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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 교양에서 필수로

“이제 의학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이것은 의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분이다. 이 선서문은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적 지침을 담고 있다.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다른 어느 직업보다 윤리가 중요시되는 직업이 의사이다. 최근에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에서 의료윤리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의과대학들이 신입생을 뽑을 때 성적이 아닌 인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면접 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인성교육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윤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윤리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대표(명 이비인후과 원장, 이하 이 대표)는 “환자의 자율성과 인격,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의사를 당당하고 격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지식이 많다고, 나이가 많다고 윤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꼭 지켜야 하는 것을 꼭 지킬 때 내가 더 보호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그는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래에 의료계에서 여러 가지 비윤리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상황에서 의료윤리의 강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대표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해 쓴 글에서도 “의사는 그 어느 직역보다도 고도의 윤리가 요구되는 전문직”이라며 의대생들의 조속한 처리와 재발방지를 위한 윤리교육의 강화를 주장했었다.
의료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환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 대표는 “환자를 진료할 때나 의과대학 교육과정, 또한 수련과정에서 생기는 윤리적인 문제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지 못했다.”면서 윤리라는 단어가 꼭 알아야만 하고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기에 의료윤리의 대중화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또 시대적 흐름뿐 아니라 의사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윤리라는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의료윤리에 관한 지식들을 공부해야 한다”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눌 시간이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라고 말했다.

염승돈 기자/인하
<youmsd@e-mednews.com>

각양각색 학교별 해부실습 탐방기

우리가 부푼 마음을 안고 의대에 입학하면서, 혹은 학창시절에 의대 진학을 꿈꾸면서 가장 많이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 중에 하나는 ‘가운을 입고 해부 실습실에서 카데바를 직접 해부’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학 입학 전 ‘저 의대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이면 ‘해부 같은 것 할 수 있겠어?’ 하는 질문이 곧바로 따라올 정도로 의과대학의 상징이기도 한 해부 실습! 전국 각지의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실습이 진행되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아직은 포르말린 냄새가 힘겨운 초보 해부실습생과 함께 들어보자.

성균관대

성균관대는 학부와 의전원 체제를 병행하기 때문에, 본과 1학년 1학기 내내 실습을 함께 진행한다. 6~7명이 한 조가 되고, 실습 시작 전 간단한 묵념 정도의 식을 거행한다. 해부학은 1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두 교수님이 수업을 해 주시는데, 수업내용은 비슷하지만 실습은 교수님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A 교수님은 매우 힘들고 빡빡하게, B 교수님은 매우 널널하게 진행 하신다고 한다.
일단 A 교수님의 실습은 수요일 오후에 시작해서 밤 12가 되어서야 끝나고, 그날 다 못한 조는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안 되면 주말이라도 이용해 주어진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과제는 근육, 신경, 혈관 등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이를 완수하려면 신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지방조직을 다듬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조마다 다르지만 주당 20시간 정도를 해부에 쏟아 붓게 된다. A 교수님의 교수법 중에는 “digit anatomy”라는 것이 있다. “몸으로 익힌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교수님의 철학으로 제안된 교수법으로 몸 안의 신경이나 혈관 구조를 손가락 모양에 대입하여 외우는 것이다. 따로 교수님 앞에 불려나가 손가락 모양을 만들고 설명하는 시험도 치고, 효과도 있다고 하니 A 교수님의 철학과 교수법이 통하는 듯하다.
반면 B 교수님은 실습시간에 ppt로 수업하시고 나서, 한 번 열어보면 수업이 끝난다고 한다. ‘어떤 구조물을 찾아라’가 아니라, ‘한번 확인해봐라’고 하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B 교수님이 수업하게 된 학년에는 “휴학하려면 2년 휴학하지, 1년 휴학은 하지마라”는 뼈있는 농담도 한다고.

울산대

의과대학 중 많은 학교에서 3+9체제를 도입하면서 교과과정이 바뀌었는데, 울산의대도 그 중 한 곳이다. 작년까지는 예과 2학년 2학기에 해부학 수업을 먼저 하고, 본과 1학년 1학기에 개강일부터 집중적으로 4주동안 실습을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예과 2학년 2학기 한 학기에 걸쳐 수업과 실습을 주 1회씩 진행하여 병행하는 체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실습 첫날, 교수님의 묵념사에 맞추어 10초 정도 묵념의 시간을 가지는 것 외에는 특별한 행사를 따로 하지 않고, 시신 한 구당 6~7명의 학생이 한 조로 배정된다고 한다. 처음 한 두시간 정도는 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실습이 진행되지만, 그 이후부터는 일상적인 이야기나 가벼운 농담 정도도 주고받는 분위기라고.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 주에 배운 내용을 실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각 실습시간 전에는 대한해부학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용으로 만든 동영상의 해당 내용을 시청한 후 실습에 들어간다. 실습 중에는 교수님과 조교선생님께서 베드 사이를 돌아다니며 진행 상태나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을 체크해 주신다. 조마다 시신의 상태(예를 들어, 대장암 수술을 받아 대장이 없는 경우)나 성별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서로의 조를 왕래하기도 하고, 특별한 변이(anatomic variation)가 있는 경우에는 교수님께서 다른 조 학생들을 불러 알려주시기도 한다. 각 시간을 마칠 때는 구조물들을 모두 찾았는지 확인하고 가끔 구두시험을 치기도 한다.

이화여대

이화여대 역시 대략 5명이 한 조로 본과 1학년 1학기, 한 학기 내내 실습이 진행된다. 기독교학교라 해부학 실습 첫날, 본교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기부해주신 분들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실습이 끝나면 화장식을 하는데 학생들이 거의 100% 참여한다고 한다.
실습 분위기는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모두들 열심히 참여하고, 여학생들만 있다 보니 무서워하거나 실습하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런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매 실습마다 돌아가며 그날 실습할 내용을 공부해 와서 알려주고 지시해주는 ‘브레인’이 한 명씩 있고 구조물을 찾기 위해 조직이나 지방을 제거하는 ‘포크레인’들이 있다.
이화여대에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여학생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다른 학교에 비해 실습 전 준비 단계가 타 학교에 비해 조금 복잡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보통 가운이나 해부복, 라텍스, 마스크 정도를 착용하는데, 머리비닐(머리카락에 냄새 배는 것을 방지), 해부용 트레이닝 복이나 우비(해부복 입기 전에 착용), 비닐 앞치마, 비닐 팔토시(해부복 위에 착용)까지 추가로 착용한다고 한다.

