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부문) 최우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4학년 이장욱
응급의학 실습 4일차. 간만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유비무환?비가 오는 날엔 환자가 없다?라는 말처럼 실습 내내 바쁘게 돌아갔던 응급실도 고장난 정수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정수기 관련 업체 사람들과 간간히 오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환자들 외엔 오전 내내 한산했다. 그러던 노곤한 오후 무렵, 갑자기 울리는 전화.
“4분 내로 CPR 환자 온답니다. 다들 프로토콜대로 준비해주세요”
군복무 중에 모형이 아닌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을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환자가 사망 상태로 실려왔었고, 그것도 응급실 문틈 사이로 먼 발치에서 언뜻 본 것이어서 실제 환자에게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이 실습을 돌던 동기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눈으로 이런저런 눈빛을 주고 받으며 소생술실 앞에서 환자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119 대원이 심장 압박을 하면서 들어왔고, 대기하고 있던 교수님, 전공의, 인턴, 간호사, 응급구조사들이 프로토콜대로 환자를 처치하기 시작했다. 소생술실 앞을 커튼으로 가려놓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전극과 수액들이 몸에 꽃힌 환자의 모습과 구호를 맞춰 심장 압박을 하는 인턴과 응급구조사, 그리고 이런저런 처치를 조곤조곤 지시하는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닥터 그린이 소리지르며 제세동 버튼을 하나 둘 셋 줄기차게 눌러대던 ER의 드라마틱한 장면과는 달리, 긴박하긴 했지만 의외로 차분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그리고 심장 압박에 맞추어 하나, 둘..외치는 소리가 없었더라면 여전히 평온한, 그저 그런 비오는 날의 응급실로 여겼을 것이리라.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119 구급대원과 선생님들 사이로 왔다갔다 들리는 정보들을 조합해보니, 환자는 중년의 남자로 심장에 기저 질환이 있어 예년에 판막 교체술을 한 상태였고 회사에서 족구 시합을 하던 중, 갑자기 심정지가 왔던 모양. 그리고 병원까지 도착하는데 약 20분 정도가 걸렸고, 119 구급차에서 이미 5회 정도의 제세동을 시행했다고 했다. 열린 틈으로 제세동을 하기 전의 모니터를 살짝 보니 평탄파가 아니라 P파 소실에 wide QRS파 형태가 빠르게 반복되는 심실세동?다음날 오전 의국 환자 보고 시간에 교수님이 심폐소생술 시에 찍은 심전도 띠지를 보시더니 Torsade de Pointes라더라. 역시나 부족한 지식이 앞섰던 셈이다?의 파형을 보여서 심장압박과 함께 제세동을 계속 하면 아주 약간의 가능성은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 속에서는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의 20여분을 보고 있었을까. 심장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심장압박을 하던 인턴과 응급구조사들의 표정도 점점 지쳐갈 무렵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눈빛이 풀려 혼이 나간 듯한 중년 여자분이 들어왔다. 턱을 덜덜 떨면서 환자가 어디 있냐고 물으시기에, 안쪽에서 처치를 지시하던 내과 전공의에게 달려가 보호자가 왔다고 전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보호자는 바닥에 다리가 풀린 듯 털썩 주저앉고… 이를 부축한 내과 전공의는 응급실 한 켠 벤치로 보호자를 이끌며 ‘보호자 분께서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지금 빨리 연락이 닿는 친척 분들에게 전화하셔서 이쪽으로 빨리 오라고 하세요’라고 말하고 다시 급히 소생술실로 향했다.
커튼 틈으로 보여지는 소생술실을 지켜보던 눈은 자연히 혼자 남게 된 보호자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기는 손에 들고 있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으로 도저히 전화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보호자에게 살짝 다가가 지금 심장이 완전히 멎은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환자 분 심장 제대로 뛰게 하려고 최선으로 노력하고 계시니까 절망하지 마시고 마음을 모아달라는 말?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도움이 안되는,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껍데기 말이었다. 이미 내 머리 속에서는 ‘환자의 심장이 결국은 멈출 것’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 아무 말 말고 손을 꼭 잡아 주는 편이 보호자에겐 더 낫지 않았을까?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건네 받아 어느 연락처로 전화를 해야될 지 물어본 후, 전화를 걸어 다시 건네 드렸지만, 보호자는 그저 꺽꺽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지금 동국대 일산 병원 응급실인데, 지금 전화하신 분 남편 분이 심정지로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빨리 이쪽으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하니 그때서야 전화를 받는 쪽에서도 상황을 알아챈 듯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나중에 다시 확인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때는 이미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지금 가는 중이라고 하더라.
