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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는 의대생, 평생 불행합니다.”

막연한 의대 공부 보단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을 만나다

 “한국 경제에 3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제 2차 석유파동의 영향을 받아 1980년에 한번, IMF가 터졌던 1997년에 한번, 그리고 2007년 미국발 경제위기였죠.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아주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한 번 더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원래 천천히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했을 것을, 토건 경제와 낮은 이자율 등으로 급히 대처했기 때문이죠. 6월 선거에 돈이 많이 들어간 올해 말, 혹은 연초와 함께 돈을 많이 쓰는 내년 초쯤에 경제 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봅니다.
 2008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5년, 2013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5년을 지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2008년에 20대가 되었다면, 10년을 이 힘든 경제 속에서 살아야죠. 진작 이민을 갔다면 좋았겠죠. 혹시 이때 이민을 가지 못한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가는 게 좋습니다. 곧 있으면 환율도 엄청나게 올라 비행기 값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반 정도 농담이 섞인 말이긴 했지만, ‘공포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20대를 향해 무서운 말들을 했다. 그는 이 불행한 20대에게 이름도 지어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세간의 유행어 ‘88만원 세대’. 20대가 받는 평균 임금 88만원이라는 수치를 쓴 것이다.
 지난 3월 김예슬 씨의 고려대 자퇴 선언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세상을 향한 반격 시작’이라 할 정도로, 20대 문제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무언가 큰 변화가 올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하지만 의대생은 이 흐름에서 빠져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내일 모레 있을 시험이며,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의대생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에게 직접 들어보자.


 

Part 1. 88만원 세대’, 출간 3년 후.

- 뼛속까지 고독하고 절망적인 세대

 경쟁하라, 뒤처진 자는 버려진다. 불신하라,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불안하라, 네가 자는 이 순간도 적들은 발전하고 있다.

▲ 불신이 만연한 사회

 이 세 마디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딜까. 전쟁터가 떠오르지만, 학교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88만원 세대는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와도 마주하게 되었다. 비교적 쉽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이전 세대들과 달리,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그 마저도 윗 세대가 다 차지한 이 사회에서, 일자리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 세대는 소위 ‘인 서울 명문대’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준비를 해야 하며, 대학에 가서도 학점을 쌓으며 틈틈이 ‘스펙 관리’를 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서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다른 세대들의 관심은 전무 하다는 것이다.
 “정당들은 20대에 관심이 없습니다. 20대를 향해 좋은 정책을 펴든 나쁜 정책을 펴든 어차피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거든요. 혹 선거운동에 나서는 20대가 있어도, 그를 젊은 세대의 주체보다는 ‘일당 7만원 알바생’으로 볼 뿐입니다. 기껏해야 선거 운동 차량에서 율동을 하고 손을 흔드는 일이나 하죠.
 대학도 마찬가집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커녕, 최소한 자신들의 고객이라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저 학생들을 봉 취급 하고 있어요.
 투표라도 좀 해야 할 텐데, 투표를 권유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투표하라는 제 말이 담긴 기사를 읽을 정도의 20대라면, 투표하라고 안 해도 투표합니다. 하지만 접근할 방법이 없는 20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연아나 소녀시대가 투표하라면 할까요.”


 

- 꿈틀거리는 지렁이, 20대의 당사자 운동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했는가. 청년들이 노조를 만들어 노동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논의 그룹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대학 진학이 끝이 아니라는 고민을 많이 하며, 김예슬을 필두로 자퇴를 선언하는 대학생도 나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흐름들이, 그것도 문제의 대상인 20대 당사자들이,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1~2년 내에 한 번 크게 터질 것이라 봐요.” 어떻게 할지는 모색 중이지만 문제가 있다는 데에 대한 공감대는 널리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우석훈 씨의 평가였다. 언젠가는 20대가 길거리에 나와 혁명이 시작될 텐데, 특히 김예슬의 활동을 가장 전위적인 것으로 평가하며 길거리로 나오기 전 단계로 꼽았다.
 “물론 혼자서 외칠 수는 있어도 변화를 오게 할 수는 없겠죠. 언젠가 다 같이 나서야 되고, 다 같이 한다는 동의만 이끌어 낸다면, 대학 자퇴나 F학점 등의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도 많아요. 누가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학생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일으킨 68혁명은 불씨가 된 7명이 잡혔을 뿐 누가 주도한 게 아니었죠. 하지만 그 세대는 역사적인 68혁명을 이루었고, 평생을 ‘우리 세대 건들면 알지?’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 프랑스 68혁명의 모습

 20대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어차피 대기업이나 정부기관도 창의성 있는 사람을 원하고, 창의성은 학점은 물론 스펙에서도 드러나지 않음을 압니다. 모든 게 만점이고 화려한 스펙이 있는 완벽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고, 시험 면접관이 직접 얘기해요. 열심히 학점과 스펙을 관리하는 20대, 그러면 본인만 괴롭고 힘듭니다.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찾아 사세요.”





Part 2. 의사와 의대생, 88만원 세대의 속에서

- 88만원 세대의 아웃사이더들

 ‘88만원 세대’는 사회 구성원을 세대로 나누는 담론으로, 현재 한국의 세대를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나눈다. 하지만 같은 88만원 세대 내에서도, 대기업의 후계자에서 당장 오늘 먹고 살기도 힘든 20대까지 다양한 계급이 있다. 이러한 계급에 따른 차이는 없을까?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변수로 나이, 성, 거주지, 인종 등이 있는데, 나이가 가장 세밀한 변수입니다. 또한 최상위층부터 최하위층까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층 5%와 하위층 95%로 갈려있다고 봅니다. 그 5%들을 같이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을 만들 때부터 그들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대생은 어떨까. 의대생들도 끝이 없는 경쟁의 상황에 힘들어하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돈 잘 버는’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많고, 기본적으로 유산층의 자녀들이 대다수다. 의대생은 88만원 세대에 속하는가?
 “해당사항 없겠죠.”
 대답은 간결했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문화적 접근 보다는 경제적 접근을 하는 우석훈 씨의 입장에서, 어차피 대기업에 갈 사람이 아닌 의대생들은 논의에서 빠져있었다. “물론 의대생일 때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이 좀 있겠죠. 어차피 잘 곳 없고 등록금도 비싼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힘든 경쟁은 20대 전반의 특징이고, 의대에서는 경쟁에서 좀 뒤지더라도 성공해서 살아갈 확률이 훨씬 높지 않습니까? 집단적인 리스크가 가장 적은 집단으로 의대와 교대를 꼽아요.”