중앙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최고의 해부학 강의를 자부하는’ 중앙대의 실습은 해부용어 한글화를 주도하신 ‘대왕님’이라고 불리는 교수님 한 분이 주로 수업을 하시고, 학생들과 강의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셔서 자칭, 타칭 세계 최고의 강의라 불린다고 한다. 학부생은 본과 1학년 1학기 내내 해부학 실습을 하고, 의전원은 본과 1학년 2학기 때 7주 동안 해부학만 하는 블록 학기 때 실습을 하게 된다. 본과 개강 첫 날, 긴장되고 매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카데바가 있는 6층 해부학실습실로 올라가서 간단한 묵념을 하는 식이 진행된다. 이 엄숙한 자리에서 식이 끝난 후 어떤 학생이 박수를 치는 바람에 교수님과 학생들의 눈총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 조는 7명으로 구성되고, 여자가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조당 2명씩 따로 배정한다.  각 조에는 모든 학교가 그렇듯 무엇을 할지 지시하는 브레인, 포크레인, 주변에서 서성이는 ‘멤브레인’이 있다고 한다. 3-4명은 실습실에서 실습을 하고 그 밖의 조원들은 실습실 옆 조그마한 컴퓨터 방에서 3D CD로 아틀라스 공부를 하여 정부가 갑자기 ‘칼값’을 깎은 까닭은

멤브레인의 과다한 증가를 막는다고 한다. 실습 중에 교수님 두 분이 도와주시고, 교수님들이 직접 해주신 부분에서 시험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서 각 조로 교수님을 모셔오기 위한 여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눈치경쟁도 치열하다. 그리고 역시 세계 최고의 해부강의를 자랑하는 만큼 수업 시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부학 실습이 있는 월, 수, 금은 보통 7시 반이 넘어 끝이 나며, 특히 첫 한 달은 토요일도 수업과 실습을 한다.

대구가톨릭대

이 학교는 다른 학교와 조금 다르게 해부학 실습을 한다. 주된 실습은 본과 2학년 때 이루어지지만, 예과 2학년 때 4번 정도 예2 6명과 본2 튜터 2명을 한 조로 구성하여 근육, 혈관, 신경, 장기 등에 대해 관찰하는 실습을 한다. 각 장기들의 구조적 특징, 다른 장기들과의 위치관계, 근육끼리의 위치관계 등 책에서는 헷갈릴 수도 있었던 공간적인 특징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저녁 먹고 늦은 시각까지 진행되는 이 실습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분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라’는 교수님의 가르침과 선배들의 실습 모습을 통해 카데바에 대한 존경심과 해부 실습 분위기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게 한다. 실습 중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선배들은 간간히 문제를 내고 후배들은 그 문제에 대답한다. 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인 J양의 말에 따르면, 틀릴까봐 동기들과 눈치를 주고받으며 대답을 했던 것이 골학 시험에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하니, 분명 효과가 있는 실습법인 듯하다.

이렇듯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각 학교의 해부 실습 시간. 실습을 하게 되는 시기나 그 실습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인체에 대해 공부하는 마음만은 모두 같지 않을까?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

의대생의 군복무

83호(2011.10.10)/의대의대생 2011. 10. 18. 20:05 Posted by mednews

의대생의 군복무

대한민국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무에는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환경보전의 의무가 있다. 이 중 특히 남자 의대생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부분이 국방의 의무이다. 일반적으로 성인 남자는 육군, 해군, 공군, 공익근무나 방위산업체 등의 형태로 이 의무를 진다. 하지만 의대생은 좀 다른 방법으로 복무를 할 수 있다. 보통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가 있는데, 이번 기사에서는 이 두 가지 복무 방법과 함께 또다른 특별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 군복무체제에서는 졸업을 한 모든 미필 남자 의대생들은 국방부에 소속이 된다. 중위 TO와 대위 TO로 나눠지는데, 중위 TO는 대학 졸업 후 또는 인턴을 마치고 지원 가능하고, 대위 TO는 레지던트 수련 후에 지원 가능하다. 이 대위 TO에는 각 과별로 TO가 따로있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 같은 과는 TO가 많고, 산부인과 같은 과는 TO가 적다. 이 중위 TO와 대위 TO가 무작위로 다 차게 되면 나머지 지원자들은 보건복지부에 소속이 되어 공중보건의를 하게 된다.

실제 부대에 배치되는 군의관

군의관은 그 사전적 의미대로 ‘군대 내에서 보건·방역·진료업무를 담당하는 장교로 임관된 의사’이다. 즉 일반 부대나 군 병원에 배치되어서 보건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장교이다. 일반 육군의 경우 군 복무 기간은 21개월인데 반해, 군의관은 3사관학교에서 8주간의 기초군사 훈련을 받고 난 후 36개월의 군복무를 하게 된다. 군의관이 되려면 의사 면허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군의관으로 입대하면 중위나 대위가 되는데, 중위는 졸업 직후나 인턴 수료 이후에 입대한 경우이고(즉 일반의), 대위는 전문의까지 취득하고 입대한 경우이다. 군의관은 장교 신분이기 때문에 장교급의 월급(기본급 기준 중위 약 110만원 대위 150만원)을 받는다. 2011년 현재 의과계열 군의관은 4461명이 있다.

