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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성모병원 사건과 함께보는
진료비환불- 임의비급여 이야기

진료비 환불은 민원인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의료기관에서 청구받은 진료비 내역에 대하여 진료비 확인신청을 제기하면, 심평원에서 진료비 확인절차를 거쳐 진료비 환불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심평원에서 올해 상반기엔만 총 34억3000만원을 환불결정 내렸다. 이 중 48%인(16억4382만원)이 의료기관에서 급여 대상 진료비를 임의비급여 처리한 건이다. 비급여 부분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부분인데, 임의비급여란 급여 대상이 아닌 진료항목에 대하여 의료공급자가 임의로 가격을 정하여 청구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부당하게 비급여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료진이 최신 기술이나 신약을 사용할 때 아직 급여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의료기관에서는 임의비급여로 청구하고 있다.

이러한 필자가 진료비 환불, 그 중에서도 임의비급여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가톨릭대 성모병원 사건이다. 7월 27일 가톨릭대 성모병원이 "진료비 환불 처분(2007년 3월)을 취소해 달라"며 심평원을 상대로 낸 소송의 판결이 나왔다. 다음날인 28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이 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어서 백혈병 환우회가 의협의 성명서에 대한 입장을 발표 하였다.

의협이 판결에 반발하여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건강보험법이 정한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거나 벗어나는 치료에 대한 비용을 환자 측에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 치료행위가 위독한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밝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타당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필요한 치료를 하여도 요양급여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심평원 관계자는 "새로운 첨단기술이나 치료재료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복지부장관에게 급여·비급여 여부의 결정신청을 하면, 그날부터 급여기준의 결정이 있는 날까지 적법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심평원은 “여의도 성모병원은 심사기준 개선을 위한 일체의 신청·건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여의도 성모병원이 일부 항목을 비급여로 처리하면서 그에 대하여 심평원에 급여·비급여 여부의 결정신청 조차 하지 않은 점이 의문스럽다. 여의도 성모병원이 결정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가장 편하게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을 택한 병원 측의 편의주의적 방침,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는 낮은 의료수가 등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하지만 성모병원의 이번 사건이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재판부의 판결은 사실상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병․의원에서는 진료비 일부를 임의비급여로 처리하고 있다.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지만 임의비급여로 처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민향기 기자/ 을지

<iamperfume@naver.com>


영·프·미·일 등은 항바이러스제 20~50% 보유…
한국은 5% 분량밖에
내성 바이러스 나타나는 판에 뒤늦은 500만명분 추가 확보


 6월 11일, WHO는 신종 플루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41년 만에 바이러스 경보를 6단계 “대유행(Pandemic)"으로 격상시켰다. 동시에 각 나라에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양의 항바이러스제를 보유할 것을 권했다.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이기에 올 가을에 더 큰 위기가 올 것을 예고했으며, 전 세계에 미리 대비할 것을 조언한 것이었다.
 스위스는 인구의 100%에 해당하는 양의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50%가량, 미국과 일본은 20%가량 보유했다. 주요 서유럽 국가가 20~40%를 보유하고 있고, 아시아 국가인 대만도 10%가량을 비축해두었다. 그러나 한국은 겨우 5%에 불과하다.
 항바이러스제 자체 생산 능력도 미흡하긴 마찬가지이다. 10여개 국가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었고, 일본의 경우만 봐도 4개 제약사가 총 5000만명 분의 항바이러스제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를 생산할 수 있는 제약사는 녹십자 1개뿐이고, 그 양도 500만명분에그친다.
 이러한 부족한 준비는 대응 조치에서도 차이를 만들었다. 영국은 WHO의 격상 조치 이후 40여일 만인 7월 21일, 발열 증세만 있으면 전화 한통만으로도 처방전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사흘 만에 15만명 분의 약이 나가도 비축량은 충분했고, 신종 플루 확산은 주춤해졌다. 영국의 발 빠른 조치 후 한 달이 지나서야, 한국은 ‘고위험군 환자’를 중심으로 처방을 제한하였다. 한 사람당 한 번만 처방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도 같이 내놓았다. 정말 신종 플루에 감염되어도 처방을 받기가 힘들다. 어느 환자가 감기를 신종 플루로 착각해 처방을 받았다면, 정작 신종 플루에 걸렸을때 약을 받기는 더 힘들다.
 한국의 미흡한 대비속에서 3명이 숨을 거두었고, 24일 정부는 뒤늦게 1250억원을 투자하여 500만명 분의 타미플루를 추가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항상 ‘빨리빨리’라고 외치는 나라 한국이었지만, 신종 플루에 대해서는 ‘만만디’대처를 하고 있는것이다.
 정부가 추가 확보계획을 발표한 24일, WHO는 7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분리한 바이러스 중 12건이 타미플루에 내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등에서 1~2건씩, 그리고 우리나라와 교류가 가장 많은 일본에서는 4건이 접수되었다. 우리나라에 내성을 지닌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다른 나라의 추세나 기타 바이러스의 경향을 볼 때 한국에서 내성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다. 항바이러스제를 많이 써 이제 그 효과가 떨어질 때쯤 우리는 이제 그 약을 대량 생산하려고 하다니. 아직 상상에 불과하지만, 1250억원 치(500만명 분)의
타미플루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판단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까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항바이러스제만 급히 구입해 두는 것은 분명히 최선의 판단이 아니다. '빨리빨리’ 한국도 ‘만만디’ 대처도 아닌, ‘Creative Korean’이라는 한국의 다른 면모를 보여 줄 차례다.