- 의사? 약사랑 싸우는 사람들?


 외부에서 본 의사의 모습은 어떨까? “의사 집단이 사회적 이슈에 개입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의사 집단이 의료에 관해 이익집단이 될 수도, 사회적 공공성을 주장하는 집단이 될 수도 있는데, 대개 후자의 모습으로 보는 사람은 없죠. 매스컴에서 왜곡된 모습을 비췄을 수도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거든요.”
 그는 연구의를 기피하는 행태 또한 지적했다. 연구의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의료가 발전하는데, 의사들은 개업과 민영화 등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 연구의에 대한 처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진해서 연구의를 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는 것도 문제다. “밖에서는 쟤들이 좀 부패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

 한국의 교육 제도는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 군대식 문화를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상부의 일에 비판하는 자는 사상이 의심되어 낙인이 찍혔고, 상부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살아 남아 자신도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고, 대부분의 집단에서 군대식 문화를 청산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집단은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선배 의사 밑으로 들어가 수련 받는 도제식 교육의 특징이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응급한 상황이 많다 보니 선배 의사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석훈 씨의 생각은 다르다. “도제식 교육의 면은 어디나 조금씩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나섰다고 꼭 찍히진 않거든요. 그리고 선배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선배가 후배를 억압하고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요.”
 경영학과를 보면 여러 과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든다. 경영학과에 남아있는 군대식 문화를 본 외부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촌스럽고 불합리한’ 것인지 말해주고, 다들 바꾸기 위해 노력 한다. “의대는 기본적으로 외부와 섞일 일이 적죠. 그래도 외국 유학으로 선진 문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텐데, 본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크게 바꾸려고 나서지도 않아요. 물론 그렇게 해도 이 집단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유지는 되고 있지만, 그 결과로 아직도 70년대 문화를 가진 화석 같은 집단이 되었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이죠.”



-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88만원 세대는 외부의 도움을 계속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모아졌고, 당사자 운동을 통해 조금씩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의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 의대생들 역시 외부의 도움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또한 모두들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의대 사회에서는 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누가 나서서 집회를 하는 등의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죠. 단순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떠들어야 되요. 어느 자리에서든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떠들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변화가 오는 거죠. 힘들겠지만, 그것은 자기가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개선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의대생들을 보면 부자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제가 뭘 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우석 사태 때 과학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처럼, 내부에서 논의가 되어야 변화가 효과적으로 올 수 있죠.”

▲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은 의사이며 시인인 엘리트로 나온다.

 우석훈 씨는 의사와 시인을 사회의 엘리트로 꼽으며, 엘리트들에게는 정책의 결정, 조직의 지도, 문화의 창조 등을 이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의대생, 성인이 되어라

 의대에 들어온 모든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다. 일부는 점수에 맞춰서, 혹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고 의대를 선택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행복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가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없어요.” 이미 의대에 들어온 의대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게 진실인걸요. 한번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다시 행복의 길로 오는 방법은 많은 것을 내려놓거나 자기가 희생하거나 그런 방법 밖에는 없거든요.”
 김예슬 씨는 “20대가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라 불행하다”고 했다. 사실 꿈이 없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비단 의대생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언제 성인이 되느냐,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순간이라고 봐요. 김예슬은 자퇴를 결심하며 성인이 된 거죠. 성인이 되지 않으면 1인분의 삶을 살 수 없고, 그 인생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죠.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돌아다보기, 다짐하기

