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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족보만 봤을 뿐이고...”
제73회 의사국시 수석합격자 연세의대 고재상씨 인터뷰

제 73회 의사국가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연세의대 고재상씨(25세, 사진)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재상씨의 첫인상은 ‘수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따뜻한 느낌이었다. 수석을 차지한 그에게 혹시 공부에 남다른 비법은 있었는지, 앞으로 의사가 될 포부는 어떤지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수석 축하드립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주세요.
 일단 이름은 고재상이구요, 나이는 25살입니다. 고등학교는 중동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대학교 시절 동아리는 합창반 이었고 이번에 신촌세브란스 인턴으로 들어갑니다.

538점 만점에 484.5점으로 수석을 하셨는데 시험보시면서 자신이 수석할거라는 예감은 드셨나요?
 아니요, 전혀 기대 못했습니다. 문제 풀면서 어려운 문제도 간간히 눈에 띄고 친구들이랑 나중에 답 맞췄을 때도 꽤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수석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지만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친구들도 많이 축하해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거든요. 연락 끊겼던 친구들이나 예전 여자 친구들이나. (웃음)


남다른 공부 방법?!  
족보에 충실하고, 이해위해 노력했을 뿐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먼저 학교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물어볼게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내신은 정말 열심히 하라는 말 밖에는 없네요. 이런 이야기 하면 교수님들께서 싫어하시겠지만 저는 족보를 많이 봤습니다. 그중에 내용족보에 더 중점을 뒀었습니다. 하지만 좀 달랐던 점이라면 이해가 안됐던 부분은 꼭 텍스트나 자료들을 직접 찾아보고 이해하도록 노력한 것 정도랄까요. 사실 이런 방법이 시간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억에도 오래남구요. 해리슨, 사비스톤을 다 읽는다는 건 힘들지만 중요한 부분이나 잘 모르겠는 부분은 꼭 참고해야 도움이 많이 되요.

국시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국가고시는 내과 중심으로 공부했는데 내과를 확실히 잡으면 소아과랑 외과는 추가적인 것 몇 개만 하면 따라온다고 보면 되죠. 전 문제집이나 교과서 한권을 정해서 기본으로 두고 반복해서 봤어요. 괜히 욕심에 여러 문제집을 뒤적거리기 보다는 그 중점적인 문제집에 여러 내용을 추가로 적어 놓는 식으로 말이죠.

실습은 국시 공부에 많이 도움 되셨나요? 
 실습 돌면서 틈틈이 실습 도는 과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도록 하였는데 꽤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실습도 열심히 돌게 되고, 내용도 잘 들어오고, 환자에게도 더 다가갈 수 있고, 여러 가지로 많이 이득이 되었습니다. 실습은 국시를 비롯해 여러 공부에 도움이 되므로 열심히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국가고시 준비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국가고시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본과 3학년 때 보는 임상종합평가가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오히려 그 시험을 치르고 나니깐 마음이 편했어요. 하루에 7시간씩 꼭 자구 좀 여유롭게 했죠. 건강을 챙기면서 틈틈이 여가활동도 하는 것 이 오히려 수험생활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의사로서의 미래.
인턴 돌면서 차차 생각할 것. 



앞으로 진로 계획은요?
 마음에 딱히 정해둔 과는 없어요. 인턴을 돌아봐야 알거 같고요. 기본적으로는 임상과 연구를 병행 하는걸 목표로 두고 있어요. 학교생활 때는 기초에도 남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점점 임상이 재밌어 지더라고요. 우리학교에도 임상과 연구를 같이 병행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 분 들처럼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주로 에이스들은 타잖아요. 공부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을 그려보면 타면서 못 하는 사람이 최악이고, 안타면서 안 하는 게 차악이고, 타면서 하는 것이 차선이고, 안타면서 잘 하는 게 최선이라고들 하는데, 이왕 하는 거면 최선이 좋죠. 저는 타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사실 공부를 즐기는 편이었죠. 재미있다고 하는 건 좀 변태지만 뭐든지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 한 것 같아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의사라는 직업이 잘 모르면 죄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구요.



▲ 연세의대 고재상씨(좌)와 김지은 기자(우)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고재상씨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듬직해 보였다. 앞으로 의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모습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김지은 기자 / 가톨릭대학교
<jieunapple@gmail.com>

메딕션이냐? 메딕플러스냐?
의학전자사전 2종 리뷰


 3월은 설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괴롭다. 학기가 시작되는 것도 서러운데 교재비에 과비까지 지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톡톡히 한 몫하는 것이 바로 의학전자사전이다. 제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마땅한 권리이건만, 불쑥 찾아와서 “내일까지 신청 받아요!”를 외치는 판매원 아저씨들 때문에 그마저도 어렵다. 의대생들의 합리적인 구매를 돕고자 시중에서 판매되는 2종의 의학전자사전을 비교 리뷰 해 본다.
(본 리뷰는 작성자가 두 제품 모두 수개월 이상 사용해 본 후 작성하였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작성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메딕션이 앞선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전자사전의 목적에 부합하는 적당한 크기에, 깔끔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반면 메딕플러스의 경우 가로길이는 메딕션에 비해 조금 작지만, 세로길이와 두께가 커 휴대하기에 부담스러워 보인다. 크게 이동할 일이 없는 의대생들의 공부 환경을 생각해보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부를 살펴보면, 키의 크기나 배열은 대동소이하다. 누를 때의 키 감은 두 제품 모두 큰 문제는 없지만, 너무 쉽게 눌러지는 메딕플러스에 비해 메딕션의 키가 더 누르는 느낌이 좋다. 액정의 경우 메딕션이 더 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면 양쪽에 기능키가 자리 잡고 있어, 실제 화면의 크기는 메딕플러스가 크다. 사용 시 느낌도 메딕플러스 쪽이 좀 더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의학사전부
 


 ▲ 메딕플러스(좌) / 메딕션(우)

 의학사전부의 경우 메딕플러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17만 단어를 수록한 이우주 의학대사전을 비롯해서, 생명과학사전, 영양학 사전, 약학사전, 화학사전, 의학약어 사전을 수록하고 있다. 반면 메딕션은 현문사 의학대사전, stedman 영영 의학대사전, 해부학용어 사전, 간호학 용어 사전 등을 비롯한 12가지의 의약학 관련 사전을 수록하고 있다.
 종류의 면에서는 메딕션이 더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의학대사전이 메딕플러스의 이우주 의학대사전이 월등하다. 같은 용어를 검색했을 때, 메딕션에서 없는 단어가 메딕플러스에서 검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메딕션에서는 어려운 용어를 검색한 경우 설명이 나오지 않고 단순히 한글 용어로 번역만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문사 의학대사전에 없는 단어이지만 치의학 용어 사전 등 다른 사전에서 검색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학사전부

