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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새 생명의 선물, 기증


지난 7월 12일,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지 6일 만에 뇌사 상태에 빠진 주대철(17) 군. 주 군의 가족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지만, 충분한 대화를 나눈 끝에 주 군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심장, 간, 신장 2개, 각막 2개를 기증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 삶을 선물 받은 사람은 무려 6명.

 

신장 이식 릴레이의 첫 선두주자로 나선 왕희광(44) 목사. 왕 목사의 신장은 오랫동안 신부전증을 앓아왔던 박 모씨(54)에게 이식되었고 그 바톤을 이어 받아 박 씨의 아들 최 모씨 또한 다른 환자에게 신장을 이식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최 씨의 후배가 그 릴레이를 이어 나가 이식 의사를 밝혔다.
 

뉴스나 신문에서 우리는 훈훈한 장기기증과 이식의 성공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장기를 살아서든 고인이 되어서든 다른 사람에게 기증한다는 것은 이처럼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담으로 넘기고 말, 어떤 대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 또한 아니다. ‘장기이식, 장기기증’. 많이 들어봤지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사랑의 실천.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장기기증,
꼭 내가 해야 하나?

치료가 불가능한 병증 말기의 환자들 가운데서는 장기를 이식 받으면 회복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의학에서 인공장기를 개발하고 실용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생명에 꼭 필요하지 않거나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신에게는 필요 없어진 장기가 죽어가는 여러 생명을 구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의료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또 하나,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해부학 실습만 생각하더라도, 어찌 보면 우리는 기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한 몸을 기꺼이 기증하여 희생하신 고인으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공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약 절차의 간소화,
제도적 보완,
그리고 꾸준한 홍보

스페인, 프랑스의 뇌사자 장기 기증율은 각각 100명 당 34.3명, 25.8명으로 우리나라의 약 10배에 달한다. 장기 기증율이 높은 나라는 공통적으로 기증 서약 절차가 간단하다. 캐나다에서는 건강보험증에 서명만 하면 되고, 영국, 미국 등에서는 운전면허증을 교부받을 때 기증 의사를 표시하도록 한다. 또한 스페인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옵트-아웃’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기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기증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뇌사자 장기 기증 1위인 스페인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코디네이터를 양성, 각 병원에 1명씩은 꼭 배치하여 치료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나 환자가 뇌사 상태 판정을 받았을 시 곧바로 설득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공모전을 통한 각 국의 수준 높고 기발한 광고들도 한 몫을 한다. 무슬림의 심장을 가진 힌두인, 백인의 각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흑인을 나타내는 광고(인도), 죽기 직전에 저토록 다급하게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장기기증 서약이라는 광고(벨기에), 그리고 늙어서가 아닌 젊을 때 기증을 결심하는 것의 중요성을 나타낸 광고(영국) 등 각 나라마다 장기기증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의식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공모전을 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각막 기증과 이식을 다루어 방송되었던 ‘눈을 떠요’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장기기증과 그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과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고 실천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기점으로 각각 2005년, 2009년에 장기기증 서약 등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미디어와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최근 서약자는 크게 증가한 반면, 실제 기증자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뇌사 판정 절차가 까다로워서 뇌사 상태의 사망자가 많지 않고, 현 법률상으로는 본인이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실제 기증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족 2인 동의’에서 ‘서면상 1인 동의’로 그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이 지난 5월 통과되었고, 각 시 의회에서도 장기기증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조례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 장기이식 대기자로 등록된 사람만 1만 8000천여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실제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부모가 주신 몸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라 여겨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 내는 것을 무척 꺼려하는 것이다. 기증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인식 때문에 기증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반면, 기증률이 높은 서양인의 기본적 인식은 육체는 ‘환원주의적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 이후의 장기 기증에 거부감이 적다. 인간의 몸은 신이 주신 것이므로 자신의 사적 소유로 여기지 않는 기독교 문화도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명의 나눔을 원하신다면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사랑의장기기증본부로 전화하여 절차를 밟는다면 열흘 이내에 자택에 우편으로 서약서가 도착할 것이고, 그것을 작성하여 가까운 우체통에 넣어 반송하면 된다. 그리고 같이 배부된 스티커는 신분증에 부착하여야 한다. 이보다 더 간단한 두 번째 방법은 인터넷 (www.donor.or.kr)에 접속하여 회원가입 후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약을 했더라도 실제 장기 기증 시에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가족이나 친척에게 평소에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매년 9월 9일, 장기 기증의 날이라고 한다. 장기 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9(求)하자는 뜻이라고 하니,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나 사탕을 주고받는 기념일도 좋지만 더 넓고 깊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념일인 이 날, 가족, 친구, 연인의 손을 잡고 함께 장기 기증을 서약하는 것은 어떨는지.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

