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미래의 루시드 폴을 꿈★꾸다

2010 MBC 대학가요제 대상, 한림의대 이인세 인터뷰

지난 11월 26일 덕성여대에서 열린 ‘제 34회 2010 MBC 대학가요제’에는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자리인 만큼 댄스, 힙합,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독창적인 노래들이 출전했다. 화려한 곡들 중에서도 중앙무대에서 홀로 통기타 하나를 매고 잔잔한 선율과 감성적 가사로 ‘위드 유’를 노래하던 이인세는 단연 돋보였다. 곱상하고 준수한 외모도 빛을 보았다. 결국 압도적인 네티즌 지지율과 수준급의 자작곡이라는 평을 얻어내며 ‘대상’과 ‘네티즌 인기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영광을 얻었다.
꿈을 꾸기에 그리고 꿈을 품고 있기에 꿈을 노래하는 의대생. 한림대학교 본과 2학년 ‘이인세’를 만나보았다.

- 꽤 오래전부터 음악을 하셨다고. 대학 가요제 준비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곡은 올 여름방학 때 썼어요. 멜로디랑 편성 같은 게 거의 완성되어있는 상황에서 가사를 정말 많이 고민했죠. 가사까지 완벽하게 완성된 게 가요제 단 이틀 전이었으니까요. 음악은 고등학교 때 밴드활동을 하면서부터 계속 해왔는데 대학교 들어와서 곡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재즈 드럼 하시는 삼촌이 있는데 처음엔 그 분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렇게 곡을 조금씩 쓰면서 가요제 욕심도 생기고, 그러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가 나온 것 같아서 (대학가요제에) 나가게 됐죠. 어쩌다가 정말 재수 좋게 걸려가지고...(웃음)

- 학교에서는 ‘하루’라는 밴드로도 활동 하신다고요?
다들 저희 과 동기들이에요. 저랑 음악 스타일도 진짜 비슷한 친구들끼리 하는 밴드라서 보통 과 밴드랑 다르게 얽매이는 것도 없고 음악 장르 선택에도 폭이 더 넓어요. 대학로나 경희대, 고대 이런 데서 길거리공연도 많이 다니고요. 길거리 나가서 연습 겸 거리 공연을 하는 거예요. 저희들끼리 음악하면서 놀면서 틀리면 아 틀렸다 하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와서 즐겨주고. 공연이랄 것도 없는 공연을 즐기고. 그냥 즐기면서 끝나고 맥주한잔 하는 게 뒤풀이가 되고요.

- 본과생인데 학업하고 병행하는 데 힘들지 않나요?
제 생각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한림대가 방학도 길고 학기도 블록 강의라서 타 대학들에 비해 학생 편의를 좀 많이 봐 주는 것 같아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좋은 건가? 어쨌든 뭐 저는 좋긴 한데 블록 강의 이다 보니까요. 솔직히 시험 준비야 일주일 전에 하는 건 똑같잖아요. 아닌가?(웃음)

-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좀 걱정하실 것 같은데?
전적인 서포트는 아니고 조금 걱정을 하셨죠. 제가 워낙 집에서 고집도 센 편이라서요. 한번 한다고 한 이상 하지 마라하셔도 할걸 아시기 때문이었는지... 우려는 많이 하셨는데 말리진 않으셨어요. 그래도 부모님 걱정 덜어드리려고 작년엔 일부러 학습부 같은 것도 했어요. 부모님한테 공부랑 병행하는 것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요. 그래도 이번 가요제 나가는 거에 대해서는 많이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어쩌다 상까지 타고 가요제  끝나고 나니까 부모님께서 축하해주셨는데 ‘내일부터는 열심히 공부하렴~’ 하시더라고요.

- 부모님께선 본선 때 오셨나요?
부모님은 못 오 셨어요. 동생들이 좀 많아가지고요. 제 밑으로 중2짜리 남동생도 있고 그 밑에 초2짜리 여동생, 그 밑에 5살짜리 여동생. 그래서 투표를 많이 했나? 유치원, 초딩들, 중딩들 다 있잖아요.(웃음) 여기저기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고요. 싸이 클럽같은 데서 홍보도 하고. 선배들이 그러던데, 공보의 사이트에다가도 올렸다고. 그래서 인기상 받았나? 전국 의대생들이 투표해줘서?

- 합숙 훈련도 하면서 다른 출전자들이랑도 친해졌겠어요?
그렇게 큰 무대에, 지상파 방송에, 관객도 그렇게 많고 한 건 다들 처음이라 떨고 당연히 실수하고 프로가 아닌 이상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는 게 또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들어본 곡들은 정말 다 독창성이 강하고 가사도 새롭고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가끔가다 생각 없는 댓글들이 달리면, 물론 다들 저희끼리는 그냥 보고 웃고 넘어가요. 그런데 그래도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기분도 상하죠. 그렇게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준비해온 사람들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어요. 다들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게 참 보기 좋았고 저도 자극을 많이 받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거든요.

-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저는 사실 사연이 있는 진짜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에피톤 프로젝트 같은 그런 스타일이요. 특히 선인장이요. 어쿠스틱한 노래에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진지한 가사가 매력인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이번에 가요제 심사위원이셨던 정지찬씨 노래도 이번기회에 처음 알게 됐는데 참 좋은 것 같아요. 제 노래 들으시고 수정을 거치면 좋은 결과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제 음악을 좋게 평가해 주신 분이라면 그분 음악도 제가 좋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들어봤는데 딱 제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전곡을 다 듣고 다녔어요. 그 중에서도 ‘바다의 노래’를 참 좋아하고요.

- 네이버 프로필도 생기고 주변 반응이 뜨겁던데, 대상 탈 줄 아셨나요?
아뇨, 전혀 예상 못했어요. 상당히 감사하죠. 가사도 나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많은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요. 대학교 들어와서 사회에서 풋내기로 외로움을 노래한건데 많이들 좋아해주시니까 정말 감사해요. 곡을 쓴 사람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느낌이 전달 됐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거든요.

- 의대생이라서 받은 혜택 같은 거 있었을까요?
솔직히 없었다고는 얘기 못할 것 같아요. 언론사랑 인터뷰하고 그런 거 보면 ‘의대생’ 타이틀 같은 거 항상 붙이고.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싫거든요. 싫어하기보다 부담스럽다고 해야 되나? 다른 사람들 만날 때 ‘의대생’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래서 친구 소개받거나 할 때도 ‘야 의대생 얘기는 하지마라 차라리 잘생겼다는 빈말이라도 해줘라. 기타치고 노래하는 애라고 얘기해줘라’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가요제 PD분들께서도 ‘의대생’이 아니라 ‘한림대’생이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저는 진짜 좋았어요. 제가 가창력은 딸리더라도 제 곡에 담은 멜로디나 감정으로 정정당당하게 붙어보고 싶었거든요.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요.

