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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10 [편집자가 독자에게] 귀 기울여 듣기
  2. 2016.07.10 [사설] 주먹을 펴 내려놓아야 할 때

귀 기울여 듣기


얼마 전 컴퓨터를 정리했다. 방청소도 잘 하지 않는 나였기에 ‘컴퓨터 청소’ 역시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리가 얼추 끝나갈 무렵, 오랫동안 열어보질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것만 같은 폴더 안에서 몇 년 전에 들었던 음악 파일들을 발견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음악들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너무나도 바빠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노래들은 나에게 정말 소중했다. 입시 공부로 인해 닭가슴살처럼 마냥 퍽퍽하기만 했던 내 삶의 유일한 향신료였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들을 꺼내왔다. 마우스 클릭도 신중히 하며 말이다. 오랜만에 세상 빛을 본 그들이었기에 혹시 재생이 안 될까 싶어 염려스러웠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이 때때로 재생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물론 헛된 걱정이었다. 파일을 열자 예전 그대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작은 잡음 하나조차도 서려있지 않았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시 노래를 감상하기로 했다.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침대에 누웠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과학자들도 해내지 못한 시간여행을 노래들이 가능케 해주었다.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 때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게 싫어서였을까, 사춘기에 접어 들어서였을까. 그때만 해도 모든 노래에 귀를 기울여가며 들었다. 가사를 곱씹어 보고 멜로디에 전율을 느꼈다. 한 음, 한 음 놓치고 싶지 않아 반복 재생을 하며 듣기도 했다. 시간을 내어 가사도 외웠었는데 가사를 전부 외운 곡이 수십 개에 달했다. 라디오에서 처음 들어보는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면 잊지 않기 위해 제목과 가수를 노트에다가 적어 놓고 주말이 되면 컴퓨터로 다운로드를 받고는 했다. 노래를 듣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이 나온다 하더라도 꼭 한번은 더 들어봤다. 처음에 알아차리지 못한 그 노래의 매력이 두 번째 들을 때 튀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갸륵한 정성이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니 살짝 울적해졌다. 그 때와 지금 모두 엄청난 공부량에 치여 사는 것은 똑같지만 지금의 삶에는 한 스푼의 정성도 들어가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삶에 정성이 없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내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다 보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정성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하는 나날들은 애정과 관심 없이 무심코 흘려보낸 하루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진심 어린 삶을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가 ‘listen’을 했다면 근래의 ‘나’는 ‘hear’를 하고 있다. 더 이상 가사와 멜로디를 음미하지 않고 반복해서 듣지도 않는다. 가사 외우기는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빨리 다음 노래로 넘어가 버린다. 길거리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좋은 노래가 들려와도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좋은 노래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꺼버린다.

이런 나의 모습이 비단 노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전반적인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소중한 경험 하나하나를 너무나도 사소하게 여기며 시간이 지나면 쉬이 잊어버린다. 같은 일이 조금만 반복되어도 금방 지루해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하기는커녕 조금이라도 재밌지 않으면 더 자극적인 것을 찾으러 떠나버린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다음 사람을 찾는다. 세상의 소리를 ‘hear’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삶이 가벼워졌다. 한 곳에 진득이 머무르지를 못하고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휩쓸려 다니는 낙엽이 되어버렸다. 세상 사람들의 버스 기사가 되어 그들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어느새 가벼이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오토바이 같은 모양새가 된 꼴이다.

무엇이 나를 이처럼 만들었는지 고민해 본다. 너무도 바쁜 일상에 지친 탓일까, 아니면 모든 일에 대해 부질없음을 느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중독된 탓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러다간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도 아픈 이의 간곡한 이야기마저 흘려들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자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삶은 정말 무의미하다.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삶의 정성 한 토막이 앞날에 함께하기를 소원해본다.


