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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2013.12.11)'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14.04.23 편집자가 독자에게
  2. 2014.04.23 세상을 두 번 사는 사람들
  3. 2014.04.23 장래희망 2040

편집자가 독자에게

96호(2013.12.11) 2014. 4. 23. 23:51 Posted by mednews

또 다른 자격을 향하여

 

‘누구든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자격이 충분해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자격 이전에 먼저 자리를 맡는 것이 보통이다. 감사함과 겸손함으로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발레리나는 자신이 맡은 역에 빠져들어 혼신을 다해 자신을 불태우고 손끝하나부터 발끝 연기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무대를 내려올 때 비로소 자격을 얻는 것이다.
...누군가 ‘나는 자격이 충분하니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많은 사람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 무슨 작품이든지 심지어 백 번 이상 이미 공연했던 작품도 다시 무대에 오르기 전 150%이상의 노력을 쏟아붓는다...그렇게 노력을 해도 관객에게 100% 만족을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격’이론. 올해 첫 신문 91호 ‘편집자가 독자에게(이하 편독)’란에 인용했던 글귀입니다. 올해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의 자격 - 편집장과 PK - 을 얻으리라 다짐했던 때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춰보는 이 구절은 새롭습니다. 편집장과 PK가 ‘되고자’ 노력했던 2013, 이제 끝이 다가왔습니다. 편집장의 소회로 Adios, 2013을 마무리해봅니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전부다.

사람에 대해 참 많이 배웠습니다. 신문 만드는 일의 8할은 사람입니다. 신문사 기자들 외에도 각종 거래처, 후원처, 취재원 등등과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을 조정하고, 가지각색 능력들을 조화시켜 공통의 아웃풋을 내는 것이 일의 핵심입니다.  
마음으로 배운 원칙을 하나 소개하자면, ‘어떠한 경우에도 웃어야 한다’입니다. 정말입니다. 분노로 해결되는 일은 없더라구요. 특히 사람에 관해선요. 누가 인간이 이성적이랍니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일단 감정이 상하면 모든 일이 지체됩니다. 반대로 마음과 신뢰를 얻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진리임을 절실히 느꼈죠.
보다 나은 결과물을 위한 피드백과  ‘기사를 이따위로 쓰나?!’는 분명 별개입니다. 예를 들어 미흡한 점을 짚어주고 싶다면, 직설적인 비판보다 ‘나는 늘 당신의 노고에 감사했고, 당신의 능력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보다 나은 방법을 추천하고 싶은데 당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재고해 볼 만 하다’라고 어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실제로 많은 기자 분들이 이런 즉각 피드백을 수용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하관계와 자존심이 중시 되는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한 분들은 이런 태도를 ‘을’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세련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진짜 ‘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빠와 25년 넘게 유쾌한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잘 지내는 비결이 무어냐는 질문에,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술, 여자, 도박만 아니면 다 맞추고 사는 거다.’
그 말인즉슨,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함께 못 지낼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 사람을 포용해야 하는 직위의 사람에겐 필수 요소겠죠? 각박한 Ego의 단단한 자존심은 피해의식과 열등감, 분노를 일으켜 마음의 눈을 흐립니다. 여러 사람을 헤아려야 하는 장(長)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죠. Ego의 벽을 허물고 먼저 손 내미는 마음을 가져봄이 어떨는지요. 

드러나지 않는 진짜 일, ‘잡일’을 존중하자. 

