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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_
인격장애! 의대생은 과연 정상일까?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정신과 실습을 돈 PK 나부랭이입니다. 정신과 강의 듣거나 실습 돈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격장애는 모두가 흥미로워 하는 주제죠. 정신건강의학 교과서가 읽혀지는 몇 안되는 챕터 중 하나고, 국시 공부할 때 진단기준 달달 외우기보다 주변에 한 두 사람씩 대입(?)해서 연상하면 정말 쉽게 암기되는 파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면?! 혹시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의과대학생에서 가장 많을 법한 인격장애의 체크리스트를 써보았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본인은 모른 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 따르면 인구의 10∼20%가 인격장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1%는 심각한 수준인데, 현재 국내는 약 5만∼10만 명의 심각한 인격장애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격의 정의는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한 사람의 정서와 행동의 특징적인 총체로, 주위 환경과 사람 및 자신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양상을 뜻한다. 한 개인의 이러한 양상은 청소년기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해서 거의 평생 동안 일관되게 지속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상인격의 범주에서 벗어난 ‘장애’인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까? 몇 가지 감별 포인트를 소개하자면, 우선 사회에 대한 ‘부적응’이 ‘생활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주위사람들은 힘든데’,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여겨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는 것도 중요한 단서다.
일단 ‘장애’로 판단되면 성격특성에 따라 인격장애를 분류하게 되는데,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미국정신의학회의 DSM-5 진단체계에선 10가지 인격장애를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혹시 내게도 인격장애가?!

 

의과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격장애는 무엇일까? 동기들의 앞뒷담화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cluster B와 C의 질환들이 해당된다. 이들 중 3 가지의 인격장애의 간이 진단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스스로 체크해보시길!  

 

1. 화려한 주류가
되고 싶은 연기자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아닌 상황을 매우 불편해 함
-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주 외모, 행동에서 부적절하게 성적, 유혹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짐
-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모를 중요시함
- 심한 감정기복
- 그닥 친하지 않은 관계인데도 자신은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
- 지나치게 과장되고 연극적인 언어, 감정 표현

 

2. 완벽과 통제와
고집의 삼합체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일의 내용에서 세부규칙, 목록, 순서 등에 집착하여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침
- 완벽한 계획을 세우나 이것이 계획의 완수를 방해함
- 과다하게 양심적, 소심함, 완고하고 경직됨
- 여가활동, 친구를 제쳐두고 (생계가 아닌)직업, 생산적인 일에만 지나친 몰두
- 자신과 타인에 대해 돈 쓰는데 인색
- (정서적으로 중요치 않은데도) 낡고 가치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함

 

3. 숭배를 바라는 공상가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성취와 능력에 대해 과장하며 적절한 성취없이 특별대우 받는 것을 좋아함
- 무한한 성공, 권력,아름다움, 영원한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
- 자신의 문제는 특별해서 높은 지위의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음
-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특별한 호의를 강요함.
- 착취적 대인관계
-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모름
- 타인이 자신을 시기, 질투하고 있다고 믿음

 

1.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 30세 여성 M씨는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진다. 그녀는 늘 화려한 화장과 복장을 추구한다. 직장에서 불행한 결혼생활로 괴로워하는 남자 동료를 위로하던 중 불륜을 저질렀는데, 사실이 들통 나 남자 동료는 이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 후 남자가 자신을 생각만큼 잘해주지 않자 자신의 처지를 드라마틱하게 비관하며 마치 비운의 주인공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녀는 친구관계도 피상적이며 오래가지 못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열중한다.  

2. 경계성 인격장애 : 29세 남성 S씨. 그는 늘 일이 계획된 대로 진행되는 것에 집착하고 그렇지 못하면 화를 낸다. 고등학생인 동생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자 다시 주워오게 하고 한 시간동안 혼을 냈다. 그는 회사에서 모든 일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주말에 집에서도 하루종일 회사업무를 본다. 그래서 유능하다고 평가받지만 정작 자신은 늘 일을 완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싸여있고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만 두려움이 잠시 미뤄진다. 만약 실패했을 때는 최악의 공포를 느낀다. 

3. 자기애성 인격장애 : 35세 명문의대 출신인 남성 C씨. 그는 자신의 학벌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며 주위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학벌을 알아주길 바란다. 병원에서 그는 자기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반론을 제시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동료들은 그가 두터운 막으로 혼자 싸여 있다며 그와 얘기할 때는 단절된 느낌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뛰어나므로 사회규범이나 윤리는 열등한 인간이나 지키는 것으로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욕구는 가장 우선시 하지만 동료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결과에 뜨끔하신 분이 있을런지요? 혹은 정말정말 typical한 특정인이 떠오를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돌아볼 구절 하나. 신경정신의학 2판 인격장애 단원의 첫머리에는 ‘의과대학생병’이란 신종 질환(?)이 기술되어있습니다.
“의과대학생병이란 ‘질병을 공부하며 마치 자신도 그러한 질병을 앍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질병’으로, 교과서의 인격장애 부분을 읽으면서 그 진단기준과 그에 동반된 설명들에 잘 들어맞는 주위의 친구나 친척을 떠올리며, 나아가 자기스스로가 이런 질환 중의 한 증상 혹은 모든 증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강남성심병원 정신과의 모 교수님의 경험담을 덧붙여 봅니다. 선생님이 의사 초년병이었던 시절, 외래에 왕따를 주증상으로 호소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입은 헤 벌리고 눈은 멍했던 남자아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하고 감정반응은 둔했으며 때와 눈물이 섞여 범벅이 되었던 얼굴, 더러웠던 위생상태와 허술한 옷매무새.
당시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으론 ‘저러니까 왕따 당하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치료 종결 뒤 내원한 아이가 생기 있는 눈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의사인 나조차도 결과인 ‘왕따’를 원인으로 여겨 편견을 가졌던 거라고, 사람을 알고 돕기 위한 학문을 배우면서 편견을 만들어선 안된다, 사람 자체를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셨죠.
실제로 정신과 의사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자신이 학습한 여러 가지 정신과적 질환을 자꾸만 주위사람에게 대입하는 것이란 연구논문도 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병원에서 인간관계 트러블이 날 때마다 무심코 ‘저 사람은 ㅇㅇㅇ인격장애네’ 라고 편견을 갖기 매우 쉽지요.
 
