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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톡톡

시키는 문화, 시키면 하는 문화

실습학생 3인방, 병원 내 부조리를 말하다

사례 1.  A대 병원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번역 내과’로 통하는 곳이 있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외국 교재를 나눠주고 번역을 시키기 때문. 용어 통일, 기한 엄수, 오탈자 점검 등 엄격하지만, 이것을 ‘번역 알바’ 쯤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무보수 강제노역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완성된 책이 출간되기라도 한다면, 독자는 과연 우리의 숨겨진 노고를 알아주기나 할까.

사례 2.  B대 병원 학생휴게실에는 어느 날 모 의국에서 새로 만든 교과서가 상자째 배달되었다. 이미 수업도, 실습도 끝난 마이너 과목의 책이 왜 여기로 온 걸까. 과대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한 권에 X만원인데 모두 사야 한대.” 이게 말로만 듣던 강제구매? 우린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뽀로로 : 병원에서 학생으로서 겪는 억울하고 부조리한 일들은 이거 말고도 진짜 많지.
거성 : 그런데 일단 ‘부조리하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뽀로로 : 학생이 안 해도 될 일을 시키는 것, 그중에서도 웬만큼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거!
루피 : 학생에게 교육적인 목적을 벗어난 일을 시키는 것 전부, 그리고 학생을 일꾼 내지는 자기가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진 착취

루피 : 전에 산부인과에서 피부관리, 지방제거에 대한 환자 홍보용 글을 타이핑 시키려고 부른 적이 있었어. 그건 학생 교육을 위한 건 전혀 아니잖아.
뽀로로 : 그런 잡일은 사실 많이 시키는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어쩌다 한번 하는 건 그냥 넘기지 않아? 번역은 한철 장사가 아니고 사시사철 장사야. 모든 실습생이 해야 해. 그리고 후배에게 물어보니 같은 일을 예과생들한테도 시켰는데 그게 중간고사 대체였대. 도서관에도 없는 외국교재를 번역하느라 그 책을 공동구매 할까 까지도 생각했었대.
거성 : 중간고사 대체는 심했다.
루피 : 우리도 번역하는 파트가 있어. 논문을 번역하는데, 양이 어마어마해. 일주일에 50장 정도. 하지만 아무도 그걸 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있어. 교수님 공식적 입장은 공부를 시켜준다는 것인데, 공부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야. 그래서 결국엔 다 처리를 못 하고 같은 조 학생들이 나눠서 해.
뽀로로 : 우리도 목적은 “너네 공부시키려고”. 하지만 정황상 출판을 위한 번역인 것 같아.
거성 : 교수님들이 논문 번역이 필요한가? 보통 영어 원문으로 보시지 않아? 정말 공부시키려고 하시는 것일 수도.
뽀로로 : 그럼 번역, 논문 외에 인턴 일 시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저번 주에 새벽 6시에 와서 드레싱 했다며.
루피 : 사실 난 처음 해보는 거니까 재미있긴 했어. 그런데 우리가 마음대로 드레싱을 해놓으니 피해는 환자가 보는 것 같아. 어떻게 하는 건지 제대로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침묵의 피드백 시간
우린 찍히는 게 더 무서워

거성 : 그런 건 보통 피드백을 거치지 않아? 우리는 실습 마지막 날에 환자 발표를 하고 교육담당교수님과 피드백 자리를 가져. 이건 어떻게 하면 좋겠고, 이건 이렇게 바꾸면 좋겠고. 절대 “감히 그런 말을!” 하는 엄숙한 분위기가 아니야. 자유롭게 정말 실습을 위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야. 그리고 교육담당교수님은 보통 시니어 교수님께서 맡으셔서 학생이 실습에 대해 건의를 하면 그 과로 바로 전달돼.
루피 : 우리는 그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야.
뽀로로 : 직언을 하면 바로 찍힐 것 같아. 모든 교수님, 레지던트들한테.
루피 : 맞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모두가 선후배로 얽혀 있고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사이라서 소문도 금방 나고. 그래서 잡일 시키는 선생님이 있더라도 아는 선배이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도 뭐해.
뽀로로 : 교수님이 막상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라고 하셔도 말 꺼내기가 어렵기도 하고, 또 얘기가 길어지면 조원들과 레지던트들이 다 싫어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생략할 때가 있어.
루피 : 레지던트로부터 아예 질문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고.
거성 : 그럼 질문을 많이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 실습 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는 거네?
뽀로로 : 그렇지. 예전에 과외 학생이 병원실습은 어떤 거냐고 물어봐서 “무수리처럼 교수님을 따라다니는 거야”라고 대답해준 적이 있어. 너무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라서.
거성 : 학생이 능동적으로 실습 전에 공부하고 가고, 교수는 학생이 왔을 때 가르쳐주는 자세가 되어야지. 그런데 능동적 실습은 못 될망정 오히려 수동성이 강요되는 상황은 잘못된 것 같아. 잡일 시키는 것도 놀라운데, 피드백이 없다는 건 정말 놀랍다. 우리는 배우기 위해 병원에 돈 내고 다니는 사람인데 학생을 위한 피드백이 정확히 안 짜여 있고, 그게 반영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루피 : 돈 내고 다니는 사람인데 병원에선 ‘짐짝’ 취급받잖아. ‘병풍’이라고도 하고.

시킴의 대물림,
그 고리 끊을 순 없을까

뽀로로 :  그러면 만약에 우리가 나중에 레지던트나 교수가 되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루피 : 그때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싫어서라도 안 그럴 거 같아. 그런데 벌써 후배들한테 번역 과제를 넘겨주는 애들도 있어.
뽀로로 : 그럼 후배들이 군말 없이 해?
루피 : 선배가 시키는 건데, 그럼. 그런데 내용을 잘 모르니까 번역을 엉성하게 하지. 예를 들어 CRF를 ‘신장실패’라고 한다든가.
뽀로로, 거성 :하하하
루피 : 워낙 예과 때부터 선배들이 시키면 하다 보니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 것 같아. 습관이 됐어. 그래서 자기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시키고, 또 시키면 하고. 자기 일을 미루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뽀로로 : 시키는 문화가 만연하긴 한데, 정말 문제 되는 소수는 정해져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니까 그 과를 돌 때만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꾹 참고 넘어가다 보니 그 관행이 안 바뀌고 계속 이어져 오는 거야.
거성 : 종으로 횡으로 개인이 체제에 대해 얘기하는 게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윗사람이 어떻게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또 친구들이 “쟤는 왜 저런 걸 얘기해”라고 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면 그걸 깨기가 어렵지.
루피 : 친구들이 피드백을 까칠하게 하거나 하면 “우리도 다 했는데, 쟤는 왜 저래”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고쳐야 할 것 같아.
뽀로로 : 가르침의 대상인 학생이 그 목적에 벗어난 일을 거부했을 때 복수나 응징이 가해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고 말이야.

정리 : 정다솔 기자/중앙
<astronova@e-mednews.com>

대구가톨릭의대 예과 2학년들의
‘특별한’ 병원 실습

대구가톨릭 의과대학에서는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이면 예과 2학년들이 병원에 출몰한다!
아직 본격적인 의학교육을 받지 않은 꼬꼬마 예2가 병원에서 실습을 하는 이유는?
바로 병원지원부서 실습을 위해서다. 예과 2학년들은 총 7조로 나뉘어, 병원 지원 7부서를 매주 금요일마다 체험하게 된다.

