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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_
인격장애! 의대생은 과연 정상일까?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정신과 실습을 돈 PK 나부랭이입니다. 정신과 강의 듣거나 실습 돈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격장애는 모두가 흥미로워 하는 주제죠. 정신건강의학 교과서가 읽혀지는 몇 안되는 챕터 중 하나고, 국시 공부할 때 진단기준 달달 외우기보다 주변에 한 두 사람씩 대입(?)해서 연상하면 정말 쉽게 암기되는 파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면?! 혹시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의과대학생에서 가장 많을 법한 인격장애의 체크리스트를 써보았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본인은 모른 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 따르면 인구의 10∼20%가 인격장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1%는 심각한 수준인데, 현재 국내는 약 5만∼10만 명의 심각한 인격장애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격의 정의는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한 사람의 정서와 행동의 특징적인 총체로, 주위 환경과 사람 및 자신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양상을 뜻한다. 한 개인의 이러한 양상은 청소년기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해서 거의 평생 동안 일관되게 지속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상인격의 범주에서 벗어난 ‘장애’인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까? 몇 가지 감별 포인트를 소개하자면, 우선 사회에 대한 ‘부적응’이 ‘생활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주위사람들은 힘든데’,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여겨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는 것도 중요한 단서다.
일단 ‘장애’로 판단되면 성격특성에 따라 인격장애를 분류하게 되는데,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미국정신의학회의 DSM-5 진단체계에선 10가지 인격장애를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혹시 내게도 인격장애가?!

 

의과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격장애는 무엇일까? 동기들의 앞뒷담화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cluster B와 C의 질환들이 해당된다. 이들 중 3 가지의 인격장애의 간이 진단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스스로 체크해보시길!  

 

1. 화려한 주류가
되고 싶은 연기자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아닌 상황을 매우 불편해 함
-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주 외모, 행동에서 부적절하게 성적, 유혹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짐
-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모를 중요시함
- 심한 감정기복
- 그닥 친하지 않은 관계인데도 자신은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
- 지나치게 과장되고 연극적인 언어, 감정 표현

 

2. 완벽과 통제와
고집의 삼합체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일의 내용에서 세부규칙, 목록, 순서 등에 집착하여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침
- 완벽한 계획을 세우나 이것이 계획의 완수를 방해함
- 과다하게 양심적, 소심함, 완고하고 경직됨
- 여가활동, 친구를 제쳐두고 (생계가 아닌)직업, 생산적인 일에만 지나친 몰두
- 자신과 타인에 대해 돈 쓰는데 인색
- (정서적으로 중요치 않은데도) 낡고 가치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함

 

3. 숭배를 바라는 공상가
<다음 중 3가지 이상 해당>
-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성취와 능력에 대해 과장하며 적절한 성취없이 특별대우 받는 것을 좋아함
- 무한한 성공, 권력,아름다움, 영원한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
- 자신의 문제는 특별해서 높은 지위의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음
-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특별한 호의를 강요함.
- 착취적 대인관계
-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모름
- 타인이 자신을 시기, 질투하고 있다고 믿음

 

1.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 30세 여성 M씨는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진다. 그녀는 늘 화려한 화장과 복장을 추구한다. 직장에서 불행한 결혼생활로 괴로워하는 남자 동료를 위로하던 중 불륜을 저질렀는데, 사실이 들통 나 남자 동료는 이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 후 남자가 자신을 생각만큼 잘해주지 않자 자신의 처지를 드라마틱하게 비관하며 마치 비운의 주인공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녀는 친구관계도 피상적이며 오래가지 못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열중한다.  

2. 경계성 인격장애 : 29세 남성 S씨. 그는 늘 일이 계획된 대로 진행되는 것에 집착하고 그렇지 못하면 화를 낸다. 고등학생인 동생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자 다시 주워오게 하고 한 시간동안 혼을 냈다. 그는 회사에서 모든 일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주말에 집에서도 하루종일 회사업무를 본다. 그래서 유능하다고 평가받지만 정작 자신은 늘 일을 완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싸여있고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만 두려움이 잠시 미뤄진다. 만약 실패했을 때는 최악의 공포를 느낀다. 

3. 자기애성 인격장애 : 35세 명문의대 출신인 남성 C씨. 그는 자신의 학벌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며 주위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학벌을 알아주길 바란다. 병원에서 그는 자기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반론을 제시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동료들은 그가 두터운 막으로 혼자 싸여 있다며 그와 얘기할 때는 단절된 느낌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뛰어나므로 사회규범이나 윤리는 열등한 인간이나 지키는 것으로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욕구는 가장 우선시 하지만 동료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결과에 뜨끔하신 분이 있을런지요? 혹은 정말정말 typical한 특정인이 떠오를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돌아볼 구절 하나. 신경정신의학 2판 인격장애 단원의 첫머리에는 ‘의과대학생병’이란 신종 질환(?)이 기술되어있습니다.
“의과대학생병이란 ‘질병을 공부하며 마치 자신도 그러한 질병을 앍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질병’으로, 교과서의 인격장애 부분을 읽으면서 그 진단기준과 그에 동반된 설명들에 잘 들어맞는 주위의 친구나 친척을 떠올리며, 나아가 자기스스로가 이런 질환 중의 한 증상 혹은 모든 증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강남성심병원 정신과의 모 교수님의 경험담을 덧붙여 봅니다. 선생님이 의사 초년병이었던 시절, 외래에 왕따를 주증상으로 호소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입은 헤 벌리고 눈은 멍했던 남자아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하고 감정반응은 둔했으며 때와 눈물이 섞여 범벅이 되었던 얼굴, 더러웠던 위생상태와 허술한 옷매무새.
당시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으론 ‘저러니까 왕따 당하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치료 종결 뒤 내원한 아이가 생기 있는 눈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의사인 나조차도 결과인 ‘왕따’를 원인으로 여겨 편견을 가졌던 거라고, 사람을 알고 돕기 위한 학문을 배우면서 편견을 만들어선 안된다, 사람 자체를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셨죠.
실제로 정신과 의사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자신이 학습한 여러 가지 정신과적 질환을 자꾸만 주위사람에게 대입하는 것이란 연구논문도 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병원에서 인간관계 트러블이 날 때마다 무심코 ‘저 사람은 ㅇㅇㅇ인격장애네’ 라고 편견을 갖기 매우 쉽지요.
 
의과대학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얼굴들과 6년간 붙어살다보면 관계에 갖은 편견이 쌓입니다. 서로에 대한 색안경과 뒷담화와 나쁜 감정들만 무성해지기 십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나쁜 마음이 들 때마다 모 교수님의 말을 한 번씩 생각합니다 -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잘 적응하고 생활하는 여러분 정도라면 인격의 성숙도가 평균이상 보장된 것이니 누구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연습을 하도록!’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의사가 될 우리들인데, 지금부터 연습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 

 

웰시코기/코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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