 메딕플러스의 경우 Prime 영한/한영 사전, 동아 새국어사전, Oxford 영영사전, 현대활용옥편, 이보영 영어회화 사전이 실려있다. 메딕션은 뉴에이스 한영사전(금성), 슈프림 영한사전(민중), 민중 국어사전, 롱맨 영어사전을 비롯해 영중/중영, 일한, 영어회화 사전 등이 수록되어있다. 어학사전부 역시 메딕플러스 쪽이 더 퀄리티가 있는 사전들을 싣고 있다. 이는 메딕플러스가 전자사전 전문 회사인 에이원프로의 제품을 기본으로 하고, 의학사전부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기타 기능

 기타 기능의 경우, 컬러 액정을 채택한 메딕션 쪽이 좀 더 다양하다. 해부도, 동영상, mp3, 라디오, 그림판, 앨범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문전자의 광고에서와는 달리 실용적이지 못한 기능들도 있다. 해부도의 경우 메딕션 광고에서 중점적으로 광고하는 기능이지만, 실제로는 확대 축소가 불편해, 그림과 글씨를 함께 볼 수 없어 거의 무용지물이다. 조직학이나 병리학 슬라이드를 넣어서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메딕플러스의 경우는 흑백이라 동영상 등의 기능은 없지만, mp3, 앨범, 텍스트 뷰어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mp3플레이어의 경우 조작이 메딕션보다 편리하다.


사용상 특이점
 두 제품 모두 터치스크린을 제공하고 있어 편리한 조작이 가능하다. 메딕션의 경우 컬러 액정이라 아무래도 배터리가 빨리 닳는 문제가 있다. 많이 사용하는 경우 하루를 못버티기도 한다. 메딕플러스는 일반 흑백사전처럼 오래 버티는 편이다.
 또 메딕션은 부팅 시간이 3-5초 정도로 긴편인데, 자동절전 설정이 최대 15분이기 때문에 단어를 찾을 때마다 부팅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메딕플러스의 경우, 초기제품에서 단어 검색시 2초정도 딜레이 되는 문제가 있었으나 현재 판매되는 제품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따라서 중고거래 등으로 구입할 경우 제품 번호를 잘 확인해야 한다. (초기 제품인 APM700은 붉은색이고, 업그레이드 된 제품인 APM600은 진청색이다.)


기능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

 현재 소비자 가격은 메딕플러스 26만 8천원, 메딕션 36만원이다. 단체구입 등을 통에 할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너무 비싼 가격이다. 일반 전자사전의 경우 이 정도 가격이면 최신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메딕플러스의 경우 2006년 초, 메딕션의 경우 2007년 초 발매되었는데, 일반 전자사전의 경우에는 이미 단종되었거나 10만원 초반에 팔리고 있는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반 제품보다 대상 고객이 적어 많은 투자를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그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경쟁 제품이 적다는 것도 비싼 가격의 요인일 것이다.


꼭 필요한가

 의학사전이 없다고 해서 의학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두껍고 무거운 종이사전보다 전자사전이 편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에 따라 공부환경이 컴퓨터와 가까운 경우에는 대안으로 KMLE의학검색엔진 사이트(http://www.kmle.co.kr)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또 풀브라우징이 가능한 휴대폰이나, 아이팟 터치 등 무선랜을 통한 인터넷이 가능한 인터넷 디바이스가 있는 경우에도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의학전자사전을 대체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 강의실의 경우 무선랜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김민재 기자 /순천향
(telemax@nate.com)


 


강의평가,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나요


▲ 전산실에서 강의평가를 진행 중인 의대생

지난 겨울방학, 성적 확인을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한 의대생 C씨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당황하였다. 학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업평가를 작성해야만 하는 교양과목과는 달리, 전공과목에는 수업평가를 요구하는 창이 개설되어 있지 않았던 것. 그는 학기말에 “전체적으로 어느 과목이 좋았나요?”라는 추상적 물음의 설문지를 받은 것이 기억나 그것이 수업평가에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후배들에게 더 개선된 강의를 물려주고자 교과목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곰곰이 생각해 두었던 것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다른 학교의 의대생 B씨는 1년 전,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업평가 결과를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는 학교 측의 발표에 진취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교수들이 인기에 영합하는 강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것은 의과대학에서만큼은 괜한 걱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에서 의대는 예외로 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수업평가에 열심히 참여할 분위기가 안 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수업평가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두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7년 의학교육학회지에 실린 <국내 의과대학 강좌평가제 운영 실태 분석>은 총 41개 의과대학 중 38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업평가 시스템이 평가기준항목, 평가대상과 방법 등 많은 항목에서 대동소이하게 미흡한 것으로 보고했다.

형식적인 수업평가, 뿌리부터 알아볼까

의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의학이 과학과 접목되기 시작한 17~18세기 이후부터로 의사학(醫史學)자들은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의학이 학파를 중심으로 전수되는 엉성한 도제식 교육이 의학교육의 전부였으며, 그 교육방식 역시 일방적인 강의에 의한 지식의 복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극히 제한적으로만 접근이 허용되던 의학지식의 특성과 함께 의사 집단의 폐쇄적·권위적인 성격도 한몫을 하여 의학교육에서 학생에 의한 피드백이란 애당초 남의나라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강의평가를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고 있다.

다른 단과대학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수업평가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어느 공대생은 수업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불쾌해하며 도리어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수도 있다고 고발했다. 높은 직업안정성으로 손꼽히는 교수직에 이미 오른 이가 학생들의 평가에 자극을 받기나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영대생도 있었다. 학생의 조합인 ‘유니베르시타스’와 교수의 조합 ‘콜레지아’의 줄다리기 속에서 성장한 중세 유럽의 대학 중 교수가 대학운영의 중심이었던 파리대학의 시스템이 옥스퍼드대학을 거쳐 미국으로 이식됨에 따라, 개화기 이래로 미국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 온 우리나라에서는 자연히 학생보다는 교수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대학이 진화해 온 것이다.