 75호. 제게는 통산 6번째 신문입니다. 신문이 한 학기에 3번 발행되니, 제가 신문사에 들어온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셈입니다. 원로(?)기자분들에 비하면 아직 매우 어리고 매 호마다 어떤 큰일을 맡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1년이란 숫자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설렘은 ‘돌아다봄’으로 이어집니다. 신문사의, 신문사에 의한, 신문사를 위한 나의 1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가만히 떠올려보면 참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릅니다. 첫 기획회의나 제 자신이 쓴 첫 기사가 실린 신문, 몇몇 기자 분들과 같이 들었던 기사쓰기 강좌, 스터디 모임..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인터뷰입니다.
 저는 대한의사협회의 공보이사님과 첫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주제는 원격의료 사업과 관련된 의한 의협의 입장이었는데, 인터뷰 요청부터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름 정중한 인터뷰요청이 담긴 이메일을 의협에 보냈는데 좀처럼 답장이  오지 않더군요.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메일에 표시된 인터뷰 날짜가 메일을 받은 바로 다음날이더군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정말 정신없게 인터뷰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가지도 않던 인근 구내 도서관에 가서 대출증을 만드는가 하면, 필사적인 구글링으로 원격의료에 관련된 자료와 인터뷰이에 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암기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워크샵에서 나온 인터뷰 방법론 자료를 활용해서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주의할 점도 정리했었네요. 설상가상으로 인터뷰 당일 오전에는 동생의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는데, 저는 졸업식장에 가서도 인터뷰 자료를 읽고 있어야 했습니다. 인터뷰 시간과 아슬아슬하게 겹칠 것 같아 결국 동생에게 꽃만 안겨주고, 점심은 같이 먹지 못한 채 후닥닥 뛰쳐나와 의협건물로 향해야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동생한테 미안하네요. 인터뷰 시간에 늦진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택시에 몸을 실었는데 다행히 좀 빨리 도착했습니다. 의협 건물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거나, 딱딱하게 생긴 편은 아니었습니다. 안쪽은 일반 회사의 사무실 비스무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사무실에 고개를 비죽 내밀자, 사무직원들과 인터뷰이인 이사님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가구를 옮기고 계시더군요. 사무직원들이 식상한 내부구조를 바꾸자고 했는데 이사님이 적극찬성하시면서 새로운 인테리어(?)를 위해 작은 소도구나 책상 등을 손수 옮기고 계셨습니다. 공식석상에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시던 것과는 또 다른 친근한 모습도 있으시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편안해지기도 했네요. 이사가 끝난 뒤 이사님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과일음료수를 하나 가져다주시고,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만들어간 질문지의 순서와는 영 다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질문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한 질문에 다른 질문이 포함되는가 하면 잘못 알고 있는 개념도 간혹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사님은 제가 초짜 기자라는 걸 아셨는지, 질문내용 정리도 해주시고 좀 어려운 개념에 대해선 차근차근 보충설명을 덧붙이시면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치러진 인터뷰는 약 1시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리 짧지만은 않은, 하지만 실제로 느끼기에는 매우 짧았던 1시간 이었습니다.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다는 홀가분함을 안고 의협건물을 걸어 나왔지요. 하지만 계단을 다 내려선 순간, 무언가 아쉬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 낙후된 의사협회 건물이, 왜 그렇게 슬프게 보였을까요.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뼈대만 유지하고 있는 듯 한 의협의 건물. 마치 오늘날의 의료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기사에서 보았던 구절 - ‘현대사회에서 의료행위의 전반을 좌우하는 것은 의사나 환자가 아닌, 제약업계나 정부, 보험회사, 즉 자본이다’ - 이 날카롭게 스쳐지나 갔습니다. 의협의 건물은 저로 하여금 자본이 빠져나간 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힘 없는 의사들의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사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 ‘의료계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이 왠지 모르게 필사적으로 들렸던 것은 저만의 착각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 의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현안들에 대해 의료계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나 제약회사 혹은 시민단체의 함성에 푹 묻혔다가, 가끔 조그맣게 소리를 내면 석연찮은 눈총만 받고 말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옳든 그르든 간에, 소리 자체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목청을 키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과 입문을 반년 남짓 남겨놓은 지금, 나의 본과생활은 어떠할 것인가, 그 와중에 기자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상념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본과 4년간 의학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의학도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이지만 그 와중에 혹여나 장님이 되진 않을지, 목소리를 잃지는 않을지 걱정이 듭니다.
 지금의 저에게 있어 기자활동이란 ‘바깥’으로의  시선 통하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입니다. 본과생이 되어서도 예과 때보다 더 매진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놓아 버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머리가 찌뿌둥하고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이 든다 싶을 때는 신문을 보면서 목청을 가다듬어보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 봅니다. 1주년 기념으로요.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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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힘든 청춘에게의 무규칙(?) 카운슬링

 3년의 차이를 두고 출간된 두 책, ‘너 외롭구나’와 ‘88만원 세대’는 둘 다 20대를 향해 각박한 현실을 논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는다. 하지만 그 관점은 극명히 다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씨는 지금의 20대가 겪는 어려움을 시대, 사회, 경제적인 외부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구조적 원인과 사태 파악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반면, ‘너 외롭구나’의 저자인 김형태 씨는 20대의 시련에 대해 시련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 초점을 맞춰 개인의 사고와 태도 등을 바꿔 ‘격을 높이는’ 것을 해결책으로 말하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이후 위 두 책들을 읽은 독자들간의 논쟁도 분분했고 저자들 간의 대립도 있었다. 다음은 저자들이 서로에 대해, 서로의 책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며칠 전에 ‘KBS TV 책을 말하다’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이 출연했던 ‘88만원세대’라는 책 저자가 그 책 내용 중에 [너 외롭구나]를 비난한 내용이 있다고 들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기억조차 나지 않을 ‘출판 마케팅 기획물’에 지나지 않을 책들 중 하나이기에 나로서는 반박이나 분석의 가치조차 없는 책이다.”
- 너 외롭구나의 저자 김형태

 20대에게 “네가 노력을 안해서 취직을 못하는 것”이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청년백수들’에게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고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걸 읽은 20대들 상당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읍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통쾌한 지적이다,” “주옥같은 명문이다”라며 사방팔방 친구들에게 권한다. ‘희망고문’이 주는 고통이 급기야 ‘쾌락’으로 전도된 셈이다. 일종의 집단착란 증세이고, ‘세대 간 사도-마조히즘’이다. 이런 행태는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사회가 병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따름이다.”
- 88만원세대 책의 에필로그

 이 책의 논조는 한결같다. 김형태 씨는 소위 ‘이태백’에게 “사회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 개혁의 주인공이 되도록 준비하십시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을 기존의 어떤 회사나 시스템에서 찾지 말고 당신이 언젠가 실현할 수 있도록 집요하게 준비하고 실행하십시오. ‘시스템을 바꿔보자 하는 사람들,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중에 어떠한 관점이, 혹은 어떤 책이 진실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소위 경제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도, 또 대다수의 기성세대들도 의견을 달리한다. 우석훈 씨가 말하는 ‘집단적 리스크가 가장 적은, 자정 능력이 사라진, 엘리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대생이라는 집단에게 옳은 관점은 또 다를 수도 있다. 88만원 세대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그 책과 같이 공명을 울렸고, 또 ‘20대여, ○○하라’류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과 어조로 20대를 말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한중원 기자/울산
<han@e-mednews.com>