의과대학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얼굴들과 6년간 붙어살다보면 관계에 갖은 편견이 쌓입니다. 서로에 대한 색안경과 뒷담화와 나쁜 감정들만 무성해지기 십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나쁜 마음이 들 때마다 모 교수님의 말을 한 번씩 생각합니다 -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잘 적응하고 생활하는 여러분 정도라면 인격의 성숙도가 평균이상 보장된 것이니 누구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연습을 하도록!’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의사가 될 우리들인데, 지금부터 연습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 

 

웰시코기/코기엄마       
<ummameeweryo@never@.com>

The classic : 시네마 천국

96호(2013.12.11) 2014. 4. 24. 00:04 Posted by mednews

The classic : 시네마 천국
불멸의 영화가 보여주는 영화의 미학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매력탐구, 아가미의 주관적 영화감상

세상에는 갖가지 영화들이 있다. 저마다 담고 있는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다르지만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다는 점.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과 나의 다름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나 너와 나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사실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개인의 정체성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에 ‘시네마 천국’이라는 고전영화가 있다. ‘그렇게 훌륭하다’는 이 영화에는 그다지 대단한 스펙터클도, 뒤통수를 후려치는 흥미진진한 반전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머금어질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구태여 영화사적인 의미를 짚어보거나 등장인물의 무의식에 대한 해석 따위를 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가슴 속에 얌전히 숨 쉬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보편적인’ 감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테니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영화에 심취한 꼬마 토토의 성장기’라 하겠다. 배경은 2차 대전이 막 끝난 무렵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이다. 영화에는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 엇갈린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 아름다운 연인과의 애틋한 사랑 등 픽션에서 늘 다루는 소재들이 곳곳에 맛깔나게 배치되어 있다. 허나, 숱한 웰메이드(well-made)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시네마 천국’만의 매력과 감상 포인트를 철저히 주관적인 취향으로 들춰내봤다.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역대급의 OST

 

이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경음악만큼은 어디선가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영화 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의 훌륭한 작품들 중에서도 일생의 역작이라고 손꼽힐 만큼 길이길이 남을 순결한 음악이랄까. ‘그냥 익숙한 음악’에 지나지 않았던 시네마 천국의 메인테마. 영화를 보고난 뒤 여러분은 OST를 듣는 것만으로 척수반사가 나타나듯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신기한 공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옛날 극장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신기한 타임머신

 

아직 TV가 없던 전쟁 직후의 가난하던 시절, 마을사람들의 유일한 오락거리는 영화다. 극장에서는 영화와 뉴스를 틀어준다. 여기서 상영된 영화는 모두 마을 신부의 검열을 거치는 관계로, 모든 애정신들은 검열 당한다. 그 밖에도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그 시대의 극장의 모습을 보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영화관을 둘러싼 환경이 매우 급변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극장 내에서 흡연을 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고, 애정행각을 서슴치 않는 커플도 볼 수 있다. 또한 필름 그 자체의 기술적인 발전도 간간이 엿볼 수가 있다. 초창기 필름에 불이 붙는다는 사실!! 이 영화에는 필름에 불이 붙는 장면이 2번이나 등장한다. 또한 불에 타지 않는 필름이 나왔을 때 모두가 신기해하는 장면도 나온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과거엔 어땠으리라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극장과 영화의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은,
가슴 벅찬 명장면

 

어린 토토와 나이든 영사기사 알베르토의 우정은 참으로 독특한 설정이어서 언제보아도 이질적인 풍경을 제공한다. 그들이 함께 나오는 모든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고르자면 광장에서 마을 사람 모두가 영화를 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늦어서 미쳐 영화를 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서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항의를 할 때, 알베르토는 군중들의 항의에 못이기는 척 영사기에 비친 화면을 거울에 반사시켜 광장으로 투사(projection)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그 때 벽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던 화면과 그것을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 매니아 토토의 얼굴은 ‘벅차오름’을 그대로 시각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환호하는 관중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토토와 알베르토의 다정한 모습은, ‘시네마 천국’을 검색했을 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스틸컷으로 길이길이 전해 내려온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엔딩은
상상할 수 없다. 

 

알베르토는 과거에 검열 당했던 키스신들을 이어붙여 토토 앞으로 남겨놓는다. 알베르토의 장례식을 다녀온 뒤, 토토는 자신 앞에 남겨진 유품을 극장에 앉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미소를 지으면서도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맺혀 반짝인다. 자신의 유년을 깊게 추억하면 할수록, 지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많을수록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엔딩. 기나긴 서사에서 어떠한 교훈을 주는 끝이 아닌, 시간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느껴지는 오롯한 그 감정을 말초혈관 구석구석에서 일깨워줄 고맙고 다정한 영화. 이런 명작과 함께라면 의대생활도 그리 팍팍하지 만은 않다.

 

아가미/자갈치 시장
<editors@e-mednews.com>

자살을 입에 담아본 그대에게

96호(2013.12.11) 2014. 4. 24. 00:03 Posted by mednews

자살을 입에 담아본 그대에게:

죽음의 양극단 자살과 사형, 그 사이의 의학

 

 

비록 진담이 전혀 아니더라도, 장난스럽게라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한 번이라도 담아본 사람은 꽤나 많을 것이다.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온갖 스트레스의 총집판인 본과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빈도는 더욱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본 필자도 시험을 망치고 나올 때면 동기들과 ‘한강 가장 빨리 가는 버스가 무어냐’ 같은 농을 주고받고는 한다. 못 갚은 학자금이 생각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 하지만.
그러나 의료계에 종사하게 될 사람들은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유명인의 자살이 대중들의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베르테르 효과’는 이미 상식이지만, 가까운 주변인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동료들에게는 진지한 선택의 일부로 다가올 수도 있는 법이다. 게다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그런 힘든 상황에 처한 상태일수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자살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서두로 기사를 시작한 점에 먼저 사과를 드린다.

 

자살과 사형… 죽음의 양 극단
인간은 자살을 택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은 자살을 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거의 유일한’ 이라는 표현은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열린 자세에서 선택한 표현이다. 나그네쥐, 흔히 ‘레밍’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설치류가 자살을 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 직선으로 이동하는 습성과 나쁜 시력이 섞여 실수로 강에 뛰어들기 때문에 생긴 웃지 못 할 오해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살하는 유일한 동물이 맞다. 동시에, 법적 방식으로 동족을 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바로 ‘사형’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살과 사형은 개인의 종말이라는 같은 결과를 야기하지만, 반대로 서로 양 극단에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살하는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하지만, 사형을 당하는 이는 대부분 형이 집행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아있고 싶어 한다. 비록 사형을 선고받는 이들이 대부분 살인 이상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들이지만, 그들 또한 한 명의 사람이었고, 살고 싶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목숨을 잃고 만다. 자살이 심각한 이슈인 지금, 사형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배를 위한 수단이던 사형,
현대에도 지속되는 유일한 신체형

 

사형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형벌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생긴 이래 공포를 주입하기 위해 사형은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자주 시행되어왔다. 아이러니한 점은 현대 법학에서 신체형(Corporal punishment)은 대부분 폐지되었는데, 그 중 가장 형벌의 정도가 심각한 사형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신체형이란, 사람의 신체에 가하는 형벌을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당한 궁형(宮刑, 남녀의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을 말한다)이 좋은 예가 되겠다.
근대까지의 사형은 적, 혹은 피지배계층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수단이었고, 따라서 잔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배계층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아주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형수의 목숨을 빼앗았다.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하고, 끓는 기름에 담아 죽이기도 했다. <삼국지>에 흔히 나오는, 적장 가족의 목을 베어 성문 밖에 내걸었다거나, 시체에 심지를 꽂아 불을 붙이니 며칠이나 갔다는 동탁의 이야기가 이런 근대 이전까지의 사형의 목적을 잘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흔한 사형방식은 참수형이었다. 숙련된 망나니가 사형수의 목을 베어 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부학을 배운 의대생이라면 목이 만화나 영화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잘려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경추는 그리 무르지 않다. 정말 운이 좋게도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 추간판으로 날이 절묘하게 들어가지 않는 한, 목은 힘없는 인대에 의지해 반쯤 붙어 덜렁거리기 일쑤였고, 망나니는 두 번, 세 번 더 날을 내려쳐야 했다. 영화 속의 그들이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이유다. 사형수의 가족들이 ‘제발 한 번에 끝내 달라’며 참수형 집행인에게 돈을 쥐어주는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고, 실력 있는 집행인은 어디서나 좋은 대우를 받았다.


