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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을 향한 ‘마이너스’의 손

 

 

 의대 1년 평균 등록금 936만원, 의전원 1년 평균 등록금 1712만원.(2015년 기준) 의대생들은 남들보다 오랜 기간, 남들보다 높은 액수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사회에서는 의대를 간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내 반토막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취업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주변의 많은 의대생들은 과외와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서 ‘내 용돈은 내가 벌자’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본과에 진입하면 이마저도 힘들어진다. 부족한 통장 잔고를 보며 내일부턴 밥을 얼마짜리 사먹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 본과생에게, 다음의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면.

 

  “기존에 쓰던 통장과 카드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쓰다가 잔액이 부족해져도 돈을 더 쓸 수 있다. 입출금에 제약이 없으며, 꼭 일정 금액의 돈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몇 천 만원까지도 쓸 수 있다. 더 쓴 돈을 나중에 갚을 때도 쓴 금액에 비례해서 이자를 매긴다. 오, 나는 얼마 안 빌려 쓸 거니까 아주 싸게 돈을 빌릴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빨리 채워 넣으면 이자도 덜 낼 것 아닌가? ‘마이너스 통장’의 ‘마술’이다.”

 

마술에는 항상 트릭이 있다

  다른 단어를 두고 굳이 ‘마술’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도 아니며 마이너스 통장이 정말 기적을 행해서도 아니며 마술의 본질은 ‘눈속임’에 있기 때문이다. 통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나 쯤 개설해볼 법하다는 달콤한 유혹을 건네고 있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사실 예금이 아닌 빚이다. 일정한 금액을 한 번에 받아 쓴 후 천천히 상환하는 일반 대출과는 달리, 마이너스 대출은 일정 한도 아래에서 이용자가 뽑아 쓰는 만큼만 빌린 돈이 된다. 그리고 이자는 이 마이너스 금액이 존재하는 기간에 비례해서 매겨진다. 예를 들어 하루 만에 돈을 갚았으면 이자는 하루치만 내면 되는 식이다. 이런 편리성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은 직장인들에게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비상금’ 개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이너스 통장이 의대생과 손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대생들은 다른 대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확률로 미래에 고소득이 보장되는 특수한 집단이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높은 등록금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므로 생활비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에서는 이들을 좋은 거래 대상으로 보고 소득이 없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금리까지 낮추어 주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똑같은 대출이어도 한 번에 큰 금액을 빚진다는 부담이 훨씬 덜한 마이너스 통장은 학생들이 ‘한 번 뚫어볼까’하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약도 잘못 쓰면 독

 몇 년 전만 해도 제1금융권의 메이저 은행 중에서는 H 은행이 의대생 마이너스 대출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요새는 N 은행, W 은행 등 다른 많은 메이저 은행에 의대생들을 위한 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올 1월에는 S 은행의 모 지점에서 의대생들과 의사들에게 최대 2 %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해주겠다고 한 사실이 알려져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상품들의 대출 한도는 신용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사이이며, 연체가 되지 않는다면 대출을 얻는 것만으로는 신용 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출 자격은 대부분 본과 1학년부터, 일부 은행에서는 본과 3학년부터이다. 부모님 2인 모두 동의가 필요하거나 부모님 1인과 동행해야 신청되는 대출도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H 은행의 경우에는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 없다.
 모든 대출이 위험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일반 대출에 비해 특히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자’이다. 일반 대출과는 달리 마이너스 대출은 이용자가 필요한 만큼만 금액을 빌리기 때문에 대출 금액이 들쭉날쭉하다. 은행 입장에서 이는 이자 수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마이너스 대출의 금리는 다른 대출에 비해 0.5-1 % 가량 높다. 우대를 받아도 일반 대출보다 높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자 계산이 복리로 되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액을 오래 놔둘수록 갚아야 할 금액이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며, 최악의 상황으로 상환이 연체가 될 경우 연체이자까지 추가로 붙는다. 연체가 되지 않았더라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마이너스로 시작한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기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리게 된다. 경제관념이 확실하게 서있지 않은 대학생이 이용하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만에 하나 대출 없이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면, 마이너스 통장의 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내가 미래에 큰 지장 없이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 후에 대출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절대 대출을 받지 않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계부를 쓰고, 지출 계획을 짜는 세상의 모든 의대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치원 기자/중앙
<1inamillion_@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