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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A Better World Together

89호(2012.10.22)/문화생활 2012. 10. 29. 17:25 Posted by mednews

Making A Better World Together

 

한국 국제 협력단(KOICA) 이훈상 보건의료연구관을 만나다

 

한 때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에서 지금 어엿한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대한민국. 도움만 받던 나라에서 이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을 지원하는 접근에 있어서 단편적인 수준의 ‘지금 당장 이것을 하자’가 아닌, 그 국가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이고, 그 둘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진, 기질이 아닌 효소의 역할을 선택하신 이훈상 보건의료연구관을 KOICA 본부에서 만났다.

 

Q.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가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NGO처럼 개인들이 돈을 모아서 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개도국에 대한 무상지원을 전담하는 기관이죠. 주로 개도국과 우리나라의 양자 간 원조, 국제기구(WHO, UNICEF 등의 UN산하기관)와의 다자간 원조, NGO가 Volunteering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민관협력사업 등을 합니다.
여기서 보건의료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핵심적인 분야예요. 지원량도 가장 많구요.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라고 해서 무엇을 언제까지 향상하자는 8가지 지표가 설정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 4가지가 보건과 관련된 것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KOICA에서도 보건의료 지원전략을 세웠어요. 중점협력국가마다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가족계획사업, 페루, 볼리비아에서는 병원, 보건소를 세워주는 식으로요. 나라마다 사업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네요.

 

Q. 의대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로와는 다른데, 그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얘기를 다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란데...(웃음) 저 같은 경우는 원래 일반학부를 다녔어요. 대학생 때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기생충 퇴치 사업을 담당한 팀하고 같이 돌아다녔어요. 소변 샘플 채취해가지고 손으로 돌리는 centrifuge 본 적 있어요?(웃음). segmentation에서 구충들이 보이면 약도 주고...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따라다녔죠.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의사가 되면 뭔가 할 수 있겠다.’해서 의대를 편입하게 됐어요. 막상 또 의대를 오니, 보건학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다른 성적은 다 안 좋은데 예방의학과 지역사회의학에서는 A+를 맞았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본과 4학년 때 WHO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 때 개도국의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다 보니까 정말 열악한 국가들의 지표들이 다 비교가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의 5세 이하 아동 사망률이 1000명 중 5명이라면, 북한은 11배인 55명, 르완다는 250명. 무려 한국의 50배에 이르는 상황이었죠. 북한이 열악한 상황이라면, 르완다는 그야말로 극악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사실 5세 이하 아동의 사망률의 주된 원인이 설사, 약한 폐렴, 하기도 감염처럼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되는 병이에요. 이런 병으로 일 년에 1000만명, 요즘엔 많이 줄어서 760만명이 사망해요. 1년에 서울이 하나씩 없어지는거죠. 그런걸 보니까 소아과 의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보는 것 보다, 시스템적으로 이런 걸 예방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WHO를 가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걸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거다’ 했어요. 또 제가 진료실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데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 방법을 도출하고, 그 방향을 기획하는 것을 재밌어 했어요. 그래서 꽂힌거죠.

 

Q.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학생 때도 이런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셨나요?
학창시절에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잘 안 나왔던 거 같아요. 족보를 안 보고 교과서만 열심히 봤거든요.(웃음)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았고, 탈북자 진료, 외국인 진료, 농촌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어요. 또 보건정책연구회 스터디 모임에도 많이 다녔죠. 그 때 많이 고민하고, 자료 보고 같이 토론도 하고, 그런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 것만 수동적으로 아는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져보려고 하고, 이 상황에서 이런 접근이 다일까 고민도 하고... 그러한 자세가 지금의 위치에서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의료봉사활동을 가보니까 이미 공보의가 있고, 약도 엇비슷하고,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생색내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제가 기획을 할 때, 진료를 대폭 축소했어요. 대신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청소도 하고, 고혈압 약 먹는 것에 관한 연극도 했어요. 적극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지금의 접근이 전부일까 하는 생각, 지금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보건의료연구관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국가고시를 보고 나서 질병관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예방접종관리과에서 일했는데, 아이들을 좋아하던 저로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참 재미있게 일을 했네요. 그 후에 KOICA에 계시던 분이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전환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계속 연장선상에서 일을 했던 것 같네요. 일반직 직원처럼 공채, 특채 같은 시험을 통해서 오는 건 아니고, KOICA에서 분야별 연구관을 따로 뽑는거죠. 페이는 보건복지부의 사무관,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연구원 정도에요. 액수는 좀 적죠.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아. 할꺼에요.(웃음)

 