1. 영양과
가장 먼저 영양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환자의 식단을 어떻게 짜는지 파악한다. 그런 뒤에 식당에서 조리된 음식을 배식판에 나눈다. 이 때 환자 특성에 따라 식단이 조금씩 다르고 그에 맞추어 배식이 된다.(예를 들어 당뇨환자는 저염식 식단으로 나온다) 배식판에 음식을 다 나누고 나면 직접 병실을 돌면서 배식을 한다. 이 외에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영양 상담이나 영양 교육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2. 약제과
약제과는 병동 조제 팀, 외래 조제 팀, 주사제 혼합 조제 팀, 정보 팀, CR/임상/교육 팀, 약무 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파트의 일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 견학한다. 특히 주사제 혼합 조제 팀을 둘러볼 때는 직접 무균실습 복을 입고 무균조제를 해본다. 약제과의 주 업무인 약물 조제뿐 아니라 약품 관리, 임상연구 업무까지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알아 볼 수 있다.

3. 간호부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간호부란 무엇인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응급실부터 가본다. 응급실의 구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구 운반 등을 해본다. 그런 뒤 투석실과 중환자실에 가서 말기 환자들이나 혼수상태의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데 이때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4. 원무과
의료보험, 의료보호환자의 진료절차와 진료비 관리에서부터 의료보험 요양급여 기준 및 진료수가 수준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 외래접수 및 수납업무의 흐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병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접할 수 있는 실습이다.

5. 원목실
대구 ‘가톨릭’ 대학병원이기에 다른 학교에는 없는 원목실이 있다. 병원 내에 작은 성당이 있고 주로 자원봉사업무는 원목실을 통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병실을 돌면서 기도 봉사자들과 함께 환자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거나, 병원 곳곳에서 환자나 보호자들을 안내해드리는 봉사 실습을 해본다. 특히 기도 실습은 처음으로 직접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얘기를 나누는 체험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6. 의무 기록실
의무 기록이란 무엇인지, 의무 기록이 어떻게 작성되고, 배열되어 보관되고, 관리되는지 배우며, 의무 기록이 어떤 식으로 활용 되는지도 배운다. 접수된 외래 환자의 차트를  각 과로 이송하는 일을 직접 본다. 또한 기록부에서 질병 및 수술을 분류하고, 퇴원 차트를 정리하는 것, 그리고 통계를 내고 차트를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실습을 통해 환자를 관리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의사와 의무관리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7. 장례식장
장례식장에서는 보호자 동의하에 시체 염하는 것을 견학하고, 입관식에 참관하여 입관예절을 배운다. 또한 시체 안치실에 직접 들어가본다. 다른 실습을 돌 때보다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하며, 학생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 실습을 하면서 많은 학생들은 종합 병원이 단순히 의사와 환자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님을 깨닫고 종합 병원 시스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결국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봉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로 참관과 견학 수업으로 이루어진 이 과정은 ‘인간 이해’라는 과목의 수업 중 일부로 태도, 보고서, 출석 등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평가로 보는 우리나라 의학교육

6월은 잔인한 달, 바야흐로 평가의 달이다. 그런데 교육평가는 학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에 대한 성취도 평가뿐만 아니라 교수에 대한 강의 평가,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와 의과대학 평가 그리고 세계대학평가 심지어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은 어떠한 평가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평가들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의 현황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_1] 학생평가_ “넌 비실비실(B+,C0,B0,C)하지? 난 시들시들(C-,D+,C0,D+)해!”

의과대학생활의 핵심은 끊임없는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의학지식은 의사로써의 전문성 함양에 있어 핵심이기에 중간, 기말고사 혹은 블록별 평가, 연말의 기초의학종합평가, 마지막으로 국가고시까지 단순암기에 대한 학업성취 정도를 객관식 지필고사로 검사 받는다. 이 외에도 퀴즈, 땡시, 오랄, 증례발표, 조별토론 등 다양한 형태의 방식이 활용되고 있으나 서열화를 지향하는 평가방식은 경쟁심과 이기심을 조장하여 의사로써 환자의 고통과 질병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태도를 익히기 어렵다.
한편, OCSE/CPX 실기시험이 시행된 이후 기존의 지식중심의 의학교육이 실질적인 술기의 함양의 강조로 변화되었다. 알기만 하는 의사가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의사로 양성하겠다는 것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여 각 학교에서는 해당 임상술기 교과목을 확대하고 임상술기센터를 마련하는 등 학생들의 실질적인 임상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더 나아가 올해 4월 ‘의료인문학문항 의사국시 포함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는 의사의 길을 걸으려는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변화에 반응하고, 사회구성원과 호흡하는 의사로 자라나는 방법을 익히는 방식을 평가항목에 포함시켜 배워나가자고 주장한다. 최근 카이스트학생들의 자살 및 의대생들의 집단 성폭행사건으로 학생들에 대한 의학인문학교육과 윤리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된 가운데, 지성과 술기, 인성 등의 요소를 어떠한 비중으로 평가하고 교육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_2] 강의평가_ “제 점수는요”

평가의 대상이었던 학생이 평가자로 역할이 뒤바뀌는 기간이 있다. 바로 학기나 과정이 끝날 무렵에 시행되는 강의평가 시간이다. 물론,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교수 및 학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강의자에게는 학생들의 교수평가결과가 기존의 임상, 연구능력과 더불어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마치 학점을 받는 학생처럼 긴장하고 수업을 준비하게 된다. 한편, 학생에게는 직접 수업을 개선하는 경험을 통해 과정에 대한 책임감과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의평가는 93년 한신대에서 처음으로 국내대학에 도입된 이후 물리적 방법이 종이, OMR을 거쳐 포털사이트로 빠르게 변화된 데 비해 내용에 있어 큰 변화는 없었다. 즉, ‘매우불만족-불만족-보통-만족-매우만족’중에서 교수를 항목별로 평가하고 점수화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의평가를 시행하고 공개하는데 있어 반발이 거셌으며 08년 강의평가결과실명공개의 논란 속에서 특히 대다수의 의과대학은 학문적 특수성을 근거로 독자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일부 교수에 한해서만 결과물을 열람할 수 있게 하였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강의평가에 있어 변화의 흐름이 모색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올해부터 강의평가 명칭이 ‘강의정보 공유를 위한 설문’으로 변경된다. 설문의 목적 자체가 교수의 평가가 아니라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설문문항에 있어서도 ‘만족도-피드백-도전-학생의 몰입과 노력-변화와 성장-비차별의 원칙’으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기존의 교수의 열의 및 전달효과 내지는 시험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문항 대신 학생이 수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습득한 부분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주관식으로 작성된 설문의 결과는 공개하여 자유롭게 수업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였다.


