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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를 둘러싼 공방, 급한 정부 ‘체할라’

의협 대변인 좌훈정 공보이사 인터뷰

 지난달 14일 원격의료 시행안이 포함된 의료법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의 심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법안은 작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출했던 내용과 거의 동일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가시화된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2주간 홀로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한 의료인에게서 마음이 ‘불편한’ 의료계의 모습이 보였다면 과장일까. 지난달 25일부터 약 2주간 정부청사 앞에서 꿋꿋하게 1인 시위를 벌인 의협(대한의사협회)의 좌훈정 공보인사를 인터뷰 했다. 

- 작년 8월에 입법예고 되었던 의료법개정안이 지난달 규개위 심의를 통과했다. 이 중 원격의료 관련 사안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사님께선 1인 시위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유는 뭔가. 
 현 정부에 의협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의협은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현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의 주체 중 하나인데, 이번 심의에서 의료계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못했다.

- 본래 조건부 허용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반대로 급선회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회원들의 의견이 바뀌었나.
 처음에는 의원급인 1차 의료기관에 한해서 원격진료 도입을 찬성한다고 밝혔었다. 의사는 의료행위의 주체 중 하나다.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원격의료의 정착을 주도하자는 의미에서 조건부 허용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검토가 시작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걸렸었나.   
 개정안에는 원격의료제도의 시행방안으로 ▲1차의료기관에 한해 시행 ▲재진환자만 대상 ▲섬이나 교도소 등 의료취약지역 주민 대상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대상자는 약 450만명인데, 이는 전 국민의 10퍼센트 수준이다. 시범사업 대상범위로는 너무 많다. 범위가 넓어지면 정부가 전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기업이 개입하게 된다. 이미 삼성과 LG가 u-health 시범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정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대형영리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은 개원가를 힘들게 할 것이다. 또 의료비 부담능력에 따라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의 질에 큰 편차가 생길 수도 있다.

- 기술적인 문제점은 없나. 그 외의 다른 문제점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5-6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주로 낙도 등 섬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했다. 특수한 케이스를 대상으로 한 만큼 이 시범사업에서 얻은 자료만으로는 원격의료 도입의 시기 적합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본다. 의료계와 상의해서 좀 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시범사업을 구상해야 한다. 이외에도 통신장비의 안정성, 해킹 위험 등을 고려해야 하고 원격의료의 시행자격, 원격의료사고 시 책임 문제등에 대한 법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 외국의 경우는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원격의료 실시 중이다. 원격의료가 전자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적절한 법만 마련되면 외국의사나 외국의료기관과 쉽게 연동될 수 있다.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빨리 도입해야 하지 않나.
 외국의료계가 우리나라보다 원격의료를 빨리 도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의료행위가 보편화 된 나라는 없다. 미국 같이 땅이 넓어서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데 며칠씩 걸리는 경우에 주로 이뤄진다고 알고 있다. 미국이외에도 영국, 일본 등이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들 법안에서도 적극적인 원격진료를 허용하진 않는다. 통신매체를 통해 환자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화상상담을 통한 진단은 금지하거나, 재진환자에 한해서만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식이다.
 
-현재 의협 내부의 동향은 어떠한가. 의사들 간, 병원 간 이견은 없나
 왜 없겠나. 의사들의 이념 스펙트럼은 일반인과는 좀 다르다.(웃음) 극우부터 극좌까지 다 있고, 시장주의자도 있고 반시장주의자도 있다. 의협은 의료계의 ‘평균치’를 대변한다. 최대한 많은 수의 의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현재는 의료 산업화 경향 자체는 인정하되,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 그래도 개원가는 특히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 이사께서도 10여 년 간 개업의로 지내오셨는데, 개원가 입장은 어떠한가. 
 방직기 처음 만들었을 때 노동자들이 기계를 다 부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지 않나. 원격진료도 비슷한 경우라고 본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니까 지금 당장은 불안할 것이다. 병원 간 협진문제서부터 의료정보체계의 표준화 문제,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 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원격의료가 그 나름의 적절한 수요/공급을 창출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도입 자체는 확실하다. 다만 정착 과정에서 의료계가 얼마나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원격의료 체제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니까.    
 의료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런데 정부와 의협의 의견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복지부처는 의협 의견에 개의치 않고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추진하겠다 하고, 지식경제부에서도 조만간 u-health와 관련된 스마트케어(smart care)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의사가 아니다. 때문에 의료에 대해 정부가 알 수 없는 점이 존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틀렸다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 정부의 임기는 짧다. 그러다 보니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좀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서 추진하자는 쪽이지만, 정부는 십 여 년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을 몇 년 안에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그런데 규개위에서 통과된 이상 빠른 시일 내에 원격의료가 도입될 것 같은데.
 규개위에서 통과 했지만 아직 법제처와 국무회의가 남아있다. 올 여름이나 가을쯤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까지 정부에 개정안을 유보해 달라는 입장을 계속 전달할 것이다.  
 우리는 원격의료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성급한 시행을 반대하는 것이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아기얼굴이 보고 싶다고 해서 5개월 만에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에는 IT산업과 여타 산업들의 융합이 대세이니 만큼 의료분야가 IT분야와 접목되고, 서비스업화 되는 추세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산업과 의료는 엄연히 다르다. 보통 업계에서 통용되지만 의료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고려해서 의료와 IT분야를 융합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 긴 시간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장기적으로 볼 때 원격의료의 도입 자체는 확실하다. 다만 정착 과정에서 의료계가 얼마나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원격의료 체제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니까. 앞으로도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imonia89@e-mednews.com>

