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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위한 BIG ISSUE

76호(2010.8.30.)/문화생활 2010. 9. 4. 20:37 Posted by mednews
노숙자들의 자립을 위한 글로벌 잡지, 한국에 상륙하다


8월 초 서울의 한 대학 정문 앞,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서 있다. 잡지를 손에 들고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웃고 있는 남자, 정체가 무엇일까? 그 표지 위에는 The Big Issue Korea라고 쓰여져 있는데..

40여쪽 되는 분량의 얇은 잡지인 빅 이슈 코리아. 얼핏 보면 평범한 월간지 같지만 다른 엔터테인먼트 잡지와는 다르게 판매원들이 노숙인이라는 것에 이 잡지의 특색이 있다. 홈리스들의 자립성을 되찾아주는 것을 판매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잡지 ‘빅 이슈’가 2010년 7월 5일, 한국에서 ‘빅 이슈 코리아(The Big Issue Korea)’라는 이름으로 창간호를 출판하였다.

Working, Not Begging/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고 있습니다.

‘빅 이슈(The Big Issue)’는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매체로,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이다. 홈리스 출신인 존 버드(John Bird)와 더 바디샵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로딕(Gordon Roddick)이 만든 이 잡지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고 있으며, 노숙인들이 구걸을 하는 대신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에 발행의 목적이 있다. 자선단체가 아니라 잡지 발행을 통해 자체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재투자하여 사회적 혜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특수한 목적을 가진 잡지인 만큼 운영 방식도 독특하고 체계적이다. 빅 이슈 코리아의 방식을 예로 설명하자면, 판매자로 일할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은 면접과 교육과정을 거친 후 10권의 잡지를 처음에는 무료로 제공받는다. ‘빅판’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한 권에 3,000원씩 받고 잡지를 판매하면 30,000의 수익을 얻게 되고, 이를 원금으로 하여 잡지를 권당 1,400원에 구입하여 다시 판매한다. 그러면 한 권당 1,600원의 수익이 남게 되고, 이렇게 잡지 판매로 얻어지는 이익은 모두 판매자에게 돌아가는데, 대신 하루 수익의 50% 이상을 반드시 저축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임시빅판으로 일하다가 15일 이상 꾸준히 매상을 올리면 정식 빅판이 되어 고정 판매처를 지정받게 된다. 위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일한 만큼 이윤이 남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되어 더욱 열심히 잡지를 판매하게 된다. 정식 빅판이 되면 처음 6개월 동안은 빅 이슈 코리아측에서 고시원 등의 숙소를 제공하고, 300만원을 저축하는데 성공하면 임대주택을 제공한다. 또한 개인이 원할 경우 취업과 창업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잡지를 파는 것은 간단한 업무지만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그 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경제적인 자립성을 되찾아 사회의 일원으로 재합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빅 이슈는 자립을 도울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숙소, 건강, 사회 일원으로의 합류까지 모두 도와주는 통합적인 자립지원사업이다.

빅 이슈, 한국에 오다

한국판인 빅 이슈 코리아는 일본, 타이완에 이어 아시아 지역에서 3번째로 출간된 빅 이슈로, 다른 국가들에서와는 다르게 일반 시민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에서 시작하였다. 홈리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빅 이슈와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13년동안 노숙인들을 돕는 활동을 해온 비영리민간단체 ‘거리형 천국’과 손잡고 ‘빅 이슈 코리아’를 창간하였다. 창간 준비 단계에서 ‘서울형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창간호를 총 3만부 발행하였으며 현재 두 번째 호인 8월호가 신촌, 광화문, 강남, 여의도, 목동 등 서울 30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해 각자의 재능을 나누다

잡지 판매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콘텐츠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진 빅 이슈라도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사람들이 사서 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의 빅 이슈는 사회적 인사들이 각자의 재능과 영향력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폴 매카트니, 마돈나, 데이비드 베컴, 레이디 가가 등 유명인사들이 무상으로 표지모델을 자청하였으며, 아멜리아 노통브, 조앤 K. 롤링 같은 작가들이 무료로 글을 기고하였다. 또 의사, 기자, 교사 등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원들이 기사를 제공하고, 시간과 체력이 되는 사람들은 봉사로 참여하여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한국판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제 광고제에서 40여개의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광고기획자 이제석씨가 50호까지 표지디자인을 무상으로 담당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2호까지 발간된 잡지 속에는 얼마 전 내한한 안젤리나 졸리 인터뷰,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유명한 조니 뎁 기사, 최근 개봉한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클립스’ 기사, 요리 레시피, 유행 패션 정보 등 젊은 층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사들이 실려있다.