 
[#_3] 의과대학인증평가_

의과대학인증평가원은 전국 41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적절한 교육여건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대학의 책무성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표준화된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최소치를 표준화하여 교육의 질을 일정 이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으로 특히 부실의대의 경우 퇴출시키거나 개선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올 초 발표 된 2010년도 제2주기 4차 의과대학 인증평가 결과 평가대상 17개 대학 모두 필수 기준과 권장 기준에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설정하고 있는 평가기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충족했으나 교육과정과 관리 운영을 위한 충분한 예산확보, 학업성취도평가, 학습분진학생의 구제, 전임교수 연구실적, 교수의 연수비용지원, 업적평가제도 등과 관련된 우수기준은 15개교 이상의 대학 모두 우수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원은 설명했다.
이러한 평가는 법적으로 더욱 강화될 계획이다. 현재 자율평가제로 시행되던 의과대학인증평가가 의무화 되도록 하는 고등교육법을 개정안과 의대 인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부실 의대 졸업생은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_4] 세계대학평가_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세계 수준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영국 글로벌대학평가기관 QS가 발표한 ‘2011 세계대학평가 생물학·의학·심리학평가결과에 따르면 의학분야에서 세계 1위인 하버드대는 학계평가 및 졸업생 평판도 100점, 논문당 인용수 84점인데 비해 국내 최상위 대학의 경우도 학계 평가 28점, 졸업생 평판도 26점, 논문당 인용 수 29점 수준으로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였다.
또한 더욱 큰 문제는 가장 최상위권의 입시성적을 가진 국내우수인력을 선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내의 생명과학분야의 다른 학과와 비교했을 때, 대학교육의 효과성이 유독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적에 대해 한국연구재단 배영찬 본부장은 기초의학에 대한 연구 부족과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중단을 하나의 요인으로 언급했다. 특히, 이번 평가의 경우 의과대학이 없으나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MIT가 3위의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교육학자 타일러에 따르면 교육평가는 교육목적의 달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현재 많은 평가들이 의과대학교육협의회와 각 대학에 조직된 의학교육실을 중심으로 수행되며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에 그 목표가 올바른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등수화 시키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변화하는 미래사회의 의료를 담당하게 될 의대생으로 어떠한 목적을 기준 삼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덧붙여 한국의학교육협회에서 주관하는 제 27회 의학교육학술대회가 ‘한국 의학교육의 성찰과 나아갈 길’을 주제로 6월 9일에서 11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허은실 기자/아주
<hershi@e-mednews.com>

카이스트 사태, 의대는 안녕한가

지난 1월, 카이스트에서 생긴 일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실업계 출신 로봇천재로 입학때 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한 학생의 극단적인 선택. 카이스트 개혁의 실패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드러내는 경고음이었다. 하지만 학교당국과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감만 표명할 뿐 학생들의 정신건강이나 유족들을 위한 대책에는 무관심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생기더니, 지난 4월엔 네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말았다.
학교당국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부랴부랴 대안마련에 들어갔다. 총장추천 교수 5명과 평교수 5명, 학생 3명으로 구성된 13명의 혁신위원은 한달 여의 회의 끝에, 지난 5월 19일 “차별적 등록금을 없애고 학생들에게 부담을 되는 영어강의를 교양과목에 한해서 줄이겠다.”는 내용의 결론을 발표했다. 총장의 동의하에 학교와 학생이 함께 협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교수와 학생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난 5월 28일 서남표 총장은 이마저도 “의결사항을 일괄적으로 이사회에 미루겠다”며 즉각적인 시행을 거부했다.

급속한 개혁이 낳은 부산물

카이스트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어날 사건이 드디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올해로 5년째 카이스트 총장을 맡고 있는 서 총장은 취임당시부터 떠들썩한 인물이었다.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수재,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맡으면서 모두가 반대했던 사안을 밀어붙였던 저돌적인 인물.
이런 사람이 카이스트에 와서 어떤 변화를 일구어낼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의 밀어붙이기식의 행보에 걱정스런 반응도 많았다. ‘학교 기숙사가 모자라는 것은 연차초과자 때문이다. 연차초과자가 학교에 남지 못하게 하겠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충해서는 안 된다. 일정 수준이하의 성적을 받는 학생들에겐 차별적 등록금을 부과하겠다.’ 그가 총장에 취임한 지 5년,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가 뭐냐고요? 무엇보다 학생들 간의 유대가 줄어들었죠. 동아리 활동도 침체되었고요.” 카이스트 학생들은 대부분이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한 친분 쌓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학업 부담 때문에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의 기회마저 빼앗겨 버린 것이다.
면학분위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점수를 잘 받아야한다는 압박에 본인 스스로 힘으로 과제를 하지 않고 베끼기에 바쁘며, 심지어 대리시험까지 등장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고의 공간이 되어야할 대학이 점수를 따기 위해 기계처럼 공부하는 고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의 거리도 멀어지고 장학금을 받지 못해 부모님과도 소원해진 학생들이 많아진다. 결국 몇몇 학생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만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A 30%, B 40%, C 30%라는 엄격한 상대평가제도에서 3.0 이상, 즉 B0 이상을 지키기 위해 공부하는 이들의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두 번째 희생자의 경우 일반고가 아닌 과학고 출신에다 성적까지 좋아서, 그가 죽음을 택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에 그를 지켜보았던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그 역시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서남표 총장의 정책에 자주 분노를 표현했었다고 한다.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했으나, 서남표 총장의 취임이후 1년에 한번 꼴로 늘어나더니 5년이 지난 2011년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서 총장의 책임이 없다고 하기 힘들다.

과도한 경쟁사회...
그 속에서 의대생은?

4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번 사태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유는, 이것이 한 학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 속에 내몰린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프리즘과 같았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인해 지친 사람은 카이스트 학생들 뿐 만이 아니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에서부터, 스펙을 쌓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취업준비생, 한 등수라도 더 올리기 위해 책상위에 바짝 몸을 붙인 고등학생, 자유롭게 놀 시간을 빼앗긴 채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초등학생들까지.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그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자살률에 있어 2004년 이후 OECD국가 중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0명을 모아놓으면 그 중 1명은 결국 자살로 죽는다.
사실 의과대학내에서의 경쟁은 그 어떤 곳 보다 치열하다. ‘유급’이라는 의대만의 특수한 제도로 인해서 절대적인 점수와는 상관없이 하위 5%의 학생은 무조건 유급시키는 학교도 존재한다. 의대에서 유급을 시행하는 이유는 재수강을 할 수 없는 학사일정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서 네임 밸류를 높이기 위한 학교간의 경쟁도 한몫을 한다.

의대생들의 정신건강

이 때문인지 2007년 전국 34개 의과대학 71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실태보고서에선 최근 1개월간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을 경험한 학생이 전체의 2.9%, 최근 1년간 6.5%, 일생동안은 10.3%로 조사되었다. 이것은 일반인 우울증의 2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1개월간 자살사고를 경험한 학생이 4%, 자살계획 0.8%, 자살시도 0.2% 약 30명 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의대생 10명중 한명은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의미이며 100명중 4명이 최근 자살을 생각했다는 뜻이다.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스트레스가 75%, 가정·성장과정에 대한 불만이 44%, 지나친 경쟁에 따른 피로가 44%,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23.2%였으며, 우울증의 비율은 남자보다 여자에서, 본과 4학년보다는 본과 1학년, 자취나 하숙을 할 경우, 그리고 특례입학자에서 높았다. 우울증을 경험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학업성적도 좋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의대생에게 우울증이 많은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대협회(AAMC)가 발간한 ‘Academic Medicine 2003-2004 2월호’에 실린 의대 재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 의대생 우울증은 10%인데 반해 의대생은 21.2%로 비 의대생에 비해 2배로 높았다.
많은 의대생들이 우울증과 자살사고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부실한 상태이다. 전국 41개의 의과대학 중, 우울증 조기 발견 선별검사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7개,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단 2군데에 불과하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대학 역시 몇 곳밖에 없다. 미국에선 하버드, 예일, 듀크, 미시간 대학 등에서 우울증 조기 발견 프로그램이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의대생들의 우울증 해결책은?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형성’이다. 카이스트에서 그러한 비극이 일어난 원인은 학생들 간의 유대가 사라진 것과 연관이 없지 않았다.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의 자살률이 오히려 대학생 보다 적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왜 오히려 자살률이 적을까? 바로, 담임선생님과 반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대학교 내에선 네트워크 형성이 아주 중요해요. 예를 들어 멘토 교수님을 정한다든지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겠고, 이를 예과 시절부터 본과로 이어지도록 해야겠죠. 학력 평가 방법도 다양화해서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평가항목에 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형성을 증진시키는 것 이외에도, 우울증 조기 발견 선별검사 프로그램, 자살예방 프로그램, 핫라인과 같은 시스템이 전국 의과대학에서도 운영될 수 있게 개개의 의과대학과 의과대학 연합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예를 들자면, 하버드 대학은 매주 무작위로 선정된 75명의 학생들과 20분간 전화통화를 하여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만약 학생이 심각히 자살을 생각하거나 정신적으로 지쳐있다면 그 학생과 즉시 만난다. 그리고 만약 학생이 만성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원한다면 보통 일주일 내에 그 학생을 만나서 상담을 해 준다. 또한 현재 하버드에서는 정신과전문의 11명을 포함하는 의료진이 학생들의 정신과 상담과 진료를 전담하고 있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e-mednews.com>