- 방송 모니터 해 보셨어요? 어때요? 자기가 하는 거 보니까?
쪽팔려. 솔직히 노래를 많이 못했어요. 사실 원래 제가 막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니고 저는 원래 드러머였다 보니까 드럼이 편하거든요. 앉아가지고 뭐 멘트 할 것도 없고 그냥 박자만 잘 맞춰서 치면 되고 그니까요. 그리고 연주 때 제가 인이어 (이어폰)를 하려고 했었는데 당일 제 목소리 모니터가 잘 안됐어요. 음정이 좀 나간 MR을 들고 나간 것도 있고요. 어쨌든 뭐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아쉬운 마음도 들고 후련한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냥 뭐 음정 그래도 생각보단 덜 나갔네, 뭐 그래도 저 정도면 다행이다하는 후련함!

- 많이 떨리셨나 봐요.
제가 또 무대에서 이렇게 사람들 웃기고 막 주도해나가고 이런 체질이 아니에요. 막상 딱 나가니까 너무 떨리는 거에요. 중앙무대에서 보컬로서, 혼자서 그것도 배철수 선생님과 이효리씨 앞에서, 이효리(!)를 쳐다보면서 얘기해야 되는데 이게 안 떨리는 사람이... 진짜 그건 술 먹고 가야 되요.
 처음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정말 떨었어요. 막 여기도(가슴) 떨리고 막 긴장되고. ‘큰일났다. 이제 노래 불러야 되는데’ 그랬는데 마음을 미우고 마인드 컨트롤을 그렇게 하고 나니깐 다시 쿵쿵 하던 게 좀 잠잠해지더라고요.

- 수상소감 때 당당히 여자친구도 밝히셨는데?
사실 여자 친구가 너무 수고를 많이 해줘가지고요. 자기도 시험기간인데 현수막도 만들어주고. 그리고 지가 뭐 ‘부끄럽다’해도 은근히 뉘앙스가 살짝 한번 (카메라에) 잡히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절대 말하면 안 된다했어도 살짝 눈치 보니까 ‘에이그~ 내가 가서 얘기 해준다’ 이런거죠. (웃음) 상을 타면 그래도 고마운 사람한테 하는 얘기니까 진짜 고마워서 얘기 했어요. 제일 가까이에서 제일 많이 응원해주고 제일 홍보 많이 해주고 했던 사람이니까.

-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일단 목표는 높게 잡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크게는 ‘루시드 폴’이 목표에요. 공학박사라는 자기 전공하고 음악, 둘 다 병행한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학업이랑 병행하고 싶어요. 제가 의학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에 음악을 업으로 삼으면 나중에 ‘어떤 곡을 써야 뜰까’ 같은 고민하면서 주목받는 음악만 하게 될 거 같아요. 그건 정말 싫거든요. 졸업을 하고, 그래도 자격증 하나 있으면 그래도 응급실 알바를 하든,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을 거 아니에요.(웃음) 공부랑 병행하면서 음악으로 사람들과 공감하는 그런 게 제 꿈이에요.

문정민 기자/중앙
<moon_jm@e-mednews.com>

│의대 탐구생활│ - 시험기간 건강관리 편

의대생활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

아침 7시 반...ㅇㅇ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스르르 일어나요. 벽을 더듬으며 샤워실에 들어가 물 한바가지를 뒤집어 써야 정신이 깨요. 잠옷과 별반 다르지 않은 츄리닝과 후드티로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요. 간지상승 깔창구두, 라인생성 킬 힐은 포기한지 오래에요.  오직 삼디다스 슬리퍼만이 진리인거에요. 아침을 먹는 날은 가뭄에 콩 나는 듯해요.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서 전화할 때 마다 강조하는 아침이지만, 아침의 효용가치는 20분 길이의 잠보다 떨어져요. 비몽사몽한 상태로 맞는 수업시간이에요. 오늘도 ppt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넘어가고 교수님은 거기에 맞춰 랩을 하셔요. 교수님이 전달해주시는 정보의 양에 따라가지 못하는 내 한심한 필기속도를 보며, 다음번 방학 때는 반드시 손목근력 강화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해요.
폭풍 같은 수업시간이 지나가면 자습시간이에요. 엉덩이를 붙이면 무조건 책부터 펴요. 고 3때 늘어났다 잠시 줄어들었던 엉덩이 사이즈는 다시 늘어나고 있어요. 개강 초에 딱 맞았던 옷들은 왠지 모르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요. 방학동안 공들여 키워놓았던 근육조직이 지방조직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껴요.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해요. 옆에 앉은 친구는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아요. 저 자식은 고향집에서 보내준 원기만땅 집중력강화 보약을 먹은 것이 분명해요. 나도 다음에 집에 가면 엄마에게 보약한재 해달라고 졸라야겠어요.  

의대생활은 공부와 시험의 연속. 공부를 하다보면 앉아있을 수밖에 없고, 운동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해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는 체력싸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하는 것 못지않게 건강관리도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 의대생들은 어떤 식으로 건강을 관리를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의대생들의 건강관리

학습량이 많은 본과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일주일간 평균 며칠 운동합니까?”는 질문에 62%가 단, 하루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해 운동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있습니까?”는 질문에 62%가 있다고 답했고, 목, 허리, 머리 순으로 통증을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간 평균 며칠 아침을 먹습니까?”는 질문에 11%나 일주일 중 하루도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렇듯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는 자기 관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질까? 인턴, 레지던트와 같은 젊은 의사들이 호소하는 3대 질병은 가려움증, 무좀, 변비이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바쁜 병원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병인 것이다. 전문의가 되고 개업을 하고 나면 이러한 잔질병은 사라지지만, 직업병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이 많은 외과의사들에게 가장 흔한 질환은 주부습진이며, 치과의사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직업병이 목 디스크와 어깨통증이다. 안과 의사들은 유행성 결막염에 잘 걸리며, 피부과 의사들은 사마귀나 무좀 등의 피부병에 시달린다. 이렇듯 건강관리엔 차후가 없다. 지금 관리하는 습관을 들여놓지 않으면 나중에도 관리하기 힘들다. 

목 통증 관리법

장시간 긴장된 상태로 앉아 있어야하는 의대생들이 가장 많은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는 목과 허리였다. 목의 통증은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세와 심리적 긴장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의 통증은 어깨의 통증이나 두통으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최근엔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C자형으로 유지되어야할 목이 일자형이 되는 ‘거북목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때 허리와 가슴을 일자로 펴주면 자연스럽게 목이 C자형이 된다. 거북목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모니터의 높이가 너무 높거나 낮지 않게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 지나치게 목을 구부린 자세를 피하여야 하고, 수시로 목을 가볍게 운동시켜 주어야 한다. 잠을 잘 때에도 너무 딱딱하거나 높은 베개는 피하는 것이 좋다.