※ 김형태 : 홍익대 회화과 졸, 미술가, 황신혜밴드 리더, 작가, 칼럼니스트, 연극배우, 자칭 ‘무규칙이종카운슬러’ 자신의 블로그 ‘http://www.thegim.com’에서 실제로 상담한 사례들을 엮어 ‘너 외롭구나’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르면 이번 년도 여름 전에 이성, 친구, 직장과 사회생활 등 인간관계에 관한 내용을 담은 ‘너 외롭구나2’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의대생,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의대생 스스로가 생각하는 88만원 세대와 우리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우리 20대에 붙인 장본인인 우석훈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대생은 ‘88만원 세대’담론에 속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체 20대 중 5% 정도는 특수한 케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대생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석훈씨와의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예과 1학년부터 본과 3학년까지 본지 기자 6명이 모였다. 경제학은 잘 모르지만 의대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88만원 세대’의 정의를 내려보고, 의대생은 과연 88만원 세대인지 고민해보았다. 그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88만원 세대, 어떻게 정의할까

티라노 : 책 ‘88만원 세대’에서 말하는 88만원 세대는 무엇일까?
히컵 : 인건비로 88만원을 받는 사람들이 일단 우선적으로 포함 되지. 이 책은 세대 간의 경쟁이나 세대내 경쟁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결국 무한경쟁, 승자독식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지.
시대유감 : 그런 의미에 따르면 우리도 포함되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세대가 없었을까?
킥애스 :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세대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어.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은 이런 세대가 발생하더라도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 대비했으니까.
티라노 : 한국이 지금의 88만원 세대를 낳은 것은 ‘선진국들에 비해 경제성장은 빠른데 반해 민주주의 성장은 느렸기 때문’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
킥애스 : 맞아. 기득권에 근접하고 있는 386세대는 혁명세대라 단결력이 좋고 경제가 급성장할 때의 세대라 자연히 가진 것도 많지. 하지만 다음세대를 대비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결국 아래세대를 착취하는 결과를 낳았어.
모태솔로 : 세대 간의 착취가 있었기에 세대내 경쟁이 심화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히컵 : 세대 간 착취를 생각하면 20대는 모두 88만원 세대에 해당되겠네. 의대생도 물론 포함되고 말이야.
티라노 : 우리가 생각하기에 ‘현재 20대는 어떤가’를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주전부리 : 지금 20대는 악순환의 고리에 있어. 경제적으로 상황이 나빠지니까 취업준비로 양서를 읽을 시간은 없어지고 지적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매스미디어나 기업이 상업적인 마케팅으로 20대의 돈을 착취하기 쉬워지고 세대 간의 착취도 심해지는 것이지.
히컵 : 맞는 말이야 요즘 교육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교육이 아니라 취업위주 교육이니까. 우리학교만 하더라도 대학이라기보다는 국시학원 같다니까.
티라노 : 악순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4살 어린 내 동생만 봐도 악순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 나 초등학교 다닐 때는 놀았던 것 같은데 동생은 수학학원 다니고 숙제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거든.
킥애스 : 영어, 수학은 사람이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주진 않는데 이런 과목들만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시야가 매우 협소해지는 것 같아. 매스미디어는 옛날에 비해 과학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그것만 보다보면 TV가 원하는 인간이 되어 있을걸?
시대유감 :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사회의 자본주의 체제가 정립된 상황에서 성장한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만의 가치를 못 가진 세대’인 것 같아. 위에서 물려준 사고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지. 예전 세대와는 다르게 위로 올라가는 문은 좁은데 이 문으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야.
히컵 : 우리가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시대유감 : 그렇지, 김예슬 같은 사람은 많이 없고, 꿈이 죽었기 때문에 고시준비나 하고.
히컵 : 꿈이 죽었다기 보단 다른 것을 시도했을 때의 리스크가 크니까 두려워서 못 하겠어.
킥애스 : 망할까봐 두렵다 자체가 전세대의 가치관이 아닐까? 결과 중심의 가치관 말이야. 과정이 중요한 것인데.

의대생은 88만원세대인가

티라노 : 그럼 의대생들은 지금까지 말한 88만원 세대에 속할까? 혹시 자각하는 사람 있어?
모태솔로 : ‘88만원 세대’ 시리즈의 3번째 책 ‘조직의 재발견’에 따르면 상위 5%의 전문직은 88만원 세대에서 분리되어 있어. 거기에 따르면 우린 88만원 세대는 아니야.
주전부리 : 나중에 의사 면허 따면 먹고는 사니까 좁은 의미의 88만원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해.
히컵 : 무한 경쟁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맞는 말 같아. 의대생의 자살율이 높고 의대생이 술, 담배 많이 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으니까.
주전부리 : 학교에서는 다들 경쟁을 체감 해?
티라노 : 피부로 느끼진 못해.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 하면서 생각해 보면 못 느끼는 것 뿐이지 경쟁이 심한 것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 돼. 경쟁이 심하구나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거지. 요즘엔 의사도 영어가 필수라는 말이 있지? 거기서도 과도해진 경쟁을 느낄 수 있어.
티라노 : ○○의대의 경우에는 서로 족보도 안보여 준다고 그러더라. 4명중 1명꼴로 유급을 잡는데.
시대유감 : 난 우리가 확실한 88만원 세대라고 생각해. 의대 내에서 88만원 세대와 같은 경쟁이 축소판으로 일어나고 있고 사회로 나가면 경쟁에 참여하지. 우리는 단지 경쟁이 유예된 집단일 뿐이야. 또 세대 간의 착취라는 관점으로 봐도 그렇고.
주전부리 : 교수님들이 수업하시다가 너네가 의사 될 때는 면허번호가 10만 넘어가니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세대 간의 경쟁이 의사에게도 남 일은 아니야.
모태솔로 : 88만원을 벌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우리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을 가졌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경쟁이란?