무엇이 의대생을 무기력하게 하는가

하지만 의대가 아닌 학과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노력도 있었다. 전공수업을 비전임강사가 맡기도 하는 어느 학과의 학생은 “강사의 경우 수업평가 결과가 재임용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어느 대학교에서는 학교의 공식 사이트 외에 총학생회에서 운영하는 수업평가 사이트가 있어 수강신청 시 특정 교수에 대한 평가내용을 참고하기도 했다. 수강해야 할 과목과 교수가 이미 완전히 정해져 있으며 모든 전공과목을 전임교원이 강의하는 의대에서 위와 같은 자발적 움직임이 미약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의대생들이 느끼고 있는 수업평가란 어떤 걸까. S의대의 한 학생은 수업평가 설문지가 교수별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한 강의 전체에 대해서 물음을 묻는 것에서 한계점을 찾았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피상적으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Y의대에서는 학생들이 건성으로 하는 수업평가를 교수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몇 해 전 단국의대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참여하였냐는 질문에 그렇다 20명, 그렇지 않다 24명의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이유로는 평가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답변, 귀찮다는 답변, 평가결과가 제대로 전달되는지와 그 효과에 대한 의심, 교수별 평가가 안 되는 데 대한 불만, 평가시기와 평가항목이 부적절하다는 불만 등이 주를 이뤘다.

교육서비스의 소비자, 나 스스로를 위해서

수업평가에 대한 교수와 학생의 인식차이를 드러낸 연구도 있다. 지난해 아주의대에서는 교수와 학생 각각 백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평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 항목을 조사하였는데, 교수들은 학생 자신의 수업태도를 스스로 평가하는 항목(26명)과 강의의 난이도(13명)를 가장 많이 지적한 반면 학생들은 교수의 학생참여 유도와 목소리 크기, 학생을 존중하는 말투 등 교수의 수업전달 능력(29명)과 수업자료의 사전 배부 등 교재 사용에 대한 내용(16명)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업평가를 둘러싼 두 주체의 인식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은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뢰성과 타당성을 갖춘 평가준거의 개발 역시 필요함을 뜻한다. 가령, 막연히 학생의 학습 태도를 묻기보다는 학생이 강의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나 왜 성실하게 참여하지 못했는지를 묻는 것이 교수와 학생 어느 쪽을 위해서든 건설적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추상적으로 구성된 설문지 한 장이 교육의 질을 측정하고 제고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수업평가는 앞으로 그 수업을 이어받을 후배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수업평가를 통해 학생이 교수와 함께 교육의 한 주체로 당당히 서는 순간 그 혜택은 지금 곧 강의를 듣고 있을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성욱 기자/울산
<casanovacsw@hanmail.net>

[67호] 학교소식

67호/학교소식 2009. 8. 2. 19:54 Posted by mednews
가톨릭의대
■ 2009년 신입생-오랜내기 새로배움터가 ‘Change & Challenge’를 모토로 2/20~22 2박 3일간 가평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새로배움터에는 새로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입학한 학생들도 참여해 교수님, 재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본과 2학년 변모군은 4번째 새로배움터 참가만에 드디어 포크댄스를 남자줄에서 췄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더군요. 신재수련회 준비로 방학을 보낸 53기 정열학생회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노해준 기자/가톨릭
<reanad@naver.com>
고신의대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진심으로 짧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예과 강의실도 개조 공사를 마쳐서 전 학년 강의실이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본3강의실이 1층으로 옮겨가고 예2강의실이 2층으로 바뀌었는데요, 이로 인해 본3강의실 옆에서 수업을 듣는 예1 새내기들의 인사성은 한층 더 밝아지고 본2강의실 옆에서 공부하는 예2학생들의 향학열은 더 불타오르기를 기대해 봅니다.
■ 2월 23~25일까지 고신의대 새내기 배움터가 있었습니다. 예년보다 재학생의 참여가 많아 높아진 신입생에 대한 관심을 숫자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지영 기자/고신
<lemonfall@naver.com>

관동의대

■ 신입생들이 3월 2일 입학을 합니다. 3월 5일 오리엔테이션, 3월 7일 새터를 갑니다. 모두들 입학 ㅊㅋㅊㅋ~
■ 2학년들이 3학년들에게 1월 13-17일에 걸쳐 골학을 배웠습니다. 선배들의 후배사랑이 신입생의 새터때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는 후문입니다.
■ 4학년학생들은 수도권 진입을 자축하며 PBL3주간 (PBL이 pass/fail제로 바뀌면서) 신나게‘대학생다운 대학생생활’을 즐기다가 2월 23일부터 병리학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좋을 땐 지났고, 앞으로 1년 잘 버텨내시길...>_<;
■ 5학년들은 마이너 시험 기간을 맞았습니다. 마이너 과목은 계륵이라는 선배들 말씀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며, 버릴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안지윤 기자/관동
<ajy1588@dreamwiz.com>

동아의대
■ 2월 9일부터 12일 오전까지 2박 4일 일정으로 의전원 1기와 본1들의 골학이 있었습니다. 12일 오전까지 죽음의 레이스를 달린 후 바로 경주로 출발하여 본과진입식을 치렀습니다.
■ 2월 20일부터 3일간 신입생 예비대가 있었습니다. 저스틴 노래에 맞춰 문 워크를 췄다는 신입생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3월 OT 때 시켜봐야겠습니다. 그리고 M군이 20살‘윤지후’라는 이름으로 예비대에서 X맨 활동을 했다고합니다. 이번신입생들모두속았다는군요.
■ 학교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요. 3월부터 본1, 본2는 새로 공사한 계단식 강의실을 사용하게 됩니다. 덕분에 예전에는 뒤에서 몰래잠을 자곤 했던 학우들은 긴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새로 추가된 학식메뉴 허브갈릭볶음밥은 정말 이름값을 못합니다.
■ 마지막으로 B양은 올해 드디어 3년의 저주효력이 끝이납니다.
김근아 수습기자/동아
<tinytomato@lycos.co.k>

성균관의대
■ 의학전문대학원 1기 20명과 본1 진입생 20명이 모여 어색하게 시작한 해부학오티가 2월 9일부터 2월 13일 까지 있었습니다. 재,삼시 속에 피어나는 세월을 초월한 우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 성균관 대학교 의과대학 새내기 배움터가 2월 16~17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모두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구요. 특히 M1 구준표 군의 ‘서민들은 술이나 마셔!’파문이...
■ 지난 2월 5일 병리학의 안긍환 교수님, 기생충학의 조승렬 교수님, 생리학의 엄대용 전 학장님의 정년 퇴임식이 신라호텔에서 열렸습니다. 한평생을 의학을 위하여 헌신하신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이병찬 기자/성균관
<blackskay@hanmail.net>


