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Search

'103호/커버스토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5.07 국민 건강권까지 위협하는 규제 기요틴

국민 건강권까지 위협하는 규제 기요틴


지난해 말, 정부가 규제개혁방안으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서비스 허용, 원격진료 허용 등 여러 규제관련 사항에 대한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의료계는 또다시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번 발표에 포함된 내용들은 짧게는 1, 길게는 10년 넘게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들의 종합선물세트로 각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희비가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특히 제 39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의료계 내부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어, 고통 없이 편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만든 ‘기요틴’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규제는 사형대로 보낸다.


작년 12 28, 국무조정실은 경제단체 부단체장,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차관이 참여하는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개최했다. 민관합동 회의에서 이전에 8개 경제단체(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영자총연합회, 무역협회, 벤처협회, 중견기업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접수받은 총 153개의 규제기요틴 과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이중 114건을 개선 추진키로 하였으며, 건의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중 보건의료규제 주요 수용사례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및 보험적용 확대 ▲비의료인 카이로프랙틱 서비스 및 예술문신 제공 허용 ▲미용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미용기기분류 신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규제 개선 등이 있었다.

각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에 대해서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의료기기 사용은 양·한방 이원화 체계의 특성과 국민의 요구, 2013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침을 마련하고 추진하기로 했으며 올 상반기까지 기기별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를 명확화하기로 했다. 보험적용은 양·한방 이원화 체계 하에서 양방 의료행위에 대한 한의업 보험적용 여부는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서비스 허용에 대해서는 현행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카이로프랙틱사 직역 신설 수용은 곤란하지만 보건의료 직역의 전문화·세분화 차원에서 연구용역 등을 통해 대안 모색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리고 미용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미용기기분류 신설에 대해서는 비의료기관의 저주파 자극기 등 의료기기를 이용한 영업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관련업계의 성장이 저해되고 있으므로 미용기기를 새롭게 정의하고 미용목적으로 사용하는 기기 중 안전성이 입증된 기기를 의료기기가 아닌 미용기기로 분류하여 미용업을 하는 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규제 개선에 대해서는 올해 3월까지 우선시행하고 있는 원격의료시범사업 이후 원격의료의 안전성·효과성에 대한 검증결과를 국회입법논의에 반영하고 올 상반기까지 의료인간, 의료인·환자간 원격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경자구역 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요건규제 완화, 메디텔의 설립기준 및 부대시설 제한 완화 등 이전부터 계속 의료계에서 반대하던 사항들에 대한 규제들을 완화하기로 했다.




의료계, “기요틴에 올라간 것은 규제가 아니라 국민건강권”


12 28일 정부의 규제완화 발표 직후 대한의사협회는 31일에 성명서를 통해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보건의료정책을 전문가들과의 소통 없이 비전문가들이 정략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은 무시한 채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관점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어 의료체계에 대혼란과 갈등만을 초래할 것으로 대한의사협회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저지해 나갈 것이다.”고 밝히며 정부의 개혁안 강행이 투쟁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이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보편적 국민 권익을 위해 필요한 규제들까지 분별없이 철폐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각계로부터 받고 있다. 규제기요틴은 특히 보건의료분야에 있어 국민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이 명백하여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를 묵과할 수 없다.”며 “정부는 맹목적인 규제완화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 건강권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밝혔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도 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에 대해 “적절한 교육을 단 하나도 거치지 않은 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 촉구는 기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를 국민의 생명이 달린 업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무지한 발상”이라며 정부의 개혁안을 비판했다.

39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규제기요틴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임수흠 후보는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안을 동원해 막아내겠다.”고 했고 추무진 후보는 주 공약으로 규제기요틴 보건의료분야 과제 저지를 내세웠다. 조인성 후보는 “한방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의사의 영역침범이자 국가 면허제도에 대한 침탈”이라 밝혔고 이용민 후보는 “규제기요틴은 재벌과 한방의 이익을 우선하는 부패 관료들의 반란이며 대한민국 면허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폭거”라 표현했으며 송후빈 후보도 규제완화에 대해 “개혁을 넘은 혁명을 통해 의사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정부에 맞서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성만 고려한 성급한 규제완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경우 오래전부터 의사와 한의사간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문제였다. 의협도 산하에 한방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적극 대처중이며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적발될 때마다 소송으로 진행되고 2013년에는 헌법재판소까지 갈 정도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정부와 의료계간의 충분한 논의가 진행된 후에 규제완화에 대해 논해야 할 시점에서 정부가 단순히 유권해석만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더욱 반발을 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정부 발표는 우리나라 의료사에 큰 전환점이 될 획기적인 결정이다. 한의사의 자유로운 의료기기 활용을 통해 국민건강증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며 환영하고 있지만 의협은 “이번 개선안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관점에만 주안점을 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에서도 두 단체가 충돌하고 있는 형세다. 미국에서는 MD 면허만 있으면 시술도 하고 청구도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도수치료의 일종으로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등에서 이미 의사에 의해 시행되고 있으므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시술을 허용해 유사의료행위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는 “WHO ‘카이로프랙틱 교육과 안전에 관한 지침서’에 따르면 의사라 하더라도 의학교육 외 최소 2200시간의 카이로프랙틱 교육과 임상실습을 마친 후에 환자에게 시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의협은 그동안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하며 근거로 비전문화 및 의료사고 위험성을 제시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논리로 카이로프랙틱을 봐라봐 주길 바란다.”고 밝히며 의협의 논리를 비판했다. 이 외에도 미용기기분류 신설 방침에 대해 피부과의사회는 “피부미용사의 불법적인 의료기기 사용으로 현재도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미용기기의 별도 분류는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하나의 보건의료 분야이지만 많은 직역단체가 포함되어 있어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에 기초를 둔 경제단체의 건의와 정부의 규제완화 발표로 보건의료계는 현재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진정한 민관합동회의 필요하다

이번 규제기요틴 민관합동회의로 정부는 현재 논란중인 문제들, 심지어는 논의가 잠깐 중단되었던 사안들에도 다시 한 번 논쟁의 불씨를 지피게 되었다. 앞에서 나열한 사항들 이 외에도 이번 발표에는 잠깐 소개했듯이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요건규제 완화, 메디텔의 설립기준 및 부대시설 제한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앞에 던져놓고 실제로는 원격진료, 영리병원, 메디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이런 각각의 사안들에 대해 불도저식으로 경제성만 보고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규제완화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계도 경직된 사고를 풀고 협상테이블에 올라 '외교'를 통해 지금 의료계에 가장 필요한 결과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