Q. 일을 할 때, 보건, 의학적인 지식과 함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서로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다각적인 사고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일에 어떠한 사람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
정해진 답이 없는 상황에서 폭넓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 원만한 인간관계와 친화력이 필요하죠. 여기에 의학, 보건 분야의 전문성도 함께 갖추어야 해요. 여기서 전문성이란 학위가 아닌 경험과 다양한 고민이 되겠네요. 또한 상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분석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환자를 진료할 때, 병력청취, 가족력, 검사 결과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병을 진단하는데, 이러한 의대의 트레이닝이 분석적 사고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저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웃음) 많이 키우려고 책도 많이 읽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개발이 꼭 경제 지표의 성장, 산업 발전에만 한정되어야 하는지, 개도국은 나름대로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선진국이 마음대로 선진화라는 명목을 앞세워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려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정의는 어떤 것인가요?
현재 KOICA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질문인데. 어려운 질문이네요. Listening. 우선 많이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준다고 한다면, 다 같이 웃으면서 사진 찍고 하지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지역 주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본 적이 있는지, 그들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이런 것들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들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그 결과물을 주는 게 아니라, 그 해결은 본인들이 하게끔 해야 돼요. 우리는 필요한 기술, 역량과 경험을 주는 거죠. 말하자면 그들이 성장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효소가 되는 거에요.

 

Q. 본인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기질과 효소가 있다면, 예전엔 내가 먼저 변화하고 무엇인가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질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요즘엔 변화의 가운데에 있더라도 눈에 보이진 않는, 그런 효소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꿈이랄까.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건, 내가 언젠가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먼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F맞아서 과락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등도 두드려주고, 이러한 접근이 필요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고민하는 태도를 일관성 있게 계속 갖다 보면, 어떠한 곳에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Q.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 의대생이 많습니다. 이런 의대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겉으로 있어 보이는 경험만 하려하지 말고, 사회의 각 부분을 구석구석 볼 수 있는 경험을 해 보세요.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다면 그 길로 가면 되는 거죠. 그렇지만 그 길은 찾는 자에게만 보이지 않을까요.

 

문한빛 기자/서남
<shteme@e-mednews.org>

사람 이름을 딴 수술기구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술 분야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도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좀 더 어렵고 정교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술의 발전에는 새로운 수술 술기의 등장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수술 기구의 발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술 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인 수술 기구들, 그 종류 역시 매우 다양해서 학생들에게는 각각의 이름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수술 기구에는 보비, 앨리스, 드베키처럼 발명가의 이름이 붙은 경우가 많아 외우기가 더 어렵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렇게 발명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수술 기구에 대해서 알아보자.

 

보비 나이프(Bovie knife)


흔히 보비(bovie knife의 줄임말)라고 한다. 전기를 이용하여 조직을 박리, 절제하거나 지혈하는 일종의 전기 소작기다. 보비나이프 발명 이전에는 외과 수술시 출혈이 심한 경우가 많았으나, 발명 이후 지혈이 수월해져 더 큰 수술도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발명자는 William T.Bovie이다. 생체 물리학자인 보비는 1900년대 초 수술용 전기 소작기를 발명했고, 수술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26년 10월 1일로, 보스턴의 브링햄 여성병원에서 뇌종양 환자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처음 쓰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수술 집도의가 신경외과학의 권위자이자 쿠싱 증후군의 주인공이기도 한 Harvey Cushing이라는 점이다. 이후 보비 나이프는 몇 번의 개량을 거쳐 지금까지도 수술에 사용되고 있다.

 

앨리스 겸자(Allis clamp)


앨리스 겸자는 수술시에 흔히 사용되는 겸자 중 하나로 1883년에 Oscar Huntington Allis에 의해 발명되었다. 앨리스는 미국 필라델피아 주에서 태어나 제퍼슨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필라델피아 장로교병원의 외과의사가 되었다. 정형외과학의 선구자로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정형외과학을 가르쳤으며, 수술시에 사용하는 겸자를 발명했는데 이것이 Allis clamp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퇴경부골절의 임상적 징후인 Allis' sign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드베키 겸자
(DeBakey forceps)


드베키 겸자 역시 수술시에 흔히 사용되는 겸자들 중 하나로 심장외과학의 권위자인 Michael Ellis DeBakey가 발명했다. 드베키는 툴레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과 수련을 받은 뒤 유럽에서 펠로우를 마치고 모교인 툴레인 의과대학에서 12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1948년에는 베일러 의과대학의 교수로 부임했으며 1993년까지 외과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연구에 힘썼다. 드베키는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관상동맥우회술, 경동맥내막절제술, 패치혈관성형술을 처음으로 시행했을 뿐 아니라 인공 심장 개발의 선구자로서 체외심장펌프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외에 대동맥박리의 수술법인 DeBakey Procedure를 고안했으며 현재까지도 쓰이는 대동맥박리의 분류법인 DeBakey Classification역시 그가 제안한 것이다.