계약직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사

공중보건의사(공보의)는 ‘병역의무를 군대에서 시행하지 않고, 3년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이다. 이 공보의는 계약직 국가공무원으로 3년간의 종사 기간을 마치면 병역법에 따라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되며, 의료혜택이 취약한 농어촌 지역의 보건소에 주로 배치된다. 공보의는 군의관과는 조금 다르게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난 후 36개월간의 군복무를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군의관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공보의의 장점이라면 공식적인 근무 시간은 9시에서 6인데, 비교적 상황에 따라 자유로운 편이서 환자가 없을 땐 책을 읽는다던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서 근무하냐에 따라 고생의 정도가 다르다. 섬같이 도심과 떨어진 곳에서 근무한다면, 문화적으로는 좀 답답한 생활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교 졸업 후나 인턴 수련 후 공보의를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공보의를 마치고나면 다른사람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병원수련을 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2011년 현재 의과계열의 공보의는 2925명이 있다.

정확하고 공정한 신체검사를
위한 징병검사전담의사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러 병무청에 가면, 여러 진료과별로 의사들이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근무하며, 신체검사 대상자들을 진찰하는 의사들이 ‘징병검사전담의사’(징병전담의)이다. 이 징병전담의도 공보의와 마찬가지로 4주간의 군사훈련 후 36개월의 복무기간을 가진다. 징병전담의는 의대,치대를 졸업하고 면허를 소지한 의사는 신청 가능하지만 한의과계열을 졸업한 한의사는 신청 불가능하다. 2011년 현재 징병전담의는 124명이 있다.

외국에 나가 의료활동을
펼치는 국제협력의사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봉사활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계열이다. 세계 각지의 의료인력이 부족한 나라에 파견나가 의술을 펼치는 ‘국제협력의사’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속하며, 먼저 4주간의 군사훈련 후 36개월동안 근무를 하는데 이 중 28개월을 해외에서 근무한다. 주로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등의 개발도상국에 파견된다. 파견 직종으로는 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안과, 외과, 정형외과, 한의사가 있다. 2011년 현재 국제협력의사는 54명이 있다.

김영태 기자/원광
<funky@e-mednews.com>

헐리우드 침공을 준비한다

울산의대 영화제작 동아리 ‘헐침(HULCHIM)’인터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을 꿈꿔봤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보통 영화를 보는 것에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 직접 영화를 만드는 수상한 의대생들이 있다. 이름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헐침(HULCHIM), 뭔가 심상치 않다. 헐침의 회장을 맡고 있는 울산의대 본과 2학년 김민수 씨와 감독 김남우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아리 이름이 특이한데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아, 헐리우드 침공의 줄임말이에요. 영화를 찍어서 헐리우드를 침공하자, 뭐 그런 뜻이죠. 진짜 그러겠다는 것보다도 꿈은 크게 잡자는 의미에서.(웃음)

영화제작동아리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예과 1학년부터 본과 1학년 까지는 촬영 보조와 연기를 하고, 본과 2학년이 되면 감독을 맡아서 촬영이나 편집 등 주된 작업을 맡아요. 이렇게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영화 촬영, 편집까지 해서 일 년에 영화 한 편씩 만들고 있어요. 완성된 영화는 울산의대 축제 때 상영하고요. 재작년에는 스릴러물을 촬영했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해서 본선까지 올라가기도 했었어요.

연기자를 따로 뽑는 것이 아니라 헐침 부원들이 직접 출연한다고 하는데, 부원들을 뽑을 때 연기력도 보시나요?
아니에요. 연기가 정말 하다보면 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그랬던 친구들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잘해요. 끼가 있는 친구들은 주연 맡아서 하고, 또 연기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도 사실 4년 동안 출연은 별로 안했어요, 마이크나 조명 드는 거 많이 했어요.

학과 공부 때문에 바쁘지 않으세요? 주로 언제 촬영하시나요?
학기 중에는 모여서 촬영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주로 방학 때 1주일정도 모여서 촬영을 하죠. 영화를 찍기에는 꽤 빡빡한 일정이기 때문에 1주일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힘들게 촬영을 해요. 그렇게 방학 때 촬영을 하고 학기 중에는 편집이나 부족한 장면을 보충 촬영하고, 오늘도 한 장면 촬영하고 왔어요.

촬영 장비 같은 건 어떻게 하세요? 영화 제작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카메라는 빌려서 촬영해요. 조명이나 마이크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요. 카메라 대여하는 비용 같은 것이 만만치는 않죠. 그래도 저희가 회비를 걷기도 하고, 선배들도 지원해 주시는 것도 있고, 지도교수님도 많이 도와주세요. 마이크도 지도 교수님께서 사주신 거예요.
말씀들어보니까 교수님께서도 학교 다니실 때 영화를 찍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애정이 있으신 거 같아요. 매년 영화에 한 장면씩이라도 꼭 출연해 주세요. 바쁘셔도 촬영 해주시고. 작년에는 주인공이 나이 들어서 회상하는 장면에 나오시고, 올해 영화에는 10년 전에 죽은 형사 역할로 나오셨어요. 연기도 잘하시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시면서 아이디어도 주시고요.
이번 영화는 이제 편집까지 거의 마치셨다고 하시는데, 간략히 소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주인공이 의대생인데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동생과 둘이 살아요. 그런데 동생이 어느 날 납치돼서 납치한 범인을 쫓는 이야기에요. 범죄 스릴러에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이번 영화 찍을 때는 아닌데 이년 전에 한여름에 산에서 피 흘리는 장면을 찍은 거에요. 그런데 그 때 피처럼 분장한 게 좀 달았는지, 산에서 개미들이 얼굴위로 다 올라와서 고생한 적이 있어요. 또 작년에는 키스신이 있었는데 남자 역할 맡은 후배가 CC여서, 결국 구도만 잡는 걸로 했죠.(웃음)

