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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모두를 위해


처음이라는 말에는 상반된 여러 가지 의미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기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의과대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신문의 총 책임자로서의 처음은 솔직히 두려움과 걱정으로 더 많이 차 있습니다. 이전 선배 기자들이 닦아왔던 신문사의 기조와 명성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활동해 주는 기자들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지, 독자들이 의대생신문과 함께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지금입니다. 의대생신문은 편집장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의 관심, 의과대학생들의 참여, 기자들의 열정적인 활동, 이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의대생신문이 제 기능을 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편집장은 애로사항에 대해 마음과 귀를 열고 들으며 제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보조할 뿐입니다.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도 의대생신문이 의과대학생들의 대표 언론지로 거듭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다양한 지역의 개성 있는 기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이 마음껏 목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전국의 의과대학생들과 함께 듣고 이야기해볼 수 있도록 의대생신문이 앞장서겠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 진실된 사람들과의 만남, 언론인으로서의 생활, 속 깊은 나눔 등 동기가 그 무엇이든 의과대학생들의 참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의대생신문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저치 말고 열어놓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개탄없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하는 2015년이 기대가 됩니다. 올 한해도 의과대학생들이 바라는 바 모두 이루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조을아 편집장/을지

<medschooleditor@gmail.com>

'103호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자기희생적인 의사가 의사를 망친다  (0) 2015.05.07

자기희생적인 의사가 의사를 망친다


2015년 노동자의 최저 시급은 5580원이다. 한 여자 아이돌 가수가 나온 어느 광고 덕택에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제 이른바 ‘알바생’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는 한 시간을 일하면 5580원은 최소 손에 쥘 수 있어야 한다. ‘열정페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본디의 뜻과 달리, 이러한 문제들을 꼬집는 부정적인 낱말로 재생산되었다. '알바생'을 고용해 가게를 꾸려나가는 업주들 중 몇몇은 이 광고에 오히려 항의하기도 했다. 광고 덕분에 최저 시급 기준을 지켜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야근수당, 휴일수당, 주휴수당 등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지불해야할 인건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저항이 있다는 점은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수련의, 전공의, 그리고 이후 전임의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우리들도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에서는 주당 100시간 이상을 근무하면서도 평균 3500원에서 5000원 전후의 시급을 받아오던 수련의 및 전공의의 권리 개선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라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다 하겠으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나 기타 유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만하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시급에 관한 광고가 이루어낸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한가지 꼽으라면, 노동자들이 자기가 가진 기본적인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 권리들을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사의 전선 최전방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사들을 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의사를 동경하며, 그런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만 사느라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몰랐다거나, 집에 며칠만에 갔더니 아들이 엄마를 몰라본다는 이야기가 당장 내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 환자는 언제 예약하고 아파하질 않는다. 언제 상태가 호전되거나 나빠질지 사실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생명의 가치는 소중하며, 그렇기에 고생해가며 살려낸 그 보람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의업은 성스러운 일이긴 하나, 그 보람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아파하는 환자를 모른체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도 노동자이다. 하루 수십명이 넘는 환자들을 보고 밤늦게 김밥 한 줄, 컵라면 한 개로 끼니를 때우려다 그나마도 못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의사일 수 있다. 분명 이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것이 당연하다고,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고만 생각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저 멋있어보이는 노예정도일 수 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고 할 때, 아직 큰 의사가 되기엔 요원해보인다.


의료계 현안들을 이야기할 때, 흔히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 정상화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우리들 스스로의 인식이다. 최저 시급 5580원을 홍보한 광고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알바생’들의 권리를 깨우쳐 주었으며, 그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찾으려고 할 때, 가장 큰 힘이 나온다. 옆에서 대신 주장해서 일일히 먹여줄 수 없다. 미래에 의사가 될 우리도 다르지 않다. 각종 현안에 대해 알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 건 살린 것이고, 의사니까 당연히 하는 일이다. 우리의 권리들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어떤 소중한 권리를 가졌는지, 왜 이런 것들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하다. 환자밖에 모르는 의사는 오히려 다른 의사를 망칠 수 있다. 내 권리를 알고 주장하는 의사가 나라를 고치는 큰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03호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자가 독자에게) 시작하는 모두를 위해  (0) 2015.05.07

