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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오피니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6.18 <편집자가 독자에게> 행복했습니다
  2. 2015.06.18 <사설> 불신의 늪에서 피어난 양귀비, 메르스

행복했습니다


의대생신문의 편집장으로 선출된 것이 어제 일 같습니다. 그저 글을 쓰는게 좋아서, 여러 의대생들과 의견을 나누며 배우고 가는 그 맛에 시작했던 신문사 생활의 끝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크고 대단한 집단의 총 책임을 맡는다는 것이 제 능력에 과분한 일이라 처음엔 잠도 안 오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여러 기자 분들이 나서서 도와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셔서 조금씩 일에 적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로는 직접 찾아뵙지도 못한 독자분들께서 신문 잘 받아보았다고 먼저 연락을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힘이 들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저 자신을 채찍질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한 학기가 다 되었습니다. 뭔가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시간이 흘러간 기분입니다. 

올 상반기는 사회도 어지러웠고,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의대생 신문사에게도 성장통을 겪는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위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벌써 105호까지 내고 있는 걸 보니 아직은 의대생신문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 것만 같습니다. 간만에 사랑받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2015년 상반기는 제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저는 이만 물러납니다. 물적 심적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주신 여러 선배님들과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대에 못 미쳤던 것도 많다는 것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함께해 주신 전국의 의과대학생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편집장의 자리에서는 물러나지만 다시 기자로 돌아가 차기 편집장을 열심히 도우며 편집장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더욱 열의있는 모습의 기자로 거듭나겠습니다. 이제는 독자분들께서도 저의 기사를 이 곳이 아닌 다른 면에서 만나보실 수 있겠네요. 저 역시 독자분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필요로 하는 기사를 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게 이런 뜻 깊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했습니다. 


조을아 편집장/을지 

<eulahzu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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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신의 늪에서 피어난 양귀비, 메르스  (0) 2015.06.18

불신의 늪에서 피어난 양귀비, 메르스


메르스로 전국이 뜨겁다. 실제로 메르스 확진을 받은 사람은 100명 남짓이지만, 마치 전 국민이 열병에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가히 가성  메르스 열병이라 부를 만 하다. 5월 20일 바레인에 다녀온 남성의 첫 발병이 보고된 후 3주의 시간이 지났다. 국민들은 정부와 의사를 불신하고 마스크를 사들였다. 이 와중 확진환자 하나가 중국으로 출국, 중국과 홍콩 방역당국이 접촉인을 격리하는 사태에 반한감정까지 일어나 국제적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3년과도 같은 3주였다. 확진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사회가 더욱 빠르게 흔들렸다. 

공포는 잘 모르는 것에서 온다. 그것이 공포의 본질이다. 공포는 공포의 대상을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해소된다. 노래소리로 배사람을 홀린다는 세이렌의 정체가 암초 위에서 젖을 먹이던 듀공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세이렌은 공포의 대상에서 스타벅스의 로고로, 상업적 도구로 격하됐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죽음 같은 것은 영원히 공포의 대상으로 남는다. 메르스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 좋은 질병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은 미지의 땅 중동에서 온 이 사자는 그 자체로 이해하기 힘들 뿐더러 그 결과로 죽음을 불러온다. 마치 요한묵시록의 네 기사들 같다.

전쟁과 기근, 역병과 죽음을 데려온다는 네 기사는 세상에 실존하지 않지만 메르스는 엄연히 실존하는 바이러스이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만큼이나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퍼져있다.  RNA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변이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 SARS와 같은 종류인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점, 주로 숙주가 되는 동물과의 접촉으로 전염된다는 점,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점, 치사율이 40%정도로 알려져 있고 병원 감염이 흔하고 지역사회 감염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렇게 많은 지식들이 알려져 있지만, 공포는 줄어들지 않는다. 별로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믿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는다. 공포는 여전히 실재한다. 

