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꿈이 없는 의대생, 평생 불행합니다.”

막연한 의대 공부 보단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을 만나다

 “한국 경제에 3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제 2차 석유파동의 영향을 받아 1980년에 한번, IMF가 터졌던 1997년에 한번, 그리고 2007년 미국발 경제위기였죠.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아주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한 번 더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원래 천천히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했을 것을, 토건 경제와 낮은 이자율 등으로 급히 대처했기 때문이죠. 6월 선거에 돈이 많이 들어간 올해 말, 혹은 연초와 함께 돈을 많이 쓰는 내년 초쯤에 경제 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봅니다.
 2008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5년, 2013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5년을 지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2008년에 20대가 되었다면, 10년을 이 힘든 경제 속에서 살아야죠. 진작 이민을 갔다면 좋았겠죠. 혹시 이때 이민을 가지 못한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가는 게 좋습니다. 곧 있으면 환율도 엄청나게 올라 비행기 값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반 정도 농담이 섞인 말이긴 했지만, ‘공포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20대를 향해 무서운 말들을 했다. 그는 이 불행한 20대에게 이름도 지어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세간의 유행어 ‘88만원 세대’. 20대가 받는 평균 임금 88만원이라는 수치를 쓴 것이다.
 지난 3월 김예슬 씨의 고려대 자퇴 선언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세상을 향한 반격 시작’이라 할 정도로, 20대 문제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무언가 큰 변화가 올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하지만 의대생은 이 흐름에서 빠져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내일 모레 있을 시험이며,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의대생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에게 직접 들어보자.


 

Part 1. 88만원 세대’, 출간 3년 후.

- 뼛속까지 고독하고 절망적인 세대

 경쟁하라, 뒤처진 자는 버려진다. 불신하라,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불안하라, 네가 자는 이 순간도 적들은 발전하고 있다.

▲ 불신이 만연한 사회

 이 세 마디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딜까. 전쟁터가 떠오르지만, 학교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88만원 세대는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와도 마주하게 되었다. 비교적 쉽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이전 세대들과 달리,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그 마저도 윗 세대가 다 차지한 이 사회에서, 일자리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 세대는 소위 ‘인 서울 명문대’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준비를 해야 하며, 대학에 가서도 학점을 쌓으며 틈틈이 ‘스펙 관리’를 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서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다른 세대들의 관심은 전무 하다는 것이다.
 “정당들은 20대에 관심이 없습니다. 20대를 향해 좋은 정책을 펴든 나쁜 정책을 펴든 어차피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거든요. 혹 선거운동에 나서는 20대가 있어도, 그를 젊은 세대의 주체보다는 ‘일당 7만원 알바생’으로 볼 뿐입니다. 기껏해야 선거 운동 차량에서 율동을 하고 손을 흔드는 일이나 하죠.
 대학도 마찬가집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커녕, 최소한 자신들의 고객이라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저 학생들을 봉 취급 하고 있어요.
 투표라도 좀 해야 할 텐데, 투표를 권유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투표하라는 제 말이 담긴 기사를 읽을 정도의 20대라면, 투표하라고 안 해도 투표합니다. 하지만 접근할 방법이 없는 20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연아나 소녀시대가 투표하라면 할까요.”


 

- 꿈틀거리는 지렁이, 20대의 당사자 운동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했는가. 청년들이 노조를 만들어 노동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논의 그룹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대학 진학이 끝이 아니라는 고민을 많이 하며, 김예슬을 필두로 자퇴를 선언하는 대학생도 나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흐름들이, 그것도 문제의 대상인 20대 당사자들이,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1~2년 내에 한 번 크게 터질 것이라 봐요.” 어떻게 할지는 모색 중이지만 문제가 있다는 데에 대한 공감대는 널리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우석훈 씨의 평가였다. 언젠가는 20대가 길거리에 나와 혁명이 시작될 텐데, 특히 김예슬의 활동을 가장 전위적인 것으로 평가하며 길거리로 나오기 전 단계로 꼽았다.
 “물론 혼자서 외칠 수는 있어도 변화를 오게 할 수는 없겠죠. 언젠가 다 같이 나서야 되고, 다 같이 한다는 동의만 이끌어 낸다면, 대학 자퇴나 F학점 등의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도 많아요. 누가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학생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일으킨 68혁명은 불씨가 된 7명이 잡혔을 뿐 누가 주도한 게 아니었죠. 하지만 그 세대는 역사적인 68혁명을 이루었고, 평생을 ‘우리 세대 건들면 알지?’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 프랑스 68혁명의 모습

 20대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어차피 대기업이나 정부기관도 창의성 있는 사람을 원하고, 창의성은 학점은 물론 스펙에서도 드러나지 않음을 압니다. 모든 게 만점이고 화려한 스펙이 있는 완벽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고, 시험 면접관이 직접 얘기해요. 열심히 학점과 스펙을 관리하는 20대, 그러면 본인만 괴롭고 힘듭니다.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찾아 사세요.”