*대유행(Pandemic) 단계 : 인간 대 인간의 감염이 2개 이상 대륙에서 발생한 상태

정세용 수습기자/연세
<avantgarde91@naver.com>

 
파업을 접는 마지막 날까지의 한결같은 외침이었다.
‘의료진 출입을 허용해 달라…….’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명의 부랑자가 등장한다. 한 여름, 끊어진 전기와 흐르지 않는 물, 닿지 않는 의료진의 손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 속에 놓인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보며, 끝없이 고도를 기다리던 디디와 고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두 사람이 그렇게 기다리던 고도는 희곡의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채 극은 막을 내리지만 책을 덮은 우리들의 현실, 쌍용자동차의 평택공장. 그곳에는 외침의 소리가 미약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함께 연대하고 손잡을 수 있는 사람과 의료 그리고 희망이라는 고도가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길고 뜨거웠던 쌍용차 사태는 점거농성 77일 만인 지난 8월 6일에 여러 가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타결되었다. 이제 쌍용차 사태는 기억의 뒤란으로 사라져가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만할 것들을 곱씹으며 쌍용차 파업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두발도 뛰셨던, 우리들의 고도가 되었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이신 백남순 선생님을 만났다.

기자_ 저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업국장'으로서 인권운동과 의료개혁 및 정책 사업에 관심을 가지시는 의사'라는 조금 딱딱한 타이틀의 주인공이신데요, 이 신문을 읽게 될 의대생들에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에 대한 소개와 다정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백남순_ 인의협은 1987년 민주화투쟁 와중에 인도주의적 의료를 표방하는 몇몇 원로(홍창의 등)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22년 째 운영되는 동안 많은 선생님들이 거쳐 가셨고, 그에 따라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어왔습니다.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개혁, 의약분업, IMF 이후 노숙인들에 대한 의료지원 사업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미 FTA, 의료법개정과 의료민영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선진화 반대투쟁 등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는 인의협 진료단을 꾸려 시위대 가장 앞에서 부상자 치료를 위해 새벽까지 뛰어다니기도 했었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의협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장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인권활동, 의료정책 및 의료개혁 운동 등 인도주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단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제 소개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저는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을 95년도에 졸업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봉사와 문학동아리, 풍물패 등에서 선후배들과 토론하고, 선배들에게 대들던 학생이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숨 막히는 병원생활이 싫어 인턴을 포기하고 공중보건의를 선택했고 우여곡절 끝에 마취통증의학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인의협은 레지던트 3년차 때 처음 가입하게 되었답니다.

기자_ 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최근 이슈가 되었던 '쌍용차 사태'에 대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쌍용차 사태'의 본질에 대해 들어 보고 싶습니다.

백남순_ 쌍용차 사태는 정부가 잉태하고 상하이차와 회사경영진들이 키워낸 재앙입니다. 애초 쌍용자동차를 중국자본(상하이차)에 헐값 매각한 책임은 정부에 있었습니다. 상하이차는 처음부터 회사경영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쌍용차 핵심 기술을 빼내는 데 급급한 먹고튀자식 자본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회사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2500명이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습니다. 해고 대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기본적인 책임은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정부에 있다. 더불어 먹튀자본 상하이차, 회사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일한 죄밖에 없다.”라고 말입니다. 즉, 정부와 상하이차, 그리고 회사경영진들이 문제를 방기하고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데서 시작된 것이 쌍용차 사태입니다.