허리 통증 관리법

허리 통증을 예방하기 위해선,
첫째, 잠을 잘 때에는 방바닥이나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 좋으며, 푹신하여 허리가 푹 꺼지는 침대에 눕는 것은 좋지 않다.
둘째, 책상에 앉을 때에는 바른 자세를 가지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때 앉는 자세는 무릎이 고관절보다 약간 높게 하고 의자에 깊숙이 앉아 허리를 등받이에 기대야 하고 의자는 등받이가 13도 정도 뒤로 기울어 허리를 지탱해주는 것이 좋으며 바닥도 발뒤꿈치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이 허리에 도움이 된다. 책상은 팔꿈치 높이보다 약 5cm 정도 높고, 제도 책상처럼 몸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좋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나 방바닥에 앉는 자세는 허리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피해야한다.
셋째,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때에는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일어나 간단한 체조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해 주는 것이 좋다.
넷째, 집중적으로 운동을 할 때에는, 무거운 기구를 사용하는 운동, 장시간의 러닝머신, 허리를 굽혔다 펴는 복부 운동, 장시간 앉는 요가나 단전호흡, 허리 근육을 무리하게 흔드는 벨트 마사지기 사용, 축구 농구 등산과 같은 과격한 운동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체중관리를 위한 식사법

첫째, 식사는 가급적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야 한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자신이 배가 부르다는 사실을 인지를 못한 상태에서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에 천천히 음식을 먹을 때 보다 더 많은 양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지방의 함유량이 적은 음식위주로 먹는다. 셋째, 야식이나 간식은 가급적 먹지 않는다. 넷째, 하루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체중을 관리한다고 무조건 굶는 경우도 있는데 무조건 굶는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한 끼를 굶으면 다음 음식을 섭취할 때 신체가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굶는 것 보다는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좋고 잠자기 4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는 것이 체중관리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공부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

장시간 앉아 있다 보면 혈액순환 감소로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때는 알칼리 성분이 많은 다시마, 김이 좋다. 기억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보리, 콩, 달걀, 시금치, 돼지고기, 깨, 땅콩, 잡곡밥과 같은 비타민B가 함유된 음식이 효과적이다. 시험을 앞두고 초조하거나 긴장이 심할 경우 비타민 C가 함유된 파프리카 수프를 먹거나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잦은 스트레스와 긴장에 의한 변비는 집중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변비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잠자기 전 따듯한 우유 한 컵을 마시거나, 흰쌀밥보다 현미밥, 그리고 과일이나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해 장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29@e-mednews.com>

소주는 다 똑같다고요?

전국 10종의 소주 블라인드 테스트
5가지 항목으로 직접 비교... 과연 그 결과는

동아리 선후배,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소주이다. 소주 한 잔의 씁쓸하고도 부드러운 목넘김 후에 온몸을 휘감는 따듯한 기운은 모든 이에게 항상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이렇듯 만인의 친구인 소주이지만 정작 소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혹시 음식점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 아무것이나 괜찮다고 말하지는 않는지.

소주는 세 번 고아 내린다는 뜻의 소(燒)와 진한 술이라는 뜻의 주(酒)가 결합된 한자어로 기원전 3000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족에 의해 처음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류를 발효시키기만 하는 맥주나 동동주와는 달리 발효시킨 후 증류하는 것이 소주의 특징이다. 현재 시중에 대량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는 소주는 발효시켜 증류를 시키는 전통소주와는 달리 대부분이 에탄올을 희석시킨 희석식 소주이다.

지금 한국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는 소주는 약 10여종으로 지역별로 마시는 소주의 종류가 다르다. ‘처음처럼, 참이슬’은 수도권지역에서 주로 판매되고 ‘C1’은 부산, ‘참소주’는 대구, ‘화이트’는 경남, ‘산’은 강원도, ‘하이트’는 전라북도, ‘잎새주’는 전남, ‘한라산’은 제주도, ‘O2린’은 대전에서 주로 판매된다. 이렇게 많은 종류로 판매되는 소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호만 다를 뿐 소주의 맛이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용하는 물, 첨가물, 공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 맛과 느낌은 모두 다르고 각각의 특징이 있다.

소주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따지자면 일단 구성성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다. 각 소주는 모두 만들어지는 지역에 있는 수질이 우수한 물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처럼’과 ‘산’은 대관령 기슭 청정 암반수를 사용하고 있고 ‘C1’은 부산의 해양심층수, ‘잎새주’는 방울샘의 천연암반수, ‘한라산’은 제주도의 천연암반수, ‘화이트’는 지리산 천연암반수를 사용하고 있다. 사용되는 물만큼 공법에서도 각 소주별로 차이를 보인다. ‘참이슬’은 대나무 활성 숯을 사용한 공법, ‘처음처럼’은 알칼리 환원공법, ‘C1’은 음향진동 숙성공법을 사용하는 등 각각 독특한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첨가물에서도 소주마다 차이가 있다. ‘02린’에는 다른 소주에 비해 산소가 3배나 많고 ‘참, 하이트’에는 자일리톨과 아스파라긴, ‘화이트’에는 아스파라긴, 알라닌, 글리신등의 아미노산이 그리고 ‘잎새주’에는 메이플시럽이 첨가되어있다.

이렇게 많은 차이를 가지는 소주 각각의 맛을 평가하기 위해 의대생 신문사 기자 4명과 연세대 의예과 재학생 3명의 도움을 얻어 소주 블라인드테스트를 해 보았다. 블라인드테스트는 총 10종의 소주(참소주, 처음처럼, C1, 참이슬, 산, 화이트, 하이트, 한라산, 잎새주, O2린) 5개의 평가항목인 향, 첫맛, 끝맛, 목넘김, 당도를 각각 5점 만점으로 평가하였다. 참이슬과 같이 여러 가지 도수로 나와있는 소주의 경우 대부분의 소주가 택하고 있는 19.8도에 가까운 도수로 출시된 것을 택하였다.


향은 큰 차이 보이지 않아

10종의 소주가 향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미세한 강약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에틸 알코올의 냄새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 또 테스트의 특성상 10잔을 내리 마셔야 했기 때문에 갈수록 향이 역해지는 오차를 피하기 힘들었다.
 
첫 맛이 부드러운 ‘처음처럼’

소주의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맛일 것이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판매를 올리고 있는 ‘참이슬’, ‘처음처럼’의 경우 부드러운 첫 맛을 가지고 있어 부담 없는 느낌을 주었다.
반면 지역 소주인 ‘참소주, C1, 화이트’는 다른 소주에 비해 첫맛이 강해 쓰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한라산’은 21도의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첫맛이 부드러운 편으로 도수와 첫 맛이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단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린’

당도의 경우도 소주마다 크게 차이가 없어 평가가 힘들었지만, 평가자들이 충분히 느낄 만큼의 미세한 차이는 존재했다. 공통적으로 당도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소주는 대전에서 주로 판매되는 ‘린’이었고, 그 뒤를 한라산, 잎새주 등이 이었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잎새주’

다른 음료와 술을 마실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목넘김. 목넘김이 어떤 가에 따라 그 술을 얼마나 마실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드러운 목넘김을 자랑한 소주는 메이플 시럽을 첨가한 ‘잎새주’와 첫 맛이 부드러웠던 ‘처음처럼’이 꼽혔다. 반면 목넘김에서 역함이 가장 심했던 소주는 ‘산’이 꼽혔다.