Part 2. 의사와 의대생, 88만원 세대의 속에서

- 88만원 세대의 아웃사이더들

 ‘88만원 세대’는 사회 구성원을 세대로 나누는 담론으로, 현재 한국의 세대를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나눈다. 하지만 같은 88만원 세대 내에서도, 대기업의 후계자에서 당장 오늘 먹고 살기도 힘든 20대까지 다양한 계급이 있다. 이러한 계급에 따른 차이는 없을까?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변수로 나이, 성, 거주지, 인종 등이 있는데, 나이가 가장 세밀한 변수입니다. 또한 최상위층부터 최하위층까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층 5%와 하위층 95%로 갈려있다고 봅니다. 그 5%들을 같이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을 만들 때부터 그들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대생은 어떨까. 의대생들도 끝이 없는 경쟁의 상황에 힘들어하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비교적 ‘돈 잘 버는’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많고, 기본적으로 유산층의 자녀들이 대다수다. 의대생은 88만원 세대에 속하는가?
 “해당사항 없겠죠.”
 대답은 간결했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문화적 접근 보다는 경제적 접근을 하는 우석훈 씨의 입장에서, 어차피 대기업에 갈 사람이 아닌 의대생들은 논의에서 빠져있었다. “물론 의대생일 때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이 좀 있겠죠. 어차피 잘 곳 없고 등록금도 비싼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힘든 경쟁은 20대 전반의 특징이고, 의대에서는 경쟁에서 좀 뒤지더라도 성공해서 살아갈 확률이 훨씬 높지 않습니까? 집단적인 리스크가 가장 적은 집단으로 의대와 교대를 꼽아요.”

- 의사? 약사랑 싸우는 사람들?


 외부에서 본 의사의 모습은 어떨까? “의사 집단이 사회적 이슈에 개입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의사 집단이 의료에 관해 이익집단이 될 수도, 사회적 공공성을 주장하는 집단이 될 수도 있는데, 대개 후자의 모습으로 보는 사람은 없죠. 매스컴에서 왜곡된 모습을 비췄을 수도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거든요.”
 그는 연구의를 기피하는 행태 또한 지적했다. 연구의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의료가 발전하는데, 의사들은 개업과 민영화 등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 연구의에 대한 처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진해서 연구의를 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는 것도 문제다. “밖에서는 쟤들이 좀 부패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

 한국의 교육 제도는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 군대식 문화를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상부의 일에 비판하는 자는 사상이 의심되어 낙인이 찍혔고, 상부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살아 남아 자신도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고, 대부분의 집단에서 군대식 문화를 청산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집단은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선배 의사 밑으로 들어가 수련 받는 도제식 교육의 특징이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응급한 상황이 많다 보니 선배 의사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석훈 씨의 생각은 다르다. “도제식 교육의 면은 어디나 조금씩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나섰다고 꼭 찍히진 않거든요. 그리고 선배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선배가 후배를 억압하고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요.”
 경영학과를 보면 여러 과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든다. 경영학과에 남아있는 군대식 문화를 본 외부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촌스럽고 불합리한’ 것인지 말해주고, 다들 바꾸기 위해 노력 한다. “의대는 기본적으로 외부와 섞일 일이 적죠. 그래도 외국 유학으로 선진 문화를 보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텐데, 본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크게 바꾸려고 나서지도 않아요. 물론 그렇게 해도 이 집단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유지는 되고 있지만, 그 결과로 아직도 70년대 문화를 가진 화석 같은 집단이 되었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자정능력이 사라진 집단이죠.”



-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88만원 세대는 외부의 도움을 계속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모아졌고, 당사자 운동을 통해 조금씩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의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 의대생들 역시 외부의 도움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또한 모두들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의대 사회에서는 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누가 나서서 집회를 하는 등의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죠. 단순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떠들어야 되요. 어느 자리에서든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떠들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변화가 오는 거죠. 힘들겠지만, 그것은 자기가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개선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의대생들을 보면 부자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제가 뭘 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우석 사태 때 과학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처럼, 내부에서 논의가 되어야 변화가 효과적으로 올 수 있죠.”

▲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은 의사이며 시인인 엘리트로 나온다.

