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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수필부문
금   상

 

고통의 병태생리학(Pathophysiology of the Pain)

 

김양우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며칠 전, 누군가 힘없는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신을믿지 않는 나에게는, 그다지 깊은 울림은 아니었다. 독방으로 돌아와 책을 펴니 니체가 말했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우리를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이렇게 전해들으면, 고통은 인간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는 좋은 것이다.
MRI 촬영을 위해 온몸을 포박당한 채 시끄러운 기계음이 울리는 속에서, 나는 그렇게 지난 시간을 하나씩 복기해 보았다. 아무래도 성경보다는 니체 쪽이 이해하기 쉬웠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고통’이라니 내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나의 고통은 두 군데에서 출발해 퍼져나갔다. 한쪽으로는 엉덩이에서 허리를 타고 올라가고, 다른 쪽으로는 이성에서 마음으로 내려왔다. 흉추가 가장아픈 걸 보니 두 줄기가 아마 여기서 만나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라는 원망에서 ‘내가 왜 강해져야만 하는지’라는 한탄으로 머릿속 질문이 바뀌어 갔다. 이 고통이 나를 죽이지는 않을 테니 나는 결국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강해져야 하는 걸까? 제발 나에게서 이 고통을 거둬 가시고 나를 나약한 그대로 내버려 두소서. 직접 겪는 고통은 전해들은 것과는 달리 하나도 좋지 않았다.
감정이 점차 격해지고 있던 찰나에 촬영기 밖으로 끌려갔다. 끝난 줄 알았는데 조영제 주사를 맞고 다시 촬영기로 들어갔다. MRI도 조영제를 맞는구나, 그때 알게 됐다. 일주일 뒤 나온 판독 소견은 역시 예상대로 강직성 척추염이었다. 양쪽 천장 관절(sacroiliacjoint)에 염증이 심하게 생겼고 뼈와 힘줄, 인대 군데군데에 손상과염증이 보였다. 제법 진행한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포도막염이 생겼고 안과에서 진료를 받은 뒤에HLA-B27 유전자 검사와 골반 X선 촬영을 했다. 의대 생활을 시작한 후 만성적으로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 후 나온 영상의학적 소견까지 더하면, 나는 강직성 척추염의 교과서적 증례에 해당했다. 강의로만 듣던 희귀병인 줄 알았는데 바로 나한테 있던 병이었다. 현대 의학은 아직도이 병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바꿔 말하면 의대생인 나는 이병에 대해 알만큼은 알고 있었다.
병원 실습중에 외래 진료를 참관하면 수많은 환자를 보게 되는데 간혹 의사를 힘들게 하는 환자가 있다. 의사가 더 해줄 수 있는게 없는 상황에서 떼를 쓰듯이 말하는 사람들이다. 가만 들어보면 무엇을 해달라는 구체적 요구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대기자는 수없이 밀려 있고 응급 상황도 아닌데 자기 생각만 하는 이런 사람들은 종종 교양이 없다는비난을 듣는다. 누구나 고통스럽고 어렵다. 병원이라면 특히. 의사가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문제다. 아무래도 의학지식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배려심의 양을 정하는 게 아니겠냐는생각이 들곤 했다.
포도막염을 진단받던 날, 눈의 통증이 극에 달해 있었고 자가면역이 원인일 수도 있기에 걱정이 많았다. 병원 실습도 계속되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환자로서는 최고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교수님께 공손히 내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차분하게 검사를 받았다. 실습과 진료를 같은 병원에서 해결하니 동선도 간단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을 위해 응급실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께 카톡이 왔다. 오랫동안 아프시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모든 상황은 우연히 이어졌다. 그런데 아버지의 카톡을 본 순간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 그 어떤 드라마도 소설도 흉내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가 있다는 사실을. 사르트르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사이에 선택만이 있다고 했지만, 틀린 말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는삶이라는 무의미하고 가는 실로 이어져 있고, 삶은 고통이라는 주파수로 가끔 흔들리며 의미를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일부러 고통을 선택하는 인간은 없다. 스스로 고통을 선택했다며 자기 위안에빠질 뿐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친할머니의 장례는 미사로 치러졌다. 신부님은 죽음 앞에 삶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예수님이 나약한 우리를 어떻게 품어주시는지 나긋나긋 시를 읊듯 말씀하셨다. 친할아버지는 지난 삶을 회고하고 남은 삶을 두려워하며 관을 부여잡고 슬프게 우셨다. 따라 울음을 터뜨린 아버지는 입을 벌리고 목을 놓았다. 마치 갓난아기 같았다. 아버지의 아들인 나도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포도막염이 낫지를 않아 눈물이 차오르면서 안구에 통증이 왔고, 피로가 겹쳐서 허리가 너무 아팠다. 참기 어려운 고통속에서 내 몸과 내 영혼은 파르르 떨며 “끼이익 끼이익” 서툰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이 비명 같은 연주는, 인생에서 서곡조차도 될수 없는,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를 확인하는 조율 정도였을 것이다.이 고통을 이겨내면 나는 더 나은 인간으로 더 좋은 소리를 낼 텐데,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차라리 아무 일 없는 채로 그냥 못난인간이 되고 싶었다.
의학은 인간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분명 종교나철학보다는 훨씬 고통의 실체에 근접했다. 고통을 이해하는 것을넘어 고통을 낫게 하거나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의학이 참 대단하다고 믿었는데, 나에게 찾아온 만성적 허리통증과 희귀병이라는 절망감, 가족이 함께 겪는 상실감 앞에서 이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말기암이나 중증 폐질환도 아니고 내가 열심히 살면 극복할 수 있는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임을 잘 알고 있는데도 나는 한없이 나약해졌다. 고통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고통 그 자체다. 의학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의사는 인간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가치중립적이고 차가운 의학과는 달리 의사는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고통에 대해 잘 알려줄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고 치료법은 무엇이고 그다음 치료법은 무엇인지까지 알고있다. 나도 내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을 잘모르겠다. 내 삶은 왜 이렇게까지 고통에 떨면서 가냘픈 울음을 울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나는 내 고통에 대해 잘모르고 의사 역시 인간의 고통에 대해 조금도 아는 바가 없다.
이제 내가 의사가 된다면, 인간의 고통을 실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도 그 고통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고통이 흔들고 있는 삶의떨림을 보고, 그 떨림이 내는 서툰 연주를 들으면서, 내 고통의 악보로 내 삶을 함께 연주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유일하게 이해할수 있는 고통의 의미다.