끝 맛이 깔끔한 ‘한라산’

목넘김이 끝나고 입 안에 남아이는 뒷 여운은 ‘잎새주’와 ‘한라산’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 뒤를 전국구 소주인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뒤를 이었다. 반면에 끝 맛에서 나쁜 점수를 받은 소주는 ‘산’과 ‘참소주’로 두 소주의 경우 다른 항목에서도 고루 낮은 점수를 받은 특징이 있었다.

종합 점수 1위는 ‘참이슬’

다섯 가지 항목의 점수를 6명의 참가자가 모두 합산한 결과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소주는 ‘참이슬’인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참가자에게 고루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소주가 된 이유.
그 뒤를 잇는 소주로는 가장 높은 도수를 자랑하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맛을 지닌 ‘한라산’과 메이플 시럽의 영향인지 각 항목별로 고루 부드러운 맛을 지닌 ‘잎새주’가 뒤를 이었다. 참가자 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으나 ‘처음처럼’ 역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에 종합점수가 가장 낮았던 소주는 대구의 ‘참소주’와 ‘화이트’였다.

블라인드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첫 잔으로 ‘참이슬’을 마셨을 때 소주도 음미할 만 한 술이라고 입을 모았고 ‘산’을 마실 때는 대구지역 기자 한 명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맛”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처음처럼’과 ‘참이슬’이 전체 성적이 우수한 편으로 평가되자 우리가 서울지역에 주로 있으니까 서울지역 소주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 평가가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블라인드테스트가 끝나고 술을 여러 종류 마셔서 그런지 속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블라인드테스트에서 최고로 뽑힌 소주와 최악으로 뽑힌 소주는 평가자마다 달랐는데 본 기자가 뽑았던 최고의 소주는 ‘C1’이었다. 기자의 고향인 부산의 대표소주인 ‘C1’은 첫맛이 강하지만 목넘김은 부드럽고 얼리게 되면 그 첫맛마저 깔끔하게 변하고 물회와 같은 해산물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한 평가자는 ‘C1’을 그냥 알코올이라고 말하며 최악의 소주로 평가했다. 사실 모든 음식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 소주에 대한 취향도 제각각이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분명 자신에게 맞는 소주가 있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아무 소주나 찾을 것이 아니라 소주의 맛을 음미해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소주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현도 기자/연세
  <loverboy@e-mednews.com>

술! 꿀맛나게 마시는 방법

연말이다. 곧 크리스마스라고 거리에선 온갖 캐럴이 들려오고 작디 작은 전구가 간신히 빛을 내며 아련히 반짝이고 있다. 이쯤 되면 첫사랑의 추억도 떠오르고 엄마도 보고 싶고 이번 학기 성적도 떠오르고 훈훈한 선배얼굴도 떠오르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렇게 온갖 것들 떠올리다 보니 마지막엔 술도 떠오르더라. 하지만 지난 2010년 동안 허구헌날 동아리 모임이니 동네친구 모임이니 하여 먹던 술 -소주, 맥주, 기껏해야 막걸리- 만 진창 마셔대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물론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의대생의 본분이겠지만, 가끔 새롭고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너와 나의 애정의 기본조건이 아니겠는가. 이에 필자, 최근 떠오르고 있는 힙하고 트렌디한 엣지있는 폭탄주 제조법 소개하려 한다. 무식하게 소맥에 밥 말아 먹는 게 털털하다고 우기진 말자.

1. 비타민주
☞ 제조법 : 비타민 워터(2) + 소주(1)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무지개 색깔을 자랑하며 다양한 맛을 뽐내는 비타민워터가 있다. 평소엔 밍밍한 맛으로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 비타민 워터와 소주를 2:1로 섞어 마시자. 소주 냄새 안 나는 상큼한 기분의 새로운 주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비타민을 섭취하고 있는 기분이라 몸도 보강되는 착각을 일으킨다. 기존의 과일소주에 질렸던 여성분들에게 추천 !     

2. 에메랄드주
☞ 제조법 : 파워에이드(1) + 소주 or 양주(1) + 맥주(1)
색깔은 오묘하고 맛은 환상적이다. 몇 잔 들이킨 후 술잔을 보고 있으면 ‘어?, 내가 언제 몰디브의 바닷가로 왔었지’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뭐 과장하자면 말이다. 아무튼 저렴한 가격으로도 칵테일 못지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것 이 바로 이 에메랄드주다. 에메랄드주에 질려갈 때 쯤 파워에이드를 게토레이로 바꿔 토파즈주를 즐길수 있는게 포인트.

3. 탄산막걸리
☞ 제조법 : 막걸리(1) + 사이다(1)

제법 이 유명한 탄산 막걸리주는 필자가 아껴 마지않는 술 중 하나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젊은이들 사이에 큰 유행을 타고 있는 막걸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안주와의 궁합이 아닐까 싶다. 뜨끈한 두부김치와도, 달콤한 부추전과도 그리고 얼큰한 버섯전골과도 풍요롭게 어울리는 미덕을 자랑하는 막걸리에 적당한 탄산을 넣어주면 질리지 않고 흥겹게 마실 구 있게 된다. 눈 펑펑 오는 날 따듯한 전통술집에서 시도해 보자.
 지금까지 소개된 술들이 폭탄주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 지속되는 연말 연초의 술자리에 여러분의 소중한 간을 보호하기 위해선 회오리주 타이타닉주의 무시무시한 술보단 이러한 상큼한 술이 좋지 아니하겠는가! 아무쪼록 다정한 연인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2010년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길 바라며...

김지은 기자/가톨릭
<jieunapple@e-mednews.com>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찌감치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밤거리에는 손 꼭 잡고 체온을 나누는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사랑을 나누기 좋은 계절, 기자가 손 가는대로 써내려가 본 지극히 주관적인 우리들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

“난 CC는 안 해!”
큰소리치더니 결국엔...

시간 많고 연애하고픈 의욕에 불타는 그들 이름은 예과생. 여유가 넘치는 예과생들은 미팅과 소개팅에 얼굴을 내밀어 옆구리를 든든하게 해 줄 사람을 찾는다. 외부인과 사귀면 능력있는 것처럼 보는 통념 때문인지, 대부분은 “CC는 안 할거야!”라는 각오 하에 임한다. 그 결과 대부분은 성과를 맺게 되는 듯하다. 남은 것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뿐.