흑백 사진 : 색이 사라진 사진, 그리고 그것을 찍는 사람들


21세기. 우리는 컬러의 홍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핸드폰, 광고, 텔레비전, 유튜브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화려한 색감, 빠르게 변화하는 영상과 이미지들을 접하며 화려하고 순간적인 색깔에 매료된다. 이러한 세상에서 흑백 필름 사진은 세상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흑백사진은 천천히 매료되고 그 시간 속에서 더 깊게 각인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명한 흑백 사진 작가와 그 삶을 통해 그들의 사진 미학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Henri Cartier-Bresson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으로 유명한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은 원래 미술을 전공했던 화가 출신의 사진가로 기하학적 구도와 비율을 잡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당대 유명한 사진작가들과 국제보도 사진가 단체 <MAGNUM>을 설립했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을 이야기할때 그의 유명한 사진집<결정적 순간>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결정적 순간”은 그의 사진 철학이 스며들어가 있다. 그는 촬영 대상의 움직임 중 가장 좋은 순간을 가장 적절한 시간에 포착했다. 그것이 대상 자체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순간으로 현실을 조작하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진은 이미 세계에 내재한 자연스러운 질서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감동을 자아낸다. “스쳐 지나가는 실재의 외관에 모든 능력이 집중되는 순간에 숨을 죽이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그의 사진 미학을 보여준다. 



 

Robert Capa[로버트 카파]

-‘삶의 한가운데’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종군 사진기자 중 한 사람이자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MAGNUM>의 창립멤버이다. 헝가리 출신 유태인인 로버트 카파는 독일로 정치적 망명에 길에 올랐고, 트로츠키의 연설 장면을 촬영하게 되며 사진의 세계로 접어 들게 되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로, 그는 자연스럽게 보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종군 사진기자 유명해진 것은 스페인 내란에서 총탄을 맞아 스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이다. 그는 그 뒤로 중일 전쟁, 제 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독립전쟁,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사진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병사들 가까이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찍은 그의 사진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전쟁의 긴장,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그의 사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촬영한 사진이다. 그 때 현상과 인화과정의 문제로 필름이 흔들려서 나왔는데 이는 오히려 전쟁의 긴박감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로버트 카파는 인도 차이나 전쟁에서 지뢰를 밟아 41세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삶을 기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카파이즘 이라고 한다. 



 

Willy Ronis[윌리 호니스]

-“일상에서의 행복”


“만약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에서, 햇볕이 내리 쬐는 탁자 위 꽃병에 꽂힌 튤립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집위에 드리워진 구름에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세계 3대 휴머니즘 사진작가이자 프랑스가 사랑한 사진작가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매체에 작품을 게재한 윌리 호니스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사진으로 보여준 대표적 작가이다. 그는 파리지엥들의 삶과 파리가 갖고 있는 매력을 담은 사진들을 찍으며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표현하는 사진작가로 인정받았다. 그의 사진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잡아낸다. 빵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 자극적인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진에 스며있는 따스함과 사랑스러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행복감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연필심으로 그려낸 듯한 파리의 모습은 그가 왜 프랑스가 가장 사랑한, 프랑스의 위대한 사진작가인지 알게 해준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어떤 사진이 찍혔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돈을 들여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에 드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생각하면 흑백 필름 사진은 지금 시대와는 동 떨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기이기에 합리성과 편리성, 화려한 컬러, 빠른 변화를 포기한 흑백 사진에서 향수를 느끼고 색다른 감동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옛 그대로 정지된 듯한 사진은 아날로그적인 감동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흑백 필름의 인화와 현상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빛이 없는 깜깜한 암실에서 오랜 시간 후 나온 흑백 사진은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 떨어져 있는 듯 하며 삶의 여유와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 흑백 사진 감상과 함께 그 여유도 함께 즐겨보도록 하자.


박상아 기자/을지

<ann1208@e-mednews.com>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과학 사기극

- 신뢰의 상징 과학, 그 속에서 펼쳐지는 통 큰 사기극


(▲ 필트다운인 화석)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나 실험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과학 발전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1912년 영국에서는 대단한 위조 사건이 일어났다. ‘필트다운 인(Piltdown 人)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원시 인류의 화석을 발견했다는 한 사기꾼의 제보로부터 시작되었다.