윤리의식 발전으로 단두대 등장
전기의자로 수준이 후퇴하기도

 

프랑스 혁명은 사람들의 인식체계뿐만 아니라 사형의 방식에도 일약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숙청할 사람은 트럭을 이루는데, 형을 집행할 망나니는 모자랐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요탱(Guillotin) 박사는 망나니가 없어도 되는 단두대(기요틴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덕분에 망나니와 사형수 모두 아주 눈곱만큼의 인권 신장을 이루게 되었다.
누구든 처음에는 훌륭한 위인으로 접하게 되는 토머스 에디슨 덕분에 사형수의 인권이 잠시 뒤로 후퇴한 일도 있다.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 라이벌인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전기의 우수함을 주장했는데, 교류 전기가 위험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에디슨이 교류 전류로 사형 도구를 만든 것이다. 이 전기의자로 집행된 첫 사형에서 사형수는 약 10분간이나 고압 전기에 전신이 구워지며 고통 받았다고 한다. 사실상 화형이나 마찬가지인 형벌이다.
사형의 현황을 살펴보자면, 현재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58개국, 사형을 완전히 폐지한 국가는 96개국, 지난 10년 이상 사형이 시행되지 않은 국가는 34개국으로, 우리나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더 적다. 실제 사형을 시행하고 있는 58개국에서도 참수형은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로 인해 시행하지 않고, 일반적으로는 교수형을 시행한다.
교수형 하면 보통은 질식으로 사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설프게 매듭을 묶어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보면 목 주변이 손톱자국으로 가득하다는 괴담도 있다. 실제 교수(絞首)에 의해 사람이 죽는 방식은 Acute cerebral ischemia이다. 줄에서 추락하는 충격으로 인해 Cervical spine의 골절(주로 C2)이 일어나고, 부러진 뼈가 Vertebral artery를 막는다. 이로 인해 수 초 내로 뇌는 급성 허혈상태에 빠지게 되고, 사형수는 의식을 잃고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방식의 죽음에도 고통은 숙명
자살은 탈출의 수단이 되지 못해

 

이 기작에는 초기 추락의 중력이 중요해서, 어설픈 자살 시도자가 고통스러워하다가 후유증만 남기고 천문학적인 진료비를 지불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오면,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2013년 11월 현재, 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자살시도자에게도 보험을 적용하라고 요청한 것이 승인, 내년 상반기부터 보험이 적용될 상황에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연간 자살 시도자는 4만 명이나 된다.)
사형수의 인권뿐만 아니라 사형 집행인의 인권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떤 사형 방식도 하다못해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필요하며, 그가 곧 사형 집행인이 된다. 운이 없어 사람을 치게 된 지하철 기관사도 평생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데, 사형수에게 실질적인 죽음을 내린 사람이 어떤 고통에 시달릴지는 뻔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명의 집행인이 들어와 진짜 버튼과 가짜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고, 아무리 고통이 적은 방식이라고 해도 사형을 당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싶어 한다. 그들이 어떤 흉악범이라도 그런 욕구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끝까지 죽음을 종용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럴 근거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혹시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살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를 묵살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이들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살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세상에 있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질 길을 제공하는 유일한 열쇠인 것이다.

 

이준형 수습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

고흐와 녹색 악마 앱상트

96호(2013.12.11) 2014. 4. 24. 00:02 Posted by mednews

고흐와 녹색 악마 앱상트

 

가끔 예술가가 어느 수준을 초월하면 세인들이 경이와 존경을 표하며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악마와 계약해서 재능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악마와 결탁한자”라고 불리며 교회 묘지에 매장조차 거부당한 희대의 바이올린리스트 파가니니. 사거리의 악마에게 블루스를 배웠다는 델타블루스의 거장 로버트 리로이 존슨 등의 이야기가 특히 유명하다. 미술계에도 악마와 계약한 듯한 재능을 보였던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네덜란드의 인상파화가 빈센트 반 고흐이다.

그의 예술은 실로 악마와 계약하여 불행과 불멸의 재능을 맞바꾸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그의 그림에서는 터치가 불타오르고, 선명한 노란색이 찬란하게 빛나며 세상을 휘어감는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낳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녹색의 악마라고 불리운 술 앱상트라는 주장이 있어 흥미롭다.

앱상트(Absinthe)는 일반적인 술처럼 밀이나 수수, 감자, 포도 등으로 만든 곡주가 아니다. 18세기에 앙리 루이 페르노에 의해 첫 선을 보인 앱상트는 쑥을 비롯한 여러 가지 허브(Herb)로 만들어진다. 도수가 40~70도 정도나 되는 독한 술인 앱상트는 19세기 파리의 암울한 뒷골목의 예술가들에 의해 향유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앱상트는 마주(魔酒;마법의 술), ‘녹색의 마귀’ ‘녹색의 요정(fee vert, green fairy)’, ‘에메랄드 지옥(emerald hell), ’녹색 유혹‘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앱상트가 주는 취기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예찬하기도 했다.

문제는 앱상트에 들어가는 향쑥이라는 성분이 정신착란이나 환청 환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세기에는 지금과 앱상트를 만드는 방법이 달랐다. 쑥의 줄기와 잎을 잘게 썬 이후에 고농도의 알코올에서 추출하고, 이 추출액을 증류하여 앱상트를 만들었다. 이때 향쑥에서 추출되는 튜존(Thujone)이라는 성분이 GABA antagonist로 작용하여, 중추신경 장애와 정신과학적인 여러 이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향쑥을 사용한 전통적인 앱상트는 유럽에서부터 금지되었으며 현대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앱상트가 허가된 것도 불과 1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고흐가 앱상트를 즐겨 마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고흐의 강렬한 노란색은 바로 이 녹색 악마, 앱상트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고흐는 튜존의 중독증상 중의 하나인 황색시증(xanthopia) 세상을 ‘노랗게만’ 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real yellow”라는 표현은 고흐의 눈에 들어온 세상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아를르의 포룸광장>, <해바라기 연작>, <까마귀가 있는 밀밭>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물론 그의 작품을 앱상트의 작품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앱상트가 고흐의 노란색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에게 세상엔 다신 없을 노란색을 주고 열정의 예술혼을 주었지만 정신병과 불행도 함께 준 앱상트. 고흐와 수백년을 넘어선 교감을 위해 앱상트 한 잔을 곁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고흐처럼 세상이 황색으로 보일 리는 없겠지만 그의 강렬한 황색 열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건/센터
<editor@e-mednews.com>

나의 10년 심령 체험단.... 귀신과 함께

 

 

