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산부인과 실습 논란, 어디부터 문제인가
의대생이 산부인과 진료 및 분만 과정에 참관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출발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산부인과 진료실에 전공의가 출입하는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당시 양 의원은 ‘마루타’라는 선정적인 표현을 써 가며 감정적인 여론을 부추겼다. 지난 6월과 8월에는 의대생의 참관 하에서 분만을 마친 산모가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심정을 밝힌 글을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렸다. 수만 건의 조회를 기록한 이 글에는 의대생의 산부인과 실습을 비난하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이를 계기로 최근까지 사이버게시판과 언론매체에는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 어디에도 실습교육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의과대학 실습교육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얕고 단편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의대생의 실습은 교육권만의 문제가 아니며, 의료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의대 교육의 본질적 부분이다.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왜 ‘교수(敎授)’인 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분명해진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성어처럼 의대생들도 진료과정에 참여해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그에 대응하는 의료인들 사이의 협업과정을 피부로 느낌으로써 비로소 의료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현재 산부인과 진료를 맡고 있는 의사들도 학생 때부터 축적된 경험을 통해 지금의 유능함을 형성한 것이다. 산부인과처럼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깊이 관련된 진료과의 경우 환자의 인권 보호에 더 각별히 주의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대생이 머지않은 장래에 의사가 되어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질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대생의 참관실습은 환자의 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환자의 인권까지 보호하는 차원의 일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될 의대생의 비율은 한정적인데 왜 그들 모두가 실습을 해야 하느냐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전공을 결정하는 것은 의대의 모든 교육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이루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를 전공으로 하지 않더라도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과 경험이 있다. 비행 중 뜻밖에 분만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면 영상의학과가 됐건 정신과가 됐건 의사가 산모를 돌보고 아기를 받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문제가 실습교육의 중요성과 그 의미에 대한 국민적 인식부족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진이나 분만 혹은 수술 과정에 참가하는 것이 의대생 실습교육의 현 주소다. 의료법 시행규칙 19조에 “의대생은 지도교수의 지도감독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느 환자건 자신이 누군가에게 실습의 대상으로 존재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산부인과의 경우 동의한 적 없는 실습생의 참관 사실을 알게 될 경우에 느낄 실망감이나 모욕감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교육주체는 어떠한 목적과 과정으로 의대생의 실습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사전에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며, 환자가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훔쳐보기식 참관실습보다는 떳떳하게 환자의 동의를 구하고 참관하는 것이 환자와 의대생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83호(2011.10.10)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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