※ 유헬스 u-health : 유비쿼터스 기술을 활용한 질병 치료 및 건강관리를 폭넓게 이르는 말. 좁은 의미로는
 의료와 IT를 접목하여 의사가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진료 시스템을 뜻한다.
※ 스마트 케어 : 만성질환자들의 ▲경제능력 저하 ▲합병증 예방 등을 위해 U헬스와 건강관리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사업.

첨단의료기술, 축복인가 재앙인가

▲ 프렌드 박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 혈관 로봇 설계도

 새로운 핸드폰이 나오면 그것에 적응해야 하듯 앞으로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첨단의료기술들을 배우고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몇 가지에 불과했던 암표지자나 혈액검사 항목들이 수백 개로 늘어나 많은 검사결과들을 해석하는데 적잖은 혼란과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최고의 치료법으로 여겨졌던 방법들이 더 좋은 기술들로 대체되어 현재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치료법들은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좁아진 관상동맥질환의 치료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은 카테터를 이용한 스텐트 삽입이다. 그러나 이제 곧 스텐트가 아닌 마이크로 로봇이 직접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혈관 속 죽상경화반(athero-sclerosis)을 청소하고 다닐 수도 있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이미 지난 1월 20일 호주 모나쉬(Monash)대학 나노물리학 연구실 제임스 프렌드(Friend) 박사팀은 원격조종으로 혈관 속을 누비고 다니며 필요하면 간단한 수술도 수행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로봇의 크기는 직경이 약 0.25mm, 머리카락 2~3개 굵기에 불과해 혈관 속을 다니기에 충분히 작다. 이제 막힌 동맥을 뚫기 위한 스텐트 삽입은 주사로 마이크로 로봇을 주입하는 시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앞서 나가고 있는 로봇수술분야도 괄목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올 4월부터는 3D영화처럼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면서 수술이 가능한 수술 시스템이 도입된다. 로봇 종류도 다빈치 이외에 무릎 관절 수술시 뼈를 가공하는 로보닥(ROBODOC), 신경과 척추수술 보조용으로 개발된 벡터비전(Vector Vision), 뇌수술 보조용 로봇인 뉴로메이트(NeuroMate), 안면이나 뇌와 같이 초정밀 위치제어를 할 수 있는 램스(RAMS) 등 여러 가지가 개발되어 환자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같이 제한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점차 흉부외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로 그 이용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수술이 바다 한가운데, 혹은 산간 오지나 섬마을과 같은 곳에 설치되어 이제까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치료 받지 못했던 환자들을 원격진료로 살리는 날이 올 것이다.
더욱 놀라운 기술은 의사의 감각과 노하우를 모방하여 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주치의’의 등장이다. 수많은 진단학적 알고리즘과 인간보다 더 정확한 센서를 통해 병을 감지해내고 진단해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발명된다면 한 미국의 의료산업 투자 애널리스트가 쓴 책의 제목처럼 지구상에서 의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재 몇 가지 질병들에 대해서는 조기진단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어 환자의 나이와 성별, 주소와 증상, 가지고 있는 위험요인 등을 체크하면 그 질환에 걸릴 확률이 정확히 계산되어 나온다.
 현재의 한국의사는 좁은 의료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있지만, 미래의 한국의사는 다른 나라 의사들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첨단기술과 접목된 의료기술과도 경쟁해야만 한다. 첨단의료기술은 분명 미래의 의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나 현재 우리의 의학교육현장은 이런 최첨단기술이 어떤 식으로 의료계를 변화시킬지에 대해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지금부터 장차 어떤 모습의 의사가 될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의사가 원하는 대로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원하는 대로 환자를 보게 되는 의료계의 '디스토피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혜영 기자/이화
<hang2v01@e-mednews.com>