한 신문의 발행은 사실 상당한 잡일을 요합니다. 편집장이 멋있을 때는? 글쎄요... 회의나 뒤풀이에서 카드 긁는 모습(?) 정도입니다. 편집장이 ‘아이템 내주세요, 회의에 오실 분. 지면에 실을 광고 보내주세요, 마감 지켜주시고, 편집비랑 배송비 입금해야되는데, 선배님께 부치는 글은 또 언제 쓰지’ 등등 부산하게 뛰어야 한 호가 발행됩니다.
우아하게 호수를 거니는 백조는 물 밑 발갈퀴가 쉼없이 탐방거리기에 가능한 장면이죠. 백조가 아웃풋을 내는 조직 구성원들이라면, 발갈퀴는 한 단체의 장(長)을 의미합니다.
신문사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입니다. 편집장은 글 쓰는 공간을 책임지는 무대 뒤편의 사람이죠. 꼭 필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 다수가 회피하는 일을 묵묵히 도맡는 것, 백조 대신 물갈퀴가 되길 각오하는 것이 장(長)의 자세입니다.
덧붙여 드는 생각. 비슷한 맥락에서 인턴생활도 꽤 의미 있는 시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인턴은 학생에서 의사가 되는 과도기이죠. 의사가 존경받고 멋있는 이유는 병에 대해 Decision making 때문입니다. 그러나 6년간의 백면서생이 졸업하자마자 이런 ‘멋있음’을 추구하기엔 실무경력이 참 부족합니다. 우선 병원의 잡일을 도맡으면서 어깨너머로 레지던트와 스텝들의 생활을 배우고, 환자에게 다가가는 법을 ‘연습’해서 멋있는 모습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고급인력인데 왜 이런 일을 하지?!’불평보단 이왕 주어진 시스템에서 나를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보자, 다짐해봅니다.

편집장의 자격은 2013년과 함께 추억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이제 또 다른 자격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마 긴긴 여정이 되겠지요. 어쩌면 평생의 노력이 될지도 모르는, 의사의 자격을 위하여. 


김정화 편집장/한림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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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 번 사는 사람들

96호(2013.12.11) 2014. 4. 23. 23:50 Posted by mednews

세상을 두 번 사는 사람들

 

 

지난 달 이란에서는 처형된 사형수가 하루 만에 다시 살아나, 국제 인권단체와 국내외 여론에 힘입어 사형 재집행을 면하고 새 삶을 얻게 되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형수는 마약밀수죄로 지난 10월 초 한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의사가 그의 사망 판정을 내린 뒤 ‘시신’은 시체안치소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하기 위해 시체안치소에 들렀던 직원이 사형수를 감싼 비닐에 수증기가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풀어보니 그가 두 눈을 뜬 채 살아있던 것이었다. 사형수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현재는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죽었다 살아난, 즉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은 ‘죽어 있는’ 시간동안 사후체험이라는 것을 겪었다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경험자들의 문화와 종교에 상관없이 그들이 진술한 사후체험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체 이탈, 터널, 그리고 미지의 세계이다. 이들을 조합해 사후체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사후체험은 ‘유체 이탈을 통해 신체를 빠져나온 영혼이 터널을 지나 도달한 미지의 세계에서 겪는 경험’이다.
그들이 겪는 첫 과정은 ‘유체 이탈’이다. 이 때 자신은 자신의 몸 밖으로 나와 보통 2~3m 높이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지만, 꿈이나 환각이 아니라 몹시 생생한 현실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렇게 몸을 빠져나온 영혼은 ‘터널’을 지나 현세의 삶과 시공간을 초월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한다. 여기서, 현세와 미지의 세계를 이어주는 터널을 지난다는 것은 경험자에 따라 계단을 오르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후 ‘미지의 세계’에서 겪는 경험은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미국의 한 기독교 신자는 터널을 통해 빛의 세계에 도달해 예수와 천사들을 만나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면서, 다시 살아나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과의 이별 때문에 몹시 슬펐다고 한다. 반면 미신을 섬기는 일본의 한 여성은 꼬불꼬불한 벼랑길을 걸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니 남녀노소를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섬기는 미신에게 만수무강, 불로장생을 기원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런 대화 없이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녀는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 현실세계로 살아났다. 그녀는 그 경험이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이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 인생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사후체험을 경험한 이들도 많았다.
수많은 사후체험 경험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와 의학계는 대체로 사후체험에 대해 부정적이다. 사후체험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체반응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후체험이 심장이 멈추면서 저산소증에 빠진 뇌가 죽음에 대한 불안을 처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모든 정보가 입력돼 있는 뇌가 산소결핍으로 전두엽에서 발작을 일으켜 충격을 받아 마치 추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 7명의 두뇌 활동을 한 달간 분석한 결과, 죽기 직전 30초~3분 동안 많은 전기 에너지가 분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죽기 직전 뇌세포가 마지막으로 분출하는 에너지가 뇌의 한 부분에서 시작해 폭포수처럼 퍼지며 엄청난 흥분을 주면서, 사후체험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때의 경험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사후체험을 심층심리의 자기방어 기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죽음에 임박하면 엄청난 공포가 엄습하는데 이를 의식에서 배제하기 위해 마음이 만들어내는 여러 이미지가 바로 사후체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뇌사에서 7일 만에 살아 돌아온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의 사후체험을 책으로 써내면서 사후체험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의학계에서 환각으로 치부한 기존의 사후체험들은 잠시 심장이 멈췄을 때 발생했지만, 자신은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인해 대뇌 신피질이 이미 완전히 멈춰버린 상태에서 사후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후체험은 뇌가 꺼져도 의식이 계속 존재한다는 결정적 증거이며, 우리의 삶이 육체나 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면서 우리 인간은 항상 그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왔다. 죽음에 관한 의학적 연구가 끝나지 않는 한, 사후체험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소재로 회자될 것이다.