│금상소감│
고통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이해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 두 번째 응모했습니다. 일찌감치 글을 준비하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은 제 작품에 큰 상을주신 것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수필의 제목을 다소 특이하게 짓고 싶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대학교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제목을 짓는 데 세심하게 공을 들였습니다. 병태생리학이라는 말은 의학 교과서에서 질병의 생물학적 기전을 다루는 기초적인 단원의 제목입니다. 고통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이해를 말하고 싶은 의도도 있었고 프랑스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깡길렘의 저서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서 착안하였습니다.
고통은 의학에서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도 하면서 정상적인 신체의 반응으로 보기도 합니다. 종교나 철학에서도 고통을이중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의 실존에서 고통은어떤 의미인지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의 체험을 통해 이를 표현해보고 싶었으며 의학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작품 내용 중에 니체나 사르트르가 언급된 것도 그런 뜻이었죠.
투고를 할 때에는 몰랐는데 황현산 선생님께서 심사를 해주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이 글을 선생님께 보일 수 있어서 기쁘고영광스럽기도 한 한편, 졸문을 보여 제 미흡한 수준을 들킨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기도 합니다.어머니께서 제가 아픈 걸 아시고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제가 아픈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면서 항상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이 어머니께 죄송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게 되어 걱정이 됩니다. 아들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할 날이 오게 될까 아득하기만 합니다.앞으로도 끊임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수필부문
대   상

 