순천향의대
■ 락밴드 동아리인 OCTAVE와 BREGMA가 각각 2월 7일, 2월 14일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했고, 흑인음악동아리 MNS는 2월 16일에 흥겨운 분위기속에서 공연을 마쳤습니다.
■ 순천향대학교가 위치한 신창에 새로운 '짱'이 등장했습니다. 예과생들밖에 없는 신창캠퍼스에서 예과2학년(08학번)들이 '신창짱'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3월부터 신창을 주름잡을 예과2학년들은 처음으로 후배를 맞이하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쁜 새내기들의 점심을 사주려면 돈이 많이 들어갈
테니까요.
■ 2월 25일, 26일 그리고 27일에 순천향대 오티(새내기 배움터)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작년과 같아서 식상한 도고온천이었지만, 유난히 현역으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많아서인지 오티 분위기가 상콤발랄 했습니다.
정재현 수습기자/순천향
<mystyle1025@hanmail.net>


아주의대
■ 2월 20일~22일,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새내기 새로 배움터가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의과대학원에 새로 입학하신 09학번 새내기 여러분, 모두모두 환영합니다~의과대학원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벌써 개강해서 해부학의 늪에 빠져 계실텐데요, 3주만 버티세요!화이팅!! 의과대학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3월 2일 개강하면 꿈같은 예과
생활을 하게 되실텐데요, 정말부럽습니다ㅠ
■ 개인적인 공지입니다! 제가 저희 학교 의과대학 연극동아리 회장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 의과대학들의 연극동아리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교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본 기자에게 메일을 주세요~
장미 기자/아주
<sci1113@naver.com>


영남의대
■ 의과대학 건물의 신개축 공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번 공사는 기존 건물의 개축 뿐만 아니라 기숙사의 신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공과 함께 졸업을 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나중에 후배들이 멋진 건물에서 열심히 학교 생활하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올해 처음 뽑힌 의전원생과 기존의 학부생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자리가 많았습니다. 2월 6~7일 이틀간 함께 의학과 오티를 가서 밤을 불태웠고, 본과 맛보기라고 할 수 있는 골학을 같이 들으며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의전원생, 그리고 학부생 여러분 힘든 본1 생활 모두 화이팅입니다!
안지훈 수습기자/영남
<ahnadun@naver.com>

울산의대
■ 지난달 18~20일 3일에 걸쳐 신입생부터 진입생까지를 대상으로 청평에서 OT가 있었습니다. 신입생을 가장한 진입생 성창환 씨는 평소의 악마라는수식어에 걸맞은 역할을 거침없이 해냈군요.
■ 올해부터 서울에서 지내게 된 예과2학년 학생들의 기숙사가 돈암동, 서대문구, 아산병원의 세 곳으로 나눠지게 됐네요. 아쉬움이 남는 배정 결과지만 끈끈한 동기사랑 이어가길 바랍니다.
최성욱 기자/울산

인하의대
■ 인하의대가 드디어 의학전문대학원 전환 후 첫 신입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회와 새터준비위원회가 2월13일부터 15일까지 강원도 횡성 치악산 부근에 새내기배움터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다시 한번 새내기가 된 의전원생들은 물론, 특별히 수업을 빼준학교 측의 협조로 2년 만에 새로운 얼굴을 맞아 기대감에 부푼 의대생들이 거의 전원 참석했습니다.
■ 의과대학 정석빌딩 2강의실과 3강의실의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됐습니다. 새 교실에서 공부하는 1.2학년이 부러워요~
정광율 기자/인하
<geniusatplay@naver.com>


전남의대
■ 1월 16일~17일에 예비 본과 1학년과 의학 전문대학원 신입생들이 만남의 장을 가졌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즐거워 보이더군요.
■ 등록금이 동결되었습니다. 이는 의과대학의 차등인상 움직임을 막아 낸 성과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2월 11일~12일에 학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오리엔테이션 일주일 전 13일~14일로 예정된 OT를 친히 11~12일로 앞당겨주면서 커플들을 배려해주는 친절함을 보였습니다.
■ 3월 2일에 개강합니다.(예과 1학년~본과3학년) 특히 본과 1학년의 개강이 다른 학년과 같게 된 것은 의학전문대학원 신입생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고 있습니다.
유영재 기자/전남
<yjyoo1@naver.com>


전북의대
■ 2월 16일~ 2월 20일까지 의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골학(osteology)이 각 동아리 별로 진행되었습니다. 신입생 여러분들! 선배님들의 차가운 사랑을 많이 받으셨기를.
■ 2월 23일 제 33회 의대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의대에서 의전대(06년도)로 바뀐 전북의대는 올해가 학부의대생 졸업으로는 마지막이 되는 해가 되었습니다. “선배님들. 하지만 우리는 전북의대 동창으로 하나인거 아시죠.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사가 될 거라 믿어요. 화이팅^^”
■ 기숙사 open!!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의대 기숙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멋드러진 기숙사가 개관함에 따라 신입생은 물론 통학에 불편을 느끼거나 원룸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대생들에게 환영받는 소식이 되었습니다.
■ 강의실 리모델링 완공.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된 강의실 전면 리모델링이 새학기를 앞두고 완성 되었습니다. 보다 쾌적하고 향상된 환경을 제공하여 주신 학교 측에 감사드리고 좀 더 열심히 노력하는 전북의대인이 되길 바랍니다.
■ 연주회 소식 : 3월 7일 저녁, 여러분 아시죠. 모두들 오셔서 멋진 공연 감상하시고 축하와 격려 바랍니다.
이진영 기자/전북
<hanljig@hanmail.net>


중앙의대
■ 드디어 신입생들께서 입학하셨습니다!
- 의학전문대학원 1기분들이 학교에 오셨습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의전원 형, 누나들이 2월 24일 중앙대학교병원 동교홀에서 입학식을 가졌습니다.
- 귀염둥이 09학번 학부생들이 입학했습니다! 2월26일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입학식을 했다니, 참 대단해요~! 20일부터는 2박3일 일정으로 오리엔테이션을다녀왔습니다.
■ 각 동아리에서 07학번을 대상으로 골학 강좌를 실시했습니다. 몇몇 학생은 아직 용어가 익숙치 않은지 ‘온종아리 신경’을 ‘온정아리 신경’이라고 하는 등 모의 땡시에서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부족한 후배들을 위해 방학에도 열심히 골학을가르쳐주신선배님들께감사드립니다^ㅡ^
■ Misely라는 이름으로 꾸준한 음악활동 중인 06학번 이준형 군이 지난 2월 26일, 새로운 디지털 싱글앨범 <Aid For Your Daily Life>을 발표했습니다.
■ 2월 26일~28일 연극반은 루이스홀에서 조영민 주연의 <나무는 서서 죽는다>를 공연했습니다. 2월 21일 의대 오케스트라 <Orpheus>의 제 33회 정기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3월 7일에는 합창반 CAMC가 서울 시내 의과대학연합합창제에서 공연을 합니다.
정환보 기자/중앙
<chungwhp@hanmail.net>