 

최우혁 기자/계명
<cwh3602@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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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2040

96호(2013.12.11) 2014. 4. 23. 23:45 Posted by mednews

장래희망 2040


저의 장래희망은요...

 

의대생신문사 기자들의 20년, 40년 뒤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 저 멀리 오는 봄을 위해 씨앗을 심어봅시다.

 

20년 뒤 : 10년뒤 35살은 한국서 펠로우마치고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로 유학가서 유럽의 최신 대체의학을 배우고싶습니다. 프랑스에는 내과학에 온천치료학 분과가 있다고 하네요. 독일에도 수(水)치료가핫한 분야라고 하고.외국서 잘배우고와서 20년뒤 45살 즈음에 학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넓히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40년 뒤 : 직장 정년인 65 세에는 우선 5 년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싶고요 , 열심히 벌어놓은 돈으로 개인 동물농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동물 엄청 좋아하거든요 . 남편이랑 둘이서 스위스에 한 달간 요양여행다녀오는 것도 꿈입니다. 그린델발트에 별장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정화 기자/한림

 

20년 뒤 : 마흔이라니...... 이미 의사가 되어있겠군요. 무슨 과를 선택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정과 자부심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항상 모이는 곳에 모여서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40년 뒤 :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도 건강하고 무엇보다도 가정이 화목해서 정신도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은 꾸준히 잘되면서 이리저리 여행도 많이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어놔서 앨범이 엄청 많았으면 합니다.
권수빈 기자/계명

 

20년 뒤 : 대학생들의 학술여행을 주 사업으로 하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립할 것입니다. 아이템은 비밀이구요.^_^ 저도 참가하여 보람을 느낌과 동시에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놀이터(김정화 편집장님에 대한 오마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업을 만들고자 합니다. 

40년 뒤 : 67살 이네요.(헉...) 이 때 함께 하고 있을 가족들과 함께 전시회나 음악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이루기에도 좋을 나이지만, 함께 하는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도 좋은 시기일 것 같네요. (자식들이 바빠서 부모를 외면할 시기일진 모르겠습니다만;;)
조원민 기자/경희

 

20년 뒤 : 20년 뒤의 나는 50살이다. 50세 때 나는 아버지 이름을 딴 병원 설립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의대에 올 수 있었던 힘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보답하고자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50세 때 아버지 이름을 딴 2차 병원을 설립하여 항상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나가고 싶다.
40년 뒤 : 70세 노인... 의사로서 70세라는 나이는 일을 하기 힘든 나이일뿐더러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먼저 내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그동안 벌었던 돈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고싶다. 50세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아마 앞으로 육체적 봉사는 실천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40년뒤, 그동안 의료를 통해 벌었던 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면서 의미있게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
P군/조선

 

20년 뒤 : 일과 가정, 두 마리 소중한 토끼들을 잘 품고 돌보는 사람이기를. 어딘가에 매인 채 끌려가기 보다는 묶인 줄로도 여유있게 줄타기하며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를. 마음 속엔 욕심 아닌 열정이 불타기를.