발견 당시부터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이 화석은 1953년까지 ‘조상님’ 뼈로 보존되었다. 이 화석은 현생 인류의 머리뼈, 침팬지의 송곳니 그리고 오랑우탄의 아래턱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위조 사실이 밝혀지자 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무려 40년 동안 가짜 뼈를 귀중한 자료로 모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도 과학자의 부정행위들은 끊이질 않았다.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고 싶어 했던 몇몇 과학자들은 한층 더 대담하게 사기를 쳤다. 다음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던 과학자들의 부정행위는 아시아의 과학이 발전하면서 아시아에도 번져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황우석 사건이 있었고 2006년 일본에서는 다이라 가쓰나리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결론은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에서 논문 날조 사건이 터졌다. 오보카타 하루코(왼쪽 사진)라는 무명의 젊은 여성 과학자가 동물의 몸에서 떼어 낸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깐 담그는 자극만으로 간단하게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3대 과학저널’로 불리는 네이처에 실리면서 황우석 쇼크 이후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던 줄기세포 연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그녀가 속한 이화학연구소(RIKEN)가 일본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이고 연구소 소장 노요리 료지가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라는 점도 그녀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하도록 해주었다. 일본 열도는 삽시간에 ‘오보카타 신드롬’에 휩싸였다.

그러나 영광과 열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논문이 기재된 지 2주가 채 안된 지난해 2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소속 연구사가 논문 조작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연구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를 시작했고 같은 해 4월 1일 2개 항목에 대해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공식 발표를 했다. 조사위는 조사 결과 논문이 ‘창작’에 가깝다고 밝혔다. 논문에 포함된 그래프가 일일이 손으로 점을 찍어가며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7월 2일 네이처는 “논문이 조작됐다”며 논문을 철회했다. 오보카타 박사의 멘토이자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사사이 요시키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연구센터 부소장이 논문 철회 한 달 후 자살을 하며 이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2015년 1월 26일 이화학연구소의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오보카타 박사가 박사학위를 위해 작성한 논문 역시 날조된 것으로 밝혀져 와세다대 역시 조만간 박사학위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다.


윤명기 기자/한림

<zzagnyun@e-mednews.com>



지역감정,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감정의 변천사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의 노랫말 중 일부이다. 이 노래는 호남과 영남 지역 간의 ‘동서화합’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들 말하는 ‘지역감정’을 잊고서 화개장터에 놀러 오라는 내용이다. 어찌하여 이 좁은 한반도에서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동서화합’을 이루어내자는 노래가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혹자는 삼국시대의 영토만 봐도 동쪽의 신라와 서쪽의 백제가 서로 나누어 통치했기에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재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진정 삼국시대부터 기원했다는 설이 타당한지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1 

-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지역감정


전라, 충청, 경기 지방은 백제가, 경상, 강원지방은 신라가 그리고 황해, 평안, 함경 및 만주지방은 고구려가 통치해왔다. 그러나 서기 675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어 내면서 한반도 전역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자연스레 정통 신라인과 패전국인 백제, 고구려 지역민들 사이에 계층이 생긴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는 피정복민 차별정책을 펴서 지방에 살던 옛 백제와 고구려 사람들은 아무리 성공해봤자 현재의 면사무소장 급인 진촌주층으로 대우했다고 했다. 삼국통일 이전의 신라 때부터 수도인 경주 내에 살았던 왕경인(王京人)과 경주 바깥에 살던 신라인으로 계급을 나눈 신라에서 피정복민 차별 정책을 실시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2 

- 고려시대의 지역감정


통일신라가 후삼국시대를 거쳐 왕건에 의해 고려로 재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한 번 지역 계층에 커다란 변동이 일어났다. 고려사의 기록에서 왕건은 “문제를 일으킨 곳은 앞으로 향소부곡으로 지정해서 거주 이전을 제한하고, 기본 세금이외에 추가 세금을 부담토록 하라” 고 명했다. 당시 왕건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후백제의 근거지였던 백제 유민이 살던 충청 및 호남지방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한 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하 : “이것이 지난 목천(충남 천안) 지방에서 일어났던 반란자의 명단입니다.”

왕건 : “어디보자. 반란자들 주제에 성씨를 가진 자들이 많구나. 이 자들의 성을 다음과 같이 우(于)는 우(牛)로, 상(尙)은 상(象)으로 돈(頓)은 돈(豚)으로, 장(張)은 장(獐)으로 고치도록 하여라.”

