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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우수
50만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4학년 현명한

 

“폴리클 학생 선생님,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봐.”
교수님의 말에 순간 트랙터※를 쥔 손을 놓칠 뻔 했다. 내가 졸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30분 째 교수님들의 뒤통수만 보이는 수술대에, 두 손만 뻗어 시야를 확보해 주고 있는 인간 트랙터에게 말을 걸어 주다니! 머뭇거리는 사이, 그네들의 관심은 다시 내게서 떠나 갔다. 엊그제 수술 했던 환자 상태, 아들의 중간고사 시험,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수술을 하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병원 안팎을 망라했다. ‘졸지 말아야지’. 새하얀 조명이 비춘 수술대에서 시선을 돌렸다. 초록빛 덮개 위에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검붉은 물감이 보였다. 문득 스쳐 지났던 미술 작품이 떠올랐다 이내 사라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멀리 수술 방 구석에서 레지던트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며칠째 안감은 머리에 엉망인 피부, 문득 아침 브리핑 시간에 어제 밤에도 응급 수술이 생겨 새벽 5시 반에 끝났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마취 기계를 보았다. 환자의 호흡에 맞춰 오르내리는 피스톤. 계속 보고 있자니 최면에 빠져들 것 같다. 기계 버튼을 조절하는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는 아이돌 가수 얘기로 분주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신호음. 팔이 저려온다. 환자 몸에 내 몸을 기대었다. 받침대가 있으니 한결 편해졌다.
삐. 삐. 삐.

문득 초록빛 덮개 아래 발가락이 보였다. 매니큐어가 반쯤 지워져 있는 새끼발가락. 이 공간의 주인공이 발을 내밀고 누워있다. 몸 안 가장 깊숙한 곳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은 체. 그의 몸은 호흡과 혈압을 유지해 주어야 하는 대상, 잡고 자르고 당겨야 하는 대상이다.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그의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등록번호, 진단명, 수술명, CT 사진이 컴퓨터 화면에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늘 해오던 수술을 하느라 지루할 터이고, 한쪽에서는 그 수술을 지켜보기만 하느라 졸릴 것이며, 다른 한 쪽에서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할 터이다. 그렇게 그 곳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처럼 적막한 공기가 흘렀다.

“다음 환자 내리라고 하세요”
수술이 거의 끝났을 때 교수님이 하는 말이다. 이 말에 모든 사람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지겨운 일상 하나가 끝난 표정. 곧 있을 퇴근과 식사시간의 즐거움.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다음 환자는 급성 충수돌기염 환자라서 30분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한다. 너무도 간단한 수술. 예전 수업시간에 외과 교수님이 이 수술은 수백 번 해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학생인 나도 몇 번 보고나니 해보고 싶다는 자신감마저 생기는 수술이었다. 오늘 수술 일정이 일찍 끝난다는 기대감에 모두가 부풀어 있었다. 이윽고 이번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환자는 원래의 모습으로 고이 몸을 닫은 체 퇴장하였다.

곧, 다음 환자가 내려왔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중년의 여자 환자였다. 하얀 얼굴, 고은 주름과 손 모양이 어머니 나이 또래를 연상시켰다. 기도하는 듯 손을 모으고는 한번도 눈을 뜨지 않고 조용히 숨쉬는 모습이 마치 자는 사람 같았다.

“이건 산소예요. 아직 마취 안 하니까 숨 크게 쉬세요.”
마취과 선생님이 마스크를 환자 얼굴에 대자 입을 열고 크게 숨을 쉬었다. 폴리클 학생의 주된 임무는 환자가 마취되기 까지 수술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보는 것이다.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지키며 환자 옆에 바짝 붙어 서서 퇴근하고 있을 저녁 약속을 생각했다. 오늘은 무엇을 먹지. 집에 가서 뭘 하지. 문득 멀리 레지던트 선생님은 환자 차트를 입력하느라 바빴다. 주변의 간호사들은 수술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돌아다녔다. 마취과 선생님은 마취기계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이윽고 마취에 쓰일 우유 같이 하얀 포폴 주사가 준비되었다. 곧 이 주사와 함께 환자는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곤 충수돌기를 수백 번 떼어 보았다는 하얀 가운의 기사가 나타나 눈 깜짝할 새에 못된 충수돌기를 떼어 버리고는 이 무대는 막이 내릴 것이다.
마취 주사를 놓기 직전, 갑자기 환자가 산소 마스크에서 고개를 돌려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저기요.. 선생님, 아까 남편한테 깜빡 잊고 말을 못했는데, 옆집 순영이 엄마한테 50만원 빌려준 게 있는데 그거 꼭 좀 받으라고 하세요...”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난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두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본 환자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옆집 엄마한테 빌려준 50만원. 그 얘기를 내게 왜 한 것일까. 이윽고 빨간 베타딘 소독약이 몸에 흩뿌려지고는 초록색 덮개가 그녀의 몸을 덮었다.
삐. 삐. 삐.

50만원. 그 돈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옆집 순영이 엄마한테 빌려준 50만원. 그것이 마취 직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 지 생각하는 것 조차 잊어 버렸다. 이 수술이 얼마나 간단한 수술인지, 30분도 안돼서 깨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자신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졸면서 당기고 있던 환자의 몸을 위해 그의 가족들은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기도하였을 것이다. 어제 본 티비 드라마 내용을 얘기하며 잘라낸 그 부분은 사실 누군 가에게는 소중한 몸의 일부였던 것이다. 모두가 일상이 되어 버린 이 수술 장이 그들에겐 간절한 기도의 공간이고, 운명이 공간이었다.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부탁한 50만원은, 그녀가 본 마지막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무대가 주인공인 그들에게는 운명을 걸고 맡기는 마지막 장소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익숙해 지는 삶. 처음 해부학 실습 때 만졌던 카데바의 차가움. 처음 수술 방에서 살아있는 환자의 장기를 만졌을 때의 설렘. 처음 임종을 경험하였을 때의 숙연함. 익숙함의 그늘이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정적 역치를 높게 만든다. 그녀가 부탁한 50만원. 그것은 그들이 영혼을 가진 작고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환자의 몸을 벌리는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