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의대생, 평생 불행합니다.”
막연한 의대 공부 보단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을 만나다
“한국 경제에 3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제 2차 석유파동의 영향을 받아 1980년에 한번, IMF가 터졌던 1997년에 한번, 그리고 2007년 미국발 경제위기였죠.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아주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한 번 더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원래 천천히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했을 것을, 토건 경제와 낮은 이자율 등으로 급히 대처했기 때문이죠. 6월 선거에 돈이 많이 들어간 올해 말, 혹은 연초와 함께 돈을 많이 쓰는 내년 초쯤에 경제 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봅니다.
2008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5년, 2013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5년을 지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2008년에 20대가 되었다면, 10년을 이 힘든 경제 속에서 살아야죠. 진작 이민을 갔다면 좋았겠죠. 혹시 이때 이민을 가지 못한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가는 게 좋습니다. 곧 있으면 환율도 엄청나게 올라 비행기 값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반 정도 농담이 섞인 말이긴 했지만, ‘공포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20대를 향해 무서운 말들을 했다. 그는 이 불행한 20대에게 이름도 지어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세간의 유행어 ‘88만원 세대’. 20대가 받는 평균 임금 88만원이라는 수치를 쓴 것이다.
지난 3월 김예슬 씨의 고려대 자퇴 선언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세상을 향한 반격 시작’이라 할 정도로, 20대 문제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무언가 큰 변화가 올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하지만 의대생은 이 흐름에서 빠져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내일 모레 있을 시험이며,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의대생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에게 직접 들어보자.
Part 1. 88만원 세대’, 출간 3년 후.
- 뼛속까지 고독하고 절망적인 세대
경쟁하라, 뒤처진 자는 버려진다. 불신하라,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불안하라, 네가 자는 이 순간도 적들은 발전하고 있다.
이 세 마디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딜까. 전쟁터가 떠오르지만, 학교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88만원 세대는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와도 마주하게 되었다. 비교적 쉽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이전 세대들과 달리,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그 마저도 윗 세대가 다 차지한 이 사회에서, 일자리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 세대는 소위 ‘인 서울 명문대’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준비를 해야 하며, 대학에 가서도 학점을 쌓으며 틈틈이 ‘스펙 관리’를 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서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다른 세대들의 관심은 전무 하다는 것이다.
“정당들은 20대에 관심이 없습니다. 20대를 향해 좋은 정책을 펴든 나쁜 정책을 펴든 어차피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거든요. 혹 선거운동에 나서는 20대가 있어도, 그를 젊은 세대의 주체보다는 ‘일당 7만원 알바생’으로 볼 뿐입니다. 기껏해야 선거 운동 차량에서 율동을 하고 손을 흔드는 일이나 하죠.
대학도 마찬가집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커녕, 최소한 자신들의 고객이라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저 학생들을 봉 취급 하고 있어요.
투표라도 좀 해야 할 텐데, 투표를 권유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투표하라는 제 말이 담긴 기사를 읽을 정도의 20대라면, 투표하라고 안 해도 투표합니다. 하지만 접근할 방법이 없는 20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연아나 소녀시대가 투표하라면 할까요.”
- 꿈틀거리는 지렁이, 20대의 당사자 운동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했는가. 청년들이 노조를 만들어 노동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논의 그룹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대학 진학이 끝이 아니라는 고민을 많이 하며, 김예슬을 필두로 자퇴를 선언하는 대학생도 나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흐름들이, 그것도 문제의 대상인 20대 당사자들이,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1~2년 내에 한 번 크게 터질 것이라 봐요.” 어떻게 할지는 모색 중이지만 문제가 있다는 데에 대한 공감대는 널리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우석훈 씨의 평가였다. 언젠가는 20대가 길거리에 나와 혁명이 시작될 텐데, 특히 김예슬의 활동을 가장 전위적인 것으로 평가하며 길거리로 나오기 전 단계로 꼽았다.
“물론 혼자서 외칠 수는 있어도 변화를 오게 할 수는 없겠죠. 언젠가 다 같이 나서야 되고, 다 같이 한다는 동의만 이끌어 낸다면, 대학 자퇴나 F학점 등의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도 많아요. 누가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학생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일으킨 68혁명은 불씨가 된 7명이 잡혔을 뿐 누가 주도한 게 아니었죠. 하지만 그 세대는 역사적인 68혁명을 이루었고, 평생을 ‘우리 세대 건들면 알지?’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20대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어차피 대기업이나 정부기관도 창의성 있는 사람을 원하고, 창의성은 학점은 물론 스펙에서도 드러나지 않음을 압니다. 모든 게 만점이고 화려한 스펙이 있는 완벽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고, 시험 면접관이 직접 얘기해요. 열심히 학점과 스펙을 관리하는 20대, 그러면 본인만 괴롭고 힘듭니다.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찾아 사세요.”