분만실, 탄생 그리고 재회

 

이지선 (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나는 탄생부터 쉬운 딸이 아니었다. 1987년 8월 19일. 엄마는 찌는 더위 속에 12시간이 넘는 진통을 겪고서야 나를 품에 안았다.
어린 시절에는 수없이 잔병치레를 하여, 병원도 없던 시골마을에서 자가용도 없이 어렵게 옆 도시의 병원을 오가야 했다. 성격은또 내로라 하는 황소고집이어서 한여름에 겨울 외투를 입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등의 에피소드는 나를 낳은 엄마가 감내해야 했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사춘기 때는 급기야 가출까지 감행하기도. 사람들이 엄마에게 ‘공부잘 하는 딸 두어 좋겠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는 침묵의 미소로 대답하거나, 옅은 웃음을 지으며 ‘그럼 한 번 데려다 키워 보세요.’라고 말했다. 엄마에게난 결코 ‘간단한’ 딸이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자 내 일탈은 그 차원이 한층 과감해졌다. 나는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돌연 휴학하고 홀로 1년간 중동과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반대하던 아빠를 설득하도록 도와준 건 엄마였지만, 그런 엄마도 공항에서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네 결정이니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은 울먹이는 소리에 묻혀희미하게 들렸다. 내가 본 엄마의 첫 눈물이었다. 내가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만끽하던 시간 동안,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을 꾹꾹 가슴에 눌러 담고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던 인고의 시간을 견뎠을 터였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신나고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내 삶의 방식은 그 후로도 변함없이 이어져갔다.
2016년 1월에는 IS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중동을 향한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남들 눈에는 어쩌면 정의롭고 대단하게 보일,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들을 도우러 떠난다는 의대생 딸은 그렇게 또 불시에 엄마의 마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도 엄마는 나를 막아서지 않았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파리테러, 그에 가려 언론에 조명되지 않았던 레바논 테러, 전 지구적충격과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인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극단적으로는 목숨이 위태로울 가능성마저 떠안아야 했던 그 곳, 그렇지만 나는 꼭 가고 싶었고 가야만 했다. 나에 대한 걱정으로 엄마가 느꼈을 두려움 따위는 역시 안중에 없었다. 그저 내 자아의 완성과 내신념에만 골몰했을 뿐이었다.레바논에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데에 대한 안도도 잠시, 나는 선택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방글라데시행 짐을 꾸렸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시골 마을 구석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비행기만 무려 다섯 대, 그렇게 꼬박 3일. 오가는 길조차 험난한 여정이었다.
먼 길을 떠나온 만큼이나 내 마음도 집으로부터 멀어졌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빠르게 적응하며 다른 의료진들, 환자들과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새롭게 마련된 내 복잡한 삶 속에, 타국에서 실습하는 딸 때문에 매순간을 노심초사하며 지낼 엄마에 대한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내가 참 많은 시간을 보냈던 분만실, 커튼으로 가려진 8개의 침대가 놓인 그 곳은 매우 분주했다. 산모 수에 비해 의사 수가 턱없이 모자라 특별한 문제가 없는 자연분만은 모두 조산사들의 몫이었고, 간호대 학생들이 이를 도왔다. 그러다보니 의대생인 내게도 한국에서 익숙해져 있던 ‘멀찌감치 참관하는’ 역할이 아닌, 보다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었다.첫 인사를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조산사들이 나를 찾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머리는 질끈 묶고, 여러 개의 장갑을 갈아 끼우며 바쁘게 움직였다. 오랜 진통의 기다림, 생명 탄생의 순간, 갓 태어난아기를 품에 안은 산모… 새로운 인격체가 세상의 빛을 보기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생의 첫 시작을 마주한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정신없이 분주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내게도 새 생명을 내 손으로 맞이할 첫 기회가 주어졌다. 산모의 가장 가까이에서, 온힘을 짜내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밀고 나오는 작은 생명체를 기다리는 시간. 산모와 아기,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분만실을 시끄럽게 채우던 산모들의 고통어린 신음과 비명, 갓 태어난 아기들의 울음소리, 의료진들끼리 다급히 지시사항을 주고받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새 생명을 기다리는 산모의 거친 숨소리, 산도 내에서 아기가 벌이고 있을 치열한 사투,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 긴장가득한 의지. 그게 전부였다.
서툰 방글라로 “조금 더!”, “힘을 주세요!”라는 말을 수없이 외치고 나서야 뱃속 아이는 열 달을 머물던 엄마의 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경험 많은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아기의 머리를 잡고 그 탄생의 완성을 도와 엄마에게 안겨주었다. 생명의 탄생은 고귀했고,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생의 출발을목도했다는 것, 그 과정에 두 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동원해도 표현해낼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 뜨거운 감격 앞에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나려 했다. 애써 평정심을 되찾아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태반을 꺼내고,산도의 열상을 조심스럽게 봉합해주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다 마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야 비로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탄생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흥분하느라 그 생명을 몸속에서 길러내고 빛을 보게 해준, 앞으로 긴시간 이 아이를 키우며 울고 웃을 엄마에게는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다. 치열한 고통의 과정을 이겨낸 후의 기진맥진한 표정, 그러나 한없이 평화로운 미소.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양극의 표정이 어우러져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모습은 어떤 화려한 배우들보다 아름다웠다. 그때 문득 그 얼굴에서 나는 내 엄마를 떠올리고 말았다. 방글라데시에 온 이후 처음이었다.
약 28년 전 한국의 어느 병원에서 나는 저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열 달간 한 몸으로 지낸, 그 순간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분리되어 이후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엄마에게서 멀어져 갈 나와 마주했을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달게 견뎌냈던 고통으로 낳은 딸이 당신의 품을 떠나 수없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말없이 지켜봐야 했던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28년의 세월 동안 쉼없이 엄마의 마음을 괴롭혀온, 그러면서도 ‘나’의 삶을 엄마가 존중하고 받아들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오로지 내 주장만을 내세워 온 그동안의 삶을, 나는, 낯선 나라에서 직접 아기를 내 손으로 받으며 민낯으로 마주했다. 부끄러움의 따가운 볕이 그 민낯 위로 쏟아졌다. 분만실 한켠에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몹시 미안했고 많이 감사했다.
그 후로 약 열 건의 분만을 더 내 손으로 진행했다. 이제는 아기와 산모뿐 아니라, 진통의 시작부터 출산을 마칠 때까지의 모든 과정 동안 산모들의 옆에서 물을 떠다 목을 축여주고, 손을 꼭 잡아주며 그들을 돌보는 산모들의 어머니들이 함께 보였다. 이제 막 엄마가 된 딸을 그 엄마는 대견하고 안쓰럽게 바라보며 보살펴주고있었다. ‘사랑’이라는 글자에 실체가 있다면 바로 ‘엄마’의 저런 모습이리라 싶었다.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다.” 그때 나도 모르게불쑥 흘러나온 한 마디.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내 사랑의 실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그냥 많이 보고 싶어.’


