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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2011.04.11)/문화생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06 이야기 치료를 이야기 하다 1
  2. 2011.05.06 진실에 한 걸음 더
  3. 2011.05.06 장하준과 함께 반추해보는 신자유주의

이야기 치료를 이야기 하다

수많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현대의학이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의학만의 영역이 아니다. 시 치료, 미술 치료, 음악 치료와 같은 대안 치료법이 많이 제시되는 요즘,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이야기’ 치료. 경북대학교 문학치료학과에서 이야기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권희영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Q. 이야기 치료란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이야기 치료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 패러다임이 기존 상담 이론과 굉장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찾아왔을 때 자기 삶이나 문제에 대해 얘기할 거 아니에요. 이 때 내담자가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 방식에 집중을 하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보통 ‘이야기’라고 하면 동화를 상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 치료를 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이야기 치료에 대해 관심도 많지만, 오해도 많았어요. ‘이야기’라는 단어 자체가 중의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담자에게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읽게 하고, 해석하게 하는 것은 독서 치료에 가까운데, 이야기 치료를 그런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사실 이야기 치료는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유럽 쪽에서 호응을 많이 얻고 있는 편이에요.

Q. 그렇군요. 그렇다면 치료 이름이 왜 ‘이야기 치료’인건가요?
아까 소개할 때 잠깐 언급했지만, 이야기 자체에 집중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담 이론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성격 구조나 인간관에 대한 이론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론에 근거해서 내담자의 성격구조나 심리상태를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런 이론이 아니라 내담자가 말해주는 이야기자체가 가장 중요한 소스가 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담자가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내담자의 이야기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만약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 사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면 나는 행복한 겁니다. 반면에 내가 그 사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는 불행해집니다. 이렇게 불행해진 사람들이 내담자가 되어 찾아 왔을 때,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그렇지만 그 사건 자체가 너무 불행해서 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
이야기 치료에서는 모든 사건에는 양면성(긍정, 부정)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야기 치료에서는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 문제가 생긴다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문제라고 해석하는 것은 내가 그 사건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그럼 방금 말씀하신 ‘강화’시킨다는 것이 뭐죠?
내가 그 사건에 특별히 집중하고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 사건이 나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강화에요. 보통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면 이 사건과 비슷한 과거의 다른 사건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연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다 결국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게 되죠.
예를 들어, 어떤 일들 때문에 힘들고 우울한 경우,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우울하다고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그렇게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계속 빠져있으면 우울한 것이 나의 삶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돼요.
‘문제’라는 건 어떤 사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내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 사건과 나의 관계를 파악하고, 나와 사건을 따로 떼어놓고서 그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는 데 중요성을 둡니다.

Q. 그러니까 ‘문제’가 사실은 내담자의 ‘해석’일 뿐이라는 거네요. 심리학과는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는 내담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게 진짜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 하기보다는 문제에 집중해서 그 사람 내면을 들여다보잖아요. 이를테면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그것이 성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이런 문제를 발생시켰는지 말이에요. 그런 방식이 익숙했는데 문제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건 굉장히 새롭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문제다.” 이야기 치료에서는 가장 유명한 문장이에요.
문제와 사람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치료가 내담자가 가져온 문제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그 사람 인격과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던 관점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이야기 치료는 분석하는 것이 정형화된 틀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거부합니다.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도 심리학 상담자는 이론을 기준으로 해석을 하죠. 물론 그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잖아요. 사람마다, 종교마다, 문화마다 다 다르니까요. 그걸 다 고려해서 전문가인 상담가가 내담자의 위치에서 똑같이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치료를 할 때, 내담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인가요?
내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에요. 우선 내담자와 같은 관점을 가짐으로써,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는지 파악합니다. 그런 뒤 그 사건을 내담자와 분리시켜 내담자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계속 질문을 던져요. 그렇게 해서 내담자 스스로 그 의미나 다른 해석의 방향을 찾도록 해줍니다.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거나 지시하면, 그건 내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내담자가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어 결국 그 사건을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유도합니다.