이번 영화 찍으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올 해 제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전달력이에요. 저는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배우가 연기를 잘 해도, 관객들에게 대사전달이 잘 되지 않거나, 스토리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영화라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일단 저는 영화를 처음 찍어 보는 초짜 감독이잖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정말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충실해진 다음에, 배우의 연기력이라든지, 카메라의 앵글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도 배우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전화하는 장면에서는 전화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배우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잘 들어오는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또 저는 예술 영화보다는 사람들 다 좋아하고 많이 보는, ‘흥행하는 영화’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를 찍는 것이 처음이실 텐데 힘들지 않으세요? 주로 촬영 방법 등은 어떻게 배우시나요, 영화제작을 위해 따로 공부하시는 것이 있나요?
도서관에서 영화 관련 책을 빌려보고 하기도 했지만 사실 초보자에게 맞는 책을 찾기는 힘들더라고요. 전에 감독하셨던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고요. 제가 이번 영화 찍으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자료들은 제가 봤던 모든 영화와 드라마들이었어요. 그 전에 영화 볼 때는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나 배우의 연기 같은 부분을 봤어요. 그런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입장에 서니깐 봤던 영화들도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카메라의 구도라던가 감독의 의도, 편집한 타이밍 등 여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특히 겨울방학이 시작하고 영화촬영을 할 때까지 1달 정도는 매일 영화, 혹은 드라마들을 봤어요. 거장들의 영화나 드라마를 주로 보고, 시나리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거나, 영화 구도가 특징적인 것들도 찾아보고요.

영화제작동아리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문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헐침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다면?
특별한 문화요? 엠티에서 연기 배틀을 해요. 대사나 장면 같은 걸 준비해가서 주면 10분 만에 대사 외우고 준비해서 나름대로 해보는 거죠. 저번 겨울에는 한참 인기 있던 시크릿가든 따라 하기 했는데 후배들은 좀 괴로울지 몰라도 저희는 재밌었어요. 또 영화 촬영한 거 보면서 의견도 나누고, 예과 때는 같이 영화보러도 많이 가요. 울산하고 부산이 가까우니까 부산 국제 영화제도 같이 가구요.

영화제작이라는 한 가지 목표가 뚜렷하니까 결집력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죠. 학기 중에는 잘 못 모이더라도 영화 찍을 때만큼은 정말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같이 만든 영화 보면 뿌듯한 것도 있고요. 연기도 하고, 촬영 보조도하고, 직접 찍어보고 하면서 애정이 쌓이는 것 같아요.

헐침에서 활동하시면서 제일 좋았던 순간이나 뿌듯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리고 헐침만의 매력이 있다면?
저는 요즘인거 같아요. 영화 직접 찍은 거 편집하면서 보니까 정말 뿌듯해요. 처음에는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었는데 영화 찍고,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 보니까. 후배들도 영화 상영할 때 자기가 연기한 거 보면서 재밌어하고, 엔딩크레딧에 자기 이름 올라가는 것 보면 뿌듯하죠. 학생 때 영화 찍는 게 쉽게 해볼 수 있는 경험은 아니잖아요. 뭔가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젊으니까, 또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해보는 거죠. 이런 저희의 열정과 노력이 영화라는 결과물로 나오니까 정말 나이가 들어서도 특별한 추억이 될 거 같아요.
서우림 기자/한림
<wr1208@e-mednews.org>

의료봉사, 도움보다 민폐?

사례 1. 복지관에 도착한 A양, 쭈뼛쭈뼛 봉사활동팀 팀장님에게 다가가 해야 할 일을 묻는다. 뭘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팀장님도 학생에게 시킬 일이 없는 건 매한가지. 말하진 않지만 둘 사이에는 답답함이 맴돈다. 결국 A양이 한 일은 지체장애인들과 얘기하고 도와드리는 일, 그러나 이것도 어색하다. 학교에서 의료봉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오기는 왔지만 자신이 민폐가 아닌지 걱정되고 답답하다.

사례 2. 병원 앞에 도착한 B양, 문을 열고나니 짜릿한 소독약 냄새가 코 끝에 스친다. 당당하게 봉사활동팀 팀장님께 다가가 할 일을 묻는다. 그러나 B양에게 주어진 것은 걸레, 병원 계단에 있는 먼지 낀 소화기를 닦는 것이 B양의 임무였다. 1층부터 9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소화기에 있는 먼지를 닦다보니 이게 의료사회봉사인지 차츰 서글퍼진다.

‘의료사회봉사’라는 과목?
‘의료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박애정신과 봉사정신을 직접 현장에서 체험하도록 한다.’는 취지하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서남대, 중앙대, 한림대 등 여러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주로 봉사활동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을 채우거나, 리포트 제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하는 형식이다.

취지와 현실 그 사이에서
위의 표에서 보듯이 각 의과대학은 학생들이 장차 봉사하는 마음을 지닌 의사로서 성장하도록 의료사회봉사과목을 개설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각 대학병원, 지역사회 봉사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많은 수의 의대생들은 그 속에서 봉사하는 마음의 숭고함과 봉사정신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배우게 될 숭고한 봉사정신과는 다른 상충하는 이해들로 많은 갈등이 빚어진다. 기관들은 단지 채우지 못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여러 곳의 단체를 돌며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주로 예과학생들이 하는 봉사이기 때문에 전공과 관련된 봉사가 아닌 쉬운 일을 주로 맡기게 된다. 또한 학교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했는지를 평가할 뚜렷한 기준이 없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는 봉사활동 시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학교와 봉사기관의 입장 차이에 등이 터지는 것은 학생들이다. 사례1과 사례2처럼 학생들은 병원에서는 차트 정리, 차트 전달, 청소 등의 일을 주로 하게 되고, 복지관에서는 장애우분들과 말벗하기, 청소 등을 하게 된다. 서남의대 S씨(21)는 ‘방학동안 어느 국립대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한껏 기대를 하고 갔는데 맡은 일은 침대 정리, 얼음 주머니 만들기 등이었습니다. 의료봉사라고 해서 환자와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원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어 단순히 시간소모라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 없었습니다.’라고 답답해했다. 좋은 취지하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 그러나 학교와 봉사기관의 엇갈리는 입장 속에 결국 시간때우기식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실이다.
참가할만한 활동
취지와 다르게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의료사회봉사, 학교와 기관 사이의 불협화음이 학생들을 봉사시간만 떼쓰는 아이들로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취지에 부합하는 진정한 봉사활동을 직접 찾아 나선 학생들도 있다. 지난 8월 섬 봉사활동에 참가한 서남의대 K씨(21), K씨는 봉사활동을 갔다 온 뒤 “나눔으로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다음 표에서 봉사활동을 선택할 때 참고하면 좋을 몇 가지 활동을 소개해 두었다.