2년 전 네이버에 연재된 ‘신과 함께’(주호민 作)를 기억하시나요? 사후세계와 우리나라 민간설화를 주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던 웹툰입니다. 곧 영화화될 예정인데, 공유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썰이 있어 큰 관심을 받고 있죠.
저 또한 ‘신과 함께’의 왕팬인데, 실은 어렸을 적 귀신과 친숙(?)하게 지냈던 경험이 있어 사후세계, 심령, 귀신 이야기에 상당한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었던 크고 작은 심령체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하는데요. 나름의 소소한 고찰을 덧붙였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 Episode 1 :
첫 귀신과 첫 가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씩은 가위를 눌린다. 나의 첫 가위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찾아왔다. 당시 내 방 침대 맞은편 벽면은 앞 베란다로 통하는 이중 창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느 날처럼 방 침대에서 불을 끄고 잠이 들었는데, 그 날은 몇 초 만에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 과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부엌의 희미한 불빛, 엄마의 설거지 그릇소리. 익숙한 풍경이었으나 무언가 낯설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몸이 굳기 시작했다. 동시에 닫혀있던 이중 창문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치로 공포감이 스며오는데, ‘그것은 내 방으로 들어오고 싶어했다’.
생각이 스치는 순간 이중 창의 바깥문이 쾅 열렸다.다급해진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목소린 안 나오고 그 귀신 놈이 대신 비명을 질렀다. 큰 소리라기보다 내 귀에만 울리는 신음소리였다. 마침내 안쪽 창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귀신. 이집트 미라 같은 낯빛에 타버린 머리카락 숱덩이들이 붙은 얼굴이었고 두 눈 대신 뻥 뚫린 검은 구멍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손을 방 안쪽으로 마구 휘저어 내게 닿으려는 찰나,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의 여전히 같은 방안. 당장 부모님이 계신 안방에 가고 싶었지만 그나마도 무서워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꼬박 밤을 샜다.
 
# Episode 2 :
내쫓지 마세요
 
그 일 이후로 10여 년 간 정기적으로 꾸준히 가위를 눌렸는데, 잠들기 직전 ‘아 오늘이구나’ 싶으면 어김없이 당첨이 되었다. 어떤 귀신은 내 옆구리를 쿵쾅쿵쾅 때려댔고, 어떤 날은 귓가에 수 십 명이 속삭이는 ? 마치 주파수 겨우 맞춘 라디오 방송 같은 ?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똑바로 누워 자고 있는데 이불 안쪽에서 다리부터 어깨까지 나를 콩콩콩 밟고 올라오는 녀석도 있었다.(첫 가위 귀신 다음으로 무서웠다)
조금 불쌍했던 귀신들도 있다. 여느 가윗날(?)처럼 몸은 못 움직이고 눈만 뻐끔뻐끔 뜨고 있었는데, 검은 형체 여럿이 내 방바닥, 침대 맡, 창틀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딱히 적대적인 느낌은 들지 않아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중, 한 물체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손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곧장 들어온 생각은 ‘내쫓지 마세요’. 어지간히 갈 데가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3일 뒤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검둥이들은 본 것은 그 밤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그 집에 있을는지 가끔 궁금하다.
 


# Episode 3 :
엄마의 기도와 검은 형체들

여하간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중고등학교 학업이나 교우관계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항상 몸이 아팠고 잠을 제대로 푹 자지 못해 건강이 부실해졌다. 특히 만성 두통이 심했는데, 병원에서도 딱히 방도를 찾지 못했다. 딸 걱정이 된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 절에 가서 기도를 시작했다. 엄마는 나보다도 훨씬 영적으로 예민한 분이다. 왠지 안심이 되는 플라시보 덕분에 고등학교와 재수시절을 지나면서 가위는 눈에 띄게 줄었다. 2-3일에 한 번 꼴로 눌리던 가위가 대학 진학 이후 연간 0-1건으로 크게 감소한 것.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 눈만 감으면 내 몸에 검은 형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상이 보였단다. 그런데 점차 기도가 진행되면서 한 명 한 명이 풀어져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졌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검둥이들이 사라지면서 내 몸이 건강해지고 귀신 인지 역치도 상승하여 QOL이 개선되었다.
 
# Episode 4 :
오랜만에 마주친 그녀
 
다만 몸이나 정신이 약해지면 지금도 가끔 마주친다. 본1 시절, 시험으로 한창 마음이 탈 때 쓸데없는 가위를 방지하기 위해 관세음보살 사진을 항상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들기 전 왠지 모를 가위 전조증상이 올라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눈을 붙였는데 역시나 귀신이 왔다. 누워있는 내 어깨를 양 손으로 잡고 자기 머리를 내 목 언저리에 갖다 대는 여자귀신. 보기 싫어서 눈을 꽉 감고 있었는데, 비죽비죽 웃으며 달라붙어 있는 귀신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져 기분이 매우 나빴다.
어찌어찌 정신을 차렸는데, 기막힌 건 몇 개월 간 잘 세워져있던 관세음보살 사진이 엎어져 있었단 사실이다.
 
# Epilogue :
귀신을 ‘본다’ 는 것의 의미
 
여러 번의 가위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귀신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 인식은 책이나 영화에서 보고 느꼈던 귀신과는 매우 달랐다. 후자가 귀신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공포 반응이라면, 정말로 귀신 볼 때는 그 형체를 눈으로 보기에 앞서, 존재에 대한 기운이 곧바로 강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이미지 자체는 잘 안 보일 때도 많은 것이다.
 
형체가 얼마나 잘 보이느냐는 기(氣)의 파장과 관련이 있다. 내가 내보내는 파장의 형태와 강도가 귀신의 그것과 비슷하면 귀신의 형체가 구체적으로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보이거나 희뿌연 형체로만 나타난다. 일반인인 필자의 경우 거의 검은 형체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귀신은 ‘본다’기 보다 ‘느끼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귀신을 의식한다면 귀신도 동시에 그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렇다면 귀신들은 어째서 이승에 돌아다닐까? 본래 육체가 사망한 모든 영혼은 저승차사의 인도를 받아 심판장으로 인계된다. 사후세계의 심판의 구체적인 모습은 종교마다 다양한 견해를 보이는데, 불교는 8대 지옥, 무속은 10대 지옥, 티베트 사자의 서는 법성 중음과 투태 중음의 과정으로 표현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후세계의 체험과정과 그 다음 생의 선택이 이전 삶에서 지은 죄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속의 관점에서의 심판장은 7+3=총 10개로 이루어져 있고, 첫 7심판은 각 부문 별로 7일씩 진행되어 7 X 7=49일 간 진행되며 그 후 100일, 1년, 3년에 걸쳐 최종 형량을 가린다. 이렇듯 인과율로 산출된 죗값에 따라 각 심판장에서 알맞게 처벌 받고 육도윤회의 다음 생으로 넘어가게 된다. 귀신들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이러한 윤회 사이클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영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윤회이탈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P.S. 귀신과는 서로 모르고 연락 안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사람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진 않는데다, 귀신을 상대하고 다룰 줄 아는 전문적인 종교인이 아닌 이상 멀쩡한 기력과 체력을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땐 이런 걸 조금 느끼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김산신/봉은사 산신각도
괜찮은 거 같아요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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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제일 핫(hot)한 클럽은?

96호(2013.12.11) 2014. 4. 24. 00:01 Posted by mednews

요새 제일 핫(hot)한 클럽은?

 

클럽, 누구에게나 설레는 단어가 아닐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순둥이’들에게는 ‘대체 어떤 곳일까?’ 생소하면서도 내심 궁금한 곳이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죽돌이, 죽순이’들에게는 숨 막히는 의대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쾌락적 만족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할 터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번 방학에 ‘나도 클럽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라면, 이 기사 한번 조용히 스캔하고 가시길. 클러빙 경력 10년째인 기자가 돈 주고도 못살 팁 몇 가지 일러주겠다.

