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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학교별 해부실습 탐방기

우리가 부푼 마음을 안고 의대에 입학하면서, 혹은 학창시절에 의대 진학을 꿈꾸면서 가장 많이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 중에 하나는 ‘가운을 입고 해부 실습실에서 카데바를 직접 해부’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학 입학 전 ‘저 의대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이면 ‘해부 같은 것 할 수 있겠어?’ 하는 질문이 곧바로 따라올 정도로 의과대학의 상징이기도 한 해부 실습! 전국 각지의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실습이 진행되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아직은 포르말린 냄새가 힘겨운 초보 해부실습생과 함께 들어보자.

성균관대

성균관대는 학부와 의전원 체제를 병행하기 때문에, 본과 1학년 1학기 내내 실습을 함께 진행한다. 6~7명이 한 조가 되고, 실습 시작 전 간단한 묵념 정도의 식을 거행한다. 해부학은 1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두 교수님이 수업을 해 주시는데, 수업내용은 비슷하지만 실습은 교수님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A 교수님은 매우 힘들고 빡빡하게, B 교수님은 매우 널널하게 진행 하신다고 한다.
일단 A 교수님의 실습은 수요일 오후에 시작해서 밤 12가 되어서야 끝나고, 그날 다 못한 조는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안 되면 주말이라도 이용해 주어진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과제는 근육, 신경, 혈관 등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이를 완수하려면 신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지방조직을 다듬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조마다 다르지만 주당 20시간 정도를 해부에 쏟아 붓게 된다. A 교수님의 교수법 중에는 “digit anatomy”라는 것이 있다. “몸으로 익힌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교수님의 철학으로 제안된 교수법으로 몸 안의 신경이나 혈관 구조를 손가락 모양에 대입하여 외우는 것이다. 따로 교수님 앞에 불려나가 손가락 모양을 만들고 설명하는 시험도 치고, 효과도 있다고 하니 A 교수님의 철학과 교수법이 통하는 듯하다.
반면 B 교수님은 실습시간에 ppt로 수업하시고 나서, 한 번 열어보면 수업이 끝난다고 한다. ‘어떤 구조물을 찾아라’가 아니라, ‘한번 확인해봐라’고 하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B 교수님이 수업하게 된 학년에는 “휴학하려면 2년 휴학하지, 1년 휴학은 하지마라”는 뼈있는 농담도 한다고.

울산대

의과대학 중 많은 학교에서 3+9체제를 도입하면서 교과과정이 바뀌었는데, 울산의대도 그 중 한 곳이다. 작년까지는 예과 2학년 2학기에 해부학 수업을 먼저 하고, 본과 1학년 1학기에 개강일부터 집중적으로 4주동안 실습을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예과 2학년 2학기 한 학기에 걸쳐 수업과 실습을 주 1회씩 진행하여 병행하는 체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실습 첫날, 교수님의 묵념사에 맞추어 10초 정도 묵념의 시간을 가지는 것 외에는 특별한 행사를 따로 하지 않고, 시신 한 구당 6~7명의 학생이 한 조로 배정된다고 한다. 처음 한 두시간 정도는 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실습이 진행되지만, 그 이후부터는 일상적인 이야기나 가벼운 농담 정도도 주고받는 분위기라고.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 주에 배운 내용을 실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각 실습시간 전에는 대한해부학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용으로 만든 동영상의 해당 내용을 시청한 후 실습에 들어간다. 실습 중에는 교수님과 조교선생님께서 베드 사이를 돌아다니며 진행 상태나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을 체크해 주신다. 조마다 시신의 상태(예를 들어, 대장암 수술을 받아 대장이 없는 경우)나 성별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서로의 조를 왕래하기도 하고, 특별한 변이(anatomic variation)가 있는 경우에는 교수님께서 다른 조 학생들을 불러 알려주시기도 한다. 각 시간을 마칠 때는 구조물들을 모두 찾았는지 확인하고 가끔 구두시험을 치기도 한다.