잡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존 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자활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잡지를 자랑스럽게 판매하는 홈리스와 즐겁게 사서 읽는 독자들이 만나는 것이 그러한 동등한 관계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인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짐으로써 남들과 동등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빅 이슈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영국 빅판의 ID카드에 적혀있는 ‘Working Not Begging’이라는 문구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문서영 기자 / 을지

<celeste@e-mednews.com>

 여기, 속 편하고 몸 편한 연구실 생활을 접고 아프리카로 날아간 기생충학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정준호 씨. byontae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과학블로거이기도 한 그가 아프리카대륙의 남동부, 스와질랜드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약력과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의 University of Bath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하고 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에서 기생충학석사를 마친 정준호라고 합니다. 그냥 기생충이 좋아서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나와 지금은 스와질랜드에서 기생충 유병률 조사와 현지 클리닉 의료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기생충 오타쿠라 불러주실 때가 가장 기쁜, 그런 사람입니다.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공자로서 느끼는 기생충학의 학문적인 매력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기생충이란 생물에 처음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학부 때 영국건강보호국에서 나온 분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였습니다. 이전에 박테리아나 관련 감염성 질환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를 보다 포괄적으로 공부 할 수 있는 기생충이라는 생물의 매력이 참으로 대단하더군요. 처음에 기생충학을 전공하겠다고 학부 담당 교수님과 상의를 했을 때는 왜 그런 사양학문을 전공으로 삼겠냐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기생충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생충학 이라 하면 단순히 회충, 촌충 같은 선충들이나 말라리아 같은 원충들, 혹은 벼룩이나 모기 같은 체외기생충들만 다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기생(parasitism)을 포괄적으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병원체들이 기생형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기생충은 진화를 주도하고 성 발생을 유도한 중요한 생물이며, 최근에는 위생가설을 통해 단순히 기생충에 의한 감염질환 뿐만 아니라 숙주와의 면역반응을 통해 의학적 사용법을 연구하는 분야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 NGO 단체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떠나셨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단체이고, 또 그런 방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모임이라는 NGO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기생충 연구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는 일은 연구자로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생충 질환을 단순히 교과서를 통해 피상적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 또한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구요. 단순한 진단장비조차 없는데다 자본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나와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제너럴닥터 분들과 헬스로그의 필진 분들, 또 충북대 기생충학교실 분들, 질병관리본부 분들이 장비와 제반 지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현미경과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마련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너럴닥터에서는 트리파노소마 커피를 통해 수익금 전액을 지원해 주시기도 하셨구요. 이렇게 하나하나 준비해 가는 과정 또한 큰 경험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 아프리카에서의 계획하신 여정의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진행하시는 기생충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동안 느끼신 의료봉사활동에 대한 소감은 어떠십니까? 활동 중 있었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클리닉 주변에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채변 및 기생충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600여명의 학생들 채변검사를 했는데요, 감염률은 약 25%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여기서 채집한 샘플들은 이제 한국에서는 비교적 찾기 힘든 기생충들이라 현재 충북대 기생충학교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생충자원은행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흔히 아프리카에서 의료지원을 한다고 하면 말라리아 같은 열대질환들을 흔히 보게될거라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어디나 흔한 질병들은 감기, 설사, 소화불량, 가벼운 외상 같은 질환들입니다. 장비 부족으로 응급환자를 볼 수도 없어서 시골 보건소 같은 느낌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단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환자 한분한분의 병력,가족력을 꼼꼼이 물어가며 인간적 유대를 쌓고, 고맙다며 집에서 키운 고구마나 아보카도, 구아바 같은 것을 들고와 먹으라 손에 쥐어주시는게 제일 즐거운 순간입니다.