풀이하면 우(牛)는 소, 상(象)은 코끼리, 돈(豚)은 돼지, 장(獐)은 노루를 뜻하는 한자이다. 물론 반역자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왕건의 유언과도 같은 “훈요 10조”의 내용에는 “차령산맥의 남쪽 (충청 호남 지방)의 공주강 (금강)외는 산형지세가 배역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이라는 내용을 통해 그가 확실히 충청 및 호남지방을 차별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3 

- 조선시대의 지역감정 (1)


고려의 몰락 이후 조선시대의 지역 간 대립은 독특하게도 “학파”와 연관 지어서 설명 할 수 있다. 유교 경전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퇴계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따르는 영남학파는 주로 동인 세력이었고,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을 따르는 기호학파는 주로 서인 세력이었다. 그런데 “정여립의 난(선조 22년, 1589)”을 통해 동인과 서인간의 정치 전쟁이 일어났다. 이를 기축옥사라고 부르며, 3년여에 걸쳐 정여립과 관련된 1,000여명의 동인계가 사형 혹은 귀양살이를 하였다. 정여립이 전주사람이었고, 많은 호남 지역 유생이 동인에 속했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 호남 출신은 관직 진출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기축옥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국의 과거시험 합격률이 서울이 1위, 전주가 2위, 나주가 3위였으나, 기축옥사 이후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하기 전 까지 기간은 서울이 1위이고 전주는 10위, 나주는 11위에 머물렀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3 

- 조선시대의 지역감정 (2)


조선시대 지역 간 대립은 “학파” 이외에도 “민족”간의 갈등과 “지리적 이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남쪽지방 사람들 사이에는 서북지방(황해, 함경 지방)의 사람들은 여진족의 후예, 즉 오랑캐라는 풍문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대대적인 북진 정책을 펼치면서 이 서북 지역의 여진족들이 대거 조선으로 흡수 유입되었기 때문에 생긴 풍문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산세가 험악하다는 지리적인 이유로 서북지역의 성장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서북지역은 조선에서는 유배지의 개념이 강했고 실제로 조선시대 중기까지 철저히 배제된 곳으로 존재했다. 택리지에는 “서북민은 설령 과거에 합격하여도 벼슬은 종5품에 지나지 않는다.”, “문벌을 중하게 여기는 한양사람들은 절대로 서북민과 혼인하지 않으려 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시간이 흘러 조선 후기에 이르자 상태가 더욱 심각해져서 18세기 경 정3품인 당상관 후보자 명부에 조차 서북지방 출신은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을 뒤엎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 바로 “홍경래의 난(순조 11년, 1811)”이다. 홍경래는 청천강 이북 8군을 점령하지만 이후 관군에 패해 무위로 끝났으며, 오히려 서북지방은 반역의 땅으로 여겨졌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4 

- 현대시대의 지역감정 (1)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직후 우리 사회에는 남북의 이념대립은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영남 대 호남”과 같은 구도의 지역감정이 심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1963년 제 5대 대통령 선거(국민 직선제)의 결과를 살펴보면 오른쪽 그림과 같다. (노랑-윤보선 우세/ 파랑 - 박정희 우세) 박정희와 윤보선의 양강구도로 펼쳐진 이 선거에서 영남과 호남에서는 압도적으로 박정희를 지지했다. 전체 총 투표 수가 1100만 표였는데, 두 후보간 표 차는 15만 표에 불과했다. 박정희가 윤보선을 전남에서 약 28만 표, 경남에서 36만 표, 경북에서 36만 표를 더 얻었기에 “겨우” 당선된 것이다. 이 승리는 최근 정치 풍토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승리였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현재 우리가 말하는 영호남 갈등은 적어도 투표에서 만큼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당선된 이후 경상도를 중점적으로 개발하여 (농토가 풍족했던 전라도보다 척박한 경상도를 우선적으로 개발했다는 주장도 물론 있다.) 호남의 민심을 많이 잃었고, 호남 지역을 차별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역사가 말하는 지역감정 4 

- 현대시대의 지역감정 (2)


제 7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공화당 소속 박정희, 신민당 소속 김대중의 양강구도로 펼쳐졌다. 대선 유세기간 중에 서로간의 지역감정을 노골화하는 발언들이 상당히 많았다. 민주공화당에서는 “전라도 대통령을 뽑으면 경상 푸대접 내지는 보복이 온다”고 선전했고, 신민당은 "전라도에서도 이번에는 꼭 대통령을 내어 푸대접을 면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선거 막바지에는 영남 지방에 “전라도여 뭉쳐라”는 전단지,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전단지 등이 나돌아 영남 지역주민의 의식을 자극했다. 뿐만 아니라 1971년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언급을 하였다. 이효상은 박정희 지지 찬조연설에서 “쌀밥에서 뉘가 섞이듯이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 된다. 경상도 사람 중에서 박대통령 안 찍는 자는 미친놈이다.”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결국 현재와 같은 지역감정의 극한 대립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거를 목적으로 정치가들이 이를 상습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정 지역의 자원 배분 집중이나 소외 등이 실재하거나 실재한다고 느낄 때 지역주의가 나타난다는 점을 정치가들이 포퓰리즘 성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이 지역감정에 이끌려서 투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지역감정을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

블랙커피야, 나를 춘곤증에서 벗어나게 해줘!