의사국가고시 복원 혐의
의대생들 기소유예

시험 자체의 구조적 문제와 합격률에의 미미한 영향 고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의사국가고시 유출 사건에 연루된 전국 의대 4학년 협의회(이하 전사협) 관련 의대생들에게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처분이란 혐의가 인정은 되었으나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성실한 삶의 기회를 주는 의미에서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올해 초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는 의사국가고시 실기문제를 유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전사협 전 회장 강모(25)씨 등 전 집행부 10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 이는 지난해 9월 비밀 홈페이지를 만들어 먼저 시험을 치른 응시생이 문제 내용을 후기 형식으로 올리는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사협은 이런 방법으로 2011년도 의사국시 실기고사 112개 문항 가운데 103개를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시 실기 시험은 50여일간 진행되며 응시자가 정해진 시작 및 종료 신호에 따라 12개의 시험실을 이동하며 각 시험실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평가자는 응시자의 수행과정 및 결과를 평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검찰은 이들이 초범인 점과 시험 방식 자체가 먼저 응시한 사람이 뒷사람에게 문제를 알려줄 소지가 있게 운영되는 점, 문제 유출이 응시생 간의 합격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입건시 경찰은 한해 응시생이 3천여명이나 되는데 시험장이 한 곳밖에 없어 시험이 50여일 치러지는 의사면허 시험 제도에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작년 전사협의 임원으로 활동했던 한 모 씨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기소유예처분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소회를 밝혔다. 전국의사총연합회는 이번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당 학생들에게 국시원과 보건복지부가 어떤 형태이든지 행정 처분을 내리면 안된다고 밝혔다. 또한 실기시험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있는 만큼 국시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통해 문제 공개원칙 전환 등과 의료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의사국가고시를 주관하는 보건복지부는 2012년 1월 치러지는 76회 의사국시 필기시험부터 기출문제와 답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현재의 문제은행 방식은 유지하나 유사한 문제가 다시 출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험 문제 수의 30배수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실기시험의 장소 부족과 이에 따라 시험 기간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아 2014년까지 시험장을 4곳으로 늘려 2주안에 시험을 마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종협 기자/고려
<sssong@e-mednews.org>

'82호(2011.09.05) > 커버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0) 2011.09.13

런웨이에 선 의대생의 상처치유기

도전, 슈퍼모델 신지연!

그래, 그건 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불은 순식간에 내 몸으로 옮겨 붙었고, 검붉게 변한 피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델을 꿈꾸기엔 상처가 깊었고, 누군가는 자랑할 만한 길거리 캐스팅도 내겐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슈퍼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그토록 내가 인정하기 싫었던 콤플렉스 하나를 이겨내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인터뷰 기자의 마지막 질문, 그 깊고 오랜 상처에 이젠 당당해졌냐는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저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요.”
 
너무도 평범하지만, 또 너무나 수상한 이 여자.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신지연 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열일곱에 겪은 상처,
위가 아닌 아래를 보게 되다

어느 고등학교 축제의 과학부 부스, 알코올 램프의 불이 지연 양의 옷에 옮겨 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위해서였을까, 그녀는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 그 친구에게 직접 사과를 받은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 친구도 많이 미안할테고, 사과할 용기도 나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그녀도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처음엔 원망도 많이 했죠. 부모님도 많이 속상해 하셨구요. 특히 어머니는 제가 붕대를 다 감은 후에 오셨는데, 그때는 제 얼굴이나 손이 괜찮은 걸 보고 안심하셨거든요. 그리고는 이틀 후에 드레싱을 하느라 붕대를 푸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병실을 나가시더라구요.”

고등학교 1학년, 세상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힘든 나이.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들어왔다. 얼굴에 큰 화상을 입은 환자, 귀가 타버린 환자, 그리고 전선을 잘못 잡아 사지가 다 손상된 환자 등.

“저는 입원 가능한 환자의 마지노선이라고 해야 할까요. 얼굴도 괜찮고 일상생활도 문제가 없는데다, 팔의 안쪽이나 허리 등에만 상처가 있어 가리기도 쉬워요. 수술도 이 정도면 잘 된 편이구요. 사실 저도 화를 내고 싶었죠. 그런데 드레싱을 하니까 엄청 화끈화끈 거리고 더운 거 있죠? 그것도 여름에 다쳤으니까요. 그래서 화내면 더 열나니까 아프지만 참자, 화나지만 참자, 다치고 나서 정말 인격수양 많이 했죠(웃음). 옛날엔 다혈질에 예민하던 성격이, 수행을 통해 긍정적으로 바뀐 거에요. 상처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려고 노력했구요.”

화상은 모델의 꿈을
태웠지만...
 
런웨이를 걷는 짧은 시간, 그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철저한 자기관리. 알렉산드라 엠브리시오나 하이디 클룸 등, 프로페셔널한 모델의 모습은 지연이 동경해오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며 키가 많이 큰 지연은 실제로 길거리 캐스팅도 받았을 정도.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처가 남은 후였다.

“주위에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할 때에도 장난으로 넘겼는데, 다치고 나서야 그런 기회가 온 거에요. 상처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냥 안하겠다고 했어요.
물론 꼭 모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다치기 전에는 모델이든 의사든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정작 모델이 될 기회가 있을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야 그런 기회가 오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회를 놓쳤다기보다, 기회를 잡을 수조차 없었다구요.”

화상 후, 지연은 자신이 꿈꿔왔던 또 다른 프로페셔널,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해주면 어떻겠냐는 친언니의 조언도 큰 역할을 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웃음), 그땐 진짜 빨리 퇴원해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두 달간 입원했던 지연이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였다. 평소 성적은 반에서 5등 정도로 의대에 가기엔 다소 부족한 성적. 몸조차도 따라주지 않았다. 피부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늘 허리를 세워야 했고, 오른팔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리고 배가 은근히 활동에 중요하더라구요. 웃거나 울거나, 눕거나 앉거나, 심지어 말할 때도 배가 많이 쓰이는데, 배를 다치니 일상생활이 힘들었죠.”