기자_ 의료적인 부분에서, 당시 파업에서 가장 문제 되었던 것은 어떤 일들이었나요?

백남순_ 무엇보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야만적인 음식, 식수, 의료진 및 의약품 봉쇄 조치입니다. 음식물 반입이 봉쇄되어 점거 노동자들은 하루 2개 정도의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파업 말미에 비타민결핍증, 전해질 불균형이 심각해져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전신무력감 및 의식저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또한 식수 봉쇄조치로 인해 대부분이 경도 탈수증상을 보였습니다. 부상자가 있어도 씻어낼 물이 없어 보일러 물을 빼서 상처세척에 사용하는 지옥이었습니다. 의료진 및 의약품 봉쇄조치는 더욱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최후까지 공장에 남아있던 600~700명중 100~200여명의 노동자들은 얼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등의 외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붕대와 반창고로 지혈만 한 상태로 상처가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또 당뇨 및 고혈압 등 만성질환들이 의약품 반입금지로 악화되어가고 있는 환자들도 있었는데 한 노동자는 2주째 당뇨약을 먹지 못해 발목을 절단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기자_ 여러 차례 진료지원을 위해 평택공장을 방문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의료진이 들어가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의료진과 의료물품의 반입을 막는 이러한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백남순_ 인의협은 5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총 29차례 공장을 방문해 의료지원을 시도했으나 정상적인 의료지원은 단 7차례밖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사측구사대와 경찰당국에 가로막혀 실랑이를 벌이다 인원에 제한을 받거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부상자 및 환자에 대한 의료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야 합니다. 이는 세계인권협약과 제네바 협정에서도 명시된 사항이며 국제적인 상식입니다. 의료법상 의사는 환자가 진료를 요청할 때 이에 응할 의무가 있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도 응급진료를 가로막는 자를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 공장은 국제적 상식, 인권협약, 현행법률 등이 깡그리 무시되는 야만의 현장이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쌍용차 노조가 파업을 접는 마지막 날까지도 첫 번째 요구안이 “의료진 출입을 허용하라”였겠습니까.

기자_ 경찰이 테이저 건을 쏘았으며, 선생님께서 테이저 건에 맞은 환자를 직접 치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테이저 건은 어떤 무기인가요? 또, 테이저 건에 맞아 치료를 받은 노동자분의 예후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백남순_ 메스로 뺨을 2cm 정도 째고 갈고리 모양의 테이저 전자 침을 제거하였습니다. 테이저 건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국제엠네스티는 2006년에 테이저 건을 맞고 사망한 258명의 사례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5만볼트의 전기 총을 맞고 멀쩡할 거라는 경찰당국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분통이 터지는 부분이지요. 테이저 건은 강한 전류로 대뇌에서 내려가는 모든 신경전달을 차단하고 신체에 불수의적인 근육경련을 일으키는 살상무기입니다. 테이저 건에 의한 사망은 호흡곤란, 심장마비, ‘테이저 건 섬망상태’라고 부르는 정신착란 후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테이저 건 사용지침에도 하반신을 겨냥하고 특히 심장부위 및 얼굴부위는 피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료한 피해 노동자는 얼굴과 몸통 부분에 테이저 건을 각각 한번 씩 맞았습니다. 이건 마치 “이걸 맞고도 사나보자”라는 식이었습니다.

기자_ 인의협에서 최루액 성분을 조사·분석하여 지난 8월 3일에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진압과정에서 사용된 최루액이 인체에 어떤 유해한 성분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백남순_ 최루액의 용매로 사용되는 디클로로메탄이란 물질은 유기용매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허용치가 5ppm으로 규정돼 있는 유해물질입니다. 디클로로메탄은 몇 주 동안 지속되는 호흡기 증상(심한 경우 폐수종) 및 화상을 일으키고 나아가 암을 발생시키기도 하는 발암물질입니다. 경찰당국은 이런 위험한 최루액을 1시간 간격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해산용으로 간혹 뿌리는 수준이 아닌 죽으라는 것처럼 뿌렸습니다.