 

베쑨 늑골 절단기
(Bethune rib shears)


Norman Bethune은 캐나다의 외과의사로 1930년대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의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등 인도주의적인 의료 활동을 펼쳤다. 생전에는 조국인 캐나다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했는데, 1939년 사망 직후 마오쩌둥이 그를 기렸으며 지린 성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의과대학이 있을 정도이다. 베쑨은 흉부외과 의사였는데, 흉부외과 수술에 쓰이는 여러 기구를 직접 개량하고 발명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베쑨 늑골 절단기로 구두장이의 절단기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한편 베쑨은 사회주의자였는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베쑨의 생애를 다룬 전기가 금서로 지정되어 발행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메젠바움
(Metzenbaum scissors)


메젠바움은 수술용 가위로 외과 수술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술 기구이다. 날이 안쪽에만 있는 일반 가위와는 달리 메젠바움은 날이 맞물리는 쪽과 벌어지는 쪽 양 쪽에 모두 있어 수술시 조직을 정교하게 절제하거나 조직 사이를 세밀하게 박리할 수 있게끔 해준다. 메젠바움은 발명자인 Myron Firth Metzenbaum의 이름을 딴 것인데, 메젠바움은 구강수술과 재건수술을 주로 하던 이비인후과 의사였다고 한다.

 

메이요(Mayo)


Mayo(수술용 가위인 Mayo scissors의 줄임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Mayo Clinic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Mayo Clinic 외과는 그 명성에 걸맞게 각종 수술 기구를 고안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Mayo scissors, Mayo forceps, Mayo surgical stands, Mayo retractors, Mayo-Gibbon heart-lung machine, Mayo sterile surgical camera 등이 모두 Mayo Clinic 의료진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사실 이러한 기구들이 발명자의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지만 Mayo라는 병원의 이름이 설립자인 William Worral Mayo의 이름을 딴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살펴보았다.

이처럼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수술 기구들 중에는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참 많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유명하고 널리 쓰이는 수술 기구들 중 한국인 이름이 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 요즘 언젠가는 한국 사람의 이름이 붙은 수술 기구가 널리 쓰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영탁 기자/울산
<pokytjo@e-mednews.com>

헌혈,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 헌혈 조건 알아보기

 

헌혈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만으로 누구나 다 헌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 진단 검사, 문진 등을 거쳐 헌혈자의 혈액이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320ml 전혈 채혈을 기준으로, 헌혈을 하기 위한 조건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회복 기간 미달,
과거 혈액검사 이상

 

헌혈을 하러 가면 먼저 신분증 확인과 헌혈 경력 조회를 한다. 혈구의 재생이나 혈액의 생성 등 혈액의 회복력을 고려하여 헌혈 후 채혈 불가 기간이 2개월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경력 조회 시 최근 전혈 헌혈 날짜로부터 2개월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헌혈을 할 수 없다. 과거 혈액 검사에서 이상이 있다고 판정을 받았다면 확인 검사를 거쳐 정상인 경우 헌혈을 할 수 있다.

 

저체중, 저혈압/고혈압,
낮은 혈액 비중

 

헌혈 전 건강 진단 검사에서는 체중 측정, 혈압과 맥박 측정, 혈액형 검사, 혈액비중 검사, 혈소판 수 검사 등을 한다. 혈액의 양은 체중에 비례하므로 여성은 45kg 이상, 남성은 50kg 이상이어야 헌혈 자격이 주어진다. 고혈압 혹은 저혈압인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혈류양의 변화도 혈액 순환 기계에 무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축기 혈압 90mmHg 미만 또는 180mmHg 이상, 이완기 혈압 100mmHg 이상, 맥박 1분간 50회 미만 100회 초과인 사람으로부터는 채혈을 하지 않는다. 혈액 비중 검사는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혈색소)이 충분한지 측정하기 위한 검사로, 혈액의 비중이 1.053, 즉 혈색소 수치가 12.5g/dl 이상 이어야 전혈 헌혈을 할 수 있다.