사실 나는 내 주변의 구체적인 슬픔에 즉각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또 밖으로 내어놓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까라마조프씨 네 형제들>에 나오는 구절이었던가. ’개개의 인간에 대한 증오가 더해갈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강해진다‘라는 역설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나는 거대한 담론, 구체적인 주체가 희석된 문제에 대해서는 쉽사리 동의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내 주변 가까이에서 수없이 목격되는 슬픈 상황에는 도저히 몸이 즉각적인 자동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노동, 자본, 통일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밑도 끝도 없을 이야기들에는 이성적, 감성적 동의와 긍휼 그리고 분노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아가페에 버금갈만한(?) 능력이 발휘되지만, 바로 나의 눈과 손과 발이 닿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분투하는 이름모를 조각난 사람들을 보면 심정적 동의에 앞서 ‘저 사람은 여기서 도대체 왜 저러고 있나’라는 냉정한 상황 판단 논리 회로가 먼저 돌아가며 손을 내밀고 잡아주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나 스스로 지금까지 슬픔이란 것을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이해한 탓에 타인의 구체적이고도 사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 - 이건 내가 지금까지 ‘호혜적 연애’ 와 같은 사치를 제대로 누려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 이 많이 결여된 탓이리라. 또 그것에 더불어 ‘인류의 비환은 상통하지 않음’을 예전부터 느껴왔기에…
보호자 옆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길 수 분…파르르 떠는 파란 입술이 더 없이 말라 보여서 옆에 있던 동기에게 부탁해 떠온 물을 마시라고 드렸지만,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이내 손을 얼굴로 감싸쥐고 뭉크러지면서 얼굴을 무릎에 묻는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저 옆에 멍하니 서있는데, 보호자의 지인인 듯한 남자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응급실 문을 열고 두리번 거린다. 이내 보호자에게로 안내를 하고 나는 잠시 빠져 살짝 상황을 봤지만, 정말 그냥 ‘지인’인 듯 보호자와 몇마디 말을 나누고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듯 하더니 그냥 옆에 멀뚱히 앉아 있는다. 거기다가 정수기를 고치러온 기사가 ‘(터진 정수기 파이프)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요’라는 통화를 큰 소리로 하며 보호자 앞을 빠르게 지나친다. 이 말을 아마도 남편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어깨의 들썩임과 흐느낌은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물론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비수를 꽂은 격이 된 정수기사, 응급실의 이런 모습을 아이에게만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던 한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그저 잉여인간으로 소생술실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가 되어 있던 나와 동기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분명 존재하긴 했지만, 그때만큼은 모두가 고장난 라디오가 되어, 누군가가 간절히 발신하는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못한 채 지직거리는 소음만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지 40여분 째…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했던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한 시간 째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거다. 제세동 회수도 이미 10회를 넘어선 상황. 전자의무기록에서 파란색과 빨간색 화살표로 얼룩진 동맥혈 가스 분석 소견을 보며 절망적 예측을 굳혀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소생술실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동기들과 함께 황급히 커튼 틈으로 소생술실에 있는 심전도 모니터를 보니, wide QRS이긴 했지만, P파와 T파가 언뜻 언뜻 보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형을 보이고 있었다. ‘심장이 돌아왔구나!’ 지금까지 비극의 전형적인 마무리 플롯을 짜는 것 마냥 파국적 상황을 예비했던 머리 속 한 켠이 갑자기 찌르르해온다. 순간 보호자에게 달려가려다, 아직 명확한 상황이 밝혀지지도 않았기에 발을 멈추고 시선만 다시 보호자 쪽으로 향했다. 보호자는 아직 그런 상황을 눈치를 못챈 듯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환자의 자발 호흡이 돌아오고, 내과 전공의가 소생술실에서 나와 보호자에게 다가가서 ‘지금 환자 분의 호흡도 돌아오고 심장 뛰는 것도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여전히 심장이 많이 흔들려서 환자 분의 생존 및 예후를 확실하게는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잠시 후에 제가 더 설명드릴테니까, 보호자 분께선 일단은 안심하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전했다. 많이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몸을 의지하며 전공의의 설명을 듣던 보호자는 다시 흔들리는 눈빛을 하며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이윽고 환자의 친척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 처음 연락할 때 휴대폰 연락처에 OO고모라고 되어있던 것으로 보아 환자의 누나와 자형인 듯 했다. 벤치 한 구석에서 웅크린 보호자를 보자마자 보호자의 손을 부여잡고 품 안으로 무너지는 보호자를 부둥켜 안으며 같은 울먹임으로 위로해주는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의 빚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에 뒤이어 드는 양가적 감정에 참으로 무참했다.
