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좇는 의사 법의관을 만나다
-"일정한 일을 한다는 것, 여유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하홍일 법의관
매스컴에서 큰 사건사고를 다룰 때마다 등장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근 미국드라마 'CSI과학수사대'로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실을 좇아 법의학을 하게 되었다는 하홍일 법의관을 만났다.
약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울산의대를 졸업했고, 아산병원에서 인턴, 병리과 레지던트 수련과정 후 서울대에서 법의학 박삼점 칠오쯤? 정확히 말하자면 박사과정은 끝났지만 논문이 완전히 안 끝났으니 박사라고 할 수는 없고 박삼점 칠오 정도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하하하. 국군 수도병원 병리과장을 지냈고, 서울삼성의료원에서 신경 병리학(neuropathology)을 전공했다.
학생때부터 법의학을 하고 싶었나.
법의학인지는 몰랐지만, 부검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서 의대를 오기는 왔는데, 내가 원하던 길과는 다른 공부라고 생각하던 중 실습을 돌때쯤에야 알았다. 그게 법의학이었다는 것을. 그게 17년 전이다. 그렇게 학생 때부터 국과수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법의학계가 좁기도 하지만, 지금 돌아가신 선생님들까지 학생 때부터 뵈어왔기 때문에 법의학계엔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임상의로의 길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었는지?
일종의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 정신과 책에서 그런 카테고리를 찾진 못했지만, 사람 만나는 게 어려웠다. 10년전 엔 가게에도 못갈 정도로 낯선 사람하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병원에 있는 동안, 심한 피해의식을 가진 보호자들을 많이 만났다. 환자에게 친절하게 해주려 노력했고, 입원비를 내주거나 한 적도 있는데,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많더라. 악행금지의 원칙을 지킬 자신이 없어졌다.
실제로 법의관이 되고나니, 이런 점은 학생들이 흔히 가진 편견과 다르더라 싶은 점이 있지않나.
별로 험하지 않다는 것.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다. (실제로 국과수 본소의 법의학과는 얼마 전 리모델링 탓인지 무척 쾌적했다.) 그리고 우린 (법의관이라는 길을)원해서 왔다는 것. 봉급이 물론 절대적인 액수로는 적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얼마전만해도 병리과 의사라면 교수의 길도 어렵지 않았지만 다른 장점을 보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장점은 무엇이었나.
언제나 일정한 일을 한다는 것.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또 악행금지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부검을 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수 없고, 끼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의관으로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한건 부검하는데 한 시간, 감정서 쓰는데 서너 시간 걸린다. 격주로 한주씩 부검하고 부검하는 주는 하루에 많을 땐 열두건씩도 하지만, 안하는 날도 있다. 부검하지 않는 시간은 소견서도 쓰고 공부도하고, 강의도 하고, 교과서도 쓴다.
종종 경찰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나. 가령, 자연사나 자살을 타살로 밝혀낸다든지.
내인사가 아닌 것 같다고 밝혀내는 경우는 있지만, '이거 대단한데!' 할 일은 아니다. 경찰에서도 이상하니까 국과수에 가져온 것 아닌가. 가져 온 쪽에서 이미 단서를 준 것이다. 상처가 이상하다든가, 정황이 이상하다든가.
경찰과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호흡이 잘 맞지 않거나 답답한 점도 있을 것 같다.
간혹 강력하게 이건 타살이다 싶은데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건으로 바쁘다고 (수사과정이) 더디어 지거나,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나 싶은 의심이 갈 때가 있다.
한번은 국과수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무 단서도 없이 의뢰가 들어왔는데 소견을 이야기 해주니까 그제 서야 단서를 주는 형사도 있었다. 말하자면, 환자가 '나 어디 아프게, 한번 맞춰봐' 하는 식이었다. 또 (기자에게 의뢰서를 보여주며) 이런 사진들이 나중에 특이한 사건이다 싶어 학계에 보고하려고 다시 찾아보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의관은 병리과 의사만 뽑나.
