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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매일 들어야 하고, 그 수업이 끝나면 또 도서관으로 향해야 하고, 저번에 시험 본 것 같은데 또 시험봐야 하고, 시험 보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일어나면 해지고 뭐 하기는 애매한 시간이고.이렇게 몇 달 살다 보면 드는 생각. ‘도대체 나는 왜 공부하는 거지?’
의대생신문 기자 4인의 공부에 대한 수다를 공개한다.

 

낭이 : 공부하기 싫어지는 때는 언젠가요?
오랜드 : 할 게 너무 많아. 그렇다보니 왠만해서 공부해서는 해도 몰라. 내가 열심히 한 것에 비해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뭐 했는지도 잘 모르는 느낌.
낭이 : 족보를 보면서 이것만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공부 시작하고 열흘에서 일주일 후면 시험을 봐야 하니까 결국 족보에서 맴돌고 있어요.
오랜드 : 우리 학교에는 학습부가 있어. 학습부 해서 힘들게 자료 만들었는데 학교 안나오고 그것만 복사해서 보는 애들이 나보다 시험 잘보고 그러면 짜증나지.
카레매니아 : 연애할 때, 아니면 정말 친한 친구들이 모일 때 못 나갈 때 그렇더라구요. 나가서 술 먹으면 공부 못 할 것 같고, 중간에 나오면 또 공부도 안되고. 애인이 이 공연 같이 보러 가고싶다 하는데 내 시험일정 때문이 어렵고 그러면,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자꾸 생각나고.
낭이 : 생활 속에서 항상 시험에 집중하는 애들이 있잖아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여기서 뭐 찍어줬지? 뭐 나온다고했지? 이런 거 항상 찾고. 그런 애들이 늘 주변에 있으니까 나도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오랜드 : 공부랑 시험은 약간 다른 거니까. 그런데 시험에만 너무 포커싱 되는 게 있지.
낭이 : 항상 시험을 보면 드는 생각이, 족보 타면 알고, 족보 안타면 모르고.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살고 있는건가 하는 고민이...
오랜드 : 시험보는 기계야? 그런 기분. 본2때까지는 맞는 거 같아 시험 보는 기계.
낭이 : 요즘 생활을 보면 이게 나아지지 않을 거 같은 기분이에요. 적어도 레지던트 끝 날 때까지는 매일 피곤하고, 매일 할 게 산더미같고, 이런 생활이. 어른들은 그때만 지나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말이 실질적으로 위안이 되지는 않아요.
오랜드 : 그때 젊은 의사 포럼에서 정제닥선생님이 그런 말씀 하셨어. 그분은 목표가 좋은 의사가 되어서 주변에 도움 주는 사람이 되는 거였대. PK때 간호사랑 싸우거나 환자랑 싸우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더라는 거야. 본래 목표를 생각해보면 저렇게 화낼 필요가 없는 건데. 왜 저럴까 싶어서 자기는 수련 받을 때 간호사랑 안 싸우기, 환자랑 안 싸우기 이걸 목표로 잡고 수련을 받으셨대. 그래서 딱 한 번 씩밖에 안 싸웠는데 자기가 열 받는거 다 참고 사는 거 보고 사람들이 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했다는 거야. 생활자체도 자기가 수술하는 기계 같고. 주변을 돌아보면 10년 뒤에 내 모습이 저 조교수님, 20년 뒤의 내 모습이 저 기러기아빠.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겠다. 수술에 치여가지고 살고, 논문 때문에 바빠 죽겠고, 그런게 싫어서 자기는 새로운 걸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셨대. 삶에 대한 근본적이 고민이나 고찰 같은 게 없이 이걸 이어나가다보면, 사람들이 하던대로 따라가다 보면 막 피곤한 인생을 살다가 끝날 거 같아. 
카레매니아 : 그래도 중간중간 재미있는 공부가 있는데.
낭이 : 모든 공부가 시험을 향해 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재미를 느낀다고 동기부여가 되기에는 부족해요.
오랜드 : 공부가 뭔가를 충족시켜주지를 못하니까. 난 실습생이라 환자들 보니까, 그래도 아픈 사람들보면 아 그래도 공부해야지 그런 생각 들어.
낭이 : 해도 모른다는 생각에 팽배해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건 맞지만 그래도 똑똑하다는 사람들 모여 있는데 정말 해도 모를까? 끝까지 해서 진짜 모르면 곤란하잖아요?? 의사도 해야 되는데.
오랜드 : 그렇게 여겨 버리는 건 그 순간을 넘기는 합리화의 방편이라고 생각해. 공부에 의미 부여를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태까지 다니고 있는데 그래서 더 동기들이 좀 유별난애로 보는건 있어. 비꼬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해도, 나한테는 좋아. 힘들 때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 같아. 뭐 교수님이나 레지던트한테 혼날 때 공부하면서 내가 배우기 위해 한 실수니까 내 스스로 용서가 되는 느낌. 내가 잘 못하고 그러면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더 잘 배우라고 혼내는 거겠지, 그렇게.