봄이 찾아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교시 수업을 듣든지 점심 먹고 나서 수업을 듣든지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잠신이 짓궂게도 나를 찾아온다. 이런 춘곤증을 이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데 그 중에서도 커피요법을 흔히 찾는다. 하지만 시중에 파는 커피 성분을 확인해보면 내가 지금 설탕물을 먹는 것인지 아니면 커피를 먹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열량이 높아 살만 찌우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의대생들을 위해 “블랙커피의 쓴맛”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런데 막상 블랙커피를 마시러 편의점에 들어가 보면, 종류도 많고 가격도 다양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블랙커피 무엇을 어떻게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면 꼭 아래 표를 참고하길 바란다.


1. 가격도 저렴하고 편리하기까지 한 스틱형 블랙커피




2. 직접 타먹는 게 귀찮다면 완제품을!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

IS, 전 세계를 적으로 삼은 패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온갖 비극으로 가득했던 2014년을 뒤로 하고 희망으로 맞은 2015년은 그 바람대로만 시작하지는 않았다.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고 그것은 이슬람 급진주의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슬람 국가(이하 IS)와 알카에다의 합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프랑스는 IS와 전쟁을 선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한 청소년이 터키를 통해 IS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어 한국 전역이 술렁였다. 곧이어 일본 정부에 몸값 2억 달러를 내지 않으면 일본인 인질 2명이 살해될 것이라는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2월이 시작되자마자 세계는 일본인 인질 참수를 목격해야만 했으며, 며칠 후 공개된 요르단 공군 조종사 화형 동영상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다. 

IS는 좋지 않은 의미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IS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되었으며, 심심치 않게 유명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IS에 관련된 글은 삭제되거나 볼 수 없게 필터링되고 있다. 그러나 IS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IS의 출발과 급성장


IS는 2006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로 수니파 거점 지역에서 결성되었다. 이슬람에는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양대 종파가 있으며, 이 중 수니파가 90%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파이다.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 시아파가 다수파인 국가는 이란과 이라크를 비롯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크의 경우 시아파가 60%로 다수파이지만 건국 이래 정권은 20%인 수니파가 독점해 왔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이후 선거를 치르면서 정권이 시아파에게 넘어가면서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아랍 국가에서 시아파 정권이 탄생한 것은 830년만의 일로 수니파의 충격은 상당했고 이라크 내의 수니파 및 주변 수니파 국가들의 저항이 시작되며 이라크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이라크 수니파가 미국에 협력하기로 태도를 바꾸면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는 유명무실화되었고 이 즈음에 IS의 현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의 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바그다디는 미군에 의해 축출된 이라크 수니파 장교들을 영입해 세를 늘려가면서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를 결성하게 된다. 이후 조직 주도권을 두고 내분이 일어나 알카에다 이슬람 지부가 현재의 IS가 되었으며, 알 카에다로부터 지하드 운동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게 되었다.

IS는 시리아 내전을 통해서 급성장하게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분파 정권인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내전으로,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은 반군을 도우면서 많은 군수 물자를 지원하게 된다. IS는 이 군수물자들을 빼앗거나 돈을 주고 확보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IS는 시리아 반군 세력 중 최강의 부대가 되었다.


IS의 영향력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로 칭하고 있으나 IS는 국제 사회에서 거대한 테러 조직에 가깝다. 그러나 여느 식상한 테러 조직쯤으로 보기에 IS의 세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IS는 시리아 내전을 바탕으로 시리아에 충분한 기반을 형성했으며, 이후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군에 승리하게 된다. 이라크군은 부패로 인해 군 기강이 매우 해이한 상태였기 때문에 변변한 전투 한 번 치루지 못하고 이라크 제2 도시인 모술을 IS에 내주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내부의 수니파 신도들은 타협을 포기하게 된다. 급진주의자인 IS는 이라크 시아파 정권에 합류하려는 이라크 수니파 신도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이라크 수니파 신도들은 무장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며, 점차 세를 불려 나간 IS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인근 수니파 국가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어 중동에 새로운 세력 구도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