 

의사는 로봇처럼, 로봇은 의사처럼

컴퓨터의 ‘진단’과 의료분야의 ‘초전문화’



 현미경과 항생제, 마취가 발견된 지 100년 남짓, 현대의학은 지난 수천 년 간 인류를 보살펴왔던 전통의학을 거의 모두 대체했다. 또 정보기술이 현대적 의료에 도입된 지 불과 40년도 안되어, 이미 컴퓨터가 없는 병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 진단에 사용되는 각종 검사와 그 데이터의 처리, 외과적 시술과 환자의 관리까지 컴퓨터나 로봇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가지 인간의 성역처럼 남아있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진단’이다. 검사와 시술은 컴퓨터와 로봇이 한다고 해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술을 지시하기까지의 중간과정, 진단은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진단능력은 컴퓨터 보다 뛰어날까?
 스웨덴 룬트대학교와 랄스 에덴브란트 교수는 이미 15년 전에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가 5년간 개발한 인공지능시스템과 관상동맥전문의 한스 오린은 2,240건의 똑같은 심전도를 판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린이 620건을 맞춘 반면 컴퓨터는 738건을 맞추어, 심전도 진단에 있어서 20%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컴퓨터는 진단에 필요한 각종 요소들을 똑같은 크기로 판단하는 반면, 인간은 선입견과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 해 각각의 인자들을 같은 크기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장점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직감’조차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평가되었다.
 심전도뿐만이 아니다. 병리조직의 진단은 이미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흉부 엑스레이, 핵의학 사진 등 영상소견을 판독하는 시스템도 고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맹장염, 치매, 성병, 정신과적 응급상태까지 진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개발되었다.

로봇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한 편, 의사의 역할은 점점 기계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 의사의 역할을 점점 잠식하는 반면, 의사와 병원은 점점 기계화 되고 있다. 100년전 만 해도 전문의의 개념조차 없고 모든 의사가 일반 의사였지만, 지금은 전문의 중에서도 세부 전공이 있고, 세부 전공 안에서도 특정 진료만 맡고 있다. 세부 전공이 호흡기인 내과 전문의가 천식 환자만을 치료하는 식이다.
 토론토의 숄다이스 병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초전문화’가 실현된 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12명의 의사는 오로지 탈장수술만을 시술한다. 시술 횟수만 일인당 평균 연 800회. 다른 병원에서 평균 90분이 소요되고 10이상의 재발율을 보이는 탈장수술은 이 병원에서는 1%의 재발율로 30분 만에 해결된다.
 이 병원은 수술실의 구조, 식당의 위치 등 병원의 구조도 탈장수술과 환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4년간의 레지던트과정을 밟지 않았다. 하지만 탈장수술 만큼은 어떤 외과 전문의보다 잘 할 수 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장이고, 의사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초전문화’병원은 없지만, 가까운 예로는 심장질환만을 다루는 세종병원이 있다.
 로봇은 의사의 역할을 점차 대체하고, 의사는 고도의 전문화를 통해 기계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이 다를 바가 없는 영화 ‘스타워즈’ 같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스타워즈’ 속 아미달라 여왕의 분만실처럼 사람이 없는 분만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학이 나타나기 수천년 전부터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 의사-환자관계 만큼은 아직 영혼이 없는 기계에게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김민재 기자/순천향
<editor@e-mednews.com>

※ 참고문헌_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


 

의료분쟁법 개정, 국회 본회의 상정 앞두고 논의 활발

입증책임 전환 백지화 가능성… 의료인에게만 유리한 법 될 우려

 ▲ 보호자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 분쟁 해결의 단초가 되는 정보에 환자측이 접근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법)안’에 의료계와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의료분쟁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이해당사자의 입장 충돌이나 예산 문제, 국회 임기 종료 등 여러 이유로 흐지부지되어 왔다. 이번 법안은 작년 말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하고 최근 국회 본회의 의결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의료분쟁법을 둘러싼 소용돌이의 핵심을 차지하던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빠지면서 반쪽자리 법안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 ‘입증책임 전환’, Why or Why Not?