그 모든 악조건을 의지 하나로 버텨낸 지연, 성적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기말 고사에 성적이 올랐지만, 기대보다는 못나왔어요. 1등할 줄 알았는데...(웃음). 확실히 1등하는 애들은 다르더라구요. 그렇지만 성적이 안 나와도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했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1등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화상을 딛고, 몇 번의 큰 고비를 넘기고, 한동안 공부에만 매진했던 지연. 상처에 대한 아픈 기억도 희미해져가던 어느 날, 지연은 그토록 자신이 바라던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화상은 양의 꿈 하나를 좌절시켰지만, 양을 좌절시키진 못했다.

도전, 슈퍼모델 신지연!

지난 6월, 케이블의 한 채널에 지연양이 출연했으니, 바로 슈퍼모델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2’. 최후의 26인이 되기 위해 심사위원들 앞에 선 지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처음에는 반장난이었죠.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1000명 안에 들고, 실물 심사도 통과하고, 최후의 26인을 뽑는 자리까지 가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요. ‘내가 모델이 될 수도 있을까’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심사의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그런 게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상처가 크다는 걸 아니까, 제가 최대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히 얘기를 끌어내려는 느낌? 순간 ‘아, 내가 지금 동정을 받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과 함께 울컥하더라구요. 난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말 괜찮은데, 주위에선 이걸 안타까워하는구나, 하면서요.”

방송이 나가는 동안 미국에 있느라, 한참 후에야 방송을 봤다는 지연. “방송 끝에 인터뷰를 잠깐 하는데, 그때는 엄청 해맑게 웃고 있는 거 있죠? 사실 정말 후련했어요. 제 콤플렉스 하나를 이겨낸 느낌이랄까요. 런웨이를 걷는 것도 한 번 느껴봤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이제 모델에 큰 후회나 미련은 없어요.”

화상이 가르쳐 준 것들

본과 1학년,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가장 힘든 시기. 하지만 그 와중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슈퍼모델 오디션에 나갈 정도로 관리를 한 지연양.

“음,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어떻게 시간을 냈내요. (웃음) 사실 그런 것 보다 화상 후에 많이 아파봤잖아요. 몸이 약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잠도 잘 자고, 운동도 꼬박꼬박 해요. 지금이 바쁘다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바빠진다고 하잖아요? 아, 그런데 저 성적 그렇게 안 나빠요. (웃음)”

크게 다쳐본 만큼, 건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지연. 하지만 지연이 화상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아마도,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밝게 사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닐까.

“사실 길거리 캐스팅을 당할 때, 제 주위에 예쁜 애들이나 키 큰 애들도 많았어요. 게다가 공부하느라 제대로 꾸미지도 못했는데, 그분이 절 뽑으신 거 있죠? (웃음) 주위 애들이 ‘왜 쟤가 받았지?’하며 의아해하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그분은 가능성을 보셨구나!’ 하고요, 히히히. 아, 설마 이거 기사에 쓰실 건 아니죠?”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드레싱 : 환부를 닦고 거즈를 새것으로 바꾸는 일

전 세계 의대생 회의, IFMSA 총회에 가다!

의대생의 사회참여를 위한 국제의대생회의

전세계 의대생이 한자리에

대통령도,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닌 의대생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각 나라의 다양한 의료환경을 국제적 시야에서 비교해 보고 프로젝트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 의대생 회의(General Assembly)가 이번 여름 덴마크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를 주최한 IFMSA(International Federation of Medical Students’ Associations)는 세계보건증진을 위한 프로젝트를 범국가적 규모로 개최 및 교류하는 세계 최대의 의대생 단체로 UN 및 WHO의 공식후원을 받고 있다.
IFMSA는 매 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국제의대생회의를 개최하고 있는데 특히, 이번 회의는 창설 6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회의가 진행된 코펜하겐에서 진행되었으며 97개 국가의 약 천 명의 의대생들이 참여하였다. 초기에는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나 현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비롯하여 중동 및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참여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IFMSA회의에 지난 7월에 열린 설명회를 통해 선발 된 총 14명의 학생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김예림(연세원주 예과1) 학생은 “의대생들이 자국에 꼭 필요한 보건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하는 능동적인 모습에 감명 받았고 의사만이 아니라 의대생도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렇게 큰 회의를 학생들의 힘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다만 내가 참여한 연구교환학생 프로그램인 SCORE가 국내에 없어 우리가 이용하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안타까웠고 현재 우리나라에 부족한 학생들의 연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이번에 사귄 외국친구들의 조언을 얻어가며 본 프로그램을 잘 정착시키고 싶다.” 고 소감을 밝혔다.
 