 

엘루이/옥타곤

 

요새 가장 물 좋은 클럽들이다. 흔히 말하는 ‘청담동 압구정동 럭셔리클럽’이 바로 여기다. 두 클럽 모두 다른 클럽의 2~3배는 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특히 엘루이는 그 규모가 세계 5위라고 하니 입장 전부터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두 곳 모두 스테이지는 3~5군데에 나뉘어져있다. 중앙에 제일 큰 메인 스테이지가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2층, 지하에 작은 스테이지가 몇 개 더 있다. 음악은 주로 일렉트로닉인데, 스테이지마다 디제이가 다르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서 춤출 수 있다. 두 클럽 모두 물은 최상급이다. 클럽에서의 ‘물’이라 함은, 남성은 재력, 여성은 얼굴과 몸매를 뜻한다. 이 정의에 따라 남성 측 수질부터 이야기 하자면, 외제차 수 십대가 주차장 입구에 줄지어 서 있을 정도이며, (모델급 외모로 클럽에서 고용한 남성들이 아닌 이상) 테이블 당 50만~100만원, 룸 당 200만원을 호가하는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선뜻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음은 여성 측 수질이다. 지방에서 온 남성이라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쁜 여자가 많았어?’하며 깜짝 놀랄 수 있을 것이고, 나름 강남에서 좀 논다하는 남성이라면 ‘성형미인들이 여기 다 모였네’하며 여기저기 같은 얼굴에 식상해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수질 관리가 철저한 만큼 이 두 클럽에 가려면 의상부터 체크해야 한다. 남성들은 흔히 말하는 명품 청바지인 돌체앤가바나, 디젤쯤의 청바지에 가벼운 티나 셔츠를 입는다. 여성들은 몸매를 강조한 원피스나 미니스커트를 선호한다. 후드티나 슬리퍼는 입구에서부터 뺀치먹으니 꼭 참조하시길. 청담동 클럽의 한 가지 이색적인 점은 ‘웨이터’ 대신 ‘매니저’가 있다는 점. 매니저의 역할은 남성들에게 팁을 받은 뒤 같은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를 띠우거나, 스테이지에 나가 춤을 추면서 예쁜 여자를 꼬셔 자리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이런 매니저 문화는 남성들에게는 꽤 인기가 좋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같이 춤추던 상대가 맘에 들어 자리로 왔는데 알고 보니 매니저 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훼이크’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게스트’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클럽명을 검색하면 몇몇 매니저들의 연락처가 뜨는데, 이 연락처로 전화나 문자를 해 ‘게스트 무료입장’을 하고 싶다고 하면 공짜로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 단, 클럽에 입장하기 전 연락을 받은 매니저가 나와 수질을 검사하는데, 이때 복장이 불량하거나 얼굴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게스트 신청을 거절할 수도 있다.

 

밤음사

 

 

‘밤과음악사이’는 3~4년 전부터 전국적인 유행을 타고 있는 국민클럽이다. 힙합열풍이 한풀 꺾이면서 홍대클럽문화의 중심이던 YB사단이 새롭게 제안한 ‘복고풍 클럽’이다. 밤음사는 스테이지가 있는 술집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스테이지와 테이블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다 흥에 겨울 때마다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춤을 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음악은 1990년대 가요가 주류를 이룬다. 룰라의 ‘3,4’,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터보의 ‘트위스트킹’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밤음사가 강남역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회식 때 노래방에서나 부르던 노래들로 어떻게 클럽에서 춤을 춰?’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역발상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흘러간 유행가가 나오기 때문에 춤을 못 춰도 대충 흔들면 그게 춤이다. 입장료는 남녀 동일 15000원이고, 안주나 술을 추가주문하면 테이블에 앉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서있어야 한다. 입장료를 내면 생맥주를 무료로 한잔씩 주는데, 특이한 점은 소주도 섞어 마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밍밍한 맥주 대신 소맥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클럽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리, 과장급 직장인들이 회식 온 느낌정도로, 다소 노숙하다. 남성은 양복차림이나 세미정장인 경우가 많고 여성은 오피스 룩이나 원피스가 많다. 물은 그때그때 다르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이 주를 이루는데, 주말엔 직장인들이 싹 빠지므로 연령대가 조금 어려지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주말에는 피크타임인 11시~12시에는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추이고, 주중에 직장인들이 가장 한가한 요일인 화요일이나 목요일 정도를 추천하고 싶다. 밤음사를 갈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은 ‘무조건’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래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클럽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매우 엄격하다. 아무리 노안이어도 민증이 없으면 절대 못 들어가니 들어가기 전 꼭 유념하시길.

 

클럽아이

 

클럽아이는 이제 강남에 몇 안남은 ‘나이트클럽’의 대표주자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기가 좋았는데 잘나가는 언니 오빠들이 모두 청담동 클럽으로 옮겨가면서 5~7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다소 시들하다. 하지만 이런 나이트클럽이 여전히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춤을 못 춰도 된다는 점’ 때문이다. 철저한 부킹 문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지한 대화와 만남이 가능하며, 특히 얼굴이 예쁜 여성이나 방값을 많이 낸 남성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명과 즉석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춤을 추는 클럽이라기보다는 술 취한 소개팅 정도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그런데, ‘나는 오늘 정말 부킹은 싫고 춤만 추고 싶다’ 할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웨이터에게 미리 이런 의사를 표현하면 입장할 때 야광팔찌 같은 것을 주는데 이걸 차고 있으면 웨이터들이 부킹을 권하지 않는다. 남성은 룸의 크기별로 50만원~200만원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여성들은 대개 무료로 입장한다. 남성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나이트클럽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남성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억울할 일도 아니다. 음악은 최신 유행곡이 주를 이루고 가끔 일렉트로닉이나 힙합, 발라드가 섞여 나온다. 마지막으로 팁을 주자면 이런 나이트클럽에서는 웨이터가 꼭 연락처와 이름을 물어보는데 이때 연락처를 주면 귀찮게 할 때도 있지만, 진짜 물이 좋은 날이나 연예인이 놀러왔을 때 웨이터에게 문자가 오는 등 잘 활용하면 좋은 점도 있다는 것.

 

H. (바이라인은 달지 않겠음.)

비아그라의 모든 것

96호(2013.12.11) 2014. 4. 23. 23:59 Posted by mednews

비아그라의 모든 것

 

즐거운 밤을 보내고 싶은신가요?

 

 

비아그라. vigor(정력)과 Niagara(나이아가라 폭포)의 두 단어를 합성해 이름 붙여진 이 매력적인 약제는 수많은 남성들의, 아니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의 밤을 바꾸어 놓았다. 이 약은 어떻게 작용하고, 또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아그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 효능을 대단히 잘 암시하고 있는 상품명과 달리(정력이 폭포처럼 콸콸콸 쏟아지게 만드는 것인가?) 비아그라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력제라고는 볼 수 없다. 비아그라는 남성의 정력 그 자체를 향상시킨다고 알려진 보약 등의 정력제와는 작용 기작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아그라는 엄연히 발기부전치료의 목적을 가진 약(발기강제제)이다.