 

-아프리카의 무서운 질병이라면 흔히 '에이즈'를 떠올리고 단번에 기생충질환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현황은 어떤지, 그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떠한 특정한 형태의 보건정책이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 또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현재 스와질랜드는 세계에서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성인 중 약 40%가량이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HIV 감염이 가장 당면 과제임은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단순히 사망률 기준으로 보지 않고 삶의 질의 측면에서 본다면 기생충 질환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충이나 회충 같은 장내 선충의 감염자는 현재 20억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흔한 질병이지요. 하지만 장내 기생충으로 당장 사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무시되고 있습니다. 여기 학생들의 감염률은 지금 25% 가량 되니 절대 적은 수치는 아니지요. 그나마 학교들을 기준으로 대량약물투여(MDA)을 통해 관리가 되어 이정도 수준이니 꾸준히 투약을 하지 않는 성인들의 감염률은 더 높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이제야 감염자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료인력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HIV 감염자 확인으로도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때문에 채변검사를 통한 기생충 감염자 확인 보다는 대변에 기생충이 나온 사람들만을 클리닉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요. 사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의료인력의 절대 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스와지 인구가 100만 가량인데 의사는 170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보건정책이 수립되더라도 그를 진행할만한 의료인력이 부족하니 장기적으로 어떤 계획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지요. 궁극적인 해결책은 현지에서 진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나 간호사 같은 양질의 의료인력을 배출해 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것이겠습니다. 아마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의과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한국에서는 이제 의대에서 기생충학이 1학점짜리 과목이라 들었습니다. 기생충학을 전공하고 기생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임상적 중요성은 줄어들었다해도, 향후 기생충이 가지는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거든요. 그런면에서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기생충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기생충학이 단순히 충란 모양외우는 과목이 아니라 다른 매력도 충분히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끝으로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끝난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일단 아프리카에서의 기생충질환과 열대의학에 대한 책도 집필하고 이에 대한 저변과 인식이 없는 한국에 열심히 알리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 공부를 좀 더 해서 보다 체계적인 의료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돌아오면 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출되는 양질의 의료인력, 그러니까 이 신문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조금의 시간을 투자해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담 기자 / 계명

lovelytale89@e-mednews.com


검증이 아닌 발전을 위하여


의대생 분들께 묻습니다. ‘한의학’이라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비과학적’, ‘스테로이드’, ‘민간요법’... 대다수 의과대학생들은 한의학을 ‘검증 안 된 철부지 학문’으로 여기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역으로 한의대생 역시 양의학을 ‘부분적이고 기계적인 의학’이라며 반기지 않지요. 굳이 학생들 간 의견대립이 아니더라도, 양-한방 갈등은 우리사회 전반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이런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의학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작게나마 이뤄지고 있는데요. ‘한의학 탐사 여행’은 그러한 노력이 드러나 있는 책입니다. 200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실시된 ‘한의학과 보완대체의학’ 강의 기간 도중 강의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의과대학생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교수의 답변을 모아놓았고, 이들을 크게 네가지 범주 - ‘한의학의 과학화’ ‘한방의료의 실제’ ‘한국 의료제도 속의 한의학’ ‘한의학을 이해함으로써 의사들이 얻을 수 있는 것’ - 로 나누어 수록해놓았습니다.

이 네 가지 중, 이번 기사에서는 ‘한의학의 과학화’에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먼저 한의학의 과학화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본 후, 그 지향점이 정말 ‘괜찮은지’, 만약 아니라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의학의 생존수단, ‘과학화’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이래, 한의학이 계속해서 받아온 질문이 있습니다. ‘한의학이 과연 믿을만한 학문인가’ - 즉 한의학의 과학성에 관한 논쟁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질타를 받아온 한의학계는 한의학이 정말 믿을만한 의학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나아가선 ‘살아남기’ 위해 한의학의 과학화를 추진하게 됩니다. 그러니 한의학 과학화는 한의학이라는 학문자체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한의학의 생존방편으로써 외부적인 요구에 반응하기 위해 시작된 셈입니다.

