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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의사들이 친히 쓴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겨울방학, 어떤 책을 읽어볼까

 

작년 겨울, 남극의 눈물을
재밌게 본 호기심 왕성한 당신이라면

 

 

『서른셋, 지구의 끝으로 가다』
고경남 글·사진

 

인생에 있어서 과연 남극에 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고경남 씨 또한 시쳇말로 참 ‘쌩뚱맞게’ 남극에 가게 되었다. 스스로도 꿈도 꿔보지 않은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통근시간이 아까워 병원에서 10분 거리 내에 위치한 자취방을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던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본 남극 세종기지 대원 모집 공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원서를 넣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덜컥 선발이 되었다. 그것도 앞서 선발되었던 사람들이 포기하는 바람에 대타로! 그렇게 숨 가쁘게 돌아가던 병원에서 벗어난 그는 통근거리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거리를 날아 남극에 '툭'하고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낯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연장선을 이어가게 되자, 저자는 그 일상에 침윤되지 않으려 그 곳의 공기, 토양, 생물들 하나하나에 진지한 눈길을 주며 남극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매력은 간결한 구성 속에서도 각각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다. 남극에서의 생활, 남극의 생물들, 남극의 풍경,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군데군데 남극에 대한 유용한 정보나 추천하는 음악, 저자의 마음에 와 닿았던 시, 그리고 저자가 직접 필름에 담은 남극의 눈부신 풍광과 귀여운 남극의 동물들 등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도 많다. 그렇게 저자의 눈길이 머물렀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가 솔직하게 풀어낸 모든 이야기들이 남극이라는 푸르고 시린 신비로운 장소, 그 곳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겨울,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날에 창문을 살그머니 열어놓고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Valse tarte)>를 틀어보자. 그리고 이 책을 마주한다면 어느새 남극에서 거대한 빙벽을 마주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원인 모를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지난 학기 내내 힘들어했던 당신이라면
 


『CLEAN, 씻어내고 새롭게 태어나는 내 몸 혁명』
알레한드로 융거 저.

 

미리 말씀드린다. 한의학에 알레르기가 있는 당신이라면 들었던 책을 다시 내려놓길 바란다. 이 책의 저자 알레한드로 융거는 우루과이 태생의 독일계 유태인이고 미국, 뉴욕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내과전문의이자 심장전문의이다. 그리고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와 동양의 한의학에 감명 받아 통합의학을 공부했다. 그가 인도행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목적이 있었다. 바로 의학을 공부하고 전문의가 되기까지의 긴 시간동안 엉망이 되어버린 식습관과 운동 부족, 그리고 스트레스가 낳은 몸의 변화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배는 묵직해졌고 알레르기는 심해지고 소화기능은 떨어졌으며, 변비와 설사가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급기야 우울증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곳에서 그는 식습관과 몸 속 독소, 그리고 명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문헌과 스스로 행한 많은 식습관 실험을 통해 자체적으로 '클린 프로젝트'라는 항독소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클린 프로젝트’란 체내에 존재하는 독소를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까다롭게 선정된 신선한 식재료를 고르고, 그것들로 만든 스무디나 수프와 같은 유동식 두 끼, 고형식 한 끼를 먹되 하루에 일정량 이상 물을 마셔야 하며 적절한 운동과 명상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고도 비만 환자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의대생에게 이러한 프로젝트는 실효성이 거의 없고 실천하기엔 대단한 무리가 따른다. 그렇지만 이 책의 화두는 그 프로젝트만이 아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섭취하고 있는, 종국엔 자신의 몸을 구성하게 될 음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내고 자기도 모르게 흡수하고 있는 독성물질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유도한다.
어떻게 하면 내 위장을 보다 편하게 하여 덩달아 마음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가 수년간 연구해온 노력의 결과물들이 실려 있어 불규칙적인 생활과 식습관, 그리고 온갖 카페인 종류를 쉴 새 없이 위장으로 들이붓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려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게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게 된 의대생이라면 어느새 눈을 크게 뜨고 저자가 권하는 레시피에 형광펜을 긋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클린 프로젝트’같은 항독소 프로그램이 모든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듯한 어투의 위험한 선동적 발언이 곳곳에 잠복해있는 것은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데에는 환자가 증상을 나타내게 된 근본적인 이유-여기서도 저자는 식습관과 스트레스 같은 환경적 요인들을 주요원인으로 본다-를 밝히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으로 약물을 처방하고 최신 의료장비를 업데이트하기에 바쁜 현대의학의 현주소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철저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이론들을 배우고 익히는 의대생들에게 ‘독소’나 ‘명상’ 같은 단어는 부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섭의 시대를 살아갈 지식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한번쯤 마주보고 이해해보려 하는 것은 큰 의미로 남지 않을까.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