│대상소감│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올 8월은 참 뜨거웠습니다. 엄마가 고통과 기쁨으로 저를 낳았을 8월, 저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이 글을 낳았습니다. 짧은 글 안에 긴 시간을 담아내면서 이제까지 살아오며 겪고 느꼈던 참 많은 경험생각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 속의 저는 어렸고, 서툴렀고 그래서 아팠습니다. 아직도 깨닫고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더디게나마 성장을 하고, 조금이나마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인내와 사랑으로 기다려 준 엄마의 존재가, 기억을 꺼내어 글로 옮기는 시간 내내 머리와 가슴을 가득채워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혼자만의 기억 속에 넣어두었다가 점점 희미해질 뻔했던 기억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시고, 이 부족한 기록에 과분한 상으로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은 ‘제 6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한목적 외에도, 이번 제 생일날 엄마를 위한 선물로 준비한 것이기도합니다. 부모님 앞에만 서면 유난히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해지는저인지라 끝내 이 글을 엄마께 드리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수상 소식을 전하며 다시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글을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글만이 아니라 표정과 말투에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리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할 수 있는 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감성을 애써 억누르고 그 자리를 딱딱한 지식으로 채워야 했던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지내다가 핀 줄도 모르게 져버린 벚꽃을 보며 놀랐던 적도,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나무가 단풍나무였다는 사실을 낙엽이 다 지고 나서야 알았던 적도 있습니다. 병원이라는 현장에서치열하게 일을 해야 할 내년부터는 감성의 자리를 철저한 이성으로 대체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햇살을 노래하고,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환자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며 때때로 함께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당신,
“햄스트링 부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햄스트링은 우리말로 허벅지뒷근육/허벅지뒤힘줄로, 엉덩이부터 오금까지 이어지는 세 개의 근육을 통칭

