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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제 협력단(KOICA) 이훈상 보건의료연구관을 만나다
한 때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에서 지금 어엿한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대한민국. 도움만 받던 나라에서 이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을 지원하는 접근에 있어서 단편적인 수준의 ‘지금 당장 이것을 하자’가 아닌, 그 국가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이고, 그 둘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진, 기질이 아닌 효소의 역할을 선택하신 이훈상 보건의료연구관을 KOICA 본부에서 만났다.
Q.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가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NGO처럼 개인들이 돈을 모아서 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개도국에 대한 무상지원을 전담하는 기관이죠. 주로 개도국과 우리나라의 양자 간 원조, 국제기구(WHO, UNICEF 등의 UN산하기관)와의 다자간 원조, NGO가 Volunteering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민관협력사업 등을 합니다.
여기서 보건의료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핵심적인 분야예요. 지원량도 가장 많구요.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라고 해서 무엇을 언제까지 향상하자는 8가지 지표가 설정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 4가지가 보건과 관련된 것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KOICA에서도 보건의료 지원전략을 세웠어요. 중점협력국가마다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가족계획사업, 페루, 볼리비아에서는 병원, 보건소를 세워주는 식으로요. 나라마다 사업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네요.
Q. 의대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로와는 다른데, 그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얘기를 다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란데...(웃음) 저 같은 경우는 원래 일반학부를 다녔어요. 대학생 때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기생충 퇴치 사업을 담당한 팀하고 같이 돌아다녔어요. 소변 샘플 채취해가지고 손으로 돌리는 centrifuge 본 적 있어요?(웃음). segmentation에서 구충들이 보이면 약도 주고...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따라다녔죠.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의사가 되면 뭔가 할 수 있겠다.’해서 의대를 편입하게 됐어요. 막상 또 의대를 오니, 보건학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다른 성적은 다 안 좋은데 예방의학과 지역사회의학에서는 A+를 맞았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본과 4학년 때 WHO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 때 개도국의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다 보니까 정말 열악한 국가들의 지표들이 다 비교가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의 5세 이하 아동 사망률이 1000명 중 5명이라면, 북한은 11배인 55명, 르완다는 250명. 무려 한국의 50배에 이르는 상황이었죠. 북한이 열악한 상황이라면, 르완다는 그야말로 극악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사실 5세 이하 아동의 사망률의 주된 원인이 설사, 약한 폐렴, 하기도 감염처럼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되는 병이에요. 이런 병으로 일 년에 1000만명, 요즘엔 많이 줄어서 760만명이 사망해요. 1년에 서울이 하나씩 없어지는거죠. 그런걸 보니까 소아과 의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보는 것 보다, 시스템적으로 이런 걸 예방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WHO를 가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걸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거다’ 했어요. 또 제가 진료실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데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 방법을 도출하고, 그 방향을 기획하는 것을 재밌어 했어요. 그래서 꽂힌거죠.
Q.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학생 때도 이런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셨나요?
학창시절에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잘 안 나왔던 거 같아요. 족보를 안 보고 교과서만 열심히 봤거든요.(웃음)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는 않았고, 탈북자 진료, 외국인 진료, 농촌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어요. 또 보건정책연구회 스터디 모임에도 많이 다녔죠. 그 때 많이 고민하고, 자료 보고 같이 토론도 하고, 그런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 것만 수동적으로 아는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져보려고 하고, 이 상황에서 이런 접근이 다일까 고민도 하고... 그러한 자세가 지금의 위치에서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의료봉사활동을 가보니까 이미 공보의가 있고, 약도 엇비슷하고,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생색내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제가 기획을 할 때, 진료를 대폭 축소했어요. 대신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청소도 하고, 고혈압 약 먹는 것에 관한 연극도 했어요. 적극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지금의 접근이 전부일까 하는 생각, 지금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보건의료연구관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국가고시를 보고 나서 질병관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예방접종관리과에서 일했는데, 아이들을 좋아하던 저로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참 재미있게 일을 했네요. 그 후에 KOICA에 계시던 분이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전환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계속 연장선상에서 일을 했던 것 같네요. 일반직 직원처럼 공채, 특채 같은 시험을 통해서 오는 건 아니고, KOICA에서 분야별 연구관을 따로 뽑는거죠. 페이는 보건복지부의 사무관,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연구원 정도에요. 액수는 좀 적죠.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아. 할꺼에요.(웃음)
Q. 일을 할 때, 보건, 의학적인 지식과 함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서로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다각적인 사고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일에 어떠한 사람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
정해진 답이 없는 상황에서 폭넓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 원만한 인간관계와 친화력이 필요하죠. 여기에 의학, 보건 분야의 전문성도 함께 갖추어야 해요. 여기서 전문성이란 학위가 아닌 경험과 다양한 고민이 되겠네요. 또한 상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분석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환자를 진료할 때, 병력청취, 가족력, 검사 결과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병을 진단하는데, 이러한 의대의 트레이닝이 분석적 사고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저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웃음) 많이 키우려고 책도 많이 읽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개발이 꼭 경제 지표의 성장, 산업 발전에만 한정되어야 하는지, 개도국은 나름대로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선진국이 마음대로 선진화라는 명목을 앞세워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려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정의는 어떤 것인가요?
현재 KOICA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질문인데. 어려운 질문이네요. Listening. 우선 많이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준다고 한다면, 다 같이 웃으면서 사진 찍고 하지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지역 주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본 적이 있는지, 그들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이런 것들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들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그 결과물을 주는 게 아니라, 그 해결은 본인들이 하게끔 해야 돼요. 우리는 필요한 기술, 역량과 경험을 주는 거죠. 말하자면 그들이 성장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효소가 되는 거에요.
Q. 본인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기질과 효소가 있다면, 예전엔 내가 먼저 변화하고 무엇인가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질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요즘엔 변화의 가운데에 있더라도 눈에 보이진 않는, 그런 효소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꿈이랄까.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건, 내가 언젠가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먼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F맞아서 과락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등도 두드려주고, 이러한 접근이 필요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고민하는 태도를 일관성 있게 계속 갖다 보면, 어떠한 곳에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Q.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 의대생이 많습니다. 이런 의대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겉으로 있어 보이는 경험만 하려하지 말고, 사회의 각 부분을 구석구석 볼 수 있는 경험을 해 보세요.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다면 그 길로 가면 되는 거죠. 그렇지만 그 길은 찾는 자에게만 보이지 않을까요.
문한빛 기자/서남
<shteme@e-med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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