약 5분에서 10분정도는 얼굴의 아랫부분이 너무나 아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한 손으로 턱을 감싸 쥔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괜찮아지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처음으로 아팠던 것은 1월 어느 날이었다. 4학년 선배들의 국가고시 응원을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시험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추위에 떨었던 때이다. 모자, 마스크, 내의로 중무장을 하고 온 몸에 일회용 핫팩까지 붙였는데도 너무 추워서 발가락 끝마디부터 서서히 감각이 무뎌져 왔다. 선배들이 모두 입장하고 응원을 담당한 1학년들끼리 기념사진도 찍고 드디어 끝났구나! 얼른 집에 가야지 하고 차에 올라타 히터 바람에 언 몸을 녹이자 다시 몸에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와 거의 동시에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픔이 내 왼쪽 턱 부근에 느껴졌다. 그 후로 괜찮아 지겠지 괜찮아 지겠지 하고 몇 번 넘겼더니 통증이 오는 건 더욱 잦아졌고 범위도 점점 넓어져서 이제는 왼쪽 귀 까지 먹먹한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이게 뭐람?
 
나와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 또는 이미 그 공부를 거쳐 의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라면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내부 스위치가 켜졌을 것이다. 분명 머릿속에는 어떠한 알고리즘이 지금 막 순차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중일 테다. 나도 그랬다. 본과 2학년이 되어서 한창 임상 질병들에 대해 배우고, 증례에 대해 토의하는 수업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의 병력을 정리하고 가능한 질병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고 있었다. 아 나도 제법 의사가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턱관절 질환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왼쪽 턱관절이 안 좋아서 이제는 입을 벌렸다 닫을 때 ‘딱’ 하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얼마 전에 치과의사 한 분을 사석에서 만나 뵐 일이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꼭 추웠다가 따뜻해질 때 아프고 통증이 관절부터 시작되는 게 턱관절 질환의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넉 달 동안 이렇게 나름 유추도 하고 조언도 들어서 턱관절 클리닉에 몇 번 다녔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그래서 결국 단골 치과를 찾아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예전 기록을 살펴보니 관절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경과를 지켜보자고 그냥 두었던 치신경의 손상이 점점 더 진행되어 문제를 일으킨 거라는 의외의 결과였다. 신경치료를 통해 신경을 제거해야한다는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치료를 받고나면 이가 푸르스름하게 변색되므로 내 이에 사기를 덧씌워야 한다는 것도 걱정되었다. 어쨌건 나는 신경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치통으로 넉 달 동안이나 고생을 했던 나는 예민할 데로 예민해져 있었다. 시험을 이틀 앞두고 있는데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부위가 퉁퉁 붓고, 예전보다 통증이 훨씬 심해진 것 같았고, 나는 막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 지 몰랐다. 그리고 “딸칵”, 내부의 스위치는 또 켜졌다. 신경 치료하는 부위가 덧나서 염증반응이 일어난 거 아닐까? 아니면 애초에 턱관절이 문제였던건가? 아니 염증반응이 더 맞는 거 같은데. 생각은 점점 더 비과학적으로 변해갔다. 1년 전에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뽑았던 자리에 염증반응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머릿속 알고리즘은 점점 더 가지를 쳤고 걱정으로 내 두뇌를 조각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고 학교 앞에 눈에 보이는 한 치과로 달려갔다. 그렇게 받은 진단명이 불안, 강박, 망상 장애였다. 치과의사 선생님의 눈에 나는 인터넷 자료를 강박적으로 검색하고 마음대로 병에 대해 생각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의사인 양 떠들어대는 영락없는 건강 염려증 환자였던 것이다.   

태어나서 그런 진료는 정말 처음 받아봤다. 머리가 희끗하신 의사선생님이셨는데 내가 한 마디 할 때마다 가차 없이 비난하셨다. 내가 엑스레이 사진에서 아픈 부위를 짚으며 여기에 염증소견이 있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거 보라며 사랑니를 뽑은 부위는 분명 잘 아물었고 신경치료 하고 있는 부분은 여기인데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허참 요즘 사람들은 없는 병도 만들어. 마음을 편안 하게 먹을 줄 알아야지.” 상상 병이라니 마음을 고쳐먹으라니 하도 몰아세우셔서 당황한 나머지 증상을 설명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픈 반대쪽 턱을 가리켰다. 그러자 턱을 짚기가 무섭게 “아까는 이쪽이라더니 왜 반대쪽을 짚누?”하고 나무라셨다. 순식간에 아프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내서 어느 쪽인지 분간도 못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억울해서 무어라 설명을 하려들어도 금방 꼬리를 내려야 했다. 의대생인지라 마치 직업병처럼 조금만 아파도 나도 모르게 증상을 분석하고 진단하게 된다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또 폭풍 같은 비난을 들을까봐 가만히 있었다. 설교의 마무리는 나의 예민한 성격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 끝났다.

