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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지난 8월 초, 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의 의료비 지출 및 과잉진료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의료지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OECD는 ‘한국보건의료 현황 및 개혁방안’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인구 고령화 및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고 진단하고 “이를 억제할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비 급증과 과잉진료

OECD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1997~2007년 사이 일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OECD  33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연평균 일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8.7%에 달해 OECD 평균인 4.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고가약물 처방의 확대로 인한 약제비 지출의 증가, 인구 고령화, 상대적으로 긴 재원일수 등을 들었다. 한편 보건의료 제공자들을 위한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는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유인함으로써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인 1.7명에 그쳤으나, 의사 1인당 수진 횟수는 OECD 평균의 3배 이상을 기록해 제일 높은 수준이었다. 의사수가 적은데 반해 진료건수가 많다는 것은 과잉진료로 인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OECD가 제시한 대책들

OECD는 의료비 지출과 과잉진료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효율성 개선을 통한 의료비지출 통제, 의약품 비용의 절감, 보건의료의 접근성 보장, 의료수가 조정 등을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또 의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경쟁을 촉진시키고, 투자자 소유의 병원은 인수합병을 허용하며 현재 낮은 수준의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OECD는 의료비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병원에서 포괄수가제도 사용을 확대해 환자들의 재원일수를 줄이고, 인두제 도입하여 의사의 1인당 수진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 정부가 1997년 5개 질병에 대해 포괄수가제도를 시행한 결과 의료비용이 14%, 재원일수가 6%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기요양 서비스를 병원이 아닌 가정 및 장기요양 시설에서 하도록 하고 장기요양의 충분한 수용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약제비 절감을 위해서는 복제약의 효과적인 사용과 가격 인하 및 일반의약품의 약국판매 규제 완화를 대표적인 보완책으로 내놓았다. 또 본인부담금을 덜어주고 저소득 가구 및 환자본인부담금 상한선을 통해 환자들이 적절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하며, 특정 의료전문분야의 부족현상 완화를 위한 의료수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염승돈 기자/인하
<youmsd@e-mednews.com>


·포괄수가제 :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표준화된 진료비를 보험자가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제도다. 진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보험수가를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두제 : 의사의 하루 진료건수를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불이익을 줌으로써 진료의 질을 유지하려는 제도.국민건강보험은 하루 75건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하면 정상 보험수가의 일정률을 삭감해 차등 지급하고 있다.

2009년, 국민들은 총 16조원의 건강보험금을 모았다. 사업자들은 여기에 10조원을 보탰다. 정부는 3조 7천억 원의 예산도 모자라,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 1조원까지 건강보험금으로 돌렸다. 회사와 국가가 건강보험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는 우수한 건강보험 시스템. 게다가 지난 달 7일에는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WHO등이 공동 주최한 ‘2010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이 열려, 22개 국가가 한국 건강 보험의 우수성을 배우러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공단은 32억 원의 적자가 났음을 공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8월까지의 적자는 2965억 원, 올해 예상 적자는 1조원을 훨씬 웃돈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 등이 진행한 연구에서 전망한 2030년 적자는 최소 22조원, 최대 66조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일까? 그 원인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 적게 벌고 많이 쓰는 경영철학?

네덜란드 직장인의 경우 봉급의 20.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독일과 프랑스도 각 14.2%와 13.5%로, OECD 국가들은 봉급의 약 1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봉급의 5.33%에 불과한 ‘저보험료’를 낸다. WHO의 보건재정 전문가 잉케 마타우어 박사는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이 심각하게 낮으며, 이로 인해 보장성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 의료보험의 보장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보험적용 범위 확대’는 선거 공약의 단골 메뉴였고, 지난해에도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까지 3조원이 넘는 규모의 보장성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윤희숙 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보장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며 비난했다.