병실에 울려 퍼지는 사랑의 목소리

연세의대-간호대 연합 아카펠라 동아리 ‘이브닝콰이어’

최근 음악과 노래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들이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음악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한 개인의 온 마음을 다한 노래 한 곡은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기도 하고, 내면에 깊이 내재되어 있던 감성을 한껏 끌어올려 인간으로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느끼게도 한다. 방송 중 잠깐 잠깐 보여지는 방청객들의 눈물은 바로 그런 눈물일 것이리라.

이러한 음악의 힘을 일찍부터 알아본 사람들이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학생들이 모여 만든 아카펠라 찬양 동아리 ‘이브닝콰이어’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그 어떤 금은보화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물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뜨거운 사랑이다. 매 주 금요일 저녁이면 세브란스 병동을 돌며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찬송가를 들려주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한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일년 내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병동을 돌며 그들이 가진 사랑을 무한정 나누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병남 지휘자를 비롯한 임원진 3명 학생들의 입을 통해 들어본다.

- 아카펠라를 하신다는 점이 참 독특한데요, 동아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1960년대의 의대, 간호대 선배님들께서 처음에는 의료봉사를 하는 동아리로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 청소 같은 궂은 일부터 시작하셨다고 해요. 그것이 지금의 아카펠라 라운딩의 아이디어로 발전하여 현재의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회원은 약 100명 가량이 되고, 의대, 간호대 학생들과 교회음악을 전공하신 분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 다들 학업에 치여서 음악 공부를 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충하시나요?
해 마다 지휘자가 한 명씩 의대생 중에서 뽑히게 되요. 저희도 참 신기한데 꼭 누군가 한 사람은 스스로 공부를 해서 다른 회원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줍니다. 지휘자는 발성법, 호흡법은 물론 회원들을 파트별로 나누어서 개별 지도도 하고 매 라운딩 공연에 대한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매 주 라운딩을 돌기 전 모두가 30분씩 모여 연습을 하며 발성과 호흡을 배워나갑니다. 짧은 연습 시간일 수 있지만 1년, 2년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새 저희도 모르게 음악적 소양이 이만큼 쌓여 있더라고요.

- 어떤 활동을 하시는 지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매주 세브란스 병동을 돌며 찬송가를 불러주는 라운딩입니다. 매 주 금요일 저녁에 하는 데 다음 날이 시험이어도, 축제기간 동안이어도 절대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강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자진해서 참여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저희 나름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신학기에는 신입생 환영회를 열고, 2학기에는 저희의 창립기념 행사인 Birthday Party를 비롯하여 홈커밍 라운딩 행사 등을 합니다. 이 외에도 저희는 외부에서 찬조 공연 요청이 자주 들어오기 때문에 교회에서 특송을 부르기도 하고 여러 단체의 의미 있는 행사에 나가 뜻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 이브닝콰이어는 유독 동아리 회원들간의 유대가 강하기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비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의 가장 큰 모토가 ‘사랑과 가족’입니다. 수직적인 관계가 보편화 되어있는 의대, 간호대 학생들의 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브닝콰이어에서는 선후배라는 말 보다는 가족이라는 말이 더 편하고 익숙합니다. 저희의 독특한 전통이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데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해요. 신입생들이 동아리에 들어오면 재미있는 장기자랑 후, 각 회원마다 엄마나 아빠가 생깁니다. 엄마나 아빠는 본과 4학년, 간호 4학년 이상의 선배님들만 할 수 있는데요 엄마, 아빠가 정해지면 한 가족이 만들어지고 옆의 다른 가족과는 사촌지간, 이모, 삼촌 관계도 맺어지면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신입생들이 학년이 올라가면 또 자신들의 자식이 생기고 그렇게 대물림이 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선후배들간의 끈끈한 가족애가 유지됩니다. 또 하나, 엄마, 아빠가 생기면 이름을 새로 받게 되는 데,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애칭을 받고 동아리 활동하면서는 주로 그 이름을 불러주게 됩니다. 그 속에서 저희들만의 에피소드들도 많아지고 서로 소통할 기회도 많아지게 되죠.

- 환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가슴에 남는 사연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떤 것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 주세요.
라운딩이외에도 환자나 환자 보호자분들께서 직접 저희에게 병실에 찾아와서 찬양을 해 주기를 요청하실 때 찾아가기도 하는 데 그런 활동은 ‘리퀘스트’라고 해요. 얼마 전에 본과 3학년 선배가 실습 중에 신생아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태어나자마자 간부전으로 인해 간 이식 수술을 막 받은 상태였어요. 이식 후 생명의 위기를 넘기기 직전에 리퀘스트를 받아서 저희가 찾아가 진심을 다해 찬양을 했습니다. 몇 주 뒤에 경과가 좋아져서 다시 리퀘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저희의 작은 움직임이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한 번은 라운딩을 돌던 중 어떤 병실에서 막 환자분이 세상을 떠나셔서 리퀘스트를 하게 되었는데 보호자분들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면서 좋은 곳으로 떠나셨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상심이 크신 분들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보람도 느껴졌습니다.

- 하시는 활동이 모두 무보수 봉사활동이던데 이브닝콰이어에게 봉사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여행 중에 만난 재활원 원장님께서 봉사를 베풀어 주는 사람들을 “자기 만족을 위한 동업자” 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저희에게 봉사란 주는 기쁨을 스스로가 느끼고 싶어서 하는 활동입니다. 주기만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라운딩을 하는 동안 환자 분들이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연신 말씀해주시는 걸 들을 때가 많은 걸요. 특히 저희가 의대, 간호대 학생들인 만큼 환자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스스로를 채워가는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기쁨을 위한 활동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음악이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세요.
저희에게 음악이란 기쁨 그 자체입니다. 음악을 하며 느끼는 즐거움은 다른 어떤 곳에서 느끼는 즐거움보다도 크고 강하답니다. 슬플 때면 노래를 하며 위로 받기도 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찬양을 하며 마음을 편하게 진정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음악은 저희가 타인들과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소통의 다리이기도 해요. 벌써 이브닝콰이어를 하면서 음악이 보여주는 기적과 놀라운 힘들을 여러차례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아마 졸업해서도 계속 지금처럼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느낀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8월 27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저희의 공연이 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저희의 사랑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니 많이 보러 오셔서 마음 한 구석에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느 분이시든 저희 활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www.eveningchoir.org를 찾아주세요.

조을아 수습기자/을지
<lovelyeac@e-mednews.org>

달콤살벌한 연인, 간호사와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의 생생솔직 앞담화

의사와 간호사. 의대생활 일이년 짬밥이면 그 두 집단 간의 달콤 살벌한 관계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수없이 거쳐 간 의대-간호대 커플의 달콤한 관계와, 복수의 복수를 거듭하는 살벌한 관계. 극과 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뜩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비오는 신촌 거리의 한산한 커피숍에서 병동 간호사 선생님, 보건 교사 그리고 내시경실에서 근무하시는 간호사 선생님. 이렇게 세 분과 함께 조심스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았다. 간호사 그리고 의사에 대해서.