 

현재까지 이뤄진 과학화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한의학에서 쓰이는 약재의 효능을 증명하기 위해 약재성분을 분석해보기도 하고, CT나 초음파 등 각종 진단 장비를 동원하여 치료경과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양방병원과의 협동연구를 통해 한의학과 의학을 접목시켜 보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요. 오늘날 한의학의 과학화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과 관련된 요소나 방법론 - 각종 진단 장비나 기계, 연구 방법론 등 - 을 차용한 것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방향은 한의학의 과학성을 ‘검증’하는데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의학 & 실험과학의 ‘좁은 문’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봅시다. ‘과학화’는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과학은 여러 층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정확한 의미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와 한의사 분들은 이 ‘과학’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책에 나온 질문의 몇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우선 많은 학생들이 한의학의 여러 가지 시술이나 각종 약제가 제대로 ‘증명’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기서 증명은 현대의학에서 쓰이는 연구방법론 - 무작위배정 대조군 연구(RCT), 단면연구(CSS), 코호트 연구 등 -에 의한 검증을 가리킵니다. 음양오행이론이나 장상론 등 한의학의 근본 이론이 정말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 묻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즉 한의학이 ‘서양 의학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연구, 검증방법론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대다수였다고 볼 수 있지요. 만약 그러한 방법론으로 증명되지 못한다면, 한의학이 온전한 학문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는 뉘앙스도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질문 내용으로 짐작컨대, 학생들에게 있어 과학이란 ‘관찰-이론-실험-재현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된 지식, 이론체계’인 듯합니다. 이러한 의미의 과학은 ‘실험과학(experimental science)'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장 좁은 의미의 정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학의 과학성을 논하기에 적합한 수준의 정의일까요? 사실 의학은 과학 그 자체라기보다도 임상경험을 중시하는 영역입니다. 같은 약품이라도 그것이 투여되는 (실험상 통제되기 어려운)상황조건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고, 아직 작용기전은 불분명하지만 임상적 효과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시술이나 약품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학 자체도 비과학적인 측면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위에 언급 했듯이, 과학에는 여러 층위의 의미가 존재합니다. 가장 넓은 의미의 과학은 ’믿을 만한 결과나 정확한 예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체계적인 지식‘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의미의 과학에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나 기법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의학 역시 과학의 한 갈래로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한의학은 어떨까요. 한의학은 정精기氣신神혈血을 바탕으로 인체를 해석하고, 장부와 경락, 장상론을 이용하여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정기와 사기의 개념을 이용하여 병리기전을 설명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오랜 임상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한의학은 나름 ‘정확한’ 진단과 ‘믿을만한’ 치료법을 구축한 넓은 과학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한의학 그 자체로도 이미 과학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지요.

 

양의학의 ‘과학화’, 한의학의 ‘과학화’

 

이제 한의학의 과학성을 검증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양방의 과학성과 한방의 과학성의 성격이 각각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양의학은 과학적 연구방법론, 한의학은 음양오행설, 기氣이론 등이 되겠네요 - 또한 다릅니다. 이 언어 간 번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쪽의 언어로 다른 한 쪽을 정확히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그 부정확한 해석을 기준삼아 학문 간 비교우위를 논하는 것도 옳지 않겠지요. 다만 한의학계에서 이미 임상적 효능을 인정받은 시술이라든가, 특정 약재의 효능에 관심이 가지고 그것을 활용해보고자 연구하는 것은 양의학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의 과학화는 다른 학문의 성과를 활용하여 양의학을 발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의학자들 역시 과학화를 더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적 연구방법론과 첨단 기기를 이용하여 한의학의 ‘이상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과학화입니다. 보다 넓은 의미 과학화는 한의학 본연의 과학성을 찾아나가는 일입니다. 현재 한의학의 이론이 오랜 기간의 임상경험을 통해 그 정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이론에 관한 연구가 좀 더 체계화되어야 합니다.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 이론이나 기氣, 경락, 경혈 등의 실체에 관한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한의학은 남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설명할 수밖에 없지요. 한의학 스스로가 자신을 명쾌하게 이해, 설명할 수 있어야 ‘믿을만한가’라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록 과학화의 출발이 어느 한쪽의 비대칭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양쪽 의학의 대등한 발전에 그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한의학의 과학화가 각자가 서로의 과학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꾸준한 성장을 도모하는 계기로써 받아들여지길 기대하며 스터디를 마칩니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스마트 폰이 없는 S 병원 실습생 A 는 오늘도 서럽다. 어제는 교수님의 질문에 A가 쩔쩔 맬 동안 스마트 폰을 가진 친구 B는 교수님 뒤에 숨어 재빨리 검색해 대답해버린다. 오늘도 수업자료 PPT 100장에 자신의 20년 업적을 고이 담아 오신 교수님. 과연 이 PPT를 뽑으면 볼 것인가, 또 이면지만 만드는 것은 아닐까, A가 고민하는 사이 B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스마트 폰에 수업자료를 가뿐히 담는다. 특히 본과생들을 위한 학습용 어플리케이션을 간단히 소개한다. 물론 전부 무료이다.