충남의대
올해 첫 의전대 신입생이 들어옴에 따라,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 2월 첫주부터 각 동문회별 골학이 있었습니다. 의전 신입생 새터 또한 2월 2째주에 열렸습니다. 이번 새터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치뤄졌으며, 본과 학생은 학생회의 일부만 참석했으며 유성 스파피아 호텔에서 숙박했습니다.
■ 방학동안 내내 집에서 수련하던 송근호 군이 본과1학년 대표로 전국 철권대회에 나갔습니다. 3회전에서 탈락했습니다. 주캐릭터는 핑크색 샤오유입니다.
■ 또한 의전 신입생의 입학에 맞춰 간호대학 건물 또한 개축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새 강의실과 동아리 건물은 리모델링이 방학중에 완전히 끝났습니다.
박재범 기자/충남
<pjbs8366@hanmir.com>

[67호] 다빈치 프로젝트_1

67호/2009 연재 2009. 7. 19. 01:32 Posted by mednews
 다빈치 프로젝트

견갑골의 형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종속이론'이라고 하면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끼는 우리들. 호염기성구보다 호중성구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실물 무역량보다 금융자본 이동양이 천 배 가까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한 우리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낯설어 하고, 모르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그래서 올해 의대생신문에서는 연중기획으로 '의학과 인문사회학 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6권의 책을 선정해 연구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통섭'이 시대의 유행이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2만 의대생 모두가 해리슨과 루이 알튀세르에 대해서, 로빈슨과 미셸 푸코에 대해서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2009년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 _비센트 나바로

 
1970년 대 말 근대 자본주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집니다. 그때까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던 케인즈주의가 더 이상 통용되는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출현이죠. 실물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서민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사회적 반작용의 결과로 보수주의 정당들이 서구 주요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집권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하이에크를 열렬히 신봉하던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경제 살리기'라는 한 마디로 총리와 대통령에 당선된 그들은 곧 케인즈주의를 폐기처분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막이 올랐음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거시경제지표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오히려 더욱 더 큰 불안을 떠안게 되죠. 고용불안이 증대되고 복지예산이 드라마틱하게 삭감되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위가 일어났던 시기도 바로 이 시기죠.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착각

존스홉킨스대학의 의료사회학 교수인 비센트 나바로의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는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나온 책입니다. 당대 보건의료의 위기상황이 바로 당대 자본주의의 위기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요. 마르크스주의자인 저자는 당시의 자본주의를 계급론적으로 해석하고 보건의료의 구조 역시 이러한 계급론에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계급론을 바탕으로 보건의료를 해석하는 이유는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이 착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저자가 남 달리 날카롭게 바라본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의사는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현실이죠.

실제로 서구사회에서 의료와 관련된 입법을 주도하는 이들은 의사단체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보험회사였고, 그 다음이 제약회사, 그 다음이 보건당국, 그리고 그 다음이 의료계였습니다. 이는 지금 이곳의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죠. 다만 우리나라는 국민보험이 시행되는 까닭에 보건당국과 관료들이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의사협회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합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본력을 가진 자본가계층이 아니라 의료노동을 행사하는 노동자계층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착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왜 의사들은 자신을 소자본가(쁘띠부르주아)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이를 근대의학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의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던 20세기 초 미국의 연방정부는 '플렉스너 보고서'라는 논문을 통해 당대까지 경험과 관습으로만 이어져 오던 전근대적인 의학교육을 과학과 합리주의에 기반한 근거중심 의학교육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전국 각지에 만연했던 비전문적인 의료학교를 다수 정리하고 소수의 의과대학만 남기는 등의 일대혁신을 단행합니다. 그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의예과와 의학과 교육이며 당시에 시도된 다수의 혁신적인 교육 내용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의학교육이 전문성에 천착하게 된 것이죠. 언뜻 보면 전문가를 배출하는 전문적인 교육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극도로 실용성을 강조하고 분업화, 파편화된 의학교육은 의대생이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되었을 때 사회 현상을 도외시하고 탈정치화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간단히 생각해봐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저자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여전히 플렉스너식 전통의료교육 체계를 따르는 국가의 의과대학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역시 의학교육을 전문화, 분업화함으로 의대생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종사하는 것에 대해서 폭넓은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며, 전문화와 분업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사회에서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고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이런 계급화는 의사-간호사 간에 극명하며, 의사-의대생, 의사-의사, 심지어 의대생 내에서도 계급관계를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단하게 짜인 질서와 전문화에 대한 강요는 의학교육 과정 안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의 창조적 가능성을 박탈하게 되는 것이죠.

저자는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의학교육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전반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어권 국가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과 같은 형태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배출하는 데 드는 금액이 100억 유로가 든다고 하면, 남아공처럼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30억 유로가 든다고 칩시다. 다수의 아프리카계 보건의료인은 더 나은 조건을 따라 영국으로 유입되는데 영국은 제도적으로 이를 장려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70억 유로의 잉여가치를 제 3세계로부터 수탈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죠. 보건의료시장을 포함해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은 고급 인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고스란히 부유한 국가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제 3세계가 가지는 문제점을 고착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착각을 넘어, 의료계 바깥과 함께하기 위하여

이런 현대 보건의료의 위기에 대해서 저자가 소개하는 대안은 다소 촌스럽습니다. 보건의료의 위기가 타개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대체로 사회주의 이론서적에서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급진적이고, 어떻게 보면 현실성이 너무 적어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30년 전의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 책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몇 가지 배울 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환자 한 명 데리고 30분 동안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하다가 귀 한 번 딱 보고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몇 십 달러를 받는 미국과 같은 극도의 자본주의 의료사회가 부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의료가 극도로 상품화된 시대에 '노동자'인 의사 역시 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예가 사소한 의료사고 한 번에 길바닥으로 몰리는 미국의 의사들입니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것과 누구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밥을 벌어 먹어야하는 의료계는 결코 동떨어진 세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료계는 사회의 한 부분이죠. 우리가 유급의 중압감 속에서 야마와 PPT를 들고 순응하는 법에만 익숙해질 때, 그래서 강의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무지해지고 무심해질 때, 과연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우리의 대의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언제든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누구나 잘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다음에는 미셸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 '다빈치 프로젝트'는 과학과 철학의 예술적 조화를 이끌어냈던 레오다르도 다빈치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다빈치 프로젝트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현재 비센트 나바로의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는 절판된 지 꽤 오래된 상태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의대생신문 홈페이지(www.e-mednews.com)의 스터디게시판에서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포럼 참가자 - 노해준(가톨릭), 유재호(성균관), 이현석(영남), 정다솔(중앙) 기자
포럼 일시 및 장소 - 2009년 1월 29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이현석 기자 / 영남
<vandalit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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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각양각색 doctors_1