Q.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어떤 큰 일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는 이게 정말 힘든 일인가하는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좋아요. ‘왜 나는 이렇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자꾸 ‘왜?’라고 질문하다보면 사건을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Q.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상은 사실 50-60대 인생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습입니다. 그런데 다들 조급하게 그때 모습을 지금 빨리 이루길 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차근차근 발전해서 마지막에 그 모습을 갖추면 되는 건데 지금부터 그 목표의 그림자라도 보길 원하는 거죠. 그러니까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뭘 해내야겠다는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모습을 지금 꼭 갖출 필요는 없잖아요. 인생은 기니까 다 할 수 있어요.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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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한 걸음 더

80호(2011.04.11)/문화생활 2011. 5. 6. 22:19 Posted by mednews

진실에 한 걸음 더

‘장자연 리스트’를 통해 돌아보는 기자 정신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전 장자연씨가 2월 28일 전 매니저 유장호 씨에게 남긴 글이다. 그녀를 둘러싼 연예계비리에 대한 진술서와, 유장호씨에게 심경을 토로한 편지였지만 사실상 이 글은 29살 젊은 여배우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2009년 3월 7일.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장씨의 죽음이 보도되고 나서, 경찰은 다른 연예인들의 죽음처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종결지으려했다. 하지만 장씨의 유서가 KBS에 의해 공개되고 나자 여론이 폭발했다. 장씨의 유서에는 장씨가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로부터 강요받아야했던 술 접대, 성 접대 그리고 김대표가 그녀에게 가했던 폭행들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경찰은 재수사에 나섰다. 41명의 대규모 수사팀, 27곳 압수 수색, 통화 내역 14만여 건 조사, 들춰본 계좌와 신용카드 조회 건수도 955건, 참고인도 총 118명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였다. 핵심은 향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아주 이상한 수사였다. 장씨가 성 접대를 했다고 지목한 일간지 사장에 대한 경찰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뜬금없게도 사건을 보도한 취재기자와 기자를 취재장소로 데려다준 조카, 조카의 친구까지 불러서 조사했다. 당시 경기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워낙 힘이 있는 분이어서 성 접대 의혹만으로 쉽게 부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유력 인사를 포함한 수사 대상자의 신원과 혐의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는 나중에는 "실수였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문건에 등장하는 유력 언론사의 전 대표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여배우의 죽음 앞엔 ‘성역 없는 수사’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찰의 수사는 같은 시기 언론을 뒤덮었던 ‘박연차 리스트’와는 판연히 다른 자세였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는 사회고위층이라 불리는 유력인사가 불법적인 상납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였다. 하지만 박연차 리스트를 조사하는 검찰은 박근혜계 인사와 친노인사들을 열심히 물고 늘어지고, 장자연 리스트를 조사하는 경찰은 잘 차려준 밥상마저 물리려했다. 검찰과 경찰이 보좌해주는 권력실세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이렇듯 ‘장자연 리스트’의 수사엔 진척이 없었고, ‘박연차 리스트’라는 거대 정관계 스캔들과 맞물려 여론의 추진력도 얻을 수 없었다. 3월에 시작한 경찰의 수사는 7월 10일 마무리되었지만 성접대에 대한 혐의는 사라진 채 김종승와 유장호씨만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등 술자리에 참석했다고 문건에 언급된 10여 명의 이름 또한 모두 빠져있었다. 통상 유언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인데,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술 접대·성 접대 의혹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이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6일 SBS가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는 단독 보도를 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SBS가 입수한 편지는 2009년 스포츠 칸에서 공개한 ‘왕첸첸(편지를 보유했던 전씨의 가명)의 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공인된 전문가가 ‘장씨의 필적임을 확인했다’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3월 16일 국과수는 이러한 SBS의 주장을 뒤엎고 이 편지가 장자연씨의 필적이 아님을 발표했다.

국과수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추잡함은 분명 있었다. SBS의 보도가 있고난 3월 9일 배우 문성근 씨는 조선일보사 앞에서 ‘정말 미안합니다. 장자연님’이라는 팻말을 들고 조용히 1인 시위를 했다. 장씨와의 친분은 없어도 함께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로서, 그러한 추잡한 관행들이 아직도 간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문성근씨는 장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술접대와 성접대라는 상납의 대상이 된 언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언론 본연의 의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쳐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 권력, 즉 로비의 대상이 되었단 말이죠. 많은 시민들은 언론사가 관계가 되면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의 감시자가 되어야할 언론이 오히려 권력실세가 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권력의 비호자가 된 현실. 감시자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력의 비호자가 된 것은 비단 언론 뿐 만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를 사실상 방관했던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 이다. ‘힘있는 자는 보호받아야한다’는 이상한 명제 속에, 스타가 되지 못한 힘없는 여배우는 사후에도 명예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인가?

