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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8 편집자가 독자에게
  2. 2015.12.07 [1면 사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의대생의 윤리의식 3

편집자가 독자에게

108호/오피니언 2015. 12. 8. 00:27 Posted by mednews

의대생신문, 멋진 비행을 위한 이륙 무사히 성공

 

 

 올해 마지막 신문 108호 잘 읽으셨나요? 한 해를 돌아보며 이번 호에서는 제가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되며 들었던, 한 학기동안 자리를 지키며 가졌던 생각을 조심스레 꺼내볼까 합니다. 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꿋꿋이 써내려 가겠습니다.
 2015년 6월, 편집장 자리를 인계받으며 제가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리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급회장을 몇 번 했었던 것이 리더 경력의 전부였던 저였기에 선뜻 편집장의 옷을 입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별 활동이 있을 때면 늘 앞장서서 조원들을 이끌었던 적도 많았기 때문에 리더십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엿한 단체 하나를 두 어깨에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의대생’으로 구성된 집단을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대생 단체의 리더와 저와의 모습은 일단 학년과 나이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저는 일단 최소 본과 2학년 이상, 나이는 대충 24살 정도가 의대생을 이끌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작 예과 2학년생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나이도 22살로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란 처지입니다.
 비단 이러한 숫자들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겠지요. 모름지기 리더라면 기운 넘치는 목소리, 강인한 체력, 신속하고도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운 넘치기는커녕 다소 짧은 혀 때문에 부정확한 발음을 내는 처지이고, 운동과는 담을 쌓아 체력 또한 형편없습니다. 신속, 냉철과는 거리가 먼 제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지시나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말을 잘해서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말 주변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요.
 심지어 그 당시 의대생 신문사의 상황마저도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활동하는 기자의 수도 부족했고 재정상황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의대생신문은 그 당시 존폐의 갈림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괜히 내가 편집장이 되었을 때 신문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어딘가에 쉽게 털어놓을 곳도 없어서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때 당시 106호 신문을 내며 제가 썼던 ‘편집자가 독자에게’를 살짝 들춰보니 ‘여름 내내 거울을 볼 때마다 항상 초췌하고 낙담한 모습만이 담겨 있어 제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라는 문장이 있더군요. 힘들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성격은 아닌데 겉으로 드러낸 걸 보니 정말 힘들었었나 봅니다.
 제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였습니다. 저는 여태까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생각하던 기존의 리더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리더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직 변화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낼 준비가 된 사람만이 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룩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6월 말부터 8월말까지 2개월의 여름방학 내내 착실한 준비를 하고자 했습니다. 다행이었던 게 여름방학에는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직 저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편집장이 되면 당연히 회의를 진행해야 했기에 회의 진행하는 법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싶었기에 기획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그에 알맞은 협상법도 익혀야 했기에 또 그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하였습니다. 저와 조금 다른 생각의 이야기일지라도 거부하기보다는 우선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름방학 첫 한 달간 많은 것을 배웠고 착실히 준비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이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가로막힐 때도 있었고 상대방을 향해 보냈던 커다란 기대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저에게 치명타를 입힐 때도 있었습니다. 끝내는 과연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정작 실전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고작 한 달 치의 준비로 잘 안 된다고 징징거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착실히 준비해나갔습니다. 디자인 공부도 했고 컴퓨터 공부도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제 능력이 받쳐주고 편집장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는요? 대성공입니다. 이유를 들라고 하면 ‘여러분이 지금 의대생 신문을 보고 있잖아요.’ 정도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106호의 ‘편집자가 독자에게’를 인용해보면 제가 그 당시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그동안 진행한 일들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전을 손에 쥐고 조금씩 긁어보는데 꽝은 아닌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금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박 복권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기가 시작하고 신문 제작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제 공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보다 능력 있고 성실한 기자 분들이 대거 참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올해 의대생신문은 멋진 비행을 위한 이륙을 무사히 성공한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된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변화(change)는 언제나 기회(chance)를 불러오는 법이니깐 말입니다. 내년이 더 기대가 됩니다. 2016년에 함께할 신입기자님들과 함께 더 알차고 색다른 컨텐츠 들고 오겠습니다. 좀 더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내년에 봅시다.

 ps. 2016년 신입기자 모집 공지가 내년 1, 2월 중으로 나갈 예정이지만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 메일로 먼저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명기 편집장
<medschooleditor@gmail.com>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의대생의 윤리의식

 

 

※ 해당 글은 기사가 아닌 사설임을 밝힙니다.