문한빛 기자/서남
<shteme@e-mednews.org>

국시 문제 공개 확정, 무엇이 달라지나

보건복지부는 올해 6월 28일에 “제 76회 의사국가시험 (2012년 1월 시행) 필기 기출 문제”를 공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복지부는 “일부 응시자들이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사실상 공개하고 있으며, 저작권을 무시한 출판사들이 기출 문제를 복원, 판매하는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어 기출문제를 공개하기로 결정 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국시 기출 문제 공개와 더불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보완책을 제시했다. 첫째, 출제 문항수의 25배를 보유하고 있는 문제은행 문항수를 30배까지 늘리며, 둘째, 단순암기 문제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R형’ 문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셋째, 문제 공개로 인해 정답 이의신청도 증가할 것으로 보여 응시자들의 이의 신청 기간을 신설했다.

이에 따른 2012년 제76회
의사 국가시험 변경사항

1) 시험 문항수 : 500문항 -> 450 문항
2) 확장결합 (R형) 출제문제 비율 변경
3) 시험문항·가답안 공개 및 이의 신청 제도 신설
시험 시행 후 3일 이내 한국 보건 의료인 국가 시험원 홈페이지 전용게시판 이용
애초 복지부는 “단순 암기식 문제를 지양하고, 종합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풀 수 있는 문항으로 차차 바꿔나갈 예정”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더불어 “2012년 1월 의사국시에 바로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출제 형식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국시는 수험생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단계적 변화로 보여진다.

뒤따르는 2013년도 국시는?

국시 기출 문제 공개는 2012년 수험생보다 2013년도 수험생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첫째, 위와 같은 출제 양식의 변화, 둘째, 기출 문제집 출판 여부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국시원은 지난해 12월, 기출 문제집을 출판한 출판사들을 ‘저작권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 출판사들은 고소 이후에도 2011년 1월 국시 기출 문제집을 출판했다. 하지만 기소가 결정될 경우 문제집을 출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현 본과 3학년 학생들은 “기출 문제집 없이 국시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가지 대응책이 대두되고 있다. 국시원이 1) 기출문제와 답만 공개하고 문제집은 출판하지 않는 방안, 2) 일반 출판사들과 판권 계약을 맺어 합법적으로 출판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안 3) 국시원이 직접 기출문제집을 출판하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 의대생 신문에서 답변을 의뢰한 결과, 국시원은 2011년 9월 26일 “2012년도 기출문제와 관련하여 향후 국시의 변화 추이에 관해 공지한 것 이외에 특별한 변동사항은 없을 것으로 사료되며, 현재 국시원에서는 자체 출판계획이 없고, 현재 출판사와 판권계약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또한 기출 문제집을 출판해 온 출판사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피했다.

오수진 기자/한양
<sujin87@e-mednews.org>

학생들의 목소리 담은 의대평가보고서 추진

‘우리학교는 교육과정에서 이 부분만 바뀌면 최고인데!’, ‘우리학교 시설에 학생들은 다들 만족하고 있나?’ 의과대학에서 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각 학교의 교육과정, 학생복지 그리고 시설에 관해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보고서로 작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는 내년부터 새롭게 진행되는 대학평가에 학생보고서 항목을 신설하여 이를 대학평가에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학생보고서의 방식이나 문항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개별 학교의 작성까지 직접 학생들이 담당하게 되며 현재 이를 총괄해서 진행할 보고서위원단을 모집 중에 있다.

■ 학생보고서의 도입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은 지난 2000년도부터 개별의과대학평가를 통해 의학교육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의학분야 유일의 평가전문기관이다. 2004년까지 1주기 평가에서는 41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의학교육의 표준화를 위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0개의 학교의 의학교육 선진화를 위해 평가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시설확충, 교육과정개선, 교수확충에 있어서 전반적인 향상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육의 목표이자 중심이 되어야 할 학생의 목소리가 한 두 시간의 구술면담으로 제한된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평가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는 주로 교수진과 행정직원이 작성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기에는 한계적이었다.
따라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Post-2주기 평가사업에서는 평가인증의 국제화를 목적으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 평가 문서인 학생자체평가보고서를 신설하여 보고서의 형식으로 학생들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유의할 점은 본 보고서는 서열화를 위한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자기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정성적 평가라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 학생들이 자신의 대학에 관한 보고서를 편찬하게 되는 시스템은 이번 우리나라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 학생중심의 교육환경으로!
이번 보고서는 단순히 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교육의 전반적인 틀을 관찰하고 자신들에게 맞게 변화를 모색해 볼 수 있다는데 있어서 학생의 입장을 명확히 표현 할 수 있으며 향후 의학교육에 관심을 갖게 될 사람들이 리더쉽을 훈련해 보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데에서 본 보고서가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임기영 의과대학 평가인증단장은 “학생자체평가보고서는 교육의 수요자이자 주체인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의과대학에서 제공되는 의학교육의 내용과 질, 그리고 교육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기회입니다. 보고서 작성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의학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보다 분명히 알게 됨으로써 능동적 학습을 위한 동기 및 책임감이 강화될 것이고, 학교와 학생 간의 쌍방향 의사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학교발전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대학의 교육 현황과 국제 기준을 파악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감으로써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본 학생보고서의 의의를 밝혔다.
 