하여 일컫는 말이다. 근육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공부해보고 나면 햄스트링이라는 근육이 무엇인지 알겠지만, 예과생은 햄스트링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햄스트링 부상은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최소 한번이상 들어볼 만큼 익숙한 말일 것이다. 햄스트링 부상은 축구선수들에게 가장 흔한 부상종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2016-2017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맨체스터 시티 vs FC바르셀로나 경기에서 경기 초반 호르디 알바 선수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초반에 교체되어 나가는 등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햄스트링 부상을 겪을 수 있으니 이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햄스트링 부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허벅지 뒤쪽 근육, 즉 햄스트링은 무릎을 접고 펴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근육이다. 따라서 방향 전환을 할 때나, 달리기 및 점프를 할 때 우리는 햄스트링 근육을 쓰게 되며 자주 쓸수록 근육은 강해진다. 하지만 이 때 강도가 과하여 근육 유연성의 한계를 넘을 때 햄스트링이 늘어나거나 혹은 파열된다. 갑자기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 일이 많은 야구와 축구, 육상 등 햄스트링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운동들이 햄스트링 부상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있고 실제로도 많은 선수들이 햄스트링 부상에 걸려 적게는 3주 많게는 몇 달 씩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갑작스럽게 운동을 하게 될 때 햄스트링 부상을 겪게 된다. 실제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5년간(2009년~2013년) ‘햄스트링 손상’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진료인원을 성별로 보았을 때 남성이 약 68%, 여성이 32% 정도로 남자의 진료인원이 두 배 가량 많았고, 또한 연령별로는 10대, 20대의 남성 진료인원이 전체의 27.8%를 차지하여 젊은 남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통해 가장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10대, 20대 남자에게 햄스트링 부상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다면?

근육이 늘어나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이라면 햄스트링 부위를 만졌을 때나 걸을 때 불편한 느낌과 작은 통증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운동을 당분간 자제하며 근육이 휴식을 취하면 자연 치유가 된다. 햄스트링이 한 개 이상 파열되면 부상 부위에 멍이 들며 다리를 쭉 펼 수 없으며 통증으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때는 6개월에서 1년 간의 재활을 요한다. 만약 햄스트링이 전부 파열된다면 극심한 고통과 더불어 부상 부위가 눈에 띄게 붓고 근육 기능의 상실로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햄스트링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 전 충분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국제 축구연맹(FIFA)과 FIFA 의료평가 및 연구센터(F-MARC)에서 ‘FIFA 11+’라는 부상방지 체조를 고안했다. 축구 경기 전 이 체조를 시행한 선수들은 일반적인 스트레칭을 한 선수들에 비해 부상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임상 결과가 있을 만큼 부상 예방 효과가 입증되었다. 자세한 동작과 순서는 FIFA 11+ 공식 홈페이지 및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에서 ‘Sportsinjuryprevent1’을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영상들을 참고해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여 부상을 당하지 않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하자.