67호/2009 연재 2009. 7. 19. 00:14 Posted by mednews

각양각색 doctors
의대, 혹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대부분이 임상의로서의 길을 걷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은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해 3000명이 넘는 의사가 쏟아지는 21세기의 의료사회는 의사들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대생신문사에서는 보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길을 걷고 계신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가슴으로 차오를 때 까지 기다리세요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와의 만남


기사 끝에 달린 바이라인이 조금 특별한 기자가 있다. 단순히 XX부가 아닌 의학전문기자김철중 씨는 의사출신 기자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임상강사 2년의 경력도 있으며 의학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전공이었던 그는 지금 병원이 아닌 조선일보사의 기자로서 일하고 있다. 지난 2월 11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셔서 낯을 많이 가리시는가 싶었지만, 곧 유창한 말솜씨로 인터뷰 내내 쉬지 않고 흥미진진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의대를 처음에 어떻게 가게 됐나.

 
적성 검사에서도 제1적성이 소설가라고 나왔을 정도로 문과 적성이었는데, 불행히도 수학을 잘했다. 고1 담임선생님말씀이 수학을 잘하면 이과를 가야 한다고 해서 성적 맞춰서 간 것이 고대 의대였다.

의대생활은 어땠나.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니까 너무 신나서 머리도 어깨까지 기르고 도서관에서 소설책 읽고 술 마시고 놀았다. 그러다보니 예과3년 본과 5년 8년을 다녔다. 적절히 1년씩 배분해서 8년 다녔다. 의과대학은 성적에 따라 인격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지 않나. PK실습을 도는데 내가 성적이 안 좋으니, 인턴인 예과친구들이 날 우습게 보기에 공부를 시작했고 본과 1,2학년은 뒤에서 등수를 세고, 3,4학년은 앞에서 등수를 세서 중간으로 졸업을 했다.

영상의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퀴즈를 좋아해서 맞히고 풀고 이런 것이 재미있었다. 병원에서 필름을 복도에 붙여놓고 퀴즈를 내면 의사나 학생이 진단명을 응모하는 것이 있었는데, 제일 많이 맞춰서 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의료계에서 가장 기술적인 분야가 제일 빨리 발전할 것이다 싶었고, 그게 영상의학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서비스파트인데, 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게 아쉽지는 않았나.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을 했기 때문에 매일 환자는 봤다. 원래 만지고 조작하는 걸 좋아하고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원했기 때문에 (나의 성격과) 딱 맞았다. 아주 재밌게 했다. 머리도 써가면서.

그럼 그때까지도 기자의 길은 전혀 염두에 없었던 것인가.

전혀. 누구나 그렇듯 의대 교수를 꿈꿨다. 큰 계기가 있었는데 3년차에 미국에서 방사선과학회가 있었다. 워낙 유명하고 큰 학회였다. 재미삼아 연구하고 있던 것을 영어로 응모요령대로 써서 보냈는데 편지가 왔다. 와서 발표하라고. 우리병원 스텝들도 거기에서 발표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일개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국제학회에서 발표를 한 것이다. 처음으로 해외에 그것도 미국에 시카고로 갔다. 그때 글로벌에 눈을 떴다.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 이후 국제학회에서 레지던트 때 2번, 군의관 때 2번, 일본, 베이징, 홍콩 등 (발표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 가보게 됐지. 인식이 확대되던 차에 군의관 시절이었는데 어느 순간 언론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매일 한 두 시간씩 그저 좋아서 읽곤 했었다. 해부학 시험 날 아침에도 읽을 정도였다. 한번 신문방송학을 공부해보자 싶어서 언론대학원을 찾아갔다. 반은 특수직을 인터뷰만으로 뽑는데 처음 갔을 때엔 의사가 온 건 처음이라고, 아마 재미삼아 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거절하더라. 6개월 뒤에 다시 오면 생각해 보겠다기에 반년 후 다시 찾아갔더니 수석입학을 했다. 인터뷰만으로! 이제까진 장학금 면제였는데, 입학금 면제로! 내 인생의 앞날을 예견하는 큰 징조였던 것 같다. 의학을 할 땐 장학금 한번 못타봤는데 말이다. 그러던 중 임상강사(fellow과정) 끝날 때 쯤 IMF경제위기 때문에 모든 staff 채용이 동결됐고, 무급일 수도 있는 임상강사과정을 더 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아니다싶고, 신문사 가자 싶더라.

특별히 조선일보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썼던 글들, 자기소개서, 이력서를 신방과 교수님한테 언론사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신기하게 네 군데 중 세 군데서 전화가 왔다. 인터뷰하자고. 그중 SBS와 조선일보는 계약을 하자고 했는데, 친구들 말이 네 얼굴로 방송가면 못 큰다는 것 아닌가. "야야 숨어서 글이나 써."하더라. (웃음.) 사실 방송은 핫 미디어이고 활동적이지만, 신문은 분석적인 콜드 미디어가 아닌가. 내 스타일은 콜드미디어였다. 그래서 조선일보로 갔다.

기사방향이 최근에 바뀌었는데 원래 원하던 방향인가.

2년 정도 된 것 같다. 건강정보도 쉽게 풀어 재미나게 쓰면 나름의 의미가 있긴 한데 기자로서 느끼기에는 별로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의료제도나 환경에 대해서 써야 의학전문기자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학전문기자 일상은 어떠한가.

아홉시쯤 출근해서, 보고할 것 있으면 보고하고, 취재하고 만날 사람 있으면 만나고, 기사도 쓰고. 일이 없는 날은 외부 원고를 쓰거나 취재거리를 찾아 인터넷 조사도 한다.

다른 기자들과는 많이 다른가?

(일반 기자들은) 매일 보고하고 써야 하는 것이 아주 많다. 나한테는 (상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고정칼럼은 있지만, (그 외의 칼럼은) 쓰고 싶을 때 쓴다.

의학전문기자라는 직업의 우리나라에서의 비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 아홉 명 인데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의사가 임상의를 하지 않고 기자를 한다면 그를 보상하는 수준의 영향력과 적정한 임금을 제공할만한 수준의 매체는 몇 개 없지 않은가. (방송사 3사와 메이저 신문사까지) 일곱 개 정도 매체에 두 명씩 있는 것이 최대치라면 지금의 두 배정도? 100퍼센트 성장.

