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가 말랑말랑, 책 한 권 어때요?
늑대를 읽어보셨어요? 혹시 철학책은 키워보셨나요?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저/강수희 역, 추수밭
이 질문만큼이나 늑대와 철학은 우리에게 어색하다. 미디어라는 체로 거른 후의 정제된 모습이 아닌 실제 모습은 더 그러하다. 때로는 낯설고, 심지어 겁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두 이질적인 대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시선을 따라가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철학과 늑대에 친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철학교수인 저자 마크 롤랜즈는 어느 날 구멍이 난 삶의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개로 둔갑한 늑대를 입양한다. 그의 늑대 브레닌은 목줄 없이도 나란히 걸을 만큼 인간과 가까워졌고, 작가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늑대는 개의 가면을 쓰고 인간 세계에 어울려 살면서 거꾸로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우리는 동료 영장류를 바라보지 않는다. 예의주시한다. 계략을 짜고, 음모를 꾸미고, 확률을 따진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관계가 이해득실에 따라 측정되는 것이다. 반면 늑대는 행복이 결코 계산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대표적인 인간의 가면은 ‘행복 추구’였다. 지금까지 행복의 비결을 알려 주는 책들이 무수히 만들어졌는데도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저자는 감각에 의존하여 만족스런 감정 상태를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이라는 데 착안하여, 인류를 ‘행복중독자’라 칭한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소유의 정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
반면 다른 동물들, 말하자면 늑대는 감정이 아닌 실체, ‘토끼’를 쫓는다. 마크는 브레닌이 먹이를 잡건, 못 잡건, 사냥시간이 끝나면 눈을 반짝이며 환희에 젖는 걸 발견했고, 그로부터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 될 때 비로소 행복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방에 갇힌 여행자들에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저/권상미 역, 21세기북스
책은 서론 없이 한 장의 차례를 지나 곧바로 시작되고,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난다. 보다 못한 역자가 후기를 끝에 남겨놓은 것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무슨 책인지 알기위해 차례를 훑어봐도, 이내 당황하게 된다. 각 챕터의 제목은 여행도시의 이름 하나뿐이다. 여행 가이드식 맛집 소개도 없고, 철학적 사유도 없으며 내용은 ‘발칙한 유럽 산책’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저자가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느낀 감상일 뿐이다.
‘스페인 어는 매우 섬세하고 낭만적으로 들리는 반면, 같은 말이라도 독일어로 읽으면 포로수용소의 기상 점호처럼 들린다.‘
‘리히텐슈타인은 모든 게 우스꽝스러운데 그 중 하나가 소시지 껍질과 틀니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유명한 저자 빌 브라이슨은 각각의 도시에서 며칠씩 머무르며 느낀 자신의 감상을 서술하고 있다. 파리, 벨기에, 로마, 스위스 등 친숙한 도시부터 예테보리, 함메르페스트, 소피아 같은 생소한 지역까지 다양하다. 비록 그의 눈으로 본 유럽의 모습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직설적인 유머로 묘사된 가장 인간적인 유럽의 모습일 것이다. 책은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
‘어쨌든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더 타임스」에서 일할 때 네덜란드 출신의 동료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에게 반 고흐를 ‘반 고’로 발음하는지, ‘반 고흐’로 발음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아니, 빈센트 반….”까지 발음하더니 갑자기 나방이라도 목에 걸린 듯이 가래 뱉어내는 소리를 낸다.
세상만사는 다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저/임호경 역, 열린책들
소설의 주인공 알란 칼손은 낙천주의자에 두려움이 없는 100세 노인이다. 세계를 헤집고 다니며 심지어 자신을 잡으러 온 형사가 들이 닥쳐도 커피한잔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학습에 의해 두려움은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젊은 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던 알란은 24세의 나이에 스웨덴에서 폭탄제조로 자신의 집을 폭파시키며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 후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물리적 거세를 당하며 내전, 스파이, 원자탄 개발 등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게 된다.
그런 알란이 100세 생일을 맞아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해프닝과 백 년의 세계사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보다 보면 코믹 로드 무비와 세계사 다이제스트를 동시에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엄청난 사건과 고난이 끝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알란의 모습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과연 그 무엇이 억누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정말이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전영준 기자/중앙
<yjipnida@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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