▲ 의약분업은 조제료를 남기고

한 환자가 정기적으로 고혈압 진단을 받는 과정을 보자. 의사는 진단 후 고혈압 약 ‘테놀민’을 1달간 복용하도록 처방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수가는 8780원이다. 그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발을 디디는 순간, 1970원이 계산된다. 환자의 방문 시마다 기본 조제 기술료 740원, 복약 지도료 680원, 약국 관리비 550원이 청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 가격으로 8430원, 행위가로 5470원, 약품 관리료로 1940원이 더 부가된다. 총 17810원, 약 가격을 빼더라도 의사의 수가보다 높은 9380원이다. 게다가 고혈압 환자는 90% 이상이 재진이지만, 약국의 처방에는 재진시에도 늘 같은 금액을 청구한다. 혹, 심야 요금이 적용된다면 총 19890원이 청구된다.
2000년에만 해도 3896억 원에 불과하던 조제료는 의약분업 후인 2001년 1조 4349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 2009년까지 약품비를 제외한 조제료만으로 18조 4324억 원이 나갔다. 이러한 내용을 트워터에 올린 황상준 씨는 “약사 손은 다이아몬드 손인가”라며 혹평했고, 대한의사협회 또한 조제료의 급속한 증가가 건강보험 적자의 주원인이라 지적했다.

▲ 건보는 통합, 책임감은 분산

의약분업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또 다른 큰 일이 있으니, 바로 ‘건강보험 통합’. 지역 혹은 회사 등의 단위로 건강보험금을 관리하던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통합한 것이다. 분산된 돈을 모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던 공단의 계산이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지역 혹은 회사의 건강보험금이 적자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그 결과, 보험료 미수금액1)과 부당지급액2)은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 소송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미수금액의 경우, 2009년 미수금액은 300억원, 2010년 7월 말까지의 미수금액은 268억 원에 이른다. 부당지급액의 증가는 의료보험 지급 이전에 꼼꼼히 따져 보지 않은 이유가 큰데, 2009년 부당지급액은 2097억 원이었으며 올해는 21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 노병(老病)은 죽지 않는다?

급속히 발전한 한국의 의료 속에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건강수명’의 경우 여전히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다. 게다가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영석 연구위원은 고령화가 건강보험 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2009년의 경우 65세 이상의 인구가 건강보험 재정의 약 30%를 사용했으며, 전 인구의 15%이상이 65세가 되는 2020년의 경우 43%를 사용할 것이라 예측했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건강 보험제도와 조제료, 그리고 보장성

의료보험에 가입된 경우, 의료 기관에 치료비를 지불할 때 일부를 공단에서 지급한다. 예를 들어 환자 부담률이 40%인데 병원에 10000원을 내야 한다면, 환자는 4000원만 내면 되고 남은 6000원은 공단으로부터 병원에 지급된다. 약국의 경우에도 환자가 돈의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조제료 형태로 공단이 약국에 지급한다. 한편, 일부 치료행위에 대해서는 공단이 부담하지 않고 환자가 대부분을 부담하는데, 이러한 ‘비보험’ 항목을 줄이는 것이 ‘의료보험 보장성 확대’이다.