수적으로 만이 아니라 사회적인식이나 영향력이 지금보다 증가하지 않겠나.

그렇다. 너무나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사람들이 신문에서 얻던 정보를 인터넷으로 얻는데 산만하고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공신력 있는 매체 (신문 혹은 방송사)에서 주는 정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의사도 이제 미디어상품이 되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이기에 일정한 역할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런 면에서 할 만하지 싶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나 사명이 있는가.

왜 싱가포르가 의료강국으로 됐나하는 내용으로 일면 톱을 3일 동안 쓴 적이 있는데 대단한 반향이 있었다. 영리병원이란 게 있구나, 의료가 산업이구나, 키워야겠구나 하는.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의 프라이드는 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있다. (의대생들의 외과 기피 현상에 대해) 1면에 '간호사가 메스 잡았다' 고 기사를 쓰니 국회에서 공청회하고, 수가를 올리겠다고 하지 않나. 한번 '팍!'하고 지르는 그 맛으로 한다. 미디어는 이슈를 붐 업 시키는 거다. 해결책은 관리직이나 교수직이 제시 하는 거고.

의학전문기자에게 요구되는 적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첫 번째 조건이 의학에 적성이 없다는 것.(웃음.) 두 번째는 앉아서 책보는 스타일보다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세 번째는 문제에 대해 약간은 할 말이 좀 있는 사람. 너무는 말고 약간은 흥분을 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사람 말이다.

의학전문기자에게 전문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문의를 하라고 하고 싶다. 인생에 퇴로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일단 대한민국사회는 전문의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학전문기자라고 쓰려면 전문의여야 한다는 거다. 또 (언론사에서 일을) 그만두면 퇴로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항상 자신감이 떨어지게 될 거고, 또 수련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친구들 보면 아무래도 (당직 등 업무상으로) 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 너무 일찍 한 거다.

의사를 보는 인식이 예전과 다르다.
사람들이 의학정보를 많이 접해서 만이 아니라 의사들의 문제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지식정보화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적응이 느렸다고 본다. 어느 나라든지 프로페셔널리즘(전문 직업에 대한 의식)의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난 엔트로피법칙을 철학적으로 인용하고 싶은데, 모든 게 안정적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의사 환자, 정부의 삼각관계에서 과거엔 의사의 권익이 강한 불안정상태였으니까 안정한 상태를 향해 갈 수밖에. 당연한 변화라 생각한다. 정보는 공유되고 있고, 결정은 환자의 자기 결정력으로 옮겨 가고 있으니 의사들의 권위가 없어지고 계약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거나 윤리적인 측면을 통해 좀 더 우호적인 관계로 변해야할 텐데 의료계파업 등으로 인해 비우호적으로 간 게 안타깝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는 지식보다 윤리의식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가 철저한 직업적 직무수행능력과 윤리의식, 직무체계를 넘볼 수 없게. 지금의 의사들은 직업적 트레이닝을 잘 받고 있으니까 잘 해결해 나갈 거라 생각한다.

                                         ▲ 본지 안지윤 기자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후배들한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흔히들) 머리로만 고민하려고 하는데 가슴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닥치기도 전에) 머리로만 하는 고민을 하지 말고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차오르게 되어있다. 차오를 때 넘치는 걸 갖고 결정해야 된다. 그렇게 때가 돼서 하면 설사 잘못되어도 후회가 없어. 또 일단 저지르라는 것. 모든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저지르고 나면 이걸 괜히 했다는 생각보다 안했으면 몰랐을 뻔 했는데 새로 경험을 했구나하고 오히려 후회하지 않을 거다.


안지윤 기자 / 관동
<ajy1588@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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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테디의 의대정복

67호/오피니언 2009. 7. 18. 23:58 Posted by mednews


...편집자가 독자에게

미시적인 삶


용산참사 현장을 다녀왔다. 황량한 풍경들 사이로 왠지 그날의 사람들이 보이는 듯하다. 그래, 모두 자신의 일에 열심이었을 것이다.

시행사 직원은 회사의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용역 직원에게 독촉 전화를 걸었겠지. 용역 직원은 철거민들에게 연민이 생겼을지도 몰라. 하지만 일단 일을 어서 끝마치고 싶었을 거다. 철거민들은 보상받지 못한 권리금이 아까워서, 혹은 정말 이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 안게 생겨서 옥상에 올라갔다. 하지만 망루 안에서 무서웠을거야, 아마. 물대포를 쏘고 특공대가 투입된 상황에서 생존이외의 다른 명제가 떠오를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화염병이든, 새총이든, 골프공이든 던졌을 거다. 특공대원도 상명하달의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구조 안의 무력한 개인이었을 뿐. 진압작전을 하면서 반정부 세력 소탕과 불법집회에 맡서 법을 수호한다는 자부심을 과연 느꼈을까. 아니다, 아니다. 검찰 수사관들은 어떨까. 상부의 압력이 없었어도 스스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결과는 나와야 하는 대로 나왔고, 이들은 조직의 기대에 충실했다.

그렇게 이들은 미시적 삶을 살았다. 적어도 자신은 편했고 주변 동료들에게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작은 사회가 던지는 기대에 충실했다. 하지만 이들의 미시적 삶이 부딪혀 만들어낸 하모니는 어떤가. 6명의 안타까운 사망은 둘째치더라도, 언젠간 역사책의 한 귀퉁이에서 치부로 평가받을 사건이 탄생했다. 한 명이라도 거시적 시각을 가졌더라면. 역사라는 담론까지 가진 못하더라도 내가 속한 더 넓은 사회를 한번쯤 생각했더라면, 과연 결과는 달라졌을까.

미시적 삶을 떠나긴 쉽지 않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이 때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침묵한다. 정으로 묶인 관계의 고리를 끊기엔 미시적 삶의 유혹은 거시적 대의보다 강하다. 사람들은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둥글둥글하다'는 미사여구로 미시적 삶을 축복한다. 다른 생각을 하려하면 '모났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피곤한 철학자 보다는 행복한 바보가 되기로 선택한다.

가끔은 고민에 시름시름 앓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 고민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알고 있던 걸 그때에도 알았었더라면’ 이제는 식상해진 시 구절.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 구절은 바뀌어야 한다. 지금 알고 있던 걸, 그때에는 몰랐어야만 한다.