그러나 예과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가. 본과생이 되고, 예과시절의 핑크빛 꿈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은 순식간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빡빡하게 이어지는 수업과 실습. 무엇보다도 시험. 부족하기만 한 수면시간. 여유시간이 생기면 사람 북적이는 곳에 나가 데이트하기보다는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둘의 관계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트러블이 생겨도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다보니 원만히 풀지 못하게 될 때도 많다. 이렇게 저렇게 투닥거리다가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관계 유지에는 상대방의 이해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연애, 사랑하는 사람,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생존하고 봐야 할 것 아닌가.

CC, 다시보니 참 괜찮더라

이렇게 의대생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과 만나며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스치는 생각. ‘역시 CC가 답이구나.’ 예과 때까지 없던 CC가 본과 올라가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하더라는 것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의지되고 말도 통하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비교적 빨리 안정적인 관계로 자리잡는다.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다. 학생 커플의 특권이라면 특권인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공부하기’도 해보고. 수업들을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만 등교를 해야 할 강력한 동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어쨌든 연애 하고 있으니, 좋을 수밖에.

마냥 좋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CC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매일 만나는 것이 반드시 연인관계를 발전시키지는 않는 법. 다른 커플들은 데이트할 땐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만나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데, 상대가 CC라면 아무래도 어렵다. 기대되고 설레기보다는 편안하고 일상적이며 밥 먹자며 나와서 김밥천국으로 향하게 된다. 연애의 공간이 동기들 모두와 함께 있는 교실이 되는 것도 부담이 된다. 동기들이 둘의 관계에 본인들보다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어제 둘이 싸웠어? 어째 분위기가 싸하네.), 떨어져 앉는 날이면 어김없이 참견하고(왜 오늘은 같이 안 앉아?). 뭐라 대꾸하기도 난감한 말까지.(이제 둘이 결혼해버려~)
사귈 때는 둘이서 행복한데, 저런 것쯤이야. 그까짓거 참아주면 된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부터 더한 어려움이 속출한다. 의대의 특성상 최소 6년의 시간을 매일 만나야 한다. 마주치기만 하는 정도면 다행. 공연 연습 같이하기, 참 난감하다. 실습 때 같은 조가 되는 상상, 심히 두렵다. 그것은 본인들에게도 두려운 일이지만, 나머지의 조원들에게 더 큰 공포일 것이다. 역시 헤어진 후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은가 싶다.
그렇다면 CC현황은

CC의 수는 한 학교마다 학번마다 차이가 나타났다. 하지만 대체적 경향성은 있었으니, 정리해보면 이렇다. 서울 밖에 소재한 대학의 경우 대부분 ‘마음에 드는’ 외부인을 만나기 어렵고 대부분 학생들이 자취나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가까워질 기회가 많으므로 CC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인 관계이고 둘 다 자취를 하고 있다 해도 의대 내 소문의 확산속도를 잘 아는 의대생들은 동거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예과와 본과가 분리되어있는 학교의 경우 예과1학년과 2학년사이의 CC가 많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좀 더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학부를 다니는 동안 사귀던 관계를 유지하거나 대학원 입학 대비 학원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다 보니 학부생들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으로 보인다.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

시간이 흐를수록 homogeneous(균질, 동일)해져 가는 우리들. 하지만 남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heterogeneous한 의대생들도 강의실에 존재합니다. 2010년, 의대생 신문이 6회에 걸쳐 빼어난(秀) 재능과 남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을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름하여 수(秀)상한 의대생! 그들의 생각의 좌표를 함께 따라가 봅시다.

의대생, 꿈을 향해 떠나다

본과 2학년에 자퇴하고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김한샘씨

누구도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재미있고 보람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느새 부턴가 주입식 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에 익숙해지며, 꿈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지 않을까. 순천향대 의대를 다니다가, 2008년 자신의 꿈을 찾아 미술로 진로를 바꾼 김한샘 군을 만나보았다.

Q. 의대를 다니다가 미대로 진로를 바꾸셨는데 원래 미술 쪽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A. 그림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일상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의자를 설명해 주실 때도 “이건 의자야”하고 그림을 그려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림 그리기가 제게는 그냥 낙서하듯 생각됐었고, 그런 식으로 하니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다만 만화가 하고 싶다, 디자인을 하고 싶다하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학원을 다녀보긴 했지만, 매일 똑같은 데생만 하는데 별 흥미를 못 느껴 그만 다니게 됐어요.

Q. 의대에 오기 전에는 미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셨나요?
A. 일단 이과체질이었어요. 암기과목을 싫어했죠.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는데, 이 과목들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분야라곤 건축밖에 없더군요. 실제로 수능을 보고 건축과에 지원하였고, 거기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니 의대에 가는 게 나중에 내 여가생활을 하는데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의사라는 게 안정적인 직업이니까요. 집안 분위기도 있었기에, 추가모집에 지원하여 의대에 가게 됐어요. 집에서는 물론 엄청 좋아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욕심을 부린 거였죠. 

Q. 의대생활은 어떠셨나요?
A. 해부는 재미있었어요. 머릿속으로 공간을 그리는 게 좋더라구요. 하지만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어요. 최소한의 것만 하면서 올라가니까 어떻게든 진급은 하지만, 임상에서는 버거웠죠.
음악 활동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일회성 여가를 좋아하지 않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의대생활 중 거의 80%정도가 음악활동이었어요. 나중에 의대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왜 음대가 아니고 미대를 가냐”고 했을 정도였죠.
연주를 하고 협연을 하며 외부로도 많이 나갔어요. 다른 모임이나 커뮤니티 같은 것도 알고, 연주동영상도 올리고 작은 연주회 때 편곡해서 연주도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음악이랑 깊어지고, 클래식아마추어들 음악을 녹음해주고 음반까지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그런 사람들이랑 친해졌어요. 미술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음반케이스 디자인도 도와주고 했죠. 그때가 본과 2학년이었어요.

Q. 의대 생활에 회의가 많으셨나 봅니다.
A. 의대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과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이랄까요? 그걸 의대에 들어와서 느꼈어요. 사람들하고도 많이 친해지고 편하니까 서로 상처도 덜 주게 되고 그런 점이 좋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음악 활동을 할 바에는 제대로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하거나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대나 음대로 진학한 후배들을 보면서도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본과 2학년 여름 때 만난 고등학교 후배가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해서 대학교에 갔다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보니 “나 정도 그리면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요. 게다가 기타를 잘 치던 후배가 비실기 전형으로 시각디자인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때 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인턴이 한 분 있는데, 진짜 바쁜데도 주말에 시간을 내서 연주하러 오시더라구요. 심지에 정읍에 파견 나갔을 때도 시간 내서 오고 말이죠. 어떤 분은 의사를 천직으로 삼아서 연주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Q. 그러다 결국 미대로 진로를 바꾸셨군요.
A.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하다보니 중학교 때 한창 많이 들었던 노래에서 받았던 느낌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냥 같이 공감해주고 감정을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니까 취미로는 안 되는 거예요.
2학년이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앨범 디자인을 도와주던 와중에 통보를 받았어요. 진작 가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대를 다닌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의대에서 배운 것도 많고 말이죠.