40년 뒤 : 손주 여럿 돌보는 재미에 푹 빠진, 세계 곳곳의 산해진미를 맛보는 게 취미인, 그 취미에 맞는 모습을 한 둥글둥글한 60대 아주머니가 돼 있을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올 내 얼굴은 부디 온화함을 풍기길.
김호정 기자/중앙

 

20년 뒤 : 43세군요... 제가 원래 보기와는 다르게 요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꿈은 카페같은 병원, 병원같은 카페를 만드는 것이에요~ 일반적으로 병원은 뭔가 삭막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병원이 카페처럼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갔다 하여 마음과 몸을 모두 치료 할 수 있는 그런곳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발 실패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ㅋㅋ

40년 뒤 : 63세네요... 그때 쯤이면 이제 진짜 제가 하고 싶어했던 것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평생의 소원인 조그마한 레스토랑을 하나 차리고 싶어요. 예전에 잡지에서 봤는데, 단 2명이나 단 한 가족을 위한 레스토랑이 있는 걸 본 기억이 있거든요! 단 한 테이블만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그러한 레스토랑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김승현 기자/관동

 

20년 뒤 : 전문의 따고 10년 정도 경력을 쌓아놨을 시점이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미를 미루어볼 때, 경력을 바탕으로 뭔가 다른 일에 도전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사람의 의사가 탄생하기 까지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의 지원도 함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의료계가 더 발전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일에 관심을 두고 그와 관련된 제2의 직업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40년 뒤:  일에 관련한 회고록을 쓰고 싶다. 어떤 개인의 훌륭함을 과시하거나 교훈을 주기 위한 자서전이 아닌. 직업인으로써 느껴왔던 것,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모두 같이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무엇인지 작은 시사점이라도 던질 수 있는 책 한권을 쓰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최혜란 기자/조선

 

20년 뒤 : 그땐 사랑하는 우리 여보와 같이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여행을 다닐 것 같다. 병원일이 바쁘겠지만 사랑하는 여보와 시간을 같이 보낼 것이다.
물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가 될 것이고! 같이 많은 활동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싶음

40년 뒤 : 의사생활의 막바지! 그 동안의 생활을 차차 정리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사진공부를 하고 싶다! 사랑하는 여보와 같이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가서 옷 이쁘게 입고 사진을 찍을 것임!
또 나를 위해 수고한 여보를 위해서 요리를 배워 내가 정말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싶다.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서 물론 사진도 찍을 것이다!
60대 이후에는 나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음!!
전종욱 기자/관동

 

20년 뒤 : 일단 의사로서 열심히 사는게 가장 큰 목표. 거기에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유용하고 감동을 주는, 찍어내도 '종이가 아깝지 않을만한'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더 늙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1년에서 1년 반 정도 지구를 돌아보는 것. 항상 나의 바깥의 세계를 볼 줄 아는, 꼰대가 아닌 쿨한 중년이 되고싶다.
40년 뒤 : 사람과 길고양이들이 쉬어가는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카페가 적당할 것 같다.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장식품들로 예쁘게 꾸며 보겠다. 나도 동물농장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김정화편집장 동물농장 옆에서 카페를 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젊은 시절 바빠서 포기해야 했던 어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발휘해보고 싶다. 일본어 고전,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 강독에 참여하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문지현 기자/중앙

 

20년 뒤 :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또 다른 전문의 자격증에 도전하여 마무리 되었을 시점이다. 두 개의 전문의 자격증으로 다른 과와 융합할 수 있는 진료분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고, 대학병원에 남아서 연구를 하고 싶다.
40년 뒤 : 은퇴하여 의학에서 세운 지식의 체계로 예술이나 건축 등 다른 분야에 접목해서 연구하고 싶다. 하지만 시도는 하되 무리하지 않고 가정에 더 충실하게 하고 싶다.   
문선재 기자/중앙

 

20년 뒤 : 섭외 0순위 방송인, 칼럼리스트. 제 이름으로 의학프로그램 하나 정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네요. 내친김에 건강보조식품 광고까지. 캬~좋다.