이젠 병리과만 뽑는다. 과거엔 해부학 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지금은 없다. 과거엔 임상병리 출신선생님들도 오셨는데, 이젠 병리학전공자 중에도 법의학 과정을 하고 온 선생님들을 뽑는다.
국과수엔 법의관이 얼마나 있나.
전체 열여덟. 그 중 가톨릭대와 고려대에 두 명이 분소 장으로 일 년씩 파견 나가있고, 지방에 분소 가 있는 사람들, 부장, 법치관(치과의사), 병리만 하는 분 빼면 (실제로 본소의 부검실에서 활동하는 법의관은) 일곱 정도.
우리나라 법의학과 외국의 법의학을 비교하면 무척 적은 수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법의학을 외국과 비교한다면.
외국 학회가보면 우리가 봐온 경우가 더 좋다 싶은 것도 많고, 교통사고 같은 경우도 우리만큼 많이 보는 나라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법의관 한 명이 1년 중 부검을) 적게는 190건, 많게는 300건도 한다. 그런데 미국에선 전부 300건 넘게 한다. 물론 총창(총기 사고로 생긴 창상. 비교적 부검과정이 간단한편.)이 많긴하지만. 스코틀랜드는 400건한대요. 호주도 250건. 단지 미국에선 250건 이상 할 경우 부검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 그 이하로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고는 한다.
법의관이 보는 우리나라 법의관이라는 직업의 비전은 어떠한가.
법의학 생각한지 20년 조금 못된다. 당시 나의 선생님은 10년 뒤엔 나아지지 않겠느냐 하고 지금도 그런 얘기들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아지긴 나아졌다. 우선 봉급이 많이 나아졌고 일반적인 부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작년에 공무원 중 전체직급 월급이 다 올라간 직종은 하급 공무원일부외에 국과수 법의관 뿐이다. 제일 큰 문제는 사람들이 법의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까진 하겠다고만 하면 받았지만,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2-3년 후엔 (경쟁율로만 따지면) (흔히 말하는)인기 과에 들 것이다.
부검을 통해 삶의 관점에 변화가 있지는 않았나.
종교의 생성 원인 중 가장 큰 건 죽음에 대핸 공포일 텐데, 그게 없어졌다. 종종 친구들에게 말한다. 널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할 순 없지만,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면 적어도 너를 한번만 더 보고 싶다고 후회하고 싶진 않다고. 내 인생철학이다. 순간순간 매일 다 충족시키고 살아야 한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법의관 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진실을 좇는 사람. 의료사고에 대한 부검이라면, 의사와 환자의 유족들, 양쪽에서 욕을 먹고 싶다. 사실 100% 확신이라는 것은 있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에서 좋아할려야 좋아할 수가 없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 이럴 가능성이 높다 라고 진실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법의관(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5000건이 될지, 1만 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후에 내가 했던 부검에 대해 하나의 전집처럼 하나도 틀림 없이, 마음을 다해 쓰고 싶다.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꿈이니까.
의사가 될 후배들한테 한마디 한다면.
종종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시간도 넘게 죽은 환자 얘길 한다. 대개는 의사의 과실도 아니지만, 들어보면 그냥 억울하고 속상하고 병원에서 죽었으니 이해는 안갈 뿐 딱히 소송에 대한 의지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흔한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동안 듣는 의사는 딴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얘기가 끝났을 때 많은 보호자들은 울면서 이제 부검은 필요 없다, 말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 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 의사는 첫 개요만 생각날 뿐 그 긴 얘기를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피곤한 기색 없이 쉬지 않고 조곤조곤 풀어내는 하홍일 법의관의 이야기 속에서 무척 순수하고 정직한 열정이 느껴졌다. 바쁜 시간에도 의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가치롭게 여겨야 할 것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 주신 하홍일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안지윤 기자/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