날카로운 토론과 흥겨운 파티가
함께하는 일주일

IFMSA는 의대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세부적인 주제를 갖는 위원회(Standing Commitee)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위원회에는 Public Health(SCOPH), Medical Education (SCOME), Human Right & Peace (SCORP), Reproductive Health & AIDS(SCORA), Professional Exch-ange(SCOPE), Research Exchange (SCORE)가 있다. 총회의 오전 시간은 자신의 듣고 싶은 위원회를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었으며 전문가의 강연 및 주제관련 토론은 물론이고 각 국의 프로젝트 발표와 더불어 실제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 및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주제분석이나 조직 및 자금 운용, 캠페인 문구작성법 등을 소그룹을 이루어 연습해 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각 국의 학생모임을 중심으로 자신의 나라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Project presentation 및 Fair시간이 있으며, 의과학 관련 강좌 및 의학기구에 관한 invention Fair를 통해 개별 부스에서 많은 국가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저녁에는 Plenary라는 의결시간이 주어져 각 국의 President들은 모두 모여 각 의제에 관해 발제를 하고 투표를 거쳐 단체의 규정을 명문화해 나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김상엽(관동의대 본과3)은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방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하지만 딱딱한 회의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일 저녁에는 흥겨운 파티가 열리는데 단순히 춤과 술을 즐기는 클럽에서부터 각국의 음식 및 술 문화를 알릴 수 있는 National Food & Drinking Party와 각 국의 전통 문화를 공연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을 휩쓴 한류를 테마로 소녀시대 소녀시대의 음악에 맞추어 안무를 선보였으며 수많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음악과 드라마에 대한 예찬을 받았다. 심지어 긴장감 넘치는 의회와 같은 분위기의 Plenary시간의 중간 쉬는 시간에도 파티는 계속된다. 각 나라의 현안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다가도 신나는 음악소리에 모두가 하나되어 회의장을 순식간에 클럽으로 둔갑시켜 춤을 추며 어울리는 모습은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첫걸음을 딛는 우리나라의
프로젝트와 교환학생 프로그램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연합(KMSA, 이하 전의련)이 IFMSA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체로 인정받아 준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내년 3월 가나에서 개최되는 회의에서 정회원으로 인준을 받게 되면 의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적인 투표권을 갖게 된다. 국내에서는 총회 및 의대생캠프, 열린 자원봉사단 등 여러 활동을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IFMSA와 관련하여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는 IFMSA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국가와 학생 교환을 실시하게 된다. 현재 신청한 학교인 중앙대(8명), 강원대(4명), 관동대(2명)의 학생들은 올해 계약을 맺은 미국, 스웨덴, 터키, 일본 등의 국가에 2012년 교환학생으로 신청할 수 있다. 한편, 신청하지 못한 학교의 경우는 2012년 학생들의 건의로 학교측이 승인하는 경우 2013년 학생을 교환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한 계약은 2012년 8월 두바이에서 이뤄진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는 의대생 헌혈릴레이, 스마일캠페인, 조직기증캠페인, 학생대학평가보고서 등이 있다. 그 중 스마일캠페인은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세요’란 귀여운 팻말을 들고 행인과 함께 웃는 얼굴을 촬영하여 페이스북(shareyoursmile)에 업로드하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회문화를 밝게 개선하여 우울증 감소 및 자살예방의 효과를 얻고자 한 본 캠페인은 IFMSA회의에서 특히 큰 관심을 받았다.
 
심장이 뛰는 당신, 가나에서
주인공이 되어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IFMSA-KMSA의 프로젝트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함께할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관심 있는 전국의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은 누구든지 지원 가능하며 프로젝트 참여자에 한해서 다음 3월 가나에서 개최 될 IFMSA 정식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공식적인 IFMSA설명회는 9월 17일 토요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최 될 예정이며 참가를 희망하는 학생은 전의련 공식 홈페이지에서 참가신청서를 다운받아 www. kmsa.ifmsa@gmail.com로 신청하면 된다. 더불어 설명회 3일 전까지 등록한 신청자에 한해서 등록비가 면제되며 당일 신청 시 5,000원의 등록비가 있다.
 
※ 공식사이트소개
 www.IMFSA.org
 (이픔사 공식홈페이지. 영어)
 www.KMSA.org
 (전의련 공식홈페이지. 한글)

허은실 기자/아주
<hershi@e-mednew.com>

7월의 어느 멋진 날, 영등포에선 무슨 일이?

다 같이 모여보자, 전국 의대생 캠프!

7월 29일, 우면산에서 흘러 온 흙더미와 돌덩이들이 서울을 뒤흔들고 있던 그 때. 비가 많이 온다는데 ‘서울에 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 때. 학교도, 사는 지역도, 나이도 학년도 모두 다른 그들이 영등포 하이 서울 유스호스텔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캠페인이나 봉사활동 등 의대생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다. 그러나 전국의 의대생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때 등장한 ‘제 1회 전국 의대생 캠프’. 다른 학교의 의대가 궁금한 학생들, 다른 학교의 사람이 만나고 싶었던 의대생들, 또한 ‘의대 졸업 후 임상의사가 아닌 다른 길이 있을까?’ 궁금했던 의대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양각색 어울림을 만들었다.

캠프 1일차, 아직은 어색하지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다는 설레는 분위기가 감돈다. 문태준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많은 분들의 강연이 이어졌다. 의학계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 기성세대로서 미안함과 젊은 의대생에 대한 당부가 이어졌다. 또한 의대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할 때 다양한 길, 예를 들어 의학전문기자, 기초 의학 연구자, 의학전문 변호사,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 등이 있으니 너무 임상의사의 길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강연 후 서남의대 J씨(22)는 하루에 강연이 너무 몰려 있어서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현재 의학계의 상황과 의대 졸업 후의 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캠프 2일차, 제너럴 닥터의 김제닥 선생님의 강연과 봉사 세션이 함께 진행되었다. 봉사 세션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의대생들이 할 수 있는 캠페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김제닥 선생님은 하얀 가운을 입고 진료하는 깔끔한 병원만을 기대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도 학생들은 자기가 생각한 졸업 후에 대해 하나 둘 얘기했다. 강연 후에 익명을 요구한 모 씨(21)는 ‘의대 졸업 후에 뭔가 다른 길도 많다는 생각과 의사라는 일이 진료 말고도 여러 곳에 잘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틀과는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캠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전의련 대의원 총회와 전국 학년 대표단 회의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날 저녁, 홍대 클럽 Jess에서의 뜨거운 열기는 ‘의대생이라 공부만 해서 잘 못 놀 것 같다’는 편견을 순식간에 불살라 버렸다. 자신만의 끼를 발산하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열정의 에너지가 묻어났다.  