■ 참여하고 싶다면?
 현재 전국의대연합에서는 전국 의대생, 의학전문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학생보고서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위원회는 10명 내외로 운영될 계획이며 역할은 첫째, 설문조사 및 학생보고서의 형식과 문항선별 등의 기초작업과 둘째, 개별학교의 보고서 편찬 지원 등에 관한 평가관리 및 보고작업이다. 자세한 내용은 각 학교 학생회장에게 안내문의 형태로 발송되어 있으며 평가위원의 대표성을 갖추기 위해 각 학교 학생회장의 신임절차가 필요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각 학교 학생회장에게 안내서와 함께 동봉된 지원서를 받아 10월 12일까지 지원서를 작성하여 전국의대연합 학술국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지원자가 많을 경우 지역의 안배와 학교간의 균형을 맞추어 선발되며 15일에 학생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허은실 기자/아주
<hershi1201@e-mednew.com>

해외의대생 전격탐구 ①

독일의 의대생을 만나다

분데스리가, 차두리,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단어뿐 아니라, 알고 보면 독일은 의술의 역사 또한 깊은, 알면 알수록 멋진 나라이다. 우리는 흔히 하우스, ER등의 미국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해외병원 실습을 통해 외국의 의대나 병원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궁금한 1%가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족보를 보고, 계속되는 시험에 힘들어하며, 때로는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기도 하는,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의대생일까 하는 점이다.

독일 전역에는 30여 개의 의대에 만 오천명 정도의 의대생이 있다. 각 학교마다 학생 수나 역사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의대에 입학해 성공적으로 한국을 알리며 멋진 의사로 거듭나고 있는 이하람양에게 독일의 의대생의 삶을 들어 보았다. 그녀는 지금 프라이부르크(Freiburg) 의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먼저 독일 의대는
교육과정이 어떤지 궁금해요.

우선 의대에 진학하려면 Abitur라는 우리나라의 수능에 해당하는 시험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고 의대에 합격했다고 해도 꽤 많은 학생이 바로 진학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비로소 의대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의대보다 나이의 폭도 훨씬 다양한 편입니다.
의대에 진학해서도, 같은 과목이라도 상당수 경우에서 다양한 수업이 동시에 개설되기 때문에 선택해서 들을 수도 있고 이런 점 때문에 상당히 유연한 시간표 구성이 가능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휴학을 하거나 학점을 줄여서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많은 학생들이 재학 중에 박사과정연구를 병행하기도 하죠. 저도 다음 학기에 수업은 2개만 신청하고 비교적 큰 규모의 실험실 연구에 참여하려고 해요. 결론적으로는 입학은 같이 하지만 졸업년도는 천차만별이 되는 셈이죠. 

독일 대부분의 의대는 같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고 그 순서에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부분 의대는 학기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국의 예과에 해당되는 4학기와 이후 이어지는 6학기로 이루어진 본과가 있습니다. 예과의 경우는 2년에 걸쳐 조직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해부학 같은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같은 다른 분야의 과목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해요. 한 과목에서 세 번 이상 Fail할 경우 퇴학조치가 가해집니다. 저희학교의 경우 70%가 Fail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각자의 학교마다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예과 때 학생들을 많이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가장 특징적인 점은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본과 진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으로 구성된 첫 번째 국가고시에서, 필기시험으로는 해부학과 생리학, 생화학의 비중이 가장 큰데 심리학과 사회학의 경우도 시험과목에 해당됩니다. 필기시험의 경우 40%이상의 문제를 틀리면 탈락입니다. 구술시험에서는 교수님 3분이 학생 3명 정도를 상대로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평가하십니다. 이렇게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을 모두 통과해야만 본과에 진학할 수 있고 둘 중 하나라도 Fail하면 다음해에 그 과목만을 다시 쳐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일의대는 일종의 전학이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주로 일대일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일차 국시시험 이후에 가장 많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2년간의 예과과정과 1차 국가고시를 성공적으로 거쳐 본과에 진학하게 되면 수업과 세미나, 환자실습으로 이루어진 3년간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의대의 경우 8시부터 10시까지 3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10시쯤에 수업을 마치면 나머지 시간은 당일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대에서의 PBL과 같은 학습을 진행합니다. 이런 소규모 수업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증가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다른 특징적인 점이 있는데요. 한국의 본과 1학년에 해당하는 때부터 환자실습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수업과 PBL을 제외한 시간에 병동에 가서 당일 배운 질병에 대한 실제적인 임상수업(bedside teaching)을 교수님과 함께 진행합니다. 환자의 질병에 대해 교수님과 토론하고 여러 진단방법에 관한 피드백을 받습니다. 한국의대와 비교해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은 훨씬 적은 대신 병동에 나아가 교수님과 토의하는 형태의 수업이 많은 점이 어떻게 보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들도 상당히 협조적으로 문진에 임해 주시고요.
본과 때 보는 시험도 줄줄이 등수를 매기지는 않습니다. 출제된 문항의 10%를 틀리면 1, 20%면 2, 40%면 Fail로 나누는데 한국보다 관대한 편이죠, 절대평가인 점도 다르고요. 필기시험보다 구술시험이 많은 것도 정말 특징적이죠.

본과 또한 무사히 지나고 나면 곧바로 인턴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대부분 자교에서 하게 되고 4개월씩 3군데에서 수행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외과, 내과와 자율선택 1개의 형태를 택하죠. 이때 적어도 한번 정도는 외국에서 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스위스, 호주, 남아공 등지에서 인턴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인턴까지 마치게 되면 2차 국가고시를 치르고 의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레지던트 지원 시에는 성적보다도 해외경험과 인터뷰가 매우 큰 영향을 끼쳐요. 이후 레지던트 과정 기간은 상당히 다양하고 수련까지 마치고 나오게 되면 한국과 비슷하게 개업이 주류를 이룹니다.
 
방학 중에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방학은 8월 중순~10월 중순, 2월 중순~4월 중순이 대부분인데, 방학 때도 무작정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예과 방학 때는 총 3개월 동안 간호실습 비슷한 것을 하고 이 때, 환자의 기본적인 생리적 현상을 돌보는 것부터 동맥혈 채혈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워요. 간호사분들한테 배우는데 독일에서는 간호사분들이 간병까지 하시거든요. 본과 때는 방학동안 그룹당 3-4명씩 총 4개월에 걸쳐 척수천자, 심전도, 초음파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요. 일종의 선택실습인 셈이고 수업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현재까지 정신과에서 한 달, 혈액종양내과에서 한 달을 보내며 이 과정을 마쳤어요.