40년 뒤 : 저는 70이네요. 하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스킨십으로 젊은이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여전히 애인 같고 친구 같은’ 남편과 함께 이길.
홍유미 기자/전북

 

20년 뒤 : 아직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전공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선택을 해서 일이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 있으면 좋겠다.

40년 뒤 : 뭔가 새로운 다른 걸 시작했으면 좋겠다.(뭐가 될지 모르지만) 40년 후면 의사로 30년은 넘게 살았을 텐데, 살면서 직업을 하나만 갖기에는 너무 아쉽다. 요즘 인생은 60부터라는데 62살이면 심지어 젊다! 40년 후에 그럴 용기가 남아있길 :)
서우림 기자/한림

 

20년 뒤 : 늘 고민 중인 부분. 아직도 구체적인 꿈을 찾지는 못 했지만, 내 전문 분야에 충실하면서도 내 주변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있을 거예요!

40년 뒤 : 젊었을 때 밖으로 쏟았던 열정을 안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배낭여행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구요. 내가 보았던 환자들, 사람들을 주제로 한 작은 미술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고유라 기자/서남

 

20년 뒤 : 우선 의사가 되있겠죠! 이건 다 썼을라나.ㅋㅋ 예쁜 집에 예쁜 가정도 꾸리고.. 다른 것보단 40대 중반일텐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현명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40년 뒤 : 제 2의 인생은 제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꿈을 펼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예쁜 2층집 주택에 1층은 까페를 하고 2층은 옷가게를 여는 거에요. 50대 부턴 이 꿈을 차차 이뤄가고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제2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제가 되기를. 
이선민 기자/을지

 

20년 뒤 : 뭘하고 있을까요? 솔직히 저도 저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 비록 비루한 의대생이지만 꼭 의사하라는 법 있나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에도 “워홀”을 유지하고 있을것만 같네요!

40년 뒤 : 더 먼 미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사진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저만의 사진전을 집에서 열어보고 싶어요! 방 한가득 제 60년 남짓한 세월들을 사진으로 나타내보는거죠~ 초청장은 드릴테니 꼭 놀러오세요!
강상준 기자/서남

 

20년 뒤 : 순리대로만 가준다면 막 전공의를 시작했을 때네요. 아마 제가 선택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저의 희망대로라면! 결혼 초기인데^^ 허리띠 졸라매고 한 푼 한 푼 모으며 살고 있을 것 같네요.

40년 뒤 : 이쯤부터는 나 자신에게도 투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딱 제 전학조 교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환자도 돌보시고 여행이랑 봉사활동도 자주 다니시고 가족과도 무척 살갑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고 제 롤모델이 되셨습니다. 세세한 계획은 집 안에 서재가 있었으면 좋겠고(의학책 말고요..) 바리스타나 요리 자격증 따고 싶고 가야금 배워보고 싶네요. 
이유정 수습기자/영남

 

20년 뒤 : 세계 석학들과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

40년 뒤 :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단체의 리더, 의학 교과서의 저자
허기영 기자/서울

 

20년 뒤 : 부산, 울산, 포항, 인천. 이제 떠돌아다니는 것도 힘들다. 마흔 넷. 공자가 말한 불혹(不惑)에 4년을 더 더했다. 이 쯤 되었으면 흔들리지 않고 어디라도 뿌리를 박고 정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큰돈은 못 만지더라도 어떻게 벌고는 있겠지. 이때까지도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건강하게 잘 계시길 소망한다. 못 먹는 거 빼고 다 맛보시고 못 보는 거 빼고 다 보여드려야 하니까. 쓸 만큼만 쓰고 소방관들에게 기부한다는 오래된 생각이 20년 뒤에도 유효하길.

40년 뒤 : 공자는 60은 이순(耳順). 귀가 열리는 나이라고 했다. 사실 귀보다는 일단 먼저 그때까지 살아있는 게 목표. 술 끊어야지.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도시가 아니더라도 한적한 곳에서 살면 수십 년은 일 안해도 먹고 살 돈이 모였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은퇴. 글을 쓴다. 쓰고 또 쓴다. 비록 조금 돌아가고 있지만, 진짜 잘 빠진 교양과학서 하나 쓰겠다는 목표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준형 수습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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