또한 이 캠프는 의대생 직접 기획부터 시작해 주관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기획자 정환보(중앙의대 본과3)씨는 ‘전국적으로 의대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홍보가 잘 안 된 면이 있다. 또한 예산문제가 좀 더 수월하게 풀렸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1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캠프 때 찍은 사진과 기타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싸이 클럽 http://club. cyworld.com/allmedcamp1을 방문하면 된다.

문한빛 수습기자/서남
<shteme@e-mednews.org>

국시에 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국시준비, 다른 학교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후덥지근했던 태양이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바야흐로 가을, 국시의 계절이 온 것이다. 본과 3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 가을은 또 다른 학기의 시작일 뿐이지만, 본 4 학생들에겐 그렇지 않다. 의대라는 긴 여정의 종점, 국가고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가고시는 90%가 넘는 학생들이 합격하는 자격시험이지만, ‘남들 다 합격하는 시험에 행여나 떨어질까’는 두려움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의대라는 긴 여정의 마지막 관문 국가고시. 중요한 시험이니 만큼, ‘실습기간이 지나치게 길다’ ‘모의고사 기회를 자주 제공하지 않는다’ ‘실기시험을 위한 수업과 실습시간이 충분치 못하다’‘자습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등 학교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우리 학교 이외의 다른 학교 친구들은 이 국가고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성균관대, 순천향대, 아주대, 울산대, 중앙대 본과 4학년 학생들에게 메일과 전화로 인터뷰를 시행했다.
실습과정은 1년 동안만 실습을 도는 학교가 있는 가하면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실습을 도는 학교도 있어 그 편차가 컸다. 그리고 메이저 과목에 내외산소정(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이외에 신경과를 포함한 학교(성균관대, 울산대)도 있었다. 순천향대는 특이하게도 메이저, 마이너로 나누어 돌지 않고 본3때 메이저와 마이너를 합해 지방에서 돌고, 본4때 또 다시 서울 한남동 병원에서 메이너와 마이저를 합해 돌았다. 여름방학은 짧게는 열흘 남짓 길게는 4주였지만 국시를 대비하는 기간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선 동일했다.
그리고 국시를 준비하는 모습에선 학교에서 국시강의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곳과 국시학습을 전적으로 학생의 자율에 맡기는 학교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4학년 2학기에 국시강의를 시행하는 학교에선 강의를 듣는 시간이 아깝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일례로 울산대에선 학생들의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던 국시대비 강의를 오전수업으로 한정해 수업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듣고 싶은 부분만 자율적으로 들을 수 있으며,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국시강의의 장점으로 꼽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국시에 대비해 사용하는 교재는 대부분 퍼시픽이었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제공했다. 국시성적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모의고사를 성적에 포함하는 학교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부담이 아니라면 모의고사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본과 4학년 2학기를 국시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4학년 2학기에는 임상실습 등 정규 교육과정을 넣지 않고 시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정규 교육과정이 끝나는 시기는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로 다양했다. 임상실습이 가장 늦게 끝나는 학교는 울산대로 9월 중순까지였는데, 본격적인 국시 준비를 늦게 시작하게 되어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 아주대의 경우 2학기에 마이너과목 시험이 있어 여름방학을 국시 준비에 활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다.
국시에 대한 학교의 관심이 커서, 하위권 학생들을 따로 모아 지도하는 학교도 있었고, 내년부터 실습 시작과 종료 기간을 2개월씩 앞당겨 국시를 충분한 시간동안 준비할 수 있게끔 계획하고 있는 학교도 있었다. 특히 이번 조사에 포함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실기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져 실기와 관련된 수업이나 실습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균관대의 경우 이런 기회가 비교적 적게 제공된다는 점이 불만사항으로 제기되었다. 일부학교에서는 국시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모의고사나 실기시험을 이용해,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은 국시 이전에 유급시키는 관행도 존재했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29@e-mednews.com>

심리학과 정신의학, 역사적인 만남

“정신을 통제할 수 있을까?”
2010년 개봉된 영화 <인셉션>에서 제기된 질문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이라는 두 학문이 궁극적으로 추구해 온 목표이다. 정신의학의 Psychiatry는 정신(Psyche)을 치료(iatry)한다는 의미이고, 심리학의 Psychology는 정신(Psyche)을 연구(logy)하는 것이다. 서로 비슷해 보이는 두 학문은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정신의학에 초점을 맞추어 두 학문의 역사적인 만남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정신의학의 탄생

18세기 말 이전까지도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정신과(psychiatry)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병이 18세기 말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정신병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나 정신병자라고 불릴 사람들은 있었고, 사회별로 정신질환에 대처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은 존재했다. 하지만 정신의학의 탄생 이전의 치료법들은 지극히 원시적이었다. 1817년 아일랜드 한 지역구 의원의 기록에 따르면, 광인들은 1.5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에 강제로 들어가야 했고, 그 곳에서 죽을 때 까지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광인들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했으며, 사회적으로 철저히 매장 당했다.
18세기 말, 치료를 위한 수용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럽을 휩쓴 계몽주의 사상은 이성의 힘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계몽의 열기에 도취된 사람들은 광기를 근절할 수 있다는 믿음에 가득 차 있었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정신질환을 치료하고자 했다. 수용을 통한 최초의 정신과적 치료를 제안한 사람은 윌리엄 바티이다. 그는 수용소에 치료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정신질환은 치유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첫 만남