 우석훈 씨는 의사와 시인을 사회의 엘리트로 꼽으며, 엘리트들에게는 정책의 결정, 조직의 지도, 문화의 창조 등을 이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엘리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의대생, 성인이 되어라

 의대에 들어온 모든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다. 일부는 점수에 맞춰서, 혹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고 의대를 선택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행복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가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없어요.” 이미 의대에 들어온 의대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게 진실인걸요. 한번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다시 행복의 길로 오는 방법은 많은 것을 내려놓거나 자기가 희생하거나 그런 방법 밖에는 없거든요.”
 김예슬 씨는 “20대가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라 불행하다”고 했다. 사실 꿈이 없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비단 의대생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언제 성인이 되느냐,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순간이라고 봐요. 김예슬은 자퇴를 결심하며 성인이 된 거죠. 성인이 되지 않으면 1인분의 삶을 살 수 없고, 그 인생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죠.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세요.”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너, 외롭구나’, 힘든 청춘에게의 무규칙(?) 카운슬링

 3년의 차이를 두고 출간된 두 책, ‘너 외롭구나’와 ‘88만원 세대’는 둘 다 20대를 향해 각박한 현실을 논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는다. 하지만 그 관점은 극명히 다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씨는 지금의 20대가 겪는 어려움을 시대, 사회, 경제적인 외부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구조적 원인과 사태 파악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반면, ‘너 외롭구나’의 저자인 김형태 씨는 20대의 시련에 대해 시련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 초점을 맞춰 개인의 사고와 태도 등을 바꿔 ‘격을 높이는’ 것을 해결책으로 말하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이후 위 두 책들을 읽은 독자들간의 논쟁도 분분했고 저자들 간의 대립도 있었다. 다음은 저자들이 서로에 대해, 서로의 책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며칠 전에 ‘KBS TV 책을 말하다’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이 출연했던 ‘88만원세대’라는 책 저자가 그 책 내용 중에 [너 외롭구나]를 비난한 내용이 있다고 들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기억조차 나지 않을 ‘출판 마케팅 기획물’에 지나지 않을 책들 중 하나이기에 나로서는 반박이나 분석의 가치조차 없는 책이다.”
- 너 외롭구나의 저자 김형태

 20대에게 “네가 노력을 안해서 취직을 못하는 것”이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청년백수들’에게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고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걸 읽은 20대들 상당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읍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통쾌한 지적이다,” “주옥같은 명문이다”라며 사방팔방 친구들에게 권한다. ‘희망고문’이 주는 고통이 급기야 ‘쾌락’으로 전도된 셈이다. 일종의 집단착란 증세이고, ‘세대 간 사도-마조히즘’이다. 이런 행태는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사회가 병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따름이다.”
- 88만원세대 책의 에필로그

 이 책의 논조는 한결같다. 김형태 씨는 소위 ‘이태백’에게 “사회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 개혁의 주인공이 되도록 준비하십시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을 기존의 어떤 회사나 시스템에서 찾지 말고 당신이 언젠가 실현할 수 있도록 집요하게 준비하고 실행하십시오. ‘시스템을 바꿔보자 하는 사람들,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한다.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중에 어떠한 관점이, 혹은 어떤 책이 진실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소위 경제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도, 또 대다수의 기성세대들도 의견을 달리한다. 우석훈 씨가 말하는 ‘집단적 리스크가 가장 적은, 자정 능력이 사라진, 엘리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대생이라는 집단에게 옳은 관점은 또 다를 수도 있다. 88만원 세대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그 책과 같이 공명을 울렸고, 또 ‘20대여, ○○하라’류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과 어조로 20대를 말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한중원 기자/울산
<han@e-mednews.com>

※ 김형태 : 홍익대 회화과 졸, 미술가, 황신혜밴드 리더, 작가, 칼럼니스트, 연극배우, 자칭 ‘무규칙이종카운슬러’ 자신의 블로그 ‘http://www.thegim.com’에서 실제로 상담한 사례들을 엮어 ‘너 외롭구나’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르면 이번 년도 여름 전에 이성, 친구, 직장과 사회생활 등 인간관계에 관한 내용을 담은 ‘너 외롭구나2’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의대생,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의대생 스스로가 생각하는 88만원 세대와 우리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우리 20대에 붙인 장본인인 우석훈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대생은 ‘88만원 세대’담론에 속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체 20대 중 5% 정도는 특수한 케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대생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석훈씨와의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예과 1학년부터 본과 3학년까지 본지 기자 6명이 모였다. 경제학은 잘 모르지만 의대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88만원 세대’의 정의를 내려보고, 의대생은 과연 88만원 세대인지 고민해보았다. 그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88만원 세대, 어떻게 정의할까