 

1. Wikipedia   


뭐니뭐니 해도 검색 엔진이 최고. 특히 Google 이나 Wikipedia Reference 의 질이 높아 참고 할 만하다.

2.                  NEJM this week 



의대를 다닌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저널 NEJM. 매주 목요일 그 주의 요약 오디오 파일이 업데이트 된다. 술기에 대한 동영상도 포함되어 있어 OSCE 준비에도 참고할 수 있겠다.

3.                  NCCN guidelines  



각 종 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있는 NCCN 홈페이지로 가입하면 무료로 암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볼 수 있다. 실제 임상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따라 치료를 진행하기 때문에실습을 도는 학생에게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겠다.

4.                  LEXI COMP 



각종 약에 대한 정보, 약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 진단검사의 의미와 방법에 관한 정보등 방대한 양의 정보가 무료로 제공된다.

5.                  Web MD 



증상으로 시작해서 감별진단, 질병에 대한 정보, 논문 검색까지 해주는 어플리케이션.

6.                  Stethoscope 



심음, 폐음, 장음의 청진 소리가 설명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7.                  ECHO



유용성을 좀 떨어지지만 아이폰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어플리케이션. 각종 질병에 대한 심초음파 동영상을 제공한다.

8.                  각종 File viewer들  



Discover, Goodreader 로 수업 PPT 자료를 보관할 수 있고 ichm으로 각종 e-book 을 넣어 다닐 수 있다.

9.                  각종 USMLE 대비 어플리케이션


usmle
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usmle buzz, usmle amnesia cure lite, Kaplan Qbank 를 추천.

      

이 밖에 3D Brain, Radiopaedia lite 등도 있다.

 

조원경 기자/순천향

loveee@e-mednews.com 


1994년 한국 의학드라마는 종합병원(1994)을 시작으로 해바라기(1998), 의가형제(1997)등이 방영되었다. 그 후 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 붐이 일어나면서 하얀거탑(2007), 외과의사 봉달희(2007), 뉴하트(2008), 종합병원2(2008)가 연달아 방송되었고 큰 인기몰이를 하였다.

이 드라마들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왜 의학드라마들은 다 OOO이지?‘라는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과연 어떠한 공통점들이 있는지 지금부터 그 법칙을 찾아보자!

 

1. 까칠한 천재의사, 전국수석, 인턴수석인 그들은 외과의사이자 입체적 인물.

▶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천재의사, 전국수석, 인턴수석은 외과의사이다. 이들은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키거나 위급한 환자를 능수능란하게 돌본다.

▶ 공부를 잘하고 실력이 출중한 인물들은 주로 입체적 인물이다. 냉혈하거나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가도 극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환자들과 부딪히며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 성격이 변한다.

<뉴하트>

남혜석

(김민정 분)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수능만점과 의대 수석 입학, 졸업 그리고 인턴성적 최고를 기록.

응급실 앞에서 자신에게 토하는 환자에게 접수부터 하라고 하는 등 환자의 생명보다 원칙을 우선시 했지만 점점 환자와 교감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뉴하트>

최강국

(조재현 분)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실력을 갖춘 흉부외과 간판교수.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수술에 주목하고 가족도 소홀히 하지만 후반에 이르면 환자를 위한 의사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외과의사 봉달희>

안중근

(이범수 분)

흉부외과 전문의. 소아심장 전공이지만 모든 GS수술을 완벽히 해내는 천재외과의사.

의대시절에는 이건욱(김민준 분)과 1,2등을 다투던 수재.

능력은 있지만 무뚝뚝하다가 봉달희(이요원 분)를 만나면서 다정다감한 면모를 발휘한다.

<종합병원2>

한기태

(이종원 분)

대학병원의 스타의사로 뛰어난 실력과 연구성과를 갖춘 외과교수.

최고의 연구로 논문을 쓰기 위해 환자를 가리던 사람이었으나 동료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의사는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반성한다.

