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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79호(2011.02.28)/오피니언 2011. 3. 11. 13:29 Posted by mednews

환영이라는 이름의 폭력

최근 서울의 Y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과음한 대학생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건 복지부 발표 에 따르면 매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에서 사망한 대학생이 2007년 3명, 2008명 3명, 2009명 2명, 2010년 2명이라고 한다. 과음으로 인한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신입생 군기를 잡기위한 선배들의 가혹행위가 심상치 않게 언론을 통해 노출되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의과대학도 이러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폐쇄적인 의대에서 새 식구를 맞이하는 3월은 큰 의미를 가진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각종 환영회까지 크고 작은 신입생맞이 행사들이 이어진다. 뿐만 아니다. 3월 신입생을 위해 선배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밥은 물론이요, 술까지 사주니 혹자는 3월을 신입생의  천국이라 일컬었다.
하지만 3월을 천국으로 부르기에는 신입생에게 닥친 현실이 녹록치 않다. 현실은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된다. 신입생들을 진흙탕에서 속칭 ‘굴리는’ 학교도 있으며, 선배들의 즐거움을 위해 신입생들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주문하기도 한다. 학기가 시작하면 각종 환영회란 명목으로 주량을 넘는 술을 강요받으며 술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을 통과의례로 삼는 학교도 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몇몇 의대에 국한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의대에서 신입생 환영 행사가 새 식구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자리이기 보다는 집단에 먼저 뿌리를 내린 선배들이 ‘텃세’를 부리는 자리로 변질된 것이 현실이다. 환영회에서는 신입생 개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집단의 규율을 학습시키는 것이 앞선다. 선후배의 즐거운 만남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할 술이 때로는 화학적 고문도구로써 사용되기도 한다. 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선배는 후배 위에 군림하는 권력관계를 확실히 확인 받는다,

신입생만이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선배들도 동일한 과정을 통해 복종과 억압의 기제를 내면화 했다. 마음속에 자신을 규제하는 제3의 눈이 자리 잡아 비판적 이성의 촉도 흐려진다. 혹독한 신고식을 통해 신입생들의 애교심과 소속감이 확실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발적 참여가 아닌 억압에 기댄 소속감이 얼마나 유효할지 의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학생들의 이성은 전통이라는 변명 속에서 마비되어왔고 비판적 이성이 실종한 대학가에는 여전히 작년의 피해자가 올해의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최근 서울의 Y 의과대학에서는 교수님들이 신입생 67명의 발을 씻어주며 약속과 다짐의 시간을 갖는 의미 있는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가졌다. 새로 도입한 ‘세족식’은 권위주위를 주입하는 통과의례를 넘어서 신입생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3월의 문화를 바꾸는 움직임인 것이다.  ‘통과의례’의 그리스어 어원은 ‘인간이라는 씨앗을 성숙시켜 완성시켜 줄 어떤 상태의 시작’을 의미한다. 통과의례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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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포스의 점근선

전공수업 중에 ‘합목적적’이라는 단어를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주로 어떤 병태의 생리를 설명하거나 진화적 결과물을 이야기할 때 들리던 단어입니다. 합목적성이란 사물이나 현상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목적을 동인으로 갖는 나름의 메커니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라는 설명방식을 일컫습니다.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많은 걸 쉽게 설명해 주는 이 사고방식은 꽤나 편리하게 쓰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십대의 초반을 거치는 동안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 왔습니다. 여기에는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던 부분을 합목적적인 설명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포함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춘기 땐 이해가 되지 않던 아빠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부조리하다고 느끼던 일에도 나름의 배경이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합목적적인 이해방식을 터득하면서 덤으로 얻은 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입니다. 세상을 평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당장 슬프거나 괴로울 일이 별로 없어져 좋았습니다. 최근에는 뉴스에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에 수백만 생명이 생매장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정도의 느낌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과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깝다’고 느꼈을 일에서.

모든 걸 쿨하게 설명해버리는 합목적성이 제법 몸에 밴 건지 요즘은 자기합리화도 꽤 능수능란해졌습니다. 내게도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핑계 한 마디면 마음이 불편할 구석이 없어집니다. 작은 진실도 각자에게 가지는 무게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너그러이 적용해 준 결과일 테지요.

내재적으로 일관된 가치기준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은 거꾸로 돌고 돌아 나의 안위만을 지지해 주는 안락의자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나의 불편함을 부정합니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쏜살같고 경험은 믿을 수 없으며 판단은 어렵다”는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말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첫 신문을 만든 오늘 밤에는 잠이 잘 안 올 것 같습니다.
편집장 최성욱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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