발기란 생리학적으로 남성 성기가 성적 자극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크고 단단해지는(becomes firmer, engorged and enlarged)현상으로 정의된다. 성적 자극에 의한 신호는 척수의 발기 중추에 전달되고, 발기 중추에서 다시 성기로 전달된 신호는 남성 성기의 세포로 하여금 일산화질소를 만들게 한다. 이 일산화질소는 성기의 근세포에 도달해 혈관을 확장시키는 ‘cGMP’를 생성하게 한다. cGMP에 의해 확장된 혈관에 피가 몰리면서 발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발기의 해소는 포스포다이에스터레이즈-5(phosphodiesterase-5: PDE-5)라는 효소에 의해 이루어진다. cGMP가 PDE-5라는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cGMP의 농도가 떨어지게 되면서 발기가 소실되는 것이다. 비아그라는 이 효소의 inhibitor로 작용한다. 즉 비아그라는 PDE-5의 활성을 억제해 cGMP가 일정농도 이상으로 유지되게 함으로써 발기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의 발기부전 치료제 중에는 36시간 이상의 발기 지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엄연한 약인만큼 비아그라도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흔하게는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을 유발하고 드물게 시력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미국 등지에서는 성기능 강화를 목적으로 정상 성인들도 비아그라를 투약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의하면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성관계를 가진 일부 그룹에서 성기능의 향상이 보고되었으나,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부분이 큰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비아그라는 1990년대 초 미국 화이자 사에서 개발되었다. 초기에는 고혈압 치료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임상실험결과 고혈압 치료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나타냈다. 그런데 한 임상실험자가 “선생님... 그런데요..”라며 부끄럽게 보고한 ‘부작용’이 비아그라가 전혀 다른 용도로 처방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결국 비아그라는 1998년 미국 FDA에 의해 발기부전에 대한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비아그라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2700만 명 이상이 처방받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1999년 10월에 정식으로 시판되기 시작했다. 현재 비아그라 외에도 씨알리스, 레비트라 등의 비슷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개발되어 처방되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된 자이데나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도 유통되고 있다.

2012년 5월 비아그라에 대한 특허권이 만료되면서 본격적인 발기부전치료제의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약)약 시장이 열렸다. 국내 여러 제약회사에서 팔팔정, 해피그라 등의 이름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한미약품의 팔팔정의 경우 2013년 1분기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서 25억 원어치가 팔림으로써 33억원이 팔린 화이자의 오리지널 비아그라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형세이다. 현재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가히 춘추전국시대로, 각 제약회사들이 약가를 인하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웃지 못 할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오리지널 비아그라를 개발한 화이자 제약 측에서 한미약품의 팔팔정의 모양이 ‘블루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오리지널 비아그라의 모양과 비슷하다며 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2013년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두 약품은 처방전에 따라 투약되므로 일반 소비자들이 형태가 비슷하다고 혼동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화이자의 패소로 판결한 바 있으나, 10월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의 항소심에서는 “디자인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라며 화이자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미제약측은 즉각 반발하여 대법원에 상고했고 11월 현재 대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상태이다.

개발과정부터 범상하지 않은 비아그라는 시판된 지 20여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뿌리고 있다. 그중에는 웃고 넘길 것도 있지만, 약물의 오. 남용 문제나 제네릭 약 개발에 의지하는 한국 제약업계의 문제 등 의대생으로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도 많다. ‘해피 드러그’라는 별명을 가진 비아그라지만 그와 관련된 문제들까지 그리 해피한 것일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사마천/한나라
<peter10cjswo@naver.com>

라면 블라인드 테스트

96호(2013.12.11) 2014. 4. 23. 23:59 Posted by mednews

라면 블라인드 테스트

 

간단하게 떼우는 한 끼부터 엠티용 안주, 공들인 별미로까지 널리 사랑받는 라면. 마트나 편의점의 라면 코너는 ‘라면의 각축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라면이라면 흰 색의 구불거리는 면, 붉은 빛의 매운 국물, 야채 흉내만 낸 건더기, 뭘 사먹든 비슷한 맛을 떠올리며 수십 종의 라면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평가항목은 국물의 매운정도와 짠 정도, 면의 쫄깃함, 느끼한 정도, 색깔(흐릴수록 1점, 붉을수록 5점) 5가지였고 1점에서 5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마지막으로 해당 라면의 종류를 예측해 보았다. 실험에 쓰인 라면은 신라면, 진라면, 안성탕면, 육개장, 삼양라면 5종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든 라면의 맛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맛은 완전히 구별이 된다. 짜파게티나 팔도비빔면까지 가지 않더라도 라면에 대한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뭐 먹으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호불호도 꽤 분명하게 갈렸는데, 참여 기자 전원이 선정한 최고의 라면은 삼양라면이었다. 라면국물 색도 붉은색보다는 주황색에 가깝고 매운맛과 짠맛 모두 약하다. 하지만 구수한 맛이 돋보였다. ‘훈제를 한 듯 연기 맛이 난다’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안성탕면은 느끼하고 짜다는 평이 많았다. 매운맛은 약한 편이었고 구수한 맛에 가까웠다.
진라면 매운맛은 그리 맵지 않을 것 같은 선입견과는 달리 5종의 라면 중 가장 매웠다. 짠 맛도 강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삼양라면에 이어 호평을 받은 라면이었다.
육개장은 예측률이 100%였는데 모두가 ‘국물 색이 너무 빨개서’ 육개장인 것을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육개장 라면의 맛은 딱히 특별한 점이 없고 짠맛이 강하다는 평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면 시장에서 굳건히 1위를 지키고 있는 신라면을 모두가 삼양라면이라 예측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맵지 않고, 국물 색도 붉기보다는 맑은 편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먹어보면 톡 쏘는 매운맛이 다른 라면들에 비해 확연히 강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블라인드테스트를 할 때는 2젓가락 정도만 먹었기 때문에 한 그릇을 다 먹었을 때에 비해서는 매운맛이 약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덧, 너구리 라면이랑 오징어짬뽕이 인기 있는건 알지만, 너무 티 날 것 같아서 뺐다.

 

만신창이맨탈
/오늘도 지긋지긋한 차안(此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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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다이소 물품 특집

96호(2013.12.11) 2014. 4. 23. 23:58 Posted by mednews

겨울나기 다이소 물품 특집

 

 

무엇을 사더라도 여기서 사면 싸게 샀다고 말할 수 있는 곳, 친숙한 다이소에서 추운 겨울에 딱 맞는 아이템 몇가지를 골라 보았다.

 

따뜻한 겨울나기
- 뽁뽁이와 문풍지


역시나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에는 내 방에 그리고 자취방에 가더라도 따뜻하지가 않다. 유리창에는 결로현상으로 이슬이 맺히고 창문과 문은 추위를 막아주기는 하는 건지 난방없이는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소중한 방을 따뜻하게 두 가지 아이템이 있다.
먼저 뽁뽁이를 소개하자면 단 돈 3000원에 만나볼 수 있는 단열 에어캡이다. 유리창에 붙이면 공기층을 만들어 실내의 열이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잘 자른 후 유리창에 먼지 좀 닦고 물을 뭍혀 붙이거나 테이프를 써서 붙이면 끝, 설치도 정말 간단하다. 몇 개를 사야할지에 팁을 주자면 큰 창문이라면 두 개를 사기를 추천한다. 하나가 90cm*180cm 사이즈이니 넉넉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문풍지이다. 문은 방문만 있는 게 아니라 창문도 포함되어 있다. 이 녀석이라면 틈으로 새는 외풍까지도 막을 수 있다. 설치는 더 간단하다. 물론 먼지나 이물질 떼는 건 기본이고 원하는 크기로 잘라 테이프 접착면을 떼고 붙이면서 꾹 누르면 완성이다. 잘 붙이는 팁을 주자면 접착면을 한꺼번에 떼지말고 붙이면서 조금씩 떼면 보다 잘 붙일 수 있다. 하나가 5m나 되니 많이 붙이고 싶다면 2, 3개, 그 이상은 정말 내년까지 쓸 것이다.