Q. 음악 활동도 많이 하셨는데, 굳이 미술로 가신 이유가 있나요?
A. 그쪽 세계를 너무 잘 알아서라고 할까요. 학벌도 많이 따지고 또 음악을 하려면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죠. 무엇보다 음악은 음정, 박자가 정확해야 하니까 제 느낌을 실을 수가 없다는 게 저랑 안 맞았던 거 같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미술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또 저는 저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의 미술을 더 인정한다는 거에서 타협을 한 것도 있죠.

Q. 주위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A. 주위에서 음악 하시던 분들이 제가 가장 믿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분들이 오히려 반대를 하셨죠. 그냥 의사하라고, 왜 취미로 못하냐고 말이죠. 의대친구들은 성적 때문에 도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죠.
아버지가 부전공으로 성악을 하셨고, 어머니도 피아노를 배우셨기에 부모님이 이해는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인정은 안하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차라리 의사면허를 따고 하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 학생 신분에서 하지 않으면 못 할 것 같았어요. 왠지 그때 하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치게 될 거 같았어요.
오케스트라 선배님 딱 한 분만 지금 아니면 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지금 나가는 게 맞다고 하셨어요. 그 선배님도 선화예중을 나와 의대로 오셨었거든요.  

Q. 미대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A. 무슨 과를 가든 1학년 때가 제일 좋잖아요? 1학년에 입학했을 때는 꽃밭이었죠. 앞으로 갈 길에 대한 부담도 없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니까. 조그만 전시회도 열고 이것저것 낙서 같은 것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보냈어요.

Q. 후회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A. 어렸을 때는 삶이 영화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뭔가를 하려면 이정도 쯤은 해야겠다는 생각? 그런데 의대에 들어가 지내면서 느낀 게 오히려 영화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아는 후배가 본과 2학년 때 사진이랑 미대 합격 후 사진을 보면서 “너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얼굴이 없어졌다고요. 어떤 사람은 “거기 가면 삶이 좋을 거 같냐? 그쪽도 힘들고 밤 새우는 건 똑같을 텐데”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돈을 벌려고 간 것도 아니고 핑크빛 미래를 바래서 간 것도 아니기에 요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고 간다고 생각했어요.

Q.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처음에 의대를 그만 둘 때는 부정적 입장이었어요. 왜 사람들은 안정을 찾으면서 성공에 연연해하면서 자기 꿈은 버려둔 채 살아갈까? 그런데 사람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있고 그게 다 다르듯이 정답은 없는 거 같아요. 정말 내가 가장 하고자 하는 게 뭐고 원하는 가치가 뭔지 한번 생각해보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듯이 내가 어떤 걸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거 아닐까요? 어디로 가든 내가 가는 목표를 쫓아가는 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염승돈 기자/인하
<youmsd@e-mednews.com>
김지은 기자/가톨릭
<jieunapple@epmednews.com>

앞만 보고 달려간 세균학자 ‘닥터 노구치’, 그의 숨겨진 이야기

‘Impossible is nothing’
이것은 한 스포츠 용품회사의 유명한 광고어구이다. 이 광고의 어구처럼 정말로 불가능을 뛰어넘은 한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있다. 바로 일본의 유명한 미생물학자인 노구찌 히데요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담아낸 무츠 도시유키의 작품 ‘닥터 노구찌’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사들은 물론 세계적으로 많다. 하지만 닥터 노구찌가 더 눈에 띄는 이유는 그가 어렸을 때 왼손에 화상을 입어 평생 달고 다닌 조막손(손가락이 없어지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때문이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더러 매 끼니 해결조차 힘든 정도 였다. 공부도 못하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아서 매번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구박만 받던 노구찌는 공부를 잘하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돈이 없어 책을 살 수 없었지만 졸업생들이 버린 책들 조각을 모아서 자신의 책을 만드는 열정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노구찌는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성금으로 손 수술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되려면 체육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부이식이 불가능 했던 당시 의술의 한계로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구찌는 교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 노구찌는 자신의 손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당시의 의술에 대한 원망, 의술이 발달하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앞장서서 의학을 바꿔놓겠다는 생각과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환자가 돈이 없더라도 꼭 치료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의사의 길

당시 의사가 되려면 ‘제대’라는 곳에 입학하면 졸업 후 바로 의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재력이 어느 정도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나 가능한 경우였고, 일반인의 경우 10년 정도 걸리는 전기와 후기 시험 모두를 통과해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구찌는 전기?후기 시험을 각각 1년만에 통과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된 노구찌는 후에 개원을 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순천당 의원(현재 순천당 대학 부속병원)에서 의학서 번역과 논문 제출과 같은 일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였지만 주변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조막손 때문에 환자의 신뢰에 대한 문제가 생겨서 개원의가 되는데에는 문제가 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지고 좌절하게 된다.
세균학에 대한 연구 시작,
끝없는 열정, 그리고 인정

좌절에 빠져 있던 노구찌는 어느날 외국 의학서에 당시 일본 기초의학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세균학자 키타사토 시바사부로를 접하게 되고, 세균학분야에는 자신의 손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세균학쪽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키타사토 연구소의 조수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닥터 노구찌의 세균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그는 일본을 넘어 더 넓은 미국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 그곳까지 이르는 동안 그는 일본에서는 제대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에서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무시를 당한다. 물론 처음에는 좌절을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마음을 잡고 연구에 몰두를 한다.
노구찌는 미국에서 미역사상 최고의 부자라 여겨지는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되어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그는 사독에 대해 연구를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매독’에 대해서 연구를 하던 동료가 매독에 걸린 것을 보고 자신도 매독연구의 최전방에 서서 연구를 하기로 다짐한다. 많은 실패를 겪지만, 결국에는 매독의 원인균인 스피로헤타의 순수 배양에 성공을 해 매독의 원인균을 확실하게 하고 이에 대한 백신?치료약 개발이 용이해지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노구찌는 세계최초로 뇌 조직 내의 스피로헤타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으로 노구찌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어 각종 유명 학회의 초청을 받게 되고, 그동안 무시만 해왔던 일본 의학회에서도 노구찌에게 일본에 와서 의학 발전에 힘써달라는 부탁도 받게 된다.