 

 

 

하용현 기자/가천
<edm3895@naver.com>

몸을 위한 ‘다이어트’ 오히려 몸을 망칠수도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가 ‘스펙’이 된 현재, 다이어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현재 각광 받고 있는 무궁무진한 다이어트 방법을 통해, 남녀노소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을 뺀다. 하지만 현재 유행하는 다이어트 법은 과학적 입증이 완전히 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며, 실제로 위험성의 증거가 입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잘못된 지식과 제한된 정보로  몸을 가꾸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가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뜨거운 감자  ‘저탄고지’ 다이어트

 

2000년대 초반 ‘저탄수 고단백 식단’의 일종인 ‘황제 다이어트’는 이미 널리 알려진 다이어트 방법이다. 3대 영양소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며 그 자체가 체지방으로 전환되기 쉬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효과를 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단백질과 지방의 차이다. 현재 유행하는 LCHF(Low Carb High Fat)는 지난 십수 년간 널리 알려진 다른 ‘저탄수 다이어트’들과 달리 고단백이 아닌 고지방을 주장하는 것일까?
LCHF 다이어트 식단의 상당수가 ‘뇌전증 환자 처방식’을 변형시킨 결과로 보인다. 뇌전증 환자의 식단은 케톤체생성을 위한 것으로 ’저탄수, 저단백, 고지방’으로 조성된다. 즉, 포도당을 이용하는 뇌에게 탄수화물의 대사체인 포도당이 아닌 케톤체를 생성시킴으로써 평상시에도 공급시켜주는 것이다. 케톤체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인슐린 농도가 낮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저탄수-고지방식단’으로 마치 몸에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세브란스 병원 신경과에서 소아뇌전증환자 치료에 활용중이다.
이 ‘케톤생성 처방식’의 부작용이 체지방감소이기 때문에 애초에 체지방의 감량 의도로 이 식단이 활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식단은 마땅히 통일된 규격이 없는 미완의 다이어트식단이며, 과학적 정보에 대해서도 많이 노출된 것이 없다.

 

 

천연물질 다이어트약
설마 이것도 부작용이...?

 

많은 이들이 천연물질 다이어트라고 강조하며 광고하는 다이어트약에 현혹되기 쉽지만, 부작용만 두고 봤을 땐 화학 약물보다 독성이 강한 제품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DMAA라는 물질은 제라늄이라는 꽃 추출물에 함유된 성분인데,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독성이 강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열대식물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인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는 체내 지방 생성을 억제해 체중감량을 유도하고 뇌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이는 전문가가 많은데, 한 의료진은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는 급성 간부전의 유력한 원인이기 때문에, 허브 보충제에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며 경고했다. 또한 2009년에도 이 성분으로 만든 제품(하이드로컷)이 심각한 간 손상 등 잠재적 위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미국 식품 의약국(FDA)이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몇 해 전부터 이 성분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는데, 특히 2014년 39세의 여성은 살을 뺄 목적으로 이 성분을 먹고 식욕부진·오심·소화불량·피로·황달 등을 호소하다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간 손상이 의심돼 4주간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하였다.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마약성 식욕억제제

 

기본적으로 다이어트 약을 고려할 수 있는 경우는 체질량지수가 30 KG/M2을 넘는 경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증상이 있는 환자의 경우는 체질량지수가 27KG/M2 넘을 때 의사와 상담하여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평소 고혈압이 있거나 심장질환, 갑상선질환, 신경성식욕부진증이나 폭식증이 있는 식사 장애 환자는 다이어트약을 복용하면 안된다.
소위 식욕을 억제한다고 알려진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은 혈압상승과 변비, 불면증,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입마름, 식은땀 등의 부작용이 동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들에 이상이 생겨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폐동맥고혈압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폐동맥고혈압은 인구 100만 명당 2명 정도에게 발생할 정도로 희귀하지만 다이어트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까지 완치가 어려울뿐더러 임신을 하는 여성의 2명중 1명이 사망할 정도로 위험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병으로도 불린다.