 민사소송의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상대측의 과실을 입증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의료분쟁에 있어서 일반인의 상식으로 의사의 진료과정 상에 과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의료와 같이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의사가 본인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입증책임 전환이라고 한다.
 입증책임 전환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의료가 행해지는 환경이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 접근이 제한된 곳으로서 환자나 보호자가 정황을 잘 알기 어렵고, 진료기록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측은 정보의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쟁점이 되는 의료상황에 대해 의무기록을 취득하더라도 용어 하나하나부터 자료해석, 판독 등 모든 요소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문분야라는 이유만으로 민사소송법의 일반적 원칙에서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나, 입증책임을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별로 없다는 무용론도 있다. 또, 현실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입증책임을 의사가 떠맡게 되면 환자 측이 고소를 남발하게 되고 환자-의사 관계가 더 불안정해지는 점, 의료행위 자체에 내포된 위험으로 인해 의료인이 고위험 의료행위나 진료과를 기피하게 되고 소신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되는 점, 의료인의 위험부담 증가에 따른 의료비용 상승 등 여러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 안 먹느니만 못해?
입증책임 전환 빠진 의료분쟁법안, 역효과 우려

 판례상으로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의사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직 이 문제에 관해 명시된 법률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정황이나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입증책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번에 발의된 의료분쟁법안의 초안에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판례가 최근 늘어나는 추세임을 반영하듯 입증책임 전환을 규정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신설하여 정보약자인 환자를 돕기로 하면서 입증책임 전환은 백지화된 것이다.
 입증책임 전환과 함께 보건의료인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는 형사처벌 특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을 시행하여 의료인의 책임도 분명히 하고 안정적인 의료 환경도 조성하려던 것이 당초의 입법 취지였으나, 입증책임 전환이 빠지자 이제는 오히려 의사들의 책임이나 진실은 불분명하게 하고 환자 측에는 합의나 국가 차원의 보상만을 선택지로 제시하여 의사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자와 의사의 입증책임 분배, 어떻게 흘러갈까?

 법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부분이 많은 독일이나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의료분쟁에서의 입증책임 분배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이다. 의료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라는 점이나 의료의 고도전문성 등 의료 자체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수성, 의료 현실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들, 입증책임 분배의 형평에 관한 법리적 고려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민사소송의 일반적 원칙만 따를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 점차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기존에는 소송법에 따라 환자 측이 의사의 진료상의 과실을 입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실과 발생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해야 했다. 그에 비해 독일 라이히법원과 연방대법원, 우리나라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보면, 의사의 의료행위에 상식적 차원에서 과실이 있었고 그 의료행위 이후에 환자의 신체에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피고인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

1)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2) 의사의 진료행위는 질병의 완치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책임으로 간주된다.


 


 

2020년, 내게도 주치의가 생길까

주치의 제도가 일반화 된 선진국들… 한국엔 무성한 소문만 흐를 뿐

 “관행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죠. 오래 되어서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될 관행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들이 너무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으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그 관행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것이 바람직한 건지 여부를 떠나서 그것을 바꾸기를 꺼리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시작 전부터, 하는 중에도,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이재호 교수는 이 점을 강조 했다. 과연 우리는 기존의 관행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수용하고 있을까? 특히, ‘주치의’가 없는 한국 의료계에 대해서는 어떨까?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이자, 대한가정의학회 정책이사, 일차의료연구회 회장, 이재호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 일차의료, 현 주소는?

 1978년 9월, 소련의 알마아타에 139개국 대표 등이 모여 ‘일차보건의료 선언’이 이루어졌다. 보건의료의 형평성 문제 해결을 위하여, WHO에서 전 인류를 위한 보건의료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기존의 ‘일차진료’에서, 환자는 질병을 인식했을 때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환자는 수동적으로 시술받았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질병이 생기기 전까지 의료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일차보건의료’에서는 질병이 아닌, 건강이 초점이다. 보건 의료인으로 구성된 그룹이 한 환자를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 체계의 수준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해 보자. 일차진료를 1단계, 일차보건의료를 10단계라고 둔다. 일차진료 보다도 더 낮은 단계가 ‘Vertical Programmes’으로, 의사 수나 보건 의료인도 매우 부족한 오지 등의 의료 상태이다. 일차보건의료 조금 전 단계로는 COPC(Community Oriented Primary Care, 지역사회중심일차의료)가 있다.