낭이 : 고등학교때도 사실 크게 고민을 안 하잖아요. 습관된 것 같기도 하고. 공부하다가 어떤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 때 그걸 확장시켜 갈 열의나 의욕이 시험 반복으로 인해서 다 사그러드는 것 같아요. 전 예과때 선배들 보면서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아무리 공부가 바빠도 그렇지, 운동 같은것도 안하고, 취미생활 하나 없고, 책도 안보고, 시사같은 데도 관심없고.
오랜드 : 아 진짜 매몰되어있는거.
낭이 : 저렇게 왜살지? 아무리 그래도 짬내서 지킬 수 있는 것들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본과생이 된 제가 그래도 하고 있더라구요. 선배들 하던 것처럼. 또 후배들 만날 때 하는 대화 내용이라거나 말투라거나 생활태도라거나 그런게 ‘난 절대 저렇게 안 될 거야!’ 라고 했던 그대로 제가 하고 있는 거에요. 저는 그게 너무너무 슬펐어요.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자신이 너무 싫고 자기와의 약속을 못 지킨 것 같은 느낌.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카레매니아 : 그럼 저는 마음 맞는 친구랑 이야기해서 풀어요.
오랜드 : 그래. 나만 힘든거 아닌데 다른 사람도 다 힘든데, 그런 생각으로 정리되는게 수다 힐링의 핵심인 것 같아.
낭이 :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늘 결론은 ‘망했다.’로 끝나던데.
오랜드 : 그런데 이야기해보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안 바뀐다 이거. 그래서 의사가 되더라도 제네럴닥터같은 새로운 모델, 자기 삶을 많이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자기 직업적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의대를 들어오기 전이든 예과때든 꿈꿔 본 적 있는 모습. ‘해리슨을 끼고 도서관에 앉아서 학문적 열의에 불타며 진지한 표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는 본과생’.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유니콘 같은 본과생이다. 현실은 시험에 치어 형광펜 잔뜩 문대놓은 족보만 들고 반쯤 감긴 눈으로 공부를 한다. 무엇이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이토록 멀게 한단 말인가.
가장 큰 이유는 의학의 방대한 양. 그로 말미암아 배운 내용을 알기도 전에 시험장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자주 반복되는 시험. 거기에 ‘성적으로만 말해요’ 식의 의대 특유의 분위기. 이 둘이 합쳐져서 자신의 가치를 시험지에 써낸 답의 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의식중에 믿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기 싫어도 공부하고, 공부해야한다는 자각이 없이도 어느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건 아닐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이런 구질구질한 생활이 1,2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 앞으로 남은 본과생활, 인턴, 레지던트, 헤아려보면 까마득하기만 한 시간이 남아있는 것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다. 의대와서 공부하고 졸업해서 의사되면 폭풍간지나는 삶을 영위할 줄 알았건만.
완전한 해답이 되진 못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극복법은 공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내가 공부를 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 돈, 결혼, 삶의 질, 적성, 뭐든지-를 찾고 내가 이 재미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들을 왜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최소한 ‘남들이 하니까’ ‘성적이 떨어지면 안되니’ ‘공부는 원래 해야 되는 거니까’ 같은, 스무살 넘은 사람이 대기에는 슬픈 이유를 대지는 않아도 되지 않은가.

 

만신창이맨탈/오늘도 지긋지긋한 차안(此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