히컵 : 그런데 요즘의 무한 경쟁은 조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
모태솔로 : 신자유주의 흐름에 휘말린 것이 무한 자유경쟁의 배경이 된 것 같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기득권을 잡고 있기도 하고 의대생도 이런 큰 관점에서 보면 자유롭지 못하지.
킥애스 : 하지만 기득권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해. 거기에도 경쟁이 있고, 위에 있는 사람은 그 위치를 고수하는 것에도 힘이 드니까.
티라노 : 경주마로 비유해보면 12년 동안 앞에서 달렸다는 이유로 지금 의대생은 조금 경쟁을 유예 받고 있는 것 같아. 트랙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야.
주전부리 : 경쟁하는 그 트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은데.
티라노 : 그 트랙에 뛰어드는 것은 먹고 살 길이 그것 외에는 없어서 아닐까? 제도적 측면에서 먹고는 살도록 보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모태솔로 :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타인이 나를 낙오자로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 솔직히 농사만 지어도 굶어죽진 않지.
주전부리 : 맞아, 남을 의식하는 건 한국이 특히 심해. 우리나라의 문화 중에 혼자 밥 먹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 그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 일본만 하더라도 그러지 않는다던데.
티라노 : 다들 자기 꿈대로 자아실현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경쟁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살고 있어.
주전부리 : 경쟁도 경쟁이지만 욕망이 획일화 되는 것이 확실히 문제인 것 같아.
시대유감 : 교육이 문제인 것 같아. 획일적인 사고만 하게하고 창의성을 마비시키는.
모태솔로 : 교육, 학벌이 문제인데 사회 전반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니까 따로 떼서 생각할 수는 없지.
히컵 : 왜 바꾸려는 노력을 활발히 하지 않는 것일까?
시대유감 : 바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해도 우리학교가 원래 평준화 고등학교가 아니었는데 평준화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괜히 싫었거든.
킥애스 : 가진 사람이 바꿔야 되는 것인데. 기득권 중 몇이 그 생각을 하더라도 기득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모태솔로 : 진입장벽을 쌓길 원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후에 그 사다리를 차는 거지. 사다리 차기가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심해. 잘못된 걸 알아도 그 시스템을 거부하기 보다는 내가 저안에 들어가리라 하는 분위기지.

‘88만원 세대’의 의대생, 그 미래...

티라노 : 우리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태솔로 : 20대가 조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제도상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정치적인 힘이 필요해. 서울에 대학생이 몇인데! 5만 명만 모여도 엄청나지.
티라노 : 하지만 다들 너무 스펙 쌓기에 열중하다보니 서로 경쟁자가 되고 통합이 힘들어. 그리고 20대를 위한 정치인도 없고. 오히려 10대나 그들의 부모님을 겨냥한 정치인이 많지.
모태솔로 : 그것 역시 악순환이야. 20대는 정치 상황이 아니다 싶으니까 투표를 안하고 그로 인해 더 정치적으로 소수자 계층이 되는 것이지. 투표만 잘하면 되는데.
티라노 : 학생회의 문제도 있어. 한총련도 요즘엔 이슈가 되지 못하고. 요즘은 대학생 목소리를 대변하던 단체가 없어진 것 같아.
주전부리 : 타자의 시선이 운동권을 나쁘게 느끼는 것이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아.
히컵 : 대학 4년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아서 뭉치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닐까?
킥애스 : 몇 명의 진짜 혁명에 목마른 사람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티라노 : 그렇다면 의대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모태솔로 : 공부할 때 족보에만 목매달지 말기! 그냥 나중에 의사가 되서 필요한 정보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
시대유감 : 혼자만 편하게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돼.
모태솔로 : 맞아, 자기 주변에서부터 바꿔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시대유감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학교에서 토론동아리를 만드는 것은 어때?
티라노 :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술만 먹는 문화도 바꾸고 말이야.
시대유감 : 지금 문화는 너무 소비적인 것 같아. 놀이문화를 바꿔야해.
히컵 : 맞는 말이야. 내 자식도 미래에 이런 문제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직하다. 우리가 나서서 바꿔야지. 우리 뒷세대도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이야기니까.

■ 참가자_ 이현도 수습기자/연세, 노해준 기자/가톨릭, 최성욱 기자/울산, 정세용 기자/연세, 이예나 기자/순천향, 김민재 기자/순천향
■ 정리_ 이현도 수습기자/연세 <loverboy@e-mednews.com>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삼성전자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로 소니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전자업계에 등극했다. 반도체 신화로 대변되는 삼성은 우리 경제의 상징이다. 매년 대한민국의 구직자들은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꼽는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가들이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을 문제 삼으며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엔 글로벌 콤팩트 사무총장은 이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신뢰를 잃음과 동시에 안정적인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선 3월에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삼성 유럽본사 건물에 모여 직업병 유발물질을 폐기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 안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삼성 반도체, 죽음의 공장

 박지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호흡곤란,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연 씨가 그렇게 큰 병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삼성에 입사해서 효도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던 그녀는, 결국 지난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겨우 스물 셋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사람 중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사람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현재까지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 ‘반올림’이 확인한 백혈병 의심 환자는 30명이다. 기타 질환을 합하면 47명, 그 중 13명이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이 중 단 한 명의 산업재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역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황유미 씨 가족들은 삼성에 산업재해 처리를 부탁했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 회사에서는 대신에 치료비를 대줄테니 사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사직서를 썼지만,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듬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불공정한 역학조사와 산재 신청 불승인

 황유미 씨 사건을 계기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발족되었다. 이들과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부터 두 차례 역학조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는 피해 당사자와 추천 전문가의 참여가 제한되었고, 주로 회사 측이 제공한 자료가 이용되었다. 결국 공단은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회사 측의 영업 비밀을 보장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측은 이 역학조사 결과를 내세우며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개인 질병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황유미 씨 유족 등 반도체 노동자 7명이 2009년에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재 신청도 이 역학조사를 근거로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새로운 증거들, 그리고 행정 소송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9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역학 조사가 나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또 최근 국내 모 일간지는 삼성반도체 내부용 환경수첩을 입수해, 회사 쪽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트리클로로에틸린(TCE)을 비롯한 6가지 발암성 물질과 40여종의 자극성 위험물질이 사용되어 온 사실을 보도하였다. 삼성 측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유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어 작업자에게 노출되지 않는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전직 엔지니어들은 노동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인체에 해로운 화학가스 누출사고가 빈번했고, 생산량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일한 적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지난 1월,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숨진 노동자 3명의 유족과 투병 중인 노동자 3명은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산업전문의는 “가족 병력이 없고 건강하던 젊은이들이 암에 걸렸는데 그가 일하던 회사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면 실제 노출된 양과 관계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경제는 발전하고, 노동자는 죽어간다