내 어릴 적 꿈...
- 간호대로 진학하기로 결정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학창시절에 잠시 중국에 나가있던 적이 있거든요. 그 곳에서 전염병이 돌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도밖에 없었고요. 그 때 느꼈던 그 무력함이 큰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간호대 진학...
- 교과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학교마다 다르지만 1학년 때는 해부·생리·생화·미생물학 같은 기초의학, 간호영어, 간호학 개론 같은 걸 듣고요. 2학년 때는 병리, 약리, 성인간호학, 아동간호학, 정신건강간호학 같은 임상과목을 배우고. 보통은 3학년 때부터 병원실습을 나가면서 학교수업을 병행하게 되요. 매우 드물지만 저희도 유급하는 학생들도 있죠.
의학이랑은 학문자체의 기본적인 바탕은 같지만 ‘의학’을 보는 포커스가 다른 것 같아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하고 간호를 통해서 사람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느냐는 다르잖아요?

간호사 그리고 ...
- 졸업 후 진로에는 무엇이 있나요?
보험 관련 일을 한다거나, 외국계 제약회사, 보건소에서 일 할 수도 있고요. 임용고시 시험을 봐서 보건교사를 하기도 하죠. 보통은 병원에서 일하는 임상 간호사가 많고요.

- 대학병원 ‘과’ 지망할 때, 선호하는 소위 ‘인기 과’가 있나요?
개인차가 커요. 의사가 전공 선택하는 거랑은 다르게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지원하거든요. 전문 간호사 제도가 이제 있긴 하지만 보통은 로테이션되서 여러 과를 돌거든요. 과마다 급여가 다르진 않으니깐 그것보다 처음에 입사할 때는 전문적인 일을 배울 수 있는 ER, ICU 같은 데 지원하지만, 빡세니깐 나중에는 타과로 빠지거나 하죠.

- 병원에서 수련과정은 어떤가요?
‘신규 간호사 - 경력 간호사 - 파트장 - 과장’순 으로 되는데요. 과마다 학교마다 몇 년차 때 수간호사를 하는지는 달라요. 요새 수선생님은 박사까지 하시더라고요. 대학원은 다 기본이고. 간호사가 원채 인력 자체가 젊으니깐 대학원, 포닥까지도 하는 추세예요.

- 전문 간호사 제도는 어떻게 다르나요?
대학원을 가고 자격증 시험을 봐서 그 전문 자격증을 따야 되요. 병원 다니면서 해도 되고. 졸업하고 대학원 나오고 나서 해도 되고요. 그런데 해당과에 임상경력이 최소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되요.
간호사의 하루...
- 3교대를 하시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3교대는 day, evening, night로 보통 8시간씩 딱딱 나눠요. day인 경우에는 6시부터 2시까지 일을 하고, 그 전에 인계를 받아야 되니까 출근은 5시 반에 하는 거죠. 대부분 힘든 night는 한 달에 4번이상은 안주고요. 3교대가 빡빡하긴 한데, 생활이야 뭐 거기에 맞춰서 하는 거죠.

-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과마다 학교마다 많이 달라요. 그래도 무엇보다 환자를 ‘간호’하는 게 주 업무죠. 정기적으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약물 주사도 저희 일이예요. 각종 검사를 보조하기도 하고 수술 간호사는 수술실에서 보조를 서죠. 의사랑 같이 케이스 연구를 하기도 하고요. 금연교육이나 식이조절 같은 일상 생활교육도 간호사 담당이에요.

- 간호사로서 느끼는 보람은?
환자들이 고맙다고 말해주거나 도와주려고 할 때? 혼나거나 힘들 때 위로해주거나 반갑게 맞아주면서 내 입장을 이해해 주려고 할 때 든든해지고 기분도 좋아져요. 물론 일 잘했다고 칭찬받을 때도 보람을 느끼고요.
내시경실 같이 전문성이 강한 파트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자부심도 생기고 내가 인정받고 있구나를 느끼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병원 펠로우 선생님이 우리병원에 수련 차 나왔는데 같이 내시경검사를 하다가 제가 조언을 준적도 있어요.

- 펠로우 선생님이시면 그래도 상당한 경력도 있으실 텐데, 자존심 상해하시진 않던가요?
적당한 선을 지키죠. 그렇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그 분보다 제가 경력이 더 오래되었으면 도움 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분들도 능력있는 간호사를 두는 걸 더 선호하시니까 오히려 더 좋아하세요. 그러면서 서로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도 있고요.

간호사 그리고 의사...
- 간호사와 의사, 특히 인턴과 역할 분담이 굉장히 모호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직무 기술서가 있어서 1년차에 하는 일, 스태프가 하는 일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게 병원마다 좀 차이가 있어요. 채혈이나 culture는 저희 병원에선 간호사 일인데 다른 병원은 그걸 의사가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경계가 특히 전문 간호사가 도입되고 나면서 좀 더 모호해졌어요. 드라마 ‘뉴하트’에서 전문 간호사가 심장제세동기 사용한 것 기억나세요? 전문 간호사였는데 의사 없이 시행했다고 문제가 됐었잖아요. 아직까지는 과도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전문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도 병원마다 다르고 서로의 역할도 아직 분명하지 않고요.

- 많이 마주치다보니깐 부딪히는 일도 많을 수밖에 없나 봐요
오늘 있었던 일 얘기하면 또 울화가 치미는데요.(웃음) 4년차 레지던트가 환자 L-튜브를 교환해야한다고 가져다 달라 더라고요. 그런 일은 본인도 할 수도 있는데 저희한테 콜벨을 눌러서 얘기를 하세요. 저는 얼마큼 필요한지 모르니깐 필요한 만큼 잘라서 쓰시라고 크게 가져왔어요. 그런데 보호자 앞에서, ‘센스 없게 이렇게 크게 가져왔다고’ 얘기를 정말 크게! 하시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혔죠. 서운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들이 쌓이면 아무래도...

-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서 인 것 같기도 해요. 일단 저희 학생들은 대부분 잘 모르거든요.
지금 근무하는 의사선생님들도 저희 역할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거 때문에 부딪히는 일들도 많고. 서로 내일이니 니일이니 하면서. 그런 것들을 서로 의사소통해서 풀어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가요?
그 거에 관해서도 에피소드가 있죠. 어제는 인턴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 레지던트로 바뀌는 그 시점이었는데요. 인턴한테 노티를 해야 되는 거를 다음 날 레지던트로 바뀐 사람한테 노티를 했어요. 그러니깐 ‘인턴한테 하세요’하고 전화를 확! 끊어버리는 거예요. 조금은 얄밉더라고요. 하루 차인데 좀 받아주지 하는 생각도 들고.

- 그래서 일부러 자는 인턴 깨우는 식의 복수(?)를 하시기도…?
서로 힘든 거 다 아니까 일부러 그러진 않아요. 노티할 때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는 건데 오히려 그 쪽에서 ‘뭐 그런거 가지고 노티하냐, 자는데’는 식의 반응이면... 인턴도 솔직히 잘 모르면서 그렇게 안 해 줬으면 좋겠어요.

- 피곤하니까 서로 예민해지나 봐요. 그러면 혹시 PK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학생이니까요. 저희 간호사들이랑은 교류가 많지 않아요.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PK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 환자와의 관계는요?
보통 간호사가 환자랑 더 친밀하고 더 자세하고 알고 하죠. 간호사 역할의 특성상 그런 면이 있으니까요. 어떨 때는 의사가 오히려 아침에 회진돌기 전에 저희한테 전화해서 ‘오늘 환자 컨디션 어떠냐, 어제는 어땠냐, 대변은 얼마나 봤느냐’를 묻는 경우가 있어요. 원칙적으로는 의사가 회진준비하면서 직접 보러 와야 하는 건데 말이죠. 묻는 말에 얘기는 해주지만, 그냥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해요.