장씨의 명예는 공식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지만 그녀의 죽음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긴 유서를 통해서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장자연씨의 유서를 공개한 KBS와 장자연씨가 쓴 것이라 추정되는 편지를 공개한 SBS는,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권력이 감추는 진실을 파헤치는 이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계란을 던진다 한들, 이 바위는 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흔적은 남는다. 이것이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진실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 이유이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29@e-mednews.com>


장하준과 함께 반추해보는 신자유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다

2010년 12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하준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원래 취지는 한나라당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교수의 강연을 듣고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지만 강연 막바지에는 장 교수와 의원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 강연회에서 장하준 교수는 한미 FTA와 현 한나라당의 주요 정책들을 비판했다. 현 정부의 모든 것들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하준 교수는 1963년에 태어나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캠브리지대학교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 교수의 가족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장 교수의 동생 장하석 교수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물리학 학사를, 스탠퍼드대학교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땄다. 아버지 장재식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장하준 교수는 일반적인 기득권층으로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정책 기반으로 쓰이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무리의 선봉에 서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왔는데 이때 대두된 경제이론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이다. 대공황 이전의 자본주의는 결점이 많았는데 이를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케인즈경제학, 즉 수정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이 수정자본주의도 1970년 세계 경제공황 이후 반론이 제기되었는데 이때 새롭게 나온 것이 지금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다. 신자유주의를 몇 단어로 설명하자면 자유시장, 정부의 규제완화, 재산권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경제상황을 매우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봤을 때 이들 주장에는 여러 허점이 많다.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2008년에 전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는 현재의 선진국들에게는 잘 들어맞는 경제이론인 것 같이 보인다. 실제로 대표적인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공산주의 정부이지만 어느 정도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의 경우를 보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선진국들만의 경제이론으로 보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도 이를 비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선진국에서도 완벽한 경제이론이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더더욱 경제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책에 소개되는 대표적인 예들은 놀랍게도 현재 선진국들이 과거에 채택했던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들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들도 포함되어있다.

산업혁명 시절 영국, 프랑스 등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엄청난 경제발전이 있었다. 이 경제발전을 단순히 산업혁명 때 나온 많은 과학기술덕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단순히 기술 때문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전이 몇몇 특정 나라에서만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에서 과학발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기술의 유출을 철저히 막았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농업을 위축시키고 공장을 지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여러 방법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키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이를 바탕으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국의 압박에 의해 농업으로 시작했지만 정부의 주도 하에 많은 선진기술들을 이용한 공장들을 지었으며 현재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높은 관세를 이용해 자국 산업을 보호해 여러 산업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의 경제발전도 비슷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울산, 포항 등 국내에 많은 중화학 공업단지를 건설했으며 엄청난 사회자본을 투입해 경부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높은 관세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산업이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을 막아 국내 기업들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었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렇게 전 세계 선진국들은 과거에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되는 경제정책을 이용해 많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이들은 현재 개발도상국들에는 자국에서 쓰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고 이것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요지이다. 이런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주요 세 기관으로 IMF, 세계은행, WTO가 이 책에서는 소개된다. WTO는 국제 거래 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규정을 어기면 제재를 가하며 IMF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경제위기의 국가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그 나라의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으로 바꾼다. 당연히 이런 국가들이 더 이상 큰 경제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 책의 제목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나온 제목이다. 성경에 따르면 한 유대인이 강도를 당하고 길에 쓰러져있었는데 제사장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마리아인 한명이 그를 데려가 보살펴주었고 예수가 칭찬을 한다. 요지는 진정한 이웃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실에 비추어보면 지위가 높은 선진국은 지위가 낮은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인 것이다. 물론 장 교수의 비판이 100%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의 가하는 이중잣대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잔인한 짓인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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