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Search

시작하는 모두를 위해


처음이라는 말에는 상반된 여러 가지 의미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기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의과대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신문의 총 책임자로서의 처음은 솔직히 두려움과 걱정으로 더 많이 차 있습니다. 이전 선배 기자들이 닦아왔던 신문사의 기조와 명성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활동해 주는 기자들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지, 독자들이 의대생신문과 함께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지금입니다. 의대생신문은 편집장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의 관심, 의과대학생들의 참여, 기자들의 열정적인 활동, 이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의대생신문이 제 기능을 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편집장은 애로사항에 대해 마음과 귀를 열고 들으며 제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보조할 뿐입니다.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도 의대생신문이 의과대학생들의 대표 언론지로 거듭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다양한 지역의 개성 있는 기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이 마음껏 목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전국의 의과대학생들과 함께 듣고 이야기해볼 수 있도록 의대생신문이 앞장서겠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 진실된 사람들과의 만남, 언론인으로서의 생활, 속 깊은 나눔 등 동기가 그 무엇이든 의과대학생들의 참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의대생신문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저치 말고 열어놓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개탄없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하는 2015년이 기대가 됩니다. 올 한해도 의과대학생들이 바라는 바 모두 이루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조을아 편집장/을지

<medschooleditor@gmail.com>

'103호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자기희생적인 의사가 의사를 망친다  (0) 2015.05.07

자기희생적인 의사가 의사를 망친다


2015년 노동자의 최저 시급은 5580원이다. 한 여자 아이돌 가수가 나온 어느 광고 덕택에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제 이른바 ‘알바생’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는 한 시간을 일하면 5580원은 최소 손에 쥘 수 있어야 한다. ‘열정페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본디의 뜻과 달리, 이러한 문제들을 꼬집는 부정적인 낱말로 재생산되었다. '알바생'을 고용해 가게를 꾸려나가는 업주들 중 몇몇은 이 광고에 오히려 항의하기도 했다. 광고 덕분에 최저 시급 기준을 지켜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야근수당, 휴일수당, 주휴수당 등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지불해야할 인건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받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저항이 있다는 점은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수련의, 전공의, 그리고 이후 전임의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우리들도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에서는 주당 100시간 이상을 근무하면서도 평균 3500원에서 5000원 전후의 시급을 받아오던 수련의 및 전공의의 권리 개선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라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다 하겠으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나 기타 유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만하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시급에 관한 광고가 이루어낸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한가지 꼽으라면, 노동자들이 자기가 가진 기본적인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 권리들을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사의 전선 최전방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사들을 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의사를 동경하며, 그런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만 사느라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몰랐다거나, 집에 며칠만에 갔더니 아들이 엄마를 몰라본다는 이야기가 당장 내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 환자는 언제 예약하고 아파하질 않는다. 언제 상태가 호전되거나 나빠질지 사실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생명의 가치는 소중하며, 그렇기에 고생해가며 살려낸 그 보람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의업은 성스러운 일이긴 하나, 그 보람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아파하는 환자를 모른체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도 노동자이다. 하루 수십명이 넘는 환자들을 보고 밤늦게 김밥 한 줄, 컵라면 한 개로 끼니를 때우려다 그나마도 못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의사일 수 있다. 분명 이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것이 당연하다고,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고만 생각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저 멋있어보이는 노예정도일 수 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고 할 때, 아직 큰 의사가 되기엔 요원해보인다.


의료계 현안들을 이야기할 때, 흔히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 정상화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우리들 스스로의 인식이다. 최저 시급 5580원을 홍보한 광고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알바생’들의 권리를 깨우쳐 주었으며, 그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찾으려고 할 때, 가장 큰 힘이 나온다. 옆에서 대신 주장해서 일일히 먹여줄 수 없다. 미래에 의사가 될 우리도 다르지 않다. 각종 현안에 대해 알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 건 살린 것이고, 의사니까 당연히 하는 일이다. 우리의 권리들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어떤 소중한 권리를 가졌는지, 왜 이런 것들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하다. 환자밖에 모르는 의사는 오히려 다른 의사를 망칠 수 있다. 내 권리를 알고 주장하는 의사가 나라를 고치는 큰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03호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자가 독자에게) 시작하는 모두를 위해  (0) 201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