기자_ 진압과정의 마지막에는 식수공급마저 제한되고, 파업노동자의 가족이 자살하는 등 육체적 고통 외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는 없었나요?

백남순_ 공장점거 중에도 그렇지만 현재까지 쌍용차 점거 노동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헬기소리나 사이렌소리 같은 환청에 시달리며, 중증 불안증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만성두통, 소화불량, 수면장애가 계속되고 있으며, 대인기피 및 사측에 대한 배신감 등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특히 며칠 전 경찰의 강압수사 및 조작수사에 시달리다 한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심리적 안정과 치료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누가 폭력을 주도했다고 불면 너는 살려 주겠다” 등의 충격적인 조작수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또한 새벽 2시에도 경찰서에 불려가 수사를 받고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경찰당국의 전화소리에 없던 우울증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마디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사측과 경찰은 지속적으로 병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_ '인의협'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인권사업'의 의미를 생각하면, 쌍용차 사태에 개입하신 것은 일견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비해고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사업자 및 근로자와 보수적인 매체들은, 그런 활동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는데요. 힘든 부분은 없으셨나요?

백남순_ 솔직히 사측구사대 및 보수적인 매체들의 비난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의사의 본분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아픈 사람이 의사에게 치료와 진료를 요청하면 이에 응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입니다. 진료를 가로막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들의 행동이 비정상적이며 반인권적인 태도임을 지적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도 치료받을 권리는 존중돼야 함을 주장할 것입니다.

기자_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신문을 읽게 될 예비 의료인들에게 '의사로서의 삶'에 있어 필요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백남순_ 의사는 많은 지식을 배우고 도덕적 인정을 받는 직업입니다. 때문에 그에 맞는 책임도 뒤따른다고 봅니다. 세상에는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파업노동자, 이주노동자 및 그 자녀, 도시 노숙인, 외국 분쟁지역의 주민들, 한국이 참전한 이라크 현지 주민들 등등, 이들 모두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응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이겠지요. 다만 혼자서 결정하기 힘들다면 인의협 선생님들과 상의하고 같이 결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박준하 기자 / 순천향

[70호] 의료법 개정안 논란

70호/의료사회 2009. 8. 31. 00:35 Posted by mednews
의료법 개정안 논란
복지부 개정안은‘의료 민영화법’일뿐”
시민사회단체 반발


지난 7월 28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 ▲의료서비스 수효자의 안전관리 강화 ▲입법미비사항정비 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항목에는 병원부대사업
확대와 의료법인 합병절차 마련, 원격의료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항목에는 감염대책관리위원회 설치 의료기관 확대, 응급환자 이송체계 확립 등이 있으며 세 번째 항목에는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 관련 제도 정비가 포함되어있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의 의료수준 향상을 위해 필요한 규제는 대폭 강화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는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특히 첫 번째 항목의 병원부대사업( MSO ) 확대와 병원인수합병은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MSO란 병원경영지원회사를 뜻하는 말로, 병의원을 대상으로 의료행위와 관계없는 마케팅, 인사, 홍보, 구매 등 병원경영 전반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병원의 업무 중 진료를 제외한 모든 영역
을 관장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MSO는 그다지 활성화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는 ▲현행법상 비영리의료법인이 MSO 등 영리회사에 대한 지분투자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는 것과 ▲경영지원 서비스에 대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인식부족등이꼽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의료법인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부령에 위임(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할 때마다 의료법을 개정해야 하는 불편 방지) ▲의료법인이 자산의 일정부분을 부대사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허용 ▲부대사업 수익금의 일정비율을 의료업에 재투자하도록 강제 ▲관할지자체단장에게 부대사업 정지 권한 부여 등을제시했다.

이에 대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새사연) 비상임연구원인 이은경 씨는“법안의 내용이 주로 자본투자를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MSO가 단지 병원의 경영자문 역할 이외에 비 의료민간자본을 병원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결국 현 정부의 활성화 방안은 영리병원으로 가는 우회로가 될 것 이라는소리다.