 

적게 먹고 움직이는 것
가장 건강한 다이어트

 

시시콜콜하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음식섭취량을 줄이고,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골고루 먹되, 저녁시간에는 가급적 가볍게 먹으며, 가만히 있기보다는 적당량 운동을 해주는 것이 가장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가장 건강하게 자신의 몸을 가꿀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황현화 기자/서남
<sally919919@naver.com>

행사 소개

현대미술의 결정체 2016 광주 비엔날레

 

 

필자는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소풍을 가면 종종 광주비엔날레로 가고는 했고, 현재 필자의 기억에도 가장 뚜렷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뿐만 아니라 광주에서 자란 학생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가봤을 곳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지낸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할, 광주비엔날레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도부터 시작되었다.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한국 미술문화를 새롭게 도약시키고, 광주의 민주정신을 문화적 가치로 새롭게 승화시키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한다.본래 2년에 한 번 행사가 열리지만 1999년 제 3회 행사는 2000년으로 미뤄졌다. 세기 말보다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행사를 여는 것이 행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로는 별다른 변화 없이 짝수 해마다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2005년부터는 같은 재단 아래에서 디자인비엔날레가 홀수 해에 개최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행사로는 크게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발표와 교류의 장으로서 국제 미술 전시회, 미술문화와 미학적 가치의 담론을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한 국제 학술 행사, 그리고 전시를 뒷받침하면서 일반 관객의 문화 향유를 넓히기 위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로 구성된다.
2016 광주 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이다. ‘제8기후대(The 8th Climate)는 12세기 페르시아 철학자에 의해 착안되고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앙리 코르뱅 (Henri Corbin)에 의해 체계를 갖춘 용어로 상상의 세계(imaginal world)라는 개념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예술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탐구와 기대’가 전시주제의 의의이다. 이는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에 서술되어 있다. 전시주제에 해당하는 총 101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번 행사에서 관람할 수 있다.
2016 광주 비엔날레는 비엔날레전시관, 아시아문화전당,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의재미술관, 519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서 열린다. 9월 2일부터 11월 6일까지 휴관일 없이 66일에 걸쳐 진행된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도슨트 프로그램 또한 운영되는데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프로그램이 가장 빨리 시작하는 시각은 오전 10시이고 가장 늦게 시작하는 시각은 오후 4시 30분이다. 소요시간은 70~90분이다.
비엔날레티켓은 사전판매와 현장판매로 구매할 수 있는데 사전판매는 이미 종료되었다. 현장판매가격은 성인 14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이다.
예술작품에 평소 관심이 있거나 광주를 방문해보고 싶었던 분들은 이번 비엔날레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16 광주 비엔날레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http://www.gwangjubiennale.org/www/view/ 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전충재 기자/가천
<ccj0721@naver.com>

패럴림픽의 모든 것

113호/문화생활 2016. 11. 30. 23:33 Posted by mednews

패럴림픽의 모든 것

 

 

▷패럴림픽(paralympic)이란?

패럴림픽은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의 주최 하에 4년을 주기로 개최되는 신체 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이다. 그 명칭은 대회 창설 당시 하반신 마비를 의미하는 ‘paraplegia’와 ‘olympic’을 합성하여 만든 용어였으나, 신체가 불편한 모든 장애인이 참가하게 된 이후 현재는 그리스어의 전치사 ‘para’(옆의, 나란히)를 사용하여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됨을 의미하고 있다. 지난 9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8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 제 15회 리우패럴림픽대회가 열렸다. 패럴림픽에 대하여 파헤쳐 보자.

 