- 병원차원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나요?
별로 없어요. ‘서로 알아서 해라’ 이런 식이예요. 근데 병원차원에서 1년에 한두 번씩 1박2일로 워크숍 같은 거는 가요.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의사, 사무직 직원 등등 모든 부서 사람들이 다 와서 조별로 모여서 얘기도 나누고 해요.

간호사 그리고 편견...
- 병원 나갈 때는 화장해야 된다?
음...병원마다 병동마다 달라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 번 혼난 적이 있긴 해요^^;) 계속 환자들을 마주하는 입장이잖아요.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여야 되니까요. 아무래도 간호사가 더 지쳐 보이면 환자들이 오기 싫겠죠.
 환자들은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깐 저희가 아파도 자기가 아프다고 티를 못 내죠. 조금 힘들어도 그 아픈 거를 계속 끌고 주말까지 버텨야 되요 대체인력이 없으니까요. 직업적인 사명감인거죠.

- 간호사는 이직률이 높다?
아무래도 힘드니까요. 3교대가 힘들죠. 적성에 너무 안 맞는 거 같아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요. 간호대 다니면서 그만 두는 사람도 가끔 있어요. 실습 돌다가 피보고 쓰러지고 그런 사람들이요. 그런데 간호사 되고나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사회적 여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 간호사는 여자들의 세계다?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들끼리의 특유의 경쟁이 있죠. 성적 경쟁이 특히 심해요. 과제 같은 것도 대충하는 애들은 거의 없고 족보나 정보 교환 같은 것도 그렇고요. 간호사가 되고서는 군기가 세지는 경향이 있어서 좀 무서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파트로 로테이션 됐을 때 적응 할 때까지 눈치 봐야 되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여자들끼리만 있으니깐 행동하기 편하다는 점도 있어요. 서로에 대해 잘 아니깐 배려도 많이 해주고요.

- 남자 간호사도 있지 않나요?
남자 간호사도 꽤 있죠. 병원에서 남자를 회복실, 응급실, 마취과, 수술실 같이 힘든 과로 보내는 경향은 있는데 가서 하는 일은 여자 간호사랑 비슷해요. 요즘 남자 간호사가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간호사는 여자가 많으니까요. 남자로써 힘든 면도 많겠죠. 그런데 캐릭터 자체가 여자랑 잘 맞고 수다스럽고 하면 잘 맞아요. 오히려 저보다도 더 여성스러운 남자 간호사 선생님들도 있거든요. 남자 선생님들은 보통 끝까지 남진 않고요, 보험회사나 소방 공무원 같은 다른 길로 많이 가시더라고요.

- 의사 간호사 커플이 많다?
커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서로 직업 환경이 비슷하니까 공통점도 많고 하니 더 편하겠죠. 그런데 병원이라는 곳이 소문에 좀 많이 민감하잖아요? (웃음) 커플이 가끔씩 있다해도 몰래하죠. 비밀리에! 정말 결혼하겠다고 날짜 잡히면 오픈하고요.

Epilogue...
서먹하리라 걱정했던 인터뷰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우리만큼 스스럼없는 여자들의 수다가 되었다. 가히 앞담화라 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해, 병원에 대해 많은 이야길 나누었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돌아 볼 수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 이처럼 가까울 수 있을까 싶다가도 좀처럼 가까워지기 힘든,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것일까? 적절한 비눗물 한 방울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정민 기자/중앙
<jmmoon@e-mednews.com>

행정체계를 치료하는 의사

박영숙 분당구청장님을 만나다

지난 5월 2일, 최초로 의사 출신 구청장이 탄생했다. 지방자치 단체를 대표하고 구의 모든 행정을 책임지는 구청장은 사람 살리는 의사와 너무도 멀어 보인다. 보건의료 행정만 대변하는 분야도 아니고 우리에겐 쉽지 않은 그대이다. 현실적으로 의대 졸업생이 택할 수 있는 진로 선택지에 아직은 생소한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박 구청장님이 밟은 길을 취재해보았다.

- 약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원광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인턴 1년을 한 뒤에 파주시 보건관리의사가 되었어요. 그 뒤에 경기도 의사 보건소장, 보건정책과장을 지냈고 관리의사 모임 조직에 앞장섰지요. 그 뒤 일산에서 수원 보건정책과장, 미국 연수 1년, 분당보건소장을 거쳐 이번에 분당구청장이 되었고요. 보건소장은 일반적으로 자리를 잘 안 옮기는데 좀 특이한 편이예요.

- 의사출신 최초로 구청장이 되셨는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쉽지 않았을 듯 해요.
의사출신,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학연, 지연 아무것도 없는데다 성남시 사람들 중 의사가 딱 둘, 경기도에선 삼만명 중 하나였으니, 내 편 들어줄 사람도 없었지요. 그 편견을 넘으려고 적어도 일하나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어요. 우울증에 빠진 적도 있어요. 모함, 시기, 질투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격이 활기차면 나댄다, 조용하면 맥아리가 없다 식이예요. 제가 여자지만 여성성을 안 나타내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다보니 애교도 없고, 싫은 건 싫다 표현하다보니까 건방지다는 말도 하더라구요.

“의사는 나가서 개업이나 하지
행정은 무슨..”
개인의 능력이 아닌 배경으로
판단되어 어려움 많아

행정직들은 순탄하게 올 수 있는 자리예요. 별탈없으면 정년까지 하고 나갈 수 있어요. 다른 행정직 사람들은 줄줄이 하나 올라가면 다같이 올라가는데 난 혼자니까 공무원조직에서 내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던 거죠. 또 전 특정 당을 편들지 않는데, 서로 연줄따라 민주당 한나라당 등 편갈라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적지않아요.

- 의사들이나 관련협회 사람들은 도움을 준 편인가요?
오히려 지역의사들까지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공무원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을 할 수는 없잖아. 내편을 만들기 위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만약 내가 하나의 이익단체인 지역의사를 위해서만 일했다면 아마 더 심하게 배척당했을 거예요. 공무원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 같은데, GNP에서 차지하는 의료비 절감이라는 공공의 목표를 추구하는 점이 개업가의 의사집단 내 이익증진이라는 목표랑 조금 달랐던 거죠.
아직은 과도기적이라 생기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런 입장차이도 많은 의사들이 공공의료분야로 오면 소통의 기회가 많아져서 오해가 줄겠지요.

- 힘든 일이 많았네요. 이 길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의대졸업하고는 개업가 아니면 종합병원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 길이 여러모로 대우는 받지만 재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보건소장은 의사보다 지역주민을 직접 이해할 수 있었거든. 그렇게 93년도 보건소장을 고양시에서 3년쯤 하다보니까 96년도에 광역행정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결국 꿈을 15년 만에 실현시킨 셈이네요.

- 저희 의대생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소장, 구청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지금은 관리의사에 지원해서 보건계열 공무원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길 뿐이예요. 특별히 의사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을 뽑는 전형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관리의사는 일종의 비정규직, 계약직이라서 월급도 적으니까 지원하기가 쉽지 않아요.

- 그러면 인턴, 레지던트 수련이 별 도움되지 않는 거네요?
나는 인턴 레지던트까지 수련 안해도 되었어요. 만약 레지던트 수련하고 한 직업에만 픽스되어버리면 광역 행정을 하기에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생각해요.
 