건강 진단 검사 후에는 문진을 통해 헌혈자의 혈액 상태와 관련이 깊은 약물 복용 여부, 질병 유무, 전염병 위험 지역 여행 여부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약물 및 예방접종

 

건선 치료제(에크레티네이트, 아시트레린),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두타스테라이드, 피나스테라이드), 남성 탈모증 치료제(피나스테라이드), 여드름 치료제(이소크레티노인) 등은 태아에 기형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약물이므로, 이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헌혈 금지기간이 지난 후부터 헌혈이 가능하다. 소에서 추출한 인슐린, 면역 억제제, 태반 주사제, 혈액 응고 인자,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아스피린 등을 복용하였을 경우,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영구적으로 헌혈을 하는데 제한을 받는다.
예방접종도 종류에 따라 헌혈 금지 기간이 정해져 있다. 동물에게 물린 후 광견병의 예방접종, 수두, 상처 후 파상풍, 인플루엔자 생백신, B형 간염 등에 대한 예방 접종을 맞으면 3주에서 1년의 기간 동안 헌혈을 할 수 없다. 인플루엔자, A형 간염, 파상풍, 일본뇌염, 유행성 출혈열, 자궁경부암 백신 등은 접종 후 24시간 이후부터 헌혈을 할 수 있다.

 

질환 여부 및 건강 상태

 

헌혈자의 건강 상태도 헌혈 가능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 발열, 인후통, 설사 등 급성 감염성 질환이 의심되는 증상이 없어진지 3일이 지나지 않은 경우 헌혈을 할 수 없다. 감염병에 걸린 경력이 있다면, 감염병의 종류에 따라 1개월에서 3년의 헌혈 보류 기간이 주어지거나 영구적으로 헌혈을 하지 못하게 된다.
특별히 병적인 증상이 없는데도 헌혈 자격 요건에 충족되지 못할 수 있다.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 숙박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증상의 상태로 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 내에 잠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혈구를 포함한 헌혈이 제한된다. 2012년 현재 국내의 말라리아 위험지역은 경기도 파주시나 연천군, 인천의 강화군, 옹진군, 강원도 철원구 등으로, 이 지역에서 연중 6개월 이상 숙박하였을 시에는 2년간, 숙박 기간이 연중 1일 이상 6개월 미만인 경우 1년간 전혈 헌혈을 할 수 없다. 국내 뿐 아니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말라리아 발생 위험국가에 거주하거나 여행을 갔다 왔을 시에는 각각 3년, 1년 동안 전혈 헌혈을 할 수 없다. 말레리아 위험 지역과 비슷하게, 유럽에 주로 있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헌혈 금지 지역에서 일정기간 이상 거주하거나 체류한 경우에도 헌혈이 금지된다.
헌혈 시 건강해야 헌혈이 무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수면이 부족하거나, 피로하거나 식사를 제대로 먹지 않았을 때에도 헌혈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음주를 하였을 경우 헌혈자와 수혈자 모두의 건강을 위해 음주 당일의 헌혈은 제한된다.

 

실제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개한 조건들은 물론이고, 이 글에서 채 소개하지 못한 조건들까지 모두 충족해야 헌혈 자격이 주어진다. 헌혈 전 검사는 수혈자가 건강하고 안전한 혈액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한편으로는 헌혈 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채혈 조건의 불충족으로 인해 그냥 되돌아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혈액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함께, 헌혈 가능 조건의 적극적 홍보를 통해 헌혈 의사 표명자의 헛발걸음을 막아주는 배려도 필요하지 않을까.

 

윤주영 기자/울산
<cec1203@e-mednews.org>

영화계의 ‘이단아’에서 ‘거장’으로 우뚝 선 김기덕 감독

 

1960.12.20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출생
1990 프랑스 파리로 유학
1992 귀국
1993 「화가와 사형수」로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 수상
1995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 수상
1996 영화감독 데뷔
2004 「빈집」으로 제6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수상
2004 「사마리아」로 제5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 수상
2011 「아리랑」으로 제64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 수상
2012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지난 2012년 9월 8일(현지사간), 제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비공식부문에서는 3관왕을 달성하였다. 그 동안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등 여러 영화감독들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였지만, 각 영화제의 최고의 상은 수상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걸어온 삶을 되짚어 보았다.

 

최종학력은 초졸,
15살부터 청계천 공장근무

 

김기덕 감독은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였다. 대신에 공식 학력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농업학교에 진학하였다. 15살 때부터 청계천 공장에서 생활하다가 20살이 되자 해병대에 지원하여 부사관으로 4년 6개월 간 복무하며 불우한 시절을 이겨냈다.