<하얀거탑>

장준혁

(김명민 분)

뛰어난 수술실력과 연구성과를 가지고 있는 일반외과 부교수.

자신의 병을 알기 직전까지도 본인의 출세를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으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뉘우친다.

 

2. 갈등구도.

▶ 갈등구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드라마의 긴장도가 떨어진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 출세에 대한 욕구에 의해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이 형성된다.

<뉴하트>

▷ 김태준(장현성 분)은 흉부외과 교수로 최강국의 그늘에 가려 그 실력을 100%인정 받지 못한다. 성공가능성이 높은 수술만 집도하며 위험부담을 줄이려 하는 그의 태도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수술이든 집도하는 최강국과 부딪힌다.

▷ 병원장인 박재현(정동환 분)은 돈이 되는 진료를 우선하며 큰 수술이 있으면 매스컴을 이용하여 홍보할 생각부터 한다. 이 때문에 생명을 우선시하는 최강국과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 최강국은 바쁜 스케줄로 인해 가족들에게 매우 소홀해 왔다. 하지만 어느 한 쪽도 포기할 수 없는 그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외과의사 봉달희>

▷ 안중근과 이건욱은 봉달희와의 관계, 이건욱 부인과의 관계, 환자의 수술여부 등 대부분 사건에 있어서 의견차이를 보이며 대립한다.

<종합병원2>

▷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무얼하다가도 뛰어가는 김도훈(이재룡 분)은 실리를 따지는 눈이 어둡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한기태와 대립한다.

▷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메스를 잡은 정하윤(김정은 분)은 의료사고에 있어서 동료와의 의리와 환자에 대한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며 동료 의사들과 부딪힌다.

<하얀거탑>

▷ 이주완(이정길 분)은 자신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춘 제자인 장준혁의 출세를 가로막으려한다. 그러나 장준혁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맞대응해 나간다.

▷ 최도영(이선균 분)은 내과의사이지만 의사로서의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현실 직시하는 외과의사 장준혁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 노민국(차인표 분)은 수술과 연구에 있어 장준혁과 비등한 실력을 갖춘 라이벌이다. 이들은 일반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3. 의사도 환자.

▶ 드라마에서는 지병을 앓으면서도 의사가 되었다거나 과로로 쓰러지거나 에이즈 환자를 보다가 바늘에 찔리는 의사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의사들의 등장은 누구나 질병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뉴하트>

▷ 병원장 박재현은 병원운영에 있어 열을 내다가 쓰러진다. 심장기능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심장이식을 하지만 이식거부 반응으로 사망하게 된다.

▷ 남혜석은 에이즈 의심환자의 혈액을 뒤집어쓰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후에 에이즈 환자가 아님이 밝혀진다.

▷ 조민아(신동미 분)는 마취과 의사이다. 임신 검사를 하러 갔다가 난소암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다가 혈관이 파열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 다행히도 혈관봉합을 위해 김태준과 이은성이 급히 파견되어 목숨을 건지게 된다.

<외과의사 봉달희>

▷ 봉달희는 어릴 때부터 심장이 약하였다. 이는 평범한 의사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만 안중근에게 심장 수술을 받고 의사생활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된다.

▷ 안중근은 에이즈 환자의 복막을 봉합하다가 바늘에 찔리게 되고, 1차 검사결과가 양성이 나와 수술을 집도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도 2차 검사결과는 음성이 나와 에이즈를 피하게 된다.

▷ 이건욱은 폐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안중근의 수술 덕분에 회복되고 중근과도 화해한다.

<종합병원2>

▷ 최진상(차태현 분)은 맹장염에 걸리고 이는 정하윤의 첫 집도 기회를 제공한다.

▷ 정하윤은 과로로 인해 폐렴과 늑막염에 걸리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결핵을 의심받는다. 이들의 등장은 의사들의 몸 관리와 병원 위생 관리의 필요성을 재고시킨다.

▷ 김도훈은 내시경 검사를 받은 후 위암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회복되어 다시 환자를 볼 수 있게 된다.

<하얀거탑>

▷ 출세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붙던 장준혁은 담관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늘 대립하던 이주완이 그의 수술을 집도하지만 전이가 심하여 수술을 중단하게 된다. 결국 장준혁은 죽음을 맞이한다.