1) 미수금액 : 폭행이나 상해 등의 피해자를 치료하는 경우, ‘구상금’이라는 형태로 의료비를 미리 지급하고 가해자에게 그 돈을 청구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그 돈을 내지 않는 경우 미수금액으로 남는다.
2) 부당지급액 : 보험혜택을 받지 않아야 하는 환자가 보험혜택을 받았을 때 지급된 돈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30일 전공의 제도를 총체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는 인턴기간의 축소 혹은 폐지 그리고 분과별 수련의 기간의 조절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의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연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대한의학회는 지난 8월 20일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전문의제도 개선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대한의학회는 인턴 축소 혹은 폐지에 따른 진료능력 저하를 막기 위핸 대안으로 ▲전문의형(미국 모델) :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전문의 과정 중 일정기간(1~3년)을 이수하면 진료면허 부여 ▲공통과정형(일본 모델) : 의사면허 취득 후 2년 간 공통과정을 거치면 진료면허를 주고 이후 3~4년의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함 ▲전문의/진료의 혼합형 :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따면 전문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거나 2년 간 진료의사 과정 이수 후 진료면허 획득 등의 세 가지를 제시했다. 한편, 전공과목 수련의 이상적인는 모델로 유관과목의 공통수련과정 2년과 전문과목 수련과정 2년과 세부전문 수련과정 2년 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인턴제도의 역사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실시했던 이 제도는 지금과는 그 방식이 다소 달랐다. 처음 1년동안에는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각 분과를 돌며 수련했지만, 그 다음 1년은 한 과에서만 수련을 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무려 한세기가 지나면서도 인턴제도는 그 효용가치를 인정받아 조금씩 제도적으로 정착해가면서, 전공의가 되기 위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필수적 코스가 되고 있다. 즉 인턴제도는 학부기간의 임상 교육과 달리 의사로서 직접 진료를 하면서 여러 진료영역에 대해 배우고, 병원 생활에 적응하며 여러 과를 체험하며 향후 진로를 결정할수 있다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병원은 이러한 인턴 및 레지던트 제도를 통해 비교적 낮은 급여로 순종적이며 일정 기한이 지나면 퇴직하는 고급 인력을 사용할 수도 있기에 병원 입장에서도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렇다면 현행 인턴제도가 문제시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 인턴제도의 불합리한 운영으로 수련의 질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인턴의 수련기준이 자리잡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 수련 내용은 병원이나 과별로 다른데다가 의국의 잡무도 인턴이 상당부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빈번한 폭력, 근무시간에 대한 불명확한 기준 및 급여 등 부적절한 처우는 여전히 종종 표출되는 문제이다.
둘째, 지난해부터 개정된 의사고시를 고려했을때 인턴제도가 불필요 해졌다는 점이다. 작년부터는 의사면허 국가고시에 일차적인 진료능력을 평가하는 실기시험인 CPX와 여러 임상 술기들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OSCE가 추가되었다. 따라서 그 전에 비해 졸업생들의 임상적 능력이 어느정도 보장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전공의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편이 필요해졌다는 지적이다. 학부4년, 의전원 4년, 5년의 수련기간, 남성의 경우 군문제가 더해진다면 최소 삼십대 중반은 되어야 전문의가 되는것이다. 의사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실제적 시기가 지나치게 늦추어지는 것은 의료 전반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인턴제도가 폐지된다면 이를 대체할수 있는 수단으로 크게 세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PA(physical assistant)로 이는 의사 업무를 보조하는 인력인 PA를 고용하는 제도이다. PA 제도는 지금도 흉부외과등 일부 지원자가 많지 않은 기피과에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PA는 다소 숙련도가 떨어져 일정기간 수련을 이수해야 술부 봉합이나 위관 교체등의 시술이 가능하기에 이들을 육성하는 것이 다소 힘들것이며, 혹여나 이들이 수준 이상의 업무를 부여받을 시에는 불법 의료행위의 가능성도 있어 다소 제도적으로 미비하다.
이를 보완한 제도가 NP(Nurse Practitioner) 제도이다. 이는 기존의 PA제도의 맹점을 보완한 것으로 이들 NP는 PA들 중 일정 정도 이상의 술기를 습득하고 검증받은 이들을 뜻한다.만약 이들의 업무를 제도적으로 정확히 규정한다면 지금 인턴이 맡고 있는 업무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 즉 수술보조나 설명보조등을 NP에게 위임하고 나머지의 업무를 레지던트가 맡는다면 제도가 바뀜에 따라 발생하는 인력공급 부족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몇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NP를 고용할 시에는 기존 인턴의 1.5~2배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병원에 순응적인 인턴에 비해 NP의 경우 연장근무 시에 근로기준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병원의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존 전공의들과의 갈등 역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련 과정에서의 문제를 다른 나라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을까? 미국의 경우 서브인턴제도를 운영하며, 학부 과정을 마친 후 일부과를 제외하고는 바로 레지던트 과정에 입문하는 식이다. 일본의 경우 1968년 이후 인턴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임상연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초적 1차 진료 능력을 위한것으로 2004년 부터 2년 과정을 거쳐야 독립적인 진료가 가능하다. 독일 역시 2003년에 우리와 같은 인턴제도의 문제점 (과도한 노동,박봉 등) 때문에 인턴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영국은 의대 졸업 후 내과계 및 외과계 수련을 6개월씩 1년간 의무 수련을 거쳐 GMC(General Medical Council)로 승인해준다. 그 후 일반의로 3년의 수련기간을 갖고, 전공 분야에 따라 5~6년 추가되는 등 보통 전문의로 3년의 전문 과목을 수련한다.