이예나 / 순천향
med-news@hanmail.net

편집장이 되고 난 후 축하한다는 말과, 걱정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편집장이 되고 싶었냐고 물어보진 않더군요.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과 답을 혼자 해볼게요. 제가 왜 편집장을 하게 되었을까요. 전 '편집자가 독자에게'를 참 써보고 싶었습니다. 내 이야기가 자리잡을 손바닥만한 공간이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제게 펼쳐질 일 년간의 성장통은 모두 이 손바닥만한 공간을 갖기 위함이라 생각하고 끌어안을게요. 홀로 던져진 세상에 내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요. 그 위안도 기쁨도 고민도 모두 감내하겠습니다.


 

... 첫 느낌

첫 느낌이란 건 아직 순수하단 것.
두 번째 느낌이란 건 여유로워 지는 것.
세 번째 느낌이란 건 다시 처음의 관심, 그 작은 사랑이 그리운 것.
『첫 느낌』 - 풍류


 


기자 생활을 처음 할 때가 생각이 난다. 의과대학 입학도 하기 전, 합격 통지만을 받고 나서 인터넷 홍보 글을 보고 가입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낼 때의 그 떨림. 컴퓨터로 작성해서 보내면서도 자필로 작성해야 되는 건 아닐지 걱정했을 때의 마음과 당시 편집장에게 처음 연락이 왔을 때의 느낌. 기자교육을 처음 받던 그 시절의 그 생동감과 ‘순수’가 새삼 떠오르게 되는 오늘이다. 처음 기자 회의에 참석하고, 내 손으로 배포를 시작했을 때의 즐거움이 아직도 떠오른다. 배포되고 있지 않던 신문이 내가 기자 활동을 함으로써 내가 다니는 학교에 배포된다고 생각했을 때의 설레임. 뭔가 학교 내에서 한 가지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비단 기자 생활만 이랬을까? 의과대학에 처음 발을 들일 때의 당신에게도 첫 느낌은 있지 않았을까? 간단하게는 “멋진 의사가 되겠다”부터 복잡하게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매일 환자를 살려내는 외과 교수가 되겠다.”까지. 나에게도 이런 시절은 존재했다. 무식하지 않은 의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신문사에도 지원한 것이었다. 취미 생활을 만들기 위해서 악기도 시작했고, 영어 회화 수업도 들었으며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교양 과목도 졸지 않고 열심히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본과 1학년의 3월도 첫 느낌으로 가득찬 시기이다. 사실 배운 것이 없어서 시험을 볼 수 없는데도 항상 본과 1학년의 도서관에는 공부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해부학의 간단한 것을 배우면서도 초롱초롱한 눈빛이 살아 숨쉰다. 아는 것은 별로 없는데도 굳이 해부학 용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려고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물론, 나에게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첫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유’로 무장된 나는 ‘게으름’을 ‘여유’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예과 공부 필요 없어’부터 시작된 ‘여유’는 모든 일들을 허무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기자 생활도 가장 재미없었고, 편했다. 그 ‘여유’는 결국엔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하게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당신에게 두 번째 느낌은 어떠했는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두 번째 느낌에 의한 허무를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았던 삶의 목표는 점점 바닥으로, 나락으로, 말초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낮아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개인적 취향 차이’와 ‘삶의 요령’이라는 그럴 듯한 표현으로 당신의 추락을 포장한다.

 공부에서도 두 번째 느낌에 의한 추락은 거듭된다. 3월의 반짝이던 눈빛, 열기에 가득찬 도서관은 온데간데 없다. 교과서를 쳐다보기 시작하던 일부 무리들도 노트와 야마로 무장하고 ‘현실’을 인정한다. 골학과 스컬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 중 일부는 생화학과 생리학 시간엔 잠을 청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덧 의대생활, 기자생활도 햇수로 4년차가 되었다. 실패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시 처음의 순수와 작은 관심이 그리워진다. 어쩌면 철없게 볼 수 있을 신입생들의 가벼움은 나에게 당시의 첫 느낌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자 생활의 허무를 뒤엎고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새로운 느낌을 만끽하고 있다. 내 생활을 변화시켜주는 ‘철없는’ 열정이 다시금 깨어난 듯하여 뿌듯하다.

 당신에게 첫 느낌은 어떠했는가? 이제 다시금 그것을 깨우고, ‘열정’이란 무기를 가져와서 더 큰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닐까.

유영재 기자/ 전남
<yjyoo1@naver.com>

[67호] 태연도 알기 힘든 의료법

67호/오피니언 2009. 7. 18. 23:19 Posted by mednews

태연도 알기 힘든 의료법

대중들의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의료법 상의 책임 범위


인기가수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간호사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1월 16일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주사를 맞으려고 병원에 갔다. 감기에 걸려 찾아간 병원에서 간호사가 점심시간이라 주사를 놓아주지 않았다”며“한바탕 하고 싶었는데 소심하게 그냥 나왔다”라고 불만을 토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의사의 오더 없이 독단적으로 주사를 놓아줄 수 없었던 간호사의 역할 범위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기에 빚어진 일이다.

원칙적으로 민사적 책임에 관해서는 간호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책임은 의사가 지도록 되어있다. 간호사란 ‘상병자(傷病者)나 해산부의 요양을 위한 간호 또는 진료 보조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을 임무’로 삼는 자(의료법 제 2조 2항)라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판례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의 의료행위는 전적으로 의사의 보조에 그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연의 사례에서 문제가 되었던 주사의 예를 들어보자면, 주사란 주사기라는 의료 기계를 사용하여 주사액이라는 의약품을 체내에 주입하는 치료행위이다. 따라서 주사 역시 의사가 행해야하지만 의사의 지시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간호사 역시 주사를 행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피하주사, 피내주사, 근육주사는 의사의 지시에 의해 간호사가 행할 수 있지만 정맥주사의 경우, 이것이 간호사의 업무에 해당하는 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엄연한 비 진료시간인 점심시간에 진료 행위를 요구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비 진료시간에도 급환을 위하여 운영하고 있는 응급실이라는 의료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의원에서 비 진료시간에 진료를 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은 우리나라 환자들의 의료체계에 대한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것. 더군다나 방송 진행 중 주사를 임의로 놓는 것은 간호사의 권한 밖이라는 사실을 청취자가 알려주었을 때 ‘아픈 제가 잘못이네요’ 라는 식으로 코멘트를 마무리 지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 상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하고 나서야 사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태연의 간호사 관련발언 파문에 관해 비단 태연의 잘못이라고 비난하기에는 적잖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의료법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더군다나 의료법 자체도 모호한 용어의 정의로 인하여 끊임없이 개정논란이 일고 있을 정도로 정확한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인과 의료인들도 정확한 해석이 어려운 의료법을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정확하게 개정해나가는 일은 결국 의료계와 법조계의 공동책임일 것이다.



권의종 기자/가톨릭
<isnell@cy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