병원을 내려가는 계단 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보니 그러지 않아도 작은 내 입술이 한층 더 예민하게 앙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난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눈빛도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자세도 움츠러든 게 정말 선생님 말대로 내가 너무 심하게 걱정한 거였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통증은 하루 이틀 지나 잦아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치 중고등학교 때 할아버지 선생님께 꾸중 듣는 것 같았던 그 날의 진료가 한편으로는 내가 넉 달간 거쳤던 어느 병원보다도 속 시원하게 치료를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료를 받는 내내 화가 솟구치고 어안이 벙벙해서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지만 마음가짐을 바꿔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내 옷깃을 붙잡고 따라왔다. 학교생활 중에 작은 일이 나를 걱정스럽게 만들라치면 그 말이 떠올랐고 아픈 이가 낫듯 걱정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당시 배우고 있던 정신과 수업에서 ‘건강 염려증’ 환자에 대한 내용이 나왔을 때 기막히게도 그 날 내가 했던 말이랑 행동과 일치해서 혼자 속으로 마구 웃었다.

그간의 병원 순례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끔 했다. 이번에 앓은 치통 덕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환자의 입장에 서 본 셈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단골 치과에서의 진료가 가장 좋았다. 의사 선생님은 별 말씀은 안하셨지만 내가 호소하는 증상들에 대해 묵묵히 들어주시고는 간간히 내가 느끼는 통증에 대해 공감을 해 주시곤 했다. 비록 호들갑을 떨며 얕은 의학지식을 동원해 증상을 호소하는 내 모습이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보였을지라도 말이다. “마이 시리지예?” 한마디에 넉 달 간의 치통 중 한 달치는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불편해 했던 통증을 해결해 주었다. 턱관절 클리닉에서처럼 값비싼 교정기를 구입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함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했기에 정확한 원인을 짚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감동하긴 이르다. 5주 가까이 신경치료를 받으러 통원하는 내내 나는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했었다. “사기로 이를 덮어씌우면 보기 흉하나요?” 신경치료를 하면 꼭 해야 하는 필수 코스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고 20대의 창창한 나이에 의치를 한 할머니 같아 보일까 걱정이었다. 치료중인 이가 ‘앞니’였기 때문에 미용에 더욱 신경 쓰였다. 그런데 치료 마지막 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치과를 찾은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선생님이 사기로 덮어씌우는 건 일단 미뤄두자고 하시네요. 변색이 되면 그 때 해도 늦지 않으니 나중에 오세요.” 다른 병원이었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10년 동안 단골로 다니면서 선생님과 안부 한 번 제대로 주고받은 적 없을 정도로 말이 없으신 분인데, 이렇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배려가 환자와 의사 사이의 대화를 대신 했다. 물론 간호사를 통해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셨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른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는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상상 되었다.

‘명쾌한 진단을 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 는 게 내가 치통으로 고생을 하고, 병원 세 곳을 전전하며 극도의 예민함으로 치닫다가 마지막에 불안장애 망상장애 강박장애를 진단받고 정신이 번쩍 든 뒤 한 생각이다. 비록 일반 병원이 아닌 ‘치과’에서 경험하고 느낀 일들이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면에서는 앞으로 내가 일하며 겪게 될 일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명쾌한 진단의 알고리즘은 다른 게 아니라 환자가 가장 불편해하는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환자가 되어 아파보니 알 것 같았다. 현재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 ‘이것’을 의사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친절보다 몇 곱절 값진 ‘배려’, 환자의 걱정스런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만화 주인공처럼 자유자재로 커질 수 있는 귀.

