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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116호/오피니언 2017. 6. 12. 00:58 Posted by mednews

우리는 융합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융합(融合), 한자로 보면 굉장히 어려운 단어이지만 언론매체에서, 책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친숙한 단어입니다. 언론에서 ‘융합’이라는 단어를 주로 미래지향적인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미래는 융합의 시대’, ‘융합은 시대의 흐름’ 등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스를수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융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강조하고 있는 ‘융합’,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선 융합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쪼개서 보면 녹을 융(融)과 합할 합(合)이라는 한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자의 뜻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기존에 서로 다른 금속들을 잘 섞일 수 있게 녹인 다음 합쳐서 새로운 형태의 금속을 만들어 내면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화학시간이나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내용을 잠깐 되짚어 보면 높은 녹는점을 지닌 철이 발견되기 이전에 상대적으로 녹는 점이 낮은 구리와 주석을 서로 섞어 청동이라는 합금이 만들어졌고 이 합금은 기존의 금속들보다 강도가 강하였기에 이름에서도 언급되는 ‘청동기 시대’라는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대가 도래 했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요소들을 하나로 모으면서 이전에 없었던 전혀 다른 것을 창조해내는 개념이 융합인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왔던 융합이라는 개념을 왜 현대사회에서 더욱 더 강조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점점 개방되어가고 공유라는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융합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송두리째 바꿔 놓은 융합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스마트폰입니다. 비단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부는 핸드폰과 컴퓨터가 결합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누구도 우리의 삶을 이렇게 바꿔 놓을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습니다. 만들어진 스마트폰은 단순히 핸드폰과 컴퓨터의 결합을 넘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융합되어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켰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다양해지면서 그에 맞는 기술들이 개발 및 적용되고 다시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으로 탄생하는 융합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거창한 발명품이 아니라도 융합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성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팀을 이루어 주어진 일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융합으로 볼 수 있고 단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역시 융합의 과정입니다. 과거의 나의 삶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의 융합으로 미래의 자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융합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변화가 미래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고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청동기시대 이전 사람들이 구리와 주석을 섞으면 더 단단한 청동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청동을 발견하였을 것이고 청동을 발견한 집단에게는 번영을 전 인류에게는 문명의 한 단계 진보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융합’은 신문에서만 보는 거창하고, 우리 삶과 동떨어진 단어가 아닙니다. 우선 저부터 말씀 드리자면 의학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지게 된 관심사가 바로 ‘여행’입니다. 남들보다 저렴하게, 그리고 남들이 가보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여행을 하고 그 경험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제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며 여행 방법이나 정보를 찾는데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저의 취미이자 관심사가 제 인생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의사로서 살아가게 될 텐데 시간이 부족해서 제가 좋아하는 장기간 여행을 떠나지 못할 걸 생각하면 사실 우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제가 좋아하는 여행과 앞으로 평생 업으로 삼게 될 의학이 어떤 융합을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추구한다면 융합으로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융합을 기대하시나요?


김민 기자/편집장

<franky777min@gmail.com>

본과 때 의예과 시절을 되돌아본다면, 그대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자유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12년, 혹은 그 이상의 입시 경쟁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의과대학에 입학한 의예과 학생들일 것이다. 그 동안 추구할 수 없었던 많은 향락을 이제는 탐닉할 수 있다는 기대를, 진정으로 본인이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한 번쯤 속으로든, 겉으로든 외쳐보았을 한 마디가 바로 저 자유라는 것이다. 마침 대학에 와서도 보니, 본과에 재학 중인 여러 선배들께서도, 의예과 때는 최대한 놀음을 즐기라고 하신다. 항상 산사태와도 같은 학업의 양에 파묻힐 위기 속에서 생활하시는 본과 선배들께선, 당신들께서 누리시지 못하는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후배들에게 당연히 미래엔 할 수 없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하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일 테다. 그렇지만 여기서 노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놀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며, 또, 노는 것만이 대수일까? 

필자와 친분이 있는 한 경제학도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무릇 본인이 ‘효용’을 느끼는 방향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금전적·경제학적 관점에 국한된 시각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전념하길 원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라 사려가 된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자. 지구의 인구는 약 65억 명이라 하는데, 이 정보를 65억 개의 효용을 느끼는 취향이 존재한다고 해석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개개인이 가치를 느끼는 부분들은 다르다. 그렇지만 개개인 모두가 본인이 큰 가치를 느끼는 부분을 인지하고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사건들에 얽히고 체험을 하며, 효용을 느끼는 것들을 찾아 나간다. 우리들이 후회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데 있을 것이다. 새로이 발견한 가치를 과거에 이루지 못한 사실이 후회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생각을 이어나가보자. 의예과 때 어떻게 놀아야 ‘효용’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노는 것만이 ‘효용’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물론 사람들은 한 때 누렸던 것들을 즐길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은 과거에 그 즐거움을 얼마나 누렸던 지에 상관없이 과거에 누린 그 즐거움을 더 누리지 않았던 점을 후회한다. 본과 때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예과 때 더 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이유가 이러한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후회는 어떠한 즐거움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알고 하는 후회인 반면, 경험해보지 못한 즐거움을 놓친 후회는 그 느낌조차 알 수 없기에, 아쉬움이 더 하다. 본과 진입 후, 여생동안 예과 때만큼 여유 있는 때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본과 때는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 의사가 되어서도, 과학기술은 발전을 하고, 의사는 그에 맞추어 공부를 하며 생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어찌 보면 예과생 여러분들은 생애 마지막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우리가 흔히 ‘놀기’라고 부르는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들을 찾고, 그 가치들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 예과 때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본 필자는 물론 음주를 자주 즐긴다던지, 수업에 나오지 않고 놀러 다닌다던지, 하는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놀기’만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분들 역시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자유’ 내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며, ‘효용’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러한 향락으로부터 오는 즐거움만으론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삶을 살고 있는 예과생이라면, 다양함을 향해 나아가보자.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 필자는 단과대라는 우물을 벗어나 본교 중앙동아리 활동, 연합 단체 활동 등 다수의 활동들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필자는 본과에 진학해서도 무언가를 경험해보지 못하여 후회하지는 않을 듯하다. ‘놀기’는 재미있는 일을 하여 즐겁게 지냄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즐거움을 메워주는 다양한 경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진정 ‘놀기’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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