또 다른 개정안인 ‘의료법인간 합병 시 이것을 해산사유로 인정하고, 합병절차를 마련한다’ 는 법안은 병원이 재산을 처분할 때 받아야하는 관청의 허가 절차를 없애거나 약식으로 처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병원 매매를 본격화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8월 18일 복지부에 일부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경실련은 의견서에서 “병원 경영지원 사업을 부대사업에 포함시키는 것은 비영리법인들이 MSO를 통해 외부로 투자수익을 유출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 이라며 “ 이는 의료 기관 간에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 이라고 했다. 또한 인수합병 건에 관해서도 “의료기관이 파산하지 않더라도 단순 합병을 목적으로 해산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 이라면서 이번 개정안이 의료 상업화를 촉진시키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범국민 운동본부 역시 MSO 허용안은 실질적인 영리병원화를 추진하는 법안이며 의료법인의 합병허용은 의료기관의 몸집불리기를 부추길 뿐 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 의해 거대 자본을 가진 의료기관이 의료시장을독과점하게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김정화 수습기자/한림
<
gamzza2000@hanmail.net>

의료민영화, 의료계의 대응은?
9월 대규모 의료계 토론회 조직 예정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이 의료계와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이라는 이름의 토론회가 지난 7월 11일 토요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행동하는 의사회,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가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행사는 1부 주제발표와 2부 패널 토론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하정구 행동하는의사회 조직사회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주제발표에는 신영전 한양의대 교수와 이상윤 인의협 기획국장이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신영전 교수는 ‘의료민영화 정책 개괄’라는 주제로 발제하였다. 신교수는 보건의료와 관련이 없는 정치인이나 시장에 의해 보건의료 정책이 결정되는 보건의료체계의 분열적 상황이 의료민영화와 같은 정책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또 5월 8일 발표된 ‘서비스사업선진화방안’(본지 69호 참고)을 중심으로 의료민영화의 내용과 예상되는 폐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건강보험 민영화가 진행될 경우 1차 의사들이 민간보험회사의 이익을 위해 환자들이 3차병원에 가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민간보험이 주도하는 미국의 경우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상윤 기획국장은 의료민영화 정책이 의료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병원과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욱 경쟁적인 체제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2부 패널토론은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에 대한 의사 사회 대응 전략’이라는 주제로, 1부 첫 번째 발제자인 신영전 교수와 임석영 행동하는 의사회 대표, 백남순 인의협 사업국장이 패널로 참가하였다. 현재 의협, 중소병원협회, 개원가 등이 서로 다른 입장이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점으로 진단되었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 이 날 행사에서는 ‘의료민영화저지 의료공공성강화 의료인모임(가칭)’에 대한 제안이 이루어졌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범 의료인 모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개인참여를 전제로 운영되는 이 모임은 의료민영화 정책이 결정되는 2009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8월까지 준비모임을 발족하고 9월에 대규모 의료계 토론회를 조직할 예정이다. 대상은 개원의, 전공의, 공보의 및 의대생이며, 12월 말 국회 의료법 개정 저지를 목표로 한다.

 이 날 행사는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에 대해 의료계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보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참석자가 적고, 토론 또한 의미 있는 내용을 도출하지 못해 과연 논의 내용이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또 한 참석자는 ‘전 국민의 건강권이 달려있고 보건의료인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임에도 다른 보건의료인들을 배제한 의사 중심의 논의만 이루어 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김민재 기자/ 순천향
telemax@nate.com


질병에 대한 은유를 넘어 환자를 만나다.
HIV 감염인 인권연대의 강석주 대표님에게 듣는 환자 이야기

 
 
수전 손택은 일찍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결핵 ? 암 ? 에이즈 를 포장하고 있는 메타포(metaphor)를 비판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결코 책 속에 갇힌 표현이 아니다. 아직도 현실 속에는 자신들의 고통을 비하하는 고통에 힘겨워 하는 환자들이 있다. 환자로서의 권리 뿐 만 아니라 자신들의 질병에 덧대어진 은유와 편견에 투쟁하는 그들, 카노스 (HIV감염인인권연대)의 강석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카노스의 탄생과 활동