누군가 지식을 전해줬을 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은 나쁜 태도는 아니다. 특히 과학자나 철학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오히려 믿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문가의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난세’가 된다. 근거 없이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온갖 간웅들과 시정잡배들이 판친다. 이 와중에 몇몇 정치인들은 시기적절한 달콤한 말로 ‘승점’을 챙겼고, 한의원 3곳은 메르스를 낫게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냈다가 처벌을 당했다. 

국민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아집에 찬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불신의 근본은 누가 전문가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 때문이다. 개업의로서, 혹은 병원의 녹봉을 먹고 사는 의사들은 믿을만한 정보를 정리해 내주기 조심스럽다. 사실, 격무로 인해 그런 글을 정제해 발표할 시간도 없다. ‘긴급상황’이라는 명목 아래 정부의 정책에 차출되어 일하는 의사들은 사실 그 자체로 존경스럽다. 그런 긴급상황이 있기 전부터 이미 한계까지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주일은 168시간이다. 1주일에 60시간을 일하던 사람은 120시간을 일할 수 있지만, 이미 1주일에 120시간을 일하던 사람은 240시간을 일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있을 때마다 질병관리본부에 의사가 부족해 대학병원 감염내과 의사가 업무에 차출되는 사실에는 실소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입장 정리와 정책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 등 헛점을 목도한 국민들은 정부의 말 또한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유능한 나랏님들 모여서 하시는 일에 왜 이렇게 빈틈이 많은가? 관련부처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10명 남짓한 관련부처의 의사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듯 하다.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시스템과 결재 순서가 더 중요한 관료주의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노란 점퍼를 입고 가운데 앉아 두 줄 나란히 앉은 관련부처 직원들과 토론하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과거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때  미 국방부 장관과 장성들에게 상석을 내주고 구석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오바마가 찍힌 사진과 대조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는 국민들에게 최선의 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존재하지, 자신들의 전시행정을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문제라면 권위를 내려놓고 전문가에게 전권을 맡길 수 있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질병에 따라 대응책이 다르고 초기 대응이 중요한 방역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위험을 무릅쓰고 묵묵히 일하는 것은 의사들이다. 의사들은 사실 스포트라이트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보상과 함께 명예 지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정부는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N95마스크 등 방역물품들을 갖추라고 말하면서도 한 푼의 지원도 없고,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왔을 때 문을 닫게 되는 병원들에 대한 일말의 보상도 언급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초기 메르스 환자 진단을 요구할 때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과 의사가 책임지라는 태도를 보였다. 쓴웃음만 나온다. 보상은 커녕 명예도 위태롭다.

무굴 제국의 황제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을 완성한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완성한 건축가와 인부들을 치하하기는 커녕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다시는 만들지 못하도록 손을 자르고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최근에는 모 카페의 회원들이 ‘병원에서 환자와 접촉한 의사의 자식들이 이기적이기 짝이 없게도 감히 자식을 어린이집에 보내려 한다’며 의사의 신상정보와 주거지를 노출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메르스는 실재하는 전염병보다는 좀비 영화나 게임을 바라보는 그것과도 같아보인다. 불신이 피워낸 양귀비 메르스는 울분을 쏟아내고 마음껏 폭언을 쏟아내게 하는 마약으로 기능하고 있다. 

의사들이 이제껏 많은 비슷한 일이 있었던 때처럼 노고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하는 ‘다크 나이트’가 되는 것도 좋겠다. 그 또한 인술이다. 그러나 환자의 곁을 지킨다는 자부심은 제 살 까먹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의사의 권익과 명예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국민의 건강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다. 부딪혀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모서리를 욕하는 것은 아이를 달래는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르나 잘잘못에 대한 바른 인식을 키워주는데는 최악의 교육이 된다. 메르스 사태가 지나간 뒤에도 있을 비슷한 일들에서 공적을 빼앗기고 관료주의에 밀려 국민들의 건강도 지키지 못하는 미생으로 남지 않으려면, 병상 밖에서의 의료인들의 움직임이 절실해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크 나이트’ 보다는 ‘아이언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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