이와 같은 낙관적 분위기 안에서 정신의학사에서 기념비적 인물인 필립 피넬이 등장한다. 계몽주의 심리학과 사회진보철학에 한껏 고무된 정신과 의사 피넬은 정신질환의 치료 가능성과 인도주의적 돌봄이라는 개혁적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넬은 수용소를 통한 감금은 반드시 치료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수용소는 심리적 치료를 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피넬은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피넬 이후 정신의학은 심리학적인 치료를 강조하게 된다. 피넬의 개혁 아이디어는 그의 제자 장-에티앙 에스퀴롤에 의해서 발전된다. 에스퀴롤은 1817년부터 의과대학생에게 정신과 강의를 시작했고 8년 후에는 파리 근교의 대형 수용소의 소장이 되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정열’의 과잉으로 일어난다고 믿었으며. 수용소는 환자들을 불건전한 정열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독일의 에른스트 호른, 미국의 벤자민 러쉬 등에 의해서 정신치료 개혁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 결과 “도덕 치료”라고 불리는 심리학적인 치료가 확립되었다.

1세대 생물정신의학의
등장과 소멸

한편 생리학,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정신질환을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1세대 생물정신의학이 바로 그 시도이다. 이 학파의 교수들은 수용소에서의 지루한 일상이 아닌 마음과 뇌의 체계적인 연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정신질환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19세기 의학계의 전반적 흐름인 임상-병리적 연구를 통한 정신질환 치료를 시도했다.
빌헬름 그리징거는 1세대 생물정신의학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1865년 당시 48세였던 빌헬름 그리징거는 내과와 정신과를 겸하고 있었고,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 정신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생물정신의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정신과의 근대적 모델을 창립하기도 하였다. 그리징거는 수용소 식의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고, 종합병원에서와 같이 환자를 보았다. 이후 많은 대학이 그리징거 식의 클리닉을 도입하였으며 생물정신의학은 점점 정신의학계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환자의 삶으로부터 지나치게 유리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 몰락하게 된다. 반세기에 걸친 신경해부학과 신경병리학 연구는 신경매독을 비롯한 극히 소수의 질병 이외에는 아무런 유용성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뇌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소멸되는 시기가 오자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사라지게 되었다.

에밀 크레펠린과
정신의학의 새로운 전기

생물정신의학의 붕괴를 주도한 사람은 에밀 크레펠린이다. 뇌지도 연구의 선구자였던 파울 플레치흐의 조수였던 크레펠린은 그의 연구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세 달만에 조수 자리를 그만두었다. 크레펠린은 젊어서부터 심리학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실험심리학자인 빌헬름 분트에 열광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생물정신의학이란 현미경이나 쳐다보는 쓸모없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크레펠린은 당시 정신과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독일의 하이델베리크 대학 클리닉 정신과 교수로 임명된다.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는 두 가지 혁신적인 시도를 한다. 첫째는 환자의 병력과 퇴원 당시의 상태를 기록한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징거 식 통합 정신과를 모방하여 뛰어난 연구자들을 기용하는 것이었다.
크레펠린이 불러들인 사람은 19세기 말 독일 신경과학의 거장이 될 프란츠 니슬과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였다. 니슬은 세포핵 염색법을 개발하여 신경조직학에서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이고, 알츠하이머는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을 규명한 사람이다.
크레펠린은 이처럼 유능한 신경해부학자들을 곁에 두고 있었지만, 환자의 정신 기능 측정이라는 심리학적 방식의 연구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한 카드를 바탕으로 질병들을 임상적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크레펠린의 관점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고, 전 세계 정신의학계는 크레펠린의 연구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크레펠린은 시체 부검 등을 통해 해부학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생물정신의학자들과는 달리 살아 있는 환자의 병력을 자세히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크레펠린과 수련의들은 정신 질환을 하나하나 분류해갔으며, 1893년의 교과서에서는 정신분열증을 독립적인 질병으로 설명함으로써 정신의학을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단어의 대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정신분석의 흥망,
그리고 정신의학의 미래

1856년 태어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억압된 성적 요소가 정신 질환의 주된 원인이라는 정신분석법을 주장한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세기말 유럽의 분위기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학문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반대자들을 병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몰지각한 사람으로 비판하였다. 그 결과 카를 융, 오이겐 블로일러 등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지만 정신분석은 더욱더 기세를 넓혀 갔다.
정신분석은 점차 정신의학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학문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갔다. 특히 교육받은 중산층 사람들의 열기에 힘입어 정신분석을 사용하는 정신과 개업의들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갔다.
이는 크레펠린에 의해 구축된 정신의학계를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크레펠린의 조수였던 구스타프 아샤펜부르크는 정신분석은 암시에 지나지 않으며,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신분석이 모든 문제를 성의 문제로만 귀결하려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은 미국에 전파되었고, 아돌프 마이어와 같은 열렬한 지지자들에 의해 미국 정신의학계를 풍미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일종의 단절 시기나 다름없었다. 정신분석은 특정 계층의 자기성찰 욕구를 채워줄 뿐이었고, 수용소의 정신질환자들에게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후 정신분석적 방법은 폐기되고, 1990년대 초의 정신약물학 시대가 열리면서 2세대 생물정신의학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정신의학은 정신약물의 발달과 뇌과학의 발전에 더불어 새로운 융합 학문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의학, 무한한 하늘로 날아오르다

항공우주의학이 뭐지?