- 대학원 학위가 있으신데 굳이 학위를 딸 필요는 없는 건가요?
따로 학위를 받을 필요는 전혀 없어요.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하지만 행정적 마인드를 배우는 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돼죠. 만약 공공행정직으로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당장 실질적인 이득이 될지 안 될지를 따지기보다 일단 많이 배울수록 좋다고 봐요.

- 의사출신이라서 구청장 일을 하는데 도움되는 부분도 있을까요?
막상 행정해보니 오히려 우리가 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지역주민의 요구를 잘 이루는 것 건강하게 잘 살게 하는 것. 돈, 정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틀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거기엔 의사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거든요. 우리는 과학적으로 수술하고 치료하잖아요. 행정에 들어와서도 그런 치열함과 섬세함을 접목시키면 충분히 잘할 수 있어요.
 
- 의사출신 공무원이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이죠. 21세기는 건강이 제일 중요시되는 시대잖아요. 거기에 바로 우리 지식이 요구되는 건데 의사들이 그 지식을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또 의사 출신 공무원이 늘어날수록 의사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반영하기 수월하죠.

- 그치만 의사출신 공직, 정부기관 진출자가 많지 않죠?
맞아요, 보건계열 공무원엔 약사출신도 거의 없고 간호사 출신은 오히려 많은 편이예요. 서울시는 보건소장 의사출신이 나름 있지만 경기도부터도 손꼽을 정도니까. 의대 역사가 굉장히 긴데 내가 처음 구청장이 되었다는 건 우리가 그동안 우리끼리 따로 놀았다는 거죠. 정부 조직에서 의사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 정말 그렇네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입 때문이죠. 또 제도상 문제도 있어요. 관리의사부터 시작하는데 계약직이라 정규직으로 올라가기 굉장히 힘들어요. 관리의사로 특정 일만 하다가 보건소장이 되었을 때 보건의 전반적인 행정을 알기도 쉽지 않아요.
 
- 그러면 의사출신 공무원을 늘리기 위한 대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수입이 문제긴 한데, 그렇다고 공무원 수입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어요. 수입이 적더라도 정부에 의사들의 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소명의식있는 사람들이 올 수 있게 제도적인 문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봐요.

“대학에서도 공공의료, 보건행정을 가르쳐야, 행정지식을 갖춘 의사가 필요”

예를 들면 대학에서도 공공의료, 보건행정을 가르쳐야 해요. 예방의학처럼 보건의료학, 공공의료학 만들어서 행정지식을 갖춘 의사를 배출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약 그런 길이 학과로 조직되어있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도해본다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진출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요즘 개원가의 미래가 예전만큼 밝지는 않으니까......(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진출하는 수가 더 늘지 않을까요.)

- 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대생 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거듭 강조하지만 의사들이 기초, 임상에 남는 것도 좋지만 공공의료에도 진출 많이 해야된다고 봐요. 하지만 사명의식이 없으면 여길 들어오기 힘들어요. 능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발휘하고자 한다면, 나와 같은 길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줬으면 좋겠어. 단, 선민의식을 가지고 혼자 잘났다는 태도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사람들에서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아들과 나이가 같다며 살갑게 맞아주시는 구청장님 덕에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더 나은 의사는 사람을 고치며, 진정으로 큰 의사는 사회를 고친다는 옛말은 박영숙 구청장님, 그리고 그의 행보에 공감한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전영준 수습기자/중앙
<yjipnida@e-mednews.org>

5월의 봄비도 막을 수 없었던 열정

제44회 전국 의과대학 테니스 선수권 대회

지난 5월 21일과 22일, ‘제 44회 전국 의과대학 테니스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가톨릭대, 강원대, 경북대, 경희대, 계명대, 고려대, 동국대, 동아대, 부산대, 서남대, 서울대, 성균관대, 순청향대, 아주대, 연세대, 연세원주의대, 원광대, 을지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조선대, 중앙대, 충남대, 한림대 총 25개 의과 대학이 참가했다.

대회는 남자부 단식, 남자부 복식, 여자부 복식으로 치러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녀 경기 모두 서울에서 치뤘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부의 경기를 서울이 아닌 경기도 원당 훼릭스에서 치뤘다. 대회 첫날인 21일에 오전에 비가 온다는 기상정보가 있어서 평소보다 좀 늦게 오후에 경기를 시작 하였다. 하지만 오전에 오던 비가 오후까지 계속 와서 경기를 제대로 진행시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몇 시간을 기다리던 주최측은 멀리 지방에서 온 선수들이 있어 쉽사리 대회를 취소하지 못하고, 남자부 경기를 서울 장충테니스 코트로 옮겨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제대로 된 경기는 저녁 6시정도에나 시작하게 되어 최대한 빨리 경기를 진행 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부 단식 우승은 한림대 신요섭군이 차지했고, 준우승은 인제대 정연석군, 공동 3위는 서울대 서민석군과 경북대 정재훈군에게 돌아갔다. 남자부 복식 우승은 인제대 정연석/김동근 팀이 차지했고, 준우승은 서울대 은용/허건 팀이 차지하였으며, 공동3위는 서울대 김형준/장원기 팀과 서울대 김성은/이창현 팀에게 돌아갔다. 여자부 복식 우승은 서울대 유신혜/홍정경 팀이 차지했고, 준우승도 서울대 김신후/최지혜 팀이 차지하였으며, 공동3위는 경북대 안효정/최은주 팀과 인제대 구세은/홍수민 팀에게 돌아갔다.

주최측이 기상상태로 인해 대회 중간에 경기장을 바꿔가면서 재치있게 대회를 진행 시켰지만, 비로 인해 경기가 너무 지체되어 많은 팀들이 기권해 버려서 1년동안 대회를 위해 열심히 준비해왔던 선수들에겐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대회였다.

김영태 기자/원광
<funky@e-mednews.com>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선생님 인터뷰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 외래교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주임교수
오은영의원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우리 성광이 안 돼. 뚝! 자, 이제 내 눈을 바라봐. 네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봐.” SBS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아이의 문제행동이 개선될 때 마다, 우리는 그 마술 같은 힘에 크게 놀라곤 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고 어루만져주는 부모들의 대표 멘토.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60분 부모’ 자문의로 출연하면서 의사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오은영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을 출연하기 전부터 인터뷰 요청이 오면 말을 똑 부러지게 잘 하니까 방송 관계자분들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2005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섭외가 들어왔어요. 정신과 의사에게 시간은 자산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주는 파급효과는 굉장히 커요. 진료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매번 이야기 하지만 한정되어 있잖아요.
의사들은 정말 강한 치료적 파워를 가지고 있어요.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교육적, 사회적, 생물학적 면모를 봐야 해요. 의사는 모든 영역에서 이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치료적 파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방송분량이 지금처럼 많진 않았는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의사의 입지가 넓어지고, 또 제 능력을 알아봐주시는 부모님들의 요구에 의해서 방송분량이 늘어나게 됐죠. 몇 년 전부터 매주 참여하고 있어요.

Q.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내가 길을 지나가면 가끔 어머니들이 알아보고 정말 고맙다고, 많이 배웠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이 있어요.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또 향상되는 것을 보는 것도 의사로서 의미 있지만, 방송이라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봉사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나눠줄 수 있는 분야이니까 참 뿌듯해요.

Q. 두 프로그램, 어떤 자세로 참여하고 계신가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업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저는‘EBS 60분 부모’나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모든 PD, 작가님들과 오랜시간 동고동락을 하면서 신뢰를 쌓았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지요. ‘이거 이렇게 하면 안돼요,’ ‘이 말 꼭 들어가야 해요’ 의견을 반영하면 그렇게 방송이 나가요. 더군다나 60분 부모는 생방송이구요. 방송을 통해 잘못 전달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예측하고 역기능을 차단하고 순기능을 최대화하려고 최선을 다해요.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후배들은 역기능에 노출되기 쉬워요. 방송은 정말 우리가 다뤄야할 문제, 공공의 목표를 위한 것을 다루어야 해요.