환자의 생명징후가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된 듯, 소생술실 안에서 환자를 처치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조금은 밝아진 듯 했다. 아직까진 많이 불안정해 보였지만 가끔씩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에 나도 조금은 안심을 하는 찰나, 안쪽에 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실습 학생들도 들어와서 심전도 돌아온 것도 한 번 보고, 환자 처치 외의 이런저런 것을 좀 도와주라기에 나와 동기들 모두 커튼 안으로 들어가 돌아온 심전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듣고, 이런저런 주사와 수액 처치를 당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는데…아까는 고통에 반응한 의식적인 반응으로 여겨졌던 팔다리의 움직임은 그저 팔은 굽히고 다리는 편 채 강직되는 전형적인 제피질 자세였다. ‘어쩔 수 없이 뇌에 손상을 입었겠구나.’라는 덜컹하는 생각과 함께, 또다른 사형 선고를 보호자에겐 또 어떻게 전달해야할까, 환자 자신으로서는 어떤 것이 최선의 결과일까, 그리고 또 남은 가족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라는 쉽게 답할 수가 없는 의문들이 스멀스멀 머리 속을 채웠다.
이후 응급실에서의 처치가 끝난 환자를 내과계 중환자실로 전동하기 위한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음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기 위해 내과 전공의가 가족들을 다 불러모았다. 지금 심장의 상태가 여전히 위험한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만약 한 번 더 심정지 상태가 오면 그때는 다시 되돌아올 가능성이 적다는 것, 그리고 심장이 제대로 돌아오더라도 비가역적인 뇌손상의 가능성(정확한 손상 여부 및 정도는 일주일 뒤 MRI를 찍은 후에 알 수 있다는 말과 함께)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차분하게 전했다. 보호자와 그 가족들은 심장은 뛰고 있다는 말에 조그마한 안도를 표하는 모습이었지만…아마 그때는 이러한 말이 앞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미처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주일이 얼마나 잔인하고 아릿한 시간이 될지도…
모니터링 장치와 함께 온몸에 수액과 튜브를 줄줄이 단 환자가 내과계 중환자실로 옮겨가는 것으로 응급실의 상황은 어느 정도 종료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같이 생동하던 한 존재가 누군가의 손에 맡겨져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 그리고 이런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들이고, 다시 받아들여야할 존재들의 모습을 최전선에서 목격한 경험…이렇게 보고 겪은 모든 일들이 나에게 어떤 생채기를 낸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습 기간 중에 겪은 잊지 못할 경험’이라는 식의 감당 못할 윤색을 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식의 오글거리는 싸구려 감상 한 줄로만 갈겨놓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글을 끼적여 본다. 친하게 따르던 선배의 자살을 겪고, ‘형의 죽음이 단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는 것만이 아닌, 혹은 나의 예술적 체험의 확장으로 이용되기를 않기를 바란다‘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던 기형도의 자기기만적이지 않은, 섬세하고도 묵직한 선언은 나같이 불비한 놈에겐 아직 요원한 것이긴 하지만…이렇게 흉내라도 내다보면 언젠가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내 삶의 오롯한 상흔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90호(2012.12.13) > 문예공모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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