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발단부터 항소에 이르기까지

의대 내 윤리의식 이대로 괜찮은가

지난 달 30일, 동기를 성추행한 의대생 세 명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그들은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가 소위 ‘명문대’학생이며 환자의 신체를 다루는 의료인이 될 ‘의대생’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큰 질타를 받았다. ‘6년간 함께 해온 동기’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의대생들의 반응도 냉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건 발생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이었으나 그 이후 고려대학교 측의 함구와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법적 공방 등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그리고 언론의 왜곡 과장보도는 지켜보는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날 가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5월 21일 같은 동아리 동기인 가해자(박씨, 한씨, 배씨)와 피해자(윤 씨)는 경기도 가평으로 여행을 갔다. 윤 씨가 배 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확인 결과 여행은 윤 씨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펜션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마셨는데, 이후 9시 경 자리를 옮겨 함께 방으로 이동해 함께 술자리를 갖고 어울리다 사건이 발생했다. 성추행은 밤 11시와 새벽 3시 윤 씨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두 차례에 이루어졌으며, 가해자들은 성추행 외에도 윤 씨의 몸을 23차례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립과학수사대의 조사에 따르면 약물을 사용하거나 성폭행을 한 흔적은 없었다. 사건 발생 직 후 윤 씨는 친구의 도움으로 양성평등센터에 상담을 받았다. 고려대학교 양성평등 센터는 고려대 전 구성원들에게 성희롱 성폭력 예방을 교육을 실시하고,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 피해에 대하여 즉각적인 대응과 상담을 고려대 내의 독립적 기관이다. 피해자는 3일 뒤인 5월 25일 가해자들을 경찰에 고소하였고, 곧이어 언론에서도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졌다.

여론, 가해학생의 출교 촉구

사건이 보도되자 각 계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이들은 한 순간의 실수라고 발뺌하겠지만 그들이 의사가 된다면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믿고 진료를 볼 수 있겠느냐”면서 “전국의 병원에서 가해자 신원을 체크하고 절대 채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여 반드시 이들의 사회적 진출을 막고 격리해야한다. 그들의 죄질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포털사이트에는 ‘고대 의대 성추행범들의 출교를 원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청원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명 목표 1만 명이 달성됐다. 이 외에도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이들의 출교를 원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등 이번 성추행 사건은 해당학교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인과 지식인들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의료인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서울소재 내과 전공의라고 밝힌 한 여의사는 “의사 사회 안에서 동기는 함께 일한다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큰 의미” 라며 가해자들에 대하여 “같은 의사 입장에서, 특히 여자 의사의 입장에서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라도 절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고 말했다. 고려대 일부 단과대 학생회 등 내부의 여러 단체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 사건에 대하여 가해자들의 출교 요구 기자 회견을 가지고 서명운동,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강경한 반응을 취했다.

 피해자 윤씨, 사건의 처리 과정 중
2차 피해로 심한 심적 고통 겪어…

피해자인 윤씨의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는 여론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이 인터뷰에서 윤씨는 “여러번 교수님들한테 여쭤봤지만 답변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19일에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가해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라고 했다더라”며 “현재 학교 안팎에서는 ‘출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배 씨가 학생상벌위원회의 징계수위 결정을 앞두고 소명자료로 제출하기 위해 행했던 악의적인 설문조사에 대해서도 “설문지에 가해학생에 유리한 주장이 적혀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교수님들이 설문지에 적힌 그 내용을 많이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설문조사가 6월 중순에 진행됐지만 나는 두 달 후에 알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에 갔을 때 애들이 인사를 해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피해자 일뿐인데 나한테 왜 이럴까’ 싶었다”고 말했다. 앞서 논란이 됐던 설문조사에는 `피해자가 평소 이기적이었는지, 사생활이 문란했는지, 싸이코패스 성향이 있었는지` 등의 항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문 과정에서도 변호인의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동기 이모 씨를 대상으로 피해자의 양다리와 애인 유무 등 난데없는 사생활 침해 공방이 벌어졌다. 윤 씨는 “다시 그들과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다. 현재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매일 수면제를 먹는 등 치료를 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저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을 이야기하고 믿는 것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사건 이후 윤 씨는 가해 학생과 부모들이 합의를 강요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등 2차 피해로 심적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과 여론의 좋은 먹잇감이 된
‘의대생’ 성추행 사건, 허위 정보
유포, 사실 왜곡도 만연해…