Part 2. 의사와 의대생, 88만원 세대의 속에서
- 88만원 세대의 아웃사이더들
‘88만원 세대’는 사회 구성원을 세대로 나누는 담론으로, 현재 한국의 세대를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나눈다. 하지만 같은 88만원 세대 내에서도, 대기업의 후계자에서 당장 오늘 먹고 살기도 힘든 20대까지 다양한 계급이 있다. 이러한 계급에 따른 차이는 없을까?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변수로 나이, 성, 거주지, 인종 등이 있는데, 나이가 가장 세밀한 변수입니다. 또한 최상위층부터 최하위층까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층 5%와 하위층 95%로 갈려있다고 봅니다. 그 5%들을 같이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을 만들 때부터 그들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대생은 어떨까. 의대생들도 끝이 없는 경쟁의 상황에 힘들어하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돈 잘 버는’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많고, 기본적으로 유산층의 자녀들이 대다수다. 의대생은 88만원 세대에 속하는가?
“해당사항 없겠죠.”
대답은 간결했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문화적 접근 보다는 경제적 접근을 하는 우석훈 씨의 입장에서, 어차피 대기업에 갈 사람이 아닌 의대생들은 논의에서 빠져있었다. “물론 의대생일 때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이 좀 있겠죠. 어차피 잘 곳 없고 등록금도 비싼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힘든 경쟁은 20대 전반의 특징이고, 의대에서는 경쟁에서 좀 뒤지더라도 성공해서 살아갈 확률이 훨씬 높지 않습니까? 집단적인 리스크가 가장 적은 집단으로 의대와 교대를 꼽아요.”
- 의사? 약사랑 싸우는 사람들?
외부에서 본 의사의 모습은 어떨까? “의사 집단이 사회적 이슈에 개입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의사 집단이 의료에 관해 이익집단이 될 수도, 사회적 공공성을 주장하는 집단이 될 수도 있는데, 대개 후자의 모습으로 보는 사람은 없죠. 매스컴에서 왜곡된 모습을 비췄을 수도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거든요.”
그는 연구의를 기피하는 행태 또한 지적했다. 연구의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의료가 발전하는데, 의사들은 개업과 민영화 등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 연구의에 대한 처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진해서 연구의를 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는 것도 문제다. “밖에서는 쟤들이 좀 부패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
한국의 교육 제도는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 군대식 문화를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상부의 일에 비판하는 자는 사상이 의심되어 낙인이 찍혔고, 상부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살아 남아 자신도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고, 대부분의 집단에서 군대식 문화를 청산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집단은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선배 의사 밑으로 들어가 수련 받는 도제식 교육의 특징이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응급한 상황이 많다 보니 선배 의사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석훈 씨의 생각은 다르다. “도제식 교육의 면은 어디나 조금씩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나섰다고 꼭 찍히진 않거든요. 그리고 선배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선배가 후배를 억압하고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요.”
경영학과를 보면 여러 과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든다. 경영학과에 남아있는 군대식 문화를 본 외부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촌스럽고 불합리한’ 것인지 말해주고, 다들 바꾸기 위해 노력 한다. “의대는 기본적으로 외부와 섞일 일이 적죠. 그래도 외국 유학으로 선진 문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텐데, 본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크게 바꾸려고 나서지도 않아요. 물론 그렇게 해도 이 집단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유지는 되고 있지만, 그 결과로 아직도 70년대 문화를 가진 화석 같은 집단이 되었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이죠.”
-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88만원 세대는 외부의 도움을 계속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모아졌고, 당사자 운동을 통해 조금씩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의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 의대생들 역시 외부의 도움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또한 모두들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의대 사회에서는 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누가 나서서 집회를 하는 등의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죠. 단순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떠들어야 되요. 어느 자리에서든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떠들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변화가 오는 거죠. 힘들겠지만, 그것은 자기가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개선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의대생들을 보면 부자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제가 뭘 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우석 사태 때 과학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처럼, 내부에서 논의가 되어야 변화가 효과적으로 올 수 있죠.”
우석훈 씨는 의사와 시인을 사회의 엘리트로 꼽으며, 엘리트들에게는 정책의 결정, 조직의 지도, 문화의 창조 등을 이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의대생, 성인이 되어라
의대에 들어온 모든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다. 일부는 점수에 맞춰서, 혹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고 의대를 선택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행복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가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없어요.” 이미 의대에 들어온 의대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게 진실인걸요. 한번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다시 행복의 길로 오는 방법은 많은 것을 내려놓거나 자기가 희생하거나 그런 방법 밖에는 없거든요.”
김예슬 씨는 “20대가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라 불행하다”고 했다. 사실 꿈이 없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비단 의대생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언제 성인이 되느냐,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순간이라고 봐요. 김예슬은 자퇴를 결심하며 성인이 된 거죠. 성인이 되지 않으면 1인분의 삶을 살 수 없고, 그 인생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죠.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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