이화여대

이화여대 역시 대략 5명이 한 조로 본과 1학년 1학기, 한 학기 내내 실습이 진행된다. 기독교학교라 해부학 실습 첫날, 본교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기부해주신 분들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실습이 끝나면 화장식을 하는데 학생들이 거의 100% 참여한다고 한다.
실습 분위기는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모두들 열심히 참여하고, 여학생들만 있다 보니 무서워하거나 실습하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런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매 실습마다 돌아가며 그날 실습할 내용을 공부해 와서 알려주고 지시해주는 ‘브레인’이 한 명씩 있고 구조물을 찾기 위해 조직이나 지방을 제거하는 ‘포크레인’들이 있다.
이화여대에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여학생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다른 학교에 비해 실습 전 준비 단계가 타 학교에 비해 조금 복잡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보통 가운이나 해부복, 라텍스, 마스크 정도를 착용하는데, 머리비닐(머리카락에 냄새 배는 것을 방지), 해부용 트레이닝 복이나 우비(해부복 입기 전에 착용), 비닐 앞치마, 비닐 팔토시(해부복 위에 착용)까지 추가로 착용한다고 한다.

중앙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최고의 해부학 강의를 자부하는’ 중앙대의 실습은 해부용어 한글화를 주도하신 ‘대왕님’이라고 불리는 교수님 한 분이 주로 수업을 하시고, 학생들과 강의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셔서 자칭, 타칭 세계 최고의 강의라 불린다고 한다. 학부생은 본과 1학년 1학기 내내 해부학 실습을 하고, 의전원은 본과 1학년 2학기 때 7주 동안 해부학만 하는 블록 학기 때 실습을 하게 된다. 본과 개강 첫 날, 긴장되고 매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카데바가 있는 6층 해부학실습실로 올라가서 간단한 묵념을 하는 식이 진행된다. 이 엄숙한 자리에서 식이 끝난 후 어떤 학생이 박수를 치는 바람에 교수님과 학생들의 눈총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 조는 7명으로 구성되고, 여자가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조당 2명씩 따로 배정한다.  각 조에는 모든 학교가 그렇듯 무엇을 할지 지시하는 브레인, 포크레인, 주변에서 서성이는 ‘멤브레인’이 있다고 한다. 3-4명은 실습실에서 실습을 하고 그 밖의 조원들은 실습실 옆 조그마한 컴퓨터 방에서 3D CD로 아틀라스 공부를 하여 정부가 갑자기 ‘칼값’을 깎은 까닭은

멤브레인의 과다한 증가를 막는다고 한다. 실습 중에 교수님 두 분이 도와주시고, 교수님들이 직접 해주신 부분에서 시험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서 각 조로 교수님을 모셔오기 위한 여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눈치경쟁도 치열하다. 그리고 역시 세계 최고의 해부강의를 자랑하는 만큼 수업 시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부학 실습이 있는 월, 수, 금은 보통 7시 반이 넘어 끝이 나며, 특히 첫 한 달은 토요일도 수업과 실습을 한다.

대구가톨릭대

이 학교는 다른 학교와 조금 다르게 해부학 실습을 한다. 주된 실습은 본과 2학년 때 이루어지지만, 예과 2학년 때 4번 정도 예2 6명과 본2 튜터 2명을 한 조로 구성하여 근육, 혈관, 신경, 장기 등에 대해 관찰하는 실습을 한다. 각 장기들의 구조적 특징, 다른 장기들과의 위치관계, 근육끼리의 위치관계 등 책에서는 헷갈릴 수도 있었던 공간적인 특징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저녁 먹고 늦은 시각까지 진행되는 이 실습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분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라’는 교수님의 가르침과 선배들의 실습 모습을 통해 카데바에 대한 존경심과 해부 실습 분위기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게 한다. 실습 중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선배들은 간간히 문제를 내고 후배들은 그 문제에 대답한다. 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인 J양의 말에 따르면, 틀릴까봐 동기들과 눈치를 주고받으며 대답을 했던 것이 골학 시험에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하니, 분명 효과가 있는 실습법인 듯하다.

이렇듯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각 학교의 해부 실습 시간. 실습을 하게 되는 시기나 그 실습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인체에 대해 공부하는 마음만은 모두 같지 않을까?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