IS는 지역민들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IS는 최소 800만명의 시리아인과 이라크인들에게 각종 수수료 징수와 강탈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시리아에서 점령한 8개의 유전에서 채굴된 석유와 가스들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 시리아 반군들은 IS가 장악한 유전들에서 하루 3만~7만 배럴 정도의 석유가 생산되는 것으로 추산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경유는 배럴당 최대 60달러까지 판매되므로 IS는 이를 통해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의 테러 조직들과는 구별되는 점이다. 기존의 테러 조직들은 급진주의자 신도들이나 후원자들로부터 자금을 마련하였으나, IS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체제를 확립함으로서 전 세계를 향한 무장 투쟁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IS는 대중 매체와 SNS에 계속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노출함으로서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 편, 잘 조직된 이미지들을 통해 매력적인 이슬람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계속 형성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종교적 구심점을 잃고 장기적인 실업에 좌절한 중동 주민들은 이 같은 IS의 행보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IS의 과격한 행보는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어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IS의 잔인성으로 인해 후원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수니파 지지자들 중에서도 IS의 과격함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도 점점 퍼져나가는 IS를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에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IS의 영토 확장은 저지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아직까지는 IS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격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으나,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밀려드는 요우커 물결에 방향 잃은 한국 성형관광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의료관광을 본격화해온 이래,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의 수는 연평균 36.9%씩 증가하고 있고 특히 미용·성형 관련 분야는 53.5%씩 꾸준하게 증가해왔다. 과거에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일본인 관광객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외국인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의료 분야, 특히 성형 분야에서 이들이 쓰는 돈은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인들의 성형에 대한 인식이 다소 나빠진 상황에서 현재 성형업계는 요우커 덕분에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로커, 사무장 병원, 유령의사. 터질 것이 터졌다


2015년 1월 말,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국인 관광객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업계는 이를 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성형업계의 삐걱거림을 만들었고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게 한 것일까?

현재 한국 성형관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브로커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강남의 성형외과와 연결해주고 있다. 예전에도 브로커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힘이 있지는 않았다. 수수료가 10~20% 밖에 되지 않았고 성형업계들도 굳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동종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는 날로 증가했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90%까지 수수료를 떼고 있다. "길 건너 병원은 수수료를 50% 준다는데 여기는 얼마나 줄거냐"는 식의 흥정을 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은 살아남기 위해서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많이 떼주어야 하다보니 병원도 수술비를 부풀린다. 100만 원짜리 수술을 최대 1000만원까지 부풀린 후 900만원을 브로커에게 지급하는 일이 다반사다.

원정성형을 온 여성이 뇌사 상태에 빠진 사건이 중국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 성형외과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한국을 찾는 그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안전성을 기하기 위해서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생긴 것이 사무장 병원이다. 사무장 병원이란 현행법상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는 일반인이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하는 형태이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광고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브로커들과도 손을 맞잡고 있다. 환자 한 두명을 넘어 버스 한대에 타고 있는 환자를 통째로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나타난 것이 유령의사이다. 버스 한대 분량의 환자가 병원에 몰려오면 수술을 진행할 의사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스타 의사 한명이 상담은 진행하지만 수술실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의사이다. 문제는 유령의사들의 실력이다. 그들의 경력은 1~2년뿐이다. 떼로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들에게 고객이기 보다는 차라리 실습 대상에 가깝다. 수면제를 맞은 환자가 어떤 의사가 수술을 진행하는지 알 길은 전혀 없다.


보건복지부, 대책 수립. 제대로 수행만 된다면…


2월 13일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미용·성형 환자에 대한 불법 브로커 방지 및 의료 안전강화 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자칫 하다가는 의료관광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대응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 주요 추진방향을 설정하여 대책을 수립하였다.