단골 의사 선생님도 명쾌한 진단을 하셨지만, 점심시간에 찾아갔다가 꾸지람을 들은 선생님도 칼 같은 진단을 하셨다. 그 때 나는 분명, 치아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곤두서 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덧붙이자면 환자가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점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는 매서운 눈은 물론이거니와, 필요할 땐 따끔하게 호통도 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글을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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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우수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6 Posted by mednews

(수필부문) 우수
마음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손호영

해부학 실습실은 병원 지하 4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긴장감을 잊어보려 동기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려 계단을 내려가 해부학 실습실 문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서는 축축한 포르말린 냄새가 느껴졌다. 다들 하나씩 챙겨온 낡은 옷을 몸에 걸치고, 그 위에 헌 수술복을 착용했다. 그리고 실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섯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 위에 검은 천으로 싸여있는 카데바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수술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별로 테이블 주위에 둘러섰다.
교수님과 목사님께서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의식을 시작하셨다. 축도와 묵념이 끝나고, 카데바를 싸고 있던 검은 천을 벗겨냈다. 그 안에는 커다란 비닐에 싸여있는 시신 한 구가 있었다. 나는 조원들과 힘을 합쳐 카데바를 커다란 비닐 안에서 꺼냈다. 건장한 중년 여성으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피부는 어두운 색이었고, 방부액에 충분히 젖어 있어서 약간 불어 있었다. 나는 시신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도, 직접 만져본 적도 없었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이 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실체로서의 죽음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지면서, 나는 카데바를 비인격적 개체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것을 내 손으로 만지고, 자르고, 벗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데바는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스테인리스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무생물일 뿐이니까 피부를 벗겨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첫 실습은 등의 피부를 벗겨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 조는 카데바를 뒤집어 놓고, 메스로 피부에 작은 십자모양을 새긴 후, 그 중 한 부분을 핀셋으로 잡고 메스로 피부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피부를 벗겨나갈수록 그 아래에서 노란 인간의 지방조직이 드러났다. 처음 잡는 메스, 생각보다 질긴 피부, 인간 지방의 질척한 냄새, 그리고 처음 만져보는 카데바는 어쩐지 현실에서 현실감이라는 요소를 조금은 덜어냈다. 우리 조의 카데바는 그렇게 피부가 상당부분 벗겨진 채로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첫 실습 후,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카데바를 철저하게 비인격적 개체로 받아들인다면,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감사의식과 실습실 곳곳에 붙여있는 ‘시신을 기증해 주신 분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자’라는 글귀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것들은 결국 카데바가 인격적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실습시간 동안 가졌던 ‘비인격적 카데바’의 상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다. 만약 ‘인격적 카데바’의 상을 받아들인다면, 도저히 실습 시간에 카데바의 피부를 벗겨내고, 근육을 자르고, 혈관과 신경을 분리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카데바를 비인격적인 개체로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행위였다. 이것은 해부학 실습이 진행되는 내내 나의 화두였다.
그렇게 등, 팔, 가슴, 머리, 배, 내장, 골반, 다리까지 한 학기 동안 정신 없이 실습이 진행되었다.  해부학뿐만이 아니었다.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 등 공부해야 할 내용은 산더미 같았고, 시험은 매주 월요일마다 있는데다 해부학 실습이 정규 수업시간에 포함되지 않아, 수업이 끝난 밤이나 주말에 실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실습 평가가 있는 날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카데바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역시 카데바와 함께 지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카데바를 ‘우리 할머니’라고 부르며, 골고루 방부액을 뿌리고 노출된 피부에는 정성스레 비닐랩을 감아 좋은 상태로 보존을 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시신은 생명이 꺼져버린 무생물일 뿐이다. 그것은 고인이 남겨놓고 떠난 것이긴 하지만, 고인 그 자체는 아니다. 시신을 존중하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고인의 정신과 의지를 존중하는 것의 연장선 상에 있다. 즉, 우리가 카데바라는 비인격적 개체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존중하며 대해야 하는 것은 고인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 의지가 육신에 생명이 떠난 후에도 남아 의학도들에게 소중한 인체 해부 실습의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인격적 개체에 인격적인 개념이 덧씌워졌고, 나는 비로소 카데바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해부학이 종강하는 날, 해부학 땡시험이 끝나고 이곳저곳 분해되고 해체되어 인체의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카데바가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조의 카데바를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그리고 시신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처음의 커다란 비닐에 넣고, 그것을 시신 보관용 냉장고에 옮겨 넣었다. 냉장고에 카데바가 들어가고,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육중한 문이 닫혔다. 그 때 나는 세상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기분으로 한 학기 동안의 실습을 돌이켜 보았다. 내게 카데바는 한 학기 동안 인체의 구조를 배우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구조물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강의를 통해 배운 내용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면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다. 나는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에 대해 큰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이젠 고인의 숨결이 더 이상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 분이 세상에 남기고 간, 그리고 의학교육을 위해 기증해 주신 그 육신 덕에 나와 내 동기들은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부학 실습이 끝나고 인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지금은 시신에 대한 느낌이 처음 카데바를 마주했을 때와는 많이 변했다. 생명이 꺼져버린 육신은 그저 물건일 뿐이라는 것, 인간은 육체를 통해 이 세상을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그것을 남겨놓고 떠난다는 개념을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해부학 실습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시신에 대한 두려움 섞인 시선을 마주하게 되면, 처음 해부학 실습실에 들어섰을 때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 때는 나도 시신이 두려웠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해부학 실습을 무사히 마치고 시신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의학을 배우고 의사가 되어가면서 변해가는 마음가짐을 깨닫게 된다. 해부학을 배우면서 카데바라는 비인격적 존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임상의학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질병이라는 비인격적인 대상을 다루는 동시에 인간을 잊지 않는 그런 의사가 되어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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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심사평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6 Posted by mednews

