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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최우수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

한서윤 (서남대학교 본과 2학년)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는 모든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경제뉴스가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고, 심지어 벽지무늬만 봐도 지루하지가 않단다. 어찌 보면 숨만 간신히 쉬며 책상에 수북이 쌓인 프린트와 책의 내용을 머리에 쑤셔 박아도 모자랄 지금, 병원으로 돌아가기 싫어 바로 앞 공원에서 미적미적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이 딱 그 형색이라 실소가 나왔다. 어차피 나온 거, 기분전환이나 제대로 하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내가 그토록 구경하길 좋아하는 하늘을 봤다.
 이리 여유가 없는 시기엔 고개 한번 들어올리기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힘들어 한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더니, 어느새 풍만한 보름달이 운치 있게 동동 떠있는 가을하늘이 완연했다. 그런데 가리는 것이 참으로 많다. 나보다 큰 키의 가로수와 그들이 한껏 뻗은 가지 사이사이로 빼곡히 차오른 색색의 나뭇잎, 머리 위에서 주황색 불빛을 뿜어내는 가로등, 그리고 공원을 빙 둘러싼 형색의 높은 아파트들이 첩첩이 겹쳐 구름을 가리고 달을 가리고 별빛을 가리고 고운 남보랏빛 배경을 가린다. 눈에 담기는 풍경이 참으로 감질나고 전부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다가,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내가 막 도망 나왔던 병원 꼭대기 층이라면 더 잘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이 나왔지만 이번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새벽 2시임에도 고요한 로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환자 두어 명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금방 1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7층을 누르고 가만히 있는데, 이 시간대엔 좀처럼 멈추지 않는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섰다. 열린 문에서 낯익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서도 눈에 띄는 흰 가운을 입은 선배는 피곤에 먹힌 몰골로 1층이 아닌 위를 향했다.
  “집에 안가세요?”
 의아해 묻는 말에 그는 핏기 없는 얼굴로 준비할게 남았다고 말하며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7층에서 내리자마자 전자도서관이 있는 쪽으로 비척비척 사라졌다. 그가 몸을 감춘 복도의 코너를 잠시 바라보다, 나는 피피티가 수북하게 쌓인 책상으로 돌아왔다. 깊은 한숨과 함께 기계적으로 한 손엔 펜을 쥐고, 무릎에는 참조할 해리슨을 펼쳐두고, 바로 앞에는 공부해야할 피피티를 펼쳤다.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공부하는 태세를 취하고 말았지만, 시선은 1분도 되지 않아 등 뒤에 놓인 긴 창문의 바깥으로 향하고 말았다. 애초에 이걸 보기 위해 올라왔으니, 한 5분정도는 더 이러고 있자.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창문을 슬쩍 열어젖혔다.
 정신이 확 들게 하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공원에서와는 극명하게 다른 풍경이 내가 바라던 그대로 훅 하고 밀려들었다. 시선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별과 달과 구름뿐 아니라 지상에선 시야를 가로막던 장애물까지도 풍경에 어우러진 일부로서 두 눈에 담긴다. 딱 7층의 차이일 뿐인데도 보이는 것이 이리도 다르다. 매일을 이곳에서 보내면서도 새삼스럽게 높은 곳에서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지를 인식하고는 감탄하게 된다.