티라노 : 책 ‘88만원 세대’에서 말하는 88만원 세대는 무엇일까?
히컵 : 인건비로 88만원을 받는 사람들이 일단 우선적으로 포함 되지. 이 책은 세대 간의 경쟁이나 세대내 경쟁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결국 무한경쟁, 승자독식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지.
시대유감 : 그런 의미에 따르면 우리도 포함되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세대가 없었을까?
킥애스 :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세대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어.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은 이런 세대가 발생하더라도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 대비했으니까.
티라노 : 한국이 지금의 88만원 세대를 낳은 것은 ‘선진국들에 비해 경제성장은 빠른데 반해 민주주의 성장은 느렸기 때문’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
킥애스 : 맞아. 기득권에 근접하고 있는 386세대는 혁명세대라 단결력이 좋고 경제가 급성장할 때의 세대라 자연히 가진 것도 많지. 하지만 다음세대를 대비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결국 아래세대를 착취하는 결과를 낳았어.
모태솔로 : 세대 간의 착취가 있었기에 세대내 경쟁이 심화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히컵 : 세대 간 착취를 생각하면 20대는 모두 88만원 세대에 해당되겠네. 의대생도 물론 포함되고 말이야.
티라노 : 우리가 생각하기에 ‘현재 20대는 어떤가’를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주전부리 : 지금 20대는 악순환의 고리에 있어. 경제적으로 상황이 나빠지니까 취업준비로 양서를 읽을 시간은 없어지고 지적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매스미디어나 기업이 상업적인 마케팅으로 20대의 돈을 착취하기 쉬워지고 세대 간의 착취도 심해지는 것이지.
히컵 : 맞는 말이야 요즘 교육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교육이 아니라 취업위주 교육이니까. 우리학교만 하더라도 대학이라기보다는 국시학원 같다니까.
티라노 : 악순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4살 어린 내 동생만 봐도 악순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 나 초등학교 다닐 때는 놀았던 것 같은데 동생은 수학학원 다니고 숙제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거든.
킥애스 : 영어, 수학은 사람이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주진 않는데 이런 과목들만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시야가 매우 협소해지는 것 같아. 매스미디어는 옛날에 비해 과학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그것만 보다보면 TV가 원하는 인간이 되어 있을걸?
시대유감 :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사회의 자본주의 체제가 정립된 상황에서 성장한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만의 가치를 못 가진 세대’인 것 같아. 위에서 물려준 사고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지. 예전 세대와는 다르게 위로 올라가는 문은 좁은데 이 문으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야.
히컵 : 우리가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시대유감 : 그렇지, 김예슬 같은 사람은 많이 없고, 꿈이 죽었기 때문에 고시준비나 하고.
히컵 : 꿈이 죽었다기 보단 다른 것을 시도했을 때의 리스크가 크니까 두려워서 못 하겠어.
킥애스 : 망할까봐 두렵다 자체가 전세대의 가치관이 아닐까? 결과 중심의 가치관 말이야. 과정이 중요한 것인데.

의대생은 88만원세대인가

티라노 : 그럼 의대생들은 지금까지 말한 88만원 세대에 속할까? 혹시 자각하는 사람 있어?
모태솔로 : ‘88만원 세대’ 시리즈의 3번째 책 ‘조직의 재발견’에 따르면 상위 5%의 전문직은 88만원 세대에서 분리되어 있어. 거기에 따르면 우린 88만원 세대는 아니야.
주전부리 : 나중에 의사 면허 따면 먹고는 사니까 좁은 의미의 88만원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해.
히컵 : 무한 경쟁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맞는 말 같아. 의대생의 자살율이 높고 의대생이 술, 담배 많이 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으니까.
주전부리 : 학교에서는 다들 경쟁을 체감 해?
티라노 : 피부로 느끼진 못해.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 하면서 생각해 보면 못 느끼는 것 뿐이지 경쟁이 심한 것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 돼. 경쟁이 심하구나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거지. 요즘엔 의사도 영어가 필수라는 말이 있지? 거기서도 과도해진 경쟁을 느낄 수 있어.
티라노 : ○○의대의 경우에는 서로 족보도 안보여 준다고 그러더라. 4명중 1명꼴로 유급을 잡는데.
시대유감 : 난 우리가 확실한 88만원 세대라고 생각해. 의대 내에서 88만원 세대와 같은 경쟁이 축소판으로 일어나고 있고 사회로 나가면 경쟁에 참여하지. 우리는 단지 경쟁이 유예된 집단일 뿐이야. 또 세대 간의 착취라는 관점으로 봐도 그렇고.
주전부리 : 교수님들이 수업하시다가 너네가 의사 될 때는 면허번호가 10만 넘어가니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세대 간의 경쟁이 의사에게도 남 일은 아니야.
모태솔로 : 88만원을 벌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우리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을 가졌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경쟁이란?