물론 여론의 분노가 올바른 방향으로만 표출된 것은 아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면서 이는 곧 허위 정보 유포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언론에서 가해자의 성씨를 공개하자, 네티즌들은 실제 피의자 박 모씨와 성과 학번이 같은 ‘죄 없는’ 박 씨를 포착해 실명과 미니홈피 주소 등을 공개했다. 이 엉뚱한 신상 털기로 박 씨는 하루 종일 지인들과 교수에게서 "네가 한 것이 맞느냐"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그 날 오후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박 씨는 자제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지만 이미 사태는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확산된 상태였다. 이에 박 씨는 자신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한 네티즌 20여 명을 고소했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에서는 “술 먹고 실수는 무슨…”이라며 “고대 의대 성추행 계획된 일 이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내용인 즉 슨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이하 코갤)에 성추행 사건이 있기 하루 전 피해 여성의 얼굴을 가린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이 게시물에는 가해 학생이 “우리과 얼짱”이라고 여성을 소개하며 “내일 가평에 함께 놀러가는 데 사진을 찍을 계획이다. 필요한 사람은 연락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은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 뒤인 6월 26일 코갤에 올려진 것으로, 조작된 게시물임이 확인되었다. 이 같은 잘못된 여론의 분노 표출은 사건과 관계없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며 사건을 과장하는 데에 일조했다.

사실 왜곡이 비단 여론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언론에서는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시험까지 봤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했다. 이를 접한 여론은 제대로 된 처벌과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고려대학교 의과 대학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고 후 의과대학이 사건을 알기 전 까지는 본과 4학년 외부 실습기간으로 PK조가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사건을 알고 난 후에는 학교 측은 피해자의 주장을 우선시해 가해자가 학교에 나오지 말 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시험을 보거나 수업을 듣는 일은 없었다. 언론은 또한 사건이 공식적인 동아리 MT에서 일어난 것으로 왜곡 보도하기도 하였는데, 사건은 같은 동아리인 4명의 개인적인 여행에서 발발한 것이었다. 언론의 왜곡 보도로 현재 해당 동아리는 거의 해체 상태이며, 동아리 지도 교수 또한 징계 등 학교 측에 의하여 제제를 받았다.

출교 조치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비공개 절차를
밟았던 이유는?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무엇보다도 비난을 받았던 이유는 학교 측의 비공개와 지지부진한 조치과정 때문이었다. 이에 여론에서는 학교당국이 가해자들을 감싸고 있으며 가해자들에게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다. 학교 측에서 어떠한 사항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언론에서 ‘출교가 아닌 퇴학조치(재입학가능)’이라고 사실 무근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고대 총학생회에서는 학교 측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학교 당국에 “징계 절차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왜 학교 측은 출교 조치를 내리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며, 징계 절차를 비공개한 것일까?

이전에 고려대는 ‘교수 감금’ 사태로 10여 일만에 학생 출교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학교 측을 상대로 출교 무효 소송을 냈고, 법원은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은 인정하나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화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10여일 만에 쫓아낸 것은 무책임하다.” 며 출교는 무효화 됐다. 이렇게 절차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출교가 무효화 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절차와 교화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세밀하게 조사를 진행했다. 고려대 측은 “섣부른 징계결정은 오히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킬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징계절차를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이를 설명한 바 있다. 또한 학교 측은 조사 과정이 알려짐으로서 확대나 사실 왜곡으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피해자와 가해자에 잘못된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 비공개 조사 과정 중 특히 징계 결정에 있어서 ‘가해 학생 본인 혹은 법적 대리인 소명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데, 가해자 3명이 경찰에 구속되는 등 이 절차를 시행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가해자 배 씨가 학교 징계위원회의 징계 수위 결정을 앞두고 소명자료로 제출하기 위해 진행했던 설문조사도 또 다른 변수로 작용했다. 그렇게 2달이 시간이 흐른 후에서야 양성평등센터의 최종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의과대학의 징계위원회가 소집 돼 20일 만에 가해자들은 출교 처분되었다.

<2면에 계속>

'83호(2011.10.10) > 커버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면에 이어>  (2) 201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