(수필부문) 
심사평
이병훈(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제6회 의대생 문예공모전 수필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35편이다. 학생들이 쓴 수필치고는 예상보다 수준이 꽤 높았다. 소재를 다루는 기술, 비유적인 사유, 명확한 주제의식, 문장력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 못지않았다. 우선 너무 신변잡기에 빠져있거나 주제의식이 부자연스럽게 드러난 작품들을 1차 심사에서 가려냈다. 그 결과 박솔희의 <명쾌한 진단>, 손호영의 <마음>, 김기영의 <눈물 한 방울>, 류창연의 <초상(初喪)>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이중에서 최우수작으로 박솔희의 <명쾌한 진단>을, 우수작으로 손호영의 <마음>을 선정했다. <명쾌한 진단>은 건강 염려증 환자(상상병 환자)를 다룬 작품으로 글쓴이 자신의 경험이 생생하게 묻어나 있는 수작(秀作)이다. 특히 ‘머릿속 알고리즘’이라는 의대생 특유의 습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남달랐다. <마음>은 해부학 실습실 경험을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묘사한 작품이다. 카데바를 통해 비인격적 존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는 주제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김기영의 <눈물 한 방울>은 호소력 있는 문장과 진실한 감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입상작이 되기에는 너무 소품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류창연의 <초상(初喪)>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너무 개인적인 신변잡기에 빠져 지루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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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최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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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최우수
위로
고려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김한나

옷에 파묻힌 작은 아기가
별로 높지도 않은 의자 위에서 달랑
달랑 거린다.
나도 저렇게 두 다리를 흔들며 달랑
달랑 거리던 때가 있었을 테다.
몸은 북국의 나무처럼 쭉쭉
뻗어 자랐으나 새로 사 입을 수도 없는 세상은
점점 굽어지고, 굽어지고,
굽어지다 움츠러지고,
세운 옷깃 사이로는 침묵만을 골라 담은 쌉쌀한
담배 연기가 피워져 올랐다.
사발면에 딸려나온 나무젓가락처럼 기운 없이 툭, 부러지는
미소를 눈썹 위에 얹어 부신 눈을 가리고
거기
세상은 말없이 얼굴만 붉힌다.
괜찮다, 괜찮다,
지하철에서 짜한 목소리로 삼단 면도날을 파는 사내, 그도
높지 않은 의자 위에서 달랑
달랑 거리며 맛있게 꿈을 먹던 때가 분명 있었을 테다.
작아지는 세상에 꼭 끼어 옥죄이는 우리 모두,
네 탓은 아니다.
우리가 커버린 탓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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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우수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5 Posted by mednews

(시부문) 우수

순천향대학교 본과 4학년 김민재

의식을 잃은 몸뚱아리 위에
새하얀 천이 드리워지고,
의식이 시작된다.

하얀 천으로 가려진,
그 네모난 창 안에서.
 
신도 어머니도 침범하지 못했던 순결의 공간.
날카로운 칼날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젖히면
차갑기만 한 금속의 도구들이 살을 헤집는다.
 
선혈과 살점들
타는 냄새와 연기가 가득 차
영혼마저 쫓겨난 공간.
 