 

일석이조
- 문풍지 그라데이션

 

손이 시리고 트는 계절에 손 관리는 필수다. 핸드크림으로 손 트는 걸 막는 것도 좋지만 이왕 문풍지를 샀다면 그라데이션 네일을 해보는 게 어떤가. 시중에서 파는 그라데이션용 스펀지는 상당히 비싸다. 다른 스펀지들은 네일을 다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풍지 하나는 싼 가격에 평생 그라데이션을 할 양이며 네일을 먹을 걱정도 없다. 방에 설치한 후 네일까지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내 소중한 니트인데!?
- 보풀제거기

 

겨울에 누구나 즐겨 입는 니트, 어디에 맞춰 입기도 편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제는 보풀이라는 놈이다. 몇 번 입지 않아도 소매나 긴 니트는 엉덩이 쪽에도 항상 생긴다. 피부가 민감하지 않더라도 따갑고 가려워서 짜증이 난다. 그러나 보풀제거기 하나면 이런 고민도 끝이다. 다른 곳에서는 만원이 훌쩍 넘는 것이 5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성능에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사용 시 몇 가지 팁을 주자면 보풀이 담기는 플라스틱 부분이 헐거워 잘 빠진다면 테이프를 붙이면 된다. 그리고 건전지가 흔치 않은 D종류인데 살 때 다이소에서 같이 사오면 훨씬 편할 것이다.

 

권수빈 기자/계명
<rkrk1045@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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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os! 2013 회고록 Best & Worst

96호(2013.12.11) 2014. 4. 23. 23:54 Posted by mednews

Adios! 2013 회고록 Best & Worst

 

Best_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
지난 예과 2년간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다고 제 자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But 연애빼고...

Worst_
의대생신문 기자님들 저 아시나요?
3월 이후 오프라인 모임에는 한번도 못나간 강상준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지 못하다 보니 의대생신문에 소홀해진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한해였습니다. 내년 본1 때는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에 돌아오도록 할게요!
강상준 기자/서남

 

Best_
본2 내과 수업들으면서 매번 성적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강박?을 놓게 되었다. 물론 너무 놓아서 몇몇 과목이 위험했지만 지금 이 신문사 동아리 활동 등 다른 재밌는 것을 많이 할 수 있게되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특히 많이 준 동기 S군에게 특별히 고맙다. 그리고 매번 시험 전날 집이 먼 나에게 자취방에서 잘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문선재 기자/중앙

 

Worst_
올해 같은 PK조가 된 조용하기로 유명한 S양. ‘말’만 없을 뿐이지 속은 괜찮은 아이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고 있었는데 ‘말’도 없고 ‘사회성’도 없으며 PK가 끝나가는 지금에 와선 '인간성'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희 고등학교 근처 지나가는 김에 네가 즐겨갔던 분식집에나 가보자’ 라는 말에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밥 먹어야지 어떻게 학교 밖에서 밥을 먹냐’는 충격적인 말을 들으며 몰라도 공부만 잘하면 명문대를 갈 수 있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입학당시 이 아이를 거르지 못한 면접의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한해였다.
조원민 기자/경희

 

Best_
본과 2학년, 정말 이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팍팍한 학교생활 가운데 힘이 돼 주었던 건 역시 동아리 식구들인 것 같습니다. 저희 동아리 단체 카톡 대화창은 회장 발 냄새 디스하기, 시험 전날도 불사한 훈련부장의 실시간 축구 중계, 슈바정의 3차원 개그가 8할 이상입니다. 다소 산만하고 지저분하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늘 웃게 되고 왠지 기분 좋아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한 해 동안 시험 보랴  동아리 행사하랴 최선을 다한 저희 동아리 동기들에게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전북대학교 축구동아리 MESS 파이팅~! 어이!
홍유미 기자/전북

 

Best_
가장 좋은 일이라면 역시, 큰일이 없었다는 것? 정말로 무난무난한 한해였다. 맡은 일도 잘 해낸 것 같고, 관심있는 여러 분야 공부도 해봤다. 그런데, 심심했다. 워낙 성격이 조심조심한터라, 무언가 새로운 도전은 금년에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내년에는, 약간의 톡톡 튀는 일들이 생겼으면 한다.

Worst_
말로만 들었던 본과가 다가온다! 입학할 때부터 본과의 악명은 익히 들어온 터라 정말로 닥쳐온 지금은 오히려 덤덤하다. 다른 학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데, 우리학교는 방학 시작하자마자 해부학 교수님이 친히 녹화하신 해부 동영상 강의를 봐 오는 게 숙제란다. 으아아 고되고 힘들다지만, 동기들끼리 끈끈한 동기애로 버텨나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형수 기자/아주

 

Best_
매주 시험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유예해야만 했던 작년의 설움을 날려버릴 수 있던 한 해였다. 학기 중에 신문사에서 다시 기사를 쓰고, 사람들을 만난 것도 물론이고 여러 공연, 강연도 보고, 신나게 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름 방학 때 했던 소중한 경험들 - 워크캠프, 메디슨 청년의사 캠프, 서브인턴까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서 새로운 자극에 행복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이제는 밖으로 답을 찾으러 다니기 보다는 나 스스로의 내실을 더 갖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늘 무언가 욕심을 줄였어야 했는데 올 해는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할 수 있던 운 좋은 신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Worst_
대내외적으로 소란스러웠던 학교 문제가 올 해 큰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힘은 어쩌면 각자가 자신이 최선이라고 외치는 ‘이기심’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고 사회가 복잡함을, 세상은 정말 다양한 생각과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회 속에는 강자라면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는 씁쓸한 사실도 말이다. 익명성이 가질 수 있는 무지막지함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고. 후반기에는 메이저 과목이 많은 데다가 족보도 없이 시험 공부하느라 정말!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방학이 짧아진다는 벌써부터 Worst다.
고유라  기자/서남

 

Best_
일상의 소중함을 많이 느낀 한 해였습니다. 옆에 있어주는 친구들, 가족들이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공부도 후달려야 제 맛이듯이 노는 것도 후달리게(?) 틈틈이 놀아주는 것이 더 재밌더라구요. :)

Worst_
남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생각 버리기, 넓은 마음 가지기가 2013년 다이어리 첫머리에 쓰여 있는데 돌아보니 그리 잘 실천한 것 같지 않아서 연말에야 반성중입니다.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주거나 무심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요.
서우림 기자/한림

 

Best_
도와달라고 손을 뻗어도 아무도 잡아줄 것 같지 않아서 두려워서 늘 혼자서 끙끙댔는데 이렇게 선뜻 도와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한 해입니다. 심리적 지지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신촌의 민우야, 2학기는 너 덕에 살았구나!