민태홍 기자/순천향
<minth@e-mednews.com>

“과잉 진료 통제” vs “최선의 진료 보장”

올 하반기 의료계를 뜨겁게 달굴 이슈 중 하나는 ‘총액계약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9일 하반기 건강보험 수가 협상이 시작되면서 총액계약제 전환 논의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은 올해 3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까지 총액계약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의에 불을 지폈고 가입자 단체는 적극 환영, 의료계는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 달 15일 민주당이 총액계약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논의가 의료계를 넘어 주요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총액계약제? 행위별수가제?

진료비 지불 방법은 통상적으로 지불단위에 따라 행위별수가제, 포괄수가제, 인두제, 총액예산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행위별수가제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하는 제도로 서비스 항목별로 가격을 매겨서 보상하는 방식이다. 한편 총액계약제는 정부나 보험자와 의료기관이 미리 계약을 통해 일정기간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총액으로 결정한 뒤 이를 의료기관에 보상하는 방식이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의료제공자는 제공한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 지불을 받지만, 총액계약제에서는 환례 수가 증가하거나, 등록 환자수가 늘어나더라도 일정금액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에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는 전적으로 보험자가 모든 위험을 떠안게 되지만, 총액예산제는 의료제공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 이처럼 위험 부담의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의료제공자는 행위별수가제를, 반대로 보험자는 총액예산제를 선호하게 된다.

왜, 지금, 총액계약제인가?

건강보험공단은 올해 1~8월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965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재정 불안은 곧 건강보험 체제 자체를 흔들 수 있고, 보장성 약화로 이어져 의료 안전망을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국고 지원 확대,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현행 지불 제도의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의료 공급자가 소득 증가를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하거나 외래 방문 횟수를 늘리는 등 의료서비스를 과잉 공급하거나, 비급여 의료서비스의 제공량을 늘리려는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 또 치료 효과가 높은 의료서비스보다는 높은 이윤을 보장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경제적 유인을 가지게 되고, 이는 나아가 진료과목별 의사 수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의사들의 전문 과목 선택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지불제도를 개편하여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 팽창이 해소되면 의료비가 적정화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또한 확보되어, 급여 수가 인상과 급여 범위 확대도 꾀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불제도 개편으로 공급자의 적정 수가 보장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계 ‘절대 불가’

한편 의료계는 이번 사안에 대해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총액계약제는 비용절감의 유인을 가지기 때문에 의사가 최소한의 처방만 하게 하여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행위별수가제와 달리 총액계약제 하에서는 첨단 의학기술을 도입하려는 동기가 저하되기 때문에 의학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건보 정형근 이사장은 다양한 인센티브와 모니터링을 하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독일 등의 사례를 보면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됐다는 연구는 없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불제도 개편과 함께 지불 수준(수가) 향상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료 서비스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의료계는 특히 원가보전률이 90%에도 못 미치도록 책정되어 있는 불합리한 수가 체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총액계약제를 논의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원가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라며 이번 총액계약제 논의에 대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정책’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일부 공급자 측은 총액계약제 논의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지불제도 개편 이전에 의료전달체계 확립, 보험료의 적정수준 인상, 국고보조 확대 등을 우선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외국의 사례는?

행위별 수가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독일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총액계약제를,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행위별수가제와 총액예산제를 병용, 미국 역시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병용한다.
아시아 국가 중 총액계약제를 적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1995년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면서 총액계약제를 도입했고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현재 대만의 건보 보장률은 85%, 국민의 의료 이용 만족도는 80%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 건보공단은 이런 대만의 성공 사례를 총액계약제 추진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공 뒤에는 의료 공급자들의 희생이 강요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총액계약제가 도입되는 과정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공급자 단체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대만의 사회적 합의가 반쪽짜리 사회적 합의였다는 비난을 받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함께 맺는 합의 계약제로

총액계약제 문제로 보험자와 가입자, 그리고 공급자는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차를 드러내 논의가 앞으로도 난항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수가를 정상화 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지불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서로 간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있다. 서울대 이진석 교수는 건강보험 가입자 포럼에서 "건강보험제도를 구성하는 이해당사자간 힘의 관계가 맞선 상태에서 일방의 주장만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현재 제도 유지를 답습만 하게 된다"며 합의를 통해 접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전진한 기자/대구가톨릭
<redpill@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