▲ 불법 브로커 단속·관리 강화 및 건전 유치사업자 육성


○ 불법 브로커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단속(금년 상반기 중 1차 시범단속 실시) -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등록 유무 집중 점검 (위반시 3년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 불법 브로커 신고포상금 제도의 도입, 의료기관의 불법 브로커와의 거래금지 추진 - 국제의료사업지원법(국회 상임위 계류 중)에 관련근거 마련 추진

○ 직업윤리 강화를 위해 해외환자 유치사업자를 대상으로 주기적(매 3년) 보수교육이 실시

○ 불법브로커 신고센터(보건산업진흥원)의 기능 강화


▲ 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한국의료 정보제공체계 구축


 ○ ‘한국 성형시술 진료비 안내서’ 배포 - 성형수술 유형별로 진료비 책정 범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

 ○ 외국인환자 유치 의료기관 서비스 평가제가 도입 및 우수 의료기관 명단 공개 - 우수기관에 대한 정보를 ‘메디컬코리아 다국어 홈페이지’와 중국 등 외국 정부에 공유하고 이를 적극 홍보


▲ 외국인환자 권익보호 및 분쟁조정기능 강화 


○ 의료기관이 외국인환자에게 진료의사, 진료비, 부작용, 분쟁해결방법 등에 대한 사전 설명 및 의료인의 복장에 의료인에 관한 문구 또는 도구를 통한 정보 표시 의무화

○ 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에 동의한 의료기관에 각종 인센티브 제공 - 보완적으로 한-중 민관협의체를 가동하고 성형외과의사회를 통한 자율 조정 활성화 

○ ‘국제환자지원센터’ 설립 추진(‘16년) - 정보제공 및 영수증 사후 발급, 법률상담 등 종합적인 지원체계 마련

○ 일정규모 이상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의료사고 배상보험을 단계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방안 추진


의료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이 뒤따라주어야…


의료관광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대안은 일부에 불과하다. 우선적으로 의료관광에서 성형외과에 의존하는 비율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대학병원들이 중증질환자 유치에 더 공들여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기술이 중증질환 치료에 있어서 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의사들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 성형수술을 마치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이 할 게 아니라 성형 역시 의술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윤명기 기자/한림

<zzagnyun@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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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3월 제39대 의협 회장 선거 실시  (0) 2015.05.07

대한의사협회, 3월 제39대 의협 회장 선거 실시


(▲그림 : 대한의사협회 홍보팀 제공)


지난 해 의료 사회분야에는 원격의료, 영리자회사 설립 그리고 한의사 의료기기허용 등 큰 이슈들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6월 당선된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이 노환규 전 회장의 탄핵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에 주안점을 두며 의협을 이끌어 왔다. 임기가 만료되어 새로운 의협 회장을 선출하기 위해 3월 3일~20일은 우편으로, 3월18~20일은 온라인으로 선거가 실시된다. 기호 1번 임수흠 후보, 기호 2번 추무진 후보, 기호 3번 조인성 후보, 기호 4번 이용민 후보, 기호 5번 송후빈 후보로 총 5명이다. 의협 선관위에 따르면 총 유권자는 지난 2년간 의협회비 납부자 중 약 4만 4천명으로 의협 전체회원 약 11만 2천명 기준 약 40%정도다.


공통 출마 모토는 모두 단결, 쟁점은 개혁 그리고 전공의


임 후보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으로 시작하여 현재 서울시의사회 회장 직을 맡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과 의-정 합의 때 단장으로 나선 경력이 있으며, 원격의료 정책 방향에 반대하는 개원의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추 후보는 현재 의협 회장으로 이전 의협선거 공약의 연장선상으로 회원 간의 화합을 강조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조 후보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으로 시작하여 전 경기도의사회 회장 직을 거쳤으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원격의료 저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일반 개원의로 시작하여 현재 의협 정책이사로 있었으며, 정부 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송 후보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서 현재 충청남도의사회장 직을 맡고 있으며, 내부개혁을 강조하였다. 종합해보면 후보들은 의협이나 지역 의사협회관련 일을 한 경력이 있으며, 대정부 투쟁에는 강경한 입장이었고, 전공의들과 젊은 의사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표1].





의대생 또는 전공의 관련 각 후보의 입장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의 전공의 수련환경 관련 공개질의 답변서에 따르면 임 후보는 수련평가기구에 사용자 측인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와 보건복지부가 모두 참여해야하며, 수련환경 개선으로 인한 비용을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 후보는 지금까지 전공의에 역할을 해온 복지부와 병협이 수련평가기구에 참여해야 하며 의료계 내부의 합의를 거쳐 가칭 “전공의 인권법”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전공의의 추가근로수당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급 보장 할 것을 약속했다. 이 후보는 복지부와 병협의 수련평가기구 참여에 반대하며 복지부의 시행령이 아닌 국회 특별법으로 독립적인 평가기구를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였으며, 의협 차원에서 추가 소송에 대한 지원 할 것을 약속했다. 