 

조선대학교 데이트 폭력 사건은 지난 주 의대생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다. 필자도 기사를 접하고 녹취록을 들으며 소름이 끼쳤다. 여태 살면서 일방적인 폭행 행위를 그렇게 적나라한 모습으로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초기에 수업시간에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는 피해자의 요구에 대해 ‘연인 사이의 일’이라며 안일한 태도를 보였었다. 하지만 세상에 일이 알려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부랴부랴 사과문을 내놓는 한편, 가해 학생에 대한 제적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었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해당 조치가 내려진 이후로 점점 시들시들해져가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그저 하나의 폭력이 가미된 ‘해프닝’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의과대학 내부적으로도 드러난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떤 이가 누군가를 때렸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으니깐 때렸겠지.’라는 추측을 한다. 왠지 모르게 그러한 가정이 인과관계를 만족시켜 우리의 ‘과학적인’ 자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식 구조가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게 어려서부터 이러한 상황을 자주 접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서 둘이 사과해.”
“선생님, 저 녀석이 먼저 때렸어요.”
“하지만 너도 때렸잖니? 어서 서로 미안하다고 해.”
“선생님, 저는 계속 맞기만 하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네가 먼저 기분 나쁘게 하거나 잘못을 했으니깐 널 때렸을 거 아니야?”
“…”
“어서 서로 미안하다고 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미안해.”
“나도.”
“그래, 그럼 앞으로 둘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렴.”


허나 이러한 논리를 폭력, 특히 전치 3주짜리 상해를 입힌 어른 세계의 폭력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까?


피해 학생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학장에게 찾아가 가해자와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에도 학장은 “둘이 싸운 것 갖고 학교에 왜 그러냐.”며 오히려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는 피해자에 관한 질 나쁜 소문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SBS 뉴스 브리핑’에 공개된 가해자 지인과의 짧은 인터뷰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모습에 관한 질문에 관해 그 지인은 가해자는 원래 이미지가 젠틀하다, 오히려 피해자의 평소 이미지가 더 좋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이후에 공개된 단체 카톡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퍼부으며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부장 사회의 성향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면 ‘여자가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라는 논리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대생 성추행 사건 때에도 이와 비슷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학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도 의대 교수들 중 일부가 “가해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 잘해줘라.”라고 말하며 가해자들을 두둔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협박까지 하였다. 가해학생 중 한 명은 교내에 피해자의 성생활이 문란했는지에 관한 문항 등이 담긴 설문지를 돌렸다. 피해자는 그 당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설문지 때문에 ‘전에 학교를 갔을 때 내가 인사해도 애들이 눈도 안 마주치는 등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작 설문지 하나 때문에 마치 성추행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고, 가해 학생을 감싸며, 4시간의 폭력 혹은 성추행을 타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과연 스승으로서, 동기로서, 같은 의료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태도일까. 두 사건의 사후 이야기들은 의과대학 내의 윤리의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윤리 교육을 더욱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의사국가고시에 윤리 관련 문항 수를 대폭 늘리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표면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근본 원인을 뿌리 뽑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점점 더 고도화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치라도 더 ‘똑똑한’ 의대생을 배출해내기 위한 의과대학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 의대생의 윤리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과연 수업 계획서나 시간표에서나 보이는 형식적인 교육, 시험장에서나 마주하는 윤리 상황들이 현실 사회에서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 큰 의구심이 든다.


의대생의 윤리는 어디까지 추락하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굳이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생명을 지켜야 하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도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고자 애써야하는 미래의 의사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같은 의대생으로서 수치심을 느끼는 바이다.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의대생 독자 분들에게 본인의 윤리의식은 안녕한지 물어보고 싶다.


최상준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총장이 조선대학교 양성평등성상담 사이트에서 상담원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의료인 양성이,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격도약·윤리관·도덕관을 가진 의료인의 양성이 과연 폭력 사건 피해자의 호소에 대한 짜증 및 묵살로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무시무시한 가정을 하나 해보며 글을 끝마치려 한다. 이번 사건은 동기 연인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약 수평 관계가 아니라 수직관계였다면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니, 이 세상에 공개되긴 하였을까?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혹은 누군가의 용기 부족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한 수많은 ‘조선대’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의대 사회의 수치스러운 해프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윤리적 폭력은 그 어떠한 이유를 갖다 대어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대생신문은 윤리에 어긋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함을 명확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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