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에 드리운 불편한 진실
감사원이 11월 3일 발표한 대학 등록금 감사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전국 113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감사에서는 지난 5년간 대학들이 해마다 평균 187억 원씩을 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출은 아예 있지도 않은 항목을 만들어 넣거나 실제보다 부풀리는 반면, 기부금이나 학회 수입, 특강료 등 등록금 외 수입은 줄여 잡거나 교비에 넣어야 할 금액을 재단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예·결산 내역을 조작해 그 차이를 등록금 인상 요인으로 꾸며낸 것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예산이 부족하다며 어려운 경제사정을 고려해 등록금을 ‘동결’해 주겠다고 선심 쓰듯 이야기한 모습은 한낱 가식이었다는 말이 된다. 잘못된 회계만 교정해도 최소 13%에서 최대 25%까지 등록금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지성의 전당이 우는 표정을 지어 가며 학생들의 주머니를 탐해온 것이다. 그 돈으로 교원수당을 인상하면서 학생복지예산은 삭감했다는 사실이나 이 밖에 50여 곳 대학의 이사장과 총장, 교직원의 횡령과 비리도 감사 결과 밝혀졌다. 이처럼 추한 속사정이 드러났는데도 대학 총장단체는 등록금 감사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은 학문의 자율성을 일컫는 것이지 재정을 아무렇게나 운영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4일 ‘반값등록금 포기’를 선언했다. 현 정권의 공약사항이기도 했거니와 최근에 와서도 정치권의 이슈로 자리잡는듯하더니, 오갈 데 없는 감사 결과만 남기고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장학금 확대다. 성적에 따라 지급되는 장학금이니 이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에 뛰어들어야 하고 이는 또다시 장학금 탈락으로 이어질 것이 그려진다. 사실상 필수재라고 여겨지는 대학교육상품이지만, 공급자는 진입장벽을 치고 독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독점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세금 투입이 아닌 가격규제이다. 정부 스스로 벌인 감사 결과에서 대학들의 온갖 추태가 드러났음에도 등록금 자체를 손보지 않고 장학금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않고 언 발에 오줌 누며 변죽만 울리고 있는 꼴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대학은 부정을 저질러 가며 등록금을 올릴 생각만 하고 있고 정부의 정책의지도 미약한 마당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건 등록금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대학생들이다. 올해 최저임금 4320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사립대 평균 등록금 754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년간 총 1745시간, 매일 8시간씩 일해도 218일을 일해야 한다. 대학생 471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26.1%가 ‘등록금 부담으로 휴학을 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이들 중 약 절반은 이미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휴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의존 없이 정상적인 대학생활은 불가능하다. 의대생의 과외 표준시급 25000원으로 계산해도 의대 평균 등록금 1000만원, 의전원 2000만원을 감당하려면 일 년간 총 400시간, 의전원의 경우 800시간 과외를 뛰어야 한다. 본업이 대학생인지 과외선생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대학생은 엄연한 법적 성인이자 사회적 시각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원하는 내용의 공부를 원하는 양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율이고 경쟁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대학생, 의대생들의 관심과 현실참여가 절실하다.
'84호(2011.12.12)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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