패럴림픽의 유래와 역사

신체장애자를 위한 스포츠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의료의 목적으로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880년대 영국에서 하지(下肢) 절단자가 의지(義肢)를 하고 스포츠 대회를 가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8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휠체어를 탄 상이군인들이 운동회를 가졌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조직화한 사람은 현재 런던 교외에 있는 스토크 맨더빌(Stoke Mandeville) 병원 국립 척수 손상 센터의 소장 루드윅 구트만(Ludwig Guttmann) 박사이다. 그는 1948년 양 하지 마비자를 위하여 처음으로 경기회를 열고, 1952년에 네덜란드의 양궁팀이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국제적인 척수 마비자 경기회로서 발전시켜 왔다. 1960년의 로마 올림픽이 끝난 직후 제1회 공식대회를 로마에서 개최하였다. 1972년 제4회 하이델베르크대회 때에는 참가 범위가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되었다. 1976년에는 스웨덴 외른셸스비크에서 제1회 동계패럴림픽이 열렸으며, 이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년마다 하계와 동계대회가 번갈아 개최되고 있다. 또한 1988년 서울패럴림픽 때부터는 올림픽이 폐막한 후 1달 정도 기간 내에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도시에서 하계 패럴림픽대회가 개최된다.

 

패럴림픽의 장애영역 구분.

 

패럴림픽의 장애영역

패럴림픽에서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장애영역을 6개로 구분하고 다시 각 장애영역별로 장애등급을 규정하고 있다. 종목에 따라 장애 정도를 구별하여 경기를 치른다.
청각 장애인과 발달 장애인은 패럴림픽에 출전하지 않으며, 청각 장애인은 데플림픽에, 발달 장애인은 스페셜 올림픽에 출전한다.

 

패럴림픽의 종목

경기 종목은 거의 모든 스포츠를 신체장애자가 참여할 수 있게 연구·개정하여 채택하고 있으며 이번 리우패럴림픽대회에서는 양궁, 육상, 보치아, 사이클, 승마, 5인제축구, 7인제축구, 골볼, 유도, 역도, 조정, 사격, 수영, 탁구, 좌식배구, 휠체어농구, 휠체어펜싱, 휠체어럭비, 휠체어테니스, 카누,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렸다. 이 중 특히 보치아와 골볼은 올림픽에는 없는 패럴림픽에만 있는 종목으로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종목일 수 있다.

 

보치아란?

보치아는 고대 그리스의 공 던지기 경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이후 로마 전역에서 성행하였다. 겨울 종목인 컬링과 유사한 경기로 감각과 집중력을 겨루는 경기이다.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이 참가할 수 있다. 경기는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다. 12.5m × 6m의 평평하고 매끄러운 바닥의 경기장에서 각 6개의 파란색, 빨간색 공을 가지고 매 회마다 흰색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던진 공에 대하여 1점을 부가하며 6회를 한 다음 점수를 합산하여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승리한다. 공을 던질 때는 코치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 스틱이나 홈통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골볼이란?

골볼은 1946년 실명한 퇴역 군인들의 재활을 위하여 고안된 장애인스포츠이다. 시각장애인들만이 참여하는 스포츠로, 3명의 선수가 직사각형의 마루코트에서 상대팀의 골대에 속에 방울이 들어있는 소리 나는 볼을 넣는 경기이다. 선수는 촉각을 이용해서 골대와 경기장라인에 들어있는 실을 통해 경기장 및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청각을 이용하여 볼의 위치를 파악하여 공격과 수비를 주고 받는 게임이다. 경기 시작 전에 선수는 관절보호를 위해 보호대를 착용하고 시각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경기가 시작해서 끝날 때 까지 모든 선수들은 눈가리개를 사용해야 한다. 계속되는 빠른 공수전환으로 인해서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비중 있는 엘리트 스포츠일 뿐 아니라 재활의 목적, 생활스포츠로써도 매우 중요하다.

 

올림픽정신과 평등정신이공존하는 패럴림픽

패럴림픽은 스포츠를 통해서 인종, 국가, 정치, 문화 및 이념을 초월하여 국가 간의 우정과 이해를 확인하고 인류의 화합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과 인간의 평등을 확인하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감동이 공존하는 대축제이다.
‘para’가 ‘옆의, 나란히’를 의미하고 있지만 여전히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동등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림픽 때에는 앞 다투어 경기를 중계하려던 방송사들도 패럴림픽 중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후원 역시 올림픽과 비교하면 저조하다. 다음 패럴림픽 때에는 내가 먼저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임경예 기자/가천
<kylim06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