 “카노스는 감염인들 스스로 인권을 얘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아래 만들어 졌어요. 비감염인인의 주도적인 인권운동이 아니라 감염인들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인거죠.” 2002년에 만들어진 카노스는 현재 많은 비감염인 활동가와 감염인 활동가가 함께 활동하는 단체가 되었다. 카노스는 에이즈 환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2002년도부터 저희가 꾸준히 활동한 것이 동료감염인 상담사업이나 병원 동행, 치료 지원 같은 사업이에요. 동료감염인 상담 사업은 감염인들이 서로 상담해주는 사업이죠. 초기감염 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스스로 (질병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런 부분을 상담하고 함께 위로해주면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에요.” 치료지원은 의료 직종이나 복지 직종에 있으면서 카노스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감염인들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치료지원을 통해 감염인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의료인의 입장에서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의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병원에 함께 찾아가 도와주며 고가의 치료비가 나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제시해 준단다. 
 카노스의 활동영역은 감염인을 지원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을 둘러싼 편견을 해소하는 문제에 가장 중점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년간 벌였던 후천성 면역 결핍 예방법이 대표적인 활동이다. “후천성 면역 결핍 예방법은 소위 에이즈 예방법이라고 해요. 이 예방법은 감염인들을 범죄자로 보고 감염인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담고 있었어요. 6개월마다 연락이 되어야 하는 등의 조항이 있었죠. 감염인들이 범죄자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고 다만 질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니 과도하게 관리받고 있는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 법을 개정하기 위해 근 2년 동안 투쟁을 했어요.” 2년간의 노력 끝에 2008년 예방법이 개정되었다. 카노스는 민주노동당 현혜자 의원과 같이 법령을 내고, 국회 안에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에이즈 예방은 감염인들을 통제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권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얻어지는 것임을 강조한 덕분이었다.

제약사의 횡포에 맞선 연대, 약가 인하 운동 

 카노스는 다른 환자 단체와 연대해 보편적인 환자 권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한미FTA 문제라든지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문제에 연대해서 같이 운동합니다. 특히 의약품 운동은 거대 제약사이다 보니까 사실 하나의 단체나 환자 그룹이 상대할 수 없잖아요.” 이런 연대의 일환으로 작년에 카노스는 백혈병 환우회와 함께 푸제온과 스프라이셀의 약가 인하 운동을 벌여왔다.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값이 너무 싸다는 이유로 지난 4년간 약 공급을 거부했다. 스프라이셀도 일 년 약값으로 4000-5000만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이처럼 에이즈와 백혈병은 전혀 다른 질환이고 전혀 다른 치료제이지만 제약사의 공급 거부 이유는 너무나 닮아있었다. “백혈병 환자나 에이즈 환자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보험구조에서 이 약은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이 되었다. (제약사들은) 이런 논리로 약값을 올려받으려 한다는 거죠.” 약값을 둘러싼 제약사의 횡포는 고질적인 문제이기에 한 단체의 노력으로는 개선이 쉽지 않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 단체가 발언을 해 약 값을 낮추더라도 결국 하나의 치료제에 국한 된 것일 뿐 다른 환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는 동정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상공급을 결정했다. 하지만 무상공급은 한시적인 것이며 약 값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동정적 프로그램은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서 임상 초기에 실시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무상 공급은 명분일 뿐 결국 제약사는 한국에 (약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약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기보다는 약을 계속 공급하지 않을 경우 회사에 쏟아질 윤리적인 비난과 도의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동정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카노스의 입장을 명백했다. “저희는 로슈가 약가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판매할 의향이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특허권을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약사가 제약사의 노릇을 하지 못하고 치료제가 치료제의 노릇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제가 치료제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제약사가 특허권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약값으로 약을 판매하든지. 저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고 봐요.” 현재 치료를 위해 푸제온이 필요한 환자들이 약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돈이 많은 일부 환자들은 희귀의약품센터에서 푸제온 미국 시판 가격을 모두 주고 직수입한다. 혹은 외국의 구호단체에 구호를 요청해서 비슷한 동정적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제한적인 프로그램이어서 현재까지 지원을 받은 환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환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은 치료를 ‘포기’하는 거란다. 다른 치료제를 먹어가면서 내성이 생기겠지만 버티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항으로 남아있다.