목숨을 바친 연구

당시 남미에는 황열병(고열 때문에 간장이 망가지고 황달이 나타나는 병. 심해지면 사망에 이르기도 함)이 번졌는데, 여러 의사들이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하러 남미로 떠났다. 하지만 이 의료진들마저 황열병에 걸려 죽게 되자 모두 이곳에서 연구하기를 꺼려했다. 그렇지만 노구찌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에스파냐 현지에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의 결과로 황열병의 원인도 알아내고 그에 대한 백신도 만들어 내어서 황열병은 완벽히 치료 가능한듯 했다. 그래서 그는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하지만 그의 백신이 완벽하지 않음이 들어남과 동시에 그는 노벨상 후보에서도 탈락되었다. 그 후에도 ‘노구찌 백신’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정되자, 노구찌는 처음부터 다시 백신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열정도 병을 이길 수 없었는지, 노구찌가 황열병이 심하게 번진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연구를 하는 도중에 자신이 황열병에 걸려 죽게된다.

노구찌 히데요의 양면성.
‘훌륭한 위인’vs‘반인륜적 인물’

평생 동안 의학발전을 위해서 위험하더라도 직접 발벗고 나서 연구를 해왔던 닥터 노구찌. 일본 내에서는 2004년 1000엔 지폐 발행 때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갔을 정도로 그는 일본 내에서는 높게 평가 받는 위인 중 한 사람이다.
이 만화에서 노구찌는 가난과 장애를 딛고 의학발전에 힘쓴 훌륭한 위인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자국인인 일본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인 탓인지, 노구찌 히데요라는 인물의 양면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실제로 노구찌는 평생동안 수많은 연구를 하였다. 하지만 현재 의학 발전으로 비춰 본 그의 업적은 단지 ‘스피로헤타 순수 배양’ 이것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잘못 연구된 결과로 여겨진다. 한 예를 들면, 광견병이나 황열병의 병원체는 당시 아직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는데 노구치는 이들 질병도 마치 다른 세균감염에 의한 것처럼 “병원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후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노구치의 주장은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그의 진실성과 양심까지도 의심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병원체를 발견했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대부분 틀린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이러한 거짓 연구들은 착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날조된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 과학계에서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평가받고 있고 그가 쓴 논문들은 제대로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노구찌는 만화에서도 조금 비춰지지만, 거의 결혼까지 하려했던 연인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버리는 모습도 나오고 계속 자신을 뒷바라지 해주었던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 배신하는 장면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노구찌의 매독실험 뒤에는 엄청난 사실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400명의 환자나 고아 정신병환자들에게 매독균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마루타’ 실험을 그는 매독치료를 위해 했던 것이다. 그래서 1000엔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비록 지금은 그리 높게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바쳐온 의학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된다. 또 이 만화책이 총 9권이라는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 양이기에 모든 의대생들에게 추천해본다.

김영태 수습기자/원광
<funky@e-mednews.com>

학교별 장학제도, 어떻게 다를까

2010년 9월에 발간된 ‘2009대학 공시정보 분석 자료집’을 보면, 의학계열의 연간 등록금은 911만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며, 계열별 학생 1인당 장학금을 살펴보면 의학계열이 163만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국 43개나 되는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은  서로 다른 등록금과 장학제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단순한 평균치는 의미가 크지 않다. 

각 학교 장학제도를 살펴보면,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성적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장학금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상위 일정 퍼센트에게 성적별로 차등지급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U 의과대학의 경우는 등수가 아닌 학점별 차등지급 방식의 장학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평점 3.5이상 시 전액장학금은, 3.0 이상 시 70%의 장학금을, 2.5이상 시 50%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성적 장학금 외에도 다른 다양한 다른 기준으로 지급되는 장학금도 있었다. C의과대학은 과의 대표를 맡을 경우 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생회장은 등록금의 65%, 학생회 부장은 35%의 장학금을 받는 제도가 있고, U의과 대학은 학생회장이나 부회장의 평점이 2.5 이상인 조건으로 등록금을 면제하는 장학제도가 있는 등 학생 대표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있었다.  K의과대학은 생활보호 장학금이나 C대학교의 기초생활수급자 장학금 형편을 고려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들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D대학교의 형제가 같이 입학했을 시 일정액을 감면하는 가족장학금이나, C대학교의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 장학금 등 각 학교만의 특수한 장학금 등이 있었다. 
 
이러한 장학금의 명칭이나 지급기준의 성격보다 확연히 차이나는 부분은 등록금 대비 장학금의 비율인 장학금 지급율이다. 우선 장학금 지급율이 제일 높은 학교는 c의학전문대학원으로 학생전원에게 전액장학금을 지급한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전 학년에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유능한 학생 선발과,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라는 설립자의 이념 때문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S 의과대학은 입학 장학금의 개념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능성적이나, 대회 수상 등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면, 평점 2.8을 넘을 때 12학기 동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S의학전문대학원은 평점이 2.8이상인 조건으로 전원이 50%의 장학금을 받고 있고(2학년 기준), Y의학전문대학원은 학생전원에게 30%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2학년 기준), C의학전문대학원은 학생전원에게 2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이렇듯 장학금 지급율이 100%이거나, 100%에 가까운 학교도 있고, 60%인 G의학전문대학원이나, 39%의 장학금 지급율을 가진 I 의학전문대학원이나, 32%인 Y의학전문대학원, 30%인 CA의학전문대학원, 이나 CH의과대학처럼 장학금 지급율이 높은 학교들도 있는 반면, 10%에도 못 미치는 곳도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낮은 장학금 지급율은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도입하면서 대다수의 대학들이 많게는 3배까지 등록금을 올렸으나,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21%로 낮았다(2009년 9월 기준). 이는 전문대학원 정착과, 다양한 학문배경을 가진 전문인력의 양성이라는 같은 취지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던 법학전문대학원의 전액 장학금 지급률이 43.94%나 되는 것과 비교된다. 또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작성한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체제정착비 지원 현황'을 보면, 전국 35개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중 26곳은 체제정착비 명목으로 전체적으로 388억 6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로 지원받았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받은 곳은 KY의학전문대학원으로 43억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전문대학원 대다수의 학교들이 과거 학부체제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 또, 교육과정도 학부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받는 등 같은 교육과정과 실습환경을 가진 만큼, 올린 등록금과 정부 지원금으로 그 동안 이중으로 수익을 올려왔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 외에도, 의과대학으로의 복귀를 결정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지지 않고 결정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10월 국감에서는 의과대학 복귀 후 등록금이 대학 현실에 맞게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강새미 기자/중앙
<twklest@e-mednews.com>

독도가 달린다

78호(2010.12.14)/문화생활 2011. 1. 18. 01:35 Posted by mednews

독도가 달린다

독도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뛰는 독도 레이서

세계를 누비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대학생들이 있다. 독도 라이더, 독도 레이서에 이어 2월 말 또 다시 독도를 알리기 위한 출발을 준비하는 서울대 도전 동아리 G.T(Global Trailblazer)의 회장 최병길(서울대 경제06)씨를 만나 보았다.