11.5 킬로미터 상공을 비행 중인 항공기 안. 술을 마시던 한 승객이 갑자기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토를 해대기 시작한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고, 주변이 동요하는 사이 기내의 다른 승객들도 토를 해대기 시작한다. 기내에 탑승했던 의사는 나름의 진단을 내리지만, 복통과 구토는 기내에서 번져나간다. 드라마 하우스의 한 대목이다.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비행 중 응급환자와 닥터콜. 이 상황에서 의학도로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항공우주의학이 제시한다. 항공우주의학은 고공이나 우주환경에서 인간이 겪는 여러 가지 생리적, 심리적 변화를 다룸으로써 지상과 다른 환경에서도 인간이 정상적이고 안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항공우주의학자는 비행 중의 환자를 다루는 일이 아닌 조종사나 승무원, 환자가 비행에 적합한 지 확인하는 일 등을 하기도 한다. 항공우주의학이 이런 임상적인 분야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유인우주선에서의 응급의료체계나 의료장비, 보호 장비를 개발하기도 하고, 항공기 및 우주선 승무원의 신체 기준을 설정한다. 승무원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 항공기 및 우주선에서의 건강관련 사고를 조사하는 일, 비행 중의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수립하는 일, 기내의 위생과 국제방역 모두가 항공우주의학자의 몫이다. 더 나아가 항공우주의학의 연구결과는 비행기나 우주선의 설계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항공우주의학은 항공우주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항공우주의학자, 무슨 일을 할까?

우리나라에는 2011년 5월 기준으로 99명의 항공전문의사가 있다. 이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받고 항공전문의사가 되었다. 교육과정에는 항공법, 비행에 관련된 질환, 약물, 항공생리학, 항공신체검사 요령, 판정사례 등이 있다. 교육은 무료이며, 하루에 8시간씩 3일간 이루어진다. 항공전문의사 교육을 수료하게 되면 수료증과 함께 항공전문의사 지정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항공전문의사는 항공신체검사 증명서를 발급하는 업무를 하는데, 그 증명서로 조종사나 관제사는 비로소 근무를 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게 된다. 또한 공군항공우주의료원이나 민간의료원에서 관련 환자를 진료하거나, 관련 연구를 할 수도 있다. 항공전문의사는 현재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등의 항공사부속병원이나 인천국제공항의료센터, 대학병원, 한국의학연구소, 항공우주의료원 및 개인 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창공을 가르는 어릴 적 꿈을 마음 속에만 담아둔 채 지나고 있었다면 대한항공우주의학협회(http://www.asmak.or.kr/)나 군항공우주의료원(043-290-5412)을 찾아봐도 좋다.

김준혁 수습기자/중앙
<silmarllion@e-mednews.org>

의료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정부도 외면한 극희귀·난치성 질환 환우들의 삼중고, “병고, 생활고, 가족고”

“태어나서부터 아팠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죠. 천식부터 시작하더라고요. 머리에 물이 차고, 눈과 귀에 이상이 생기고, 경기를 했어요. 상호작용도 안됐고요. 유명하다는 대학병원 다 찾아다녔지만, 병명을 모른대요. 약 2년 헤맨 끝에야 겨우 병명을 알 수 있었어요.”

올해 9살인 영남이의 진단명은 극희귀난치성질환인 ‘소토스 증후군‘, 일명 ‘대뇌성 거인증’으로 불린다. 생후 1-2년 동안의 신체의 과다발육으로 인해 큰 키, 커다란 머리 크기를 가지게 되는 이 병은 학습장애, 정신지체와 발달장애, 낮은 언어사회적응력을 특징으로 한다.

“확진 받은 직후에 이 병이 뭔가 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검색 결과가 없더군요. 2005년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없는 단어였던 거죠. 하지만 미국 사이트에서는 검색이 되더군요.”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이었다. 설상가상 병원치료비와 특수교육비는 가정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머리 수술 3~4번, 척추 수술 2~3번, 구순열 수술, 눈이랑 귀는 자질구레하게 여러 번, 편도선, 요도하열수술 등 많은 수술비에, 특수 교육비 부담까지...”

소토스 증후군은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 대상이 아니며, 희귀·난치성 질환센터의 질명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내에 몇 명의 소토스 증후군 환아가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적은 유병인구로 인해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있는 질환은 비단 소토스 증후군 뿐일까?

현재 약 54개 극희귀·난치성질환 환우들이 ‘질병코드’가 없다는 이유로 산정 특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 통계청은 지난 6월 검토회의를 열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날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원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질병코드 없이는 환자 수 파악이 어렵다. 오는 11월 산정 특례 대상 심사 때 다시 검토 하겠다” 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질병을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KCD)’로 코드화하고 있다. 모든 질병이 A에서 G까지 1만 2000여개의 코드로 분류된다. 138종의 희귀 난치성질환도 위 코드를 통해 분류되어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약 54개 소토스 증후군, 윌리엄 증후군, 어셔 증후군 등 극희귀질환은 여기에 빠져 있다.

국가적 의료비 지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에 등록하여 본인부담금을 10%로 경감 받는 혜택이며, 다른 하나는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에 등록한 이후 보건소에 신청하여 소득 재산 기준을 만족할 경우 나머지 10%까지 면제 받는 방법이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지원 모두 상병코드와 질환명이 일치 할 때만 지원을 하고 있어, 병명 또는 코드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신현민 회장은 본인이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권익 증진과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는 희귀 난치성 환우들의 대변자다. 그는 “환자수가 많지 않아 보험 재정에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며, “극희귀질환이라는 새로운 질병코드를 만들거나 질병별로 일일이 코드화가 어렵다면 비슷한 부류의 기존 코드에 포함시켜 지원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수진 기자/한양
<sujin87@e-mednews.org>

영리병원, 다시 이슈화된 이유는?