 



감염인과 환자, 이중고의 어려움

 환자 권리 운동에도 어려움은 있다. 바로 ‘환자들이 뭘 알겠어.’ 라는 주위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 때문이다. 게다가 에이즈 감염인의 경우 질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덧붙여진다. “에이즈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한 상황에서 감염인이 자발적 환자운동을 위해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거기다 제가 기사를 많이 올리는데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거나 기자회견에 나갔을 때 감염인을 일일이 방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들이 힘들죠. 알려지게 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감염인들이 조직도 잘 안되고 어디 가서도 감염인이라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아직까지 존재해요. 그럴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에요.” 이렇듯 카노스는 환자라는 어려움과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이중고에 처해있었다. 이런 이중고는 병원에서도 계속된다. 기자는 병원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 HIV감염인이 병원에 가서 의료진을 만날 때 불편을 느끼거나 특별히 차별을 받는다거나 환자로서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들에게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해요.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병원이 특히 더 힘든 공간이에요. 병원에 가자마자 에이즈 감염인들은 숨이 막혀해요. 왜냐하면 내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되거든요. 외부에서는 밝히지 않아도 사회생활 하면서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병원이라는 공간은 들어가는 즉시 감염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니까요. 사람들이 진료 차트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고 별거 아닌 일에도 글러브를 이중으로 끼고 오는 일이 감염인에게는 상처거든요.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설명도 없이, 또한 신체접촉도 없는 상황에서 에이즈가 공기로 전염되는 질환도 아닌데, 마스크에 방어복까지 만들어 입고 나오는 걸 보면 굉장히 힘들어요. 그리고 에이즈 환자이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무시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진료를 거부하거나 다른 환자와 차별하거나 수술이 지연되는 일이 병원에서 비일비재해요. 
      
 - 그렇다면 수술이 지연되거나, 진료를 거부하는 등의 권리 침해에 대해 환자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에요. 의사가 약을 먹으세요. 이러면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의사가 먹으라니까 난 죽지 않으려면 약을 먹어야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약을 먹죠. 그리고 의사가 이렇게 검사하세요. 이러면 고가의 치료나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죠. 특히 에이즈를 진료하는 감염내과 의사가 우리나라에 70명 정도 밖에 없어요. 병원은 종합병원에만 개설되어 있죠. 그렇다보니 병원 선택의 폭이 좁아요. 그러니 하나의 의사를 잃는 것이 환자에게는 굉장히 손해에요. 실제로 병원을 옮기기도 어렵고, 병원 옮기려면 차트를 일일이 떼어가야 하고 예전 병원에서 알고 있던 시스템과는 다른 시스템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니 사실 병원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의사들 사이에서 알려질까 두려워 이의제기도 잘 못해요. 이 의사가 나에게 처방을 안 하고 진료를 안 할까봐 두려움이 큰 거에요.

‘다른 환자와 동등한 진료를 바랍니다.’

 에이즈 감염인들이 가장 바라는 의사는 ‘편안한 의사’이다. 편안하다는 것은 병원에 방문했을 때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꼬리표가 느껴지지 않게 다른 환자와 동일한 처치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감염인들도 환자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환자의 기본은 아픈 사람이잖아요.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정성껏 진료를 해주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질병을 질병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질병이 왜 생겼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을 자꾸 윤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는 태도들이 많아요. ‘저 사람은 에이즈 감염인이야. 뭐 하다가 저런 병에 걸렸을까. 더러워.’ 이런 식의 윤리적 잣대를 머릿속에 갖고 환자를 봤을 때 얼마나 좋은 치료가 나오겠어요. 윤리적 잣대를 대고 환자를 진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환자와 동등한, 환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환자가 갖고 있는 고통을 함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점만 해결된다면 저희는 더 이상 바라는 점이 없어요.”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하지만 감염인들은 평생 들여야 하는 치료비와 약 값 게다가 사회적인 편견의 무게 때문에 치료를 힘들어 하고 있다. 그렇기에 환자의 치료 의지를 북돋아주는 의료진은 이들 감염인에게 최상의 동반자이다. “환자가 계속 치료를 받으려는 의지가 생기도록 심리적 지지를 해주는 의사가 좋아요. 힘들어서 에이즈 감염인들이 치료를 많이 포기하고 있거든요. 자존감을 세워주면서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하는 의료인이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강석주 대표는 의대생들이 환자에 감수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경제적인 안락함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잖아요. 저는 환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든지 따뜻한 감성 없이는 따뜻한 진료는 나올 수 없다고 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 때 환자들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학문적인 질병이나 처치가 아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와 함께 치료를 해가는 감성적 치료를 많이 익히셨으면 좋겠고, 그런 현장들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예나 / 순천향
(lynar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