독일의 의대생,
평소 생활은 어떤가요?
독일 최고(最古) 56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라이부르크 의대의 경우 입학생은 300명 정도 됩니다. 입학 후 첫 일주일 동안은 한국의 OT에 해당하는 행사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게임을 해요. 그 이후에는 한국과는 달리 매우 개인적인 생활을 하죠. 모여서 하는 일은 한 친구 집에 모여서 9시정도부터 술을 마시고 12시 정도에는 클럽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정도.
학교생활에 있어서는 일부 학생들은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히 다양한 운동들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특히 분데스리가 축구에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흥분합니다. 학교근처에 있는 팀에 가서 써포터즈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축구뿐 아니라 농구나 배구 등 다양하게 즐기고요. 저의 경우 월요일, 목요일은 럭비훈련, 수요일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제 스케줄이고 대부분 학생들이 비슷하게 생활해요. 한국의대와 마찬가지로 학생회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도 존재하지만 한국식의 축제는 하지 않고요.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녁에 위험한 환자 지키기, 조교, baby sitter등이 많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인데 제 경우 최근에는 baby sitter만 하고 있어요.
학비는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라 학교차원에서의 장학금은 없는 곳이 많지만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이나 정치단체에서 주는 장학금은 발달한 편이에요. 저도 그 수혜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요.

독일의 의대생들은 CC보다는 주로 타과 학생과 교제하거나 외부학생들과 교제해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죠. 하지만 미팅과 소개팅은 하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과 다르네요.

임재윤 기자/아주
<jy0304@e-mednews.org>

미술관에서 본 옛날옛적 의학이야기

<de_waag> 암스테르담의 해부학극장.
현재 1층에서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을 찾았을 때 네모반듯한 그림 수백 점을 보며 지루해했던 기억, 다리는 점점 뻐근해지는데 별로 볼 만한 것도 없었던 기억. 그런 기억 때문에 미술관은 종종 ‘재미없는 곳’으로 낙인찍히고는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미술관은 거대한 도서관과도 같다. 그림 한 장에는 화가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뿐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의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 지,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 그림은 1632년에 그려진 것으로 집단초상화라는 장르에 속한다. 집단초상화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초상화의 양식으로, 여러 사람을 화폭에 담으면서 그 집단의 특성을 드러내는 그림을 말한다.
그림을 살펴보자. 밝은 빛은 인물들의 얼굴과 시신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튈프 박사의 손끝에 온 정신을 집중한 사람, 시신의 발치에 있는 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 필기노트를 들고 감상자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 등 일곱 명의 인물은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면서도 그림의 분위기와 공기로 한 그룹에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에서 진지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해부학 실습이 이뤄지고 있을 것만 같다.
이 그림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화면 한가운데, 대각선으로 누워 있는 시신이다. 그의 창백한 피부색은 인물들의 얼굴색과 대조를 이루고, 감상자의 시선은 근육이 드러난  팔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든다. 당시의 전통대로라면 해부는 복부부터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었을 터인데, 튈프 박사는 팔을 먼저 해부하고 있다. 전통과는 어긋나지만 튈프 박사가 팔에 먼저 매스를 대고 있는 이유는 16세기 해부학의 대가 베살리우스에 대한 존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베살리우스는 팔이 의학도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책은 아마도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에 대하여>일 것이다.

<rembrandt>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캔버스에 유채,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관

영화보다 해부 실습

왜, 그리고 어떻게 렘브란트는 끔찍한 해부학 강의 장면을 화폭에 담았을까? 네덜란드에서는 16-17세기부터 1년에 한번정도 해부학 강의를 진행했다. 이 때 제공되는 시신은 대부분 사형당한 죄수의 것이었다. 1년에 한번이라니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지만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해부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해부학 실습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외과의사가 전문가의 손길로 능수능란하게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이 입장료를 내고 지켜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던 모양이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이 ‘해부학 극장’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부학도 예술이다

화방의 쇼윈도를 보면 유화물감, 파스텔, 색연필 같은 우아한 화구들 사이에 펼쳐져 있는 해부학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학도들을 위한 해부학 교과서도 존재한다는 사실. 르네상스 시기에도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사들보다는 화가들이었다. 이 시대의 해부학자는 대부분 미술가들이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인체를 해부할 때 뼈, 근육, 혈관, 내장 등 구조별로 실시했던 것으로 보이고 신체의 세부적 구조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하지만 정작 의사들은 이런 부분에 무지했고,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해부학이 의학에 별 효용이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환자가 죽기 전에는 체내의 변화를 알 수 없었고, 그것을 고칠 수도 없었기에 의사들은 해부학적 사실들을 치료에 응용하지 못했다. 베살리우스 이후 1세기 반 동안 해부학은 탐구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해부학은 18세기 들어서야 학문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의과대학의 반 정도가 정규 과목으로 지정했다. 

<the operation> 수술, 1631, 판넬에 유채, 알테 피나코테크

브라우버(Adrian Brouwer)의
<수술>

이 그림은 17세기에 그려진 장르화다. 장르화란 17세기 플랑드르지역에서 유행한 미술 양식으로 일상의 장면들을 꾸밈없이 화폭에 담아낸 그림들을 말한다. 아드리안 브라우버는 주로 농민들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림의 전면의 인물이 한 농민의 발에 외과적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환자의 표정에서 그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오른쪽 뒤의 인물은 면도를 하는 것으로 보아 저 허름한 집은 외과와 이발소를 겸업하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브라우버의 다른 작품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드러냈다. 당시 사회에서도 농민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었지만 화가는 그들을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연민을 보내고,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소박하고 허름한 집을 비추는, 밝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이 작가의 마음을 감상자에게 잘 전해주고 있다.