아수라의 칼들이 한바탕 춤을 추는
그 신성한 의식이 끝나고 나면
누구는 기적을 체험하고
누구는 자연을 깨닫지만
 
하얀 천으로 가려진,
그 네모난 창 안에는
사람이 있으되, 더 이상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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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심사평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4 Posted by mednews

(시부문)
심사평
박덕선 (시인, 민족문학작가회)

올해 11월도 여지없이 차가운 지성의 전당인 의학도들의 뜨거운 감성을 향유하는 행복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기대로 설레던 일이기도하고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까하여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던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특수 분야의 낭인들을 만나는 일이라 호기심과 기대로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났습니다. ‘의학도의 시를 만나는 일은 사실의 세계를 초월하여 실핏줄 한 가닥 말초신경 한 자락의 미세한 흔적도 생의 큰 의미로 살아나는 기쁨을 준다.’고 했던 지난해 시평의 기대가 넘쳐 올해는 참으로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수작들이 많아져서 신명이 나는데 문제는 두 작품만 뽑아야 한다니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의 출품작들은 분야가 다양하다는 것이 큰 발전이요, 가능성입니다. 의학도로서 가장 치열한 공간인 수술실이나 해부학 수업에서 느끼는 심상을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 중 수작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천안함 사건 같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시대의식을 같이하는 문인으로서 동질감을 갖게 했습니다. 더불어 일상의 소소함에서 발견하는 따뜻한 시선을 다룬 박지예의「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박재원의「분식집에서」는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다가 아쉽게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수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아성찰이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오세민의「동굴속에서」나 한지은의「시간에 대한 단상」도 좋았습니다. 다만 관념적 사유를 드러내려다보니 사설이 길어 작품의 긴장미를 떨어뜨려 아쉬웠습니다. 특히 김세영의「멸치를 향한 모독」과 조재홍의「도마뱀」은 기성시인 못지않은 상상력과 독창성을 지닌 작품이었는데 장시로 이어가다보니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져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또, 한지혁의「창경궁의 대취타」는 낯선 시어들을 사용하여 뛰어난 독창성을 발휘한 수작이었는데 추상적 주제와 돌출적인 시어들이 다소 이질감을 주어 흐름을 깨는 아쉬움을 남겨 수상작에서 밀렸습니다. 그외 이규호의「전치(前置)」와 이은정의「GA28주」그리고 노원철의「달맞이」도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어서 가장 오래도록 고민한 작품들입니다. 수상작과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그 차이를 아주 미세한데서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나서 심사자로서 이 작품들을 더 칭찬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차 3차 심사를 거쳐서 간추린 작품이 10여편이나 되었는데 그 작품마다 독창성이 있고 행간마다 묻어나는 진정성 때문에 애정이 가서 어떤 작품을 골라야할지 고민하느라 일주일은 시들은 것 같습니다. 의학도들의 치열한 실습과 연구의 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느끼는 삶의 편린들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해 내려는 진지한 시도들 앞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두 작품을 뽑아 들었습니다. 이 작품들이 위에 거론했던 작품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서 뽑았다기보다 최종에 뽑혀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완결미가 높을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여타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잘 써내려오다가 약간의 사족이나 주제의 산만성. 추상성 등에서 그 차이를 두었으므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음을 알려둡니다.
고심 끝에 최종으로 뽑힌 두 작품은 김한나의「위로」와 김민재의「창」인데 ‘창’이 우수작으로 밀리는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이 작품은 수술실에서 느낀 생의 소회를 절제되고 단아한 시어를 구사하여 문학적 성취와 삶의 진정성 표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았습니다. 뿐만 1연부터 시작된 주제의식을 마지막 연까지 심도 있게 끌고 간 힘이 강하여 높은 완결성에 점수를 주었습니다. 다만, 최우수작 ‘위로’에 비하여 제목선정이 약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최우수작으로 김한나의「위로」를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처음 읽을 때나 곱씹어 십 수번을 읽어 내려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되 안정되고 단아하게 길어 올린 시어와 작가의 시선이 작품 제목처럼 큰 위로를 줍니다. 우선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응시와 힘겨운 삶의 무게를 모든 가능성을 담보했던 아기에서 남루한 삶의 상처로 지쳐있는 노숙자의 구겨진 삶에까지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작가의 심성이 아름답고도 진지합니다. 어떤 위치에서 대하는 삶이든 생은 고통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그 지난한 과정을 너그럽고 온화하게 내다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겨울 찬바람 앞에서 건네받은 목도리 같은 따뜻한 시 한편이 밥보다가 큰 위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대가 팍팍하고 힘겨울수록 위로가 필요한 법이지요. 의학이 생물학적 인체를 다루는 고도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학문이라면, 의사는 그 학문에 온기를 불어넣고 가슴을 녹여내어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완전을 지향하는 인술을 펼쳐내는 직업입니다. 문득 문학과 아주 긴밀한 거리에 인술이 위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학 행사가 거듭되면서 보여준 의학도들의 문학적 가능성이 자꾸 더 큰 욕심을 갖게 합니다. 이 행사가 의학도들의 더 다양한 문학적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펼치는 장이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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