앞서 말한 3개의 법칙 외에도 의료소송에 관한 이야기, 의사들 간의 사랑이야기, 논문을 조작하거나 비리에 연루되는 의사의 이야기 등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최근에는 산부인과, 제중원 등 기존에 다루지 않던 소재를 다룬 의학드라마가 속속들이 제작되고 있다. 기존의 의학드라마 법칙과 비교하면서 새로운 의학드라마의 법칙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강수진 수습기자/전남

pi1125@naver.com




Seriously! 150년?!

1858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1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2008년 발행된 150주년 특별 기념 40번째 개정판은 무려 1576페이지에 4.7kg이나 된다. 150년이 넘게 장수한 책인지라 ‘그래이 해부학’의 저자 닥터 그래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의대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닥터 헨리 그래이의 삶에 대해서는 이상하려니 만큼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심지어 닥터 그래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단지 1827년 즈음되지 않을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1861년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간병하다 자신도 천연두에 걸려 죽었는데 이 때 전염을 막기 위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닥터 그레이와 함께 ‘그레이 해부학’을 집필한 닥터 카터의 일기에 의해 알려졌다.

 

두 명의 저자

흔히들 ‘그래이 해부학’은 닥터 헨리 그레이 혼자서 집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닥터 그래이는 각각에 대한 설명글만 작성하였다. 정작 큰 센세이션을 몰고 온 극사실주의적 그림들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닥터 헨리 밴다이크 카터가 그린 것이다. 당시에는 그림을 종이에 좌우가 뒤바뀌게 그리면 그 그림을 나무에 새겨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인쇄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림이 왜곡되곤 했다. 그런데 닥터 카터는 자신이 직접 나무에 새겼기 때문에 그림이 더욱 사실적이고 정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의학을 공부했던 학생으로서의 경험과 교수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핵심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게 정리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었다. 학생들을 위한 개념서였기 때문에 초판은 들고 다니기 쉽게 작고 가벼웠다고 한다. 더불어 가격도 학생들을 위해 저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정판이 발행되면서 점점 초판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져 이제는 방대한 양의 절대적 참고문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상 영어가 아닌 상류층의 고급 영어로 쓰여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해부학의 바이블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두 명의 저자 중에 유독 닥터 그래이 이름만 인용된 것일까. 아마도 닥터 그래이가 닥터 카터를 일러스트레이터로 고용한 것 추정된다. 책으로부터 나오는 인세 등의 모든 수입은 닥터 그레이가 취했고 닥터 카터는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한 달에 150파운드(약 30만원)을 받았다. 닥터 그레이에 비해 4살이나 어렸던 닥터 카터가 돈을 제때 받지 못해 마음고생을 한 흔적이 일기에 기록되어있다.

 

불사(不死)의, 불가지(不可知)의

원래 닥터 그래이가 31살에 낸 초판은 Anatomy, Descriptive and Surgical 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다. 초판부터 해부학 교과서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베스트 셀러였다. 그런데 3년 후인 1861년에 천연두로 사망하게 되면서 실제로는 제2판까지 밖에 집필을 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초판의 편집을 맡아주었던 친구, 홈즈를 시작으로 152년 동안 저자와 편집자들이 여러 번 바뀌며 계속해서 개정판을 발행해왔다. 지금의 그래이 해부학(Gray's Anatomy)이라는 책 이름은 1938년에 정식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유명한 책의 저자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의 머리글에는 닥터 그레이의 부고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닥터 그래이의 친한 친구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유명세를 시셈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공동 저자였던 닥터 카터가 유명세와 인세를 공평하게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인도로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친구였던 홈즈도 우정보다는 라이벌의식이 강했던 것을 보면 닥터 그래이는 친구 복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의 소설가 싱클레어는 의사라면 꼭 읽어야 할 3가지로 성경,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래이 해부학을 꼽았다. 그 정도로 의학의 기본이 되는 해부학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명서라 할 수 있다.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 기관 종사자들 외에도 그레이 해부학을 통해서 인체 구조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얻고 예술적 영감을 얻어간 예술인들도 있다. 지금까지 150년 동안 명실상부한 해부학의 절대적 교과서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듯이 앞으로도 닥터 헨리 그래이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불사조처럼 그의 생애는 계속해서 베일에 가려져 있을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문정민 기자 / 중앙 

<moon_j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