 지난달 24일,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이건희 회장의 사면 이유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여 국익을 증진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서민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 속에서도 이들은 경제가 발전하면 노동자의 삶도 보장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이 회장의 복귀 후 첫 지시는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반도체 부문에 총 19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문제나 예방에 대한 투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노동자는 우리 자신이고, 가족이다. 의료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마찬가지로 자본 앞에 작은 노동자의 처지에 놓이게 될 우리 의대생들에게도 이것이 남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우리 언론이 이번 사건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환경·사회단체들은 이미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알리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정애정 씨는 “이제 우리 국민들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문제에 목소리를 함께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진한 수습기자/대구가톨릭
<redpill@e-mednews.com>

의료의 질 보장 VS 개원의 목 조르기

10여년 째 진통을 겪는 차등수가제, 보건복지부 개정안에 개원가 ‘시큰둥’

 ‘성실해’씨는 힘든 의대 생활과 수련의 생활,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작은 의원을 개업했다. 환자를 위한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진료에 임하자 병원에 대한 소문이 인근 동네에 까지 퍼져 성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싶단 환자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거기에 독감까지 유행하면서 첫 달 개업에 꽤 많은 환자를 본 성실해씨는 월 말에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심사된 금액을 받았다. 그러나 생각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보곤 당황한 ‘성실해’씨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공단에 물었다. 공단에선 ‘75명을 넘어서 환자를 보면 본 환자의 수에 따라 수가가 달라집니다’ 라고 대답했다. ‘성실해’씨는 말한다. “환자들이 절 보고 싶어서 오는데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을 깎다니요.”
 ‘성실해’씨를 당황하게 했던 차등수가제란 제도는 의사ㆍ약사 1인당 적정 진료건수나 진찰횟수 및 조제건수 혹은 처방전 매수를 산출하여 이를 초과하는 경우 요양급여비용, 진찰료, 혹은 조제료 등을 차등하여 지급하는 제도이다. 현행 법률의 경우 75명 이하는 100% 인정, 75명부터 100명까지는 본래 금액의 90%를, 150명까지는 75%를, 그 이상일 경우 50%를 인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2001년부터 시행된 의약분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약분업을 시작하면서 각 의원과 약국 당 환자수와 조제건수가 증가하였는데, 진찰료와 조제료의 경우 의사 및 약사 1인당 진료환자 수 및 조제건수의 제한 없이 같은 수가를 적용한다. 그 결과 한 명의 의사 혹은 약사가 과도하게 많은 환자를 볼 수가 있어 진료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 되었다. 그러므로 적정한 급여의 지급을 통해 적절한 진료가 행해지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적절한 진료를 통하여 서비스의 질과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5분 진료’ 형태를 고치고 선진국과 같은 진료의 질을 이루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둘째, 적절한 진료를 통한 적정한 급여의 제공으로 건강 보험 재정의 절감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차등 수가제의 시행 이후,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 보험 적자를 메꾸기 위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의사들의 목을 조르는 행위라며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들이 지적하는 차등수가제의 문제점으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첫째, 과에 따라 진단하는 질환의 차이나, 각 질환이 가진 특성을 무시한 제도라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감기의 경우, 건수 당 진료비가 낮은 데에다 환자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이 드는 질환이 아니다. 그러면서 일차 진료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 같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편이 의료의 질이나 진료의 효율성 면에서 봤을 때 더 이득이다. 이런 상황에 무슨 관점에서 75명이라는 숫자가 진료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많은 의사들이 묻는다.
 또한 특정 질환의 경우 계절적이나 특정 기간에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환절기와 한 여름에 내원하는 감기 환자의 수가 차이가 나는 데 이러한 특성을 다 무시하고 항상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둘째, 과연 어떠한 기준으로 진료의 질을 평가 할 수 있는가 이다. 앞에서 언급한 감기 같은 경우 의사가 짧은 시간에 환자를 본다고 해서, 진료의 질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진료의 질이나 환자의 만족도는 시간과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인 기준이다. 5분간의 정성된 진료가 30분간의 지루한 진료보다 질이 좋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셋째, 환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제도라는 의견이다. 병원이 있으면 그 중에 선호도가 좋아서 환자가 많이 몰리는 병원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환자들은 어떤 병원이 75명의 환자를 봤는지 알아보지 않는다. 대신 잘 낫는 의원, 친절한 의원을 찾아간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아프다며 자기를 찾아온 환자를 급여가 깎인다고 하여 되돌려 보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의사들은 선호도가 높은 병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호소한다. 또한 돈을 적게 받으니 76번째 환자는 75번째 환자보다 적은 노력을 들여서 진료를 하거나, 75번째 환자를 5분간 봤으니 151번째 환자는 2분 30초 동안 보는 식으로 환자가 받는 진료의 질을 정할 수도 없다. 
 넷째, 1차 의료에서의 진료의 질이 하락된 점이다. 실제로 재정적인 면에서 많은 타격을 보자 경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비급여 부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정작 국민들에게 필요한 1차 진료에 소홀할 수 있어 진료의 질을 보장할 수 없고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의료체계 전달 시스템의 근본이 무너진다는 지적이다. 2010년 1월부터 4월까지 청구현황을 전년도와 비교 시 의원급은 2조 1914억원에서 2조 3259억원으로 6.13% 증가 했으나, 종합병원의 경우 2조 9082억원에서 3조 3589억원으로 15.50%가 증가했다. 
 다섯째, 종합병원이 삭감 대상에서 제외된 점이다. 같은 수의 환자를 보면서 의원급 기관에만 삭감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차등수가제의 시행으로 보험이 적용 되는 질환을 주로 다루는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 등이 큰 타격을 입었다. 개원의 들은 ‘한명이 환자를 많이 보느니, 의사를 더 고용해서 75명 이하로 환자수를 나누는 게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더 남는다’며, ‘많이 볼수록 적자가 나는데 이러한 저수가에서 환자를 많이 보지 않으면 어떻게 병원 경영을 하느냐’며 하소연 한다.
 이에 따라 많은 의사들은 보건복지부에 75명인 기준을 90명으로 완화할 것, 6시 이후 야간 진료에 대해선 수가를 100% 인정해 줄 것 등을 건의해 왔다. 많은 협의를 거쳐 지난 5월 10일,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75명 기준은 그대로 적용하되, 올 7월부터 야간진료 시 차등수가 적용을 제외하기로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야간까지 영업을 하는 의원과 약국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과 1차 의료기관의 경영 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반쪽자리 개정안이라며 환자수와 삭감율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가는 올해에도 차등수가제는 이렇게 두 집단 간에 해결되지 않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많은 개업의들은 차등수가제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원가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제도이며 반드시 개선되어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최연주 기자/충남
<gooddaytowin@e-mednews.com>


