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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심사평

90호(2012.12.13)/문예공모전 2013. 1. 1. 13:41 Posted by mednews

(시부문) 심사평

박덕선 (시인, 민족문학작가회)

 

어김없이 가을이 가고 겨울바람 소식 따라 의대생 문예 공모전 출품작이 내 손에 당도합니다. 한 해의 마무리 행사 같이 치루는 젊은 지성들의 글 잔치에 초대받고 심사를 맞는 일은 조심스러우나 신명나는 일입니다. 여전히 의학도들의 현장은 뜨겁고 그 속에서도 철학적 고민과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뜨거운 시의 옷을 입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도 용납 않는 병실과 수술실에서도 아름다운 서정의 감성은 시의 꽃으로 피고 있었습니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의학도들에게 보내는 경외심으로 심사에 임했습니다.  
올 해는 지난해에 비하여 공모편수가 다소 줄어들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읽어 내려가며 눈에 번쩍 띄는 수작들을 비교적 고민 없이 선택할 만큼 작품의 질이 뛰어났다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특히 자연친화적 정서를 노래하는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시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아쉬웠던 점은 서정성은 풍부한데 그 속에 삶의 진정성이 결여된 작품이 많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체 작품들을 살폈는데 비교적 편차가 심해서 1차 예심에서 10여 작품 정도 밖에 안 나왔으며 3차 예심까지 남은 작품은 7편이었습니다. 그 때부터의 고민이 일주일은 걸린 것 같은데요. 손에서 놓아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작품들을 애정을 갖고 살피며 제가 만들어서라도 상주고 싶은 몇 작품을 소개하며 심사평에 임합니다.
먼저 7편의 작품 중 ‘누에’를 먼저 뽑아들었는데 ‘누에’는 고학생의 삶과 누에의 삶을 대비시킨 작품으로 삶의 진정성과 치열함이 아주 잘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주제와 상(像)이 참신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호흡이 너무 길어 긴장미가 떨어지고 추상적 시어들이 주제를 전달력을 떨어뜨린다는 아쉬움 때문에 밀렸습니다. 이어 ‘단상’은 따뜻하고 소박한 기차안의 풍경을 애틋하게 그렸는데 제목에서처럼 단상에 그쳐서 약한 주제로 완성도가 낮아 밀렸습니다. 또 ‘흔들의자’는 낡은 의자하나에 스며있는 시간의 지문을 다정한 시선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빼어났습니다. 시어를 다루는 솜씨도 수준급이고 소품으로서의 형상화에도 성공했지만 이 작품 역시 첫 연의 서두열기가 추상적이고 진부한 표현에서 아쉬움을 남겼 습니다.     
위 세 편을 아쉽게 미루고 남은 네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며 시시때때로 순위가 바뀌는 고민 속에 빠졌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우수상은 선명하게 뽑혔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세 작품으로 우수상을 골라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모두 다 뽑아 주고 싶은 수작들이었거든요. 그 중 ‘기쁨이 느려서 참 다행이다.’를 먼저 뽑아내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병환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따뜻함과 공동체적 사랑이 햇살처럼 환하게 잘 표현된 수작이었습니다. 굳이 미룬 이유를 대자면 1~2연의 반복이 긴장감이 떨어져 시적 감흥을 방해한다는 아쉬움입니다. (첫 연의 4~7행을 빼고 2연으로 들어갔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밀어낸 작품이 ‘삶의 무게’입니다. 이 작품은 우수작으로 뽑은 ‘사과’와 함께 정말 고민을 많이 한 작품입니다. 공동으로 줄 수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수작입니다. 아버지의 옷걸이를 통하여 아버지의 삶을 이해해나가는 치밀한 과정과 절절한 연민의 과정이 감동적으로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시어들 간의 조화나 긴장미. 참신함까지 고루 갖춘 빼어난 작품으로 계속 시를 쓰라는 격려와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고민을 거쳐서 결국 ‘사과’를 우수작으로 뽑았습니다. 상해가는 사과 한 알과 병마에 시달리는 할머니의 삶을 등치시켜 절묘한 시어들로 잘 버무린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연과 연사이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주제를 형상화해내는 솜씨가 수준급입니다. 특히 의사로서 환자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과 애정이 시를 더욱 빛나게 하는 탁월한 작품입니다.
최우수작은 망설임 없이 ‘응급실’을 뽑았습니다. 시가 갖고 있는 미덕을 골고루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산문시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호흡과 탄탄한 긴장미로 응급실의 급박한 상황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뛰어난 영상미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비유와 상징, 아이러니들의 조합이 너무도 치밀하고 자연스러워서 숨 가쁘게 따라 내려 가다보면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감동의 드라마를 시어로 짜내는 솜씨가 기성시인을 능가하는 필력입니다. ‘기숙사 앞 응급실~로 시작하여 ~아직도 그들의 생명은 접수중이다.’ 라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엮어 내려간 절창의 시어들에 압도당하는 독자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심사자의 마음으로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의사는 인체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졌을 때 명의가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의대생 문예를 사랑합니다. 앞으로 글을 쓰는 의사들이 더 많이 나와서 영혼까지 풍요로운 건강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나의 즐거운 심사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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