 그렇다면 이 스펙트럼에서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일차진료에서 한두 걸음 정도 나아갔을까?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의과대학 부속 병원은 있다. 하지만 의과대학 부속 일차의료 기관은 없다. 우리나라가 의료 시스템을 해방 이후 계속 민간 부문에 맡겨놓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주치의 등록제는 일차진료에서 일차보건의료로 나아가는, 상당히 획기적이고 중요한, 뼈대와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선진국에서 주치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치의 등록제는 어느 정도 논의 되고 있을까?
 “논란은 있지만 추진되는 모습은 전혀 없어요.”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주치의 등록제를 실시하면 개원의들이 힘들어진다, 환자의 등록비는 적지만 의사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많지 않다, 등록 환자 수도 2500명으로 제한되는데 한국의 낮은 수가에서 환자수도 제한되면 수입이 적어진다, 등록 환자에 대해서는 24시간 전화 상담을 해 주어야 하고 환자가 부르면 가정방문도 해야 한다, 한국 의사 중 90%가 전문의이지만, 전문의는 주치의가 될 수 없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무성한 소문들의 일부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불합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질문 했을 때, 대답은 간단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1996년 보건 복지부의 한 부서에서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안을 내어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제시된 것이 2만원의 환자 등록비와 2%의 의사 인센티브였다. 현재 주치의 등록제에 대해 찬성입장을 보이는 가정의학회도 그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즉, 지금 논의 되고 있는 주치의 등록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등록 환자수를 2500명으로 제한한다는 이야기는 뉴스 등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 속에서 환자수를 2500명으로 제한하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은 이 교수도 동의했다. 행위별 수가제와 인두제(환자 1인당 정해진 일정액을 받음), 그리고 PFP(Pay For Performance, 성과급제) 등이 섞인 새로운 제도가 필요할 것이라 지적했다.
 “그런 직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죠.” 주치의가 직접 24시간 전화 상담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걱정들이 다,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일단 먼저 거부감이 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2020년, 내겐 주치의가 생길까

 1998년 프랑스에서 주치의 등록제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Referring Doctor System이라는 이 제도는 프랑스 일반의 협회(MG 프랑스)와 건강보험 간의 국가 협약을 통해 도입되었다. 희망하는 일반의로 주치의를 한정하였고, 환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MG 프랑스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이 제도는 결국 10%의 일반의와 1%의 환자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의 낮은 인식도와 전문의들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주치의 등록제 시행에 있어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의료인들의 동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이다.
 한국의 주치의 등록제를 위해 대한가정의학회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고, 보건 복지부의 한 부서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조금 부족하죠. 정치 지도자의 의지표명, 적어도 보건 복지부 장관 선에서의 추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집권 여당은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2020년, 우린 주치의를 가지게 될까.
 이재호 교수는 약간 안타깝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장담하기 힘들죠.”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미래의 의료환경, 어떻게 달라질까

 2030년 3월 2일, 회사원 류은희(58)씨는 뜻밖의연락을 받았다. 빠른 시일 내에 심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연락이 온 것은 류은희씨의 주치의인 강현우(48). 평소 불안정협심증을 앓고 있는 류은희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인터넷으로 연결된 원격진료 장비를 통해 주치의 강현우씨로부터 건강 점검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 가슴통증이 나타나 급히 원격진료를 받았더니 ECG 상에 이상소견이 나타난 것이다. 주치의는 언제든지 심근경색이 나타날 수 있으니 되도록 빨리 우회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추천해 준 병원은 심장수술만을 전문으로 하는 ‘핫빗 병원’. 대학병원 보다 규모는 작지만 심장수술만큼은 훨씬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주치의로 일하고 있는 강현우씨가 담당하는 환자는 어림잡아 2000명 쯤 된다. 10년 전만 해도 환자들이 매번 병원을 방문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격진료로 강현우씨의 진료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환자들이 각자의 가정에서 단말기를 통해 몸 상태를 점검한 데이터가 강현우씨의 컴퓨터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강현우씨는 그 중에서 이상 소견을 보이는 환자들만 의원으로 방문을 요청한다. 오늘 아침 진료실에서 컴퓨터를 켜자 제일 먼저 나타난 메시지는 류은희씨의 협심증이 심근경색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예전에는 ECG를 분석하고 진단을 내리는 것이 의사의 몫이었지만 요즘은 진단까지 컴퓨터가 다 해내고 있다.

이미 컴퓨터가 류은희씨의 상태를 진단 내렸지만 강현우씨는 데이터를 꼼꼼하게 분석한 후에야 류은희씨에게 전화를 했다. 만일에 하나라도 컴퓨터가 잘못 진단을 내린 것이라면 소송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년 전 의사입증제로 전환 된 후로는 의료소송보험가입은 물론이고 항상 진단을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검토하는 버릇이 생겼다.

73호 커버스토리는 미래의 의료환경을 바꿀 수 있는 5가지 이슈들을 선정해 보았다. 미래의 의료환경, 얼마나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