윤명기 편집장

<medschool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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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먹을 펴 내려놓아야 할 때  (0) 2016.07.10

주먹을 펴 내려놓아야 할 때


서울 양천구 D의원에서 C형 간염 집단 발병 사태가 일어난 지 3개월이다. 당시 K원장과 그 부인의 주사기 반복 사용, 주사액 재사용 등의 행태로 K원장 본인을 포함해 60여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D의원 방문자 중 C형 간염 발병자 수는 16년 3월 현재 97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일부 환자는 B형 간염에도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지 두 달도 안 되어 원주의 H 정형외과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번엔 규모도 더 커서 현재 217명의 감염자가 있다고 하며, 무려 주사 시술을 받은 환자 10명 중 3명에 이르는 높은 감염률을 보였다. 겨우 두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D의원에 대한 조사는 D의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 2,266명의 환자들에 대한 전수조사로 이루어졌다. 그 중 검사가 완료된 환자가 1,672명이니 이환된 환자의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원주의 경우도 가장 위험한 PRP 시술을 받은 이들 중 2/3만이 검사를 받은 상황이라 백 명이 넘는 환자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충북 제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이 사건들이 모두 내부자의 신고에 의해 적발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의료기관 내 종사자 혹은 환자에게 재사용 관련 공익신고를 요청하는 동시에 포상금을 제시하고 있으며, 건보공단과 심평원 내 자료를 통하여 의심기관을 정해 3~5월 사이에 현장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체적의로는 의료법 36조 의료기관 개설자 준수사항에 ‘감염관리에 관한 사항’을 추가해 1회용품 재사용으로 인해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나아가 면허 취소에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에서는 의사의 과실이라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해법이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로만 진행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2월 17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치료재료에 대한 적정 수준의 수가 보전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00원도 되지 않는 주사기까지 아끼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현행 수가 체계가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의료용 소모품들에 대한 수가는 원가보다도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가체계 탓이 있다는 것이 정말 합리적인 주장일까? 몇몇 비싼 수술용이나 고급 술기용 소모품의 경우에는 한 번에 2~3만원 이상의 적자가 나는 물품들도 분명히 있지만,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여 D의원 측에서 얻었을 이익은 많아도 하루에 2천원을 넘지 못 했을 것이다. 수익이 섭섭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D의원 측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주사기를 재사용했으며, 본인과 본인의 부인까지 C형간염에 감염되도록 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추후에 발각된 두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입장 표명에는 의사들 사이의 견고한 카르텔이라는 배경이 숨어 있다. 고대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현대의 제네바 선언에는 모두 의료인으로서의 명예와 위엄있는 전통을 지킬 것이며, 의료인 동료 모두는 형제며 자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은 의사들의 선서 내용들 중 가장 잘 지켜지는 항목이다. 한국과 같은 기형적인 의료시장에서는 이 따뜻한 형제애가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안 그래도 다 같이 힘든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어지간히 심각한 것이 아니면 서로를 건들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풍조 아래 묵인되는 윤리적이지 않지만, 불법은 아닌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의사들의 당연한 추론이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주사기 사용 문제 제보가 나왔을 때 의사들의 반응은 ‘소설 쓰지 말라’였다. 합당하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제가 맞다면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지 못 한 주체에 의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D의원에서 왜 이런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금전적 추론도,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도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와중 3월 4일, 원주의 H 의원 원장이 59세의 나이로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2월 29일 10시간에 달하는 경찰 수사를 받았고, 사체로 발견된 당일에 2차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비극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C형 간염을 얻은 환자들에겐 더 이상 피해보상을 요구할 주체가 없다.

상자 속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갈 구멍에 손을 넣어 사탕을 가득 쥐게 되면 손을 꺼낼 수 없게 된다. 다 내려놓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조금은 내려놓아야 여유가 생긴다. 지금 의료계가 마주한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오랜 노력으로 얻은 전문직의 권위와 명망을 몇 명의 이유도 모를 기행으로 포기해야 한다거나, 처벌이 강화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의사들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면 어떨까? 의사의 처벌에만 집중되는 정부의 대처가 부조리하고 납득할 수 없다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대안을 의료계에서 직접 내 놓는 것이 더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 의사의 비극적인 결말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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