외과의사는 칼을 쓰는 기술자

중세는 물론이고 학문이 부흥을 이룬 르네상스 이후까지도 유럽의 의학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대학의 의학부에서 가르치는 것은 여전히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답습하는 추상적인 이론이었다.
이런 수업을 듣고 의학부를 졸업한 이들은 대부분이 내과의사였고 이들은 상처를 봉합하거나 피를 흘리게 하는 것 등 환자에게 직접 처치나 수술을 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 기피했다. 이 영역은 외과의사가 담당했고 이들은 기능직으로 분류되었다.
당시에는 ‘칼’로 영업하는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같은 업종이었다. 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칼 조작 면허가 필요했는데 이 면허를 보유한 사람들이 바로 이발-외과의사(barber-surgeon)이었다. 이들은 거기에 치과의사까지 겸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니 ‘면도, 이발, 방혈, 종기 짜기, 발치’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달아 놓고 영업하는 이발소가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대학의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외과의사들의 간판은 피와 고름을 받는 그릇 모양이었다고 한다.

내과 vs 외과, 견제와 대립

대학 출신 의사 중에서도 외과를 주업으로 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발사와 같은 돌팔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파랑, 빨강, 흰색의 나선형 무늬봉 간판을 진료소 앞에 세워두고 일했다. 외과의사들은 우아하게 의사노릇을 독점하던 내과의사들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의과대학 과정을 개설하여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라틴어로 수업을 하고, 해부학도 교과과정에 들어가 있었다. 졸업생들은 내과의사들과 같이 긴 가운을 입었는데 짧은 가운을 입는 이발외과의사들과의 다르다는 것을 환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과의사들은 권위있고 귀족적인 지식인 의사는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환자의 피와 고름을 만지는 더러운 일을 해줄 기술직이 사라져서는 곤란했다. 따라서 내과의사들이 주도하던 의과대학에서는 단기간에 외과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외과의사를 양산한 것이다. 한편 이발-외과의사들은 이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간판을 피와 고름을 받는 그릇에서 청,홍,백색으로 된 삼색 나선 표시로 바꾸어버렸다. 결국 사람들은 대학을 나온 정규 외과의사와 돌팔이 이발외과의사를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때 이발 외과의사들의 영업장 앞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삼색봉은 오늘날 이발소 앞에서도 돌아가고 있다.

<외과도구> 당시 외과의사들이 사용하던 도구들

팔꿈치 마취 후 4분내 절단완료

외과의사를 찾은 응급환자의 경우 딱히 치료법이 없어서 대부분 팔이나 다리를 절단했다. 마취는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한다고 해도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술을 아주 많이 먹이거나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이 마취의 전부. 수술시에는 환자를 쇠사슬로 묶어놓거나 조수들이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의사가 수술용 망치나 톱으로 절단했다. 이런 치료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했으니, 뼈를 자를 때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한 번의 칼질로 원하는 부위를 잘라낼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했다. 수술 중에 환자는 극도로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는데다가 환자가 수술 중에 통증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으므로 수술은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끝내는 것이 외과의사의 미덕. 수술이 끝난 후 수술부위는 봉합하는 대신 인두로 지져서 지혈했다. 이런 치료를 하면서도 환자에게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환자들은 외과를 잘 찾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은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 반은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없어서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 중 총상을 입은 경우에는 뜨거운 기름을 발라 치료했다. 치료 중에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음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낡은 치료법만을 고수했다.
18세기 초가 되어서야 파리대학에서 외과를 다시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근대적인 외과가 시작되고 외과가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서야 마취법과 소독법이 발전하여 외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해부학극장> 해부 장면을 관람하던 해부학극장의 내부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


 

보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곧 의학이다

미셀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언어적 표상과 대상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 언어가 사물을 포착하려는 순간부터 그 대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언어의 음흉한 계략, 즉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 속으로 끌어들여 대상의 모습을 변질시키려 하는 언어적 횡포다.”

미셀 푸코는 1926년 10월 15일 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폴 푸코는 유명한 외과 의사였고 아들이 의학의 길을 걷기를 원하였다. 푸코는 처음에 공립학교 다니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카톨릭 학교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1950년 심리학 학사, 1952년 파리에서 정신병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푸코는 정신의학과 의학, 인문학 그리고 감옥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유명한 학자이다. 인용된 푸코의 말은 그의 대표적 저작 중 하나인 『임상의학의 탄생』에 있는 것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의학적 시선’에 대해서 논한다. 그에 따르면 임상의학은 의학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으며, 그 이면에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권력게임이 존재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보아 4단계로 이루어진다. 1장과 2장에서는 의학에서 ‘분류’라는 개념이 어떻게 도입되었고 의학이 임상의학의 시대로 변화되어 가는 부분을 다룬다. 그는 “병의 종류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않고서는 질병을 치료하지 말라”는 질리베르의 진술을 인용하며, “분류하기란 질병의 형태를 결정하고 병에 대한 암호를 푸는 일”이라고 요약했다. 따라서 질병을 인간의 육체라는 공간 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바로 18세기 의학이 임상의학으로 발전해가는 시기에서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3장~5장에서 의학 이론과 의료 기관의 정립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사회적 권력의 암투를 다룬다. 의사·환자·병원 등 의료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정치권력에 의해서 위상이 변화하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한 예로, 책에서 병원이라는 거대한 의료 기관은 의료 수준의 국가적 통제라는 목적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에서는 초기 단계의 고전적 임상의학이 병리 해부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움직임을 다룬다. 이 시기부터 의사들은 ‘시선’이 진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임상의학 안에서 도입된 여러 가지 언어모델이 질병을 정의하고, 질병을 읽는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을 읽을 수 있는 의사의 시선은 곧 말하는 시선이 되어 질병에 대한 권력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촉각과 청각의 새로운 감각이 도입됨에 따라 질병 읽기는 다양한 면모를 띠게 되면서 의학적 시선은 그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다.
푸코의 글은 18세기를 다루었지만,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은 어떤 학문이며, 그 이면에는 어떤 작용들이 존재하는가? 현대의학에서 다루는 질병들은 과거와 어떻게 다르며, 어떤 이념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차후 의학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허기영 기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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