“의사만큼 하는 일 자체가 봉사인 직업은 없어요. 따로 어디 봉사를 다닐 여력이 안되기 때문에 내가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봉사라고 생각해요.”

Q. 주의해야 할 방송의 역기능은 없을까요?
TV는 사람들이 지루해하니까 한 장면을 오래 비추지 못해요. 인터뷰도 1분을 못 넘겨요. 길게 이야기해도 편집되곤 하죠. 편집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방송의 베테랑들은 몇 분짜리 방송인지 물어보고, 딱 시간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사전에 어떤 의도로 이 프로가 만들어지고, 인터뷰를 요청하는지 미리 파악해야 해요.

Q. 방송을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아이들을 대할 때 특별한 노하우 또는 훈육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을 요약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는 아이들을 먼저 혼자 만나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참 어려워요. 엄마들도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그저 지시만 하죠. ‘식사했어?’ ‘공부해!’ 그러나 우리 아이들 대화 참 잘해요. 저는 재미있게 그리고 편안하게 많이 대화하고 또 잘 들어줘요. 그리고 내가 너하고 왜 이 자리에서 만나는지 아이 수준에 맞게 이야기를 해줘요.
체벌은 절대로 안돼요. 저는 쥐어박지도, 째려보지도 말라고 해요. 그렇다고 오냐오냐 하라는 건 아니에요. 말로 단호하게 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때리는 것 자체가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거예요. ‘이건 정말 안 되는 거야.’ ‘엄마가 네가 이걸 계속하게 둘 수는 없어’ 이런 말이 훨씬 더 효과가 큰 거예요. 우리나라는 이런 점이 잘 안돼요. 단호하게 하라고 하면 소리를 질러요. 단호한 것은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에요. ‘우.아.달’을 통해서 이런 점을 많이 가르치려고 노력해요.

Q. 마지막으로 의대생신문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학문이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의학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학문은 없다고 봐요 의학은 사람을 살리는 학문이거든요. 내 직업이 돈을 버는 데에도 기여하지만 타인에게 봉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고 힘내세요. 특히 정신과는 어떤 과보다도 더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 과예요. 의사가 직업으로서도 중요하지만, ‘나는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살고 싶다’ 할 때는 사회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과를 선택하세요. 정신과는 여러 분야에 걸쳐있어요. 노인문제를 의논할 때도 정신과가 필요하고, 아동 학대 이야기를 할 때도 소아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 참 다양하죠. 또 정신의학은 아직 발전분야가 많이 남아있고, 치료약이 속속 개발 되고 있어요.
모든 의사가 다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는 특히 환자의 고통이나 아픔을 정말 잘 공감해줘야 해요. 공감이 가장 중요하고 의사와 환자간의 긍정적 관계도 중요해요. 말 한마디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요.

오수진 수습기자/한양
<sujin87@e-mednews.org>

의사가 찍은 다큐 영화 ‘하얀 정글’

의사 송윤희, 한국 의료제도를 고발하다

하얀 정글을 아시나요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을 이동했다. 예과생다운 무모함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공동체 상영이 힘든 작품을 모처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소식에 이미 내 마음은 강남 발 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다섯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탈바꿈시킬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얀 정글’. 이 영화를 만든 현직 산업의학과 전문의 송윤희씨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사회를 이렇게 칭한다. 아무런 제재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수많은 맹수들이 치열하게 혈투를 벌이는 곳. 지금 우리나라 의료사회를 표현할 이보다 더 마땅한 은유법이란 찾기 힘들어 보인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늘어나는 개인 병원의 수, 대학병원의 병상 수, 지하철 벽면에 빼곡히 자리 잡은 병원 광고들... 이런 총체적인 증가 추세를 보면 수요자를 위한 의료공급 또한 친절하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당장 약 값 몇 만원이 없어 환자가 죽어나가는 것이 정글의 실상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의사의 신분을 가진 여성이 어쩌다 카메라까지 들게 된 것일까.

영화의 도입부에 이런 자막이 뜬다. ‘이 영화는 시장에 내맡겨진 우리 의료제도의 한계 때문에 갈등하는 환자와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이 파고들어가 본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마치 낳긴 낳았으되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돌보지 않은 아이와 같다. 즉 의료비용은 국가가 대고 있지만 의료공급은 민간이 책임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공급을 담당하는 민간 쪽에 별다른 규제가 가해지지 않아 그 부피를 점점 팽창시키고 있는 것이다. 팽창을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의료시스템이 복지보다 산업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작금의 대형 3차 병원들은 의료에서 복지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미처 몰랐던 진실들

필자와 같이 영화를 본 기자들은 입을 모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한 대형병원에서 과장급들이 모인 성과회의 중에 과 별로 한 달 간 수익을 순위표로 만들어 발표를 하는 장면을 꼽았다. 그 외에 외래를 하는 전문의들이 일당 외래 환자 수와 수익 현황을 매일 문자로 통보받는 장면, 무리를 해서 들여온 억대의 수술용 로봇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비 급여 (보험이 되지 않는) 검사를 권하는 실태를 보여주는 장면 등을 꼽았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로봇수술은 흉터를 남기진 않지만 보통 장점이라 광고하는 합병증과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적다는 점은 미국에서도 통계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단다.

수익을 내기 위한 병원의 무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진석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서 약 3400만원의 치료비가 나올 것이라 통보받는다. 의료비 내역이 지나치다고 생각한 박 씨는 건강보험심사원에 그의 치료비를 의뢰해보았고 실제로 드는 치료비는 1400만원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긴 싸움 끝에 2000만원을 다시 받아내었다. 하지만 그 후 병원으로부터 ‘재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일어나는 의료계에서 현 정권 총리가 주장하는 의료민영화가 시행된다고 상상해보자. 그나마 지금 미약하게나마 숨 쉬고 있는 공공복지의 개념은 사라져버릴 것이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의료 혜택을 받고 있는 빈곤층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모든 중산층을 위한 수도꼭지까지 모두 잠기고 말 것이다.

진짜 말하고 싶은 이야기

이렇듯 ‘하얀 정글’은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가득 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하기 만한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 곳 저 곳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감독의 따뜻한 감수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한 후 넌지시 건넨 파스 몇 장에, 백혈병 때문에 천사가 되어버린 아이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후미진 병원 계단 난간에, 힘겨운 삶의 파도에 깎이고 깎였을 할아버지의 옅은 미소에 비친 햇살에... 그녀가 말하고픈 진짜 이야기가 있다. 흘러가는 시간과 난데없이 찾아오는 질병 앞에 인간은 무력하게도 모두 평등하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권리인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어야 하고 하늘 아래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제도는 인간을 배신해선 안 되며, 기업은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인간을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란 결국엔 똑같이 변해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생각은 편견이었음을 알게 해준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향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년 6개월 안에 ‘하얀 정글’에 내던져질 전국의 모든 의대생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 배급을 맡은 한국 독립영화협회와 인디다큐페스티벌은 극장개봉에 앞서 이달부터 공동체상영에 들어갔다. 즉, 다수의 관객이 관람을 원하면 배급처가 관객을 찾아가서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이다. 문의는 02-334-3166. (사진은 앞서 말한 백혈병에 걸려 천사가 되어버린 아이와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의 모습. 아이는 나라에서 후원받지는 못했지만 국민의 성금을 받고 치료를 받은 바가 있다.)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