영리병원, 각 집단의 이윤 확보를 위한 각축장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20주년을 맞았던 2007년, 이 회장은 한국의 제조업 위기를 선언하며, ‘샌드위치 위기론’을 제시했다. 한국 제품은 품질에서는 일본에 뒤쳐지고 가격에서는 중국에 밀려 국제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 회장이 제시한 방향은 그동안 키워왔던 제조업이 아닌, 금융과 서비스 산업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삼성은 세계적인 바이오제약 업체인 미국의 ‘퀸 타일즈’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들 합작사가 만들 바이오위탁생산시설은 바로 인천 송도에 들어설 예정이다.

정부 또한 제조업 위기를 지적하는 삼성에 목소리를 같이 했다. 2005년 1월, 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교육과 의료 등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서비스산업 관계 장관회의’에서 영리병원 허용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이명박 정부에 이르자 훨씬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10월까지 추진 계획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계획안은 2007년 2월 삼성 경제 연구소에서 내놓은 ‘의료서비스 산업 고도화 과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의 영향으로 의료 민영화에 경각심이 높았던 여론은 서명운동과 촛불 시위로 계획안 추진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했다. 이에 정부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이 대통령은 두 차례 사과문을 통해 ‘의료 민영화는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정부는 2009년 초 다시 ‘미래 한국을 이끌 신 성장 동력’에 ‘글로벌 헬스 케어’ 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개별 법안을 추진시켰다. 네 달 뒤,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는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여부, 의료채권 발행, 의료기관 인수합병 근거 마련, 건강관리서비스의 산업화 등이 논의됐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와 제주특별자치도에 도입 예정인 영리병원은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의 본격적인 시발탄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토록 강력하게 영리병원을 추진하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성장에 있다. 영리병원을 통해 산업 부가가치와 GDP 향상이라는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 도입 배경과 대응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1년에 국민건강보험 총 진료비가 40조 원인데, 의료산업이 1년에 25% 성장하면 10조 원의 추가 매출이 발생해 GDP 1% 추가 성장으로 반영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이루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병원이 시장 논리 하에 놓이게 되면 의료 행위는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수익이 낮은 보험진료는 2류 진료로 전락하게 되고, 병원이 권장하고 투자하는 일반진료가 주 진료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국민들에게 고액의 진료비로 돌아오게 된다.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바도 바로 이 같은 의료비 폭등이다. 실제로 외국 324개 병원을 연구한 결과 영리병원 의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 높았고, 메디 케어를 비교한 대표적 연구에서도 영리병원 의료비가 16.5% 높았다. 뿐만 아니라 영리병원의 운영을 통해 매출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수혜는 국민이 아닌 대기업에 가장 먼저 돌아간다. 의료 민영화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특혜를 받게 되는 것이 삼성이다. 현재 송도에 입성중인 삼성국제병원(삼성증권·삼성물산) 외에도 각 곳에 포진해 있는 삼성 계열사들은 민간보험(삼성생명), 원격진료 정보망 구성(삼성SDS), 원격진료 단말기(삼성전자) 등 영리병원의 귀추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SK, 현대 등 다른 대기업들 또한 헬스 케어 사업에 뛰어듦에 따라 정부의 법안은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강한 추진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사과문으로 잠잠하던 영리병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시 이슈화 시킨 것은 ‘보수 언론’이다. 2004년 참여 정부의 정책에 <조선일보>가 의료 관광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중앙일보>가 영리병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중앙일보>는 지난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메디컬 코리아 해외서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영리병원 허용을 옹호하는 기획기사를 매일 1면에 배치했다. 이 기획기사는 영리병원의 필요성과 IT·BT 산업의 융합 그리고 원격진료와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의 시급한 통과를 핵심으로 한 내용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같은 달 19일 청와대는 “제주도와 송도 영리병원의 차질 없는 실시”를 지시 했다.
이 같은 언론의 영리병원 옹호 기사에 대하여 각 시민 단체들은 “삼성의 홍보지 노릇을 하고 있다.”며 <조선일보>에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언론의 영리병원 지지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사업자들의 이해관계도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도 특별법’ 개정안에는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과 함께 방송에 의료 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업자들은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 전문의약품·의료기관 광고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광고시장에서 병원이나 전문의약품 광고 분야는 마지막 블루오션이 아닐 수 없다.
중, 대형 병원들의 의료시장 변화 욕구도 영리병원 도입에 한 축이 되고 있다. 기업 병원의 도입 이후, 기업 병원에 대한 제도적 규제나 병원의 수가 인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환자들마저 재벌 병원으로 향하자 일반 병원은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기업 운영 형 병원의 경우 기업의 자본으로 병원의 시설, 장비 투자가 자유로운 데에 반해 일반 병원에서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책정되는 낮은 수가로 투자를 위한 자본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일반 병원들에게 영리병원은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과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구미가 당기는 대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병원의 요구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 공급 시장이 자유 경쟁화 될 경우 병원들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보다 안정적인 자본 확보를 요구하게 되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당연지정제로는 그런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의 눈은 자연히 민간 의료 보험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병원의 자본 확충을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또한 필수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의료 산업화’,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추진된 의료민영화를 위한 핵심정책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각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 의료 민영화 사업의 시작에 현재 인천 송도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시험대에 올려져있다. 여, 야당의 치열한 공방으로 매 임시 국회마다 흐지부지 되었던 영리병원 도입. 오는 9월 정기 국회에서 논의될 도입 방향을 각 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고유라 기자/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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