 

의협, 리베이트 쌍벌죄 찬성으로 돌아서

 오는 11월 28일 이후부터 리베이트 쌍벌죄 법안이 시행된다. 리베이트 쌍벌죄란 의약품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관계자 모두를 처벌하는 법안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최대 1년 이내에서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지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전과는 달리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의사 등 의료인이 행정처분 및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법안이다.

리베이트 쌍벌죄, 도입배경은?

 리베이트와 관련된 문제는 지속적으로 거론되어온 사안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가시화 되었다. 이 업무보고서는 의료·제약분야에 대해 리베이트와 관련된 불법적인 요소를 근절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리베이트 등과 관련된 불법적인 요소를 근절하겠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제약업계가 자사 의약품을 써주는 대가로 의료계에 제공하는 현금, 의료기기 지원, 학술비 지원, 해외연수, 랜딩비 등 다양한 형태의 리베이트와 대형병원의 기부금 징수행위 등의 금품수수를 근절하도록 도모하기 위해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올 4월 28일 국회의 본회의에서 의료법과 약사법 의료기기법 등 3개 리베이트 쌍벌죄 도입 법안을 상정했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의료계의 반응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경만호 회장은 쌍벌죄 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 이 법안은 의료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 크나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 이라며 “우리의 뭉개진 자존심 회복을 위해 외쳐야 할 때”라고 격렬히 반박했다. 일부 의사들은 쌍벌죄 입법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국내 제약회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제약회사 직원들의 진료실 출입을 금지하는 결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4일 의협은 3일만에 전격적으로 입장을 바꾸어 쌍벌죄 법안을 수용하기로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 방침을 밝힐 당시부터 이미 쌍벌죄가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등의 제약업계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의협 수용적 입장으로 돌아서

 지난 2일 갑작스럽게 리베이트 쌍벌죄에 대한 수용적 입장을 밝힌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불법 리베이트 척결이 사회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요구이기 때문에 겸허히 이를 수용할 것” 이며 나아가 “불법 리베이트의 척결에 우리 10만 의사들이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 “살인적인 저수가와 혹독한 규제로 근근이 유지해오던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로서는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임시방편일 뿐 건강보험재정의 파탄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라며 의약분업의 재평가와 약가 인하를 통한 건강보험재정안정화방안마련, 그리고 정당한 수가 책정을 통한 진료 보장을 요구안으로 내세웠다.

앞으로의 기대?

 의협의 쌍벌죄 수용적 입장과 관련되어 ‘코리아 헬스로그’에서 전국의 913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중 68.1%에 해당하는 수가 리베이트 쌍벌죄로 인해 리베이트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 응답했으며 ‘투쟁 수위’를 묻는 질문에는 67.4%가 명분이 약하므로 과격한 투쟁은 어렵다고 응답했다.
 일반화 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의료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와 리베이트 감소에 대한 기대가 제기되는 만큼 리베이트 쌍벌죄를 통해 의약업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나아가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는 것으로 보인다.

박준하 기자/가톨릭
<junha@e-mednews.com>

보건복지부, 생명윤리법 전부개정안 입법예고

 지난 달 10일, 보건복지부는 생명윤리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로써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에서 기관윤리위원회의 윤리적 승인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며, 단성생식을 이용한 연구의 기준도 법적으로 명시되어 진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우선 병원이나 연구소등 생명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기관에서 연구의 윤리적 심사를 담당하는 기관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의 역할이 대폭 강화되었다. IRB는 연구의 계획부터 종결까지 모든 과정의 윤리적 타당성을 검토, 감독하는 기관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피험자의 권리, 안전,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기관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한 상설위원회를 뜻하는데, 그동안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실제로 지난 2005~2007년의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설치는 되어 있으나 운영되지 않은 IRB가 전국적으로 38.3%에 이르고, 2009년 기준 전국의 IRB위원 1500명 중 전문교육을 이수한 위원은 절반이 채 안 되는 619명뿐 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이번 개정안에는 IRB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및 교육기회 제공을 의무화하고, IRB 평가의 질적 향상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증을 받는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IRB의 기능을 연구계획서 심의 이외에 연구의 진행 과정에 대한 조사·감독 의무, 연구자 교육실시 및 지원 등으로 확대했다.
 또한 단성생식-수정과정 없이 난자만을 가지고 세포 분열시킨 세포군-을 이용한 연구의 허용도 법적근거가 명시되었다. 지난 2009년 차병원의 단생생식배아연구 허용요청은 관련된 법적근거의 미비로 반려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에는 이에 관한 규정을 명시하여 단성생식을 이용한 연구도 체세포복제배아연구처럼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는 IRB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연구자가 피험자에게 연구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후에 연구에 대한 동의를 받을 것을 명시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피험자의 안전은 보장받도록 하였다.
 더불어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여 다양한 생명윤리이슈 전반에 관한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정책을 이끌어 내도록 했다. 특히 지난 황우석 사건 때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차원에서 현장조사 및 참고인 진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부분을 반영하여 위원회가 관련 당사자의 출석 및 의견진술, 자료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박정원 수습기자/전남
<parkjw88@e-mednews.com>