히컵 : 그런데 요즘의 무한 경쟁은 조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
모태솔로 : 신자유주의 흐름에 휘말린 것이 무한 자유경쟁의 배경이 된 것 같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기득권을 잡고 있기도 하고 의대생도 이런 큰 관점에서 보면 자유롭지 못하지.
킥애스 : 하지만 기득권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해. 거기에도 경쟁이 있고, 위에 있는 사람은 그 위치를 고수하는 것에도 힘이 드니까.
티라노 : 경주마로 비유해보면 12년 동안 앞에서 달렸다는 이유로 지금 의대생은 조금 경쟁을 유예 받고 있는 것 같아. 트랙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야.
주전부리 : 경쟁하는 그 트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은데.
티라노 : 그 트랙에 뛰어드는 것은 먹고 살 길이 그것 외에는 없어서 아닐까? 제도적 측면에서 먹고는 살도록 보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모태솔로 :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타인이 나를 낙오자로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 솔직히 농사만 지어도 굶어죽진 않지.
주전부리 : 맞아, 남을 의식하는 건 한국이 특히 심해. 우리나라의 문화 중에 혼자 밥 먹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 그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 일본만 하더라도 그러지 않는다던데.
티라노 : 다들 자기 꿈대로 자아실현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경쟁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살고 있어.
주전부리 : 경쟁도 경쟁이지만 욕망이 획일화 되는 것이 확실히 문제인 것 같아.
시대유감 : 교육이 문제인 것 같아. 획일적인 사고만 하게하고 창의성을 마비시키는.
모태솔로 : 교육, 학벌이 문제인데 사회 전반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니까 따로 떼서 생각할 수는 없지.
히컵 : 왜 바꾸려는 노력을 활발히 하지 않는 것일까?
시대유감 : 바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해도 우리학교가 원래 평준화 고등학교가 아니었는데 평준화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괜히 싫었거든.
킥애스 : 가진 사람이 바꿔야 되는 것인데. 기득권 중 몇이 그 생각을 하더라도 기득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모태솔로 : 진입장벽을 쌓길 원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후에 그 사다리를 차는 거지. 사다리 차기가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심해. 잘못된 걸 알아도 그 시스템을 거부하기 보다는 내가 저안에 들어가리라 하는 분위기지.

‘88만원 세대’의 의대생, 그 미래...

티라노 : 우리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태솔로 : 20대가 조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제도상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정치적인 힘이 필요해. 서울에 대학생이 몇인데! 5만 명만 모여도 엄청나지.
티라노 : 하지만 다들 너무 스펙 쌓기에 열중하다보니 서로 경쟁자가 되고 통합이 힘들어. 그리고 20대를 위한 정치인도 없고. 오히려 10대나 그들의 부모님을 겨냥한 정치인이 많지.
모태솔로 : 그것 역시 악순환이야. 20대는 정치 상황이 아니다 싶으니까 투표를 안하고 그로 인해 더 정치적으로 소수자 계층이 되는 것이지. 투표만 잘하면 되는데.
티라노 : 학생회의 문제도 있어. 한총련도 요즘엔 이슈가 되지 못하고. 요즘은 대학생 목소리를 대변하던 단체가 없어진 것 같아.
주전부리 : 타자의 시선이 운동권을 나쁘게 느끼는 것이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아.
히컵 : 대학 4년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아서 뭉치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닐까?
킥애스 : 몇 명의 진짜 혁명에 목마른 사람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티라노 : 그렇다면 의대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모태솔로 : 공부할 때 족보에만 목매달지 말기! 그냥 나중에 의사가 되서 필요한 정보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
시대유감 : 혼자만 편하게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돼.
모태솔로 : 맞아, 자기 주변에서부터 바꿔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시대유감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학교에서 토론동아리를 만드는 것은 어때?
티라노 :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술만 먹는 문화도 바꾸고 말이야.
시대유감 : 지금 문화는 너무 소비적인 것 같아. 놀이문화를 바꿔야해.
히컵 : 맞는 말이야. 내 자식도 미래에 이런 문제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직하다. 우리가 나서서 바꿔야지. 우리 뒷세대도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이야기니까.

■ 참가자_ 이현도 수습기자/연세, 노해준 기자/가톨릭, 최성욱 기자/울산, 정세용 기자/연세, 이예나 기자/순천향, 김민재 기자/순천향
■ 정리_ 이현도 수습기자/연세 <loverboy@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