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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소신이 깃들 수 있기를...

 

이 땅에서 언제쯤 소신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물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품속에 꽁꽁 숨겨둔 소신을 쉽게 꺼내 보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이 앞에, 돈 앞에, 사회적 평가 앞에 소신은 계속해서 후순위가 됩니다. 자꾸만 뒤로 밀린 소신은 어느새 삶의 가장 밑바닥에 도달합니다. 모든 것의 아래에 놓인 소신을, 이내 삶의 ‘바탕’이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고선 자신의 행동 모두가 오로지 소신에서 비롯되었으며 소신껏 결정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합니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자기기만입니다. 실제로는 소신에 따라 행동할 수 없으니 행동을 먼저 한 후에 그것이 소신에 따라 행해진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입니다.
所信(소신). ‘굳게 믿고 있는 바’라는 뜻입니다. 저 역시도 사회의 늪에 깊숙이 빠져 들어갈수록 소신을 잃어버릴 겁니다. 허나, 편집장 자리에 있는 동안만큼은 소신을 담아 신문을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 역시도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로운 편집장입니다. 이번 여름에 편집장 교체가 있었습니다. 항상 연초에 바뀌곤 했는데 올해는 조금 이른 시기에 편집장이 바뀌었습니다. 여름 내내 신문사 덕분에 지루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더군요. 편집장 이름을 달고 신문사 활동을 시작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니 조금 낯선 기분입니다.
편집장이 되자마자 많은 일을 하려 했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 일들이 무엇이었든 간에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의대생 신문이 ‘의대생의 신문’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랐습니다. 전국 모든 의대생들에게 의대생신문이 삶의 유익한 일부로 자리 잡길 바랐고 의대생신문이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의대생신문은 그럴 대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거액의 돈과 긴 시간과 함께 기자들의 고뇌와 환호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신문이 백지만도 못한 대접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신문사 기자들만 만족하는 신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에게 유익한 신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유용한 정보가 가득 담겼다한들 독자가 없다면 이 8면 신문은 조금 큰 일기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주인공인 신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3개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진행한 일들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전을 손에 쥐고 조금씩 긁어보는데 ‘꽝’은 아닌 것 같은 기분입니다. 여름 내내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초췌하고 낙담한 모습만이 담겨 있어 제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젠 약간의 미소는 되찾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슬슬 가속도를 붙여갈 때입니다. 물론 과속은 절대 금물이겠지요.

‘편집자가 독자에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저 그런 다짐 글만은 되지 않았으면 했는데 결국 끝에도 다짐 한마디 남기며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편집장이 모난 부분이 많기에 신문사는 더욱 더 새로워질 것입니다. 두 갈래 길 중 기필코 발자국 없는 길을 택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추신 1 : 106호 신문을 만드는 데에 일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추신 2 : 얼마 전부터 의대생신문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가까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고가며 한 번씩 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신문사 페이스북을 통해 만날 수 있고, 페이스북 주소는 http://www.facebook.com/mednewskorea 입니다.

 

윤명기 기자/한림
<medschooleditor@gmail.com>

전공의 미달에 내과학회는 수수방관인가

 