WHO, 로타바이러스 지역표준실험실로 대한민국 선택

 지난 4월 29일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이종구)는 1999년부터 수행하던 장염 유발 바이러스에 대한 꾸준한 실험실 감시사업의 결과,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로타바이러스 지역표준실험실로 질병관리본부 내 간염·폴리오바이러스과가 지정되었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입과 이에 대한 유전자형 분석 및 진단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서태평양지역 세계보건기구(WPRO)는 호주와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를 지역표준실험실로 지정·통보하였다고 한다.
 2009년 2월 일본뇌염 지역표준실험실로 지정되었던 바 있는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지정이 질병관리본부의 장염 유발 바이러스에 대한 축적된 실험실진단 능력과 로타바이러스 분자생물학적 분석능력 및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주었으며 국가적 위상 제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자체 평가하였다.
 지역표준실험실로서 질병관리본부는 서태평양지역 국가 표준실험실에 대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지원뿐만 아니라 진단시약개발 및 보급, 진단법 정도관리 지원, 네트워크 실험실간 협력연구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향후, 질병관리본부는 몽골,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WPRO소속 국가들로부터 의뢰되는 검체의 유전자형 분석을 통해서 서태평양지역에서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유행양상을 파악하고 관련국에 대한 기술적인 자문 및 교육 등의 업무도 수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강수진 수습기자/전남
<sujin@e-mednews.com>

※ 로타바이러스란, 급성위장관염을 유발하는 주요 병원체로 전체 감염성 설사유발의 약 40%를 차지한다.

사람을 보관하는 ‘수상한 은행’

 2010년 1월 15일, 인체자원단위은행인 B대학병원에서 유방암치료를 받고 있는 A씨는 자신의 조직이 검체로써 보존 및 연구된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을 한다. 인체자원은행 소속 상담자는 그녀에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든 연구는 기관 내 생명윤리심의위원의 심의를 거친 후 이뤄지며,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시행규칙, 서식20호. 유전자검사동의서)따라 연구용으로 제공되지 않은 검체에 한해서 언제라도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2010년 2월 11일, A씨의 조직을 건네받은 B대학병원 인체자원단위은행 연구원은 fresh frozen tissue, paraffin embedded tissue를 제작하여 냉동저장실에 넣은 후,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KBN)에 접속하여 수집한 샘플의 정보를 입력한다.

 2010년 6월 07일, 서울에 사는 암연구원 C씨는 유방암 환자의 조직이 필요하다. 그는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에서 원하는 인체자원을 검색한 결과, 이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전라소재 B대학병원 인체자원단위은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 자원분양신청서와 연구계획서 등을 사이트에 업로드하여 단위은행에 분양을 신청한다. 수일 후, 승인을 통보 받고 필요하던 자원을 분양 받을 수 있게 된 C씨는 계획한 실험을 수행하러 연구실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한국인체자원은행사업(Korea Biobank Project)은 위와 같은 일을 가능케 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체자원 50만명분을 확보하고 보건의료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8년 4월 ‘한국인체자원은행사업(Korea Biobank Project)’를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는 국가단위 인체자원 총괄관리와 인체자원 활용 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인체자원중앙은행’을 설치하고, 질환군 인체자원을 수집 및 보관을 위해 지방대학교병원 및 수도권 소재 병원 13개소(10년 현재)를 ‘인체자원단위은행’으로 지정하였다.
 ‘인체자원중앙은행’은 사업의 관리뿐만 아니라 코호트(같은지역거주민, 쌍둥이 등)기반 건강인 인체자원과 병원성미생물을 확보 및 분양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인체자원단위은행’은 병원별로 특성화 질환군 인체자원 및 병원성미생물을 수집·보관 및 분양하고 수집한 자원을 기반으로 연구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수집된 코호트(정상인)과 환자(질환군)의 인체검체는 각 은행의 자원저장실에 보관되며 정기적인 안정성검사를 통해 관리되고, 검체정보는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에 등록·저장된다.
 인체자원은 무상으로 분양되며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조회 및 신청가능하다. 분양은 연구자가 관련서류를 작성하여 업로드하면, 해당 인체자원은행에 서류가 전달되고 자원활용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분양여부가 결정된다. 자원을 분양받은 연구자는 연구종료 1년 이내에 분양자원을 활용한 연구결과물을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를 통해 제출하면 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09년 12월까지 일반인 인체자원을 18만3천여명분 수집·11만6천건을 분양하였고, 지정된 단위은행을 통해 8만4천여명의 질환군 인체자원을 수집·2만7천여건을 분양하는 실적을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현재 충북 청원군 오송 보건의료행정타운에 인체자원중앙은행 센터(2011년 말 완공 예정)를 건립 중에 있으며, 단위은행 확대 및 특화은행 신설과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인체자원 종합관리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강수진 수습기자/전남
<sujin@e-mednews.com>

※ 인체자원이란? 인간에서 채취한 조직, 세포, 체액, DNA 등의 인체검체뿐만 아니라 공여자의 역학·임상정보를 담은 검체정보를 의미한다. 수집된 코호트(정상인)과 환자(질환군)의 인체검체는 각 은행의 자원저장실에 보관되며 정기적인 안정성검사를 통해 관리되고, 검체정보는 한국인체자원네트워크에 등록·저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