 선배도 이런 이유에서 올라오는 걸까?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그들은 밤마다, 아니 수시로 이곳으로 올라온다. 실습을 마치고, 또는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이곳에서 토끼처럼 빨간 눈을 하고 지새우는 밤이 너무도 짧아 찰나의 새벽에 구겨진 흰 가운을 덮고 벤치에서 눈을 잠시 붙이고는 다음날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다. 이곳 7층의 작은 자료실에서 그들은 두꺼운 교재를 뒤적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읽고, 발표 자료를 만들고, 추가로 알아야 할 내용, 다음에 있을 실습에 관련된 내용과 지식이 부족한 부분들을 공부한다. 어쩌면 그들은 실습을 하는 동안 여러 장애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젖히고 원래 보고자 했던 것, 알고자 했던 것을 알기 위해 올라오는 것이리라. 아직 이론만 배우는 본과 2학년인 우리와 그들은 다른 높이에 서있었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뉴턴이 말했던 거인들의 어깨 위가 아닐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과거부터 지금껏, 관찰과 경험과 탐구와 증명을 통해 몸집을 불린 지식의 집합체는 논리정연한 말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내 무릎에 있는 해리슨처럼 두꺼운 서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들을 통해 하나의 병에 대해 배울 때면, 그 이름이 지어진 어원의 설명부터 시작해 세계적 국내적 통계, 병인, 원인, 병의 발병기전, 주로 보이는 증상, 치료법과 쓰는 약은 어떻고 예후는 어떤지 까지, 그에 관한 지식이 총망라되어 주르륵 펼쳐진다. 7층의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것은 기존의 거인들이 우리를 어깨에 얹혀놓고 보여주는, 장애물 하나 없이 탁 트인 풍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들의 차트에 적힌 환자를 마주했을 때, 환자와 진단 사이에 너무도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환자가 아직 말하지 않았던 기저질환이나 증상, 복용한 것들이 있을 테고, 그도 모르는 DNA에 내재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체내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 선배는 적어도 지금 보이는 것을 위주로 많은 가능성 중 확률이 낮은 것들을 쳐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좁혀진 가지들 중 더욱 좁히려면 어떤 검사를 해야 하고, 다음엔 어떤 처치를 해야 할 지 고민할 것이다. 진단의 알고리즘을 따라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제 문제를 고치기 위해 어떤 치료를 해야 할 지, 어떤 약을 써야 할지, 그것이 환자에게 치료효과 이외의 어떤 다른 효과를 보일것인지도 생각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 선배들은 자신이 선 위치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7층으로 올라와 큰 흐름을 정리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저편에서 벌어지는 무언가를 더 잘 보고 싶다고 아이가 칭얼거리면 아버지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말을 태워준다. 하지만 아이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아래에 있을 때보단 잘 보이긴 해도 너무도 멀리 있어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더욱 자세히 보고 싶어 조갈이 난다. 게다가 아이는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을 수가 없으니 아버지가 언제까지고 어깨 위에만 얹어둘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제 두발로 서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며 인파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서있는 곳에서부터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보고, 손이 닿는다면 망설임 없이 만져보면서, 그래도 닿을 수 없는 시야의 것은 아버지께 물으며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금씩 자라나 아버지와 같은 높이에서, 아니 그보다 더 자라나 더 멀리를 보며,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 다시 목말을 태워줄 것이다.
 내년이면 나도 실습을 시작한다. 내가 올라앉아있던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첩첩이 가려진 시야에 갑갑해 하면서도 그것 너머에 펼쳐져있을 풍경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오늘 봤던 선배가 그러했고, 내 이전의 수많은 선배들이 그러했듯, 첩첩이 가려진 장애물 너머에 놓인 것들을 보길 갈망하고 애쓰다 때로는 위로 올라와 거인의 도움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다른 높이에서의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샌가 누군가에게 더 너른 시야를 보여주는 거인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높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지고,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질테니 말이다. 나는 여태껏 창밖의 풍경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받고 한동안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들뜬 마음과는 별개로 주변에는 시험공부를 하는 동기들이 여럿이라 가만히 웃기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썼을 때보다 날씨는 추워졌어도 여전히 시험을 앞둔 상황은 똑같아서 기분이 복잡 미묘했는데, 그렇기에 이 기쁜 소식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떤 경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하거나, 감정을 표출하고 싶을 땐 노트에 연필로 글을 쓰곤 합니다. 진정으로 무엇을 체감했는지를 글로 옮기는 과정 중엔 글씨를 쓰고 지우길 반복하며 고심 끝에 적절한 표현과 단어를 선택하고, 산발적으로 튀어 올랐던 생각과 감정을 가지런히 다듬어서 제가 간직하고 싶었던 느낌을 차분히 정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의사선생님들의 삶이 담긴 글을 보며 꿈을 키워왔습니다. 앞으로는 그들처럼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과,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며 문득 가슴에 스며드는 느낌들을 글에 잘 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