인터뷰가 가능했던 후보는 추 후보와 송 후보였다. 추 후보는 의협 회장직에 있으면서 2011년부터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전국의과대학학생협회(이하 의대협) 등과 공동으로 개최해 오고 있는 <젊은 의사 아카데미> 행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문예전시회, 강연회, 동아리 경연대회 등의 행사를 통해 전국 41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젊은 선배의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운영하는 한편 전국 학생회장단 회의, 국제교류활동, 봉사네트워크 활동 등에도 폭넓은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국회차원에서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전공의특별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3월 12일 공청회를 추진하였다고 밝혔다. 송 후보는 전공의 수련 평가기구의 복지부나 대한병원협회가 아닌 의협 직속으로 설치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수련환경 수시암행감시제도 도입해 상근 수련담당이사가 주당 수련시간, 연속 수련시간 등 10개 항목을 중점적으로 암행 감시하여 적발된 수련병원은 즉시 고발조치와 함께 대전협 및 의협 홈페이지에 게제하고 병원장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하며, 학회와 관련된 경우 해당 학회로 통보 후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두 후보 모두 의대생과 지난 의협에서 추진해 온 젊은의사포럼을 계속 이어가는 한편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진료하고 환자도 만족하고 의사도 보람을 느끼는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선재 기자/중앙

<mgstoner@naver.com>



생명을 지키는 자격증

103호/의대의대생 2015. 5. 7. 13:24 Posted by mednews

생명을 지키는 자격증




번잡한 심야 응급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곧이어 응급실 문으로 급하게 환자 침대가 밀고 들어온다. 환자 위에서는 응급 구조사가 가슴을 압박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달려와 환자 vital을 확인 후 “Shock!” 외치며 전기 충격을 주고 다시 가슴을 규칙적으로 압박한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던 한 장면으로 심장이 멈춘 환자에서 시행하는 심폐 소생술이다. 

멈춘 심장을 심장 마사지로 인위적으로 뛰게 만들어 몸에 손상을 줄여주는 심폐 소생술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는 필수적인 능력이다. 또한, 언제 어느 곳에서 발생할 지 모르는 심장 마비 환자의 빠른 응급처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갖출수록 좋은 능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심폐 소생술에도 자격증이 있다. ACLS certification(의료인 전문) 혹은 BLS(일반인 포함) certification 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심폐 소생술 자격증이다. 대한 심폐소생술 협회가 주관하는 교육과 시험 통과 시 얻을 수 있다. 

의사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자, 일상생활 중 갑작스런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심폐소생술. 이 자격증을 따보면 어떨까. 

심폐소생술 자격증은 일반인 코스(BLS)와 의료인 코스(ACLS)로 나누어져 있다. 의대생일 경우(일부 기관 해부학, 생리학 이수완료) 의료인 코스로 딸 수 있다. 4~5시간 교육 이수 후 필기 시험(90점 이상)과 실기시험(흉부 압박, 시뮬레이션, 제세동기 사용)을 모두 통과하면 당일 바로 취득 가능하다. 

ACLS/BLS 교육 일정과 장소는 대한심폐소생협회 홈페이지http://www.kacpr.org/info/edu.php?code=04로 들어가면 지역, 구분(의료인/일반인), 코스(강사/일반)에 따라 교육 일정과 장소를 검색 할 수 있고, 1달 단위로 스케줄 표를 확인할 수도 있도록 되어있다. 장소는 전국적으로 실시하나 병원, 적십자등 위치가 한정적이고 시간도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가까운 주말은 마감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따는 것이 좋다.  

ACLS/BLS 교육&시험 시간은 보통 6~8시간이며, 등록비는 BLS 경우 10만원 내외 발급비는 3만원,ACLS 경우 30만원 정도이다. (해당병원 학생 시에는 할인된다.) 서울 아산병원이나 삼성 서울 병원에서는 방학동안 서브인턴시 무료로 BLS 강의 진행 후 자격증을 주기도 하니 서브인턴 시 신청해 해보는 것도 좋겠다. 

ACLS/BLS certification은 일부 병원 인턴 지원 시 가산점(서울 아산병원 경우 1점)을 주기에 1석 2조 효과도 있다. 자격증의 유효기간은 자격증을 받은 달로부터 2년이기에 인턴 지원과 레지던트 지원에 모두 사용하기 위해서는 본과 4학년때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혹여나 일어날 불상사에 잘 대처하기 위해, 미래 의료인으로서 준비하기 위해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따보면 어떨까. 


박상아 기자/을지

<ann1208@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