Worst_
남편, 학업, 학교생활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으나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한 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확실히 아는데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외면해야 했던 시간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늘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응원해 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조을아 기자/을지

 

Best_
가장 좋았던 일은 올해 초여름에 갔던 계룡산 황토축제였죠! 맨발로 걷는 황토길의 부들부들한 느낌~ 잊을 수 없어요! 시험 끝난 주말엔 뭘 해도 행복하긴 하지만 그렇게 쉬는 날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시내보다는 자연과 함께 하니 몸도 마음도 릴랙스 되고 좋았어요. 햇빛도 따뜻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만엔 커다랗게 "좋다."라고 적혀있었지요. 그걸보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나요. 참 여러모로 완벽한 날이었습니당^^

Worst_
가장 힘들었던 일은 올해 전반적으로 몸이 너무 안좋았었어요ㅠㅠ 올해가 제 평생을 통틀어서 병원을 가장 많이 다녔던 해였던것 같아요.. 약국에 기부도 많이 하고.. 처음 구경해본 제 얼굴에 난 여드름들ㅠㅠ 사춘기 여학생도 아닌데 얼굴에 왕여드름 날때마다 극단적으로 우울해했던 기억이ㅋㅋ 이젠 다 나아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당.. 뭐든 잃어버리고 나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었어요.. 여의대생님들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피부관리입니다!ㅎㅎㅎ
이선민 기자/을지

 

Best_
학교를 여러군데 옮겨다니다가 다시 시작한 3번째 1학년, 앞선 2번의 어느 1학년 생활들보다 재미있게 보낼 수 있게해주고 항상 끈끈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관동의대 13학번 동기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서로 챙기면서 다같이 함께가요~
 또 저의 로망이었던 락밴드 활동을 가능케하였던 동아리 MAY 동기 여러분! 힘든일도 많이 있었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앞으로도 처음의 열정 그대로 열심히 하자~ 그리고 MAY 선배님들 저희가 잘 못해도 일년동안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AY는 하나다~!
김승현 기자/관동

 

Best_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최고인 건 바로 내가 지금 여기서 마감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기회를 얻었다는 점, 그리고 내게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새로운 시작. 포항에서 인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새 땅에 뿌리를 박으면 모든 것이 다 신선하다. 여러모로 성적(grade..) 스트레스를 받지만 마음을 비우면 배우는 내용 자체는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다.

Worst_
내 인생에 이렇게 종합적인 의미의 바닥을 많이 구경할 일이 또 있을까? 비록 강 건너 불구경이라지만 윤리적 책무는 구경꾼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아니라 바닥이 있다. 아니 바닥도 없다. 이제 대충 다 떨어진 줄 알고 바닥을 치고 일어나려고 하면 또 푹 꺼지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이준형 수습기자/가천

 

Best_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는 자존감 때문에 참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사람들 간에 있었던 갈등, 몇 번이고 거절 당하고 까이고 또 무지함을 강제로 증명당하면서 난 참 보잘 것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는게 힘들더군요. 하지만 이건 비단 올해에 유난히 저를 괴롭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길게 가지고 갈 고민 거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곧 내가 굳이 대단한 인간일 필요가 있나 하는 결론에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Worst_
PK가 되고 나서야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실습할 때 노는 시간도 많고, 방치되고 버려진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어떤 케이스나 수술에 꽂히면 자발적으로 공부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공부를 잘 하는건 아닙니다.ㅋㅋㅋ 성적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는 공부라는 행위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아진 한해였습니다. 본1,2때 나는 시험보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이 정도면 발전한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게 다 1년간 함께한 유쾌하고 착한 조원들 덕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져니형, 미니오빠, 돼영이 사랑해요♥     
최혜란 기자/조선

 

Best_
온갖 직책을 다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솔직히 올해 맡은 직책 중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의대생신문 디자인팀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학교 내에서도 학습부장을 맡아 시험 끝날 때마다 족보와 씨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생회 홍보국장이 되어 만든 포스터와 기획안들도 모아 보면 상당할 것이다. 거기에 동아리장을 맡아 회원을 모집하느라 전전긍긍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물론 <더 스킬>의 저자로 활동한 것은 작년부터 해 왔던 일이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으련다.

Worst_
딱히 망한 것은 없으나 아쉬운 것은 부족한 공부라 해야할까. 이것저것 맡으면서 A학점까지 노리는 것은 무리였나 싶다. 학점이 짜진다는 2학년이라 예년보다 떨어진 학점이 왠지 너무 아쉽고, 죄책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끔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속이 답답하기도 했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일들 사이에서 현실도피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게 Worst라면 그게 Best일지도.
허기영 기자/서울

 

Best_
무엇이든 힘들었던 만큼 뒤따라 오는 보상이 참 큰 것 같아요. 과거엔 울고싶었지만 지금은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이력이 되었네요. 그리고, 학기 초에 내심 걱정했는데 착한 동아리후배들이 들어온 것! 카페라떼 잘 마실 수 있게 된 것, 악기 실력 늘었다고 칭찬받은 것, 노트북 산 것, 그분과 4계절을 함께 보내게 된 것, 학교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많아진 것 등등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어도 중간 중간에 Best들이 많이 있어서 잘 지내온 것 같습니다!

Worst_
예과 1학년 때랑은 다르게 2학년 때는 기억남는 추억도 별로 없고 시간만 지나가서 벌써 2학기 막바지가 온 듯하네요. 특히 2학기 때는 예상치 못한 과제폭풍에 남은 예과 하고싶은 것 다 해보겠다는 근자감에 이것저것 배우고 참여한 것, 학교행사, 수면부족의 합작으로 인해 삶에 회의감을 느꼈었죠. 예과스테이지가 있던 1주는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질 것 같습니다.
이유정 기자/영남

 

Best_
본2 5주라는 짦은 여름 방학 중 5주를 온전히 이용해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방학 1달전, 직장을 때려쳤다고 여행가자는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출발 2주전 항공권 끊고 급하게 떠난 여행. 계획도 없어, 좌충우돌 사건사고도 많았던 데다 식성, 취향, 체력, 여행의 목적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친구와 같이 하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도 배우고,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로 지내보며 그 사람을 이해해 보기도 했다. 넘어져 다치고, 길 잃고, 숙소 예약 안 돼서 노숙하며 위기대처 능력을 키운 것은 덤.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면서 많이 배우고 온 여행. 평생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Worst_
1년 내내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나 자신의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잘 극복해 냈던 에너지는, 너무 많은 일정 탓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모두 고갈. 내 생활, 내 인간 관계인 데도,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냥 구경하기만 했다. 모든 일에 짜증만 났는데.. 곧 다가올 겨울방학에는 푹 쉬고, 내년에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진실 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박상아 기자/을지

 

Best ? Worst ?
전 성격이 나빠서 ‘좋게좋게’ 넘기는 일 따윈 못합니다. 하지만 이 좁은 바닥에서 성깔대로 지랄하지도 못하겠고. 공부하는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말이죠. 아직 제가 어린 탓이려니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속상한건 어쩔수 없네요. 이건 마을애 하나뿐인 우물에 다 죽어봐라 하고 독을 탄 거랑 똑같으니까요.
문지현 기자/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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