내과는 의학의 꽃이요 왕도다. 대학병원에는 내과 교수가 가장 많기 마련이다. 많다고 하여 그들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항상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존재감이 약한 것도 아니다. 내과 교수에게는 다른 분과 교수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건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부심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의학의 축이라는 자부심, 온갖 병태생리와 약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들을 빛나는 길로 이끄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빛나는 길 주변에는 전공의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심하면 혼자서 30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하며 쪽잠을 자다가 깨어났다가를 반복하고, 백 일 동안을 집에도 가지 못하며 일하는 내과 전공의들이 환자들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자신도 스텝으로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한 사람의 전문의로서 참여하거나, 미래에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기대, 혹은 그 둘 모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요성에 걸맞게 내과가 전통의 강자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적어도 위의 둘 중 하나는 기대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늘구멍과도 같아진 임용의 길이야 없었던 셈 치더라도 적어도 개원과 봉직 둘 모두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술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인턴들에게 내과는 참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의대 공부의 절반 이상이 내과인데, 누군들 배운 것을 업으로 당당하게 바이탈을 잡고 싶지 않겠는가.
2010년, 내과는 1.4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리고 2011년 1.39대 1, 2012년 1.34대 1, 2013년 1.29대 1로 점점 미미하게 감소하다가 마침내 2014년에는 1.09대 1, 2015년에는 0.92대 1로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내과 전공의 모집 이래 최초로 있는 일이다. 내과의 미달사태는 심각한 문제다. 대학병원은 모든 분과간의 컨설트를 통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내과 전공의의 부족은 내과 병동의 혼돈을 불러일으킬뿐만 아니라 나아가 병원 전체의 무질서를 불러온다.
올해초 이 사상초유의 내과 전공의 미달 사태는 많은 의사들, 그리고 병원 구성원들의 가십거리였다. 정원이 모두 있어도 심각한 격무는 진정 ‘살인적인’수준이 되었고, 상반기 많은 병원의 내과 레지던트들이 단체 파업을 해 관심을 끌었지만 그 당시 뿐이었다.  어떤 전공의들도 갑인 병원 앞에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고, 그렇게 반 년이 지났다.
지난 8월 11일, 대한병원협회는 후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확정하고 14일부터 접수를 받았다. 당시 전공의 모집을 공고한 병원은 104곳, 그 중 내과 전공의 자리는 125석에 달했다. 많은 기대를 품었던 모집 결과, 뚜껑을 열어보니 21명에 불과했다. 그 중 서울대 2명, 서울삼성병원 1명이 초과지원이므로 모두 합격처리된다 해도 실제 충원되는 전공의는 18명에 불과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전반기 모집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회를 한 번 더 만든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근거 없이 기대한 핑크빛 전망은 허황된 망상에 불과했다. 오히려 메르스 사태 때 호언장담과는 달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폐업하는 병원들을 바라보며 의지가 더 꺾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에 대해 분노하거나 곱씹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반년 이상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며, 문제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형적인 수가체계와 그에 따른 개원가의 몰락 때문이다. 원격의료에 대한 불안감도 한 술 거든다.
수가체계와 같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토는 문제 당사자들을 허무하게 만들기 쉽다.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관계없이 문제제기는 꾸준히 해야 언젠가 의료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겠지만, 당장은 의사와 병원이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과거 외과의 많은 영역들이 내과로 옮겨왔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경이다. 최소한의 침습적 시술로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과의 지위는 더욱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신식 술기들을 할 수 없는 내과의사는 결국 그 권위를 누리지 못하는 반쪽짜리로 전락할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학생들에게 신체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 영상이나 술기를 통해야만 결정적인 진단이나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수련 환경은 갑인 병원이 반쪽짜리 의사를 찍어내게 만들었다. 결국 술기는 내과 전공의들에게 ‘완전’해지기 위한 하나의 퍼즐이 되었다. 분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정적인 것을 인질로 삼는다면 그것을 얻기 전까지는 수련을 마쳐도 결국 미생에 불과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 상반기 파업한 내과 전공의들의 요구사항은 ‘일을 줄여달라'가 아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보장해달라’라는 것이었다. 병원의 말대로 전공의가 완전한 직업이 아닌, 교육생이라는 이유로 처우와 급여를 보장해줄수 없다면 교육환경은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가끔 파업한 이들에게 딱지처럼 붙이는 ‘환자를 버린 사람들’이라는 꼬리표, 과연 병원측에서 붙일 수 있는 것일까. 
내과는 분명히 의학의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리고 그 축이 흔들리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단 내과 구성원만의 문제로 끝날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비뇨기과는 3년간 정원을 50%이상 줄이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후반기 모집도 실패는 변화 없이 요행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내과학회도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