 

늦깎이 유학생,
영화를 만나다

 

평소에 그림에 대해 생각이 남달랐던 김기덕 감독은 30세가 되던 1990년 당시, 백남준 작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100인’에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 후 3년간 프랑스와 유럽 각지를 다니며 스스로 회화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른 영화관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과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귀국, 영화감독으로 데뷔

 

3년 만에 귀국한 김기덕 감독은 1993년 영화 「화가와 사형수」로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 1995년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본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듬해 1996년 그의 첫 번째 영화인 「악어」를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주제와 소재가 독특하였고, 표현방법이 과감하였다. 폭력, 강간, 매춘과 같이 일반인이 내재적으로 피하고 싶은 부류의 삶을 영화로 다루어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내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해외에서 먼저 드러난 가치

 

2001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나쁜 남자」 역시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8년만인 2004년 원조교제를 소재로 다룬 영화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같은 해 「빈집」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2005년 영화 「활」로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되었다. 2008년 제자인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의 곁을 떠나고, 영화 촬영 도중에 배우 이나영이 죽음의 위험을 넘기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홀로 오두막 생활을 하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3년간의 칩거를 끝내고 2011년 자신을 성찰한 영화 「아리랑」으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의 상을 모두 거머쥔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영화 「피에타」,
세계적으로 인정받다

 

영화 공부라고는 제대로 배워보지 않은 김기덕 감독은 영화감독 데뷔 15년 만에 제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18번째 작품인 영화 「피에타」로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여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고 시상대에 오른 그는 시상소감으로 ‘아리랑’을 불러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번 「피에타」의 홍보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 홍보 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 생애 첫 제작발표회에 참석한데 이어서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입담을 과시하고, 상영관을 찾아 관객들에게 무대 인사를 하는 등 대중을 향하여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에 비해서 상영회수도 적고, 교차상영까지 「피에타」였지만 관객 수 60만에 육박하며 종영한 가운데 김기덕 감독은 “새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빠른 시일 내에 김기덕 감독이 대중과 더 가까워진 작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진석환 기자/연세원주
<kwan@e-mednews.org>

새로운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면

 


- 웰빙을 위한 다섯가지 팟캐스트

매일 듣는 음악이 지루하다면 ‘팟캐스트’를 주목해보자. ‘팟캐스트’란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결합한 말로, 다양한 콘텐츠를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 형태로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들을 수 있고, 콘텐츠의 영역이 뉴스 및 정치, 예술, 인문, 음악 그리고 의학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매체 보다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iTunes 뿐만 아니라 비욘드팟(Beyond Pod)’, ‘스페셜캐스트(SpecialCast)’, ‘키스캐스트(KiesCast)’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안드로이드 사용자들도 쉽게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싶지만 직접 강연 등에 참석할 기회가 없다면, 요즘 떠오르는 이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팟캐스트로 틈틈이 그 갈증을 해소해 보는 것이 어떨까.


▶ 의학

- 나는 의사다
우리나라에 팟캐스트 열풍을 몰고 온 ‘나는 꼼수다’의 의료계 판이다. 명박(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 과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웅박(이화여대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 신박(아폴로미디어 대표, 전 MBC 의학전문기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광박(양광모, 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비뇨기과전문의) 4인의 진행자들이 보건의료계의 이슈, 한의학 상식에 대해 다룬다. 한미 FTA와 보건의료, 방어진료과 과잉진료 등 의료계의 이슈부터 비타민의 진실, 암 예방 식생활, 라식과 라섹 등 일반인들도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의료 관련 정보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 닥터명의 의학쇼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명승권이 진행하는 의학 팟캐스트로 의료계의 시사적인 이슈보다는 의학상식 쪽에 가까운 팟캐스트이다. 암 조기검진, 알레르기 비염, 금연 치료법 등 누구나 궁금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이나 건강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최근에 발표된 의학 연구결과를 소개하기도 한다.


▶ 문화예술

-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공부에 치여 도저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 책을 들어라. ‘책 읽을 시간’은 소설가 김영하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로 책이나 작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특정부분을 읽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은 별로 없는데 누군가 읽어주는 책을 듣다보면 읽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로 시작한 팟캐스트는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걸작선’까지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 서정욱 미술토크
서정욱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미술 콘텐츠로, 르네상스에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공부할지 몰라서, 혹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명화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며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미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회 분량도 10분 남짓으로 길지 않아서 짧은 시간을 투자해 가볍게 미술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사회

- 요즘 젊은것들
‘20대 헌정 방송’을 모토로 하는, 그야말로 요즘 젊은 것들의 사는 이야기가 담긴 팟캐스트 이다. 3~4명의 20대 진행자들이 모여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마치 친구들의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르바이트, 등록금 문제부터 연애, 결혼, 종교, 술자리 이야기까지 20대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서우림 기자/한림
<wr1208@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