Q. ‘독도 레이서’가 무엇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A. 독도 레이서는 세계 일주를 하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프로젝트입니다. 1기는 전원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했기에 독도 라이더라고 했지만, 2기부터는 모두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고, 가는 곳에서 레이싱 대회를 열거나 마라톤을 참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기에 독도 레이서라고 명명했습니다. 2월 말에 출발하는 이번 팀이 3기입니다.

Q. 지금까지의 진행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5명의 조원들이 각각 회계, 언론, 대외연락, 공연, 세미나를 담당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산 기본서, 여행 경로와 프로젝트의 방향 등 여행의 큰 틀은 준비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부적인 내용을 조정하고, 후원사를 구하면서 세미나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또 운전과 일본어를 담당할 팀원을 더 구하고 있고요. 일단 2월말에 출발해서 8월말까지 돌아오는 일정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과연 독도레이서가 효과가 있을까요? 돌아다니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가수 김장훈이 했던 독도 광고 같이요.
A. 신문 광고는 기억에 남질 않아요. 우리도 보통 신문 볼 때 광고는 잘 안 보잖아요. 한국의 독도 문제가 해외 유명 언론에 실렸기에, 한국에서는 이슈가 되었고 기억에 남는 거죠. 더군다나 독도 광고는 단발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어요. 투자 가치가 없으니까 계속된 경제 지원은 어렵거든요.
그것보다는 오히려 이야기를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게 좋아요. 독도를 알리기 위해 세계 여행한다는 것은 이야기가 되고, 그곳에서 하는 마라톤이나 레이싱대회 같은 행사는 그 지역에서도 이슈가 될 수 있거든요. 읽지 않고 지나가는 광고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기삿거리가 더 기억 속에 남겠죠.
그리고 경험을 줄 수 있어요. 적어도 우리가 주최하는 세미나나 공연에 온 사람들은 그 경험을 통해 독도에 대해 알게 될 테니까요. 또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트위터를 통해 계속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할 테고, 그러면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친구들도 독도에 대해 알게 되고,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 알게 되고. 나비효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독도에 대해 알게 되기를, 관심에 갖게 되기를, 어디선가 독도에 대해 듣는다면 ‘한국 땅!’ 이라고 기억할 수 있기를 기대해요.
물론 국제적 동조를 얻은 후 그들의 여론을 얻어 국제적 압박을 가하는 복잡한 과정 없이도 일본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잘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일본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죠. 그래서 이번 기수 일정엔 일본에서의 스케줄 비중이 커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본의 선생님들과 대화할 계획이고요. 한국으로 초대도 하고 계속해서 소통의 장을 만들어서 단발적 만남이 아닌 지속적 교류를 통해, 감정이 아닌 진실의 문제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Q. 그러면 일본이 지금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A. 일본의 주장에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일본이 내세운 근거는 일제 침략기에 있는데, 우리가 주권을 빼앗긴 그 시점, 잠시 독도를 소유하고 있던 시절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독도는 물론이고 한반도 자체가 일본의 영토로 들어가던 시기였고 해방 이후 절차상, 그리고 국제법상으로 모든 반환이 분명히 명확하게 다 이루어졌습니다. 한반도가 현재 우리의 영토이듯이 독도 역시 우리의 영토로 분명하게 반환된 것입니다. 이들의 근거는 그래서 말이 안 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본이 무서운 것이, 바로 로비를 잘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안일하게 있는 사이 일본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끝없는 로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초안에서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이 명확히 나타나 있으나 5차에서는 일본의 로비로 그 사실이 교묘하게 빠져버리게 됩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가면 각종 언어로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실이 아니지만 매우 자세하게 써놓아서 이 문제를 모르는 제 3자가 보기에는 매우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우리 정부도 일본을 따라 뒤늦게 홈페이지에 설명을 기재했는데,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해서 두 사이트를 모두 둘러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본이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Q. ‘독도라이더가 간다.’라는 1기가 펴낸 책을 보면, 독도라이더의 1순위 목적이 의외로 독도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이더군요. 독도라이더가 활동하기 위해 기업으로부터의 후원, 나라로부터의 세금지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목적이 아닌 국익에 더 초점을 맞췄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 출발하는 3기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1기는 독도를 알리는 목적 외에 개인의 성장이라는 여행에도 더 큰 비중을 두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첫 번째로서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생이 공익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도한 건 처음이었어요. 처음으로 이런 공익 목적으로 대학생이 어떤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첫 스타트를 끊어주면서 2기, 그리고 3기도 출발할 수 있는 원동력도 제공해 주었구요.
우리 3기는 개인의 성장보다는 독도를 알리는 것에 중점을 주고 있습니다. 앞 기수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3기에서는 그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찾고, 1기와 2기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3기만의 특징이 있나요?
A. 일본과의 교류에 중점을 뒀다는 것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본 사람들은 독도 문제를 잘 알지 못해요. 다만 독도 문제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문제인거죠. 일본 전체를 못 됐다, 나쁘다고 보는 관점은 양국을 감정싸움으로 치닿게 만들 수 있어요. 그보다는 일본에 독도에 대해 알리고, 양심적 참여를 이끌어 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맞죠. 독도문제 해결은 양국의 오래된 감정도 해소시키고 더 가까워 질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세미나 컨셉을 바꾸었어요. ‘일본은 나쁘고 한국은 옳다’라는 시각은 1기 독도 라이더에서 끝났죠.
이번에 새롭게 바뀌게 될 일본 교과서를 보면, 모든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교과 지침서에 그 사실을 강조해서 가르치라고 되어있어요. 이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게 되면 이 상황은 더 악화될 거예요. 그렇기에 그 전에 일본의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독도에 대해 알리고, 양심적 참여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 이번 독도 레이서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저희는 교과서나 교과부보다도 일선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에 오래 머물면서 세미나와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려고 해요. 그 때문에 이번에는 지난 기수와는 달리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세미나와 상호 토론 준비도 많이 해야 되죠. 일본어에 능통한 조원도 필요하구요. 이상이 3기의 새로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독도 레이서를 하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A. 돈과 시간이 독도레이서에 대한 기회비용이죠. 학교나 사회진출에 있어 적게는 6개월 많게는 1년이 늦어지게 되니까 걱정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학교선 절대 배울 수 없는 걸 배우고 올 것이라 기대해요. 외국에 나가면 한국 대표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못 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그 압박을 이겨내고 앞으로 닥칠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때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사회에서 주는 독점이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이에요. 한국사회의 시스템 덕분에 저는 취직을 할 때도, 또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겠죠.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사회에 이득을 주는 일, 그리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가 잃게 되는 것들을 단순히 손해 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Q. 도전이란?
A. 넓게 보면 모든 것이 도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새해에 세우는 계획 하나하나도 일종의 도전이죠. 다만 도전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할 때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또 남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았던,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문서영 기자/을지
<celeste@e-mednews.com>
박상아 기자/을지
<sanga1208@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